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501화 (501/813)

〈 501화 〉 495 영혼과 정령

* * *

쏴아아아아—…….

환인 일행이 마차를 세워둔 떡갈나무는 저 멀리 로아팅스 정글 초입이 보이는 들판에 홀로 우뚝 선, 수령 187년의 고목이었다.

겨울이라지만 적도 부근이기에 이파리가 푸르고 넓어 떨어지는 비를 제법 잘 막아준다.

톡, 토독.

물방울이 떨어지는 나무 아래. 유르파제? 별빛 로브 드레스를 입은 백려강이 손가락을 꼼질거리다가 배시시 웃는다.

「에헤헤……. 조, 조금 긴장되네요.」

그 모습은 말 그대로 한 마리 작은 파랑새 같았다.

착하고 순둥순둥해서 새장 속에 가두어놓아도 주인을 위해 쪼로롱 노래를 불러줄 것 같은 느낌의 작은 새.

그러나 지구의 파랑새는 그 성격이 까칠하기 그지없다. 조류계의 깡패라고 불리는 까치마저도 한 수 접어줄 정도.

만약 그녀가 지구의 파랑새 성격에 반만이라도 닮았다면 자신과 그녀는 만날 일이 없었겠지.

거기다 그녀가 해본 섹스는 여태껏 다른 여자의 몸에 빙의되어 유사 체험을 해본 것뿐이다. 비록 영혼이라지만 본신으로 하는 것은 처음인 상황이기에 그녀가 느끼는 긴장감과 부담감이 실시간으로 전해져오고 있다.

환인은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살짝 어루만졌다.

얼굴이 너무 작아 환인의 한 손으로 머리가 전부 가려지다 보니 그의 손에 뺨을 얹은 게 아니라 머리를 살짝 기대고 있는 모양새가 나온다.

“그 긴장에는 알지 못하는 작용과 현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비중이 작지 않겠지.”

「네에…….」

백려강도 영도에서 환인을 따라 기록실과 서고를 들락거리며 많은 책을 보고 읽었다.

하지만 영혼과 영혼술보다 세계정세와 플라비우스의 나라인 히스론드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보았기에 영혼 쪽에 관한 지식은 얕은 편.

환인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이해하기 쉽도록 핵심만 요약해서 알려주었다.

“영혼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의 99%는 영기다. 현재 영도의 주류 가설은 생전의 영기 크기로 사후 영혼의 힘이 정해진다는 설이지.”

안느 정도로 영기가 강한 인물은 청령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악령이나 혼재가 될 가능성이 큰 사람도 영기가 크고 강한 인물이다.

그 외에도 영기가 강하면 죽은 뒤 무자각 상태의 기간이 줄어든다.

이 무자각 상태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아! 제가 죽고 첨탑 꼭대기에서 정신을 차린 것도…….」

“그래. 무자각 상태가 끝나 이지를 자각한 거지. 그리고 영기가 약할수록 무자각 기간에 성불을 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저, 그럼 제가 알몸이 된 이유도 영기의 강약과 관련이 있나요?」

“아니. 그건 백려강 네가 야한 여자라서 그런 거지.”

「엣.」

“영혼도 일종의 각성이 이루어진다. 대표적인 각성 사례가 혼재화, 악령화지. 청령화도 있고. 그리되면 영혼 본인의 무의식이 영체의 상태에 영향을 주는데…….”

오울링의 학살 사건 피해자인 시더는 자신의 몸 상태 따윈 관심이 없었기에 알몸인 채 팔다리가 검게 물드는 악령화가 진행되었다.

하지만 백려강은 다르다. 백려강의 영체가 알몸이 된 것은 유르파의 종족 변화에 휩쓸렸기 때문이다.

“너는 유르파에게 빙의되어 같이 절정의 쾌락을 겪다가 유르파의 종족 진화에 여파 적지 않게 받았을 거다. 즉 쾌락을 일반 여성들보다 더 강하게 즐기는 변태적인 성향이 무의식에 새겨져 알몸으로…….”

「으으응. 아,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그 부분은 넘어가 주세요오…….」

부끄러웠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자신의 소매를 잡고 애원하는 모습에 잠깐 웃은 환인은 본격적으로 주제에 들어갔다.

“아무튼, 영기의 구성 요소는 너도 알다시피 훈기와 한기다. 그리고 영혼이 되면 생전 육신의 훈기와 한기 비율이 어땠든 간에 한기가 압도적으로 강해지지.”

자신은 살아있는 여성과 관계를 맺을 시에 상대방의 영기, 정확하게는 훈기를 흡수할 수 있다. 그리고 영혼인 여성에게는 한기를 흡수한다.

그렇기에 영혼인 백려강과 교접을 하게 되면 그녀의 영체를 구성하고 있는 한기를 흡수하게 되고, 한기의 흡수량이 많아질 경우 영혼인 백려강은 존재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

「뭐야. 그럼 백려강은 섹스할 때마다 영혼의 소멸을 각오해야 하는 거야?」

하얀 모피 같은 불땃쥐 코트를 어깨에 두른 환연이 나뭇가지 위에서 끼어들었다.

그녀를 잠깐 올려다본 환인은 백려강에게 시선을 돌리며 설명해주었다.

“아니. 그간 부단히 노력한 결과 이제는 영기를 제법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내 영기를 상대에게 흘려줄 수 있을 정도로.”

말한 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백려강에게 손을 뻗어 하얀 볼살과 새의 깃털로 이루어진 귀를 어루만지며 한기를 약간 흘려 넣어준다.

그러자 백려강의 영체가 좀 더 선명해지며 흡사 살아있는 사람처럼 생동감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잠시 자신의 그런 변화를 신기한 듯 보던 백려강은 조금은 곤란하고 조금은 걱정을 드러내며 물었다.

「저…… 그러면 저와 교… 하, 합궁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 않을까요?」

한기를 얻기 위해 영혼과 귀접을 하는 건데 흡수한 한기를 되돌려주면 그 행위에 의미가 없지 않은가.

그녀의 질문에 이걸 말해줘도 될지 짧게 고민한 환인은 근처 나무뿌리에 걸터앉고 그녀에게 여기 앉으라며 자신의 무릎을 두드렸다.

「…….」

머뭇머뭇하다가 환인의 무릎에 살짝 엉덩이 끝부분만 걸치는 백려강.

안느였다면 좋다고 앉으며 목까지 끌어안았을 것이고 이실리테는 무릎에 앉은 뒤 은근슬쩍 자신의 손을 잡고 매만졌을 텐데.

부끄럼을 느끼는 그녀를 품에 깊이 끌어안은 환인은 체중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에 생경함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이러면 뭐 어떻고 저러면 어떤가. 나도 때때로 이유 없이 그녀들을 안고 그녀들도 생리가 다가와 성욕이 일면 잠자리를 유혹하기도 하는데.”

물론 그런 일은 거의 없지만, 그 말의 사실 여부 같은 것은 환인의 무릎에 앉아 그의 가슴에 기대게 된 백려강에게 아무래도 좋은 일이 되었다.

이때까지 연인다운 일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었는데(섹스는 빙의로 한 거니 노카운트) 이러고 있으니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행복이 가슴 속에서 넘쳐흐르는 기분이었던 거다.

「하응…….」

목덜미에 닿은 그의 입술이 사부작거리는 감각에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치닫는다.

영체 상태에서 느끼는 오감은 육신이 있을 때 느끼던 오감과 많이 다르다.

촉감은 여러 가지 질감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만지고 있다는 인식뿐이며 미각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후각은 시각과 연결된 것처럼 그곳에 냄새가 있다는 것만 인지하는 수준이며 유일하게 선명한 것이 청각.

백려강은 육체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오감을 느낄 수 있는지 영도의 기록실에서 나름 찾아보았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얼버무리거나 뭉뚱그려 넘어갈 때면 으레 등장하는 문구, ‘신의 축복이 있어서인 듯하다.’라는 것만 보았을 뿐.

그런데도 좋다. 비록 감각이 불분명하고 뭉뚱그려진데다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사랑하는 님과 이렇게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오감을 넘어선 육감이 만족하는 기분.

꾸욱, 그의 손에 젖가슴이 쥐어진 백려강이 짧게 신음을 흘리다 수줍게 말했다.

「느낌이 이상해요…….」

“어떻게 이상하지.”

「…모르겠어요. 설명하려 해도 단어가 생각 안 나서…….」

“기분 나쁘거나 괴로운 느낌은 없는 건가.”

「네헷. 기분이, 너무 좋아서…… 으으응.」

“좋다고 하니 안심이 되는군.”

그리고 찾아온 키스에 백려강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언제고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살아있을 적 여선생에게 배운 방중술을 열심히 연습했었는데, 역시 연습과 실전은 다르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삐— 하는 이명이 머리를 가득 채워서 다른 생각을 방해하는 느낌.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백려강은 환인의 목에 자연스레 팔을 감고 그의 입맞춤을 적극적으로 갈구했다.

수줍게 움츠러들며 수동적인 태도를 좋아하는 남자도 있지만, 그녀가 보기에 환인은 아니었다. 그는 수동적인 여자보다 능동적인 여자를 좀 더 좋아한다.

「흐응…. 으읍…….」

입 안으로 혀가 들어오는 느낌, 이어서 자신의 입안을 탐색하는 감각에 백려강은 자신이 그 어떤 더러움도 없는 영혼 상태라는데 감사함을 느꼈다.

만약 살아있는 육체였다면 이런 순간이 올 거라 예상을 못 했기에 청결에 조금 신경이 쓰였을 테니까.

게다가 숨을 쉴 필요가 없는 영체여서 그의 얼굴에 콧김을 낼 걱정 없이 마음껏 그의 혀를 탐한다.

그렇게 키스를 나누다 보니 무릎과 허벅지가 간지러워졌다.

여자의 본능으로 환인이 로브 드레스 자락을 끌어 올리는 걸 알아차린 백려강은 그가 손을 넣기 쉽도록 허벅지만 살짝 벌려놓았다.

남자들은 이렇게 직접 탐험하는 것을 즐긴다고 배웠으니까.

남자가 몸을 만지고 옷자락을 더듬을 때 여자가 움직여도 되는 것은 복잡한 옷을 벗기기 쉽도록 도와줄 때뿐.

그리고 이미 그의 손길에 점령당한 가슴을 살짝 내밀며 그가 더 만지기 쉽도록 자세를 고친다.

「응읏!」

효과는 당장에 나타났다.

불시에 유두를 꼬집혔던 백려강은 통각이 없는 걸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식상한 표현이지만, 이상한 감각이었으니까.

이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한동안 유두만 괴롭힘당한 백려강은 작게 어깨를 들썩이다가 그의 품에 좀 더 깊이 안겼다.

어느샌가 로브 드레스의 자락이 허벅지 위로 올라왔고, 환인의 손이 허벅지 사이로 침투하다 치골에 손가락이 닿았기 때문.

한 치만 더 들어오면 보지가 그의 손에 닿는다는 생각에 백려강의 머릿속이 다시금 하얘졌다.

동시에 강하게 흥분했다. 드디어 환인 님의 손이 내 그곳에……!

「응! 하아잉……. 몸이, 정말 이상한 느낌이에요…….」

유두를 꼬집히며 음핵을 만져지는 느낌에 짧게 신음을 흘리며 중얼거리자 그가 물어왔다.

“어떤 느낌이지.”

「저는 영체 상태인데…… 어째서인지 음핵이 만져지는 느낌이랑 쾌감이… 약하지만 느껴져요…….」

“흠. 빙의해서 섹스를 경험한 것이 그런 식으로 나타나는 걸지도 모르겠군.”

그런가? 그런 것보다 그렇게 감질나게 만져주시는 것보다 좀 더 진하게 만져주시면 안 될까요?

「환인 님, 좀 더 안쪽을… 만져주세요. 그 들개 전사단 분들처럼…….」

환인은 피스팅을 요구하는 백려강의 대담함에 잠깐 침묵했다가 물었다.

“거칠고 험한 짓인데 그래도 괜찮겠나.”

환인의 질문에 조금 창피해졌지만, 백려강은 작은 목소리로 솔직하게 대답했다.

「사실…… 그런 건 제 몸으로 먼저 해주셨으면 했어요.」

“그렇군. 하지만 내 여자의 몸에다 피스팅을 하는 취미는 없으니 그 요청은 접어두도록 하지.”

「…….」

내, 내 여자……. 이제는 못 참아요.

환인은 대담하게 매달려오며 자신의 목, 뺨, 귀를 애무하는 백려강을 받아주면서 그녀의 목 뒤를 가로지르는 어깨끈을 풀기 시작했다.

조인족이나 플라비우스 족을 위해 디자인된 옷들은 대부분 등 쪽이 훤히 트여있다. 날갯짓에 거치적거리지 않도록 디자인하다 보니 모든 옷이 오픈 백 스타일이었던 것.

다만 백려강의 푸른색 별빛 로브 드레스는 그녀의 체형에 완벽하게 맞춘 수제작이었기에 등을 완벽하게 가리는 대신 옷을 벗기는 것도 조금 복잡해 손이 많이 간다.

그냥 힘을 줘서 로브를 통째로 잡아당기면 영체가 흩어지며 옷과 함께 분리된다.

그러나 영체가 흩어지면 상당한 영적 고통을 수반하기에 환인은 천천히 그녀의 등 단추를 풀어나갔다.

그렇게 단추를 모두 풀고 끈도 푼 뒤 어깨에서부터 푸른색 로브 드레스를 끌어 내리니, 하얀 어깨와 함께 안느와 비슷한 크기의 젖무덤이 한차례 출렁이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물리력이 거의 없다시피 한 영체다. 로브 드레스만으로도 간신히 부하의 영역을 빗겨 나가 있기에 속옷은 당연히 없는 상태.

환인은 발기한 것처럼 꼿꼿하게 서 있는 분홍색 유두를 짧게 감상하다가 덥석, 입에 물었다.

「하아앙…….」

‘조금 심심하군.’

다른 여자친구들은 각자의 체취와 맛이 있기에 유두를 빨면서 괴롭히는 재미가 있었는데 그녀의 유두는 맛도 향도 없어 심심하다는 감상이 크다.

환인은 예의상 그녀의 유두를 좀 더 빨고 깨물며 놀다가 잠깐 비에 젖은 땅을 확인하곤 그녀에게 제안했다.

“이대로는 로브 드레스가 더러워지겠군. 벗을까.”

=네…….=

몸을 살짝 띄워 스스로 로브 드레스를 벗는 백려강. 영체라서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라 순식간에 나신이 되어버린다.

환인은 그녀의 로브 드레스를 챙겨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고 그녀의 나신을 천천히 매만지기 시작했다.

이미 몇 번이고 본 나신이지만, 다시 보아도 완벽하다.

체형 자체는 이실리테와 비슷하게 슬래머 느낌이지만, 이실리테보다 가슴이 작아 허리와 골반이 슬랜더의 특징을 더 뚜렷하게 주장하는 몸매다.

환인은 그녀의 몸 곳곳을 매만지며 애무했다.

가녀린 팔과 흠 하나 없이 매끈한 겨드랑이를 핥기도 하고 젖가슴을 두 손으로 터트릴 듯 강하게 움켜쥔 채 압력을 받아 더욱 빳빳해진 유두를 잘근잘근 깨물어보기도 한다.

11자 복근이 뚜렷한 이실리테와 다르게 유르파처럼 매끈하고 말랑말랑한 복근도 만져보고 ▽모양의 그녀의 사타구니 안쪽, 조개처럼 완벽하게 입을 다문 조갯살도 매만지고 혀와 입술로 맛보며 놀았다.

전부 몸무게가 없는 데다 공중에 둥둥 떠다닐 수 있는 백려강이어서 앉아서도 가능한 일이었다.

환연이 말을 걸어온 것은 그 순간이었다.

「환인. 해 뜰 때까지 1시간도 안 남았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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