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462화 (462/813)

〈 462화 〉 456 오를나하 대평원

* * *

웅성웅성

술렁술렁

두 아이를 데리고 마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 환인은 더 늘어난 일행을 볼 수 있었다.

조금 헤진데다 여기저기 꿰맨 흔적의 옷을 입고 있는 노년과 중년의 남녀 네 명.

‘저 자들이군.’

아이들이 호브에게 잡혀가고 아이들의 부모, 그리고 조금 무술을 배운 여자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갈 때 자기들은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도망친 사람들.

그들은 무기를 패용하고 갑옷과 로브를 입고 있는 환인 일행이 지체 높은 분들로 보여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한데 모여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환인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

소리 없이 딸꾹질하며 어깨를 떠는 은색 머리카락에 은색 눈동자의 여우 귀 소녀.

그런 여동생을 꼬옥 안고 불안한 눈동자로 주위를 살피는 은색 여우 소년.

영특하다. 영특함이 지나쳐 자신들의 처지를 깨닫고 부모님과 영영 이별했음에도 눈물을 악착같이 참고 있는 아이들에게 눈길을 주었다.

환인의 시선을 받자마자 흠칫 놀라며 벌벌 떠는 아직 어린 아이들.

아이들은 순찰대 무사님들과 고등급의 영혼 기사님들, 특히 다른 누구보다 아름답고 강한 기사님들의 공경과 존경을 받는 환인이 이 일행에서 가장 높은 분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상상하는 것보다 더욱 높으신 분이라는 건 곧 두려움의 대상이다.

환인은 자신이 가까이 갈수록 달달 떨다가 이내 눈을 질끈 감는 두 아이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추며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쓰다듬어주며 약하게, 아이들만 뒤덮을 정도로 평온의 파동을 펼쳤다.

=세상에. 평온의 파동을 저렇게나 완벽하게 조절하시다니……!=

=정말로 녹색 성자님이시군요. 대단한 영혼술입니다.=

평온의 파동 효과에 겨우 떨림이 가실 무렵 주변 무사들의 조금 큰 목소리가 아이들에게 닿았고, 그 때문에 아이들이 다시금 벌벌 떨기 시작했다.

기껏 진정시켜놨더니.

환인은 화난 눈빛을 무사들에게 향했다. 그리고 무사들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고개를 숙이며 입을 꾹 다문다.

진짜로 화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을 조용히 시키기 위해서는 현재 분위기상 이게 가장 빠르면서도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을 뿐.

효과가 지나쳐서 마차 주변이 침묵에 잠겨 들었지만, 환인은 조용해진 환경에 조금 만족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이름은 환인이다. 너희들의 이름은?”

=…저, 저는 아르핀이에요. 여동생은 이아라구요. 전 일곱 살이고 여동생은 여섯 살이에요….=

조금씩 떨고 있지만 목소리는 똘망똘망하고 눈동자도 선명하다.

=구,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환인 영혼사님.=

“…….”

=그, 그리고 어머니도 성불시켜주셔서… 가, 감사합니… 크응. 감사합니다아.=

하지만 아이는 아이인지 눈물이 금방 그렁그렁 차오른다.

환인은 왠지 모르게 한숨이 나오는 것을 느끼며 두 아이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어주었다.

“벌써 그런 걸 알고 있다니, 어린데도 영특하구나.”

=…….=

=…….=

“사랑하는 엄마 아빠와 헤어져서 슬프겠지만…… 사람은 언젠가는 부모님과 헤어져야 한단다. 아저씨도 부모님과 일찍 헤어져서 너희들의 마음이 어떤지 조금은 알고 있지.”

=우으….=

은색 여우 머리 소년의 품에 안겨있는 여자아이에게서 울먹임이 흘러나온다.

환인은 두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아주며 작게 다독여주었다.

“부모님과 조금 일찍 헤어졌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거다. 그 외에는 걱정하지 말거라. 너희가 무난하게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아저씨가 뒤에서 조금이나마 도와줄 테니까.”

=가, 감사합니다…….=

=……감사함니다….=

훌쩍이면서 감사 인사를 하는 아이들.

아이라는 탈을 쓴 악마들에게 몇 번 시달리고 그런 악마를 방임하는 미성숙한 인간들에게 데였던 경험이 있는 환인은 애들 자체를 안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눈치 빠르고 착한데다 분위기를 볼 줄 아는 아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이 아이들의 엄마가 눈빛으로 아이들을 부탁한다고 한 이상, 최소한 사람의 도리 정도는 할 생각이었는데…….

“…….”

자리에서 일어난 환인은 유르파와 백려강을 불러 두 아이를 챙기라고 지시한 뒤, 아까부터 아이들을 향해 눈길을 주며 성질을 긁는 노년과 중년 남녀 촌민들에게 다가갔다.

촌민들은 환인의 접근에 황급히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자세를 한다.

그 모습에 웃는 얼굴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일어나십시오. 저는 여러분들에게 기도를 받을 이유가 없는 사람입니다.”

=여, 영혼사님…….=

부드럽고 편안함을 주는 목소리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은 이야기에 개 머리의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환인을 부른다.

환인은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할 말을 계속했다.

“사람으로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나 가진 법입니다. 같은 처지에 여러분들만이라도 살기 위해 한 행동을 두고 무어라 할 생각은 없습니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

=…….=

“하지만 행동을 결정했다면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은 끝까지 져야하지 않겠습니까…….”

그저 목소리만 한 옥타브 내려갔을 뿐인데 주변 온도가 단숨에 5도는 떨어진 듯한 느낌이 좌중을 휘감는다.

환인의 살기에 가까운 기백을 근거리에서 받게 된 촌민들은 숨도 못 쉬고 벌벌 떨었다.불가사의한 기백에 몸이 굳은 것은 순찰대 무사들 및 영혼 기사들도 마찬가지.

그의 여자들만 조용히 네 명의 인간 군상을 바라보고 있다.

환인은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을 느끼며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살겠다고 아이들을, 아이들을 구하겠다고 달려가는 사람들을 버리고 도망쳤으면서. 사람으로서 양심이 있다면 이제 와서 아이들에게 빌붙을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는 법입니다.”

근래에 들어 여자친구들 덕분에 조금 완화되었다지만, 누구보다 비인간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26년을 넘게 살아온 환인이다.그랬기에 촌민들의 생각 따윈 눈에 훤히 보였다.

하지만 촌민들은 계속 거짓말을 고집하면 어떻게든 될 거로 생각했고, 자신의 거짓말을 계속 주장했다.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요! 저희는 순례길에 만난 저 아이들을 이때까지 손주처럼 여겼습니다요!=

=도, 도망간 것도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이노옴!! 감히 성자님을 능멸하는 것이냐!!=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호통 소리가 세르넨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변명과 핑계, 거짓말을 주워삼키던 순례자들이 히이익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땅에 처박는다.

세르넨도 보았었다. 환인이 아이들을 책임지겠다고 말하자마자 그쪽을 힐끔힐끔 바라보던 네 명의 표정이 순간 간사하게 변한 것을 말이다.

환인의 이야기와 세르넨의 호통에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알아차렸다.

도망쳤다는 것 = 사실

도움을 구했다는 것 = 사실

하지만 도움을 구하러 도망친 것이 아니라, 도망치던 중 우연히 순찰대를 만나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다.

=사람이, 사람이 어찌 그런……!=

선후 관계에 따라 의미가 180도 바뀌는, 사람을 우롱하기 위한 거짓말에 세르넨은 이마에 핏대가 솟을 정도로 분노했다.

무려 녹색 성자의 후견을 받을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을 보살피는 역할이라면 얼마나 평온하고 안락한 삶이 보장될 것인가. 이 인간들은 그걸 노리고 이딴 거짓말을 입에 담으며 아이들을 거두려 한 것일 터.

=성자님께서 후견하시겠다 말씀을 꺼내시자 표정이 간사하게 변한 것을 못 보았을 거라 생각했나! 이런 짐승신님의 천벌을 받을 작자들 같으니!!=

=아니… 그런 게 아닙니다요…….=

벌벌 떨면서도 연신 아니라고 주장하는 몰염치한 인간들의 작태에 세르넨은 참지 못하고 허리춤의 검병에 손을 주었다.

그녀가 약간의 각오만 더 잡힌다면 네 명의 목이 짚단처럼 베어져 떨어질 상황.

그러나 마차의 문이 열리며 영혼 심문관의 의복을 단정히 차려입은 아지에라가 내리는 것을 본 세르넨은 울화를 삼키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섬기는 영혼사님이 보는 곳에서 피를 뿌릴 수는 없는 일이니까.

순찰대 무사들이 좌우로 물러서며 허리를 숙이자 바뀐 분위기에 목이 떨어질 뻔한 것도 모르고 촌민들이 슬금슬금 고개를 든다.

그리고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아지에라를 목격한 촌민들은 그녀가 자신을 윽박지르던 환인보다 더 높은 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저 남자는 아우라도 없다. 차림도 어디 흔한 모험가. 다른 모험가와 차이점은 가죽옷의 소재가 고급이라는 것 정도?

환인이 아이들에게 펼쳤던 평온의 파동은 극소 범위에만 뿌려졌기에 촌민들이 보지 못해 일으킨 착각이다.

=여, 영혼사님! 저희는 억울합니다요!=

=영혼사니임…!=

그런 착각은 아지에라에게 매달리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방금 으리으리한 마차에서 내렸으니 저 분이 일행에서 가장 높은 사람일 게 틀림없고, 마차 안에만 있었으니까 바깥 상황은 잘 모르겠지 싶었던 거다.

아지에라의 영혼 기사들은 물론이고 순찰대 무사들도 이제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와중에 아지에라가 담담한 목소리로 묻는다.

=억울하십니까.=

=예에! 저희는 그저 루리페 부부가 걱정되어 한시라도 빨리 도움이 될 분을 찾으려 했던 것인데……!=

그런데 이렇게 핍박한다는 듯이 환인을 힐끔거리는 덥수룩한 회색 털의 개 머리 노인.

그 모습은 그에게 있어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행동이었다.

쉬는 날이면 늘 하던 부시 크래프트, 조금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하룻밤 비박을 하고 돌아 나온 환인이 본 것은 자신의 차 주변에 모여있는 농가의 노인들과 경운기였다.

공터의 주인이자 옆 촌장집의 촌장에게 미리 이야기하고 약간의 사례비로 5만 원을 쥐여주며 근처 공터의 주차 허락을 받은 뒤 갔었는데.

시골 인심은 거북이 등껍질처럼 금이 가고 메말랐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 벌어졌다.

“어, 당신이 이 차 주인이유?”

경운기가 운전석 문을 긁어 흉하게 우그러지고 패어있었고 경운기의 주인으로 보이는 털북숭이 중년은 다짜고짜 마을 공용 공터에 외지인이 차를 함부로 대면 어쩌냐며 잘못을 환인의 탓으로 몰아갔다.

나중에 듣기로 수리비를 주기 아까워서 그랬고, 촌장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여서 억지 부리고 윽박지르면 수리비를 물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고.

하여튼 시종일관 조용히 존댓말을 하는 환인이 얕보였던 것일까. 털북숭이 중년은 환인이 무어라 말만 하려 하면 역정과 고성을 지르며 말을 틀어막았고, 가재는 게 편이라는 속담처럼 촌장과 다른 사람들도 털북숭이 중년을 옹호하며 환인을 비난했다.

돈까지 받아먹은 촌장도 가담해 몰아붙이는 상황.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환인은 더 말하지 않고 경찰과 보험회사를 불렀다.

그 후 전후좌우 전부 촬영하는 블랙박스를 증거 삼아 변호사를 고용해 대리 고소를 치렀는데, 그 과정에서 털북숭이 중년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던 불쾌한 기억이 어제 겪은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른다.

아지에라에게 연신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개 머리 노인의 모습에 환인의 심기는 빠르게 나빠졌다.

털북숭이 개 머리 노인 같은 부류는 거짓말을 하다가 자신의 거짓말에 취해 거짓이 진실인 양 믿게 된다. 그리 되면 미친 사람처럼 아무 죄 없는 상대방을 죄인, 악인으로 몰아가길 서슴치 않는다.

지금 이 상황이 그에 딱 맞아떨어지는 상황.이변은 그때 일어났다.

그의 불쾌해하는 감정에 공명한 가슴의 문양, 획이 늘어나 나무 그루터기로 보이게 된 문양이 가죽 재킷 속에서 빛을 내기 시작했고 덩달아 환인의 흑요석 같은 눈동자도 금빛으로 물들었던 것.

=어……?=

=으, 으음?=

그걸 본 무사들과 기사들, 촌민들이 흠칫거리면서 환인을 바라본다.

갑자기 눈에서 황금빛이 흘러내리다니, 영혼사님들의 능력 중에 그런 게 있었나?

영도의 무사들은 영문을 몰라 멈칫거렸지만, 세르넨을 비롯한 영혼 기사들과 아지에라는 짐작 가는 것이 있어 조금 열기를 띤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 시각. 문양 강화 영혼 시야가 발동한 환인은 촌민들의 모습에서 영혼을 겹쳐보고 있었다.

주눅 든 것처럼 움츠러드는 개 머리 남자와 똑같이 생긴 영혼의 모습.

고개를 든 환인은 아지에라와 여자친구,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고 그들 또한 마찬가지로 육체와 똑같이 생긴 영혼이 겹쳐져 일렁이는 걸 볼 수 있었다.

‘이건…… 생령인가.’

생령에도 차이점은 있었다.

여자친구들은 혼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육체와 일체화되어있는 반면, 촌민들은 툭 건드리기만 해도 영혼과 육체가 분리될 것처럼 결합이 약해 보였던 것.

‘영혼 시야가 저절로 열린 것 같은데. 문양이 확장된 것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보다 저 모습은…….

정답에 가까운 가설을 빠르게 정리한 환인은 촌민들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씀하신다면 사정을 참작해 큰 죄는 묻지 않겠습니다.”

촌민들은 겁먹고 침을 꿀꺽 삼켰다. 잘못 생각했다. 인제 보니 눈앞의 검은 머리 남자가 이 일행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었다.

어쩌지? 어떻게 하지?

서로 눈치를 보는 모습에 세르넨은 울화가 치밀어올라 빠드득, 이를 갈면서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

세르넨을 제지한 환인은 촌민의 생령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덥수룩한 털북숭이 개 머리 노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끝에 금빛이 맺혀 일렁이는 손가락이 천천히 노인의 이마로 향하고, 뻣뻣하게 굳은 노인을 톡, 가볍게 건드린 순간 고개가 덜컥 떨궈지는 동시에 노인의 몸에서 영혼이 절반쯤 빠져나온다.

「으, 으어어…….」

=헉?!=

=저, 저건 대체……!?=

자신이 어떻게 된 건지 영문을 몰라 공황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노인의 영.

그리고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없는 현상에 기겁하고 놀라는 영도의 무사들과 영혼 기사들.

=……!=

사정을 어렴풋이나마 유추한 것은 기록실의 7할에 가까운 자료를 읽은 아지에라뿐이었다.

‘고대의 영혼사님들은 살아있는 자들의 몸에서 영혼을 뽑아 심문도 했다는데 설마 환인 성자님도……!’

세상에 사라졌다고 여겼던 고대의 영혼술의 재림을 목격한 아지에라의 얼굴에 감동과 희열이 번져간다.

어제 일로 그에게 향하는 감정을 정리하려 노력한 아지에라였지만, 소용없는 일이 되었다. 환인은 그녀의 가슴 깊숙한 곳에 낙인이나 다름없는 감정을 찍어버렸다.

정작 당사자는 그걸 짐작도 못 한 채 자신의 목적을 위해 노인의 생령에게 강제력으로 취조한다.

“솔직히 대답하십시오. 젊은 부부와 어린아이들을 버리고 도망칠 때 어떤 생각이었습니까.”

「끄어어… 우, 우리가아… 공격받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그 사람들이…… 아이들이 잡아먹히는 동안에… 멀리…… 도망쳐야겠다고오…… 오오오…….」

“이제 와서 말을 바꾼 이유는 무엇입니까.”

「도온… 많아 보이느은…… 사람이, 후견한다기에… 편, 편하게 살고…… 싶어서어어……!」

쉭쉭거리는 바람 소리와 흡사한 영혼의 외침에 사람들은 등과 목덜미,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것을 느꼈다.

이토록 역겨운 사람이 있구나 싶은 마음에, 생전 처음 보는 영혼술의 경이로움에.

사람들은 눈빛에 경외를 담아 노인의 영혼을 몸에 밀어 넣는 환인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쳐다보았다.

영혼이 몸 안으로 들어가자 고개를 축 늘이고 있던 노인이 퍼뜩 정신을 차리더니 =으어허허허.= 두려움에 질린 모습으로 허우적거리며 환인에게서 멀어지려 한다.

이미 촌민들에 대한 여론은 최악. 누구도 그들에게 좋은 시선을 주지 않는 와중에 아지에라는 벌벌 떠는 촌민들을 감정 없는 눈으로 응시하다가 담담히 서 있는 환인에게 물었다.

=환인 성자님, 이분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이분들이 벌을 받아야 할 정도로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 씀씀이와 도리, 인정을 되찾기 위해서 훈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싶군요.”

그 대답에 아지에라는 흐뭇함 사이 연모의 감정이 드러나는 미소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참으로 옳은 말씀이십니다.=

아지에라는 환인을 대신하여 무사들과 기사들에게 뒷정리를 지시했다.

완전히 겁먹어 움츠러든 촌민 네 명은 순찰대가 역할대로 그들을 추슬러서 함께 이동한다. 자신과 자신의 영혼 기사들은 해오던 대로 환인 성자님과 두 아이를 호위하며 영도로 향한다.

=우브.=

=예, 에라 님.=

=집행부 제2 심문관의 이름으로 명합니다. 저들의 신상을 기록한 뒤 영도에 도착하면 훈화실로 데려가 참회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회개시켜야합니다. 아시겠지요?=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아지에라를 향해 깊게 읍을 올린 우브는 경외심이 묻어나는 얼굴로 기사들과 대화하는 환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도령, 방금 그거 뭐였어? 이제 살아있는 사람한테서도 영혼 뽑아낼 수 있게 된 거야??=

=안느……. 그렇게 말하니까 주인님이 악당 같잖아.=

=아니 그래도… 도령이 영혼사가 아니었다면 짤없이 사령 술사로 오인받았을걸?=

「저, 저도 조금 그렇게 보였어요…….」

=아가씨들? 생각해보렴. 아지에라 님과 영혼 기사 분들, 순찰대 무사분들도 별다른 말씀 하지 않으셨잖니. 자기가 보여주었던 건 그, 새벽의 빛? 그 직업이랑 관계된 것일 수도 있어.=

유르파의 추측이 그럴듯하게 들렸던 여자들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는 환인을 바라본다.

그 시선에 환인은 눈을 뜨고 말없이 자신의 가슴, 문양이 새겨진 곳을 톡톡 건드렸다.

=아.=

=앗.=

=음.=

단순한 손짓 한 번에 모두 설득된 여자들은 미묘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문양 에너지는 미궁을 돌파하면서 얻은 힘이잖아. 그게 영혼술에 영향을 주는 거야?’

‘주인님은 정확히 말해서 영혼사가 아니시니…….’

‘몸으로 받아들인 힘은 한데 섞이기 마련이니까, 심핵의 힘이 영혼술에 영향을 주는 것도 이상하진 않아.’

환인은 여자친구들이 속닥거리는 걸 들으며 가슴의 문양을 생각했다.

첫 문양은 크라빈의 산란못 미궁 심핵을 부수며 얻었고, 두 번째 확장은 알소프의 미궁이 아드네빌라에 의해 부서지며 운 좋게 주워 먹은 것으로 이루어졌다.

확장이 이루어지며 영혼 시야가 변했다는 것은 평온의 파동도 바뀌고 영혼 화살과 영혼 폭발 등, 자신의 영혼술 전반도 더 강해졌다는 뜻이겠지.

환인은 문양 강화 평온의 파동, 평온의 빛기둥을 써보려다가 멈칫하면서 백려강을 돌아보았다.

‘……나중에 따로 실험해봐야겠군.’

=근데 유리 언니, 아이들은 어떻게 됐나요?=

=씻기고 옷 갈아입혔더니 잠들었어.=

=부모님이 눈앞에서 성불하는 걸 봤으니까…… 많이 지쳤겠네요.=

=응. 그래서 재운 뒤에 차음 기능 켜놓고 나온 거야.=

그녀들의 대화를 듣던 환인은 일행의 출발 준비가 끝난 것을 보고 휘익, 손가락 휘파람을 불어 하늘에서 놀고 있는 비상을 호출했다.

“그만 마차에 오르지. 출발한다.”

영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체되긴 했지만, 속도를 올리면 밤이 되기 전에 도착할 수 있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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