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534화 (534/813)

528 투라드 마을

투라드 마을에는 생각 이상으로 여자들이 많았다. 라드세아의 성비가 남녀 2:8 정도로 극심하다지만 여긴 특히 더 그러하다고 할까.

길가에 보이는 사람 대부분이 여자라는 사실에 의문이 환인의 머릿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안느와 유르파에게서 흑마술사의 대접과 처우가 어떠한지 들은 뒤부터 줄곧 조금씩 들던 위화감.

그게 마을에 도착하고 보니 본격적으로 짙어지기 시작한다.

이상한 거다. 흑마술사는 교단의 공적이라 했다. 마을 사람이 빠져나가 근처 도시에 도움을 청하면 모르긴 몰라도 토벌대가 나올 테지.

그런 판국에 흑마술사가 마을이 외부에 도움을 청하도록 내버려 둔다고?

키사기 자매가 마을에서 닷새 거리에서 도적 떼에게 습격받았다는 것도 의심스럽다.

설명을 듣던 당시에는 도적들이 키사기 자매를 죽이지 않고 놓아줬다는 점에서 그녀들이 습격받은 것은 그저 우연이라고 치부했었다.

그도 그럴 게 짐을 전부 빼앗기고 알몸 상태로 대초원에 버려졌지만, 환인은 그 상황이 그리 암울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유피는 양쪽 젖가슴에 2.5리터씩 총 5리터에 달하는 우유를 담고 있다. 그리고 키사기는 전투에 익숙한 3급 적술사.

그 정도라면 이동하며 공격해올 짐승이나 야수를 해치워서 식량으로 삼고 식수는 유피의 우유로 해결할 수 있다. 더욱이 키사기는 불을 다루니 생식으로 생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그랬는데 마을을 보니까 다른 생각이 든다.

도적 떼의 습격은 의도된 거지만, 도적들은 목숨이 아까워 3급 적술사와 정면으로 부딪치기보단 그냥 버리고 갔을 가능성.

도시 행정관에서 정식 의뢰를 수주해 이행하는 모험가도 아니고 도적이 목숨 걸고 의뢰를 수행하리라고 보는 게 이상한 일이지.

만약 도적을 불러들였다면 누가 불렀냐는 것도 문제가 된다.

“…….”

그리고 투라드 마을의 위치는 히스론드의 주도 팔라툼에서 영도로 가는 길목의 요충지다.

그럼에도 간신히 촌락 수준을 벗어난 듯한 마을의 크기도 이상하고 남자의 숫자가 극단적으로 적은 것도 수상하다.

흑마술사가 마을 주변에 자리 잡았는데도 마을 주민들의 표정에는 그다지 불안이 보이지 않는 것도 의심스럽다.

하지만 마을을 배회하는 영혼은 소수다. 그마저도 평범한 마을처럼 흐릿한 이지로 마을을 배회하는 수준이지 분노나 원한을 품고 남은 영혼은 안 보인다.

‘마을이 흑마술사와 한통속일 가능성은…… 없나.’

키사기와 유피는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진실이었고 진심이었다. 마을 전체가 흑마술사와 한통속일 가능성은 없겠지. 일부라면 몰라도.

=…….=

=으음……?=

마부석에 앉아있는 이실리테와 안느도 무언가 본능의 영역에서 이상함을 느꼈는지 표정이 조금 안 좋아진다.

=도령…….=

고개를 돌려 비상을 타고 따라오는 환인을 돌아본 안느는 그가 검지를 세워 입에 가져다 대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질문 대신 방심을 버리고 긴장과 경계심을 추슬러올 리는 안느. 그리고 옆에서 그걸 보고 똑같이 경계심의 날을 세우는 이실리테.

=저 집이에요…! 저 집이 사도님의 집이에요…!=

환인은 이쪽을 돌아보며 안심한 것처럼 환히 웃음 짓는 유피에게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피에게 안내받은 사도의 집은 환인이 보기에 촌락의 촌장 집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현관과 이어진 1층 입구는 2층 천장까지 뚫려있는 홀 방식이었다. 1자 모양 기다란 테이블이 놓인, 응접실 겸 거실 겸 회의실 겸 식당으로 사용되는 40평 남짓한 장소.

좌우로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그 옆에는 1층 양 날개 쪽으로 이어진 복도가 붙어있어 사도의 집이라기보단 마을회관 느낌이 강하다.

환인은 그런 홀의 긴 테이블에 투라드 마을 사도와 마을 유지들과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으음. 키사기와 유피를 구해주신 것에 마을 사도로서 감사드리오. 가뜩이나 직업자의 수가 적어져 마을을 지키기 어려워지고 있는 마당이었는데, 그 아이마저 신님의 정원으로 떠났다면 마을은 더욱 힘들어졌겠지.=

삽살개 머리의 인견족 사도가 살짝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자 그 옆에 조금 노출이 있는 검은색 가죽 옷 차림의 흑표범 귀 여성이 피곤한 기색으로 눈 주변을 매만지며 말을 이어받았다.

=그런데 말이야. 도움 받은 처지에서 이런 말 하기 미안하지만…… 차림도 그렇고 마차에 왜건까지 끌고 다닐 정도니까 실력이야 있겠지만 불안한 게 사실이야. 괜히 수풀을 쳐서 뱀을 놀래키는 게 아닐까 해서.=

=야, 야라 아주머니!=

흑표범 귀 여자의 노골적인 발언에 키사기가 붉어진 얼굴로 벌떡 일어나 소리친다. 하지만 여자는 의견을 철회할 생각이 없었다.

=생각해봐. 법술사라면 노력 여하에 따라 주문 영창과 정신 집중은 필요해도 술법을 펼칠 수 있으니까 충분히 강해져. 하지만 무사는 마도기로 신체 능력을 보완하더라도 그 한계가 뚜렷하잖아?=

=그건……!=

=솔직하게 말할게. 나는 흑마술사를 건드리는 거, 반대야. 물론 키사기와 유피를 구해주었으니 아이들의 생명의 은인으로 환대할 거야. 하지만 흑마술사를 건드리는 건 봐줬으면 해. 그냥 며칠 푹 쉬다가 목적지로 다시 떠나주면 좋겠어.=

야라가 말을 끝마치자 근처에 앉아있던 도하, 투라드 마을 순찰대장인 우인족이 손을 들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글 자칼 여섯 마리를 피해 없이 가볍게 퇴치했다면 어지간한 직업자들 뺨칠 정도로 강하다는 뜻일세. 무직자들로만 일행을 꾸려 여행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강함을 증명하는 거고 말이야. 게다가 흑마술사에 대해 이야기를 다 들었다지? 그런데도 도와주겠다고 선뜻 나섰다는 건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현실이 닥치기 전에는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야.=

=크으음……. 나도 야라의 뜻에 동감이오. 마을의 중한 일에 외부인의 도움만 받다간 언제까지고 나약하게 살아야 하지.=

=아니, 현실을 봐야 합니다. 그 흑마술사 놈의 손에 전대 순찰대장과 마을에서 가장 강한 순찰대 세 명이 맥없이 죽고 말았어요. 놈을 물리치려면 힘이 필요합니다. 영주님의 도움을 바라지 못하게 된 이상 저분들의 도움을 감사히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어서 나오는 유지들의 찬반 의견에 키사기는 몸 둘 바를 몰라하며 환인을 돌아보았다.

대가 없이 도움을 주러 오셨다가 이런 모욕적인 이야기를 들으시게 되다니, 창피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환인이 기백으로 존재감을 약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존재감에 조용하고 과묵한 목소리가 홀에 울려 퍼지니 중구난방으로 자기 의견을 떠들던 유지들의 입이 딱- 하고 다물어진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 사도와 유지들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여러분들이 흑마술사의 주구일 수도 있다는 우려는 기우로 끝나서 다행이군요.”

=그게 무슨 말인가!!=

=아무리 아이들의 은인이라지만 무례하기 짝이 없는 발언은 용서할 수 없어!=

=아니 어찌 그런 망발을……!=

으르렁 컹컹거리는 사도와 유지들의 고함에도 환인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흑마술사로 추정되는 사람을 받아들인 점. 중급 정도로 짐작되는 흑마술사를 두고 외부에 빨리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점. 도움 요청을 고작 여자 둘만 보낸 점. 상소문을 올리기 위해 떠난 두 명이 절묘한 타이밍에 습격받은 점. 흑마술사의 손아귀에 잡혔음에도 불안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 마을 주민들.”

환인이 하나씩 손을 꼽아가며 의구심이 드는 점을 언급할 때마다 유지들과 순찰대장이 입을 다물고 어깨를 축 늘어트린다.

“교단이라면 상기 나열한 부분만 보고 투라드 마을을 악의 소굴이라 판단을 내릴 겁니다.”

야라가 긴장한 것처럼 흑표범의 귀를 뒤로 납작 눕히며 발언했다.

=그…건 너무 과민한 반응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쪽의 아가씨는 땅신 교단의 유랑 성직자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안느를 가리키는 환인.

=우리 도령 말대로야. 방금 나열한 부분만 언급해도 교단은 성스러운 불로 마을을 태워버릴 거라 생각해.=

안느가 품에서 땅신 교단의 증표를 꺼내 땅신 교단 성술의 증거인 황색의 빛을 끌어내자 유지들의 안색이 창백해지며 손을 살짝 떨기 시작했다.

나이 든 사도가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푹 숙인다.

=땅, 땅신 교단의 성직자님을 알아뵙지 못해 송구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정말로 결백합니다. 그자를 마을에 받아들이고 상처를 치료해준 것은, 정말로 그자가 흑마술사인 줄 몰랐기에 한 행동으로…….=

=아, 꾸중하는 거 아니야. 우리 도령도 말했잖아. 여러분들이 흑마술사의 주구가 아니라고 말이야.=

안느의 담담한 대답에 사도도, 유지들과 순찰대장도 유일하게 자리에 앉아있는 검은 머리카락의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 남자가 뭐길래 땅신 교단의 성직자가 따르는 거지? 게다가 어째서 혼자만 자리에 앉아있는 걸까. 남자의 신분이 뭐길래? 저 남자도 플뢰족 신관……인가? 하지만 귀가 짧은데.

“야라 씨.”

=네, 네?=

환인의 부름에 퍼뜩 정신을 차린 야라는 뒤로 돌렸던 흑표범의 귀를 앞으로 하며 귀를 열었다.

“우리의 강함이 의심된다면 이 자리를 끝내고 우려를 종식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는 그 흑마술사와 늑대가 나온다는 미궁, 그리고 흑마술사가 끌고 간 여성들의 이야기 등 그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들려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아… 네. 그러겠…어요.=

이 요청이 환인의 마지막 교차 검증이란 사실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채 야라는 나르타, 그 우라질 놈이 상처투성이로 마을에 찾아왔을 때부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우아악~?!=

콰광, 쿵!

=히에엑~!!=

=끄아익…!=

콰창! 퍼벅, 쿠당탕!

투라드 마을 순찰대 소속 열두 명이 백려강의 맨손 박투에 허리가 접히고 다리가 잡혀 내동댕이쳐지고 턱을 얻어맞아 빙글빙글 돌며 날아가 처박힌다.

비록 1~2급의 전사와 투사라지만 4명이나 포함되어있고 모험가 출신이던 전 순찰대장에게서 합격진 훈련에 진형 훈련까지 받아 나름 정규군 십인장 정도의 실력을 지닌 대원들.

그런 대원들이 머리에 사슴뿔 달린 가녀린 처녀에게 제대로 쥐어박히는 광경은, 직업자도 아닌 무직자에게 신나게 털리는 광경은 사도와 유지들에게 입이 쩍 벌어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꾸에엑~!=

=끄억!=

12명의 순찰대원이 백려강에게 달려들다 차례차례 나가떨어지는 광경을 지켜보며 유르파가 환인에게 말했다.

=자기는 어떻게 생각해? 난…… 흑마술사가 우연히 상급의 주술서를 손에 넣고 미궁에서 힘을 기르고 있는 걸로 보이는데.=

“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야라의 이야기에 따르면 나르타, 쥐 인간 흑마술사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적지 않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고 했다.

오는 중에 마수걸이들의 손에 걸려 일행은 괴멸하고 자신만 겨우 살아남아 도망쳤다는 이야기. 그걸 의심하기에 흑마술사의 상태는 상처가 썩어서 곪아가는 수준이어서 의심을 사지 않았다고.

하지만 흑마술사의 저주에 걸려 죽었다는 전대 순찰대장은 만에 하나를 대비해 흑마술사가 말했던 곳으로 정찰을 나갔고, 그곳에서 8명 남짓한 일행이 전멸한 흔적을 발견했다.

전 순찰대장은 치밀하고 섬세한 성격이었던 듯하다.

흑마술사의 정체를 알아보진 못했으나 수상한 점을 느꼈는지 흑마술사를 대충 치료하고 내보낼 것을 주장했던 것.

순박한 마을 사람들은 그런 순찰대장을 설득해 흑마술사를 치료해서 살려놓았다. 인정 없게 다친 사람을 마을에서 쫓아내면 짐승신님께서 천벌을 내릴 거라고 말이다.

그 주장을 앞세운 사람이 마을 유지 중 한 명, 야라였다는 이야기.

환인은 야라가 보였던 죄책감과 자신 일행을 향한 미안함의 근원을 생각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 일행이 정말 흑마술사의 일행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실력을 크게 늘릴 것을 손에 넣은 것은 사실이겠지요. 흑마술사는 생각 이상으로 마을의 상황이 자신의 목적에 부합한다는 걸 깨닫고 연공을 끝낸 뒤 빠르게 모습을 감출 생각이었을 겁니다.”

투라드 마을이 발전하지 못한 것은 한마디로 ‘영도로 가는 길목’의 마을이었기 때문이었다.

니오네브레스에서 장거리 여행이란 목숨을 내놓고 다니는 일이다.

멀리서 영도로 순례길을 걸을 정도라면 신실한 독신자. 그런 사람이 영도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곳에서 흥청망청 유흥을 즐길까?

때문에 투라드 마을은 하루이틀밤 정도 묶고 지나가는 곳이지, 딱히 돈을 크게 쓰는 곳은 아니었고 주민들 또한 상재가 없어 순례자들을 상대로 장사를 벌이지 않았기에 이렇게 발전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조용히 찾아와 조용히 떠나는 마을. 그게 투라드 마을이었고 이 마을 사람들의 온순하고 순박한 특성을 눈치챈 흑마술사는 데몬스트레이션을 펼쳐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은 것이다.

물론 불시에 변이 하이어 울프를 보내 감시도 했고.

=결국 흑마술사의 위협시위는 말 그대로 마을 사람들의 입막음 용도였네.=

키사기와 유피가 흐라스린드로 향하게 된 이유는 계속된 인신 공양 요구에 참지 못해서였다는데, 만약 흑마술사가 인신 공양을 적당히 요구했다면…….

「환인. 찾았어.」

환인은 품 안에서 들려온 환연의 작은 목소리에 상상을 중단하고 주변을 조용히 돌아보았다.

마을 사도와 유지는 물론이고 마을 주민들도 백려강과 순찰대원 12인의 이벤트 매치에 몰입 중.

“몇 군데지.”

「열일곱. 마을 구석구석 풀 한 포기도 놓치지 않고 살피느라 시간이 좀 걸렸어.」

“많군. 위치는 역시 마을 전체를 뒤덮는 식인가.”

「응. 환인 예상대로 흑마술사는 떠날 때 마을을 완전히 지워버릴 셈이었던 거 같아.」

환인의 옆에 딱 붙어있던 그의 여자들은 두 사람의 대화에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실리테.”

=네, 주인님. 려강!=

한 번 다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난 순찰대원들과 2차전을 준비하던 백려강은 이실리테의 부름에 그녀를 한 번 보고는.

[격렬한 돌풍!]

펑- 작은 회오리를 터트려 순찰대원들의 움직임을 한순간 경직시킨 뒤 성체술의 묘리에 신체 강화 목걸이를 발동.

뻐-버버벅……!!

=끄악!=

=켁.= =끄헥!?=

=커억……!=

눈 깜짝할 사이 12명을 모조리 때려눕혀버렸다.

날아다니며 팔다리로 때려눕히고 용의 꼬리를 휘둘러 날려버리고 꼬리로 발목을 붙잡아 다른 순찰대원에게 휘둘러 쓰러트리고…….

5초가량 지속된 돌풍이 가라앉았을 때, 백려강 혼자 공터에 굳건히 선 것을 본 마을 주민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박수를 보냈다.

=세, 세상에. 법술사였어?=

=아니 법술사인데 무투 실력이 어떻게 저렇게 뛰어나?=

=처음에는 봐주면서 했던 거였구먼…….=

=에잉~. 여자애 하나를 건드리지도 못하고 당하다니, 쯧쯧.=

=이 못난 녀석들아, 가랑이 사이에 달린 불알이 아깝다!=

시체처럼 으어어, 땅바닥을 기는 순찰대원들에게 한심하다는 타박이 날아든 것은 물론이다.

환인은 칭찬을 바라는 소녀처럼 이쪽으로 달려오는 백려강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아직도 멍하니 서 있는 사도와 유지들을 불렀다.

“잠시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확인할 게 있습니다.”

=…예? 아, 예.=

그리고 환연이 가리키는 곳에서 찾아낸 것은…….

=웁……!=

=우웨엑!=

……사람의 머리로 만든, 썩어서 고름이 흐르고 구더기가 들끓는 저주 폭탄이었다.

땅을 조심스럽게 파헤치다가 나온 사람 머리에 마을 주민들이 뒤로 나뒹굴고 토악질을 한다.

작업을 옆에서 지켜보던 사도와 순찰대장도 눈썹 끝을 파르르 떨며 환인에게 물었다.

=이, 이 저주받을 물건은 대체 무엇입니까?!=

=……흑마술사가 만드는 저주 폭탄이야. 이걸 터트리면 속에 심어둔 저주가 일정 영역을 덮치는 거지.=

환인 대신 설명해준 안느는 침중하고 심각한 얼굴로 머리 폭탄을 살피다가 증표를 내밀며 한차례 정신을 집중한다. 그리고는 환인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걸 해제하는 건 어렵지 않아. 하지만 해제하면 그 흑마술사 놈에게 신호가 갈 거 같은데?=

흑마술사에게 신호가 갈지도 모른다는 말에 기겁해서 말리려는 사람들을 눈빛만으로 제지한 환인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시선으로 묻는 안느에게 질문했다.

“원격으로 폭발시킬 수 있을 거 같나.”

=고위 흑마술사라면 가능하겠지만……. 못한다고 확신하긴 어려워. 율이 언니가 보기엔 어때?=

=모든 술법에 원격 조작의 이치가 있지만 그건 대부분 5급 이상의 술법사라야 익힐 수 있어. 만약 관련 마도구가 있다면 수 킬로미터 밖에서도 터트릴 수 있겠지. 그 흑마술사 수준을 정확히 알지 못하는 만큼 함부로 건드리는 건…… 어떨지.=

환연의 이야기에 따르면 마을 주변이나 마을 안 땅속에 괴물이나 언데드가 숨어있지는 않다고 했다. 있는 거라곤 마을 안 곳곳에 묻혀있는 이 사람 머리 폭탄 17개뿐.

“…….”

우려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한 가지 가설을 떠올린 환인은 과거의 경험에 미루어 가능성을 셈해보다가 결정을 내렸다.

“다른 것들도 파헤쳐봅시다.”

사람들을 이끌고 나머지 열여섯 개의 머리 폭탄을 더 파내 공기 중에 드러낸다.

나온 16개의 폭탄은 마찬가지로 처음 발견한 것과 같이 마을에 저주를 뿌리는 것들.

다만 저주의 종류는 달라 어떤 건 부식, 어떤 건 부패, 어떤 것은 질병을 퍼트리는 것으로 추측되었다.

=세……상에. 언제 마을에 이렇게…….=

이 끔찍하고 불결한 물건이 마을 곳곳에 묻혀있었다는 사실에 사도와 유지들이 말을 잇지 못하다가 환인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저 남자는 어떻게 이렇게 딱딱 머리 폭탄이 묻힌 곳을 알아낸 거지?

땅을 파헤치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웅성거리며 따라다니던 마을 주민들도 환인을 향해 불안과 우려를 드러내는 모습에 안느가 조금 화난다는 기색을 드러냈다.

=지금 우리 도령을 의심해?=

=엇, 아… 아니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대놓고 도령을 의심하는 눈이잖아. 이거, 땅신 교단에 엄청 무례한 행동인 거 알아?=

=그, 그으…….=

안느는 물론 이실리테의 살기 어린 시선에 마을 사람들이 숨이 턱 막힌다는 표정을 짓는다.

“되었다. 마을 중앙으로 가지.”

=…….=

환인은 마을 주민들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싸늘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친구들을 데리고 중앙 공터, 백려강과 순찰대원들의 대련이 이루어진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천칭을 꺼내 두 손으로 잡고 가슴의 문양에 채워져 있는 심핵력을 양손에 주입, 훈기와 한기를 접촉시켜 혼령주를 펼쳤다.

두쿵— 심장을 간질거리게 만드는 진동과 함께 일순간 시야를 가리는 빛이 터져 나와 기둥을 이루며 하늘을 찌른다.

=흐억?!=

=허억…!=

마을 사람들이 터트리는 당혹의 목소리가 점차 이완되고 평온하게 변해가는 중, 환인은 머리 폭탄의 저주가 해제된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주변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혼령주의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 환인은 여자친구들을 불러 머리 폭탄의 상태를 확인시켰다.

=……응. 저주가 완벽하게 해소됐어.=

=술법과 주술적인 기운도 없어. 평범한 시체의 머리로 돌아갔어.=

예상대로다.

비자룩스에서 있었던 일, 그리고 프라버에서 혼령주를 펼쳤던 경험을 떠올린 환인은 백려강과 환연의 상태를 돌아보았다.

“괜찮나.”

=네. 아무렇지도 않아요. 몸이 있어서 그런가……?=

「나도 이제 조금 익숙해졌어. 하지만 정령이 다 사라져서…… 감시를 재개하려면 좀 기다리거나 나가서 정령을 데려와야 할 거 같아.」

“그건 나중에 하지.”

영혼을 강제로 승천시키고 해당 지역에 쌓인 영적 침적물을 날려버리는 혼령주. 그리고 혼재의 재앙화된 기운과 힘싸움을 벌이던 평온의 파동.

머리 폭탄도 저주의 일종이란 말에 밑져봐야 본전이라고 생각하며 펼쳤던 건데 정답이었다.

자신의 왼팔, 혼옥 보관고를 들여다보고 들개 전사단의 흑옥 8개만 남은 것을 확인한 환인은 자신을 멍하니, 혹은 얼떨떨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도와 유지들에게 말했다.

“사도님.”

=예, 예에.=

“시체 머리는 모아서 양지바른 곳에 묻을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도하 순찰대장님은 대원들에게 마을 입구를 걸어 잠근 뒤 혹시 모를 흑마술사의 접근 경계를 지시해주시고 유지분들은 마을 사람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다독여서 집으로 돌아가게 하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당신…께서는…….=

“우리는 힘 없고 선량한 사람들의 편입니다. 이 이상의 대답이 필요하십니까.”

=아닙, 아닙니다! 예에, 아니고 말고요! 어어 자네들, 말씀 들었겠지?! 당장 움직이게!=

환인은 유지들과 마을 사람들이 절반은 겁먹고 절반은 호기심을 품은 채로 바삐 움직이는 걸 보다가 사도와 함께 그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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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랫맨 워락 주사위 굴림.....

랫맨: ...찍!(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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