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574화 (574/813)

568 시주르 대평원

우르르르릉…….

세상이 뒤집힐듯이 흔들리고 귀가 멍멍해질 정도의 묵직한 음색이 쏟아진다.

정말 세상이 흔들리는것은 아니고 기파 탓에 자신들의 몸이 흔들리는 거겠지.

사절단은 몸을 작게 떨었다.

저 위력은 군의 전술, 혹은 그 이상인 전략 술법에 버금가는 위력이다.

전술, 전략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그만한 술법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최소 단위가 5급 이상 술법사 7명이다.

위력 증가 담당, 궤도 계산 담당, 발사 조율 담당까지 해서 총 7명이 있어야 전술용 술법을 발동시킬 수 있는 거다.

물론 발동도 금방 이루어지지 않는다. 짧아도 10분에 걸친 복잡한 계산과 단계를 거쳐야한다.

그런 걸 성제는 혼자서, 삽시간에 펼쳤다.

‘성제는 정말 유일 직업이었군…….’

‘유일 직업과 일반 직업은 이만큼이나 차이나는 건가……!’

‘이 정도면 성제 혼자서도 우리를…….’

환인은 갑작스럽게 대량의 기운을 소비한 탓에 가슴과 팔에서 욱신거림을 느끼며 얼어붙어있던 크샤나리를 향해 차갑게 선고를 내렸다.

“그때는, 이것이 단순 무력 시위가 아니게 될 겁니다.”

=……명심… 하겠네…….=

자신이 암살당할뻔한 것보다 자신의 여자를 이용하려 든 것에 더욱 분노하는가.

크샤나리는 하마터면 특대 함정을 밟을 뻔했다는 생각에 심장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만약 저 사비족들처럼 어젯밤, 안실라에게 강요에 가까운 말을 걸었다면 그 자리에서 모두 목이 달아났겠지. 피떡이 되어버렸던가.

메리아놀과 성제와의 관계성은 최악이 되었을테고.

심장이 서늘해진 것은 전쟁 학사 유연도 마찬가지였다.

학사전의 전쟁 학사로서 역사와 전쟁사를 연구한 그녀는 환인의 성격과 성향, 능력을 파악함으로써 그가 라수비탄에 나타날 경우 벌어질 수 있는 열두 가지 유형을 삽시간에 도출해낸 것.

그중 열 가지의 결과가 주도 라수비탄의 소멸이다.

‘홀로 전술급 술법을 펼칠 수 있는 데다 죽으면 광역 영식을 일으키는 영혼사의 유일 직업자.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주변을 모두 파멸로 끌고 갈 수 있는 성향. 이건…… 안돼. 말이 안 돼. 절대 건드려서도, 연관되어서도 안 되는 인물이야.’

라드세아의 주도 라수비탄에서도 1년에 몇 명씩 의문의 행방불명자가 나타난다.

평범한 시민들이 아니라 고위 인사들, 호족 가문의 일원 이야기다.

그게 숙청, 혹은 반대파의 암살로 인한 것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뭣도 모르는 병신 같은 고위 공직자가 그와 마찰을 빚으면 그 즉시 파멸의 수레바퀴가 돌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한 권력의 악마들이 득실거리는 곳에 저 성향의 인물이 나타난다면 주도의 명운은 풍전등화와 다름없다.

이 순간, 머리가 맑아진 유연은 결단을 내렸다.

=성제님의 말씀이 맞으세요.=

지시를 이행하지 못하더라도 좆되어봤자 파직이다. 그러면 그냥 집에 칩거하면 그만이다. 전쟁사 연구는 집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자신이 바라지도 않은 일로 저런 사람과 원한을 맺는 건…….

‘죽어도 사절이야.’

=유연 님?!=

=돈은 조용히 해. 부끄러워 성제님의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을 지경이에요. 부디 저희가 물러나는 것을 허락해주시겠어요?=

환인은 무언가 각성을 한 것처럼 갑작스레 두려움과 공포를 모두 떨쳐낸 유연을 바라보다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

=성제님께 폐가 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이 일은 제 실수로 보고될 것이고, 책임도 제가 전부 질 것이니까요. 애초에 사절로 온 것은 제 의도가 그다지 반영되지 않은 일이었거든요.=

자신과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을 피하고 싶다는 뜻인가. 환인은 표정을 풀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돌아가시거든 친왕께 안부를 묻더라 전해주십시오.”

=감사해요. 돈, 가자.=

=유연 님!=

=야, 그냥 네가 사절단 대표해라. 난 돌아갈 테니까.=

=그런 억지를……!=

주먹을 감싸 쥐고 환인에게 공손히 읍을 올린 유연은 아직도 당황을 버리지 못한 채 우는 소릴 하는 회색 사자족의 엉덩이를 걷어차며 환인이 있는 곳에서 멀어졌다.

라드세아 측이 그렇게 나오자 크샤나리도 환인에게 기사 식으로 가슴에 손을 올렸다.

저쪽의 개입과 간섭만큼은 막아야 하는 일이었는데 저들이 성과 없이 떠났으니 자신도 더 이상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여러모로 성제님을 귀찮게 하였소. 메리아놀도 이만 물러나고자 하니 허락하여주시겠소이까.=

“다음번에는 이런 꼴로 만나지 않길 빌겠습니다.”

그땐 지금처럼 피를 보지 않고 끝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으름장.

크샤나리는 그러는 것이 당연한 양 고개를 숙였다.

=유념하겠소. 그리고 성제님을 암습한 사건에 대한 것은 조사가 진행되는 대로 전서가 성제님께 전달될 것이며, 이번 사태로 인한 배상과 사죄는 협의회에서 또 다른 인물을 파견하여 전달 드릴 것이오. 그럼 이만…….=

그렇게 메리아놀 측마저 떠나니 벨티칼에서 나온 사절들의 동공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현 상황을 보자면 플라비우스족이 가장 선방하였고 그다음으로 라드세아가 현명하게 물러난 모양새다.

최악은 메리아놀과 자신들.

특히 자신들은 성제가 보는 앞에서 그가 친구라고 공언한 거인족에게 폭언을 쏟아낸 모양새다.

거기에 만약 성제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자신들은 백청룡님에게도 분노를 샀을 거란 이야기가 아닌가.

이대로 돌아갔다간 대족장님이 가만히 있지 않겠지.

“…….”

=…….=

그렇다고 절대영도 같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성제에게 무어라 말해야 할지도 알 수 없다.

애초에 자신들은 머리가 아니라 몸을 쓰는 쪽. 대족장님에게 받은 명령도 백청룡님을 초대할 수 있을 정도로 성제와 사이좋아지라는 거였다.

그랬는데 사이좋아지긴커녕 철천지원수가 되게 생겼다.

청은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곰 같은 녀석에게 물었다.

=……야, 만엽. 이거 어뜩하냐.=

=……이대로 돌아가면 대족장은 우리를 곤죽으로 만들어버릴 거다.=

=누가 그걸 몰라……! 그걸 피할 구상 같은 거 없냐고 물은기다 이 등시야……!=

=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사과뿐이다.=

사과. 그래, 사과가 있었지.

=그리고 성제님을 따라다니는 거다.=

=……니 돌았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도마뱀 회로 만들어버릴 거 같은 저 인간을 따라다녀야 한다고? 미친 거 아니가?

곰탱이 같은 만엽에게 날 선 소릴 내뱉으려던 청은 성제가 갑자기 품에서 쇠막대를 꺼내는 모습에 멈칫했고.

부우우우웅—

그 쇠막대에서 빛의 창이 형성되는 모습에 입을 딱 벌렸다. 저거, 유물이다.

=자, 잠깐만요! 잠깐! 그, 그런 무서운 걸 왜 꺼내는 건데요?!=

“숙덕거리는 꼴이 이쪽을 습격하려는 모양새로 보였다만.”

=그런 거 절대 아니니까요……!=

“말로는 뭐든 할 수 있지. 네놈들이 플뢰족처럼 진실만을 말하는 종족도 아니고.”

으악. 이러다 죽겠다.

그나마 약간의 예의를 유지하던 호칭마저 네놈들로 격하되었다. 청과 유엽의 눈동자가 사시나무처럼 흔들린다.

크샤나리나 유연이 보았다면 이게 엄포나 위협이라는 걸 알아차렸겠지만, 이곳에 모인 사비족은 그렇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 부류가 아니었다.

애초에 사비족이 좀 더 똑똑하고 현명했다면 니오네브레스 4대 종족이 아니라 루크랑, 플라비우스, 플뢰, 프라우드에 사비가 추가된 5대 종족이었을 테니까.

감각이 뛰어난 만큼 다소 직관적인 행동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던 사비족은 환인의 투기가 살기로 변해감을 느끼곤 고를 것 없이 환인 앞에 넙죽 엎드렸다.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

“…….”

이 적나라한 행동에는 환인도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이들이 거인족처럼 다소 단순하고 무식하다는 사실에 일촉즉발, 긴장된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서 광창을 꺼내 든 거긴 했지만…… 이건 예상 밖인데.

=크흠. 저기, 성제님? 솔직히 여기에 내가 끼어들 일은 아니지만 말이야.=

환인은 뒤에서 트라프로넨이 헛기침하며 슬쩍 나서는 것에 그를 돌아보며 광창을 내렸다.

“괜찮으니 편히 말씀하십시오. 저와 트라프로넨 님 사이 아닙니까.”

=으허허. 으흠. 그게 그러니까, 사비 친구들은 좀 직설적이고 신분으로 으스대긴 해도 그렇게 나쁜 친구들은 아니라는 뜻이야. 아까도 쓰레기 같은 놈들이었다면 거인 친구를 힘으로 밀어내면서까지 들어왔을 거란 말이지.=

“…….”

=그러니까 조금 분을 풀고, 거인 친구들한테 사과하라고 한 뒤에 이야길 좀 나눠보는 게 어떨까?=

“……이 자들에게 아까 말했던 것처럼, 아드네빌라의 성격이라면 이자들을 버러지나 미물처럼 취급할 겁니다. 그녀는 버릇없고 예의 없으며 그걸 정당화할만한 능력도 없는 자들을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어음. 그, 그래?=

“그리고 이 자들의 목적은 제가 아닌 아드네빌라입니다. 이야기를 나누어봤자 이자들이 얻어낼 것은 없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 그런 사실도 깨닫지 못할 머리로 사절이랍시고 찾아와 성질을 북돋운데다 눈치까지 없어 이렇게 매달리려 하고 있습니다.”

=으~음.=

“트라프로넨 님. 말 안 듣고 사람을 마구잡이로 물려는 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떤 의도로 이걸 묻는지 눈치챈 트라프로넨은 하아, 한숨을 쉬며 목덜미를 긁적였다.

=두드려 패서라도 서열을 상기시켜야지……. 그래도 안 통하면 죽여야 하고…….=

“그 말씀대로입니다.”

환인의 시선이 사비족을 향해 다시 돌아가고 살기 또한 거침없이 치솟으니 청의 입에서 고함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돌아갈게요! 돌아가게 해주세요!!=

더 볼 것 없이 진심이 가득한 외침.

조금만 더 겁을 주었다간 비늘이 모두 역린이 될 것 같은 모습이다.

환인은 이후의 귀찮은 일을 방지하기 위해 잠시 뜸을 들인 뒤 그들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아드네빌라를 만나고 싶다면 직접 그녀를 찾아가라. 날 찾아와 성질 돋우지 말고. 알았나.”

=네엣!=

“다음에 본다면 그 몸뚱이를 채썰어서 도마뱀에게 먹여주겠다. 알아들었으면 꺼져라.”

환인의 선고에 사비족은 뒤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줄행랑쳤다.

이제 보니 저 성제라는 놈의 성격은 대족장과 비교해도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차라리 얻어터져도 대족장한테 얻어터지고 말지. 적어도 대족장은 우릴 죽이진 않을 테니까.

“…….”

쿠에들과 비교해도 절대 느리지 않은 속도로 벨티칼 쪽을 향해 달려가는 사비들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환인은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쉬며 살기를 거두어들였다.

이걸로 귀찮은 일은 일단락인가.

남은 건 주술사 뿐인데…….

환인은 구름이 동그랗게 퍼져나간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

청옥으로 날렸던 영혼들 중 다섯은 아까 돌아왔는데 하나가 아직이다.

왜 돌아오지 않는 거지. 설마 확률로 혼이 성불하기라도 하는 걸까.

‘서적에는 그러한 사례가 나와 있지 않았는데…….’

무슨 일인가 싶어 아르겐테아 정찰대 영혼 나머지를 불러 수색을 지시할까 생각했을 때.

「성제님~ 거동 수상자를 발견어요~!」

돌아오지 않고 있던 영혼이 서쪽에서 날아오며 뜻밖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거동 수상자라니. 어떤 자였지.”

「성제님께 잡힌 암살자와 비슷한 느낌의 플뢰였어요~. 3km가량 떨어진 야트막한 언덕에서 마도구로 이쪽을 훔쳐보고 있었어요~.」

=……어이.=

환인은 옆에서 정찰대 영혼의 보고를 듣다 영혼 기사를 부르는 트라프로넨을 말렸다.

“제가 가겠습니다.”

암살자의 동료인가.

조직적인 암살자들은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고 들었다. 실행 요원이 있다면 멀리서 상황을 파악하는 관찰자, 혹은 주시자 역할도 있다는 것.

환인의 제지에 트라프로넨이 짐짓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괜찮겠어? 지금까지 우릴 지켜봤다면 알 만큼 알고 있는 상태란 거고, 암살자니까 도망치는데도 선수일 텐데. 반격이라도 당하면 위험해.=

“괜찮습니다. 이쪽에는 환연과 청옥이 있으니까요.”

=아. 그런 거면 괜찮겠네.=

그게 아니더라도 영혼에 원기를 넣어주면 물리력을 쓸 수 있다.

환인은 아르겐테아 정찰대 영혼 여섯에 원기를 가득 밀어 넣은 뒤 비상을 불러 타고 곧장 하늘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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