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566화 (566/813)

560 시주르 대평원

=불렀나, 영혼사!=

10분 후, 길을 마저 낸 거인들이 환인의 호출에 전부 모여든다.

오로지 힘만으로 미궁 입구 확장 공사를 진행했지만, 모인 60여 명의 남녀 거인들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모습이었다. 흙먼지로 몸이 조금 지저분해졌을 뿐.

“입구를 만드느라 고생했습니다.”

=우리가 나갈 길을 우리가 만드는 건데 고생이랄 거까지야.=

=맞아.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었고 말이지.=

환인의 치사에 오랜만에 힘 좀 썼다며 개운해 하던 거인족들이 흐흐 웃는다.

그 순박한 웃음에 고개를 끄덕인 환인은 족장을 향해 말했다.

“간단한 확인 뒤에 미궁을 나갈 사전 작업을 시작할 겁니다. 유르파의 비술로 여러분들의 몸을 작게 만든 뒤 통과하는 방식이니 그때까지 근처에 앉아서 쉬시면 됩니다.”

=그리고는?=

“자세한 것은 유르파가 알려줄 테니…… 족장은 그사이 저와 같이 차원막을 잠시 다녀오시죠. 유르파.”

=응. 다들 여기 모여서 앉아봐요.=

유르파가 거인들을 자리에 앉힌 뒤 비술을 받을 때의 유의점을 알려주기 시작하고, 환인은 방벽 패널로 만든 발판을 사뿐히 밟아 족장의 어깨에 올라섰다.

족장은 그대로 입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며 물었다.

=입구에 뭔가 확인해야 할 게 있나? 아까 보니 자네 호위들이 들락거리던데 말이야.=

“그쪽은 별로 신경 쓸 것 없습니다. 그보다 여러분들이 무사히 나갈 수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게 중요하지요.”

몇 분 걷지 않아 높이 2.5m, 폭 1m 정도의 일렁이는 거무스름한 유동형 차원막의 앞에 도착한다.

땅에 흙먼지와 자갈이 가득 있고 수백 톤의 거인들이 오가며 계단이 거의 뭉개졌지만 오가는 데는 지장이 없다.

환인은 족장에게 차원막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여러분들은 미궁 태생입니다. 보통 미궁 태생을 이형종, 혹은 반전 개체라고 부르지요. 머리카락이 허옇고 피부가 창백한 게 그러한 이형종과 반전 개체의 특징이라 전에 말씀 드렸을 겁니다.”

환인의 설명을 가만히 듣던 족장이 으음, 신중한 태도로 물었다.

=그래. 기억하고 있지. 그러니까 우리 거인족이 이 차원문이란 걸 통과할 수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는 거구만.=

“이형종은 미궁의 안쪽과 바깥쪽을 오갈 수 있다는 게 이미 확인되어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미궁의 지배에서 벗어나 이형종이 아닌 인종이 되었지요.”

=음.=

이야길 들은 족장은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팔을 뻗어 자신의 손가락 두 마디 정도밖에 안 되는 차원막을 건드려보았다.

그러더니 환인이 미처 제지할 틈도 없이 손가락을 차원막에 쑥 밀어 넣고 빼더니 환인에게 보여준다.

=멀쩡히 통과할 수 있구만.=

“……차원막에 손을 넣었을 때 거부 반응으로 잘려 나가거나 소멸할 수도 있었는데 그걸.”

환인이 약간 어이없어하자 족장은 큭큭 웃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족장이라면 이런 일에 앞장서야 하는 법이지.=

“됐습니다. 제가 저 차원막을 건너가면 10초 뒤에 손가락만 내밀어 보십시오.”

=반대쪽에서 멀쩡히 나오나 확인한다는 건가? 그러지.=

족장의 어깨에서 뛰어내린 환인은 빠르게 차원막을 통과해 바깥으로 나왔다.

입구를 통과하자 푸른 하늘에 검은 잉크를 떨어트린 것처럼 서서히 어두워져 가는 하늘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운석이 떨어진 것마냥 차원막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크레이터가 만들어져있는 주변이 이어서 시야에 담긴다.

그리고 경악한 듯이 이쪽을 바라보며 멈칫거리는 100여 명에 가까운 인물들.

눈에 확 띄는 수인 형태와 인간 형태 남녀 루크랑족.

남녀 할 것 없이 미남미녀만 모여있는 플뢰족.

저쪽 하늘에는 눈처럼 하얀 날개를 한 쌍에서부터 세 쌍까지 다양하게 달고 있는 천사 같은 종족이 떠 있으며, 거기서 좀 떨어진 크레이터 가장자리에는 샤스라 영성과 비슷하게 생긴 도마뱀 인간들이 두 다리로 굳건히 서 있다.

전자는 히스론드의 플라비우스족, 후자는 벨티칼의 사비족이다.

그리고 그런 100여 명을 가로막고 조금도 졸지 않은 모습으로 서 있는 이실리테와 안느.

환인은 모여있는 인물들의 면면을 빠르게 살폈다.

고가의 의복을 걸친 사절단 같은 루크랑족은 거인의 손가락을 보았는지 크게 당황한 기색이긴 하지만 적의는 느껴지지 않는다.

눈처럼 하얀 날개를 펄럭이며 고고하게 체공 중인 플라비우스족은 ‘저게 뭐지?’ 하듯이 유심히 지켜보기만 하는 중립성.

헤뷜트의 사비족은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표정이라 당장은 알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샤스라를 예시로 보자면 마찬가지로 저들도 적의는 없다.

마지막으로 메리아놀의 플뢰족.

6시간 전에 빠져나간 엘위드리스의 핀레셀덴은 온데간데없고 세 무리가 서로 뭉쳐진 모양새다.

신경쓰이는 점이라면 나란히 선 세 무리 중 가운데 쪽에서 음습한 살의가 느껴진다는 것.

반면 다른 하나는 그런 살의를 드러내는 쪽을 견제 중이고 남은 하나는 그런 둘과 관계없다는 듯이 이쪽을 향해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을 드러내고 있다.

약 100여 명 중 4급 이하의 직업자는 없다. 무직자이거나 5급 이상이거나 해 다들 실력이 출중함을 알 수 있다.

쑤욱-

환인은 차원막을 통해 족장의 사람만 한 손가락이 나와 까닥이는 걸 보고 천칭으로 툭툭 건드렸다. 그 신호를 알아들은 듯 막 너머로 다시 사라지는 투박한 손가락.

환인도 몸을 돌려 다시 차원막 안으로 걸어 들어간 순간, 뒤쪽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감정 상한 저들이 전부 덤빈다면 5급 이상 직업자가 70여 명이니 이실리테와 안느가 조금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환연이 릴라이스를 부르지 않았을 때 이야기.

싸움이 벌어지면 이실리테와 안느, 환연에 환연이 릴라이스를 부르면 저들을 격살하는 것도 어렵지 않겠지.

=여, 문제 없는 거 같구만.=

“예. 문제라면 바깥에 있습니다.”

족장은 환인의 미소에 눈을 두 차례 끔뻑이다가 이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흉포하게 웃는다.

=밖에 싸울 놈들이 대기 중이기라도 하냐?=

“글쎄요. 혹여 싸움이 벌어진다 해도 여러분들은 나서면 안 됩니다.”

=어째서지? 친구의 싸움을 돕지 않고 구경할 만큼 우리 거인들은 비겁하지 않아.=

“알고 있습니다. 단지 싸움이 벌어진다면 그건 오롯이 제 것이라 나서면 안 된다는 겁니다.”

=아, 자네 사냥감이라는 말이군. 그런 거면 어쩔 수 없지.=

원래는 거인들이 영도에 도착하기 전까지 다른 이종족과 싸움을 벌여서는 안 되기에 한 말이지만, 족장이 한 말도 맞았다.

환인은 족장의 어깨에 다시 올라 아래로 내려가며 미궁의 벽이 재생하려는 흔적은 없는지 살펴보았지만, 심장이 따로 떨어져 있어 그런지 즉각 재생하려는 기색은 없다.

벽을 수복하고 내부 생물을 복원하는 것도 자연력, 심핵력이 필요한 거겠지.

거인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돌아온 환인은 죽은 듯이 누워있는 주술사를 먼저 살펴본 뒤 유르파에게 다가가 물었다.

“거인들의 비술 적성은 어떻습니까.”

=거인 중 17명은 술법진을 써야 할 거 같아. 자기만큼은 아니지만 위상류를 가진 거인들이라서 갑자기 소형화가 풀릴 수도 있거든.=

“위상류입니까…….”

생각보다 더 전투에 걸맞은 종족이지 않은가.

5~6급의 신체 능력을 지닌 이형종이 비록 위상력을 담지 않았다곤 해도 공격에 생채기만 나는 수준에 그칠 만큼 피부도 질기고 근육도 탄탄하고 뼈도 굴강하다.

여기에 위상력을 가미한 공격에 대한 내성까지 높다면 말 그대로 일인 군단…….

“알겠습니다.”

위상류가 위상력을 거부한다고는 하지만 공간 이동 술법진의 발동 방식은 대상 지정이 아닌 공간 지정이기에 위상류와는 상관없다.

17명은 지름이 50m에 달하는 술법진을 이용하기로 하고 환인은 빠르게 탈출할 일행을 셋으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우선 족장과 전사장, 전사들을 먼저 소형화시킨 뒤 미궁 밖으로 내보낸다. 그다음으로 사냥꾼과 채집꾼을 내보내고 공간이동술을 써야 할 인물들은 그다음 차례.

4명만 남겨두고 모두 미궁 밖으로 내보낸 뒤에는 거인들이 만들어놓은 식량과 혹시 몰라 번식용으로 데려갈 가축 네 마리를 술법진 위에 올리고 전송.

마지막으로 주술사를 술법진 위에 올리고 밖으로 전송한 다음 환인 일행이 남아있던 거인들과 함께 미궁을 빠져나간다.

과정을 설명한 환인은 족장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리고 미궁의 심장은 마지막에 제가 부수고 나가겠습니다.”

=그래. 그게 약속이었으니……. 주술사는 아직 괜찮나?=

“미궁이 사라지면 중핵도 받는 에너지가 차단되어 약해질 겁니다.”

=음. 그럼 움직이지.=

“아, 가기 전에 몸에 걸친 가죽은 다 벗어놓고 가십시오. 몸집이 작아지면 가죽을 가지고 나가는 것은 어려울 테니까요. 나중에 밖으로 한 번에 전송하겠습니다.”

=어어.=

남자 거인도, 여자 거인도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몸에 걸치고 있던 가죽을 벗어 알몸이 된다. 그리고 1차로 족장과 전사장, 전사 26명이 먼저 차원막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환인은 물약 핸드백을 허리에 차고 쿠라의 등에 올라타려는 유르파를 불렀다.

“유르파, 위상력 역류 현상이나 중독 증상이 나타나면 즉각 멈춰야 합니다.”

아무리 그녀가 7급 비술사가 되었다지만 거인 50명을 소형화시키고 공간이동 술법진을 9번(2명씩 1회)씩이나 발동하는 것은 위상력의 소비도 그렇고 신체에 부담이 많이 가는 일이다.

이번 일을 위해 유르파는 그동안 만들어둔 위상력 회복제를 서른 병 가까이 챙긴 상태.

그걸 다 마시면 중독증은 100% 발병이다.

환인의 경고에 유르파는 배시시 웃으며 작게 손사래를 쳤다.

=걱정하지 마. 난 자기랑 아가씨들이랑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은걸? 귀여운 아가들도 보고 싶고.=

“그런 마음만큼 제게 잘 보이고 싶어 무리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하는 말입니다.”

=…….=

환인은 당혹과 수줍음에 얼굴이 달아오른 유르파에게 약속을 강요했다.

“약속하십시오. 몸에 무리가 생기면 멈추겠다고.”

=으, 응. 약속할게.=

“좋습니다. 다녀오십시오.”

=…….=

유르파는 달아오른 얼굴이 부끄러워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는 쿠라의 배에 박차를 가했다.

* * * *

=으…음.=

라수비탄의 성궁 휘하 학사전, 라드세아에서 가장 현명한 이들이 모였다는 종족 학습연구기관.

그곳에서 호천명 현친왕의 전권을 위임받아 파견된 전쟁 학사인 유연은 오늘따라 무겁게 느껴지는 학의 하얗고 검은 날개를 한차례 쭉 뻗었다가 접었다.

약간 붉은 기가 감도는 하얀 머리카락을 등 뒤로 쓸어넘겼다가 팔짱을 끼고 푸는 등, 그녀가 좀처럼 긴장된 기색을 풀지 못하니 그녀를 수행하는 회색 사자머리의 도포 차림 남자가 뒤에서 작게 지적한다.

=유연 님. 좀 차분해지십시오.=

=돈. 너도 방금 그거 봤을 거 아냐. 손가락 크기와 한 마디 길이를 보면 키가 30m를 넘는다는 이야기야. 그런 게 차원막 밖으로 빠져나와서 까닥거렸다구.=

=이미 현친왕 전하께 언질을 받으셨지 않습니까. 성제님은 저 안에서 반전 개체 이형종 거인들과 협상을 벌여 휘하로 끌어들이셨을 거라고 말입니다.=

=아 거인이래서 질리언트들보다 조금 더 크겠거니 했단 말이야. 근데 내 예상보다 3배는 더 커!=

=쉿, 쉿! 목소리가 너무 큽니다!=

=……그만한 키를 가졌다는 건 질량과 물질 구조상 평범하게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용의 뼈가 왜 고가에 거래되는지 몰라? 그 거체를 지탱하고 받치기 위해 구조 자체가 일반적인 뼈와 다르고 거기다 위상력까지 머금어서야. 그런데 키 30m의 거인?=

모르긴 몰라도 그런 거인 둘이면 라수비탄의 하급 전사단 정도는 가볍게 찜 쪄버릴 거다.

물론 그런 전사단이 라수비탄에 1,000여 곳이 넘는다지만, 그건 군대로서 존재하는 거지 개체…….

=알고 있습니다. 왜 모르겠습니까. 유연 님,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성제님과 화친과 평화 협정을 맺기 위해 온 겁니다. 싸우기 위해 온 게 아니니까 저쪽의 전력 계산 같은 건 하지 마십시오.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란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으…… 알았어.=

돈, 잿빛 사자족인 그는 겨우 진정한 전쟁 학사를 보며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린 뒤 100여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모여있는 플뢰들을 곁눈질했다.

유연이 이토록 안절부절못하는 이유가 저들 때문이기도 하다.

‘두 집단 사이에 끼인 연놈들은 아무리 봐도 좋은 의도로 찾아온 것이 아닌듯한데…….’

아까부터 알게 모르게 신경 쓰이는 살의를 이따금 뿌리고 있으니 가뜩이나 기운에 예민한 두루미 족의 유연이 안절부절못하는 게 아닌가.

‘뇌폭을 건드려 터져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 터이니 제발 이쪽에 피해만 끼치지 말아라.’

성도의 유명한 가문 출신인 귀녀貴女의 보좌관인 돈은 그렇게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돈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멀찍이서 모여있던 사비족 사이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오가는 중이었다.

=정말 백청룡님의 현신이 성제와 연관 있단 말이지?=

=아 거 되게 물어쌌네. 몇 번이나 더 물을라고 그러노?=

=믿기 어려우니 하는 말 아니냐. 우리가 아무리 그분을 초대하려 하여도 수염 끄트머리도 보여주지 않은 분이신데.=

=니가 못 믿겠다 해가 루크랑족 마을에서 며칠 보냈는지 벌써 까뭇나 등시야. 여짝은 가뜩이나 추버가 체온 조절도 안되구마.=

=…….=

=대족장님은 하필이면 이딴 곰탱이 자슥하고 보내시가… 으휴.=

신중하자는 이 자식만 아니었으면 한참 전에 저 미궁으로 들어가서 성제라는 인간을 찾았을 건데, 이게 웬 고생이야!

갈색 비늘에 노란색과 적색과 청색으로 복잡한 바디 페인팅을 한, 다소 목소리 톤이 높은 사비족의 구박에 이구아나를 닮은 녹색 건장한 쪽이 묵직한 목소리로 응답했다.

=네가 매사를 너무 간단히 해석하여 문제의 소지를 일으키니 그런 게 아닌가.=

=아 지랄! 니가 간단한 일도 복잡하게 생각해대서 시간만 질질 잡아끄니까 대족장님이 니한테 낼 붙이신 거 아이가!=

=석척족이 날쌘 만큼이나 성격도 급하다 하지만 청, 너는 그중에서도 특히 더 심해. 대족장은…….=

=시끄럽다! 만엽 니랑 대화하믄 내가 속이 터질라 한다 진짜!!=

1시간이 멀다 하고 또 싸우는 청과 만엽의 모습에 둘의 뒤에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서 있던 사비족 상급 전사들이 한숨을 푹 내쉰다.

=저분들은 또 싸우시네. 알도 안 낳으실 거면서 뭐 저렇게 계속 싸우시나 몰라.=

=낳으시려고 다투시는 게 아닐까? 그게 아니고는 1시간마다 다툴 리 없잖아. 대족장님도 그걸 아시고 두 분을 맺어주려고 보내신 거고 말이야.=

화들짝!

=그 또한 놀라운 추론이구만!=

=아 잡소리 하지 말고 목소리 낮춰. 청 님이 들으면 또 성질내면서 달려들건데 늬들 감당할수 있냐?=

=춥다……. 나 불 피울래…….=

=야, 쿠룩 저 새끼 또 불피우려고 하잖아. 좀 막아라.=

=왜 나한테 뭐라고 그래? 거기 너희들, 뜨거운 물주머니 하나 쿠룩한테 넘겨줘라.=

=옛.=

=넵.=

뒤에 도열해있던 중급 전사들이 재빨리 아공간 주머니에서 뜨거운 물을 가득 채운 10ℓ 가죽 주머니를 꺼내 쪼그려 앉아 느릿하게 장작을 꺼내려는 회색 도마뱀 인간에게 안겨준다.

=그보다 미궁 입구 지키는 저 비늘 없는 여자들, 진짜 세 보이지 않음?=

=어어. 특히 왼쪽에 호박색 머리카락 여자 말이지. 저 아우라를 검희……라고 부르던가?=

=……우리 전부가 덤벼도 못이길 거 같다는데 한 표.=

=지지는 않겠지만 이기지도 못할 거 같다는데 한 표.=

=에이, 우리가 아홉 명인데. 저 한 명이면 어떻게 이길 수 있다.=

=큭큭큭. 저 근거 없는 자신감 봐라.=

=새끼야. 성제씩이나 되는 인간이 아무나 데리고 다닐 거 같아?=

=그래도 아우라가 5급 정도밖에 안 돼 보이잖아. 우리는 6급 아홉이고.=

=그래. 5급이지. 단순하게 강하고 기술의 유용성이 뛰어나서 유일 직업에 가장 가까운 희귀 5급 직업자.=

=성제는 백청룡님과 인연이 생길 정도의 남자라고 하잖아. 그런 인간을 호위하니 능력은 출중하다고 봐야지.=

=야, 근데 아까 나온 그 인간이 성제 아냐? 그냥 봤을 땐 별로 안 세 보이던데. 아우라 없는 건 무발현자라는 이야기가 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말이야.=

=안 세 보이는데 백청룡님과 인연을 맺었다면 그게 더 무서운 일 아님?=

=……그거도 그러네.=

=그러게.=

=대족장님이 괜히 최고 전사님들이랑 우릴 보낸 게 아닌 거지.=

벨티칼의 대족장이 파견한 사비족들이 나흘째 밖에서 기다리며 다투고 시답잖은 대화를 나누며 하릴없이 기다리던 중이었다.

환인이 백청룡 아드네빌라와 가까운 사이라는 소문에 그를 만나기 위하여 찾아온 그들은…….

=……어? 저거 뭐야.=

갑작스레 미궁 입구에서 우르르 나오는 3~6m 키의 알몸 인간들을 보곤 표정을 싹 바꾸며 무겁고 진지한 기세를 만들어냈다.

아우라도 없는 주제에 하나같이 최고 전사에 가까운 무겁고 짜릿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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