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7화 〉 511 흐라스린드의 이방인
* * *
취조와 재판, 결과는 현대인인 환인이 보기에 어처구니없을 만큼 날림으로 처리되었다.
치안 병영의 책임자는 20명이 넘게 대기 중인 간이 재판장에서 절차를 깡그리 무시, 가장 먼저 재판대에 세운 뒤 후토스토의 말만 듣고 얀슌데에게 장형 20대와 벌금 20금화의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중 벌금 20금화에서 절반은 피해자에게 보상금 명목으로 지급되고 나머지는 도시에 환수된다고.
=형장은 이쪽입니다.=
후토스토의 안내에 따라 형장으로 향하고 있으니 철썩 으악! 철써억 꺄아악! 살이 찢어지는 소리와 사람들의 비명이 아스라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형장으로 향하며 듣기로, 흐라스린드에서 주요 처벌 수단은 장형과 벌금이며 오전부터 해가 질 때까지만 형벌이 진행되기에 자신의 형벌을 받기 전까지는 매일같이 병영을 찾아와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고.
무척이나 불친절한 업무 진행방식이지만, 애초에 친절은 예외로 두는 장소이기에 이상하지는 않다.
도착한 형장에는 장형을 맞기 위해 대기 중인 남자와 여자가 서른이 넘었다.
장형을 맞을 때는 남자·여자 예외 없이 아랫도리를 전부 까서 볼기와 성기를 드러낸 채 맨살에 맞는다.
철써어억!
=끄야아앗!=
쫘아아악!!
=꺄하아악…!!=
형벌을 집행 중인 쪽을 보니 엉덩이가 터지고 찢어져 피가 흘러내린다. 곤장은 이미 피범벅이다.
어두운 안색으로 대기 중인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면 전부 중급 거리의 시민들인데, 여기에 정말 죄를 지어 온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날림 재판을 본다면 억울한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치안 담당관님의 특별 지시다. 이 여자부터 장형을 집행하도록. 대수는 20대다.=
후토스토의 이야기에 대기자들 사이에서 웅성임이 흘러나온다.
=2, 20대? 대체 뭘 했길래 20대나 맞아?=
=20대 다 맞으면 초주검 되겠네…….=
=초주검은 무슨, 죽을 수도 있어.=
=…야. 옷 봐라. 상급 거리 시민이야.=
=그러네? 헹, 뭔지 모르지만 꼬시다. 맞다가 허파에 바람들어 뒈졌으면 좋겠네.=
=쳇. 다 맞고 나가면 회복약으로 바로 치료하겠구만.=
숙덕숙덕, 수군수군.
얀슌데는 바지와 팬티가 벗겨져 30대 외모 같지 않은 힙과 허벅지를 남김없이 드러낸 채 틀에 묶였고, 눈물만 철철 흘리며 그 어떤 변명도, 항명도 하지 않은 채 장형을 맞기 시작했다.
철썩! 철써억!
=끅…! 끄억…!=
처음 두 대는 입을 꾹 다물고 맞았지만 세 대부터는 맞을 때마다 까마귀 우는 소리와 흡사한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한다.
다섯 대부터는 엉덩이가 찢어져 피를 흘리기 시작했으며 일곱대가 되자 곤장에 살점이 조금씩 묻어났다.
그즈음 엉덩이와 사타구니는 피범벅이 되어 성기가 보이지 않을 지경.
그렇게 맞다가 13대에서 얀슌데는 오줌을 지리고 피가 섞인 방귀를 뀌며 기절해버렸는데, 현실과 다르게 물을 끼얹어 깨운 뒤 다시 장형을 진행한 것이 아니라 그대로 남은 7대를 때려 형벌을 끝마쳤다.
재판과 형벌이 진행되는 동안 집에 연락이 갔는지, 형벌이 끝나자마자 남편으로 보이는 인견족 남자가 들어와 환인에게 허리를 깊게 숙여 사죄하곤, 종업원으로 보이는 두 명과 함께 하반신이 피범벅이 된 얀슌데를 챙기고 병영을 나갔다.
그 과정을 묵묵히 지켜본 환인도 여자 친구들과 치안 병영을 빠져나가려 했는데, 벌금이 벌써 수납되었는지 후토스토가 달려와 피해보상금을 직접 환인에게 넘겨주었다.
환인의 옆에서 그걸 전부 지켜본 안느가 작게 중얼거린다.
=뭐, 이 정도면 그럭저럭 인간미 묻어나는 형벌 진행인가?=
=저렇게 엉덩이가 다 터졌는데 인간미가 묻어나는 건가요……?=
=응. 벌금이랑 형벌만 받으면 바로 내보내 주잖아. 좀 별로인 곳은 감옥에 가둬놓고 먹을 것도 잘 안 주고 재판은 질질 끌고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벌을 강하게 하기도 해.=
안느가 들려주는 예시에 백려강의 표정이 어이없어하는 얼굴로 변해간다.
=도시에 인력이 부족하면 벌금을 못 갚을 정도로 강하게 때려서 강제 노역자로 만들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곳은 살아서 들어갔다가 죽어서 나오는 경우가 태반이야.=
=심, 심각하네요.=
=프라버는 어떤데?=
유르파의 질문에 백려강은 으응, 작게 신음을 흘리다 입을 열었다.
=프라버는 조금 복잡해요. 호족과 호족, 호족과 일반인, 일반인과 일반인에 쓰이는 법전이 다 다르고 거기서도 죄의 경중이 나누어지는데 무거운 죄는 진실의 수정으로 유무를 먼저 밝혀요. 그리고 5단계 처벌법을 정해서 시행하는데…….=
벌금 일부는 도시가 거두는 건 같으며 진실의 수정을 쓰면 사용료를 범죄자에게 청구한다.
=수형은 이곳처럼 장형에서부터 책형, 팽형, 묵형, 의형, 월형, 궁형, 거열형, 참수형, 투석형 등 다양해요. 호족은 주로 감금형이 내려지고 벌금을 내면 형벌 기간을 줄여주는 식이에요.=
=그렇게 세세한 걸 보면 도시에 꽤 신경을 많이 쓰는 거구나.=
안면인식장애 후드를 눌러쓰고 대화를 나누는 여자 친구들과 병영을 빠져나온 환인은 하늘이 노을빛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언덕 위에 치안 병영이 있어서일까. 도시 전경이 대강 눈에 들어오는 중에 오른편의 절벽 끝자락, 유독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구역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흐라스린드의 미궁, 또 다른 숲의 미로가 있는 곳이다.
휘이이—
숲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기분 나쁜 서늘함을 품고 몸을 휘감으며 지나간다.
‘이곳의 미궁에 들를 수는 없겠지.’
미궁에 들어가자니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요지가 크다. 흐라스린드 교구의 신관장은 영주성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하지 않게끔 막아주겠다고 했지만 그걸 전부 믿는 것은 순진한 사람 뿐일터.
게다가 내성벽 바깥 거리의 시민들이 뿜어내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제법 크다. 그 크기는 오늘 포고령으로 더더욱 커져가겠지.
살아있는 사람들의 감정이 격렬해지고 어둠에 물들면 영혼 또한 거기에 영향을 받으니…….
‘오늘 밤 중급과 하급 거리를 둘러보며 영혼만 확인한 뒤 떠나야겠군.’
원래는 미궁에서 돈벌이를 좀 할까 했지만, 조직 하나를 터트리며 챙긴 부수입(500금화)에 유르파가 어제 마도구를 판매한 대금도 상당(147금화)하니 이곳 미궁은 건너뛴다.
결정을 내린 환인은 어느 도시가 형벌적으로 최악일까 하는 주제를 두고 대화하는 여자 친구들을 불렀다.
“오는 길에 제법 괜찮아 보이는 레스토랑이 있던데, 오늘 저녁은 거기서 먹을까.”
=오! 외식하는 거야? 난 찬성.=
=나도 좋아. 이실리테 아가씨도 때로는 편하게 식사를 해야지.=
=저는 주인님을 따를게요.=
=저도 환인 님이 고르시는 게 좋아요.=
“찬성 2표와 중립 2표로군. 그러면 저녁은 레스토랑에서 먹도록 하고 밤에는 성불행을 진행하지. 아침이 되면 흐라스린드를 뜬다.”
2박 3일의 짧은 체류지만 이래저래 도시의 뒷골목과 영주, 여기에 플뢰족과 교단까지 얽혀버렸다.
도시의 서민들 또한 감정이 격해져 있으니 오래 머무를수록 귀찮은 일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진다.
이제는 그걸 잘 알게 된 여자들은 환인의 결정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졸졸 뒤따랐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안느는 매우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차림표에 생선 요리 가짓수도 많고 신선한 생선 요리가 나온다 했더니, 미궁 안에 거대 호수가 있었구나.=
=넌 생선 요리 입에도 못 댔잖아.=
=이슬이가 맛있게 먹는 걸 보니까 내가 안 먹어도 배부르던걸?=
=……너도 참.=
환인이 발견한 레스토랑은 호족들도 찾을법한 고급이었다. 인테리어도, 가격도, 맛도 말이다.
그 때문에 입장 시에도 드레스코드가 필요했지만, 사람들이 안 보는 데서 슬쩍 아우라 은폐 마도구를 착용하고 후드 망토를 벗은 그녀들의 외모는 전투복도 예식복이 될 정도였기에 입장은 프리패스.
평상시 접할 수 있는 요리와 전혀 다른, 다종다양한 요리를 맛본 여자들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워했다.
=응, 정말 맛있었어. 재료도 신선했지만, 소스의 맛이 그중에서도 특별한 느낌? 한입 먹으니까 여러 가지 맛이 입안에서 막 휘몰아치는데…… 휴우.=
=그치? 양이 조금 적은 게 아쉽더라니까. 레스토랑은 양이 아니라 맛으로 먹는 곳이라지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어.=
=네에. 성에서 먹던 것보다 더 맛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
환인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신경 쓰였을까. 환연이 그의 뺨을 작은 손으로 쓸어보면서 묻는다.
「왜 아무 말도 안 해? 음식 맛없었어?」
“아니. 맛있었다. 현실의 유명 가이드에 등재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지.”
「그런데 표정은 그렇지 않은데?」
“라드세아의 식문화를 폄훼할 생각은 없지만, 이 나라의 조미료와 향신료는 지나치게 단맛과 짠맛에 치중되어있다. 하지만 방금 레스토랑은 쓴맛과 신맛, 감칠맛도 쓰고 있었으며 촉각으로 분류되는 매운맛과 떫은맛까지 사용하더군.”
=……?=
그랬니?
아니, 나는 잘… 이슬이 너는 알았어?
난 쓴맛이랑 신맛까지는 느꼈는데…… 매운맛이랑 떫은맛은 촉각이라곤 생각도 못 했어.
고개를 갸웃거린 유르파가 자신이 생각한 게 맞는지 확인 삼아 물었다.
=그러니까…… 자기 말은 저 레스토랑도 차원 방랑자의 손길이 닿았다는 말이니?=
“예. 프랑스 요리 느낌이 강하더군요.”
프랑스 고급 요리의 특징이라면 물을 넣어 끓인 수프나 스튜 등은 없으며 버터와 크림이 많이 들어가고 과실주가 곁들여 나오며 기름이 아낌없이 사용된다는 점이다.
또한 해물이 고급 식재로 취급되며 해초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점바점,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할 수 있지만, 환인이 먹어보았던 프랑스 요리 전문점의 느낌과 흡사한 게 사실이었다. 소스가 무척 인상적일 정도로 맛있다는 점 같은 것 말이다.
=이런 도시에 차원 방랑자의 흔적이 둘씩이나 있을 수 있나…?=
환인의 이야기를 들은 여자들은 뒤돌아서 성황 중인 것처럼 환한 빛이 흘러나오는 레스토랑을 보았지만, 환인이 멈추지 않고 걸어가는 걸 보곤 황급히 뒤를 쫓았다.
뭔가 여러모로 의아함을 자극하는 도시다.
그렇게 여관으로 돌아온 환인 일행은 곧장 도시를 떠날 채비를 시작했는데, 언제 도시를 뜰지 모르는 환인의 활동 특성상 어젯밤 그가 외출했을 때 이실리테가 대강 준비를 끝마쳐놓았기 때문에 준비는 금방 끝났다.
“이번 성불행의 목적은 혼옥 계약을 할 만한 영혼을 찾는 거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말로 설득할 수 있는 영혼은 그 자리에서 성불시키고, 바램과 한이 큰 영혼만 인도할 생각이니 참고해라.”
=네, 주인님.=
=응. 위상력 은폐 마도구는 어떻게 해? 계속 착용하고 있을까?=
“풀고 가지.”
아까 이십인장이 왔을 때 그녀들의 아우라를 봤었지만,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었다. 그걸 보면 영혼 기사인 그녀들의 이름까진 널리 퍼지지 않았다는 거겠지.
자신들이 지나친 뒤 이름이 알려지는 것은 상관없다.
외모를 바꾸어주는 마도구를 착용 해제한 환인은 회색 후드 망토를 쓰고 환연에게 여관 주변의 상황을 질문했다.
감시자는 없는지, 거동 수상자는 안 보이는지.
「개나 고양이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아.」
“그래. 그럼 창문으로 나간다.”
환인은 자기 자신에게 중급 강령을 건 뒤 몸도 가볍게 여관을 나와 건너편 건물의 지붕으로 뛰어내린 뒤 내성벽 쪽을 향해 달렸다.
“흡.”
그리고 내성벽이 가까이 왔을 때, 작은 기합과 함께 방벽 패널을 작은 발판처럼 생성, 여섯 개를 만들어 바람처럼 밟고 내성벽을 올랐다.
그의 뒤를 따라 여자들도 제각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성벽의 위에 내려선다.
이실리테는 매우 작게 줄인 빛의 검을 밟고, 안느는 가벼운 도약에 이어 갈고리를 던져 벽에 걸고 그걸 잡아 2단 뛰기로, 유르파와 백려강은 바람으로.
“내려가지.”
저 멀리 외성벽 위로 희미한 마력 방호벽이 눈에 들어오지만, 내성의 방호벽은 침공이 있지 않은 한 발동하지 않기에 환인 일행은 아무런 문제 없이 성벽을 뛰어넘어 빈민가 느낌이 물씬 풍기기 시작하는 중급 거리의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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