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482화 (482/813)

〈 482화 〉 476 영도 에쉬누르

* * *

자정을 갓 넘긴 시각의 어두컴컴한 욕실.

겨울의 냉기가 감도는 욕실에서 안느는 꿀꺽, 침을 삼키고 심호흡한 뒤 손에 들고 있던 물바가지를 뒤집어썼다.

촤아악—

=끄하아앙……!=

수온 4도의 물이 후끈거리는 몸에 쏟아지자 온몸의 혈관과 심장이 수축하는 감각에 안느는 작게 비명을 지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뜨거운 물로 씻으면 좋겠지만, 그이의 정액은 그이의 직업만큼이나 엄청나서 뜨거운 물로 씻었다간 그야말로 난리가 난다.

정액의 특성을 몰랐을 때 뜨거운 물로 씻었다가 머리카락과 짬지 털이 엉망진창이 되어서 얼마나 고생했던가.

=후욱후욱.=

촤아아악—

재차 냉수를 몸에 끼얹은 안느는 그의 억센 손자국이 빨갛게 남아있는 가슴과 조금 과장 보태서 점박이라고 할 만큼 키스 마크가 곳곳에 새겨진 몸을 거친 호흡과 함께 서둘러서 씻어낸다.

그리고 유르파가 만들어준 모발 세정제를 손에 묻혀 거품을 만든 뒤 여기저기 정액이 엉겨붙은 은색 머리카락도 꼼꼼하게 씻은 뒤에…….

촤아아악—

=크흡!=

물을 다시 뒤집어쓰고 몸을 움츠린 채 부들부들 떨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위상력을 끌어올린 뒤 몸에 한차례 돌리자 그제야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냉기가 물러난다.

그렇다고 안 추운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내일 성체술 연마에 쓸 위상력도 남겨놓아야 하니 위상력을 오래 돌리지도 못한다.

안느는 쓰읍, 이를 악물고 물 생성 마도구의 수온을 냉수로 조절한 뒤 콸콸 틀어서 몸을 빠르게 씻어나갔다.

쏴아아아—

=끄흐으으~~. 그흐흐냥 연이한테 씻겨달라고 할걸 그랬나하아아……!=

덜덜 떨면서 머리카락과 몸에 묻은 땀, 정액, 애액을 깨끗하게 씻고 후다닥 탈의실로 달려 나가 목욕 가운을 걸치는 안느.

순면으로 된 보송보송한 샤워가운이 몸을 덮자 살을 에던 추위가 물러가며 그제야 후우우— 살 떨리는 한숨이 흘러나온다.

여유가 생겨 한결 느긋하게 수납장에서 수건을 꺼낸 뒤 젖은 머리카락을 돌돌 말고 욕실을 나온 안느는 작게 들려온 목소리에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흐읏… 하악, 주힌니히임……♡!]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봉사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벌써부터 보ㅈ…… 부들거리고 있는데.]

[흐하아앙…. 그치마한♡ 주인님의 자……한테는 못 이기는걸요오옷♡♡]

=…….=

환인의 방 앞에서 잠깐 귀를 기울이던 안느는 코를 훌쩍이면서 방문 앞을 지나쳤다.

안 봐도 뻔한 상황이다.

오늘만큼은 반드시 도령한테 뷰지로 봉사하겠다고 선언했다가 도령이 극태쥬지로 푹푹 찔러주니까 오고곡하면서 패배를 선언하는 중이겠지.

자신도 몇 번 그래봐서 안다.

‘이상하게 다짐할 때마다 도령이 더 심하게 괴롭히는 거 같단 말이야.’

아무튼, 오늘은 율이 언니가 도령이랑 같이 자는 날인가? 좋겠다~.

온몸이 녹을듯한 정사를 치른 뒤에 그의 품에 안겨 잠들면 온갖 피로가 싹 사라지는데.

그의 품에 안겨 잠드는 상상을 하던 안느는 밑에서 무언가가 조금 흘러내리는 느낌에 힘을 꽉 줘서 입구를 조였다.

혹시라도 그의 정액을 바닥에 흘렸다간 이실리테가 귀 따갑게 잔소리를 할 테니까.

‘도령의 몸이 딱 하나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사흘에 두 번은 그의 품에 안겨서 잘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하는 안느.

말도 안 되는 희망이지만 이건 이실리테와 유르파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잘 때 그의 품에 꼭 안겨서 자고 싶다는 바램 말이다.

달칵.

=나 왔어~.=

방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간 안느는 바닥에 요가 매트(지구에 갔을때 사 온 것 중 하나)를 펼쳐놓고 그 위에서 인묘족 여성처럼 엎드린 유르파를 볼 수 있었다.

상체는 바닥에 딱 붙게, 무릎은 적당히 세워 벌려서 엉덩이를 치켜든 자세.

문 쪽으로 엉덩이를 향한 상태라 짬지가 타이트한 베이지색 돌핀 팬츠를 먹어서 생긴 도끼 자국이 선명하다.

거기다 조금 헐렁한 상의가 아래로 늘어지며 그 틈으로 보름달처럼 하얀 젖무덤이 살짝 짓눌린 것까지 보인다.

=율이 언니 엄청 야해!=

=아, 왔니?=

「오셨어요?」

=어어. 그건 무슨 자세야? 도령 유혹하는 고양이 자세?=

=푸훗. 그런 거 아니야~. 자기네 나라에서 여자들이 많이 하는 체조래. 이러면 허리랑 코어 근육이 단련되고 몸이 유연해진다던가.=

책을 읽다가 자신을 발견하곤 손을 흔들어주는 백려강에게 같이 손을 흔들어준 안느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체조치고는 좀 정적이지 않나?

자기 개인 아공간 손가방에서 천연 보습제를 꺼낸 안느는 가운을 벗으며 물었다.

=그래? 효과는 있어?=

=응. 이걸 한 뒤에 자기랑 사랑을 나누면 허리가 훨씬 덜 아파. 그냥 하면 다음 날 허리가 쑤셔서 물약을 안 마시곤 못 견딜 정도니까.=

=으음. 허리는 중대 사항이긴 하지.=

확실히 요즘 도령은 힘이 넘쳐서, 자신도 조금 방심하면 허리가 쿡쿡 쑤시게 된다.

지금도 꼬리뼈 위쪽이 생리 오기 전날처럼 약간 얼얼한 게, 자기 전에 스트레칭을 해줘야 할 느낌.

‘물론 수목화한 지금은 생리 같은 건 하지 않지만.’

=후우~.=

요가 1사이클을 돌린 유르파는 자세를 풀고 자리에 앉으며 목욕 가운을 벗고 알몸으로 자신이 만들어준 천연 보습제를 바르는 안느의 예술 같은 나신을 구경했다.

조금의 흠도 없고 약간의 처짐도 느껴지지 않는 신체.

‘정말 신이 빚었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완벽한 몸이라니까.’

얼마나 완벽한지 안느 아가씨와 잠자리를 가지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 정도다.

그런데 너무 뚫어지게 쳐다봤을까. 다리부터 보습제를 발라가던 안느가 가슴에 보습제를 바르다말고 슬쩍 몸을 돌린다.

=…언니랑 려강이 눈빛이 위험한데?=

「으응. 안느 언니, 정말 예뻐요. 이실 언니도 아름다운데 이실 언니랑은 다른 아름다움이라서 눈을 못 떼겠어요.」

=그치? 막 눕혀놓고 여기저기 만져보고 싶은 기분이 드는 몸이야.=

=……내가 아무리 선진문물을 배운 플뢰라고 해도 그건 좀.=

그렇게 말하며 웃은 안느는 보습제를 유르파에게 내밀며 등에 좀 발라달라고 부탁했다.

보습제를 건네받은 유르파는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는데도 최고급 실크처럼 매끄러운 그녀의 등에 투명하고 매끄러운 보습제를 발라주면서 속으로 감탄하다가 말을 걸었다.

=우리가 영도에 도착한 지도 벌써 2주가 넘었는데, 안느 아가씨는 성체술에 진전이 있어?=

유르파의 질문에 안느는 머리카락을 감아놨던 수건을 풀어서 촉촉하게 젖은 은발을 말리며 대답했다.

=엉. 비마르 영성님이 소개해주신 분이 도령이랑 비슷한 과여서 도움을 많이 주셔.=

=그분도 자기처럼 근접 격투를 잘하는 분이야?=

=아무리 그래도 우리 도령하고 비교하는 건 좀……. 하지만 확실히 실력이 있으신 분은 맞아. 엄청 오래전에…….=

약 1300년 전, 혼옥은 위상력이 아닌 제 2의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걸 깨달은 영성이 있었다.

그것이 영기이며 영기는 남녀노소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영혼사들의 기술은 그런 영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그 영성을 통해 알려지고, 그걸 바탕으로 이론과 기술이 재정립된 이후.

=영기를 영혼술에만 쓰는 게 아니라 직접 신체를 강화하는데 시도하는 분이 나타나셨어. 그분이 최초의 영투술 사용자야. 그리고 현재 하이넬 상급 영혼사님이 현재 영투술회의 회장을 맡고 계시는데 그분께 기술을 배우고 있어.=

=영기로 신체를 강화해서 더 강하게 싸운다는 거니? 그럼 그거 자기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도령한테 알려줘 봤는데 순식간에 터득하고서는 ‘하급 정령 강령보다 강화치가 낮군. 숙련도를 올리면 중급 강령을 뛰어넘을듯하고 개선점도 보이지만… 정령도 중급 이상이 계속 나올 테니.’ 하면서 자기한텐 의미가 없다고 하더라…….=

=저런…….=

「그 영투술이랑 환인 님의 정령 강령이랑 같이 쓸 수는 없는 건가요?」

=뭐라 그랬지? 상충하는 부분이 있어서 함께 쓰면 전투보다 영투술하고 정령 강령을 조율하는 쪽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했나? 함께 쓰는 건 별로래. 그래서 내가 만들고 있는 성체술에 고칠 점이 추가돼서…….=

「아…….」

=에구.=

어쩐지 일주일 전만 해도 금방 완성될 거라며 신났었는데 아직도 완성을 못 했더라니, 그런 이유가 있었네.

유르파와 백려강의 안타까워하는 소리에 머리를 대강 말린 안느는 속옷을 챙겨입고 빗을 꺼내 모발 보호제를 발라 머리카락을 빗으면서 유르파에게 물었다.

=언니는 자궁 문신 연구 어떻게 되고 있어?=

=자궁 문신이 아니라 문인이거든?=

=그러면 짬지에다 문인을 새겨야 하니까 짬지 문인이라고 해야 해?=

=……그냥 자궁 문신이라고 하자. 문인의 트랜드도 변해서 대음순이랑 소음순 사이하고 음핵 주변에 새기는 방식이 다시 아랫배 쪽으로 옮겨지고 있으니까.=

=그래?=

=응. 원래 문인도 아랫배에 새기는 거였대.=

영혼사의 영기는 성불행을 이어가면 갈수록 혼탁해진다.

이유는 분분하지만, 영혼이 성불하며 남기는 영체의 일부 영기가 영혼사의 몸으로 흘러들어오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영기가 탁해진다고 해서 큰 문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영혼술이 성장하기 어려워지는 환경이 될 뿐이라고.

=탁해진 영기를 육보시를 통해 정화하면 오히려 영혼술이 더 성장한다는 게 육보시의 요지거든.=

=아, 그래서 도령의 영혼 구슬 숫자가 중간부터는 잘 안 늘어났던 거였구나.=

=아무튼, 수백 년 전에 이런저런 이유로 문인을 개발하신 분의 자료와 기록이 파괴되어 좀먹은 문서처럼 곳곳이 비게 되는 일이 발생했어. 술식연구기관은 그걸 어떻게든 보완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성과는 별로 없었고 육보시의 개념만큼은 정립되어있었기에 문인을 새기는 곳이 여기가 된 거야.=

손가락으로 자신의 음부를 가리키는 유르파.

그랬는데 유르파가 나타나고 그녀의 협조 아래 정현족의 문신에 대한 재조사와 연구를 진행한 결과, 문인은 성기 표면에 새기는 것이 아니라 영기가 맺히는 장소와 가장 가까운 곳에 새기는 것이 가장 효율이 높다고 밝혀졌다.

남자의 경우는 회음부, 여자의 경우에는 자궁 근처인 아랫배다.

=언니는 그러면 여기에 또 문인을 새겨야 해?=

안느가 베이지색 돌핀 팬츠에 회색 크롭티를 입어 일부 드러난 그녀의 자궁 문신을 건드리며 묻자 유르파는 간지럽다면서 배를 감추며 대답했다.

=아니. 나는 문인을 새길 필요가 없어.=

그러더니 두 손으로 아랫배에 새겨진 문신을 덮고 짧게 비문을 외운다.

잠시 후 그녀가 손을 뗐을 때 자궁 문신은 옅은 황금빛에서 은은한 회색빛으로 변해있었다.

=그도 그럴 게 정현족의 증표를 재해석해서 하위호환으로 만들어 범용성을 높인 게 문인인걸. 증표가 있는데 문인을 새길 이유가 없잖니.=

=오…….=

「와…….」

아랫배의 증표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두 명의 시선에 부끄러워진 유르파는 크롭티를 억지로 내리면서 말했다.

=문인 연구 조사도 이제 거의 끝났거든? 아야빗 영성님이 자료 수복 기여자, 표본 제공 공여자 특별 권한이랑 보수를 주신 게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타인 문인 시술 권한이야.=

「문인 새기는 법을 알고 있다고 아무한테나 전수하거나 새기면 안 되는 거네요.」

=응. 애초에 새길 때도 알지 못하게 잠재운 뒤에 하기도 하고, 지금 논의 중이긴 한데 어쩌면 그대로 음부에 문인을 새기는 방식으로 갈지도 몰라.=

=유출 방지를 위해서라는 이야기네.=

「남자든 여자든 생식기를 타인에게 훤히 보여주는 것은 거부감이 큰 행위기도 하니까요.」

=아무튼, 안느 아가씨랑 이슬이 아가씨한테도 문인을 새겨줄 수 있게 됐으니까 자기의 영혼술 수련에 앞으로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야.=

=정말? 잘됐다.=

안 그래도 도령과 자신의 무력적인 차이가 점차 벌어지는 중이다. 들개 전사단의 여자 악령들과 계약을 맺어서 흑옥을 얻은 지금은 이슬이나 자신을 훨씬 앞지르고 있겠지.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이 그에게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도움이 될 분야는 많은 게 좋지 않은가.

이야기하다 보니 1시간의 격렬한 섹스에 냉수 샤워의 피로까지 밀려와 안느는 나른한 표정으로 침대에 올라가 드러누웠다.

그이 대용으로 베개를 끌어안은 안느가 조금 졸린 목소리로 말한다.

=도령의 직업도 유일 직업으로 밝혀졌고…… 뭔가 점점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떠나는 느낌이야…. 제자리에 멈춰있으면 두 번 다시 쫓아가지 못할 느낌…….=

=……응. 그러게.=

일주일 전, 성체술을 익히고 문인 연구에 도움을 주다가 집으로 돌아온 여자들을 맞이한 것은 정신이 멍해질 정도로 놀라운 소식이었다.

역사상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직업, 그것도 일반 직업인 영혼사와 승급직인 영성, 희귀직인 새벽의 빛의 장점을 모두 합친 유일 직업이 나타났으며 그 직업의 보유자가 자신들의 연인이자 남자친구였다는 소식이었다.

여자들은 크게 놀라는 한편으로 ‘역시.’하고 납득했다.

수십 명의 영혼을 한 번에 성불시키는 것. 타락이 극심해진 혼재와 싸워 퇴치하고 악령을 달래 수족으로 만드는 것. 빛기둥을 일으키는 거나 호수의 해왕에게 인정받는 일들.

평범한 직업자가 그런 업적을 해낼 수 있을까?

절대 무리겠지.

‘그런 거보다 그이랑 잠자리하면 더 예뻐지고 몸이 좋아진다는 게 더욱더 충격이었지만.’

유르파는 자신이 흡정족의 굴레를 벗어난 것도 틀림없이 그의 힘 덕분이라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생활에 큰 변화가 없는데 갑자기 정현족으로 변할 리가 없지 않은가.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백려강이 책을 덮으며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환인 님 같은 분을 연인으로 두는 거잖아요. 그분께 어울리는 여자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필수 불가결이라고 생각해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다.

=그러게. 다른 여자들은 자기의 곁에 함께 있지 못해서 안달인데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데다 사랑까지 받고 있잖아. 운이 좋아서 이 자리를 차지했다지만, 자리를 유지하는 건 결국 우리 노력이야.=

=하긴. 도령이 처음부터 헬루멘이나 영도 근처에 떨어졌으면 우리는 도령을 만날 기회조차 없었을 테니까.=

고개를 끄덕이던 안느는 이제 크롭티와 돌핀 팬츠를 벗고 환인과 잠자리를 위해 야한 속옷으로 갈아입는 유르파에게 물었다.

=아 참. 언니, 도령이 부탁했던 아우라 발현 연구는 어디까지 진행됐어? 조만간 볼 수 있는 거야?=

환인의 아우라는 현재 대성녀와 환연만 보았다. 환연이 어떠어떠했다고 설명해주긴 했지만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것이 사실.

그건 유르파도 마찬가지였기에 환인이 가져다준 현월수의 성분을 연구하고 당시의 느낌을 기록한 쪽지를 토대로 비술을 찾고 있지만…….

=시간 날 때마다 술식연구기관의 도서관에서 관련 비술을 뒤적이고는 있는데…… 위상류를 몸 안으로 응집시킨다는 것도 생각해본 적 없는 주제라서 어려워.=

=언니가 어렵다고 할 정도면 진짜 힘든 건데…….=

「저도 환인 님의 아우라를 보고 싶어요…….」

=끝이 아니야! 아직 시간은 2주 정도 더 남아있고 대충 방향성은 확인했으니까!=

대성녀가 쓴 비술이 술식연구기관에 없는 것은 반쯤 확정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비술의 제작이다.

대성녀가 그이를 데리고 필령궁의 깊은 곳으로 데려가 한 게 위상류의 압축이었다면, 비술의 대분류와 중분류는 정해진 것과 다를 바 없다.

남은 것은 자신이 연구했던 위상류의 특징과 분석에 접목할만한 비술을 술식연구기관에서 찾아 개조하거나 새로 만들어내는 것뿐.

반드시 비술을 만들어내서 자기의 아우라를 두 눈으로 직접 봐야지.

주먹을 꼭 쥐며 다짐한 유르파는 슬슬 시간이 다 된 걸 확인하고 사향 향수를 꺼내 귀 뒤쪽과 겨드랑이, 목덜미에 살짝 뿌린다.

환연이 찾아온 것은 그때였다.

반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환연이 섹시한 검은색 란제리 차림의 유르파를 살피다 묻는다.

「유르파. 준비는 다 됐어? 이실리테가 방금 기절했으니까 곧 끝날 거야.」

=벌써 1시간이 지났네. 난 준비 다 끝났는데, 지금 가면 돼?=

「바로 가.」

교대 시간을 알린 환연은 다시 창문으로 빠져나갔고, 유르파도 속이 비치는 하늘하늘한 잠옷을 위에 걸친 뒤 안느와 백려강에게 손을 흔들었다.

=가볼게.=

=엉. 잘 가. 도령 품에서 좋은 꿈 꿔.=

「좋은 시간 보내세요, 언니.」

동생들의 인사를 받으며 방을 빠져나온 유르파는 은은하게 풍겨오는 그의 밤꽃 향기에 자신도 모르게 스으읍­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자 몸에 스위치가 찰칵, 올라가며 그와 사랑을 나누기 위한 최적의 상태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오늘은 자신이 그의 곁에서 함께 자는 날.

잠시 후면 있을 열락의 시간을 떠올린 유르파는 그곳이 축축하게 젖어가는 걸 느끼며 캄캄한 거실을 가로질러 그의 방으로 향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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