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543화 (543/813)

537 투라드 마을

아드네빌라와 정사는 하다 말고 끝낸 목욕 이후 2시간가량, 저녁 식사 시간까지 이어졌다.

정상위 2번, 후배위 5번, 대면좌위 1번, 후측위 1번, 굴곡위 1번, 기승위 3번.

그녀는 특히 후배위를 좋아했는데, 해보고 싶었던 체위들을 1번씩 체험해본 뒤에는 애널 1회를 포함, 후배위만 4번이나 요구했을 정도로 뒤에서 박히는 것을 즐겼다.

용으로서 지성이 없는 짐승처럼 박히는 게 자못 배덕적이어서 더욱 흥분된다고.

탄력이 넘치면서도 포동포동한 복숭앗빛 둔부를 쫙 벌린 채 인정사정없이 그녀의 중심을 꿰뚫는 두 시간의 격렬한 정사.

그 덕분에 혈색이 보기 좋게 오른 아드네빌라는 환인의 앞에서 등을 보인 채 힘껏 기지개를 켰다.

《흐아아앗……!》

바짝 선 종아리 근육과 보기 좋게 힙업된 둔부, 쭉 뻗은 백청색 용의 꼬리가 조각상처럼 선이 매끄럽다.

환인은 그녀의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기지개 소리를 들으며 물었다.

“소원을 풀었습니까.”

《그래. 이몸의 3411년 용생에서 가장 자극적이고 쾌락적인 시간이었지.》

후, 진심으로 만족한 듯 미소 지은 아드네빌라는 살짝 충혈된 살 틈에서 하얀 백탁액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자 가볍게 손을 흔들어 정사의 흔적을 씻은 듯이 없애버린다.

땀과 체액이 묻어 헝클어졌던 하늘색 머리카락은 미용실에서 갓 손질받은 것처럼 깔끔해졌고 흘린 땀의 흔적이나 환인에게 물리고 빨렸던 키스 마크도 삽시간에 사라졌다.

깨끗한 몸이 된 아드네빌라는 알몸 상태로 몸의 이곳저곳을 살펴본 뒤 사뿐사뿐 환인에게 걸어가 깊게 포옹했다.

《필멸자의 삶을 수천 번 구경하는 동안 어째서 남자와 여자가 몸을 겹치면 애틋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였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고맙군. 네 덕분이야.》

“저도 용과 정사를 치른 것은 처음이라 제법 흥미롭고 기분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무릎 위에 비스듬히 앉아 품에 안긴 아드네빌라의 엉덩이를 작게 토닥여주자 가슴에 닿아 뭉개진 그녀의 젖무덤에서 부드러운 흔들림이 전해져온다.

《큭큭. 정말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인간이군. 아무튼 동조에 뭐가 문제였는지도 파악했으니까 파장을 조금만 조율하면 된다. 허락해주겠지?》

작게 고개를 끄덕여주니 아드네빌라는 딱,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는 걸로 조율을 한순간 끝마쳤다.

뭐가 변한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알아서 조정을 끝마친 거겠지.

환인은 자신의 품에서 떨어져 나간 그녀의 눈부신 알몸에 눈길을 주었다.

백려강의 용인체도 나이를 먹을까. 먹는다면 몇 년이 지나야 저런 육체가 되는 걸까.

작게 손을 휘젓는 그녀의 나신을 구경하며 엉뚱한 생각을 하던 환인은 갑작스레 동양풍의 자그마한 속옷과 선녀 옷처럼 하늘거리는 한복 비슷한 복장이 그녀의 몸에 착용되는 걸 보고 한차례 깜빡였다.

저것도 신술인 건가.

《그럼. 대가는 네가 알아서 챙겼으니 이몸은 이만 돌아가지.》

“…알고 있었습니까.”

《욕실에서는 뜨거운 물 때문에 기운이 흘러나가는 걸 긴가민가했는데 방으로 들어오니 확실히 알겠더군.》

“…….”

환인은 이 허당스러운 용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갈피가 서지 않았다.

그 말은 백려강의 용인체로 흡수한 영기는 알아차리지 못했단 말이 아닌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뽐내기 위해 한 말이 되려 자신의 미숙함을 드러내다니, 참으로 유감스러운 용이 아닐 수 없다.

환인의 생각을 읽지 못한 아드네빌라는 그의 침묵을 탄성의 발현으로 받아들이고는 잠시 우쭐거리다가 심유한 눈빛을 환인에게 향하며 조언했다.

《하지만 말이야. 정사로 여자의 영기를 흡수할 수 있다 해서 마구잡이로 수집하는 것은 관두는 게 좋아.》

“어째서입니까. 영기의 혼탁에 관해서는 유르파와 여자친구들이 절 위해 정화 수단을 확보해주었습니다만.”

《그건 표면적이다. 인간의 삶은 짧지만 무척이나 강렬하지. 그런 혼의 파편이 고작 몸뚱이를 쓴 정화에 완벽히 정화될 거라 생각하는 것이 무모하지 않나?》

“…….”

《지금 네 몸에 깃든 영혼의 파편과 조각은 파악할 수 없는 작은 것을 제외하고도 300여 개가 넘어간다. 300명이 넘는 여자를 안아 그 영기를 흡수했다는 뜻이겠지. 그것들이 한 번에 날뛴다고 생각해봐라. 네가 수용 가능한 한계를 넘는 그 순간 파멸이 널 찾을 거다.》

“파멸입니까.”

《최악에는 영기의 폭주와 역류로 근원이 파괴되어 두 번 다시 힘을 쓰지 못하게 되겠지.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최선이라면 피를 토하고 몇 달 요양하는 선에서 그칠 것이다.》

“최선이 벌어지더라도 그 후 최악이 다시 찾아올 수 있겠군요.”

《네가 영기 흡수를 관두지 않는 한 말이야.》

아드네빌라는 그냥 쳐다보는 것만으로 영혼의 흔적과 과거까지 짚어내는 신술의 사용자다. 그런 그녀가 하는 말이 허풍일 리 없다.

《너의 성장은 빨라도 너무 빨라. 네가 이 세계에 발을 내디딘 지 2년이 넘었지. 고작 2년 만에 무직자에서 하늘이 내린 직업으로 8급을 달성하였으니, 급하게 뛰어갈수록 넘어지면 크게 다치는 법이다.》

“경고는 염두에 두겠습니다. 그보다 제가 8급이란 말입니까.”

《인간은 눈으로 아우라를 확인하는 것 외에 등급을 알 수단이 없으니 귀찮겠군.》

대답 대신 쿡쿡 웃으며 환인의 뺨을 어루만져주는 아드네빌라.

환인은 그런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며 그 입술에 키스해주었고, 아드네빌라는 어디에서 꺼냈는지 모를 접힌 부채로 입을 가린 채 환인을 흘겼다.

《까불지 마라 애송이. 너와 몸을 섞었지만 그것이 너에게 마음을 허락했단 뜻은 아니니까.》

환인의 대답 없는 웃음에 아드네빌라는 흥, 코웃음을 치고는 환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부채 끝으로 그의 이마를 쿡, 찔렀다.

그러자 촥— 하는 소리와 함께 환인의 어깨와 몸의 핏에 맞춘 검은색/황색/백색의 멋들어진 반코트 제복이 입혀졌다.

“……이건?”

이것도 신술인가. 자리에서 일어난 환인이 자신의 차림을 내려다보며 물었지만, 아드네빌라는 그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을 뿐이다.

《잘 어울리는군.》

“옷에서 마력이 느껴집니다만.”

《그렇겠지. 유물은 아니나 메리아놀의 바위 여왕이 직접 짠 명품 중의 명품이니까. 딱히 특출난 기능은 없어. 수복과 청결 그리고 뛰어난 방어력뿐이니.》

그렇게 말한 아드네빌라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치마가 펄럭 펼쳐져 팬티를 노출할 정도로 환인의 가슴에 발차기를 먹였다.

콰곽!

피하거나 흘리고 반격을 할 수 있었지만, 보란 듯이 천천히 날리는 발차기였기에 옷의 방어력을 체감시켜주려는 것으로 판단해 발차기를 맞은 환인.

그 결과에 눈을 살짝 크게 떴다.

회전축의 바람 가르는 소리로 보아 몸이 뒤로 크게 날려질 정도의 힘이 깃들어있음을 파악했는데, 실제로는 가슴을 가볍게 밀치는 정도였으며 통증은 단 1도 전해지지 않은 것.

《너라면 방금 힘이 어느 정도 가해졌는지 알겠지? 그게 그 옷, 무상의 천릉이 가진 물리 무효의 한계치다. 거기다 네 역쇄류와 위상류에 전투 감각이면 길 가다 객사하지는 않겠지.》

언제 발차기를 날렸냐는 것처럼 늘씬한 다리를 내리고 차림을 정돈한 아드네빌라는 접은 부채를 손바닥에 탁탁, 두 차례 내려친다.

그러자 방 밖에서 그의 여자들이 음식을 준비하는 부산한 소리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환인, 일찍 죽지 마라.》

문 쪽으로 시선을 주고 있던 환인이 아드네빌라의 목소리에 그녀를 돌아보았을 때,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

마음은 허락하지 않았다면서 이제까지 너, 네놈, 인간, 이런 식으로 부르다가 이름을 부르는 건가.

환인은 피식 웃고는 착용감이 최고급 정장만큼이나 편안한 코트를 한차례 쓸어내리며 문을 나섰다.

=주인님……? 와, 멋있으세요.=

=아? 와아, 기품이…….=

환인이 방을 나왔을 때 여자들은 그의 옷차림을 보고 눈을 크게 뜨거나 황홀해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놀랐던 것은 안느였다.

거실의 커다란 테이블에 음식을 옮기던 안느가 2초 정도 굳었다가 후다닥 달려와 묻는다.

=그, 그 옷! 도령, 그 옷 어디서 났어?!=

“아드네빌라가 주고 갔다.”

=아드…… 백룡님이? 그분이라면 가지고 있는 게 이상하진 않지만…….=

환인의 의복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는 안느에게 나르던 음식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유르파가 묻는다.

=굉장히 멋진 옷이긴 한데……. 안느 아가씨가 그렇게 야단법석인 걸 보면 유명한 건가 보네?=

=언니는 몰라? 이거, 무상의 금대야. 무상 여왕님의 7번째 작품으로 천릉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거라고.=

그러자 유르파도 눈이 동그래질 정도로 크게 뜬 채 환인의 곁에 다가와 그의 옷을 살핀다.

=이, 이게 무상의 여왕께서 일평생 열 벌만 만들었다는 금대야? 나 처음 봐.=

무려 네 개 국가 중 한 곳의 여왕이 직접 짠 옷이며 그게 10벌뿐이라면 유명할 만하겠지.

‘제대로 맞는다면 일반인은 죽을 수도 있는 물리력을 무효로 해버리는 기능이 탑재되어있으니.’

환인은 여자친구들이 자신을 힐끔거리는 걸 느끼며 목욕하느라 벗어두었던 그리모암의 목걸이, 팔찌, 허리띠, 부츠를 차례대로 끼기 시작했다.

목걸이나 팔찌, 허리띠는 처음부터 천릉에 맞춘 것처럼 잘 어울렸고, 부츠도 두꺼운 편이 아니라 바지 안쪽으로 넣어 신으니 구두를 신은 것처럼 다리 선이 살아난다.

그걸 잠시 넋놓고 바라보던 이실리테가 입을 열었다.

=안느, 주인님이 입고 있으신 옷이 천릉이라고 했지?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아?=

=겉보기에는 천으로 만든 옷이지만…… 음, 도령이 지금 구세의 빛을 걸치고 있다고 보면 이해돼?=

=……세상에.=

=안느 언니의 갑옷은 두께만 5cm인 철판 갑주잖아요.=

=그러니까 내 말이. 저렇게 몸선이 드러나는 옷인데 방어력은 전신 판금 갑옷보다 더 높아. 근데 더 중요한 건 그만한 방어력을 물리 무효 술법처럼 발휘하는 거야. 직접적인 타격을 받아도 옷이 그냥 흘려버려. 그러니까 아무리 맞아도 천릉이 막아내는 한 마모나 감소 없이 계속 막을 수 있어. 옷이 찢어져도 괜찮아. 청결이랑 수복 기능도 붙어있으니까.=

=엄청나게 비싸겠네…….=

이실리테가 멍하니 환인의 복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백려강도 동감이라며 열심히 고갤 끄덕인다.

=옛날 무상 여왕님이 직접 만들었다는 이름값에 70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통하는 멋에, 전신 판금 갑옷의 방어력을 무한에 가깝게 발휘해. 거래가 성사되면 성 하나 값은 나올 거야.=

환인은 여자친구들의 대화를 들으며 집 밖으로 나가 천칭을 꺼낸 뒤 휘둘러보며 가볍게 몸을 움직여보았다.

휭- 우웅, 바우웅—

어깨, 옆구리, 무릎 등 핏감이 딱 붙는 느낌임에도 불구하고 관절 부위의 가동이 매끄럽다.

옷감이 몸을 조금 휘감는 느낌이 있지만, 오히려 그게 몸의 근육을 탄탄히 받쳐줘 더 힘을 낼 수 있게 해주는 느낌이다. 옷이 테이핑 역할을 낸다고 할까.

“좋은 물건이지만……. 조금은 마음에 안 드는군.”

천칭을 지갑에 넣으며 중얼거리자 졸졸 따라나와 입을 벌리고 구경하던 백려강이 물었다.

=어떤 점이 마음에 안 드세요?=

“…….”

상호 동의하에 벌어진 정사였다. 아드네빌라는 체험해보고 싶다는 섹스를 마음껏 충족했고 환인도 그녀의 자궁에서 용의 영기를 있는 대로 빨아먹은 상황.

그런 마당에 성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마도기를 선물로 받으니 마치 떡값처럼 느껴진 것이다.

“아니, 내 과민반응이겠지. 들어가자.”

=네? 네에…….=

아드네빌라가 이 옷을 준 이유는 명백하다. 자신이 객사하지 않고 장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주는 순수한 호의…….

‘아주 순수하진 않겠지만.’

아무튼 그런 것일 테니까.

저녁은 금방 차려졌고 환인은 기절에서 수면으로 상태가 바뀐 환연을 깨워 같이 밥을 먹었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들며 아드네빌라에게 들었던 것을 이야기했다.

자신의 몸에 정사를 치른 수백 명의 영혼 파편이 모여있고, 이게 더 늘어나면 몸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

문인을 통한 육보시로 탁기를 정화해도 영혼 파편은 잘 녹지 않는다는 것.

“유르파의 자궁문신 덕분에 흡수하고는 있지만, 지금처럼 여자를 계속 안고 다니면 100% 문제가 발생한다고 봐야 할 거다. 그게 빠르냐 늦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안느는 새콤부드러운 로제 파스타를 포크에 돌돌 감아 입에 넣으며 말했다.

=자궁 문신이 만능 정화 도구는 아니었다는 거네. 앗, 이거 율이 언니 탓하는 거 아니니까.=

=알아. 그리고 안느 아가씨 말도 맞고. 설마 그런 맹점이 있었을 줄이야……. 백룡님이 말씀해주시지 않으셨다면 일이 벌어질 때까지 눈치도 못 챘겠어.=

=맹점이라면 어떤 걸 말하는 건데?=

=알다시피 다른 영혼사님들의 영혼술 수련은 영혼의 성불로 얻는 빛구슬과 명상 같은 자기 단련이야. 그리고 문인은…….=

=……그런 영혼의 빛구슬을 흡수해서 탁해진 기운을 정화하는 거겠네. 도령같이 정사를 치러서 흡수한 영기는 그 문인에 큰 효과를 발휘하기 어려운 거고.=

안느의 추측에 유르파는 접시 위에 올려진 새 구이를 내려다보며 쓴맛을 느낀 것처럼 눈썹을 살짝 찡그린채 고개를 끄덕였다.

식탁 분위기가 가라앉는 것을 느낀 환인은 잘 손질해서 짐승 노린내가 하나도 나지 않는 육고기 스테이크를 썰며 유르파를 다독인다.

“유르파가 자책할 일은 아닙니다. 당신의 도움으로 정현족의 문신을 연구해서 옛것을 복구한 덕에 파편이 정화되는 거라고 봐야 할 테니까요.”

아지에라를 안으며 문인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그녀를 통해 정화한 양은 말 그대로 쥐꼬리만 한 수준이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유르파와 자궁 문신을 몸에 새긴 여자친구들을 안으며 얻는 정화량은 엄청난 차이.

“그리고 아드네빌라의 말로는 제가 8급에 도달했다 하더군요. 이 속도로 계속 성장하는 것도 위험하다 하였으니, 이 상황이 해결될 때까지 영혼술의 단련과 훈련은 잠시 쉴 생각입니다. 여자를 안는 것도 멈추어야겠지요.”

물론 그 범주에 너희들은 없으며, 영기 흡수도 멈출 생각은 없으니 너희들에게 가는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하자 그의 여자들은 부담스러워하긴커녕 오히려 얼굴을 붉히며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

안느는 잠시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여 붉은빛이 살짝 감도는 분홍색 파스타를 포크로 돌돌 감으며 중얼거렸다.

=으음. 그나저나 8급인가……. 뭐 그만한 능력을 선보여놓고 이제 와서 4~5급이라고 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만 말이야.=

=유리 언니, 그…… 주인님의 아우라를 볼 수 있게 해주는 비술은 아직 단서를 찾지 못하셨나요?=

=으응. 솔직히 말해서 손을 거의 내려놓은 상태야. 현월수를 토대로 이리저리 분석을 해봤지만 약간의 실마리도 못 잡았거든. 엉뚱하게 최고급 회복제 제작의 단서만 찾았고……. 자기가 내 몸 체취에 성욕이 일어나는 이유도 같이 찾는 중이기도 하고 그 비술을 쓰는 걸 직접 보면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환인은 유르파의 시선을 느끼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마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성녀님이 쓴 그것은 선술일 테니까요.”

=선술? 신술은 들어봤어도 선술은 처음 들어. 그게 뭔데?=

파스타를 나눠달라는 환연의 앞접시에 소스와 함께 옮겨 담아주며 안느가 묻자 환인은 한입 크기로 썬 스테이크에 소스를 묻히며 대답했다.

“신수 기린이 쓰는 특별한 마법이 아닐까 한다. 대성녀님이 정사 후에 선기가 더 정순해졌다고 중얼거리는 걸 들었으니까.”

마지막 스테이크 조각을 입에 넣어 씹고 삼킨 환인은 손수건으로 입 주변을 닦으며 말했다.

“그러니 유르파. 아우라 발현 연구는 멈추고 유르파의 체향과 체질에 관해서 알아봐 주면 좋겠습니다.”

=그럴게. 하지만 시간 날 때마다 연구해보는 건 괜찮지?=

“변경된 체질 확인 이후에는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하고 싶은 연구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구해드릴 테니 이야기하십시오.”

=응.=

그 후 식사를 마친 환연은 거실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태연히 목욕을 시작했다.

조금 커다란 홍차 잔에 뜨거운 물을 담고 팔다리는 잔 밖으로 내놓은 채 어깨부터 허벅지까지만 몸을 담근다.

옆에서 손가락질로 백려강을 부려 찻잔 속의 물 온도를 유지하거나 하는 걸 보면 영락없는 아가씨와 하녀 같은 모양새.

그럼에도 백려강은 기분 나쁜 기색을 하나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재미있고 즐겁다는 듯이 시중을 들어준다.

환인도 그 옆에서 조금 진한 커피로 입가심을 하다가 물었다.

“환연. 릴라이스와 계약 상태는 어떻지.”

「어……. 막 계약했을 때는 현기증이 났었는데 지금은 괜찮아졌어.」

“몸 상태의 변화 같은 것은 없나.”

「정령력이 좀 더 늘어난 거 같아. 정령들이 이젠 내 생각대로 움직이게 됐고…… 정령술도 내가 직접 펼칠 수 있을 거 같아.」

그러더니 두 손을 위로 뻗는다. 그 손 너머, 탁자 위 허공에 맺히는 것은 커다란 물의 구슬.

“자기 몸을 직접 지킬 수단이 생긴 것은 좋은 일이지. 이 세계에는 정령이 오려 들지 않는 곳도 있으니까. 그건 그렇고 릴라이스는 뭘 하는지 알고 있나.”

「환령계로 돌아가서 그 백룡님한테 당한 상처를 회복 중이야. 다 회복하면 나와서 날 지켜준대.」

“지켜준다고.”

「나랑 계약하자고 할 때 지켜줄 거라고 릴이 말했었잖아. 그거도 약속이라면서 이행할 거라더라.」

“그래……. 네가 보고 듣고 말하는 건 릴라이스에게도 전해지는 건가.”

「응.」

그렇게 대답하는 환연은 계약에 관해 더 파고들지 말라는 눈빛을 보냈다. 정확히는 입에 담지 말라는 눈짓이다.

환인도 대강 그녀가 구상한 계획을 알 거 같았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해약解約.

계약을 해제하는 것.

릴라이스는 상황이 안정되면 모종의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자신과 계약을 맺으려 들게 틀림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연과 해약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해약에 자신의 동의를 구할 것을 언급했단 것은 그 해약을 빌미로 릴라이스를 조종할 거라는 뜻이겠지.

영도의 정령 서적에서 본 해약은 정령에게 우선권이 있었다. 평범한 계약이라면 정령이 해약 의사를 밝힐 경우 정령사는 그에 따를 수밖에 없는 거다.

해약해주지 않는다고 보복할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정령은 계약자에게 해를 끼칠 수 없고 그건 계약자도 마찬가지니까. 언급하지 않아도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기초 조항 같은 것이다.

다만 정령력의 소비, 소환으로 인한 원기나 체력의 감소 등 불가피한 위험 요소가 있긴 하지만, 환연은 애초에 추정 상급에서 최상급 정령으로 태어났어야 할 인물이다.

말 그대로 몸의 절반이 정령력이자 정령 친화력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상황.

만약 위험하다 쳐도 3일마다 한 번씩 요구할 수 있는 정식 계약급 요청으로 제약 사항을 하나씩 추가해버리면…….

‘릴라이스는 끈끈이에 잡힌 파리나 다름없는 거지.’

환인의 눈이 한차례 번뜩이자 환연의 보랏빛 눈동자도 똑같이 번뜩였다.

“너무 걱정 끼치진 마라.”

「소중한 동료니까?」

자신이 했던 말을 소악마처럼 웃으며 되뇌이는 환연의 말랑말랑한 뺨을 쿡 찌른 환인도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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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흐, 흥! 아직 너한테 반한 건 아니거든! (온몸에 정액이 덕지덕지 묻은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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