소설리스트

미궁기담-577화 (577/813)

571 시주르 대평원

기절한 아영을 방치한 환인은 여자친구들을 불러 모아 거인숲 미궁에서 얻은 수익의 결산을 진행했다.

=먼저…… 이형종 부산물은 하나도 획득하지 않았어. 그로 인한 수입은 0.=

부산물로 많이 거래되는 것은 2차 가공을 통해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것들.

2,000마리에 가까운 변종 실루엣 메어는 하나도 빠짐없이 사람의 형태였다. 그와 그의 여자들이 확인하기로 신체 내부 장기 또한 사람과 다를 바 없었다.

인간형 사체는 대부분 위의 범주에서 벗어난다. 동급 괴물 형태의 마물, 이형종과 비교해 여러모로 손색이 떨어지다 못해 형편없는 것.

그렇다고 해도 마물은 마물.

술사 협회나 아카데미, 학사원처럼 마물과 이형종을 연구하는 곳에서 매입을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량으로 요구하지도 않는다.

기껏해야 1년에 3~5구정도, 그것도 상태 멀쩡한 사체를 요구한다.

거인숲 미궁의 실루엣 메어는 변종이라 더 비싸게 책정될 수 있지만 그래봤자 동화가 몇 닢 더 추가는 수준일 거다.

반대로 변종이기에 연구 가치가 없다거나 연구 제반 사항이 전혀 다르다면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챙겨가봤자 전부 폐기해야 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부산물 수익은 없다.

=미궁에서 활동하며 채집한 거대 약초가 다량 있는데 성분을 알아본 결과 동종의 약초와 성능의 차이는 없었어. 팔아도 그냥 무게당 계산될 텐데 이것도 다 합쳐서 비싸게 팔아봤자 은화 몇 닢 정도.=

동물을 잡아 갈무리한 가죽은 이미 이실리테와 유르파의 무두질, 재봉술 연습의 제물이 된 지 오래다.

나머지 식용 식물과 과실, 열매 등은 모두 식량으로 소비할 예정이거나 소비한 상태.

=남은 것은 위상석인데 1급부터 4급까지 급수 불문 총 388개를 획득했고 이 중 1급부터 3급까지 347개는 거인들에게 소형화 비술을 걸 때 시약으로 썼어. 술법진 위상력 보충재로 쓴 것도 다수야.=

위상석을 가루로 만들어 술법의 효과를 끌어내는 촉매로 쓰는 것은 비용 면에서 꽝이다.

위상석 가루로 1회 쓸 돈이면 제조한 시약으로 4~6회 쓸 수 있다. 고등급 위상석이면 10회 이상 차이 난다.

하지만 다른 시약 재료를 구할 수 없었기에 아깝지만 위상석 가루를 사용했다.

결과 최종적으로 3급 위상석 25개, 4급 위상석 16개만 남았다.

유르파는 종이에 총소득을 적어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3급 위상석 25개 약 50금화, 4급 위상석 16개 약 121금화. 합계 171금화가 이번 거인숲 미궁의 수익이야. 아가씨들 장비의 위상력 회로 수선 비용으로 조금 지출이 있을 텐데 그건 이전에 만들어둔 재료로 하면 돼.=

그녀의 계산에 안느는 심각한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다가 수익 결산 내용에 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뭐야, 난 또 금화도 못 벌었다고 생각했는데 많이 벌었잖아? 그 위상석을 율이 언니가 전부 마도기로 가공해서 팔면 더 나올 거 아냐.=

=하지만 자기랑 아가씨들 능력하고 적의 강함을 일수로 나눠서 평균을 내면 약간 손해라고 볼 수 있어. 유일 직업이랑 희귀 직업해서 세 명이나 되는데…….=

“금전적인 면만 보자면 그렇겠지만, 무형적인 부차적 이득도 있습니다.”

거인들과 강한 친분을 맺었고 영도의 전력이 늘어났다. 미궁의 심핵을 부수며 힘도 더 늘었으니 결과를 보면 큰 이득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메리아놀의 사죄품도 올 테고 엘위드리스 가문도 어떻게든 자신과 분란을 무마하기 위해 배상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환인의 시선이 기절한 아영과 멍하니 주저앉아있는 카락스의 송곳니 근처에서 잡담 중인 가야와 그녀의 조원들에게 향했다.

그들의 신분도 메리아놀 사회에서 제법 고위층이라 들었다. 저들에게서 얻어낼 정보의 가치를 생각하면 이번 미궁에서 얻은 것은 절대 적지 않다.

‘스트레스의 대가라고 생각한다면 모호하지만.’

환인의 이야기에 백려강이 문득 생각났다는 표정으로 푸른 비늘의 용 꼬리를 살랑 흔들며 물었다.

=환인 님. 아까 하늘로 펼치셨던 영혼술도 힘이 늘어난 것이 반영된 건가요? 저 그런 건 처음 봤어요.=

다른 여자들도 그게 궁금하단 얼굴로 그의 입술이 열리기를 기다린다.

“그래. 어제 욕실에서 다들 봤겠지만, 가슴의 문양이 더 커지고 세밀해졌다. 정확한 수치는 낼 수 없지만, 이전보다 족히 2배가량 늘어난 걸로 보인다.”

=와. 그 정도니까 다른 나라들이 환인 님께 사절까지 보내는 거구나…….=

=그거, 미궁 안에서는 못 쓰겠지? 썼다간 미궁이 붕괴할 테니까.=

=주인님이 쓰신 건 영혼 폭발이었으니까. 영혼 화살은 또 다를 텐데?=

=환인 님은 미궁에서 통하는 기술을 다양하게 보유 중이시잖아요. 언니들도 있으시고요. 그런걸 써야 할 상황이면 주변 환경은 고려할 때가 아닐 거예요.=

=하긴…….=

“아무튼.”

수익 결산을 마무리한 환인은 아스펜드에서 광창을 꺼내 유르파에게 내밀었다.

“심핵을 부쉈을 때 힘이 일부 광창으로 흘러 들어간 것 같습니다. 혹시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으응?? 어디어디…… 외관도 좀 변했네.=

유르파는 재빨리 모노클을 끼고 제법 묵직한 광창의 코어를 두 손으로 잡고 힘을 주었다.

부우우웅—

낮은 울림이 한차례 퍼져 나오고, 환인과 비교해 빛이 조금 약한 광창이 형태을 잡는다.

=흐음~.=

그 상태로 이리저리 휘둘러보고 코어의 상태를 확인한 유르파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환연에게 허락을 받고 쿠에들의 마방으로 ᄊᅠᆻ던 흙집을 향해 광창을 엉거주춤 휘둘렀다.

스각—

한 차례로 끝나지 않고 네 번, 다섯 번 계속해서 휘두른다. 그렇게 5분 정도 창을 휘둘러 흙집을 무너트리는 모습에 환인도 광창의 변경점을 눈치챘다.

“허기 자극 효과가 없어진 겁니까.”

=응. 체력 소모도 소폭 완화된 거 같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자기 몸 상태를 확인한 유르파가 환인에게 광창을 돌려주며 설명했다.

=가끔 이런 경우가 있어. 어느 한 면에 집중하는 바람에 발생한 부차적인 단점이 두 번째 미궁 돌파 때 다소 완화되거나 없어지는 거. 광창도 마찬가지로 심핵력을 조금 받아들이면서 단점이 보완된 거 같아.=

“…….”

광창을 받아든 환인은 유르파의 온기가 아직 남은 광창의 코어를 쥐고 있다가 스피어 형태로 모양을 바꾸었다.

유르파 때와 다르게 눈부시도록 빛나는 창.

거기에 영기와 심핵력을 아주 약간 담아 허공에 휘두르니 창극을 통해 발생한 순백의 초승달이 대기를 갈라버린다.

쓰쐐쐐쐐쐑—

연이어 허공을 난도질하는 창극에서 창기槍氣가 쏟아져 파공성을 사정없이 퍼트리자 환인의 여자들과 가야 일행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

전자는 깔끔한 자세로 사납게 몰아치는 그 절제미에 감탄했고 후자는 승급한 고위 근접 직업자들이나 쓸법한 기파의 난사에 기겁한 것.

그렇게 여자들을 놀래킨 환인은 만족스러워하며 광창을 거두어들였다.

“확실히 기운의 소모 부담이 덜해졌군요. 이 정도면 기운을 아끼려고 천칭을 쓸 필요는 없겠습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이제부터 체력이 감소하는 감각에 익숙해지도록 종종 쓰는 것이 좋겠지.

그의 이야기에 고개를 주억이던 유르파가 응? 하고 의문이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자기가 천칭을 쓴 이유는 상대를 상처 없이 제압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어?=

유르파의 의문에 환인은 광창의 창끝 형태를 뭉툭하게 만들어 땅을 내려쳤다.

콰앙!

“형상을 변모시키면 타격용으로도 쓸 수 있습니다. 물론 맨살에 맞으면 광량 탓에 살이 지져지겠지만, 갑옷이나 옷 위로 맞는다면 상관없겠지요.”

이것으로 자신이 목표로 정했던 강함의 영역이 한 발짝만 남았다.

무기도 정해졌고 갑옷도 그리모암의 모자만 얻으면 다섯 종류를 모두 획득하게 된다.

호천명 친왕을 도와주고 얻은 정보에 따르면 그리모암의 모자는 히스론드의 주도 팔라툼에 있다고 하니, 그것까지 얻고 난다면 지위에 의한 배경에 본신의 무력까지.

완전체가 된다.

‘그러면 남은 것은 날 이곳으로 소환한 자들의 처리와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심핵력의 확보뿐.’

그사이 더는 귀찮은 일이 발생하지 않기만 바라는 환인이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왔기에 점심을 먹은 뒤 출발하기로 한 환인은 이실리테가 점심을 준비하는 사이 마차를 꺼내 점검을 시작했다.

유르파는 꺼놨던 마차의 술법진을 다시 차근차근 가동하고 환인도 비상과 함께 근처를 돌아다니며 벌레를 잡아먹던 쿠에들도 데려와 마차에 묶는다.

유르파가 백려강을 데리고 마차의 부속 마도구 상태를 살피고 있을 때 기절에서 깨어난 아영이 머릴 긁적이다가 어슬렁거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음. 저도 도와드릴게요. 마차 부품 노후화 상태를 확인하면 됩니까?=

=으응? 마차 볼 줄 아니?=

=넵. 정보 수집한다고 역사에서 일한 적이 있거든요. 이래 봬도 이거저거 할 줄 아는 거 많아요.=

=암살단 차기 우두머리였다면서? 그런데도 그런 걸 해?=

아영은 하얀 머리카락에 얼굴도 몸도 나긋나긋한 여자, 유르파를 내색하지 않고 새삼스러워했다.

보통 암살자라는 걸 알게 되면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기 마련인데 이 사랑스러운 분위기의 언니는 자신을 전혀 꺼리지 않는다.

=아, 저 카락스에서 밑바닥부터 여기까지 기어 올라왔거든요. 그래서 잡무부터 어지간한 일은 다 해봤어요.=

=암살도?=

=넵. 근데 언니께서는 별로 안 꺼리시네요? 보통 암살자라는 거 알게 되면 무서워하거나 거리를 두거나 둘 중 하난데.=

=네가 못된 맘을 품고 있었으면 자기가 진즉에 머리를 떨궜을 텐데 뭐가 무섭겠어. 마차 밑으로 들어가서 바퀴 뼈대랑 마차 하부 좀 봐주렴.=

=……넵.=

하긴. 성제의 여잔데 평범할 리가 없지.

옷이 더러워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슴없이 마차 밑으로 기어들어 간 아영은 바퀴와 서스펜션 사이 유격과 부품 노후화 상태를 확인한다.

뭔가 신기한 기술이 많이 들어간 마차지만, 그래도 마차의 기본적인 기능은 대동소이했기에 열심히 확인 작업을 해나갔다.

그때 유르파의 질문이 그녀의 귀를 건드렸다.

=그런데 있잖니. 그렇게 선명한 아우라를 가지고 그런 첩보활동이 가능해?=

=예입. 카락스에 전해 내려오는 비법 덕분이죠.=

=흐응.=

마차 하부의 부품 상태가 전부 양호하다는 걸 확인하고 다시 기어서 나온 아영은 녹색 쿠에를 쓰다듬어주는 성제와 그 옆에 있는 성기사를 힐끔거리면서 유르파에게 물었다.

=혹시 저 안 죽는 겁니까?=

=왜 그렇게 생각해?=

=그, 절 대하시는 모습이 죽음을 앞둔 사람을 대하시는 거랑 좀 다른거 같아서요.=

=죽고 싶니? 죽고 싶은 거면 자기한테 말해줄 수 있는데? 후후.=

아영은 조곤조곤 말하다 웃는 유르파에게서 뜻 모를 압박감을 느끼곤 시무룩해졌다.

성격이 상냥하고 부드럽대서 슬쩍 기대봤는데 이빨도 안 들어가네. 저기 푸른 비늘이랑 뿔이 예쁜 언니는 세상 냉랭한 표정으로 말 걸지 말라고 냉기를 풀풀 풍기는 중이고…….

하지만 금방 그런 기색을 떨쳐내곤 천연덕스럽게 그녀들에게 다가간다.

=그럴 리가요! 암살을 업으로 삼아서 뭐, 언제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길게 살고 싶어요. 아무튼 시키실 일 있으면 말씀만 해주십쇼! 뭐든 하겠슴다!=

=그러면 저기 흙집 보이지? 안에 들어가면 가방이 쌓여있을 텐데 셋으로 나뉘어있을 거야. 제일 오른쪽은 깨끗하게 털어서 마차 안에 집어넣고 중간에 있는 건 마차 지붕으로, 왼쪽에 있는 건 마차 뒤로 옮겨놔 주렴.=

=옙!=

유르파의 지시에 냉큼 달려가는 아영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백려강은 바람으로 기막을 살짝 펼쳐 그녀가 듣지 못 하게 하며 유르파에게 말했다.

=평범하게 봐서는 암살자 같지 않네요. 다른 데서 만났다면 사교성 좋은 플뢰족 아가씨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자길 암살하려던 년과 한패지.=

그래. 그게 문제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친해지려고 노력했을 텐데.

환인 님은 저 여자를 어떻게 하실까? 그 자리에서 쳐죽이지 않았고 트라프로넨 영성님 쪽으로 같이 안 보내신 것을 보면 다른 생각이 있으신 듯 한데…….

백려강은 아영이 가방을 양손 가득 들고 달려오는 것을 보며 기막을 해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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