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488화 (488/813)

〈 488화 〉 482 현친왕과 성제

* * *

환인은 설표의 혈통을 이어받아 하얀 모피에 검은 원이 점점이 박힌 트라프로넨과 같이 대회의장을 나왔다.

다른 영성들은 대성녀와 현친왕의 접견을 지켜보기 위해 접견장으로 이동한 상태.

영도의 일곱 영성중 트라프로넨만 빠진 터라 환인은 의례적으로 물었다.

“영성 분들과 함께하지 않으셔도 괜찮으신 겁니까.”

=음? 어어, 난 힘 쓰는 거 외에는 그다지…… 까놓고 말해서 내가 영성이 된 건 자애신님의 실수라고 생각하거든.=

“……예?”

=성제님도 이제 알겠지만, 영혼술의 기본 바탕은 타인을 위한 선행과 봉사야. 혼자서는 뭐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억지로 한다 해도 별로 힘을 내지 못하는 거지. 대신 옆에 누군가가 있으면 그만큼 더 세지잖아?=

“그렇긴 합니다.”

무직자와 신체 능력이 흡사한 영혼사다. 매일같이 명상 수행을 반복하던 몸이 강해봤자 얼마나 강할까. 일반 전투에서도 힘을 거의 발휘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공격 기술이 센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그러한 몸에 강령, 강신해보았자 얼마나 강해질까. 차라리 다른 직업자에게 영혼을 강신시키는 게 훨씬 강해진다.

환인의 동의에 음음, 고개를 끄덕인 트라프로넨은 웃으며 턱 아래 하얀 털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난 별종이란 말이지. 다른 녀석들에게 회옥으로 강신시키는 거보다 내 몸에 강신시키는 게 훨씬 세져. 다른 녀석들의 힘이 대강 1마력 정도 늘어난다고 할 때 나는 5마력 정도? 거의 5배 효율이지.=

“……그건 대단하군요.”

=그렇지? 거기다 영혼과 파장이 맞지 않으면 영혼의 생전 기술은 거의 못써. 하지만 난 대부분의 영혼과 영혼 파장이 일치하는 체질이야. 거기에 몸뚱이가 엄청 튼튼하거든. 거의 3급 전사만큼이나.=

“그래서 직접 몸에 강령한 뒤 싸우시는 겁니까.”

=응. 무엇보다 중요한 게, 난 머리 쓰는 일을 잘 못 해. 흔히 말해서 멍청이란 말이야. 대신 싸우는 거는 기가 막히게 잘하거든. 그래서 지역순행기관장이 된 거야.=

다른 기관은 머리를 굉장히 많이 써야 하는 데 지역순행기관은 막말로 힘 세고 싸움 잘하면 만사 장땡이라서 자기가 제격이라며 으하하 웃는 트라프로넨.

그를 잠깐 바라보던 환인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눈에 트라프로넨 영성은 결코 멍청하지 않아 보입니다.”

=엉?=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멍청이라고 표현하지 못하는 법이지요.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지혜와 판단력이 뛰어난 법, 그런 사람을 멍청하다고 표현하는 건 잘못된 말입니다.”

=크으~. 성제님 사람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특기가 있으시구만? 그렇게 봐줘서 고마워.=

하얀 송곳니가 드러나도록 씨익 웃은 트라프로넨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라드세아에서 제일 똑똑하다는 사람이 온다는데 괜히 표정을 감추지도 못하는 내가 끼어있다가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헛소리하면 곤란하잖아. 그래서 이런 일이 있으면 난 눈치껏 빠져주는 편이야. 뭣보다 성제님은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호감 가는 사내여서 길게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고 말이야.=

“그러셨습니까.”

=그러엄! 성제님은 내 살면서 얼마 보지 못한 남자 중의 남자, 상남자였거든! 크으, 소문으로만 들었는데도 어찌나 남자다웠는지 꼭 한번 보고 싶다고 매일같이 생각했었다고. 그도 그럴 것이 성제님의 영혼 기사들, 전원이 연인이라지? 검희에 정령 기사에 그 드물다는 정현족 아가씨와 청령 아가씨에 도시의 영주와 영애들까지. 보통 남자는 한 명조차 만나기 힘든 여인들을 모두 반하게 만든 남자라니, 상남자이지. 암, 그렇고말고.=

“…….”

율캄 마을에서 만났던 호감 가는 인표족 남자, 스사를 떠올리게 하는 넉살에 환인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겸사겸사 저와 대련도 해보고 말입니다.”

=……티, 티가 많이 났나?=

“예.”

=흐하하! 이거 민망한데? 맞아. 성제님은 저 남쪽의 대영웅 가문의 가주랑 기술 대련에서 이겼다면서? 강신으로 신체를 강화해서 린덴 촌락에 자리 잡은 타락한 바르둘도 잡았고. 그 이야기를 들었더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말이야. 응? 나랑 대련 해줄 거지?=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띤 환인은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엉? 아, 그런 거야? 대련하기 위한 조건이 있는 거였어. 내가 어떡하면 대련해줄 건데?=

“일단 제 영혼 기사 중 안느를 상대해서 이겨보십시오.”

환인의 이야기에 트라프로넨은 입가를 실룩거리며 재미있어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몸을 들썩거렸다.

=그래, 그래. 도장엘 가더라도 관장과 바로 싸워볼 수는 없는 법이지. 좋아, 영혼 기사 아가씨들부터 꺾으란 말이지? 겸사겸사 기술도 겨뤄보고 말이야.=

어깨를 움직이고 몸을 조금씩 비틀기만 하는데도 신체가 전투 상태에 들어가는지 우두둑거리며 뼈가 꺾이는 소리가 난다.

“오직 순수한 신체 능력과 기술로만 상대해야 합니다. 그게 조건입니다.”

=어어. 영혼 기사 아가씨들도 같은 조건인 건가?=

“예. 아마 쉽게 이기진 못할 겁니다. 그녀들은 제 수제자이기도 하니까요.”

=크으~ 그만해. 자꾸 그러면 기대돼서 미칠 거 같잖아.=

신나는 장난감을 선물 받은 어린아이처럼 기뻐서 어쩔 줄 몰라 실실 웃는 트라프로넨의 모습에 환인도 작게 웃었다.

척 봐도 트라프로넨은 헬루멘의 영웅 기사단의 단장이자 헬루멘의 영주, 시하=사이지와 비슷한 실력자로 보였다.

‘무력을 담당하는 기관의 기관장이니 약할 리 없겠지.’

그렇다 해도 여자친구들이 트라프로넨보다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환인의 눈썰미로는 트라프로넨이 이실리테나 안느보다 한 수 뒤처져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승리를 확답할 수 없다.

그녀들은 대인전 경험이 미숙하다. 대인전은 많은 사람과 싸워봐야 실력이 성장하는 법이니까.

자신과 대련이 대부분이고 그 외에는 이실리테와 안느가 서로 대련하는 게 그동안의 전부였으니 이번 트라프로넨과 기술 대련은 그녀들에게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트라프로넨과 대화하며 필령궁을 나온 환인은 딱딱하게 굳어있는 분위기의 필령궁 앞마당을 볼 수 있었다.

‘역시.’

좀 전에 대회의장에서 대성녀는 이렇게 말했었다.

[30분 후 현친왕의 접견이 있을 터이니…….]

이게 뭘 뜻하는 걸까.

친왕이 이쪽의 일정을 알 리 없지만, 늦을까 봐 일찍 나왔다는 핑계를 대고 1시간 일찍 나온다거나 하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많다는 뜻이다.

필령궁의 분위기만 읽을 수 있어도 현재 궁의 상황이라던가 알아낼 것은 많으니까. 아니면 지금처럼 운 좋게 목적으로 하던 인물과 마주친다던가.

=환인 성자님이 아니십니까. 이렇게 뵙게 되다니, 자애신님의 인도가 있으셨던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환인은 부드러운 어조로 포권 같은 포즈를 하며 허리를 숙이는 순백색의 여우머리 남자를 바라보았다.

북극여우처럼 온통 하얀데 두 눈만 흑요석처럼 까만 인호족의 남자. 현친왕으로 불리는 호천명이다.

시선을 돌려 유적 수준의 사찰 앞 공터와 흡사한 앞마당을 살핀다.

스물일곱 영성의 영혼 기사들이 현친왕과 그의 호위인 6급 푸른 늑대족 여전사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고 내정사무기관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호천명 주변에서 당황한 모습으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주인님.=

이실리테는 현친왕과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다가 즉시 필령궁 입구 계단을 절반쯤 올라 환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는 사이 트라프로넨이 웃지 않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거 현친왕 전하시네. 전하의 접견은 30분 뒤인 거로 아는데 왜 여기에 있지?=

트라프로넨의 질문에 호천명은 깍듯한 태도로 그에게도 허리를 숙이며 대답한다.

=대성녀님의 접견을 앞두고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여 그만……. 한시라도 빨리 뵙고 싶은 마음에 조금 일찍 나서고 말았습니다.=

=뭐? 영도는 외부 방문자의 자율 행동을 금지하고 있는데?=

부드럽고 순한 어조의 호천명의 대답에 트라프로넨이 눈매를 찡그리며 ‘누가 널 안내했느냐’고 물으려는 찰나, 자신의 어깨를 조용히 짚는 환인의 손길을 느끼곤 고개를 돌려 그를 돌아본다.

그리고 환인이 희미하게 고개를 젓는 모습에 ‘지금 그걸 묻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라는 뜻을 읽은 트라프로넨이 입을 다물었다.

지금 그것을 물으면 잘잘못을 저 인호족을 안내한 안내자에게 덮어씌워 버리는 식이 된다.

이 자리에서는 저자가 실수했다는 언급을 꺼내도록 하는 게 그의 입지를 조금이나마 좁히는 셈.

‘다만 나와 만나는 것이 목적인듯하니 입지가 좁아진다 해도 저 육미호 남자에게는 손해가 없겠지.’

환인의 예상대로 호천명은 순순히 사과의 말을 꺼낸다.

=죄송합니다. 들뜬 마음에 안내해주신 분께 큰 폐를 끼친 듯합니다. 트라프로넨 영성님께 사과 말씀드립니다.=

=그…… 음.=

그럼 되었다고 말하려던 트라프로넨은 아직 자신의 어깨에 올려져 있는 환인의 악력이 강해지는 것을 느끼고 입을 다시 다물었다.

“여기서 그리 대답하시면 그가 저지른 잘못이 없던 것으로 되어버립니다. 향후 접견의 유리함을 위해 여기서는 대성녀님께 맡기시지요.”

그야말로 모기처럼 작은 목소리의 설명에 트라프로넨은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알았다는 듯이 슬쩍, 옆으로 물러섰다.

‘인제 보니 우리 성제님, 무력뿐만 아니라 정치력도 최상급이었구만?’

성제님이 곤란해질까 싶어 잘은 모르지만 자신이 나서려 했던 건데 이제 보니 괜한 걱정이었군.

=……전하가 영도의 규율을 어긴 것은 대성녀님께서 판단하시겠지.=

자신의 의도대로 트라프로넨이 한 손으로 손사래를 치는 걸 본 환인은 다음 단계를 위해 그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러면 트라프로넨 영성님. 먼저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너도 저 사람을 상대하지 말고 빨리 물러나는 것이 좋을 거라는 신호를 눈치 빠르게 알아챈 트라프로넨도 고개를 끄덕였다.

=음. 성…….=

성제님이라고 불러도 되나? 눈을 도록도록 굴리던 트라프로넨은 환인의 옅은 미소에 안심하고 입을 열었다.

=…제님, 오후에 우리 아이를 데리고 가도 괜찮을까?=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어어. 그럼 조심해서 살펴가. 좀 이따 보자고.=

그의 손 인사에 고개를 숙여 보인 환인은 트라프로넨이 계단을 내려가는 속도에 맞춰서 같이 내려가 이실리테의 손을 잡았다.

겉보기에는 긴장한 것 같지만, 실상은 자신이 신호를 주는 순간 호천명과 그 호위 두 명을 단번에 쓸어버릴 준비를 끝낸 상태.

혹시 신호를 착각해 저들을 공격하는 일이 생기지 않게끔 그녀의 손을 잡고 걸어 내려가니 호천명의 시선이 예상대로 자신과 트라프로넨을 오간다.

트라프로넨은 계단의 오른쪽 끝에, 자신은 계단 왼쪽 끝에. 거리만 5m정도 떨어져있다.

둘 다 잡을 수 없고 한쪽을 잡는다면 한쪽은 놓치게 되는 상황.

호천명은 속으로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그를 잡으면 영도의 일곱 영성 중 한 명을 홀대하는 식이 되고, 영성에게 다가가면 그를 보내게 되는 셈이다.

‘역시.’하고 속으로 웃은 호천명은 트라프로넨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라드세아의 현친왕, 여황제의 동생이라는 정치적 입장에서는 영도의 영성과 정치적 관계를 더 중요시해야 하기 때문.

=저의 생각 짧은 행동이 영성님의 심기를 상하게 한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뭐어, 난 무술밖에 모르는 놈이라서 말이야. 그쪽이랑 말하다가 무슨 실례를 저지를지 모르니 될 수 있으면 대화는 짧게 했으면 좋겠어.=

=결코 트라프로넨 영성님을 곤란케 하려는 의지가 없음을 알아주시길…….=

=그래그래. 이미 그쪽이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는 건 대성녀님한테 연락이 들어갔을테…….=

=이야기는…….=

멀어질수록 호천명과 트라프로넨의 대화가 작아진다. 그와 함께 등 뒤로 호천명의 강렬한 호기심과 관심의 눈빛에 영혼 기사들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환인은 하등 신경 쓰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환인이 먼저 사라지고 트라프로넨도 여섯 영혼 기사와 함께 필령궁을 떠난 장소.

호천명은 저 언덕의 소나무처럼 굳건하게 선 모습으로 자신에게 이지선다를 강제했던 흑발의 아름다운 남자를 떠올렸다.

자연스럽게 트라프로넨 영성을 제어하여 자신에게 곤란한 선택지만을 내밀었고 끝내는 맥없이 보낼 수밖에 없었던 남자.

호천명의 의식에 쌍둥이 호위의 원감?? 마도구에서 출발한 의식이 흘러들어온다.

‘……두 번째이옵니다. 라드세아의 황가 혈통인 호 씨 가문을 업신여기지 않는다면 현친왕 전하를 이리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 녹색 성자는 외계의 사람. 우리를 잘 몰라.’

‘잘 모르는 사람이 이런 정치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봐? 마지막에는 트라프로넨 영성님과 자신, 둘 중 한 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내밀었잖아!’

‘알고 있어도 그의 소속은 영도. 루크랑 족도 아니니까 그 이상의 예의는 차리지 않아도 문제 될 것이 없어.’

‘……야화. 너 누구 편이야? 왜 그 사람을 옹호하는 건데!’

‘난 명 공자님 편. 주화의 발작을 막는 역할.’

‘발작 아니거든!’

두 자매의 말다툼에 후, 작게 웃은 호천명이 의념을 보냈다.

‘그의 반응이 이러할 거라고 짐작하지 않았는가. 주화는 그리 신경 쓰지 말아라.’

‘하오나…….’

‘명 공자님 말씀이 옳아. 녹색 성자는 고위 호족한테 자주 시달렸어. 경계하는 게 당연해.’

‘……그럼 야화 넌 어떻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

‘여황 폐하께서 장만해놓으신 두 가지 선물. 그중 하나를 먼저 줘. 호의를 사는 게 먼저야.’

‘…유물을 그냥 덜렁 넘겨주자는 거야? 미쳤어?’

‘주화 바보.’

‘왜?!’

‘하하하. 야화는 그만하거라. 주화도 진정하고.’

주인의 다독임에 주야화는 원감을 멈춘다. 그렇게 조용해진 가운데 호천명의 부드러운 의념이 그녀들의 머리로 흘러들어왔다.

‘트라프로넨 영성님은 녹색 성자님을 성제라고 부르셨지. 그러나 성제라는 직업은 존재하지 않아. 더욱이 영도에 그러한 직급도 없지. 그것이 무엇을 뜻하겠니.’

‘……성자는 아우라 무발현자이옵니다. 더욱이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면 희귀 직업자조차도 해낼 수 없는 다수의 위업을 달성하였지요. 그게 뜻하는 바는…….’

‘그래. 성자님은 유일 직업자일 테지. 영혼 계통의…….’

역대 출현한 유일 직업자는 하나하나가 도시를 물리적으로 무너트릴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발휘했었다.

엽사 계통인 카락스의 암살자, 전사 계통인 하말의 광무제???. 투사 계통인 요르나간의 굉성추???.

술사 계통은 아직 출현하지 않았지만, 성자가 정말로 유일 직업자라면 마지막 술사 계통의 유일 직업자일 수 있다.

주야화 자매는 사건의 중대성이 더욱 커졌음을 느꼈다.

‘……이해했어. 야화 너는 일단 비싼 선물로 그의 경계심을 누그러트려 대화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는 거구나.’

‘그냥 비싼 선물로는 안 돼. 성자는 공짜를 거부해. 그가 거부하지 못할 비싼 유물이어야 해.’

헬루멘 영주의 모든 지원을 거절하고 정분의 징표로 선물한 액세서리 하나만 가지고 떠난 성자의 이야기는 그쪽 세계에서 유명해진 이야기다.

호천명은 입구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다소 굳은 얼굴의 대성녀와 외교통상기관장을 향해 웃는 얼굴로 읍을 올리며 사념을 보냈다.

‘그래. 그러니 야화, 선물을 전달하는 것은 네가 맡아주겠니.’

‘명 공자님의 분부대로.’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