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456화 (456/813)

〈 456화 〉 450 조천 도시 엘스너펠

* * *

하늘이 황금색 노을로 물들어갈 무렵.

=우와.=

=와아.=

울창한 숲 언덕을 통과하자마자 눈앞에 나타난 초월적인 나무의 크기에 압도당한 이실리테와 안느는 입을 살짝 벌리며 놀라움을 표현했다.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커다란 나무가…….=

=진짜 크다…. 크다고는 들었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위압감이 엄청나네!=

엘스너펠로 향하는 가도??가 숲에 붙어있어 길을 따라 이동하다 보니 줄곧 숲에 가려져 실감하지 못했었는데, 가까이서 본 고각수高??는 정말로 하늘을 찌르고 있어 전율을 일으킬 정도였던 것.

조천 도시 엘스너펠은 조인족과 플라비우스 족이 인구의 9할을 차지하고 있다.

도시의 수식어인 조천??은 그런 의미에서 붙어있는데, 그에 걸맞게 고각수 주변에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등에, 팔에 날개가 달린 사람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중이다.

이실리테는 넋을 잃고 나무의 허리를 지나가는 구름과 그 근처를 즐겁게 날아다니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안느에게 물었다.

=정말 저 안에 사람이 살 수 있는 거야?=

=응. 하늘을 봐. 저어기 엄청 굵은 나뭇가지.=

=……사람들이 들락거리네.=

안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 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집을 지어도 안정적일 만큼 커다란 나뭇가지를 활주로 대용으로 쓰는지 날아다니는 사람들 적지 않은 수가 오간다.

그녀가 가리킨 나뭇가지뿐만 아니라 몇 안 되는 나뭇가지들이 다 그런 식이다. 일부 나뭇가지에는 진짜로 집까지 지어져 있다.

똑똑.

=율이 언니, 잠깐 밖으로 나와봐. 엄청난 나무가 있어.=

[으응~? 잠깐만~.]

마부석 쪽창을 통해서 소식을 전달하고 잠시 후, 달칵 소리와 함께 마차의 선루프가 열리며 유르파와 아지에라, 백려강이 차례대로 나온다.

=세상에! 무슨 나무가 저렇게 크니?=

=엘스너펠에 도착했군요.=

=아, 저 나무가 높은뿔 나무인가요? 과연…… 이름값을 하는 크기네요.=

「저도 책으로만 봤는데 실제로 보니 웅장함과 위압감이 상상 이상이에요…….」

시선을 90도로 꺾어도 꼭대기를 보기 어려운 수준의 나무를 보던 이실리테는 땅으로 시선을 내리곤 신기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높은뿔 나무 근처에는 다른 보통 나무가 없네요.=

그녀의 말대로 누군가 의도적으로 벌목한 것처럼 숲이 높은뿔 나무를 중심으로 원형을 그리며 거리를 두고 있었다.

신기해하는 이실리테에게 백려강이 설명해준다.

「책에서는 높은뿔 나무가 햇볕을 가려서 나무들이 사라졌다고 나와 있었어요. 거기다 높은뿔 나무가 주변 땅에서 영양분을 많이 빨아들여서 농사도 어렵다고 하던걸요.」

=그런가요? 농사를 지을 수 없다면 식량은 어떻게 해결할까요.=

「높은뿔 나무에 기생하는 기생목 과수원의 열매와 버섯 농장의 버섯, 도시 안에 있는 지하 미궁에서 나오는 이형종 고기가 주식이래요. 상단이 주변 마을이나 촌락에서 생산한 식량을 팔러 오기도 하고요.」

=아…….=

=와, 가까이서 보니까 더 커 보이네.=

그사이 언덕을 내려와 엘스너펠에 더 가까워지니 이제는 정말 나무 건너편이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 되었다.

황금빛 노을에 물들어 황금 나무처럼 보이는 높은뿔 나무를 고개를 한껏 젖혀 올려다보던 안느가 뒷목을 주무르면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근데 저 나무는 높이가 대체 어느 정도야? 고개를 뒤로 꺾어도 끝이 안 보일 정돈데.=

폭도 비슷하게 고개를 좌우로 돌려도 건너편이 안 보인다. 지상 이곳저곳에 올라와 있는 뿌리들 또한 어마어마해서 뿌리 하나가 2층 주택에 버금갈 정도.

아지에라가 작게 미소 지으며 설명해준다.

=높은뿔 나무는 니오네브레스에서 가장 큰 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무 꼭대기 높이는 1,900m에 달하며 폭은 밑동의 경우 1,400m, 정상은 900m가량이지요.=

=정말 어마어마하게 크네요…….=

=날씨가 좋으면 영도에서도 엘스너펠을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녀의 설명에 이실리테와 유르파가 작게 감탄하며 다시 높은뿔 나무를 시야에 담았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라는 건 이걸 두고 말하는 게 아닐까?

마차는 작은 언덕처럼 땅 위로 솟아난 뿌리를 피해 가도를 따라 이동했다.

길은 높은뿔 나무의 유달리 커다란 뿌리 사이로 이어져 있었는데 놀랍게도 성문 같은 것이 그사이에 박혀있었고, 적은 숫자지만 사람들이 병사들의 검문을 받으며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환인은 2km도 남지 않은 성문을 보다가 가볍게 손뼉을 치며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 여자친구들의 시선을 모았다.

“엘스너펠에서는 식량과 식수만 보급하고 바로 떠날 것이니 변장은 풀지 않는다.”

=엥…… 엘스너펠 구경은 안 해?=

종족이 숲과 자연에 친화되어있는 플뢰여서일까. 그는 저 커다란 나무를 두고 바로 떠난다는 이야기에 약간 서운해하는 안느를 부드러운 표정으로 달래듯이 이야기를 꺼냈다.

“마음 같아서는 너희들을 위해 이틀 정도 머무르고 싶지만, 백중강과 르아웬의 연락에 따르면 알소프 소멸 소식이 이미 옆 나라 히스론드와 벨티칼까지 퍼졌을 정도라고 한다.=

여자들의 눈빛이 단숨에 진지해진다.

“그 소멸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로 우리가 거론되고 있다. 주도에서 조사대가 파견되었다는데 만약 아직도 알소프 폐허에 아드네빌라가 남아있고, 조사대와 아드네빌라가 충돌하면 사건의 중대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거다. 그리되면 주도의 성궁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초점을 잡겠지. 불러들이려 할 거다.”

=으음…….=

“빨리 영도로 들어가 소란이 잦아들길 기다리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의 선택지라고 본다. 알소프의 소멸은 카드람 알소프의 업보이지만 그자는 죽었고 우리는 살아남았으니까.”

특히 알소프는 영도 순례길과 지리적으로 이어진 요충지였으며 정글 관통도로를 관리하던 도시였다.

그러한 도시가 사라졌다는 것은 앞으로 영도로 가는 길이 더욱 멀고 험난해졌다는 말과 같다.

그 일로 발생하는 원한은 누구에게 쏟아질까. 자칫 자신에게 몰릴지도 모른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한테 쏠리겠네.=

유르파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중얼거렸고, 환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관심이 독이 될지 약이 될지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독일 가능성이 크다고 환인은 생각하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엘스너펠의 영주 되는 사람이 큰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초대라는 이름으로 붙잡을 가능성. 그 소식이 알려진 뒤 사정을 듣기 위해 알소프에 적을 둔 자들이 찾아올 가능성. 그렇게 찾아온 이들 사이에 은원관계가 발생하며 사람의 억하심정에 따른 원한이 우리에게도 쏟아질 가능성.”

=…….=

=…….=

「…….」

환인은 조용해진 여자들을 돌아본 뒤 무거워진 분위기를 환기했다.

“이것들은 내 상상일 뿐이다. 하지만 실현 불가능한 상상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엘스너펠에서 빠르게 재정비만 하고 곧장 영도로 가겠다는 거지.”

=아닙니다. 실현될 가능성이 매우 큰 가설이에요. 엘스너펠 또한 알소프에서 영도로 가는 중요한 요충지, 이곳에는 알소프 영주의 친인척이 다수 살고 있으며 전전대 영주의 부인도 알소프의 직계 혈족이었습니다. 만약 환인 성자님이 도착했다는 이야기가 알려진다면 현 영주는 반드시 환인 성자님을 모시려 할 것입니다. 그 뒤에는…….=

아지에라는 말을 끝맺지 않았지만, 그녀가 생략한 내용이 무엇인지 눈치채지 못할 사람은 일행에 없었다.

그렇게 되자 안느는 좌불안석이 되어 바늘방석에 앉은 것처럼 꼼질대다가 작게 손사래를 쳤다.

=그, 쉬어가지 않는 게 아주 조금, 진짜 조금 아쉬운 거뿐이지 도령을 곤란하게 하려 했다거나 그런 거 아니니까…….=

“알고 있다. 넌 플뢰니까 저런 거대한 나무를 본다면 왠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기분이겠지. 이해하니 그렇게 죄지은 것처럼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영주가 우릴 붙잡아서 뭔가 해코지할 수도 있다는 거잖아? 그냥 지나치는 게 좋지 않을까?=

말끝을 흐린 걸 그렇게 해석한 건가.

환인은 다리 사이에 다소곳이 모여있는 안느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이쪽은 성자와 영혼 심문관이다. 우리에게 해코지한다는 건 전 대륙과 영도를 적으로 삼는다는 말과 동일하다. 그저 붙잡고 사정을 들은 뒤 알소프가 있던 자리를 자신들이 차지하려 도와달라고 설득하려는 정도로 끝날 거다. 그사이 우리는 극진하게 모신다는 핑계로 감금하는 정도가 우려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일 것이고.”

환인의 대답에 그제야 안심한 안느가 멋쩍은 듯이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웃었다.

=그러면 환인 성자님의 뜻에 따라 저는 마차 안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예. 이실리테와 안느가 식재를 구해올 테니 얼마 걸리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세르넨.”

아지에라와 백려강은 마차로 다시 들어가고, 마차 뒤를 따르는 영혼 기사들 중 다람쥐 귀의 여기사를 부른 환인은 그녀에게 변장을 위해 마련해놓은 흔한 색의 후드 망토 다섯 벌과 아우라 은폐 마도구 다섯 개를 빌려주었다.

직업자에게 아우라란 자기 자신의 긍지이자 프라이드이며 회색 후드 망토는 영혼 기사의 증표라는 걸 환인도 안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영혼 심문관인 아지에라는 몰라도 영혼 기사들에게까지 그렇게 배려해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환인이다.

=아지에라 님의 안전을 위해서입니다.=

환인은 그녀들의 영혼 기사로서의 자부심을 살짝 자극해 아우라 은폐 마도구를 목에 착용하게끔 했고, 그러는 사이 마차는 엘스너펠의 성문에 도달했다.

수리 계통인지 갈색 깃털의 날개와 귀를 가진 병사가 마차를 가로막는다.

마차가 멈춰서자 피로가 얼굴에 진하게 묻어나는 여자 병사는 환인이 앉아있는 마부석 쪽으로 다가와 지극히 형식적인 어투로 말을 꺼냈다.

=엘스너펠에 무슨 용무로 왔지.=

무표정에 약간 짜증까지 깃들어있는 목소리.

환인은 마차에서 내려 여자 병사에게 다가가 후드를 살짝 젖혀 그녀에게만 얼굴을 보여주었다.

움찔.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이 살짝 커지고 어깨가 움찔하더니 피로감에 찌든 얼굴에 살짝 홍조가 돈다.

“정체를 알리면 곤란한 분을 모시고 영도로 향하는 중입니다. 엘스너펠에서는 식재료만 보충할 생각이라…….”

그녀의 손을 상냥하게 어루만지듯 잡고 열은화 한 닢을 쥐여주자 손가락 끝이 파르르 떨리는 여병사.

환인의 그윽한 눈빛에 한 번 더 어깨를 움찔한 여병사는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마차 밖 인원들은 범죄경력 조사를 해야 해요.=

“물론입니다.”

미리 영혼 기사들과 여자친구들의 모험가 인식표, 여행자 인식표를 수거해둔 환인은 얼굴이 상기된 여자 병사를 따라 성문 옆 병력 초소에서 범법 여부 확인 절차를 끝냈다.

그 과정에서 여자 병사의 은근한 유혹이 있었지만, 환인은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협박 반, 얼르기 반으로 여자 병사의 음욕을 거절한 뒤 마부석으로 돌아왔다.

“출발하지.”

마차가 성문을 통과해 몇 미터 정도 되는 나무 터널을 지나고 있으니 이실리테와 환인 사이에 끼어 있던 안느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성문 입구 검사가 되게 깐깐해 보였는데…… 뭐가 간단히 통과해버렸네.=

“방금 그 병사가 검문소에서 가장 선임으로 보이더군. 덕분에 수월하게 통과했다.”

멀찍이 성문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부터 검문 과정을 유심히 바라보던 환인이었다.

일곱 명의 병사 중 누가 가장 발언력이 강한지, 그리고 검문 방식이 어떠한지 살펴보던 환인은 엘스너펠의 남쪽 성문도 마찬가지로 뇌물이 잘 통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뇌물을 받으면 별 반응 없이 대충대충 범법 검사 후 들여보냈지만, 뇌물을 주지 않는 쪽은 정말 까다롭게 얼굴과 인식표를 대조하고 짐칸의 짐은 물론 소지품까지 하나하나 검사하며 히스테리에 가까운 신경질과 행패를 부렸던 것이다.

거기다 오랜 근무로 피곤해 보이는 모습과 여자에게는 더욱 짜증 내고 남자에게는 조금 덜 짜증 내는 노처녀 같은 모습까지.

‘그런 여자에게 미인계와 뇌물을 함께 썼으니 효과가 주효할 수밖에.’

이윽고 나무 터널이 끝나자 눈이 아프지 않은 빛과 함께 엘스너펠 1층의 전경이 시야에 쏟아져 들어왔다.

높이가 30m에 가까운 높은 천장. 곳곳에는 굵고 커다란 목주??가 세워져 천장을 떠받치고 있다.

천장과 벽 그리고 바닥은 전부 밝은 황갈색 나무뿐.

시선을 내리면 수많은 건물이 눈에 들어오는데 건물 대부분이 목재지만 간혹 석제 건물도 눈에 들어온다.

다른 도시와 차이점이라면 건물에 흙은 조금도 사용되지 않는 것 정도.

벽에서 30m 정도 떨어진 장소에서부터 건물이 늘어서기 시작하는데 그러한 공터의 벽 쪽은 독특한 문화가 꽃피어 있었다.

노점 거리인지 노점상이 벽을 따라 저 끝까지 빼곡히 늘어서 있고 무수한 사람들이 노점상을 살피거나 길을 오가고 있는 것이다.

시선을 도심 쪽으로 돌린 환인은 밝은 황갈색 기조와 온통 목재 건물 뿐인, 독특하지만 평범한 거리를 볼 수 있었다.

=분위기가 좋네요. 평화로운 나무 속 도시 느낌이에요.=

이실리테의 말대로였다.

폐쇄된 공간이라 소음이 심하고 다소 어두운데다 환기가 잘 안 돼서 냄새도 심할 거라 생각한 환인이었지만, 그러한 예상은 모두 빗나갔다.

소음은 들리지만 평범한 도시나 다름없는 수준의 백색 소음이다.

벽과 천장에 뭔가 술법이라도 걸어놓았는지 기분 나쁜 어둠이나 그림자는 전혀 드리워지지 않는다.

어딘가에서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것을 보면 환기도 잘 되고 있다는 뜻.

그래서인지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많고 활기차다.

=내부가 크니까 이렇게나 느낌이 다르구나.=

=집 나무도 여기랑 비슷해?=

나무로 지어진 도시 속 대로, 수많은 사람과 마차들이 오갔을 텐데도 발자국의 때는 물론 거스러미조차 일지 않고 깨끗한 바닥과 건물을 보던 이실리테가 되물었다.

=응. 집 나무 안 가구는 전부 나무가 직접 몸에서 만들어내거든. 그래서 집 내부랑 색이 같아.=

=여기 이곳처럼?=

=이곳처럼.=

다그닥다그닥.

이실리테와 안느가 목제 도시를 구경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세르넨이 말을 몰아 가까이 다가와서 환인을 불렀다.

=환인 성…… 환인 님. 이제 어떻게 하실 건지 여쭈어봐도 될까요?=

“역참 같은 곳에 마차를 세워두고 시장을 찾아서 장을 볼 생각입니다.”

=시장은 아이샤가 알려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참처럼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곳보다 저희가 엘스너펠에 방문하면 머무르는 호텔로 가시는 게 어떠신가요. 마구간도 크게 마련되어있어서 마차를 대놓고 쉬기 좋을 겁니다.=

“믿을 수 있는 곳인가 보군요.”

=네. 아지에라 님께 큰 은혜를 입었던 분이 운영하는 호텔이거든요.=

“…….”

환인은 걸리는 점이 많았기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세르넨이 다람쥐 귀를 뒤로 눕히며 뭔가 실수한 건가 하는 눈빛을 보낸다.

“혹시 알소프로 향하실 때도 그곳에 머무르셨습니까.”

=네. 라드세아로 향할 일이 있으면 오갈 때 언제나 묵었었습니다.=

“……다른 곳에 머물지 않고 항상 그 호텔만 애용하셨다는 거군요.”

=네.=

여기까지 힌트를 주었는데도 이야기를 꺼낸 세르넨도 그렇고 다른 여자들도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한 얼굴이다.

환인은 기감을 스윽 돌려 주변을 확인하고 안주머니를 톡톡 건드려 환연에게 주변을 감지하라는 신호를 주면서 설명을 시작한다.

“아지에라 님은 영혼 심문관으로서 유명하신 분이시지요.”

=네. 대외 중요 상황이 발생하면 아지에라 님이 가장 먼저 출발하시니까요.=

“오랜 시간 습관처럼 그 호텔을 이용하셨고요.”

=네…….=

“여러분들이 익숙한 사람도 많겠습니다.”

=……!=

세르넨은 그제야 앗, 하고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표정이 되었다.

알소프로 향할 때 그곳을 이용했다는 건 이미 다 알려졌을 거다.

“아지에라 님이 그 호텔을 이용하는 게 일종의 법칙이라면 엘스너펠의 영주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알고 있을 겁니다. 그 말은 즉 영주가 보낸 사람이든 아니든 누군가가 호텔에 잠복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지요. 여러분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만약을 대비해 은폐 마도구를 주고 평범한 갈색 후드 망토를 두르게 했다지만, 여기사들은 얼굴을 가리는데 집중하지 않았다.

어쩌면 말을 타고 있는 영혼 기사들의 얼굴을 밑에서 올려다보고 눈치챈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다. 한창 영주에게 보고서가 올라가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르넨이 핏기가 가신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그런 가정을 상정하지 못한 제 실수입니다.”

죽을죄를 지은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는 세르넨에게서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피다 청과상과 정육점을 발견한 환인은 이실리테에게 그곳을 가리키며 가서 빨리 보급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이실리테도 일이 조금 급박해졌다는 걸 눈치채고 말없이 뛰어내려 눈에 보이는 최대한 신선하고 질 좋은 고기와 과일을 닥치는 대로 쓸어 담는다.

=으음. 성…… 화, 환인 님도 그렇고 우리 에라 님도 잘못한 게 없는데 이렇게 도망치듯이 행동해야 할 이유가 있나……?=

=입 다물어. 환인 님이 얼마나 똑똑하신지 오면서 충분히 봤잖아.=

=맞아~. 해왕도 환인 님을 대우하실 정도였으니까~. 저분이 저러시는 건 이유가 다 있으실 거야~.=

=어, 그…런가?=

여기사들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는 사이, 거의 쓸어담다시피 하며 보존 주머니를 채운 이실리테가 돌아왔고, 환인은 영혼 기사들에게 물어 곧장 동쪽 성문으로 향했다.

=어? 환인 님, 북쪽 성문은 저쪽으로 가야 나오는데요?=

“북쪽은 누군가 지키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생각이 있다면 모든 성문을 막았을 테지만, 그나마 지키고 있지 않을만한 곳을 노리는 겁니다.”

들어왔던 남쪽 성문은 보고가 올라갔을 수 있으니 제외, 북쪽은 영도와 가까우니 제외.

=아…….=

확률이라고 했지만, 환인은 이미 영주든 그 아래 호족이든 누군가가 보낸 인물들이 입구를 막고 있을 거로 짐작하고 있었다.

들어올 때 거동이 수상한 이들을 봤던 게 떠올랐던 것.

‘그때는 알소프가 소멸하며 뒤숭숭한 분위기가 형성된 거라고 생각했는데.’

드러나지 않게 한숨을 내쉰 환인은 품속의 광창을 매만지며 지금은 아우라 은폐 마도구를 믿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환인. 지금 향하는 성문 쪽에 5급 직업자 하나, 4급 직업자 둘, 2급 직업자 다섯이랑 서른 명의 정예 기사가 대기하고 있어.」

그랬기에 환연이 주변 조사 결과를 알려줘도 놀라지 않았다.

단지 광창을 좀 더 힘있게 쥘 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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