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558화 (558/813)

552 거인숲 미궁

환인은 자신의 예상이 맞다면 거인들이 도둑맞았다는 긍지는 아마도 형체를 갖추지 못한 미궁의 중핵이라고 생각했다.

중핵을 실루엣 메어가 훔쳐 간 이유는 다름 아닌 놈들이 미궁의 이형종이 되기 위해서. 혹은 미궁의 지시에 따라서.

어느 쪽이든 놈들이 이형종화 하기 위한 행동일 것이다.

긍지를 도둑맞은 것은 67년 전이다. 실루엣 메어가 출현하기 시작한 것은 약 90년 전. 그리고 실루엣 메어가 미친것처럼 거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은 긍지를 빼앗기기 13년 전부터.

“변종 실루엣 메어는 실루엣 메어는 사람을 먹어 치워 그 모습으로 다른 사람을 유인해 잡아먹는 마물이라고 책에서 읽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마물 특유의 찐득한 살기가 없었어.”

고작 여섯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 여섯 마리는 그저 사악할 뿐이었다. 살아있는 생명을 괴롭히며 가지고 놀다 죽이는 사악함.

죽인다. 죽이고 죽인다. 죽인 놈의 피로 축제를 벌인다는 마물 특유의 낌새는 변종 실루엣 메어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맞아. 확실히 그런 느낌이었어…….=

=응…….=

안느와 이실리테의 공감에 일행의 시선이 끄그기긱, 끼기그그극, 괴상한 소리를 내며 일렁이는 실루엣 메어의 영혼으로 향한다.

환인은 영혼을 다시 구슬로 회수한 뒤 여자친구들과 가야에게 말했다.

“실루엣 메어의 최종 목적은 주술사가 늘 소지하고 다닌다는 미궁의 심핵일 거다. 그것은 미궁의 의지이기도 하겠지. 그 증거는 현재 미궁의 상태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본다.”

=그러니까…… 지금 미궁이 이런 상태인 것은 미궁이 의도한 상황이 아닌 거네요? 그래서 미궁은 없는 힘을 짜내서 실루엣 메어를 지배해가지고 이형종화 시키려는 목적인 거구요.=

백려강의 요점 정리에 여자들이 작게 탄성을 지른다.

“그 가능성이 크다.”

=으음, 어떻게 되어야 일이 이렇게 되는 걸까.=

정상적인 미궁이라면 미궁이 미궁 내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 하지만 이 상황은 미궁이 지배력과 실권을 거의 상실한 상황.

어떻게 미궁이 지배력을 잃을 수 있지? 자기 집에 부랑자가 들어와 제집처럼 살고 있는 것과 다를바 없지 않은가.

그 과정이 유추되지 않는 안느의 혼잣말에 환인이 답했다.

“주술사는 어느 순간부터 인식의 눈을 뜨고 자아를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자아를 띈 거인 주술사를 1대조로 현 주술사는 6대째.”

환인은 벽 한쪽에 줄지어 걸려 부패하지 않고 건조되어가고 있는 거대한 고깃덩어리들을 돌아보았다.

“미궁은 성장을 위해 변화를 추구하다가 모종의 이유로 거인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

대충이나마 짐작해본다면 미궁에는 이형종을 유지할 수 있는 코스트가 정해져 있고 미궁은 거기에 맞춰 이형종을 만들어놓았을 것이다.

“그러다 그 코스트 볼륨이 쪼그라드는 일이 발생했거나 혹은 미궁의 변화에 이형종도 따라 변하다가 개당 필요 코스트가 확 늘었을 수 있겠군.”

그렇게 도를 넘긴 코스트는 고스란히 지배력의 상실로 이어졌을 터.

운이 안 좋았던 거였는지 아니면 원래 이러한 미궁 메커니즘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결과 주술사가 미궁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가설의 확률은 절반 정도이지만, 나는 당시의 주술사가 중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성을 가진 중핵은 보호의 대상이던 심핵을 적으로 인지했겠지.”

=자길 지배해서 부려먹었으니…….=

“주술사는 심핵을 미궁에서 뽑아 지팡이를 만들었고, 미궁에서 분리된 심핵은 힘을 쓰지 못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거인들은 차례대로 미궁의 지배에서 벗어났겠지. 지배를 유지할 미궁이 힘을 잃었으니까.”

그 증거는 아직 반전 개체의 특징인 창백한 피부와 흰머리가 거인들 사이에 남아있는 것이다.

“아무튼, 중핵이 이형종화하는 실루엣 메어의 손에 들어간 지도 70년이 되어간다. 슬슬 추정 6~7급 미궁의 중핵으로서 제법 힘을 되찾은 상태라고 봐야겠지. 수색은 그점을 염두에두고 진행한다.”

강적의 상정 유무에 따라 사람의 마음가짐은 달라지는 법이니까.

환인은 여자친구들에게 전투 장비 착용을 지시하고 가야 일행에게도 방어구를 나누어주었다.

=저기…… 성제님? 무기는…….=

“………….”

=아, 아닙니닷!=

녹색 양 갈래의 플뢰 소녀는 히익, 작게 비명을 지르며 가죽 갑옷을 착용 중인 가야의 뒤에 숨어버린다.

그 모습에 가야는 가슴속에 차오르는 한숨을 꾹 참았다.

어제는 일도 많았고 큰 사건을 겪으며 정신적으로 몰려있다 판단되었기에 보류했었는데, 아무래도 지금부터 정신 교육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안 그러면 언젠가 막내가 큰 일을 저지를 거 같으니까.

각반을 마저 착용한 가야는 막내의 목덜미를 콱 잡았다.

=끽.=

=이리 와라. 너희들도.=

=…….=

=…….=

환인은 그녀가 이를 악물어 턱관절에 주름이 살짝 진 상태로 조원들을 갈구는 걸 구경하다가 마침 집으로 들어오는 주술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갑옷을 다시 착용하셨네요. 나가실 생각이신가요?=

“그렇지 않아도 부탁할 것이 있는데 마침 잘 왔습니다.”

=무슨 부탁이지요?=

그리 말한 주술사는 갑자기 튜닉처럼 몸에 걸치고 있던 가죽을 훌렁 벗어 의자에 내려놓았다.

속옷이라는 개념이 없어 그것으로 흘러내리는 듯한 한 쌍의 유방과 치골 부근만 소담스레 뒤덮은 짙은 갈색 음모, 그리고 조개처럼 꽉 다문 음부가 일행의 앞에 남김없이 드러난다.

하지만 주술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작은 집만큼 커다란 유방을 출렁이며 상자……라기보단 바구니 같은 곳에 풀즙이 스며든 천 옷을 꺼내 들었다.

환인은 사람 몸통만 한 그녀의 갈색 유두를 잠깐 바라보다가 요구했다.

“여러분들이 침입자와 마주친 곳, 모습을 드러낸 곳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 제 일행을 데리고 가서 다른 거인들에게 물어봐 주면 좋겠습니다.”

=벌써 계획을 만드셨군요.=

“예상대로 일이 잘 풀린다면 침입자의 본거지를 일찍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영혼사님은 긍지가 아니라 침입자의 본거지라고 말씀하시는군요.=

“본거지를 찾아야 긍지에 대한 단서를 추적할 수 있을테니 결과는 같을 겁니다.”

마대처럼 뻣뻣해보이는 튜닉, 올이 굵어 속살이 비치는 것을 입고 연한 나무 줄기로 허리를 묶던 주술사는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갈색 머리카락을 그러모아 포니테일처럼 올려묶는다.

겨드랑이가 훤히 드러났지만 레이저 제모라도 한 것처럼 털이 한 올도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 때도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청결하다.

신체의 크기가 다르니 모공이나 노폐물이 보일 법도 한데 그런 게 거의 안 보이는 걸 보면 거인들을 사람 크기로 줄일 경우 피부 미인 소리를 듣고도 남지 않을까.

잠깐 딴생각을 하는 사이 벽에 기대놓은 지팡이를 다시 손에 쥔 주술사는 안대로 가린 눈을 환인에게 향하며 작게 웃었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밖으로 나갔던 주술사는 우타바와 그녀만큼이나 순해 보이는 흰색 머리에 구릿빛 피부의 여자 거인을 데리고 들어왔다.

=이야기는 해놓았으니 이 아이들과 함께 가시면 될 거예요. 저는 다른 일이 있어서 이만, 족장님의 집에 있을 테니 용무가 있으면 찾아오시거나 불러주세요.=

“그러겠습니다.”

환인은 살짝 긴장한 듯한 우타바와 신기한 듯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구릿빛 피부의 여자 거인, 벨피와 통성명을 한 뒤 일행을 둘로 나누었다.

우타바 쪽은 안느와 가야. 벨피 쪽은 자신과 이실리테.

방어구를 다 챙겨입은 안느와 가야에게 환인은 주의사항을 전달한다.

“거인들은 측량 단위를 모를 수 있으니 대략적인 위치만 들어도 된다. 정밀 수색은 실루엣 메어의 혼에 대고 물을 예정이니.”

=마을 어디로 나가서 어느 방향으로 어느 정도 걸었는지 같은 거?=

“그래. 그리고 부자연스러움을 느낀 적이 있는가와 평소와 다르게 다가온 장소가 있는지도 물어봐라.”

=그럴게.=

유르파와 백려강, 조원들은 비상과 함께 대기시켜놓고 환인은 벨피가 내미는 손에 이실리테와 함께 올라타서 집 밖으로 향했다.

실루엣 메어가 출현한 지 90년이 흘렀다면 세대가 바뀌어도 한 번은 바뀌었을 것이다.

증식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여섯이 한데 모여 돌아다닐 정도라면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닐 만큼 불어났겠지.

그러나 16일간 미궁을 헤맬 때 한 번도 마주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문이다.

어째서일까. 단지 운이 좋아서?

자투리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니 어딘가로 걸어가던 벨피와 이실리테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있지. 너희는 밖에서 뭐라고 불려?=

=저는 루크랑족이에요. 동료 중에는 플뢰족과 정현족도 있고요.=

=족장님이랑 주술사님이 말씀하셨는데 정말 너희가 우리를 바깥으로 데려가 주는 거야?=

=네. 주인님이 여러분들을 밖으로 안내해주실 거예요.=

=헤에. 신기하다. 밖은 어때? 막 엄청 높고 밝은 천장이 있다던데 진짜야?=

=하늘 말인가요? 낮에는 태양이 떠서 여기보다 몇 배는 더 밝아요. 밤에는…….=

벨피는 우르파와 나이가 비슷해보이는 외모였지만 키는 그녀나 주술사보다 더 커서 30m가 넘는 수준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실리테의 이야기에 신기하다며 해맑게 웃는 것을 보면 10대 중후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몸매도 그 정도 수준이고.

육체의 성장은 일관적이지 않고 개체마다 다른 건가.

환인은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이실리테가 그녀와 대화하는 것을 듣다가 물었다.

“벨피 양의 부모님은 어떤 분입니까.”

=응? 부모가 뭐야?=

“……벨피 양을 태어나게 해주신 분을 말합니다.”

=어…… 모르겠는데? 우린 어렸을때부터 한데 모여서 어른들이 보살펴줘.=

가족애가 아니라 부족애로서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건가.

핏줄, 혈연에 대한 집착과 갈망은 생물의 근본일 텐데 그게 없다는 건 역시 자연적으로 생겨난 종족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어떻게 바깥의 커다란 나무를 부러트렸어? 정말 족장님보다 강해? 어떻게 그렇게 강해졌어?

환인은 벨피에게 이런저런 질문의 대답을 들려주며 그녀와 함께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수집해나갔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매우 양호한 편이었다.

거인들의 평균 성향을 알 수 있었으며 그들의 협조성이나 외부에 대한 태도 등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

종족의 개인 전투력으로만 따지면 다 성장한 거인 한 명의 힘은 소규모 군대에 필적한다.

만약 전술과 병법을 가르치고 전투도 가르친다면 10명의 거인은 무직자로 이뤄진 어지간한 군대에 비견되겠지.

그런 종족을 무턱대고 영도 근처에 던져둘 수 없다. 적어도 종의 성품 정도는 파악해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26명의 거인과 대화를 나눈 결과 상당한 협조성과 온화한 성품을 확인했다.

온화하다지만 마냥 온화하지는 않다. 족장이나 우타바를 보면 싸워야 할 때 싸우는 호전성이 있고 동족을 생각하는 심성 또한 있다.

주술사를 본다면 교육에 따라 지성까지 발휘할 테니 영도의 한 축이 되기에 충분한 자질.

임신과 출산, 성장은 인간과 흡사하지만 종족의 수명은 70년이 채 안된다.

긴 시간을 살면서 인구수가 폭발적으로 늘어 대륙의 주류 종족이 뒤바뀌는 사건 같은 것은 벌어지지 않겠지.

환인은 종이 위에 거인들이 말했던 장소를 그들의 보폭까지 계산해 대강 표시하다가 벨피에게 말했다.

“벨피 양. 이제 됐으니 주술사의 집으로 돌아갑시다.”

=응~.=

2시간에 걸친 조사 뒤에 돌아간 집에는 이미 안느와 가야가 복귀해있었다.

“결과는 어땠지.”

=39명한테 이야기를 들었어. 마침 어른 거인들 다수가 한데 모여있어서 돌아다니는 시간을 줄일 수 있었지. 여기, 조사한거.=

안느에게 종이를 받아든 환인은 항목을 각자 계산해 그 위치를 지도에 옮겨놓는다.

=음…….=

=이건, 좀.=

=흐음.=

환인의 여자들과 가야는 탁자 위에 놓인 미궁 지도와 그 표식에 작게 침음을 흘렸다.

=중복되어 겹치는 곳을 제외한 표신데 이건…… 거의 미궁 전체라고 봐도 되지 않아?=

가장 먼저 안느가 내놓은 답에 가야가 으음, 심각한 얼굴로 답한다.

=마을 안에서도 발견되었다고 하니까…… 실루엣 메어가 지하에 땅굴을 개미굴처럼 사방팔방 내놓았다고 볼 수밖에.=

매우 간단한 지도지만 한쪽 벽에서 반대쪽 벽까지 족히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곳이다. 조사 범위가 무지막지하게 늘어난다.

환인은 그 사실에 식겁하는 여자들을 보며 물었다.

“실루엣 메어가 거인 마을을 모두 파악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나.”

=자기 말은 그러니까, 실루엣 메어가 거인 마을을 침공하기 직전이란 이야기……?=

“당장은 아니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숫자만 된다면 기습을 통해 주술사의 지팡이를 빼앗아 이탈해도 되니까요. 다만 실루엣 메어가 상상 이상으로 멍청해서 거인 마을의 평화가 아직 유지되는 걸로 보입니다.”

환인은 족장과 주술사를 불러 자기 생각을 말했다.

“……즉, 요약하면 저 같은 경우 100마리의 실루엣 메어만 있어도 심핵을 탈취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신체 능력이 다른 거인들보다 약한 편인 주술사라면 목숨도 거둘 수 있을 것이고 아이들과 아기들이 모인 육아 공간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거인들은 술법적인 요소에 취약했다.

주술사도 말이 주술사지 하는 일은 약사나 치료사와 다를 바 없었다. 거기에 약간의 속성을 다룰 줄 알뿐.

할 줄 아는 게 단순무식한 육체파 전투뿐이라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

=…….=

족장은 거짓말이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입술만 달싹였다. 족장을 할 정도의 직감으로 환인의 말이 100% 진심이라는 걸 눈치챈 것.

하아, 암담함이 깃든 한숨을 내쉰 족장은 자조 어린 투로 말한다.

=내가…… 놈들을 너무 만만하게 보았던 건가. 땅을 헤집고 뒤집어서라도 놈들을 찾아 박멸했어야…….=

“그랬다면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뭐?=

“사람도 집에 들어온 쥐나 개미를 모두 박멸하지 못합니다. 약이나 술법과 마도구를 빌린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순수 피지컬로 집안에 들어온 곤충과 벌레를 내쫓는 건 무리라는 뜻입니다.”

=……그런가.=

“오히려 공격에 독이 오른 곤충과 벌레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는 일. 사람도 독을 가진 곤충에게 쏘이면 죽기도 하니 여러분들이 약해서 그런 거라는 자조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크흐흐. 영혼사는 위로하는 것도 수준급이구만.=

피식 웃은 족장은 수염이 거뭇하게 난 턱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러니까 영혼사는 우리 주술사를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군. 자네가 놈들을 찾는 사이에 말이야.=

“우리가 침입자를 쥐잡듯이 잡고 다니며 소굴을 헤집으면 거기에 자극받은 놈들은 필시 움직일 겁니다. 그 경우 미궁의 심장이 노려질 확률이 높으니 여러분들도 심장을 지켜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주술사는 훌렁, 풀즙으로 물든 옷을 벗어버리고는 지팡이 머리를 뚝, 분질러 심핵을 그 옷으로 둘둘 감아버린다.

그렇게 만든 두툼한 뭉치에 식물 줄기로 만든 끈을 매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건 주술사는 알몸인 채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이렇게 있으면 침입자는 심장을 뺏기 어렵겠지요. 이걸 뺏으려면 제 피부 위를 기어 다녀야 할 텐데 그러면 제가 모르고 넘어갈 리 없으니까요.=

그야말로 상여자식 사고방식.

그런 주술사를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족장은 으음, 찌푸린 얼굴로 머리를 숙였다.

=영혼사.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심장은 우리가 지키겠네. 그리고 우리가 자네와 같이 영도의 휘하에 들어간다면 맡은 역할을 다하겠다 약속하지. 그러니까…….=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탁하네.=

환인은 남자로서, 족장으로서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부탁해오는 족장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제부터 네 동족을 찾아라.”

환인은 그길로 마을을 나와 실루엣 메어의 영혼을 사냥개처럼 부려 미궁을 헤집고 다녔다.

첫 수색 시작 지점은 가야와 마주쳤던 곳.

영혼을 풀어 사냥개처럼 다룬 효과는 매우 좋았다. 원래 알고 있는 장소여서인지 실루엣 메어는 그 즉시 둥지로 돌아가는 길을 일행에게 안내해준 거다.

크갸아아—!!

키야아악—!!!

당연히 가는 길에 매복해있던 실루엣 메어가 뛰쳐나왔지만, 전투태세에 들어간 일행에게는 헛된 시도였다.

이미 실루엣 메어의 전투 방식을 모두 꿰뚫은 환인은 물론이고 1:2로 실루엣 메어와 싸워봤던 여자들도 익숙하게 괴물들을 베어넘긴다.

예리한 검으로 짚단을 베어넘기는 것처럼 아홉 마리의 실루엣 메어는 삽시간에 머리나 몸통이 잘려 땅에 쓰러졌고, 전투는 20초가 채 지나지 않아 종료되었다.

툭툭.

“이걸 보면 이형종화하고 있다는 게 확실한 거 같군.”

실루엣 메어의 영혼을 전부 회수해 구슬로 만든 환인은 죽어 검은색 아지랑이가 사라진 몸뚱이를 천칭으로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그걸 보고 있던 여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회색 피부에 하얗게 물들어가는 머리카락은 반전 개체의 특징이었으니까.

단검으로 여성형 몸뚱이의 실루엣 메어 사체를 이곳저곳 찔러보던 유르파가 환인을 돌아보았다.

=보통은 사람을 잡아먹기 전에는 부정형 생물인데 처음부터 인간의 형상을 띄게 된 것도 미궁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고 변종 이형화하며 생겨난 특징일지도 모릅니다. 일단 계속 앞으로 갑시다.”

저벅거리며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는 일행의 뒤를 따르기 시작한 플뢰들은 침을 꼴깍 삼켰다.

처음에는 무기도 주지 않고 따라오라길래 우릴 사고로 위장해 죽이려는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갑자기 덤벼온 아홉 마리의 실루엣 메어 중 6마리를 환인이 삽시간에 죽여버리는 장면에 가야와 조원들은 그가 자신들을 지켜가며 이번 일을 끝낼 자신이 있어서라는 걸 깨달은 것.

=…….=

=왜, 도령 실력에 놀랐어?=

=안 놀라면 그게 사람일까? 대체…… 성제님은 얼마나 강하신 거야?=

1마리를 1초 만에 죽이는 것과 6마리를 6초 만에 다 죽이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강함은 영혼술과 관련된 거라고 생각했는데 무슨 미친 무술 실력이지?

어이없어하는 가야의 얼굴에 안느는 킥킥 웃으면서 그녀의 혼란을 부채질했다.

=나랑 이슬이가 진심으로 도령한테 덤벼도 이길 확률은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어. 내가 필살기를 만들어내면 확률이 더 오르겠지만…… 10% 이상은 안 올라갈걸?=

=세상 미친…….=

그게 인간인가? 아니, 유일 직업 각성자니까 그게 직업 특징이 가미된 요소일 수 있어.

이쯤 되니 성제라는 직업의 특성이 뭔지 정말로 궁금해지는 가야였지만, 입을 꾹 다물고 궁금증을 가슴 속에 파묻는다.

물어봤자 알려줄리도 없거니와 알아봤자 자신의 걱정과 고민만 늘 뿐이니까.

「환인. 내가 도와줄 건 없어?」

안느와 가야가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그간 쥐 죽은 듯이 지내던 환연이 고개를 빼꼼 내밀며 물었다.

그에 환인은 그녀의 정수리를 꾹 눌러 안주머니에 밀어 넣으며 대답했다.

“이곳은 영혼들로 해결하도록 하지. 정령이 좋아하지 않는 장소인 만큼 이번에는 쉬어라. 그리고 쉬는 동안 가능하면…….”

쪽지와 펜을 꺼내 한글로 적어 환연에게 보여주는 환인.

[릴라이스에게 가스라이팅을 할 수 있다면 시도해보고.]

그 내용에 환연은 표정 하나, 눈썹 한 올 까딱이지 않고 「재밌겠네.」하며 안주머니에 쏙 들어간다.

과연 긴 시간을 살아오며 어느 정도 인간처럼 사고하는 초월급 물의 정령이 인간의 심리적 지배에 대항할 수 있을까.

가스라이팅을 적대행위로 볼 수 있을지 확신은 못 하지만, 환연이 재미있다고 하였으니 선을 넘어 위험한 짓을 저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키샤아아악-!!!

데샤아앗!!

그리고 얼마 안 가 다시 튀어나오는 7마리의 실루엣 메어. 괴물들의 반응은 천적에게 둥지를 침범당한 동물의 그것과 흡사했다.

“흠.”

3마리와 4마리로 나뉘어 양팔을 검과 창, 도끼, 가시, 망치 등으로 바꾸고 이쪽으로 날아드는 괴물들.

환인은 소굴이 멀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무감각하게 광창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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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그림 실력이 좀만 더 좋았으면 그림판 지도가 아니라 제대로 된 지도를 보여드릴 수 있을텐데...

막대인간으로 ai한테 그림 요구해서 등장인물 삽화도 넣을 수 있을텐데.....

노벨ai를 긴빠이친 중국에서는 이미 원소 비급? 이란걸 만들어서 고화질 일러 뽑아내는 태그표까지 만들었다더군요 ㅋㅋㅋ

역시 긴빠이의 나라 중국...

계속 힘내서 자정 연재, 아니면 그보다 2시간 더 일찍 땡겨서 10시 연재가 될 수 있게 힘내보겠읍니당

너그러이 지켜봐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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