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451화 (451/813)

〈 451화 〉 445 영도로 가는 길

* * *

에미트 정글을 빠져나와 북상하면서 만난 첫 마을.

영도로 가는 순례자의 길목이어서 그런지 일반적인 마을이 아니라 역참처럼 번화한데다 이름도 지나가는 마을이다.

환인 일행은 알소프의 소멸로 어수선한 마을에 아우라 은폐 마도구와 마차 형상 변화 마도구, 비상의 깃털색 변화 마도구를 써서 평범한 여행자로 변장한 뒤 숙소를 잡았다.

여관의 별관으로 들어오자 아우라 때문에 줄곧 마차 안에 있던 아지에라가 어색한 표정으로 묻는다.

=저어, 환인 성자님. 이렇게 정체를 숨기시는 것은…….=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영혼사가 마을을 방문했다고 알려지면 대부분 시끄러워지는데 그게 싫어서니까요. 더욱이 알소프 쪽에서 올라왔으니 쓸데없는 관심이 몰리기도 할 테지요.”

환인은 시끄러워진다고 표현했지만, 실상은 영혼사를 맞이해 마을의 유지나 사도, 마을을 다스리는 고족이나 호족의 성대한 환영을 피하기 위해서다.

원하지도 않는 환영식과 잔치에 불려가 하하호호 웃으며 마음에도 없는 덕담과 칭찬을 주고받고 불편한 접대를 받는 것은 그의 취향과 맞지 않으니까.

=주인님은 마을이 공공재산을 탕진해가며 열어주는 연회나 대접을 싫어하세요. 그래서 어지간히 평화로운 마을이나 촌에서는 정체를 숨기고 지나가십니다.=

=어…….=

=으음.=

이실리테의 설명에 영혼 기사들은 살짝 당황했다. 환인 일행의 행동은 여느 영혼사들과 반대되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마을에 들어왔으니 영혼사가 도착했음을 알리고 융숭한 대접을 받은 다음 마을을 배회하고 떠도는 영혼을 성불해주는 게 보통의 절차인데…….

그렇게 통째로 빌린 별채에서 들키지 않게 깊은 밤까지 시간을 보낸 환인은 곧바로 성불행을 위해 여관을 빠져나왔다.

아지에라와 호위 기사들도 따라나선 것은 당연한 일.

환인은 그녀들을 뒤에 달고 한밤중에 조용히 마을을 돌아다니며 성불하지 못해 이승에 매인 영혼들을 승천시켜나갔다.

이지가 흐려져 배회하는 영혼은 이지를 깨운 뒤 가진 미련을 풀어주고.

「여자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전해서 후련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영혼사님…….」

강한 미련 때문에 성불하지 못한 영혼은 그 미련을 해소해주고.

「됐습니다. 저놈의 악행이 담긴 장부가 경비 부대장님에게 넘어갔으니 저놈도 파멸할 겁니다. 하하하, 하하하하…….」

남겨진 가족들의 고통에 매인 영혼은 그 가족들에게 금융 치료를 베풀어 스스로 성불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걸로 가족들 걱정 없이 성불할 수 있어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크흐흑…….」

“남은 가족들은 낭비하는 습관이 없는듯하니 저 돈이면 충분히 기울어진 가계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겁니다.”

「네, 네! 마누라는 절약과 저축을 누구보다 잘하는 여편네입니다! 20 은화씩이나 주어졌으니 아껴가면서 자식놈들 전부 잘 키워낼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영혼사님……!」

야음을 틈탄 성불행.

이 모든 것을 거리를 두고 지켜보던 아지에라의 영혼 기사들은 충격과 경악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 세르넨. 지금 여덟 번째 성천 인도였지……?=

=응…….=

성천成? 성공률이 말도 안 된다. 영도의 장로님들도 이렇게 연속으로 성천을 성공시키지 못하시는데.

거기다 영혼의 혼시화??化는 생기를 넘겨주는 것이기에 영혼사에게 극심한 부담으로 돌아온다.

상급 영혼사라 하더라도 하루에 두 명 정도가 한계이며, 영성이신 분은 특별하기에 하루에 10명까지 혼시화를 할 수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한계까지 기운을 끌어낸 것이다.

보통은 혼시화를 하지 않고 영혼을 모아 인도제를 치러 성불로 인도한다. 하지만 미련이 너무 강해 성불을 거절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때만 쓰는 것이 혼시화다.

저렇게 한 명 한 명에게 걸어줄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힐끔, 옆을 본 세르넨은 아지에라의 놀라지 않는 모습에 작게 물었다.

=아지에라 님. 역시 성자님은 새벽의 빛이 맞으신 거죠?=

=이전에도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이제는 확신에 찼습니다. 저분은 새벽의 빛이 맞으세요. 하지만 환인 성자님은 그리 불리시길 바라지 않으시니…….=

며칠 전, 알소프의 연회장에서 보았던 충격적인 장면이 그녀의 머릿속에 선명히 떠오른다.

알소프 영주와 대화를 나누다 갑자기 데리고 들어온 여덟의 반 악령체들.

악령체들이 사람을 따른다는 것도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는데 혼시화를 생전 처음 보는 방식으로 펼쳐 여덟 영혼에게 동시에 걸어주는 장면에는 몇 초 정도 아무 생각도 못 했었다.

게다가 혼을 거두어 구슬로 만들다니. 영성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다. 필시 새벽의 빛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일 터.

새벽의 빛은 원래 영혼사로서 처음 길을 개척한 시조님을 가리키는 단어이자 직업이며 명예로운 칭호다.

혼재가 멸재?災로 진화하여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려는 것을 막아낸 위업으로 새벽의 빛을 칭호로서 받아낸 분이 계신다. 그 외에도 수십 년간 수만 명의 영혼과 수십 명의 혼재를 성불시킨 업적으로도 칭호를 받은 분이 계시지만…….

‘그것은 업적을 이루어내면서 주어진 칭호일 뿐. 저분은 직업으로 이루셨음이 틀림없어.’

저분은 영혼사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자신은 할 수 있다 하시며 자기 자신은 영혼사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셨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아지에라는 더더욱 믿음이 갔다.

원래 영웅이 될 인물은 시작부터 범상치 않은 법이니까.

=있잖아, 세르. 저렇게나 혼시화를 계속하셔도 괜찮은 거야? 상급 영혼사님들도 하루에 두 명 이상은 못 하시잖아.=

=그러니까 아지에라 님이 새벽의 빛이시라고 하시는 거겠지…….=

=저렇게 하시고도 지친 기색이 없으시네요. 거기다 영혼들이 평소보다 더 이성을 또렷하게 차리는 거 같지 않나요?=

=나도 그렇게 보여.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아.=

환인의 여자들은 영혼 기사들의 대화를 들으며 머릿속에 물음표를 무수하게 띄웠다.

아까부터 혼시화를 언급하는데 그게 영혼을 볼 수 있게 해준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혼시화가 힘이 든다니? 상급 영혼사도 하루에 두 명이 한계라고? 그는 하루에 수십 명도 혼시화 시켰었는데?

요즘은 귀찮은지 많은 수를 단번에 혼시화 시키는 방법까지 만들어냈잖아. 게다가 성불 성공 확률이 낮아? 지금까지 그는 눈에 보인 영혼은 보통 하루 이틀 만에 죄다 성불하지 않았었나?

그녀들은 아주 예전의 기억, 그를 만나기 이전의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그때 본 영혼사님들은 영혼을 보여준 적이 거의 없었어. 한 명을 성불시키는데 거의 하루를 꼬박 쓰시곤 했었고…….’

이제 생각해보니 확실히 다르다. 왜 눈치채지 못한 거지?

뻔하다. 그가 지닌 무력과 무술에 대한 재능이 너무나 대단해서다.

영혼술은 자신들이 잘 알지 못하지만, 무력이나 기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니까, 영혼사로서 능력보다 무인으로서의 능력이 더 와닿은 거겠지.

여자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같은 영혼사에게도 존경받을 정도라는 사실에 묘하게 몸이 달아올랐다.

다음날.

성불행을 하며 부득이하게 정체를 밝힌 두 집에 이틀간 함구를 부탁했기에 환인 일행은 마을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일 없이 조용히 볼일을 볼 수 있었다.

아지에라는 아우라 때문에 조용히 여관 별채에 틀어박혀 있었고 영혼 기사들은 미궁 탐험가 행세를 하며(회색이 특징적인 갑옷과 회색 망토, 로브는 모두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말 다섯 필을 조용히 구했다.

이실리테와 안느도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비어버린 식량 주머니에 신선하고 싱싱한 식재를 가득 채운 상태.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그렇게 마을에서 정비를 마친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각자 말에 올라타 있던 영혼 기사들은 정말 성불행만 하고 떠나는 모습에 환인을 더더욱 존경하게 되었다.

명예나 보답 따윈 바라지 않고 영혼사로서 의무인 성불행만 조용히 마친 뒤 떠나다니, 이 얼마나 우직하고 멋진 모습이란 말인가.

요즘 젊은 영혼사님들은 마을마다 융숭한 대접을 받고 다녀 영도의 나이 지긋한 영혼사님들에게 눈총을 받기도 한다던데 말이다!

그 후 사흘동안 일행은 짐승이나 마수, 괴수 등에게 습격받는 일도 없이 길을 따라 한가로운 여행을 이어갔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찜통같은 무더위도 사라지고 점차 가을 날씨와 비슷해져가는 중.

오늘도 별 일 없이 이실리테와 나란히 앉아 한가롭게 주변 경치를 구경하던 안느는 뒤따라오는 영혼 기사들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았다가 옆에서 묵묵히 마차를 모는 이실리테에게 말했다.

=영혼 기사님들이 저렇게 따라오시니까 일행의 품격이 확 올라간 느낌이지 않아?=

=그냥 평범한 여행자에서 단숨에 직업자의 호위를 받는 호족 일행이 된 거 같은데…… 주인님은 시끄러운 거 안 좋아하시잖아. 다음 마을에서 괜찮을지 모르겠어.=

직업자 다섯 명, 그것도 전원 4급 이상인 사람들에게 호위받는 마차다. 절대 평범한 일행으로 안 볼테지.

=그렇다고 우리 일행도 아닌데 아우라 은폐 마도구를 주는 것도 좀.=

=…….=

안느는 왠지 힘이 없어 보이는 이실리테의 모습에서 이유를 눈치채고 히죽 웃었다.

=우리 이슬이, 며칠째 도령의 품에 안기지 못해서 욕구불만이구나?=

=맞아. 넌 아니야?=

부끄러워할 거라 생각한 안느는 예상 밖으로 당당한 이실리테의 대답에 당황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에 오히려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지나가는 마을을 포함해서 벌써 8일째 주인님과 스킨십도 못했는데……. 우리끼리 주인님을 모시고 여행할 때가 훨씬 좋았어.=

=그, 그럼 오늘 밤에 몰래 도령이랑 나가서 하는 건 어때? 네가 부탁하면 도령도 거절하지 못할걸?=

=매력적인 이야기지만 관둘래. 내 욕심 때문에 주인님께 곤란한 일이 벌어지는 건 싫으니까.=

음…… 그건 그렇지. 휑하니 뚫린 초원에서 가봤자 어디로 간단 말이며 도령과 이슬이만 한밤중에 사라지면 그것도 부자연스러울 테니까.

솔직하게 말해서 이슬이가 간다고 했으면 자신도 따라갔을 거다. 자신의 부끄러운 그곳에 넣어주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도령의 그걸 물고 빨기만 해도 좋을거 같은데…….

달칵.

마차 지붕이 열리는 소리에 움찔 놀란 안느는 황급히 야한 생각을 털고 뒤를 돌아보았다.

환인이 선루프를 통해 먼저 나오고 차례대로 아지에라와 유르파, 백려강도 마차 지붕으로 올라온다.

안느는 그곳에서 오가는 대화에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백려강 님은 역시 수호령이 되신 거 같습니다.=

「수호령인가요? 말씀만 들으면 제가 환인 님을 지켜주는 그런 느낌이네요.」

=맞습니다. 수호령이란 미련과 원한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의지로 이성을 유지하며 사람을 돕는 혼을 가리키는 거니까요. 서부의 대영웅 아스라펠트를 아십니까?=

「네. 역사 시간에 배웠어요. 서쪽의 해안을 점거하고 있던 괴물과 마물들을 모두 토벌하고 몰아내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드신 분이잖아요.」

=그분께도 수호령이 붙어있었습니다. 수호령의 도움으로 적지 않은 사선을 헤쳐나왔다고 하지요.=

「와아…….」

=아지에라 님. 그러면 려강 아가씨가 갑자기 승천하거나 하는 일은 없는 건가요?=

유르파의 진지한 질문에 아지에라는 바람에 흩날리는 보랏빛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환인을 힐끔 보곤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영혼은 보통 네 가지 색으로 구분됩니다. 평범한 회백색, 영으로서 매우 순수하여 그 기운이 강한 청색, 미련과 원한이 강해 존재가 타락하며 혼재가 되어버리는 적색, 미련보다 원한이 더더욱 강해 실체화는 물론 형태마저 무너져 악령이 되는 흑색.=

유르파와 안느의 시선이 백려강에게 향한다.

=혼시화를 받으시기 전의 백려강 님은 순수한 청색의 혼이셨지요. 그런 혼의 색을 가진 분들은 스스로 성불의 때를 고르실 수 있습니다.=

“아지에라 님.”

=네, 환인 성자님.=

“제가 성불행 초기에 보았던 한 영혼은 청색 영혼에서 적색 영혼으로 변해있었습니다. 다행히 이야기가 잘 통해 대화로 미련을 풀고 성불하였지만, 줄곧 의구심이 남아있었습니다. 영혼이 지상에 너무 오래 머물러도 영혼이 혼재화하는 경우가 있는 겁니까.”

마차를 모는 데 집중하고 있던 이실리테의 고개가 저도 모르게 돌아갔다.

환인이 꺼낸 이야기는 친자매나 다름없던 그녀의 여동생, 환인과 함께 하는 계기가 되어주었던 아베트의 이야기라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아지에라는 으음, 작게 신음을 흘리더니 살짝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혼사를 50년간 공부해왔지만 그런 사례는 안타깝게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제 견해를 밝히자면 그녀 또한 수호령이었으며, 수호령으로서 붙어있던 대상이 악하고 나쁜 짓을 많이 저질러 그 영향을 받아 혼재가 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

이실리테는 천천히 고개를 앞으로 돌린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여동생이 그렇게 됐던 것은 역시 나 때문이었구나…….

괴로운 사실이었지만 이실리테는 내색하지 않았다. 아베트는 결국 혼재 상태에서 풀려나 성불했으니까.

다만 가슴에 응어리로 남은 것은 자신의 도적질로 죽거나 다친 사람들이 많으며 그녀가 혼재가 되었던 게 자신 때문이라는 것.

이제 와서 희생자와 피해자들을 찾는 것도, 찾아가서 사과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이실리테가 선택한 것은 어려운 처지인 사람들을 돕는 것이었다.

돕는다고 하는 것도 거창한 일이 아니다. 마을이나 도시를 들를 때마다 고아원, 보육원 같은 곳에 용돈과 미궁 수익 정산금 일부를 기부하는 것뿐.

환인이 매달 주는 용돈은 미궁을 돌파한 뒤 받는 정산금을 제외하고도 20은화에 이른다.

식대와 여행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환인이 책임지고 있기에 20은화는 온전히 자신이 쓸 수 있는 돈.

이실리테는 그중 5은화는 환인을 위해서, 그리고 영혼 기사로서 품위를 해치지 않기 위해 자기 단장에 쓰고 나머지인 15은화와 미궁 수익 정산금의 50%는 전부 기부해오고 있었다.

영혼 기사로서 하는 일은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니 속죄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좋지 않은 머리를 굴리고 굴려 생각해낸 것이 기부였던 것이다.

=와, 그러면 려강 아가씨가 갑자기 사라질 일은 없겠네요. 잘됐다.=

「유리 언니…….」

=그렇잖니. 이제야 친해졌는데 갑자기 려강 아가씨가 사라지면 얼마나 쓸쓸하겠어? 아가씬 자…… 성자님을 사모하니까 오래오래 붙어있을 거고, 그러면 우리도 아가씨랑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단 이야기니까.=

=후후후. 여러분들은 백려강 님을 무척이나 좋아하시는군요.=

=아가씨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데요. 아지에라 영혼 심문관님도 아가씨의 진면목을 알게 되시면……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허물없이…….=

=아닙니다. 영혼이라고 하면 무턱대고 두려워하거나 멀리하려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그런 분들에 비하면 유르파 님은 영혼 기사로서 참되고 올바른 자세를 가지고 계신 겁니다.=

=가, 감사합니다.=

환인은 앞을 바라보고 있는 이실리테의 호박색 포니테일 뒤통수에 잠깐 시선을 주었다가 유르파와 어느새 끼어든 안느, 백려강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간간히 웃는 아지에라를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은 많다.

하늘 고래의 출현과 출현의 의미와 목적, 다른 영혼사는 영혼 강령 같은 일을 못 하는지, 정령과 대화할 수 있는 영혼사가 있는가, 영혼사의 정확한 각성 단계와 절차, 영혼사의 등급에 따른 능력 변화, 영혼사의 등급 성장 방식 등등.

다만 여기서 그녀에게 전부 묻자니 의심을 사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이쪽의 행보를 다 알고 있다지만 개인에게 모든 걸 오픈하기가 꺼려지는 탓이다. 게다가 이단심문관과 비슷한 지위라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아지에라와 그녀의 영혼 기사들 모두 내게 우호적이니…….’

영도에 도착한 뒤 정식으로 교육을 요청하는 쪽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영도까지는 마차를 빠르게 달려 2주 거리라고 하니 느긋하게 그녀와 인맥을 더 쌓아볼까.

환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내려온 비상이 큣, 큐웃! 쁏! 흥분한 것처럼 폴짝폴짝 뛰고 날갯짓하며 울었다.

=도령. 비상이가 뭐라고 하는 거야?=

“근처에 들어가면 피로가 풀리고 몸에 좋은 연못이 있다는군.어렸을 때 엄마와 함께 들어간 적이 있다고 하는데…….”

=엥? 그런 게 있어?=

쀼쁏! 삐이잉~!

비상의 열띤 설명에 온천을 말하는 건가 생각하던 환인은 신기하다는 듯이 비상을 바라보는 아지에라에게 물었다.

“아지에라 님, 잠시 그곳에 들러볼까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일행의 책임자는 환인 성자님이십니다. 저희는 환인 성자님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배에 손을 올리고 살짝 고개를 숙이며 하는 대답에 환인은 비상과 이실리테에게 지시했다.

“비상, 앞장서라. 이실리테, 비상의 뒤를 따라간다.”

=네, 주인님.=

뀨웃!

[영도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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