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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기담-480화 (480/813)

〈 480화 〉 474 영도 에쉬누르

* * *

현월의 방에서 치러진 두 사람의 정사는 닌실이 두 번이나 혼절하고 나서야 끝을 맺었다.

《헤으윽……. 그, 그대. 잠시 멈추…… 하으, 목… 물지 마아…….》

두 번째 혼절에서 깨어났던 닌실, 정확하게는 네 번째 사정이 이루어지는 느낌에 정신을 차린 그녀가 땀투성이가 된 채 할딱거리면서 그의 어깨를 잡고 밀어냈던 것.

환인은 아쉬움을 드러내며 그녀에게서 떨어져나왔다.

좀 더 육보시가 가능할 것 같은데.

아지에라의 육보시는 10분가량의 교접으로 정화가 한계에 달해 멈추는 것을 느꼈었다. 하지만 대성녀와 하는 교접은 1시간이 다 되어감에도 여전히 정화 효과가 활성화되어있다. 이 느낌이라면 1시간은 더 육보시가 기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대성녀가 거부의 뜻을 내비친 이상 더 하는 것은 무리다.

처음도 허락의 뜻을 내비치지 않았지만, 거절의 뜻도 보이지 않았기에 이뤄졌던 것이었으니.

환인은 혹시 모를 훗날을 안배하기로 마음먹었다.

정액과 땀과 애액으로 엉망진창인 망토 위에 축 늘어진 닌실을 조심스레 안아 들어 허벅지에 앉힌다.

힘에 부친 듯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며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할 정도로 숨을 몰아쉬는 닌실.

그런 그녀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어주다가…….

“닌실.”

그녀의 입술을 상냥하게 훔쳤다.

《응믑……. 하웅… 읍. 흡…….》

닌실은 축 늘어져 잠들어버리고 싶을 만큼 피로했지만, 이렇게 커다란 남자의 품에 안겨 키스를 받는 것은 왠지…… 기분이 말랑말랑하고 몽실몽실해지는 느낌이어서 싫지 않았다.

아니. 거칠고 혼란스러운 감각이 홍수처럼 밀려오는 교접과 다르게 그가 아껴준다는 감정이 전해져오는 상냥한 키스는 솔직히 꽤 가슴 설레어서 좋은 느낌이다.

그래서 거부하지 않고 그의 키스를 전부 받아들였다.

1분 정도 가벼운 키스를 끝낸 환인은 그녀의 조금 아쉬워하는 표정을 뒤로하고 그녀가 편히 기댈 수 있도록 몸을 내어준 채 말했다.

“고맙습니다.”

《……무엇이 고마운 것이오?》

“대성녀님의 육보시 덕분에 몸이 대단히 가볍고 시원해졌습니다.”

환인의 설명이 이해가 가지 않은 닌실은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되물었다.

《소녀는 몸에 문인을 새기지 않았소만……?》

“…그렇습니까. 아지에라 님에게 육보시를 받을 때와 같은 현상이 벌어졌기에 대성녀님도 문인을 새기신 줄 알았습니다.”

그녀가 두 번이나 혼절할 정도로 안았던 것은 전부 육보시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고양감에 살짝 취해 그녀와 몸을 섞었지만, 두 번째부터는 육보시의 효율이 아지에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기에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던 것.

하지만 그녀를 안으면서도 문인은 볼 수 없었다. 결합부는 물론 몸 어디에도 문인이 새겨진 것을 발견할 수 없었던 거다.

그랬는데 문인을 아예 새기지 않았다니. 이게 어떻게 된 걸까.

닌실은 그의 넓은 가슴에 기대어 휴식하다 그 표정을 보곤 한숨을 폭 내쉬었다.

《소녀는 기린이오……. 정화와 해주, 치유가 종족 특기이지. 아마도 종족의 특기가 이런 몸임에도 발현하였던 것 같소.》

“그렇습니까.”

닌실의 목소리가 점차 힘을 되찾아가는 걸 느낀 환인은 슬그머니 손을 들어 그녀의 봉긋한 가슴을 더듬는다.

그에 닌실은 찰싹찰싹 그 못된 손을 때렸다.

《아니 된다니까. 소녀의 시간 감각이 틀리지 않다면 이곳에 들어온 지 1시간이 흘렀을 것이오. 40분 뒤에 있을 오후 기도에 참석하려면 잠시 후에 나가야 한단 말이오.》

“40분이면…….”

그의 목소리에서 희망을 읽은 닌실이 고운 금빛 눈썹을 찡그리며 허벅지를 오므리고 두 팔로 가슴을 가렸다.

《몸단장과 치장 준비에만 30분이 걸리는 의식이오.》

그런 거라면 안 되겠군.

미련을 접은 환인은 그녀를 흥분시키는 스킨십 대신 그녀의 어깨며 허리, 허벅지를 주물러주며 마사지를 시작했다.

그것을 선정적인 애무로 착각한 닌실은 아르릉거리면서 팔을 꼬집으려 들었다.

“마사지를 해주려는 거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대로 나가면 대성녀님은 틀림없이 중증 근육통에 시달릴 겁니다.”

《……그런 것이오?》

“이토록 가녀린 몸이지 않습니까. 대성녀님을 안으면서 느낀 거지만, 신수일 적은 모르겠으나 지금 그 몸은 많이 연약합니다. 거기에 두꺼운 망토를 깔았다곤하나 단단한 돌바닥 위에서 그토록 몸부림을 쳐댔으니 지금쯤 몸 곳곳이 멍들고 배겨있겠지요.”

초창기에는 침대나 두터운 이부자리 위에서 경험을 치른 유르파마저 근육통으로 끙끙 앓았을 정도다.

가뜩이나 가녀린 대성녀라면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겠지.

설득력이 큰 속삭임에 잠시 그를 바라본 닌실은 머리카락을 그러모아 가슴 쪽으로 내린 뒤 그에게 등을 내어주었다.

《으…… 하으….》

그 후 몸 이곳저곳을 5분 동안 마사지 받은 대성녀는 놀랍다는 듯이 개운한 얼굴로 팔을 돌리고 목덜미를 주물렀다.

확실히 마사지를 받으니 훨씬 낫다. 이 정도면 오후 기도를 마친 뒤 온천에 한 차례 몸을 담그면 근육통과 피로는 전부 해소될 거다.

닌실은 오해한 것을 미안해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고맙소. 마사지를 받으니 몸 상태가 훨씬 나아졌소.》

“현월못에 몸을 담그면 좀 더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이런 상태로 저 차가운 물에 들어갔다간 감기에 걸리고 말거요.》

그렇게 대답하던 닌실은 하늘을 찌를 듯이 우람하게 서있는 사내의 양물을 보곤 얼굴을 붉혔다.

저 꼿꼿해진 기둥은 참으로 시선을 두기 민망하다. 그렇게나 했는데도 부족하다는 걸까?

사람들의 사랑 나누기에 대해서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저건 상식의 수준을 벗어난 거라고 눈치로 알 수 있다.

‘이엘이 성자님에게 홀랑 반한 이유를 알 거 같군.’

자고로 수컷이라면 사냥 능력과 생식 능력,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법이다. 그리고 성자는 누구보다 저 두 가지 분야에서 빼어남을 자랑하니…….

《…히얏?! 무, 무슨?》

생각에 잠겨 있던 닌실은 엉덩이골에서 시작된 기괴한 감각이 척추를 따라 찌르는 느낌에 허리를 곤두세우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몸을 돌리려다가 뭔가가 턱, 하고 엉덩이 쪽에서 잡아당겨져 중간에 멈춘다.

《……? ……??》

고개만 돌려 뒤를 본 닌실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자님의 손에 잡힌 건…… 뭐지. 내 비늘이랑 갈기 색이랑 비슷하게 생긴… 꼬리 같은데.

《성자님…? 그것은 무엇이오…?》

“대성녀님의 꼬리 아닙니까.”

……꼬리? 그게 내 꼬리라고??

닌실은 본체의 감각으로 꼬리를 움직여보았다. 그러자 머리카락 색과 흡사한 갈기에 뒤덮인 꼬리가 그의 손에 잡힌 채 움찔움찔한다.

꼬리가 왜 생겼지?

자리에서 일어난 대성녀는 그의 손에서 꼬리 끝을 빼앗은 뒤 조금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현월못 가장자리로 다가가 엉덩이를 비춰보았다.

그리고 수면에 비친 자기 얼굴에 눈을 크게 떴다.

《……어어?!》

기함하며 머리 위로 손을 올려 더듬던 닌실은 기린의 꼬리에 이어 귀까지 생겨났다는 사실을 깨닫고 반쯤 패닉에 빠졌다.

어째서 본체인 기린의 귀와 꼬리가 이 몸에 생겨난 거지?!

뿔은 기린의 상징이자 정체성인 만큼 변신한 상태에서도 나 있는 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귀와 꼬리라니, 이래서야 루크랑 종족의 여자나 다름없지 않은가!

닌실이 당황해서 머리며 꼬리를 확인하는 모습에 환인은 그 이유를 맞췄다.

‘저 신체가 기린 형태와 동기화되는 중인가 보군. 이유는…… 나 때문이겠지.’

닌실과 교접은 환인에게 수백 명분의 복잡다단한 영기를 녹여 하나로 만들어주는 동시에 그녀의 자궁에 맺혀있던 기운을 받아들이는 기회가 되었다.

자신에게 영기를 바친 여자들은 전부 신체가 최적화되어 더욱 아름다워진다.

자신도 모르게 환인에게 영기를 바친 닌실 또한 신체의 불균형이 해소되었고, 그게 기린의 귀와 꼬리의 발현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

《선기가 더 정순해졌다고……?》

멍하니 현월못의 수면을 들여다보던 닌실은 천천히 환인을 돌아보았다.

그녀 또한 일련의 변화 원인에 환인이 있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엘카타가 갑자기 전견시를 본 것. 근 두 달 만에 복귀한 아지에라 심문관이 떠나기 전과 비교해 더 아름다워지고 능력도 적지 않은 성장을 이루었던 것.

그리고 자신의 변화. 이 모든 것이 그와 관련이 있다고 꿰뚫어 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가능한 건가? 교접으로 능력의 상승을 이뤄주는 특성이라니, 맹세코 들어 본 적 없다.

‘그의 영혼 기사들이 그토록 아름답고 강한 것도 그럼……?’

그 순간 닌실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영도의 모든 여자를 그와 동침시키는 것이었다.

자신에게 드러낸 성적 욕구를 생각해본다면 육보시를 계기 삼아 그에게 제안을…….

《…….》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생각에 닌실은 고개를 작게 가로저었다.

그가 자신의 능력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그런 능력을 가지고도 밝히지 않은 것은 그 특성이 알려졌을 경우의 위험성을 읽었기 때문이겠지.

“대성녀님.”

그의 부름에 고개를 든 닌실은 재차 눈을 깜빡였다.

자신과 비슷하게 땀으로 범벅되어있던 환인이 어느샌가 깨끗해져 있었고, 그런 그의 손바닥 위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 검은 머리카락의 예쁜 요정 한 명이 다소곳이 앉아있었던 것.

“그 상태로 옷을 입는 것은 곤란하겠지요. 환연이 몸을 깨끗하게 만들어줄 테니 이리로 오시겠습니까.”

《…아, 음.》

꼬리가 생겨서 무게 중심이 조금 어긋나게 되었지만, 닌실의 원래 모습도 꼬리가 있는 만큼 금방 사용법을 익히고 타박타박 걸어서 그의 앞에 섰다.

“환연. 부탁한다.”

「날 뭐 편리한 샤워 도구처럼 여기는 거 아냐?」

성격이 깐깐한지 팔짱을 끼고 흘겨보는 모습이 제법 앙칼지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귀엽고 예쁘게 보일 만큼 요정의 외모는 신비로웠다.

흡사 성자님을 여자 요정으로 만든 것처럼…….

……아니, 이렇게 보니 정말로 성자님과 닮은 점이 많이 보인다. 요정의 날개도 보이지 않고 어린아이 5등신 체형도 아니고.

호기심에 환연을 살피던 닌실은 그녀의 눈높이에 맞춰 쪼그려 앉으며 부탁했다.

《면목이 없군. 돌아가서 요정 씨에게 줄 만한 보답을 찾아보겠으니, 몸을 씻는 걸 도와주시겠소?》

팔짱을 끼고 환인을 잠시 흘겨보던 환연은 엣휴, 한숨을 내쉬고 닌실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연못 주변에서 놀던 빛의 하급 정령과 물의 하급 정령이 다가와 둘이 힘을 합쳐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물을 대량으로 만들어낸다.

이어서 투명한 물이 출렁이며 자신의 몸을 기분 좋게 휘감는 움직임에 닌실은 제법 놀랐다.

자그마한 요정이 정령을 수족처럼 부려 2속성 정령합성술을 펼치다니. 성자님과 함께 다니는 이들은 다들 이처럼 특별함을 가지고 있는 건가.

「기린님. 자기 배 좀 눌러봐. 안에서 자꾸 뭐가 흘러나와서 끝이 없잖아.」

《응? 이, 이렇게 말이오?》

환인은 닌실이 발개진 얼굴로 지시대로 움직이며 몸을 깨끗이 하는 것을 구경하다가 옷을 챙겨입었다.

몸 안을 채우던 위상력은 심장에 모여있던 위상류가 다시 몸을 뒤덮으면서 전부 빠져나가 버린 지 오래.

북극광처럼 그의 몸을 휘감고 있던 황금빛 아우라도 위상력이 전부 빠져나가며 사라졌다. 몸을 채우던 힘도 덩달아 사라졌고.

「어휴. 안에 정액이 가득 찼나 보네. 손가락으로는 못 긁어내?」

《잠시… 직접 해보겠소.》

「……내가 도와줘?」

《아니…… 소녀가 알아서 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 읏.》

닌실과 이마를 맞댄 뒤에 몸에서 일어난 현상을 나름 기억해두었던 환인은 그걸 그대로 따라 해봤지만, 몸을 뒤덮은 위상류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비술이라고 했었으니 술법적인 요소가 있다는 건가. 비술사인 유르파라면 알지도 모르겠군.

나중에 유르파와 의논해볼 생각으로 수첩을 꺼내 당시 감각과 움직임을 기록하던 환인은 약간의 흔들림도 없이 거울처럼 고요한 현월못에 시선을 주었다.

어쩌면 저 물이 술법의 매개체일 수도 있다. 견본으로 조금 챙기고 싶은데.

허락을 구하기 위해 닌실을 돌아본 환인은 뜻밖의 광경에 말없이 그녀의 자태를 응시했다.

쪼그려 앉아 허벅지를 활짝 열고 두 손가락을 속에 집어넣어 하얀 액을 긁어내는 적나라한 모습.

낑낑거리며 꼼질 거리던 닌실이 환인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본다.

《왜 그러시오?》

“……아닙니다. 혹시 현월못의 물을 조금 담아가도 괜찮겠습니까.”

《괜찮소. 현월수는 질 좋은 회복제의 재료로 이용되기도 하니 유르파 영혼 기사에게 괜찮은 선물이 되겠지.》

한치의 동요도 없이 그리 말한 닌실은 마저 하던 작업을 이어간다.

“…….”

환인은 품에서 정수용 물주머니를 꺼내 조용히 현월수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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