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521화 (521/813)

515+ 흐라스린드의 혼재

* * * *

=뭐라고……?=

=성자님께서 바닥에는 더한 바닥이 있는 법이라고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흐라스린드 영주성의 집사장, 현 영주의 직계혈족으로 성의 대소사를 도맡아 처리하는 나이겔=드마레는 검치호 기사단의 상급 기사가 가져온 소식에 깃펜을 손에서 떨어트릴 뻔했을 정도로 놀랐다.

바닥에는 더한 바닥이 있다니, 소름이 손끝에서 어깨를 지나 목덜미를 사납게 난도질하는 기분이다.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기에 그런 말을…… 영도의 정보 수집력이 이토록 뛰어나다는 말인가?

=…….=

그럴 리 없다. 지난 4년간 영혼사가 도시를 방문한 것은 공개적으로 3회. 그 영혼사들은 하급 거리에서 사나흘 간 머무르다 떠났었다.

성의 소식은 접하려야 접할 수 없었을 테니 영도에 전해지지 않았을 테고, 무직자를 보내 염탐했다 하여도 마찬가지다.

내성의 인력은 4년 동안 한 명도 충당하지 않았으며 외성의 빈자리도 최소 3대 이상 상급 거리에서 살아온, 신원과 성장 배경이 확실한 이들로 채워 넣었으니까.

나이겔은 소문으로 전해진 성제의 얼굴을 떠올리며 으음, 침음을 흘렸다.

‘그렇다면 성제라는 남자의 정보 수집과 분석 능력이 출중하다는 뜻이군.’

영주성 안의 이야기가 밖으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입단속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곳에서 도는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

그것들과 막대한 이적을 발현할 정도로 영혼술이 뛰어나니 영혼과 대화도 손쉬울 터, 작정한다면 영주성 내 사정을 알아낼 수 있겠지.

그렇다 하여도 바닥에 더한 바닥이 있다는 전언은 이해가 안 간다. ‘그 일’을 알지 않는 한 할 수 없는 발언인데.

‘……성제도 혹시 고귀한 핏줄인가.’

동류는 동류를 알아본다고 한다. 만약 그도 고귀한 핏줄 출신이라면 내성에서 벌어진 일을 꿰뚫어 봤을 수도…….

호랑이 머리의 나이겔 집사장은 절 정돈한 자신의 갈기를 쓸어내리며 심유한 눈빛을 띠었다가 집무용 책상 위의 황동 탁상 벨을 들어 살짝 흔들었다.

딸랑딸랑- 맑고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자리에서 일어난 나이겔이 외투를 걸치고 있으니 집사복을 입은 호랑이 귀 여자가 들어온다.

=볼일이 있어 잠시 외출하겠다. 이 서류들은 각 부서에 보내고 오는 서류는 받아서 책상 위에 올려놓도록.=

결재해놓은 서류를 챙겨 여집사에게 건네준 나이겔은 소식을 가져온 가르파테를 돌아보며 말했다.

=가르파테 경, 잠시 준비한 뒤 성제님을 뵈러 가겠네. 그때 성제님이 있으신 곳으로 안내해주게.=

=예, 집사장님.=

* * * *

따스한 물속에서 몸을 섞는 것은 환인에게 있어 육체적인 쾌감보다는 정신적인 충족감이 더 큰 행위다.

크게 움직이면 물이 출렁이며 몸을 반강제로 흔들고, 뜨거운 물이 피부를 뒤덮는 감각은 결합했을 때의 속살이 주는 따스함을 흐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으응, 주인님……. 하으앗…….=

3명은 들어와도 괜찮을 만큼 커다란 욕조 안에서 이실리테와 마주 앉은 환인은 그녀의 젖무덤이 자신의 가슴팍을 지그시 누르는 걸 느끼며 후우,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물풍선처럼 커다랗고 보드라운 살덩어리가 가슴을 꾸욱 누르는 것도 기분 좋지만, 첨단의 딱딱한 유실이 가슴을 살살 긁는 것도 가슴이 제법 간질거린다.

=하흑, 아……. 으응, 너무 깊…어요, 주인님. 하아…….=

자신의 귓가에 대고 할딱이는 이실리테의 허리를 한층 강하게 끌어안는다. 그와 함께 삽입이 조금 더 깊어지며 그녀의 질이 또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촉촉하기 그지없는 속살이 문어 빨판처럼 빈틈없이, 그리고 끈끈하게 휘감기는 느낌.

가만히 있어도 스스로 움직이는 이실리테의 보지 덕분에 쾌감이 꾸준히 적립되고 있고, 그녀도 제멋대로 움직이는 자신의 보지 탓에 허리가 계속 떨릴 정도의 쾌감을 느끼는 중이다.

그녀의 반응을 느긋하게 감상하던 환인은 손을 그녀의 엉덩이 사이로 밀어 넣어 중지로 애널 주변을 간지럽히듯 살짝 문질렀다.

=힛, 거긴 더러운 곳인데… 하앗, 응앗!=

조금 풀어져 있던 엉덩이 구멍이 흠칫 놀란 것처럼 바짝 수축하고, 보지 또한 잔뜩 움츠러들며 속에 품은 자지를 강하게 조인다.

살살 엉덩이 구멍 근처를 계속 문지르니 톡톡 튀는 한숨과 함께 보지 전체가 부르르 떨리고 허리와 허벅지가 흠칫움찔, 제어력을 잃고 멋대로 튀기 시작한다.

그 재미있는 반응에 계속해서 애널을 문지르고 있자니 이실리테의 한숨이 점차 교성으로 변해가며 스스로 허리를 들었다 내리고 아랫도리를 요리조리 놀리기 시작했다.

=흐아, 주인… 님! 주인님…! 하아, 아앗, 으흑!=

누가 봐도 애널 입구를 만져져 강하게 흥분한 모습.

애널 섹스와는 전혀 맞지 않는 몸뚱이지만 입구를 자극하는 것만큼은 굉장히 좋아하는 반응이다.

그 움직임에 강철처럼 딱딱해진 환인의 자지가 그녀의 깊은 곳을 마구 휘젓고 잔잔하던 수면도 요동치기 시작했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았다.

=……끅, 어윽. 쥬…힌니힘……!=

환인의 아랫배와 자지 뿌리 사이에 끼어 이리저리 뭉개지던 클리에서 발생하는 쾌감, 애널 주변을 자극받는 쾌감, 뱃속이 엉망진창으로 헤집어지는 쾌감에 이실리테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간다.

호박색 눈동자는 절반 넘게 눈꺼풀 위로 사라졌고 요분질도 점점 뻣뻣해지고 있다.

질벽도 수축 작용을 일으키며 뻑뻑해져 질압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중.

환인도 그녀의 보지가 전해주는 쾌감을 더 버티기 힘들었다.

억지로 괄약근에 힘을 준 채 버티고 있지만,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처럼 뱃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환인은 그녀의 고개가 점차 뒤로 젖혀져 가는 것을 보다가 살짝 벌어진 연분홍색 입술 사이로 하얀 치아와 핑크색 혀를 발견하곤 입술을 겹쳤다.

=응웁. 우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혀에 매달려오는 이실리테의 키스를 받아내며 중지 한마디를 살짝 엉덩이 구멍에 밀어 넣었다.

=……!!=

꽈아악- 손가락이 바이스에 찝힌 듯한 감각과 함께 스위치를 넣은 것처럼 이실리테의 척추가 똑바로 서더니 보지가 한층 더 문어 다리처럼 꿈틀거리며 환인의 자지를 휘감고 강하게 조인다.

움직이기도 어려울 만큼 사납게 조여대는 속살에 쾌감이 무차별로 적립되며 신음이 절로 흘러나온다.

사정할거면 지금이다.

괄약근에 힘을 푼 환인은 그녀의 자궁 입구에 귀두를 맞춘 뒤 정액을 힘차게 분출했다.

=으흐으으응……!!=

자궁 입구가 뜨거운 정액으로 인해 강제로 벌려지는 느낌.

이실리테는 가장 좋아하는 감각에 줄곧 약하게 이어지던 오르가슴이 펑, 하고 폭발하는 것을 느끼며 그토록 좋아하는 주인님과 키스도 풀고 그의 목을 꽉 끌어안은 채 온몸을 푸들푸들 떨었다.

=…힉! 흐힉…! 힛♡ 뜨거운 게, 들어오고 있어요옷……♡=

너무 기쁘고 행복해서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마음 같아서는 자궁 입구를 활짝 열어 주인님의 정액을 모두 자궁에 담고 싶은 기분.

환인도 뱃속을 쥐어짜는 듯한 사정의 쾌감에 잇소리를 내면서 그녀의 뱃속 깊은 곳에 정액을 뿌리기 위해 더더욱 허리를 들이밀고, 이실리테는 뱃속 깊은 곳에 그의 정액을 받아내기 위해 허리를 더더욱 내리는 상황이 이어진다.

누가 봐도 서로를 바라고 서로를 아끼는 모습.

“…….”

=…….=

성기를 결합한 채로 한참 동안 서로 껴안고 떨기만 하던 두 사람은 제법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서로를 껴안은 채 떨어지지 않았다.

가슴을 채우는 만족감이 떨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실에 들어온 지도 1시간이 지났다. 슬슬 나가야 할 때.

“조금 부족하지만 지금은 여기까지만 할까.”

=흐으, 네헤에.=

그녀의 반쯤 녹아내린 목소리를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결합을 해제했지만, 놀랍게도 자지가 빠져나오자마자 보지 구멍이 조개처럼 꽉 닫히며 정액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

그렇게 욕조를 나오자마자 이실리테는 아쉬움이 섞인 얼굴로 환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으로 정액과 애액 범벅이 된 그의 자지를 받치며 조금 정신을 차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럼 청소해드릴게요….=

이어 즉시 자지를 입에 물고 펠라 청소를 시작하는 이실리테.

욕실이고 바로 옆에 욕조가 있는 만큼 물로 씻어도 되지만, 이실리테는 자신을 기분 좋게 해준 주인님의 신체를 자신의 입으로 깨끗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기둥과 아래쪽 구슬 주머니에 묻은 정액과 애액을 남김없이 핥고 빨면서 청소한 이실리테는 물로 씻은 것처럼 깨끗해진 자지를 보곤 만족하며 쪽, 요도에 입술을 맞춰주었다.

청순한 여신 같은 이실리테의 자지 키스.

그녀는 물론 안느도, 유르파도 해주는 것이지만 이실리테의 키스에는 유달리 정념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게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이실리테와 함께 몸을 씻던 환인은 제법 예전의 추억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이러고 있으니 예전의 일이 생각나는군.”

환인의 등에 바디 워시 거품을 칠해주던 이실리테가 궁금하다는 듯이 되묻는다.

=예전 일이요?=

“마에스티그 촌락에 도착한 그날 밤, 목욕 시중을 들겠다며 수건 한 장으로 앞만 가린 네가 찾아왔었지.”

=…….=

잠시 생각하던 이실리테는 환인이 언제를 말하는 지 알아차리곤 얼굴을 토마토처럼 빨갛게 붉혔다.

“그때 나는 내 믿음을 사기 위해 굳이 지켜오던 처녀를 줄 필요는 없다고 했었는데, 기억하고 있나.”

처음 환인과 이실리테가 노상에서 만났을 때, 이실리테는 환인에게 음담패설을 던지며 ‘이런 도적년이라 해도 정절은 있어서 속살 맛을 보여주는 건 곤란하다’고 놀렸었다.

마에스티그 촌락의 욕실에서 환인이 그녀에게 한 말의 뜻은 그걸 꼬집는 것이었던 것.

=그, 그건 그냥…… 놀리기 위해서 한 말이었는데…….=

“알고 있었다.”

=알고 계셨던 거예요?!=

“줄곧 내 눈치를 보며 틈을 노리는데 모를 수가 없지.”

=……!=

환인의 웃음 깃든 이야기에 이실리테는 극심한 부끄러움을 느껴 얼굴을 가렸다가, 약간 원망이 깃든 눈빛으로 환인을 올려다보며 웅얼거렸다.

=주인님 너무하세요……. 그땐 엄청 힘내서 한 거였는데…….=

“그것도 안다. 하지만 그때 널 안았다면 나와 너의 관계는 지금과 달라졌겠지.”

안느와 합류하기 전까지 그 애달프고 애간장이 녹는 마음이 켜켜이 쌓였기에 지금 이런 관계가 될 수 있었다고 환인은 생각했다.

=……그런 걸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

이실리테는 거품이 잔뜩 난 스펀지를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그 말의 뜻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때 주인님께 안겼다면…… 그저 평범한 주인과 하녀 관계가 되었을 뿐이라는 말씀이시지? 그 말은 즉…….

생각의 끝에 도달한 이실리테는 심장이 콩닥거리며 입매가 자꾸만 위로 치솟으려는 것을 억눌렀다.

그냥 사랑한다는 말보다, 좋아한다는 말보다 이런 식의 전달이 더욱 마음에 와닿는다.

심장이 콩닥거리는 리듬에 맞춰 가라앉은 젖꼭지가 다시 딱딱하게 서는 것이 느껴진다.

아래쪽도 징징 울리면서 물이 흘러나와 주인님의 정액과 함께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느낌.

이실리테는 서둘러 바디 워시의 거품으로 가득한 스펀지를 쥐어짜 가슴과 배에 빈틈없이 거품을 칠했다.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환인의 등에 살짝 매달려 거품이 묻은 젖가슴과 배로 환인의 등을 문질러나갔다.

자신의 심장 두근거림이 가슴이 닿은 곳을 통해 주인님에게 전해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환인은 거실에 여자친구들이 모두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안느는 일을 마치고 돌아왔는지 소파에 앉아 백려강이 깎아주는 과일을 먹고 있었고 유르파는 자신의 체질 조사를 위한 검사 항목을 작성 중.

환연은 탁자 위에 올려진 자신의 꽃바구니 침대에서 환인의 손수건을 덮고 요정처럼 잠들어 있다.

“안느, 빨리 다녀왔군.”

소파 빈자리에 앉으며 말하자 안느가 그의 입에 과일을 물려주며 대답했다.

=아리엔네 신관장님이 도령한테 마음의 빚이 제법 되나 보더라. 이야기를 전해주니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지 바로 알아봐 주신다고 했어. 그리고 도령이 잡아다 가둔 왈키스 그놈, 메리아놀 본국으로 호송이 결정됐대.=

“여기서 메리아놀까지 호송한다는 건가.”

=응. 위상력 착취 장치는 본국의 주도 패시지에만 있으니까.=

“……그런 것도 있나.”

매우 직관적인 이름에 환인이 살짝 어이없어하자 안느도 옆머리를 긁적이며 조금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본국에서도 찬반이 꽤 격하게 대립하는 물건이야. 인간성을 무시하고 가축처럼 장치에 묶어놓은 뒤 배상에 필요한 만큼의 위상력을 다짜고짜 추출하는 거니까.=

메리아놀에서는 위상력을 다뤄 물품을 만들어내거나 소재에 주입하는 기술이 발달했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위상력을 제2의 화폐로 취급할 정도.

어떻게 보면 라드세아에서 위상석으로 제작하는 마도구나 마도기와 흡사한데, 차이점은 마도구나 마도기보다 성능이 떨어지지만 그만큼 가격도 낮은 편이라는 것.

그렇다고 성능이 엉망인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평범하게 제작한 물품보다는 품질도, 내구성도, 성능도 제법 뛰어난 편이기에 일상생활에 많이 이용된다고.

=도령도 이제 알겠지만, 위상력은 무한하고 영구하지 않아. 과다하게 위상력을 사용하면 수명이 깎이다 못해 죽을 수도 있고 과하게 위상력을 쓰고 나면 피로감이나 권태감 같은 것도 밀려와.=

“그러니 손해배상을 위해 위상력을 뽑아내는 거겠지.”

=응. 놈이 납치해서 팔아넘기고 죽인 동족의 숫자가 백은 가볍게 넘어가니까 그놈은 아마 남은 평생 목장의 젖소처럼 위상력을 짜이다가 죽을 거야.=

“그 일은 됐다. 그보다 신관장이 잘도 심증만으로 움직이기로 마음먹었군. 아무리 이쪽에 부채 의식이 있다 해도 도시의 주인과 대립할 수도 있는 일을 하는 데에 부담이 적지 않았을 텐데.”

=도령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으니까 그걸 믿고 움직이는 거겠지.=

안느와 대화가 어느 정도 끝을 맺자 이번에는 유르파가 보고해온다.

=자기가 말한 걸 전부 전달했어. 외교통상기관이랑 연결됐는데 즉시 지역순행기관이랑 집행부하고 연계해서 상급 영혼사 두 명을 파견해준대. 도착하는데 8일 정도 걸릴 거라더라.=

“제법 빨리 오는군요.”

영도와 흐라스린드 사이에는 로아팅스 정글 끝단이 위아래로 길게 가로막고 있다.

걸어서 오면 족히 20일이 넘는 거리이고 소규모로 쿠에를 타고 달린다 해도 닷새는 걸릴 거리다. 그런데 8일이라니.

잠시 생각하던 환인은 다시 질문을 넣었다.

“다른 이야기는 없었습니까.”

=대성녀님의 전언이야. 자기 덕분에 영도의 상층부가 한층 더 견고해져서 가용 가능한 전력이 늘었다고 해. 이엘카타 님의 능력도 한층 성장하였으니 영도는 걱정하지 말래.=

“영도에는 대성녀가 계시니 큰 걱정은 안 합니다.”

=응. 이게 다야.=

안느가 또 내미는 과일 조각, 생긴 것은 토마토인데 멜론 맛이 나며 푸딩처럼 부들부들한 식감의 과일을 받아먹은 환인은 창가에 서서 저 멀리 흑회색 절벽을 병풍 삼아 서 있는 영주성을 바라보았다.

가르페테가 돌아간 지도 2시간이 다 되어가는 중이고 그녀가 남긴 기사들은 아직도 여관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

‘성실해 보여서 반응이 즉각 돌아올 거로 생각했는데.’

영주 대리라는 자가 깐깐해서 예상보다 시간이 걸리는 걸까.

시계를 확인한 환인은 점심이 되려면 아직 2시간 정도 남은 것을 확인하고 여자친구들에게 말했다.

“점심은 어제 갔었던 레스토랑에서 해결하기로 하고, 그때까지 낮잠을 자두도록 하지. 당장 오늘 밤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영주성의 혼재?=

“그래. 아니면 오후에라도 도시를 떠날 수도 있고.”

어쨌든 오늘 안에 결론이 날 거라고 대답하니 안느가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내가 거실에서 불침번을 설 테니까, 도령이랑은 들어가서 눈 좀 붙여둬.=

명상 겸 불침번 역할을 맡으려 했던 환인은 먼저 선수를 친 안느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부탁하지.”

그렇게 각자의 방에서 2시간가량 낮잠을 자고 일어났음에도 가르페테가 돌아오지 않았기에 환인은 여자친구들과 함께 차원 방랑자의 흔적이 진하게 묻어나는 레스토랑을 다시 방문했다.

여관에서 나섰을 때 길거리와 골목 사이사이에서 이쪽을 관찰 중이던 기사 세 명이 따라붙었지만, 환인은 신경 쓰지 않고 여자친구들과 다시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그리고 차원 방랑자의 흔적을 다시금 확신했다.

=으음~? 어제 먹었던 것보다 조금 못한 느낌이네. 이슬이는 어떻게 생각해?=

=그러게……. 어제 요리는 음식 재료의 맛과 소스의 맛이 완벽하게 하나인 느낌이었는데 오늘은 따로따로 노는 느낌이야.=

=으~. 이 샐러드도 이상해요. 고기에 어울릴 거 같은 소스가 채소에 너무 많이 뿌려져 있어…….=

=어제랑 오늘이랑 음식을 다른 사람이 만든 느낌이지?=

그렇지 않다. 환연을 통해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었다는 걸 확인했다.

맛으로 따지자면 니오네브레스의 평범한 음식점보다 확실히 낫다.

그녀들의 입맛은 이실리테의 요리 솜씨 덕분에 상향 평준화되어있어 이런 평가가 나오는 것이지, 다른 테이블에 자리한 손님들, 옷차림이 고급인 사람들은 다들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어째서 이런 차이가 나는지 알 거 같군.”

환인의 이야기에 유르파가 눈을 살짝 크게 뜨며 물었다.

=어째서니?=

“어제 먹은 요리는 레시피를 전수받아서 만든 것일 겁니다. 원리는 모른 채 수백, 수천 번 반복 연습을 통해 만드는 법'만' 손에 익은 거겠지요.”

=오늘 나온 음식은 그 지식을 어중간하게 재해석해서 이리저리 오려 붙인 거란 말이네…….=

=아! 확실히 그런 느낌이에요.=

환연을 통해 확인한 바로는 어제 음식을 만들 때는 중간중간 멈춤 없이, 어색한 동작 없이 매끄럽게 요리를 해서 내놓았었다.

하지만 오늘은 주방 동선도 난잡했고 재료 다듬기에서 플레이팅까지, 초보가 고수의 레시피를 보고 따라 하는 느낌이 역력했다.

=차원 방랑자 출신의 요리사가 이곳 주방장에게 레시피를 전해준 뒤에 모종의 이유로 사라졌다는 거구나.=

“…….”

아직 의문은 남는다.

이만한 요릴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전문 요리사, 셰프 수준의 실력자일 거다. 그런 사람이 이런 곳에서 일한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서 일하게 된 경위는 어떠한 걸까.

조금 부족한 점심 식사를 끝내고 여관으로 돌아온 환인은 가르파테가 로비에서 처음 보는 인호虎족 남자와 함께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인호족 남자가 몸에 걸친 검은색과 회색의 정장은 절대 싸구려가 아닌 고급 소재의 옷. 주황색과 검은색, 하얀색으로 이루어진 호랑이 머리의 체모와 손에 난 발톱, 털 또한 타인의 손길이 닿은 것처럼 깔끔하게 트리밍되어있다.

마지막으로 서구의 근현대 신사처럼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어깨를 편 자세에서 묻어나는 품위. 거기에서 그의 정체를 추리한 환인은 이쪽으로 다가오는 인호족 남자와 마주 섰다.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숲의 도시 흐라스린드의 진정한 주인이신 크로알 돔드 흐라스린드 영주님을 대리하여 도시의 정사를 맡은 영주성의 총집사장, 나이겔 드마레입니다.=

예법에 어긋나지 않을 만큼만 허리를 살짝 숙이며 인사한 나이겔에게 환인도 기사식 경례처럼 손만 가슴에 올려 살짝 고개 숙이며 대응한다.

“영도에서 나와 성불행을 이어가는 환인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나이겔의 시선이 환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순식간에 스캔하고, 그런 나이겔을 우묵한 시선으로 담담히 응시하는 환인.

이번에는 환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는 대화를 나누기에 적당하지 않군요. 제가 머무는 객실로 가시겠습니까.”

=배려에 감사드리겠습니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 환인은 앞서 걸음을 옮겼고 나이겔은 가르파테에게 로비에서 기다리란 지시를 내린 뒤 환인의 뒤를 느긋하게 따라나섰다.

그 태도에서 환인은 나이겔이 전형적인 호족의 사고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국수주의에 선민사상, 높은 프라이드.

이곳 루크랑의 국가 라드세아에서 도시의 내정과 핵심 운용 자리는 일반적으로 영주의 혈족이 맡는다.

영지의 운용에 근본도 없는 외부인을 들여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친인척 경영을 위주로 도시의 권력을 영주 가문이 모두 틀어쥐는 식이다.

그것을 대입해본다면 영주성의 총집사인 나이겔=드마레는 최소 현 영주의 삼촌에서 사촌 사이의 인물.

‘그런 인물이 직접 찾아오다니. 가늠이 잘 안 되는군.’

성 내부에서 보여주기 싫은 게 있어 직접 찾아온 건가? 그러기에는 처음에 성으로 초대하려 했다는 사실이 걸린다.

자신들을 초대할 이유의 수정이 불가능한 위치여서 당사자가 직접 찾아와 양해를 구하려 한다고 보기에는 태도가 너무 꼿꼿하다.

‘상관 없나.’

그렇다해서 기본 스탠스가 바뀔 일은 없다. 사과하고 도움을 요청한다면 수락, 헛소리를 늘어놓는다면 즉시 퇴거시킨 뒤 출발.

객실로 돌아온 환인은 3인용 차 탁자의 자리 하나에 앉으며 나이겔에게는 맞은편 자리를 권했다.

그리고 상대의 심적 동요를 자극하기 위해 이번에도 환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기사 여럿을 보내 반강제적으로 초대하려 하신 드마레 총집사장께서 이렇게 직접 찾아오신 이유가 궁금하군요.”

담담하지만 위압감이 넘치는 목소리와, 같은 눈높이이지만 어째서인지 높은 데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한 환인의 시선에 나이겔의 눈빛이 한순간 긴장을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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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후기]

내일은 휴재입니다.

어떻게든 비축을 마련해보려했지만 실패했네요!

데헷 (๑ゝڡ◕๑)

독자님들 모두 메리 추석!

모레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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