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1화 〉 465 영도 에쉬누르
* * *
이엘카타의 사과에 환인의 눈빛이 일순간 미묘해졌다.
법 없이도 살아갈 것처럼 선하고 착하게 생긴 아가씨가, 외모처럼 실제로도 선량하기 그지없는 이엘카타가 백려강에게 죄를 저질렀다니.
그 감상은 안느와 백려강도 마찬가지였다.
묘지기로 지냈다면 영혼사가 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수행했다는 이야기잖아. 그리고 결국 영혼사가 됐고. 그런 사람이 죄를?
안느는 이엘카타가 어떤 죄를 저질렀기에 동족의 관점에서, 그리고 환인의 여자 관점에서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
왠지 자신이 낄 때가 아닌 것 같아 입을 꾹 다물고 슬쩍, 두 걸음 떨어져 관망하기 시작했다.
그런 안느를 힐끔 쳐다본 백려강이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질문한다.
「이엘카타 님. 저…… 잘못 알고 계신 게 아니신가요?」
[저는 당신의 미래를 읽고 질투심에 예지 내용을 전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두루뭉술하게 말하고 듣는 사람이 적을수록 해당 미래가 더 정확하게 찾아오는 법입니다.]
[그렇다고는하나 선택에 균형의 추가 쏠릴 만큼 편파적으로 알려드린 거예요.]
「엣.」
글을 보고 한순간 놀랐던 백려강은 잠시 생각했다가 의아함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제가 선택할 분기점이 두 가지였던 것은 맞죠?」
[네.]
「첫 번째 선택지는 제가 알소프 영주에게 시집가는 것. 두 번째 선택지는 환인 님과 함께 하는 것이구요.」
[네. 하지만 두 번째 선택지는 당신이 선택하지 않길 바라며 정확한 예지를 알려드리지 않앗ㅅ습니ㄷㅏ.]
감정이 흐트러지는지 마지막 단어의 형태가 살짝 무너진다.
그걸 옆에서 쭉 지켜본 환인의 눈빛이 의혹이 풀린 것처럼 평범하게 돌아갔다.
질투심, 사죄, 이엘카타가 알려주지 않은 것.
이 이후 모종의 사건을 통해 백려강이 신체를 되찾아 행복해진다는 예지겠지. 이엘카타는 그로 인한 질투 때문에 백려강에게 심술을 부렸던 것이고.
‘그것을 죄라고 한다면 나는 극악무도한 대악당이겠군. 그보다…….’
이엘카타의 질투심과 자기혐오가 이해되지 않는다.
저만한 예지 능력자라면 동료로 영입할 의향이 충분하다. 그녀가 원한다면 충분히 일행이 될 수 있을텐데 어째서 백려강에게 심술을 부린 걸까.
‘……그렇군.’
자신과 함께해서는 안 되는 중대한 모종의 사건을 미래 예지로 읽은 거겠지. 선택지를 골라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예지 능력을 보유했음에도 동행을 포기할 정도의 예지 말이다.
피할 수 없는 죽음, 비명횡사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어렴풋이 대성녀가 꾸미는 계획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의도치 않게 백려강과 이엘카타의 대화에서 그 실마리를 얻다니.
「이엘카타 님은 제가 겁먹고 첫 번째 선택지로 가는 걸 바라셨던 거네요…….」
[네. 예지자로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그런 거였구나. 백려강은 안도의 한숨을 한 번 내쉬고는 활짝 웃으며 이엘카타의 손을 잡았다.
「이엘카타 님. 그렇게 자책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저는 환인 님과 헤어진 후 웨이포드 성에서 이엘카타 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무엇하나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선택을 미루기만 하던 한심한 여자였어요.」
=…….=
「그랬는데 이엘카타 님의 예지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거예요. 다시 말씀드리자면 이엘카타 님의 예지가 있었기에 환인 님을 기다릴 용기를, 그 돼지 같은 영주에게 시집가지 않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거지요.」
[하지만]
회화 판에 부정적인 글을 적으려는 이엘카타의 오른손을 꼭 감싸 쥔 백려강은 원망이나 증오는 한 점도 없는 표정으로 이엘카타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비록 육신을 잃었지만 저는 후회하지 않아요. 당장 내일 승천하게 되어도 조금의 아쉬움을 느낄지언정 괴로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을 거예요. 저에게는 지금 이 순간 순간이 제 선택의 보상이니까요.」
=……!=
이엘카타는 자신의 손을 잡은 백려강의 손을 덮어 쥐며 어깨를 떨었다. 턱선을 따라 흘러내린 눈물방울이 툭, 투둑, 회화 판으로 떨어진다.
그녀들의 대화를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환인은 자신이 보았던 것을 자료로 삼아 그녀의 능력을 분석해나갔다.
‘이엘카타의 금언 수행은 예지력을 올리기 위한 일상 금제일 확률이 높다. 대성녀는 그런 이엘카타의 도움을 받으며 영도의 정국을 꾸려나가고 있을 터.’
백려강의 용서와 포옹에 눈물짓는 이엘카타의 표정은 조금 전보다 한결 편해졌지만, 그럼에도 그림자가 짙다.
그 뜻은 일상 금제를 통한 자기 수양으로도 자신과 함께하는 미래를 찾지 못했다는 것.
‘……아드네빌라와 대성녀는 내 영혼에 묻은 천정의 흔적까지도 읽고 맡을 정도의 눈을 지녔지만,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두 존재는 자신의 문양에 대해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 세상에 미궁을 돌파하고 심핵을 부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절대 흔하지 않을 거다.
거의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다니는 수준으로 여행한 지난 2년간 4급이나 5급 이상 미궁은 생각보다 적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중 다수의 미궁은 도시에 붙어있다. 도시가 빡빡하게 관리하는 미궁을 무너트리는 일은 절대 엄금이니 실상 4~5급 이상의 미궁을 돌파해 소원력을 모으고 있는 인간은 손에 꼽겠지.
아드네빌라와 대성녀와 대화할 때는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음에도 그들이 이 문양에 신경 쓰는 기색은 티끌만큼도 느낄 수 없었다.
그만한 신수, 격 높은 존재도 보지 못하는 것이 있는 마당에 평범한 존재의 미래 예지가 모든 것을 볼 수 있다고 단정 짓는 것은 옳은 일일까.
‘그럴 리 없지.’
미래 예지가 그만큼 전지하다면 예지 능력자를 보유한 곳은 다른 국가를 찍어누를 정도로 강대해져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 보기에 종족 연합 국가 메리아놀의 국력은 라드세아, 벨티칼, 히스론드와 막상막하다.
의구심은 또 있다.
이엘카타의 가문인 엘위드리스는 예지로 유명한 가문이라 들었다. 그녀 외에도 예지 능력자가 있을 것이 당연하겠지.
그런데도 이엘카타를 가문으로 끌고 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예지로도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 대성녀가 날 후계자로 삼으려는 것도 이엘카타의 미래 예지가 최근 들어서 날 대상으로 할 수 없게 되었고, 그간 해온 예지에 가설을 세워 만든 계획이라면 아귀가 맞아떨어져.’
물론 확실하지 않은 가정이 포함된 가설이지만, 적어도 이엘카타의 미래 예지가 전지하지 않고 자신에 대해서도 이제 예지를 못 한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백려강 님. 정말 미안해요.]
「저는 정말로 괜찮으니까요.」
그렇게 대답하는 백려강은 정말로 괜찮아 보였다. 아니, 오히려 기쁜 기색이 언뜻언뜻한다. 이엘카타의 이야기는 그녀가 어떻게든 자신과 맺어진다는 이야기였으니까.
“…….”
환인은 이엘카타를 동료로 영입할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예지는 확실히 군침이 도는 능력이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확실한 폭탄을 껴안고 가는 취미는 없다.
그 당시 연서에 가까운 편지를 사람을 통해 보낸 이유는 영혼사라는 또 다른 커넥션, 그리고 종족 연합 국가 메리아놀에 귀족 인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사정을 알게 되었다.
이엘카타를 데리고 영도를 빠져나가면 그녀를 되찾기 위한 엘위드리스 가문의 추적을 받게 되는 것은 확정이다.
가뜩이나 메리아놀에서 사건을 벌일 예정인데 거기다 예지를 가진 적을 보태는 것은 하책 중의 하책.
‘하지만 그녀의 호감도를 버리는 것도 아깝지.’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며 대성녀가 곁에 두고 있다는 것은 그녀 또한 차후 영도 내에서 높은 지위에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
영도에서 나가지만 않으면 그녀도 안전히 지낼 수 있으니…….
환인은 백려강에게 안겨있는 이엘카타를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랬군요. 이엘카타, 제가 당신과 함께하면 제 신변에 큰 문제가 생기는 거였습니까.”
흠칫 떨리는 가녀린 신형. 그녀의 황금색 눈동자가 흔들리며 ‘어떻게 그 사실을 아셨나요?’하고 묻는다.
훤히 보이는 반응에 환인은 속으로 피식 웃으며 질문을 추가했다.
“백려강에게 질투심을 품을 정도로 저를 사모하면서도 저와 함께 떠나려 하지 않는 것은, 당신이 제 미래를 수없이 읽었고 빠짐없이 제가 살아남지 못하는 미래를 보았기 때문이겠지요.’
=그…! 읍.=
소리 지르려다가 두 손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는 안느.
그것을 못 들은 척 환인은 손을 뻗어 이엘카타의 찬란한 금빛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위로하듯 말을 건넸다.
“미안합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게 늦어 당신에게 상처만 주었군요.”
=……!=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다 와락, 환인의 품에 안기며 소리 없이 오열하는 이엘카타. 환인은 그녀의 가녀린 신형을 끌어안고 조용히 등을 다독였다.
부엌의 탁자에 도구를 늘어놓고 술법진을 그리기 위한 시약과 술법진 고정제를 배합하던 유르파는 안느와 백려강이 들어오는 모습에 고개를 들었다.
=이야기는 끝났니?=
=어어. 영성님은 돌아가셨고 이엘카타…… 씨는 도령이랑 방에 들어갔어.=
그런데 탁자로 다가와 빈 의자에 앉는 안느와 백려강의 모습이 조금 이상하다.
기운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뭔가 기운 빠진 모습인데다 심각한 것 같은 얼굴인데 한편으로는 안도한 느낌?
이실리테가 차를 가져와 나누어주며 물었다.
=표정이 이상하네. 신경 쓰이는 이야기라도 들었어?=
「조금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엘카타 님이 환인 님의 여정에 동참하지 않은 이유가…….」
이엘카타의 이야기 이후 환인의 추리에 안느와 백려강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니. 그 문제가 심각해서 그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니.
=이엘카타 씨가 주인님과 함께하지 않은 이유가 그거 때문이었군요…….=
파편적인 이야기로만 그녀의 존재를 눈치챘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이엘카타라는 여자는 환인에게 상당한 사모의 감정을 지닌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도 그의 여행에 따라나서지 않은 이유가 조금은 궁금했었는데 설마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예지나 예언은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어긋날 가능성이 크다고 들었어요. 우리가 알게 된 게 혹시 문제로 번지는 건 아닐까요?」
=그건 아냐. 예지한 본인이 직접 말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알게 되어서 예지가 어그러지려면 수백 명은 넘어야 하는 데다가 이엘카타 씨랑 도령의 여행이 그 예지의 발동 조건이니까……. 도령도 그걸 알게 되었으니 그녀랑 같이 여행을 떠나진 않겠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르파는 시약을 조합하던 손까지 멈추고 으음, 침음을 흘리며 말했다.
=자기는 필요하다면 위험 속으로도 걸어 들어가잖니. 린덴 촌락의 지하 개미굴이나 산란못 미궁도 그렇고. 이엘카타 씨는 자기랑 같은 영혼사인데다 예지라는 굉장히 희소하고 유능한 능력을 지녔으니까…… 데려갈 수도 있다고 봐.=
=그것도…… 그렇긴 한데…….=
「음…….」
여자들은 조금 미묘한 표정으로 신경 쓰인다는 듯이 환인의 방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 시각, 환인은 이엘카타와 함께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이엘카타는 때때로 움찔 흠칫거리며 손을 슬쩍 빼려 했지만, 그때마다 그의 손아귀에 힘이 강해져 손을 꽉 붙잡는다.
“저와 한 방에 있는 것이 싫은 겁니까.”
세 번째 손을 빼려고 시도하던 이엘카타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움찔하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런데 왜 자꾸 도망치려 하는 겁니까.”
…….
이엘카타는 대답하고 싶어 회화 판으로 시선을 주며 오른손을 움찔거렸지만, 그가 손을 강하게 잡고 있어 도저히 뺄 수가 없다.
이 손 좀 놓아 달라는 것처럼 살짝 들어 보였지만, 부드러운 미소로 바라보고 있는 그는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놓아주지 않을 거면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재촉하다니. 조금 심술궂어…….
이게 왠지 연인들의 장난 같은 느낌에 이엘카타는 상황도 잊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님이다. 무려 2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러 재회한 마당. 머리로는 그와 함께 있어선 안 된다는 걸 이해하지만, 가슴은 이 상황이 마냥 좋아 심장이 콩닥거린다.
그때 자신의 오른손을 잡고 있던 그의 손아귀에 힘이 빠져나가는 걸 느낀 이엘카타는 좀 더 잡아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과 이제야 대답할 수 있겠다는 안도감 사이에 살짝 혼란스러워하다 회화 판에 손을 뻗었다.
좀 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적으려던 이엘카타는 직전에 망설였다.
대답을 적고 싶지 않다. 하지만 대답을 적어야 한다. 대답을 적으면 님과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될 텐데 그건 싫다. 그렇다고 대답을 적지 않으면 님이 죽는 미래가 찾아올 수 있다.
꾸욱…….
아담한 손으로 주먹을 꼭 쥐었던 이엘카타는 검지 끝에 위상력을 맺어 회화 판에 글을 적어 내려갔다.
[환인 성자님. 저는 님과 함께해서는 안 됩니다.]
[저와 함께하면 당신에게 죽음이 찾아올 것입니다.]
[죽더라도 제가 죽어야 할 일. 님께서는 삶을 보전하셔야 합니다.]
그녀가 적는 글을 바라보던 환인은 손을 들어 옆머리와 함께 눈매를 상냥하게 어루만져주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길고 뾰족한 귀에 닿자 토끼귀처럼 쫑긋하더니 불그스름하게 변해간다.
“그 ‘함께’라는 것은 어디에서 어디까지입니까. 저와 당신이 ‘함께’ 여행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처럼 ‘함께’ 같은 방에 있는 것도 안 되는지 궁금하군요.”
……그런 식으로는 미래를 보지 않았는데.
자신이 본 것은 함께 여행도 가고 같이 살아가는 쪽의 문제였다. 지금처럼 잠깐잠깐 만나는 것도 불가능한 걸까?
머뭇거리는 이엘카타의 손을 본 환인은 속으로 눈을 빛내며 물었다.
“함께 여행하는 것은 안 되지만 지금처럼 같은 방에 있는 정도는 문제가 없나 보군요.”
이엘카타는 그의 이야기에 섞인 함정을 눈치채지 못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본 미래는 님과 모든 것을 함께 하며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같은 일은…… 보지 않아서 모릅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지금 봐주면 되겠군요.”
질문을 던진 환인은 이엘카타의 표정이 순간 흐려지며 시무룩해지는 것을 포착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저는 이제 님의 미래를 예지할 수 없습니다.]
“…….”
이 중요한 사실을 이리 쉽게 대답하다니. 그녀나 대성녀는 자신을 적대할 생각이 아예 없는 게 확실하군.
환인은 또 다른 유도 질문을 던지기보단 그녀를 위로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해 그녀의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키스 각을 만든 뒤 그녀의 앵두 같은 입술을 덮었다.
=~~!=
환인의 품에 안겨 아기 새처럼 파르르 떠는 이엘카타.
“미안합니다. 당신을 괴롭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
입술만 닿는 가벼운 키스만으로도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기 시작한 이엘카타는 뜨거워진 자신의 얼굴을 감추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글을 다시 적었다.
[어느 쪽ㅇㅣ든 안전을 위해서는 잠ㅅㅣ라도 과 함께 있는 것은 좋지 않니다.]
[제가 님과 긴밀한 사이가 수록 위험이 커ㅈㅣ니까요.]
역시 닥쳐오는 불행한 미래는 엘위드리스 가문 때문인가. 그녀의 흐트러진 마음이 글에도 드러나고 있지만, 못 본 척하며 물었다.
“그런 거라면 이렇게 절 찾아와서도 안 되는 일이 아닙니까.”
[하지만 백려강 님에게 사ㄱㅘ하기 위해서는]
“그것은 나중에 백려강만 따로 불러내 이야기해도 되는 일이지요. 그럼에도 이렇게, 제가 대성녀님과 면담한 이후 곧장 찾아온 것은 제가 보고 싶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만.”
[그]
“제 눈을 보십시오. 그리고 제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저어서 대답하십시오.”
그녀가 글을 적지 못하게 오른손을 강하게 잡은 환인은 그녀의 눈을 불타는듯한 강렬한 눈빛으로 응시하며 물었다.
“제가 싫습니까.”
=……!=
그럴 리가…… 없잖아요. 당신을 싫어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처음에는 자신의 순결을 가져간 남자로서, 힘들 때 자신을 위로해준 남자이자 자신이 영혼사가 될 수 있게 큰 도움을 준 선배로서 약간의 호감과 호의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만한 남자가 없었다는 것과, 영혼사로 각성하며 빛의 강을 겪고 그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면서 그를 향한 감정 또한 농밀해졌다.
그래서 그와 자신의 미래를 예지해보았었다. 충격을 받고 더 많은 미래를 예지하며 그의 다양한 모습을 보았다.
자신에게 웃어주는 모습, 자신을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모습, 자신을 위해 이벤트를 준비하고 한 침대에서 서로 껴안고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
자신을 위해 싸우며 자신 때문에 세상을 멸망으로 몰아가던 모습.
그걸 보며 그에 대한 연모의 감정이 대책 없이 깊어졌다. 그런데 어찌 그를 싫어할 수 있을까.
환인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이엘카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물었다.
“저도 당사자이니 당신의 예지를 들을 자격이 되겠지요. 이야기해주십시오. 어떤 미래를 보았는지, 얼마나 자주 미래를 보았었는지.”
이엘카타는 그 요청을 거부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훌쩍이며 자신이 보았던 미래를 적어 그에게 전해주었다.
그것을 통해 이엘카타의 예지 매커니즘과 함께 어째서 자신이 죽는지 알게 된 환인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계획을 떠올렸다.
그게 가능할까. 가능하기만 하면 예지 능력자와 예지 가문이라는 거대한 힘이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오는 셈인데.
고민하던 환인은 버림받고 미움받을까 두려워 조금씩 떨고 있는 이엘카타에게 물었다.
“이엘카타. 당신이 엘위드리스 가문을 승계하는 미래를 볼 수 있습니까. 제가 가진 모든 힘으로 당신을 돕는다는 전제로 말입니다.”
=…….=
뜻밖의 이야기였는지 눈물 젖은 얼굴로 그를 멍하니 바라보던 이엘카타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붕붕 저었다.
[가문의 예지력 절반은 가문에 닥칠 위험과 미래를 읽는 데 사용됩니다.]
[제가 그러한 목적으로 미래를 예지한다면 가문의 예지관들이 곧바로 알아차리게 될 거예요.]
[그러면 가문은 님을 어떻게든 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동원할 것입니다. 그 미래는 읽을 수 없어요.]
특정 인물의 미래는 읽지 못해도 그런 식으로 주변 정황을 통해 행적을 유추할 수는 있나 보군.
정보를 정리하고 생각을 마무리 지은 환인은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엘카타를 안심시키듯 다독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당신의 가문을 어떻게 해볼 생각은 말아야겠습니다.”
당분간은 말이다.
‘엘위드리스 가문은 내버려 둘 수 없겠어.’
이엘카타는 영도에서 나와선 안 된다.
그녀가 영도 밖에서 활동하는 것이 엘위드리스 가문의 역린을 건드리는 기폭제가 되고, 그로 인해 스노우볼이 굴러가 작게는 몇 명의 사망으로 그치지만 크게는 세상의 멸망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몇 명의 사망 쪽이든 세상의 멸망 쪽이든 자신과 이엘카타 및 자신의 여자들이 들어가 있다는 것.
영도와 대성녀가 자신의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한동안 이곳에서 혼옥술에 대해 공부하고 능력을 가다듬도록 하자.
그 뒤에는…….
잠재적인 적을 내버려 둘 필요는 없겠지.
환인은 이런저런 대화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그녀를 보며 작게 웃다가 그녀의 손에 들린 회화 판을 뺏어 침대 옆으로 내려놓았다.
“아무튼, 제가 죽게 되는 이유는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슬쩍 밀어서 침대에 눕힌다.
풀썩하고 쓰러지며 침대 위로 부채꼴처럼 퍼져나가는 그녀의 황금색 머리카락. 환인은 그 머리카락을 피해 그녀의 몸 위로 올라가며 길다란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을 놓아줄 생각은 없습니다.”
=……?!=
이엘카타는 눈을 깜빡이다가 당황한 얼굴로 회화 판을 찾아 침대 위를 더듬는다.
“저는 욕심쟁이입니다. 당신의 처녀와 마음을 가져간 이상, 당신을 남에게 줄 생각은 없습니다.”
귓가에 닿는 숨결과 목소리에 부르르 몸을 떤 이엘카타는 한발 늦게 그 이야기의 뜻을 깨닫고 반쯤 울상으로 환인을 올려다보았다.
저와 가까워지면 안 돼요……!
“아시겠습니까? 당신은 이제 제겁니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모두 가져가는 듯한 속삭임에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그의 손이 자신의 옷을 벗기는 걸 붉어지고 힘 빠진 얼굴로 바라만 보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