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3화 〉 467 전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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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오네브레스의 최동단 혹은 최서단이기도 한 종족 연합 국가 메리아놀은 다섯 개의 본섬과 이블팩션과 한창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남부의 거대한 투전도戰?, 그 외 수백 개에 이르는 섬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도서?? 국가다.
태곳적 땅의 신이 바다에 주저앉으며 대지가 밀려나 융기되었고, 그렇게 융기된 땅이 섬으로 형성되었다는 신화가 존재하기에 메리아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땅신을 믿고 섬기는 이들이 대다수다.
메리아놀의 주요 종족은 전체 인구의 68%를 차지하는 플뢰와 프라우드지만, 그 외 땅신을 믿는 루크랑과 플라비우스, 사비족, 해비족도 있으며 기플라나 암드룩스, 노티엔 같은 희소 종족들도 모두 모여 함께 살아가기에 붙은 수식어가 종족 연합 국가.
그런 메리아놀의 서쪽 끝 섬 메이신의 가장 번영한 수목 도시 엘위드리스.
아직 동이 트려면 몇 시간이나 남은 심야지만, 도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궁성은 발칵 뒤집혀 파발마와 전서구, 정령편 수십 마리가 쉬지 않고 달리고 날아서 전언과 전서를 옮기는 중이다.
도시의 지배층인 귀족들 백수십 명 또한 등급을 가리지 않고 연락을 받는 즉시 입성하거나 의회에 소집되느라 그 소란에 도시가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뚜벅뚜벅—
달빛도 비추지 않는 어두운 대리석 복도. 두 명의 발걸음 소리가 침묵을 깨트리는 중에 남자의 고저 차 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출석은 얼마나 진행되었나.=
=원로원 15명 중 15명 전원 착석 완료하였습니다. 상원 귀족은 총 26명 중 23명이 입석하였습니다. 2명은 영지를 야습한 나가족의 격퇴에 나서서 자리를 비운 상태이며 1명은 노환으로 앓아누워 출석할 수 없다는 연락입니다.=
=예지 당사자의 소집은 어떻게 되었지.=
=이름리아 공녀 이하 21명 모두 견시 부서에 출두 완료하였습니다. 원로원의 제의로 주도 패시지에 파견 나가 있는 4급 예지관의 복귀가 진행 중이며 2시간 후 본성에 도착할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그녀를 불러들여야 할 정도인가.=
=특급 경보 발령 30분이 지난 현재 그 무엇도 특정하지 못하였습니다만, 특급 경보 당사자들의 미래 예지가 현재 진행 중이니 자료가 곧 올라올 것입니다.=
=……주괴가 누구인지도 아직도 밝혀내지 못했단 말인가.=
미래, 정체불명의 예지자가 예지한 수도?? 엘위드리스의 소멸을 포착한 게 30분 전이다.
특급을 넘어 위급으로 측정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재해 예지가 떨어졌음에도 주범의 정체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도시를 소멸시킬 수 있는 존재는 니오네브레스를 통틀어도 그 수가 많지 않다. 더욱이 그게 사람이라면 범위는 더욱 좁혀진다.
능력이 뛰어날수록 명성 또한 드높기 마련이니까. 그런데도 이 시간까지 무엇하나 특정하지 못하다니.
도시의 주인이 드러내는 노기에 보좌관은 목덜미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대답했다.
=주무관의 판단에 따르면 전견시가 발동한 것으로 파악되며 그 등급 또한 2계에 이를 정도라 합니다. 현재 분석관들의 역량으로는 단시간에 특정해내기 어려우리라 원로원에서 판단을 내렸기에…….=
=전견시라고?=
엘위드리스 시의 주인, 프슈드=오울=엘위드리스는 플뢰족 특유의 긴 귀를 곤두세우며 보좌관의 말을 끊었다.
=옛. 전견시가 틀림없다고 합니다.=
=본 가문에서도 전견시는 오직 한 분밖에 쓰지 못하는 걸 알고서 하는 말인가.=
보좌관은 대답 없이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
걸음을 멈추었던 프슈드 7급 귀족은 다시금 회의실로 걸음을 옮기며 고민에 빠져들었다.
특급 경보가 내려진 예지는 엘위드리스 가문의 혈계 예지술 계통이다. 그래서 평소 관측보다 더 빠르게 도시 소멸 예지를 포착한 것.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문에 고민이 깊어진다. 니오네브레스에 가문의 피가 가문 밖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그렇게나 노력해왔었는데 도시 밖에서 엘위드리스를 향한 파멸의 예지가 발생한 거다.
까마득한 선대의 핏줄에서 갈라진 누군가의 혈통에 격세유전이 발현된 것인가, 아니면…….
어두운 복도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 속에 20년 전 가문에서 추방당한 소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이엘…… 너인 거냐.’
혈계술을 개화하지도 못하고 영혼사로서도 각성하지 못해 후계 구도에서 일찌감치 탈락당한 아이.
만리타향 이국의 도시에 버려져 가문의 감시를 받으며 묘지기로 쓸쓸하게 살아가던 아픈 손가락.
어찌 된 일인지 마흔이 넘어 갑자기 영혼사로 각성했고 혈계술까지 개화했다는, 5천 년 가문의 역사를 되짚어봐도 유례가 없는 일에 프슈드는 일단 딸을 도시로 불러들였다.
아무리 천한 핏줄의 아이라 하여도 영혼사의 직업에 혈계술까지 개화했다.
가문의 노괴들도 이제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니 프슈드는 이제까지 챙겨주지 못한 그녀의 몫을 챙겨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딸은 돌아오길 거부하고 영도의 그늘로 들어가 버렸다.
딸이지만 딸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그 아이의 선택을 아비인 프슈드는 받아들였다.
원로원의 노괴들과 가문의 전통에 머리가 굳은 상원 귀족들은 혈계술을 밖으로 유출할 수 없다고 펄쩍 뛰며 어떻게든 데려와야 한다고 게거품을 물었지만, 영도는 신성불가침의 지역.
그곳을 공격한다는 것은 모국인 메리아놀은 물론이거니와 히스론드, 벨티칼, 라드세아 전체의 맹공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가뜩이나 예지 탓에 이런저런 적이 많은 엘위드리스 가문이다.
영도에서 나오지만 않으면 남은 평생 아쉬울 것 없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테니 프슈드는 그것도 좋다고 여겼다.
그래서 잊고 있었는데, 그 아이를 향한 모종의 작업과 수작질은 영도의 핑계를 대며 모두 불가 선언을 내렸었는데…….
‘어째서 지금 그 아이가 떠오르는 것인지.’
아름다운 수목과 땅신 랑그드란의 모습이 새겨진 대회의실의 강목문?門, 그 앞에서 프슈드는 후우…… 긴 숨을 내쉬며 마음을 정리하고 회의실에 입장했다.
=가주님께서 드십니다.=
천장의 샹들리에에서 내려오는 희미한 빛에 물든 한밤중의 회의실. 원탁을 둘러싼 38명이 그의 입장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들 앉지.=
상석에 앉은 프슈드는 자신의 앞에 놓인 보고서를 들어 살폈다.
회의실로 오기 전에 대강의 얼개는 들어두었지만…… 정식 보고서로 확인하자 참혹함이 생각 이상이다.
도시는 완전 소멸. 도시에서 살아가던 38만 명 시민 전원 사망 추정. 당시의 가주 및 가신들과 원로들 전원 사망. 그후 땅은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불모지로 변화.
프슈드가 보고서를 읽는 사이 미리 보고서를 읽은 가신이자 상원 귀족들과 원로원들이 대책 마련을 위한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한다.
당장 가문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흉수를 찾아야 한다는 원로원 측의 주장.
흉수를 찾기보다 이 상황이 어째서 벌어졌는지 원인을 규명하고 파악하는 게 먼저라는 상원 귀족들의 주장.
=그러니까! 여기에 그림으로 묘사된 불길한 빛기둥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다 보면 흉수의 윤곽이 드러날 거라는 뜻 아니외까!!=
=그 행동이 이 미래를 불러올 방아쇠일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섣불리 움직이기보단 특급 경보 당사자들의 미래 예지를 통해 제반 사항을 확인하여야…….=
=미적거리다 미래 확정의 요소가 맞춰진 뒤는 늦소! 주도의 보석궁에 알려 이 예지를 토대로 흉수를 찾는 동시에……!=
=너무 성급하시지 않습니까! 이름리아 공녀와 정체불명의 대상 사이에 오간 대화를 보면 우리 쪽이 사건의 발단을 제공하였을 확률이 높은……!=
원로 파벌과 상원귀족 파벌의 대립이 점차 과열될 양상에 프슈드는 탁, 소리 나게 보고서철을 내려놓았다.
=…….=
=…….=
엘위드리스 가문의 주인, 7급의 신비궁사???? 프슈드=오울=엘위드리스.
본신의 혈계술은 좋지 못한 편이지만, 그 혈계술의 특성과 희귀 직업인 신비궁의 궁합이 잘 맞아 일인 군단급의 전투력을 발휘한다는 신비궁사.
홀로 대양의 8급 소용돌이 괴수 칼라미디어를 격파하고 그 위업으로 가주의 직에 오른 남자가 기운을 갈무리하지 않고 방출하자 대회의실에 침묵이 내려앉는다.
=원로 측이 간과하고 있는 점 하나가 있소.=
=……무엇이옵니까.=
=사건의 발단은 이름리아가 일으켰으며 엘위드리스의 제거에 영도와 4대 국가 전부 찬동하였다는 것.=
=그렇다면 이름리아 공녀의 가주 도전권 자격을 박탈하고…….=
프슈드는 작열하는 모래사막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아우라를 마음껏 뿌리며 언제나 극단적인 방편만 입에 담는 원로 원주를 응시했다.
=이름리아를 공녀 직에서 내리는 것이 격철을 당기는 행위일 수도 있소.=
=…….=
=그러나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는 법이겠지. 이 시간부로 이름리아의 공녀 권한은 동결, 사건의 정황이 명확해질 때까지 차기 가주 교육도 정지하겠소.=
감정이 옅은 황금빛 눈동자가 무미건조하게 상원 귀족 측으로 향한다.
=사르스리아. 이 예지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조심스레 역추적하라. 내부의 인력 차출 권한을 2급까지 허용하지. 단, 외부의 접촉은 일절 허락하지 않는다.=
=옛.=
=코트르난 원로 원주.=
=예, 가주.=
=보석궁의 예지관을 불러들인 건 실수였소. 상주 예지관을 불렀다는 사실은 곧 이쪽에 무언가 사달이 발생했음을 알리는 행위 아닌가.=
=크으음…….=
자신에게 허락받지 않고 원로원의 권한으로 움직인 것을 돌려 까자 주름이 완고하게 새겨진 은발의 플뢰가 작게 침음을 흘린다.
=특급 경보를 외부에 알리지 않고 예지관을 돌려보낼 방안을 동이 틀 때까지 정리하여 가져와 주시기 바라오.=
=그리하겠습니다.=
=예지관리 부서장은 최우선으로 특급 경보 대상자의 미래 예지를 진행하여 최대한 빨리 정보를 모으도록 하고, 치안부정감은 소란이 발생한 도시의 치안 확보에…….=
몇 명을 지적하며 할 일을 지시한 프슈드는 가라앉은 눈으로 특급비??? 인장이 찍힌 보고서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토록 명백하고 확실한 엘위드리스의 소멸 예지는 역사를 뒤져보아도 처음일 것이오. 특급 경보가 나온 이상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 정적이 알아차린다면 공격의 빌미로 삼을 것이 틀림없소.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최대한 빨리, 내막을 밝히고 자초지종을 파악하여 그 미래가 오지 않는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하고. 각 부서 간의 알력 다툼은 지금부터 해제를 명할 때까지 엄금하겠소.=
==옛.==
=바로 움직이시오.=
프슈드의 지시에 원로원 측과 상원 귀족 측이 일제히 일어나 웅성거리며 대회의실을 빠져나간다.
그들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보고서만 바라보던 프슈드는 일급 보좌관 한 명만 남았을 때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이엘의 일이 계속 떠오르는 것은 기분 탓이 아니겠지.=
=……가주님의 예감입니까.=
미래를 안다는 의미에서의 예지는 계열이 세분화되어있다.
점성술과 수견식으로 미래를 점치는 점술에서부터 예지, 예감, 예언 같은 보다 직접적인 방식까지.
프슈드의 혈계술은 엘위드리스 가문 내에서도 다소 희소한 예감??으로 다소 가까운 근미래에서부터 머나먼 원미래까지 예지 범위가 드넓지만, 직관적이지 않고 다소 주관적인 방식에 발동 빈도 또한 제멋대로여서 실제 예지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특수한 경우에 발동하면 그 정확도는 무시 못 할 정도로 높은 편.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프슈드의 모습에 일급 보좌관은 기감을 돌려 주변에 엿듣는 귀가 없음을 재차 확인한 다음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허락하신다면 극비리에 이엘카타 님의 주변을 조사해보겠습니다.=
프슈드를 바로 곁에서 모신지도 70년째. 일급 보좌관 유르리시아는 여자답지 않은 날카로운 눈매를 번뜩이며 주인의 심정을 읽고 입을 열었지만, 프슈드는 고개를 가로저어 불허했다.
=그 아이는 두고 이름리아의 주변을 다시 조사해봐라. 문제가…… 있다면 그쪽일 듯하니.=
=분부대로.=
유르리시아는 허리를 깊게 숙여 존경을 표시한 뒤 소리 없이 대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샹들리에의 빛도 꺼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차가운 대회의실.
프슈드는 창밖으로 창백한 반달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겨 들었다.
‘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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