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530화 (530/813)

524 히스론드로 가는 길

“유르파. 마차 설계도 가지고 있습니까.”

=응. 잠깐만…….=

환인의 질문에 유르파는 개인용 아공간 주머니에서 수십 권의 책자와 두루마리 등을 잔뜩 꺼내기 시작했다.

표지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지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책과 스프링노트, 연습장에 다이어리들.

그중 A4 크기의 스프링노트를 집어서 펼치자 빼곡하게 일행의 일정이 눈에 들어온다. 그 내용은 해마에서의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한 키워드로 구성되어있었다.

예를 들어 프라버에서 환인이 백중강과 백중익하고 나눴던 대화는…….

1: 강, 익, 선鮮, 요療.

익: 생生, 탄歎, 감感.

강: 승낙, 행동, 존중.

……이런 식이다.

해석하자면 자신이 백중강과 백중익 앞에서 치료治療를 한 뒤 생선生鮮의 어장 육성을 제안했다는 것.

백중익은 생존한 뒤 감탄과 감사를 표시했고 백중강은 자신의 제안을 승낙하고 행동, 이후 태도의 변화 등을 기록해놓은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뭘 암호화해놓은 건가 싶은 내용.

다른 책은 방문했던 도시와 마을, 촌락의 특징 및 풍경이 기록되어있고 대화를 나눴던 이들도 적혀있었다.

또 다른 책은 아이디어 노트인지 환인도 그냥 보아서는 맥락을 짚어낼 수 없고 몇 가지 단어만 눈에 띈다.

비밀로 취급해야 할 내용은 전부 한글과 한자와 루크랑어 혼용으로 암호처럼 적혀있고 비밀 중에서도 특급으로 분류해야 할 자신의 문양 에너지, 심핵력과 아드네빌라 사이의 거래, 백려강의 육신에 대한 것은 아예 기록되어있지 않았다.

=찾았다. 여기 있어.=

노트를 살펴보던 환인은 유르파가 가져온 마차 설계도를 받아들고 노트를 돌려주었다.

“잘 정리해놓으셨군요.”

=여행 중에 혹시 소소한 부분이 기억나지 않을까 창작 암호기법으로 정리해놓은 건데…… 자기가 보기에는 어떠니?=

“분실이나 도난에 대비해서 기밀 요소를 더 높이고자 하면 문자를 변조하는 것도 좋겠지요.”

=으응? 문자를 변조해……?=

“대강 이런 겁니다. 지구의 언어 중에 영어가 있습니다. 총 26개의 글자를 섞어 단어를 만들고 그 단어를 모아 문장을 만드는 식이지요. 그리고 여기 이 문자를 영어로 치환하면 bhad가 됩니다. 이 네 글자를 가령 이런 식으로…….”

알파벳에 대응하는 26개의 그림을 그려서 몇 가지 단어를 바꾸자 유르파의 눈이 동그래진다.

“기초적인 암호화 방식이지만 지구의 언어를 접목해 바꾸면 어지간한 인물들은 알아보기 힘들 겁니다. 지구를 주제로 깊이 공부한 일부나 눈치챌까요.”

=와…….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알았어, 자기가 말한 대로 해서 다시 전부 정리해놓을게.=

“그건 그렇게 하시고, 자 다들 여기 모여봐라.”

환인의 부름에 여자들이 전부 모이고 비상도 어슬렁어슬렁 걸어와 환인의 뒤에 자리 잡는다.

마차 설계도를 모두가 볼 수 있게 펼친 환인은 그중 마차 하부 도면을 가장 위에 올려 모두에게 설명했다.

“마차의 뒤에 연결할 짐수레를 만들 생각이다. 노면의 진동과 충격을 흡수할 서스펜션을 신경 쓴 뒤 수레 바닥도 푹신하게 만들어야겠지.”

「쿠라가 알을 품을 수 있게 하려고? 짐수레면 진동이 있을 텐데 괜찮을까?」

자신이 뭘 하려는지 읽은 환연의 지적에 그는 수레 하부의 충격 흡수 구조를 짚었다.

“지금까지 마차 여행을 해오며 이 진동흡수 구조가 매우 훌륭하다는 걸 다들 몸으로 체감했겠지. 여기에 푹신한 재질의 소재로 수레 바닥을 채워놓으면 알에 가는 진동은 0에 가깝게 할 수 있을 거다.”

설명을 들은 이실리테가 경험에서 우러나는 첨언을 덧붙였다.

=알을 품는 쿠에는 주변 변화에 조금 예민해지니까 짐수레처럼 뼈대로 벽이랑 천장을 세워서 천막을 덮을 수 있게 하면 좋을 거 같아요.=

=그러면 이런 식으로?=

=네. 천막도 마침 가진 게 있고 마차 부품은 영도에서 보충해놓았으니까…… 주인님, 바로 만들까요?=

“그래. 그러면…… 유르파는 린덴에서 마차를 새로 조립하고 수리한 경험이 있으니 제작에 앞장서주십시오. 저는 저쪽 방풍림에서 수레에 쓸 통나무를 구해오겠습니다.”

하부 프레임은 재료가 다 있다지만 수레를 만들 나무는 부족하다. 목재를 구해와야 한다.

=응. 안느 아가씨랑 려강 아가씨는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재료를 물자 수송 가방에서 꺼내와 주렴. 이슬이 아가씨는 자기 따라가서 힘쓰는 일 좀 도와줘.=

=네, 언니.=

=알았으. 려강, 가자.=

=넷.=

린덴 촌락에서 일꾼 키메라의 공세에 마차가 한 번 완파 당하는 경험을 했기에 영도에서 마차의 부품을 이전에 비해 넉넉하게 공수해놓았었다.

프라버에서 획득한 기사단 물자 수송용 아공간 가방이 없었다면 용적과 무게 문제로 여분을 많이 챙겨놓지 못했겠지만, 10m*10m*6m 사이즈에 70% 무게 감소 효과를 가진 가방 덕에 마차 수리 부품은 2대를 새로 만들 정도로 여유 있는 편.

물자 수송 가방에서 안느와 백려강이 차례대로 부품을 꺼내 옮기기 시작하고 유르파는 하부 프레임 위에 올릴 수레 치수 계산, 부화 준비에 필요한 보조 술법 등을 계산해서 설계를 수정해나간다.

환인은 이실리테와 함께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방풍림으로 향했다.

나무의 수종은 모르지만, 일직선으로 곧게 7m가량 자란 나무. 껍질이 소나무처럼 일어나있고 지름은 3m에 이른다.

=이 정도면 잘 말려서 요리용 장작으로 써도 괜찮겠어요.=

“그렇다면 여분을 챙겨둘까.”

=네, 주인님.=

흐라스린드에서는 식자재와 조미료 위주로 물자를 보충했었다. 중, 하급 거리는 모든 물자가 부족했고 상급 거리는 혼란스러운 위쪽 상황에 문을 연 상점이 얼마 없을 지경이었기 때문.

이실리테가 기사검을 <로 휘둘러 통나무를 빠르게 베어내기 시작하고, 환인도 중급 정령을 몸에 강령한 뒤 켈틱 돌도끼로 퍽퍽퍽, 몇 차례 둥치를 찍어내 쓰러트려 벌목해나간다.

=주인님, 이 나무는 어떠세요? 곧고 상처도 없는 거 같은데요.=

“……그 나무 위에는 새 둥지가 있군. 옆의 것으로 하지.”

=네.=

환인에게 물어가며 10여 그루를 쓰러트린 이실리테는 나무를 더 쓰러트릴 공간이 보이지 않아 한 그루에 수백 킬로그램은 나갈법한 나무를 하나씩 짊어지고 밖으로 옮겨나갔다.

그러다 주위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이런데 방풍림만 세워져 있는 건 촌락이 멸망한 흔적일까요?=

“…….”

방풍림 주변에는 집의 잔해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며 풍화되어 집터의 흔적마저 사라진 모양새.

“이 정도로 풍화 침식이 이루어졌다면 촌락이 멸망한 게 아니라 흐라스린드로 촌락 전체가 이주했을 가능성이 크겠지. 흐라스린드가 도시로 승격한 직후가 아니었을까.”

이곳에서 흐라스린드까지 마차로 7시간 거리 정도밖에 안 된다. 결심은 빨랐을 것이다.

한 번만 더 도끼질하면 나무가 넘어갈 것 같아 환인은 이실리테에게 비키라고 신호를 보낸 뒤 마지막으로 콰작, 도끼질을 넣었다.

유달리 커서 지름이 5m는 될법한 나무가 끄드드드드— 소리를 내며 천천히 기울다가 삽시간에 쿠웅! 땅을 울리며 쓰러진다.

그와 동시에 뿅- 하고 옹이구멍에서 튀어나오는 한 마리의 은색 날다람쥐.

크기가 너구리만 한 동물이 땅에 내동댕이쳐져 허둥거리다 막 도망치려는 찰나, 이실리테의 번개 같은 검격에 머리와 몸이 단숨에 분리되었다.

=와! 주인님, 이거 므롤렌이에요!=

북슬북슬한 은색 꼬리를 잡아 거꾸로 들고 기뻐하는 이실리테.

동물의 잘린 목의 단면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흐르는 중에 그러니 약간 섬뜩한 느낌이다.

“므롤렌이면…… 육고기 중에서 오대 진미로 불리는 그건가.”

=네. 같은 무게의 금화로 거래된다던데 맛이 어떨지 기대되네요. 저녁으로 맛있게 요리해드릴게요.=

“그래. 기대하지.”

재수도 없는 녀석이군. 벌목을 시작할 때 숲 안쪽으로 도망쳤다면 이실리테의 손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벌목을 더 이어나가서 20그루를 베어낸 뒤 이실리테와 함께 마차가 있는 곳으로 통나무를 날랐다.

환인이 4그루를 옮길때 이실리테는 양 어깨에 한 그루씩 혼자 16그루를 옮겨내곤 통나무의 나뭇가지를 쳐내기 시작했고, 환인은 환연을 불러서 그녀가 잔가지를 정리해놓은 통나무의 수분을 뽑아내도록 지시를 내렸다.

「이 정도면 돼?」

물의 정령이 근처에 나무의 수액을 촥 뿌리는 것을 본 환인은 그녀의 질문에 나무를 잡고 손아귀에 강한 힘을 주어본다.

그러자 퍼석, 손에 잡힌 곳이 톱밥처럼 잘게 부서져 버렸다.

“수분을 너무 많이 증발시켰군. 이건 장작으로 쓰고 이번에는 절반 정도로 해봐라.”

「흠?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잘 못 잡는 거 같은데…… 잠깐만.」

물의 정령과 함께 안느가 꺼내놓은 수레 하부 프레임 재료로 날아간 환연은 잠시 후 돌아와서 다시 한번 통나무를 향해 손을 저었다.

「이번엔 어때?」

“……좋군. 나머지도 부탁한다.”

더할나위 없는 결과물에 나머지 작업을 부탁한 환인은 유르파에게 가서 판자로 가공할 치수를 요구했고 그걸 가져와 단검으로 자를 곳과 베어낼 곳을 표시해나간다.

그리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 이실리테가 쳐놓은 잔가지 중 팔뚝만 한 가지를 가져와서 광창으로 몇 번 갈라보았다.

약간의 반발력도 없이 물을 베는 듯한 감각.

광창의 특성 때문에 자른 단면이 토치로 살짝 지진 것처럼 그슬렸지만, 오히려 이러면 약간의 방수 효과가 나기에 나쁠 것 없다.

환인은 몇 차례 더 광창을 휘둘러본 뒤 치수를 표시해놓은 통나무를 땅에 박아세웠다.

원래 광창은 짧게 끝내야 할 전투에만 써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광창을 사용하면 허기가 빠르게 찾아오는데 그 감각이 그리 좋다고는 못하기 때문.

하지만 이번에는 써야겠지.

“…….”

광창의 형태와 휘두를 때의 변화를 기억해둔 환인은 광창의 아홉 날을 하나로 줄이고 기운을 쓸데없이 낭비하지 않도록 형태도 단단히 조율한다.

그 형태가 흡사 이실리테의 빛의 검처럼 날카롭고 선명한 윤곽선이 되었을 때, 환인은 광창을 번개처럼 휘둘렀다.

종으로 세 번, 횡으로 한 번.

……와르르—

=우와.=

순식간에 길이 1m짜리 반듯한 나무판 4개가 생겨나는 장면에 이실리테가 작게 탄성을 지르고 베어낸 결과물을 맞춰보았다가 한 번 더 놀랐다.

1cm의 오차도 없이 마치 자를 대고 잘라낸 것처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이건 사람의 기술이 아니야…….’

아무리 단검으로 미리 자를 곳을 표시해놓았다지만, 통나무 전체에 줄을 그어놓은 것도 아니고 끄트머리만 살짝살짝 찍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어떻게…….

와그르르—

또다시 반듯한 나무판 4개가 생겨나는 광경에 이실리테는 잠깐 주위를 둘러보았다가 환인이 장작으로 쓰겠다며 따로 빼놓은 나무를 들고 와서 환인을 흉내 내보았다.

결과는 처참했다.

빠른 속도와 매우 뛰어난 절삭력이 포인트라는 걸 알았기에 빛의 검을 연검만큼이나 얇게 만들어 휘둘렀지만, 치수가 목표로 했던 것에서 1~2cm씩 어긋나 재료로는 절대 못 쓸 형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

주인님의 거리를 재는 감각은 신의 영역이라 할 정도라는 건 알지만, 이 결과물을 보니 자신과 주인님의 격차가 눈에 훤히 보여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다.

원하는 곳에 원하는 만큼의 검격을 정밀하게 넣을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신체 통제력이 뛰어나다는 뜻.

‘신체의 통제를 주인님 수준으로 확보하면 주인님이 말씀하셨던 검섬의 연속 발출과 지연사출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이만큼이나 정밀한 통제력이라면 틀림없이 검기와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

와그르르르-

또다시 판자가 생겨나는 것을 지켜본 이실리테는 검섬이나 검폭 같은 것처럼 필살기에만 매달릴게 아니라 이런 훈련도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수레의 조립은 환인까지 가세하자 금방 이루어졌다.

사람이 지내야 하기에 밀폐성까지 신경 써야 하는 본 마차와 달리 수레는 쿠라가 앉을 자리와 둥지를 만들 정도면 충분하니까.

유르파와 이실리테가 하부 프레임을 완성하고 수레를 본격적으로 완성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던 안느가 환인에게 물었다.

=근데 도령. 조용한 촌락이나 마을에 자리 잡고 쿠라가 알을 부화시킬 때까지 기다리는 쪽은 안돼? 부화만 되면 새끼는 마차 안에서 키워도 되잖아.=

아무리 진동이 적다고 해도 이동하는 부화장이 괜찮을지 조금 걱정된다는 안느의 이야기에 환인은 거의 다 완성되어가는 수레를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가 북상해서 히스론드 쪽으로 가는 건 이미 알려졌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가는 길에 마을이 세 곳 정도 있다지만, 한 곳에 자리를 잡고 2주 넘게 지내면 라드세아든 메리아놀이든 사람을 보내올 거란 이야기네.=

“그래. 그러니 마을에는 들르지 않고 느긋하게 플라비우스의 주도 히스론드로 향할 거다. 히스론드에 도착할 때 즈음 알이 부화하겠지.”

성불행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지만, 몇 달 뒤 여름에 승령천제가 대륙 규모로 이루어진다.

영기 확보 목적만 미룬다면 문제없는 일정이다.

=자기~ 다 완성했어~.=

유르파가 부르는 소리에 안느는 환인과 함께 그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도령은 별로 긴장 안 되는 거 같아. 노을색 쿠에면 녹색 쿠에랑 거의 동급의 영수로 취급받는데 부화에 실패하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태어나지 못한다면 그저 그뿐이니.”

담담한 환인의 대답에 안느는 대범한 건지 태평한 건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는 사이 완성된 수레는 현대풍으로 재조립한 중세풍 왜건wagon 느낌이었다.

바퀴가 외부 프레임 안쪽에 들어가 있는 마차와 달리 밖으로 노출되어있으며 하부 프레임 구조가 훤히 보이는 형태.

왜건 앞뒤 좌우로 세워진 난간의 높이는 약 50cm 정도이며 마부석 없이 마차의 뒤에 이어 붙여 기차처럼 끌고 가는 식이다.

마차에 왜건을 이어 붙여놓은 뒤 쿠라의 무게 정도 되는 짐을 왜건에 싣고 시험 삼아 주행을 시작해본다.

상단과 마차와 말이 수없이 많이 오가며 만들어진 길이라지만 노면 상태는 그렇게 고르다고는 못하는 수준. 그런데도 충격과 진동은 수레 안쪽까지 조금도 전달되지 않았다.

=어? 이거 우리 마차보다 더 탑승감이 좋은데? 율이 언니 어떻게 된 거야?=

=충격과 진동흡수 술법을 차축과 수레 밑판에 새겨놓았거든. 반영구 술식을 못새기는 부류라서 매일 아침 술법을 갱신해줘야 하고 재료도 1급 위상석이 1개씩 들지만, 그 정도는 투자할 가치가 있지.=

=그러네요. 노을색 쿠에가 태어난다면 파티에 큰 전력이 되어줄 테니까요.=

=쿠라, 이리 와 보렴.=

쿠우?

유르파의 부름에 왜건으로 다가온 쿠라는 이곳이 자신이 알을 품을 장소라는 걸 눈치채고 폴짝, 수레 안쪽으로 들어가 바닥에 가득 깔린 잘 마른 짚더미를 살펴보며 킁킁 냄새를 맡는다.

이어서 좌우를 둘러보더니 만족한 것처럼 환인을 향해 쿠에~ 하고 울었다.

=자리가 마음에 들었나 보네.=

“다행이군요.”

쿠에를 두 마리까지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수레에 올라간 환인은 바닥의 짚을 모아서 둥지처럼 모은 뒤 아스펜드 안에 넣어둔 노을색의 알을 꺼냈다.

점차 노을이 지고 있는 세상이라 그럴까, 피처럼 붉은 색으로 보이기도 한다.

쿠우!

자기 알을 알아본 쿠라가 날개를 펼치려다 천막을 치기 위해 조립해둔 골조를 날갯죽지로 툭 건드리곤 움찔해서 날개를 모은다.

대신 조르듯이 부리로 둥지를 가리키고 다리로 짚을 그러모으는 행동에 환인은 알을 둥지 안에 조심스레 놓아주었다.

그러자 부리로 알을 톡톡 건드려 위치를 잡은 뒤 다리와 부리로 바닥의 짚을 한층 더 그러모아 놓고 조심스레 알을 품는 쿠라.

쿠으.

쿠우?

쿠엣~

그 모습을 비상과 쿠르티, 쿠핀이 왜건 주변에 모여 신기한 듯이 보며 쿠쿠 울었고, 이실리테는 그런 녀석들의 부리를 밀어내면서 왜건을 천막으로 뒤덮어나갔다.

마차와 연결되는 앞쪽만 틔워놓고 좌우와 뒤는 모두 가리는 모양새. 밀폐감에 쿠라가 한층 더 안심하는 걸 확인한 이실리테는 왜건에서 나와 입을 열었다.

=안심하고 알을 품기 시작했어요. 이제 부화하길 기다리기만 하면 돼요.=

고개를 끄덕인 환인은 어느새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를 보면서 말했다.

“주변을 정리하고 야영 준비를 하지. 오늘은 여기서 쉬었다가 간다.”

저녁에 나온 므롤렌 스테이크, 육지 동물의 고기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진미의 고기는 환인마저 움직임을 잠시 멈추고 그 맛을 음미할 정도였다.

=간은 후추 약간과 조금의 소금만으로 하고 구웠어요. 어떠세요?=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군.”

고기는 잘 구운 지방처럼 야들야들했고 맛은 이제껏 먹어본 적이 없는 고기의 맛이다.

확실하게 분간할 수 없지만 여러 가지 맛이 섞이고 어우러지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을 준다.

일곱 가지 맛의 향연이 마치 입안에서 무지개가 터져 나오는 느낌이다.

환인은 주먹만 한 크기의 므롤렌 스테이크를 천천히, 소스까지 깔끔하게 먹은 뒤 어째서 이정도 양만 나왔는지 알아차렸다.

“이보다 더 많이 먹었다면 천상의 맛은 지옥의 맛으로 변했겠지.”

=네. 감칠맛이 워낙 강하다 보니까 많이 먹으면 어느 순간 끔찍한 맛으로 변해 몇 년은 잊기 어려운 충격을 남긴다고 하거든요.=

그렇기에 주먹만 한 크기의 스테이크가 한계라는 이실리테의 이야기에 공감하듯 백려강과 유르파가 황홀해하듯이 눈을 감은 채로 한숨을 흘렸다.

=어째서 같은 무게의 금이랑 거래되는지 알게 된 기분이야…….=

=으응……. 진미라고 불리는 건 많이 먹어봤지만, 이거만큼 강렬한 맛은 처음 겪어봤어요…….=

그리고 그 모습을 뺨에 한가득 바람을 불어넣고 불만 가득한 얼굴로 보는 안느.

=나 지금 무지무지 심술부리고 싶은 기분이야.=

=왜. 그래서 너한테도 흐라스린드에서 손에 넣은 고급 채소를 곁들인 황금 버섯 스테이크 만들어줬잖아.=

=그건 맛있었지만! 지금까지 먹어본 요리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그래도 므롤렌 스테이크…… 나도 먹어보고 싶었어…….=

입가심 차를 두 손으로 쥔 채 울상을 짓는 안느의 얼굴에 이실리테는 후후, 짓궂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아쉽지만 본인 개별의 선택이었잖아? 네가 선택한 일이니까 감수해야…… 꺄아!=

=에이씨! 그건 진짜 못 참겠다!=

와락 그녀를 덮쳐서는 몸으로 깔아뭉개며 몸 곳곳을 꼬집고 간지럽히는 안느.

그리고 그런 공격을 막아내면서 빠져나가려고 애쓰는 이실리테.

두 아가씨의 장난 반, 진심 반의 모습을 작게 웃으며 지켜보던 환인은 커피를 들고 일어나 왜건으로 다가갔다.

왜건 근처에서 앉아 잠잘 준비를 하고 있던 쿠핀이 먼저 환인을 향해 쿠우 우는데, 바로 옆에 쿠르티가 있지만 비상의 모습이 안 보인다.

어딜 갔나 했더니, 왜건 안에서 알을 품고 있는 쿠라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알을 품는 동료는 지켜야 할 대상이라는 걸 본능으로 알고 있는 걸까.

뀨으?

자신을 향해 왜 그러냐고 묻는 비상에게 환인은 고개를 작게 저었다.

“자리가 괜찮은지 자기 전에 확인하러 온 것뿐이다.”

쀼으~

괜찮다고 쿠라 대신 대답하는 비상과 그런 비상의 등에 머리를 올리고 반쯤 잠들어있는 쿠라.

환인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깊은 밤, 타닥거리며 타오르는 모닥불 소리와 여자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섞여 밤하늘에 울려 퍼진다.

어쩐지 마음이 푸근해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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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소송을 부르는 마☆법의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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