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481화 (481/813)

〈 481화 〉 475 영도 에쉬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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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택으로 돌아온 환인은 약간의 피로감에 자신의 방 소파에 앉아 대성녀가 대성녀실에서 해주었던 말을 생각했다.

‘성자님의 직업이 유일로 판명된 이상 소녀가 생각하던 계획은 물론이거니와 영도의 행동 자체를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발생하였소.’

‘유일 직업은 홀로 도시급 전력을 낸다고 알려져 있소. 이엘의 전견시만 보아도 그것은 사실일 터. 유일 직업의 출현은 4대 국가 182개 도시의 모든 시선을 끌어모을 것이오.’

‘위상류로 인하여 차단된 아우라는 몇 가지 수단을 제외하면 볼 방법이 없소. 숨긴다면 성자님의 여정에 방해될 일은 없겠지만, 문제는 성자님의 존재가 너무나도 특출나다는 데에 있소.’

‘주머니 속의 송곳은 언제고 주머니를 찢고 나오는 법. 소녀로서는 성자님의 직업이 밝혀질 것을 가정하여 이쪽이 먼저 알리고 싶은 심정이오.’

‘성자님에게 방해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그 방법 추구를 일곱 영성 대회의에서 정하여 볼 터이니 그동안 영도에서 머물러 주시길 간절히 간청하는 바이오.’

‘제 직업을 밝히는 것은 영도의 전면적인 협조와 지지가 있다면 수용할 생각이 있습니다.’

‘감사한 말씀이시오. 솔직히 말하자면 성자님 일행의 전투 능력을 의심하지 않소. 어쭙잖은 이들이 성자님에게 덤벼보았자 역으로 피를 볼 테지.’

‘허나 몇 명이 몇만 명을 상대로 전쟁을 치르는 것은 안전을 따지기에 앞서 위험을 초래할 계기로 보아야 하지 않겠소.’

‘소녀는 2년 전 예언의 중요성을 더더욱 절감하였소. 누군가가 성자님을 격노케 한다면 그 예언 그대로 니오네브레스에 죽음의 발자국이 찍히겠지. 소녀는 그런 상황이 오는 것을 결단코 막고 싶소.’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수단을 강구하여볼 터이니 부디 소녀를 믿고 기다려주시길 바라겠소.’

대성녀의 진정성 있는 호소에 환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제의를 수용했다.

“…….”

그리고 저택에 돌아온 지금, 환인은 그들에게만 맡기지 않고 나름대로 영도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대성녀를 포함한 일곱 영성은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 만큼 여러 의견을 다각도로 검토할 것이다.

그렇다고 남들에게 결정을 전부 맡기는 것은 그의 방침이 아니다.

“……쉽지 않군.”

자신이 유일 직업이라는 걸 알렸을 경우 벌어질 수 있는 일에 대한 추측, 추리와 가상 시뮬레이션.

자신이 유일 직업이라는 것은 밝히지 않고 단순하게 ‘영도에서 유일 직업이 발생했다’는 것만 알릴 경우에 대한 가정.

전자와 후자 양쪽 다 그러기에 괜찮은 이유와 해서는 안 될 이유가 존재한다.

강자, 홀로 뛰어난 자는 설령 수천 킬로미터 바깥에 있다 하여도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를 사는 법이다.

게다가 권력의 정점이라는 마약에 취한 인간은 수틀리면 미친 짓도 서슴지 않는다.

성불의 원리와 이유를 대강이나마 이해하고 있는 사회 고위층과 원한 관계가 발생할 수 있고, 영도가 지지하고 전폭적인 협력을 한다고 하여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앉은 자리에서는 전부 알 수 없다.

문제가 터졌을 때 물리적인 보복을 해오는 거라면 오히려 환영이다.

하지만 신비가 존재하는 이 세계라면 먼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격해올 수도 있다.대표적으로 저주라던가.

‘모습을 드러내고 이쪽을 공격하면 되려 전 세계의 공격을 받을 테니 더더욱 숨어서 공격하려 들겠지.’

정체를 숨긴다 해도 프라버에서부터 린덴 촌락에 이어 알소프까지 굵직굵직한 일에 참견한 사실이 있어 정체가 금방 밝혀질 수 있다.

특히 프라버 이후 자신과 얽혔던 이들이라면 영도에서 유일 직업을 발표할 경우 금방 자신을 떠올리지 않을까.

‘백중강이나 백치령, 시하 사이지 같은 이들이 함부로 입을 놀릴 것 같지는 않지만.’

그들의 아랫사람들은 확신할 수 없다. 자신을 데릴사위로 삼으려던 파르히스트가 더더욱 열정적으로 나올 수도 있고 말이다.

아무튼, 이러한 단점을 제외하고 장점을 보자면 양쪽 다 편안한 여행길을 영위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각 도시는 물론 주도를 방문해도 귀빈 대접을 받을 수 있겠지. 영도라는 초법적이고 초월적인 도시국가가 배경으로 있으니 어지간히 기분 나쁜 일이 있더라도 함부로 터치하지 못할 것이다.

겁이 많은 자라면 아예 상대하고 싶어 하지 않을 테지.

후자라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여자친구들과 느긋하게 가던 길을 갈 수 있다.

‘전자는 아무래도 성가신 호의가 쏟아지겠지. 그걸 일일이 거절하고 다니면 상황 파악도 못 하고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억하심정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고.’

할 수 있다면 이때까지 해왔던 것처럼 여자친구들과 느긋하게 여행하고 싶은 것이 환인의 본심이었다.

하지만 후자도 문제인 게, 자신과 이엘카타의 관계를 엘위드리스 가문이 눈치챌 경우 후자라면 악의에 찬 집요한 습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미래를 볼 수 있으니 멸망을 예지, 오히려 정식으로 의지를 표명하고 가문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정당성을 알린 다음 덤벼들 수도 있는 일.

“…….”

왼팔의 손등을 들여다본다.

대성녀와의 육보시, 그녀는 육보시가 아니었다고 주장하지만 아무튼. 닌실=아나그와 교접으로 영혼 구슬 개수가 폭증해 21개가 더 늘었다.

이전에는 111개였던 것이 1시간 동안의 육보시 끝에 132개가 된 것이다.

이제 계약을 맺지 않은 정령이나 괴물의 영혼 구슬도 최대 11일간 보존할 수 있게 되었으니 영혼 구슬 숫자의 제약은 거의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

흑옥의 유지 기간은 300년이 넘는다.

영기 또한 크게 회복되어 들개 전사단의 영혼과 계약을 맺느라 20%까지 떨어졌던 영기는 92%까지 회복되어있다.

특이사항이라면 이전에는 영기가 90% 이상부터는 자동 회복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30분에 1%씩 차오르고 있다는 것.

이게 영도의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영혼 구슬이 늘면서 영혼술이 한층 더 강해져서인지 알 수 없지만, 나쁜 소식은 아니다.

왼손의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고 있을 때 똑똑, 방에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들어오십시오.”

환인의 대답에 달칵, 문이 열리며 내정사무기관에서 보내온 임시 하우스 키퍼 튜티가 들어와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환인 성자님. 백려강 님께서 복귀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녀를 여기로 불러주시겠습니까.”

=네, 성자님.=

단정한 갈색 로브 차림의 튜티가 갈색 꽁지 머리를 살랑거리며 나가고, 잠시 기다리자 백려강이 지적으로 개운해진 표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환인 님, 부르셨어요?」

“그래. 샤페 영성님과 좋은 시간은 보냈나.”

「제가 환인 님의 청색 영혼이라고 샤페 영성님이 배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귀엽게 웃은 백려강은 스르륵 날아올라 그가 앉은 팔걸이에 엉덩이를 붙이며 물었다.

「환인 님은 대성녀님과 함께 가셨던 일은 잘되셨나요?」

“그래. 유일 직업이 맞다더군. 아우라도 직접 확인했다.”

「와. 대성녀님은 무발현자의 아우라도 드러나게 하실 수 있으셨군요?」

그녀의 천진난만한 반응에 후 웃은 환인이 고개를 끄덕여주고 자신의 아우라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주니 두 손을 잡고 눈을 반짝이며 신기해한다.

「황금색 아우라라니 신기하네요. 언니들도 그 이야기를 들으면 신기해하면서 탄성을 흘릴 거예요.」

“글쎄. 그녀들이라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갈 것 같기도 하군. 그보다.”

아니라고, 유일 직업이라면 언니들도 크게 놀랄 게 틀림없다고 말하려던 백려강은 환인이 덧붙인 말에 입을 다물고 기다린다.

“……백려강, 너도 훈련장에서 보았다시피 들개 전사단의 여자 영혼들과 정식으로 혼옥의 계약을 맺었다. 지금이라면 너와도 계약을 맺을 수 있겠지.”

「환인 님과 계약이라면……!」

“기다려라.”

이야기를 다 듣지 않고 계약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려는 백려강을 제지한 환인은 그녀의 허리를 두 팔로 감고 자신의 무릎 위에 앉힌 뒤 그녀를 올려다보며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이 계약이라는 것은 영혼과 강제로 맺는 일방적인 구속과 다를 바 없다. 이 계약이 보장해주는 것은 너와 내가 오랜 시간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뿐, 그 점을 제외하면 너에게 자유의사 및 행동을 제약하고 구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영성들이 아무도 곁에 영혼을 데리고 다니지 않는 걸 보면 확실하겠지.

닌실을 제외한 영성들의 나이는 전부 100세에 가깝다. 그 기나긴 삶동안 소중한 이들이 먼저 떠난 사람이 없을까?

영혼으로라도 곁에 두고 싶은 이들이 없었을까?

「…….」

백려강이 살짝 눈을 크게 뜨고 끔뻑이자 환인의 안주머니에서 기어 나온 환연이 설마 하면서 물었다.

「환인. 얠 그렇게 도구화하겠다는 건 아니지?」

“내가 그럴 것 같나.”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 말을 꺼낸 의도가 있을 거 아냐.」

조금 불안해하며 백려강의 어깨 위로 올라가는 환연을 바라보다 백려강에게 조용히 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백려강, 요즘 너의 감정 기복이 심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게 자신이 언제 성불할지 모르는 불안감에서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틀렸는가.”

잠깐 웅얼거린 백려강은 휴우,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맞아요. 환인 님과 재회한 뒤 함께 여행을 떠나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배웠어요. 환인 님의 사랑도 받았구요. 그래서 언제 성불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왔었어요. 하지만…… 환인 님과 함께 할수록 점점 성불하기 싫다는 감정도 커지는 중이에요.」

이실리테에게 붙어있던 그녀의 여동생을 생각하면 이상할 게 없는 생각의 흐름이다.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인 환인이 입을 열었다.

“이 계약을 맺는다면 적어도 내가 죽기 전까지 백려강 네가 자의가 아닌 일로 승천하는 일은 없겠지.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 은 그것 때문이다.”

그의 조용한 시선을 받던 백려강은 손가락을 꼬물거리다가 말했다.

「저…… 환인 님. 제 욕심을 들어주실 수 있으세요?」

“어떤 욕심이지.”

「최대한, 최대한 자유로운 상태에서 환인 님과, 언니들이랑 환연이하고 비상이랑 다 함께 여행하고 싶어요. 그러다…… 승천하기 직전에 환인 님이랑 계약을 맺었으면 해요.」

“안될것 없지.”

자신은 유일 직업이다. 그녀를 혼옥으로 만들 경우 다른 영성들의 혼옥과 다를 가능성이 있지만, 그건 테스트해보기 전까지 확신할 수는 없는 일.

그리고 대성녀와 여섯 영성의 대회의에서 결론이 어떻게 나느냐에 따라 밤중의 감시를 환연과 비상에 더해 그녀에게 부탁하게 될 수도 있으니, 그녀가 혼옥이 되는 일은 미룰 수 있다면 최대한 미루는 게 맞다.

[도령~! 우리 왔어~!]

방 밖으로 여자친구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백려강의 표정도 한층 밝아진다.

「환인 님, 언니들이 왔나 봐요.」

“그래. 나가볼까.”

「네!」

백려강이 먼저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고, 잠시 후 그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들려온다.

환인의 직업이 유일 직업이었다는 사실을 다짜고짜 터트리는 것과 그 소식에 경악하는 소리, 다다닷 달려오는 소리까지.

문으로 걸어가고 있으니 그의 어깨로 자리를 옮겼던 환연이 묻는다.

「그래도 괜찮은 거야?」

“괜찮다. 그녀가 그렇게 선택했다는 것은 이엘카타가 말한 그녀의 행복, 그녀가 거머쥘 행복으로 가는 길이란 뜻일 테니까.”

「……난 거기까지 생각 못 했는데.」

묘한 표정을 짓는 환연의 배를 쿡 찌른 환인이 말했다.

“넌 요즘 잠을 너무 많이 잔다. 뇌세포가 굳을 수 있으니 사람들을 피해서 숨어있지 말고 좀 돌아다녀라.”

「으웅. 환인 안주머니가 엄청 아늑해서 좋은데.」

고민에 잠기는 환연의 모습에 환인은 피식 웃으면서 거실로 나가는 문을 열었다.

“잠만 자는 바보 요정이 일행에 하나 있어도 나쁘지 않지.”

「윽. 알았어. 잠 좀 줄이면 될 거 아냐.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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