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445화 (445/813)

〈 445화 〉 439 괴멸하는 알소프

* * *

=해, 해일까지…….=

=짐승신님 맙소사,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야…….=

언제나 평온하게 그 자리를 지켜오던 일자 수평선이 들쑥날쑥해지며 점차 커지는 모습은 사람들의 불안을 극도로 자극했다.

끄아아악……!

아아악……!

꺄아아아아아……!

거기다 아스라이 울려 퍼지며 사람들의 본능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비명까지.

=성자님을, 성자님을 해치려고 해서 알소프가 천벌을 받는 거야!=

=알소프는 이제 끝이야!! 도시에서 도망가야 해!!=

=여보! 애들아!!=

연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공황 상태에 빠져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한 성내 병사들, 하인과 하녀들, 잡부들 또한 두려움과 욕심이 가득한 얼굴로 수군거리다가 어디론가 사라져간다.

‘이때까지 일해온 만큼 직접 챙겨서 도망쳐야 해.’

‘다른 놈들이 비싼 걸 가져가기 전에 내가 먼저……!’

잘은 모르겠지만 높은 분들이 알소프는 끝이라고 했다. 대청이 무너졌는데도 영주님이나 높은 분들은 거의 빠져나오지 못했고.

퇴직금은 직접 챙겨서 도망가야지!

그러는 사이에도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해일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고, 축제가 한창이던 도심 한가운데 난 지름 300여 미터의 구멍에서는 벽을 타고 괴물들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다.

구덩이 주변에는 화재가 시작되어 도시를 집어삼키기 시작했으며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진다.

=도령, 우리도 몸을 피해야 하는 거 아니야? 괴물은 그렇다 쳐도 해일은 좀 위험할 거 같은데…….=

안느의 불안 섞인 재촉에 묵묵히 해일을 응시하고 있던 환인이 입을 열었다.

“해일이 발생하면 가장 높은 곳으로 도망쳐야 한다. 저 속도를 보면 몇 분 뒤에 도착할 듯하고, 근처에서는 이곳이 가장 지대가 높으니 섣불리 도망치려다간 오히려 해일에 휩쓸리겠지. 성벽이 도시를 감싸고 있으니 더더욱 위험할 거다. 게다가 저 해일, 평범한 해일이 아니다.”

술렁.

도망친 연회 일반 참석자들과 다르게 영주의 초대를 받은 이들, 땅신 교단 성직자 두 명과 영도의 영혼 심문관 두 명은 환인의 옆에 남아있다가 그 말을 듣고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평범한 게 아니라니요? 저 해일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르니라고 했던가. 황금색 머리카락과 황금색 여우 귀의 땅신 교단 사제에게 시선을 짧게 주었던 환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해일의 발생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하지만 어떤 해일도 저렇게 수평선이 일그러져 보일 만큼 파도가 높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거리를 생각했을 때 저만한 높이의 해일이 일어나려면 도시만 한 크기의 운석이 알류겔 호수의 가장 깊은 곳에 낙하해야 할 겁니다.”

욕조 속에서 손바닥을 펼쳐 수면 쪽으로 저어 올리면 힘의 방향에 따른 물결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물결은 원형으로 넓게 퍼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해일의 발생 형태 또한 그와 흡사하다. 해저 지진이든, 빙벽 낙하든 말이다. 폭풍으로 인한 해일도 있지만 그건 해일이라기보단 연속된 파도라고 봐야 한다는 게 환인의 생각.

아무튼 그렇게 발생한 것은 수위가 높아진 물의 이동이라고 할 모습이며 광범위한 영역에 동시에 밀어닥친다.

지금 저기서 다가오고 있는 해일처럼 일부 범위에서만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파도가 일어나 다가오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하늘은 멀쩡하니 운석 같은 게 떨어진 것은 아니고, 해일의 형태 또한 범상치 않으니 인위적으로 발생한 해일이라는 뜻입니다.”

머엉……

평범하게는 절대 알 수 없는 지식이 환인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그의 주변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굳었다.

환인의 여자들은 대체 그의 지식은 어디까지 뻗어있는지 궁금해서. 영혼 심문관들과 땅신 교단 성직자들은 진위까지는 몰라도 절대 허투루 들을 수 없는 설득력에.

아아아아악……!

으아아아…!

아득히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퍼뜩 정신 차린 르니는 일행인 소머리 남자 사제, 알락스에게 즉시 교단 지부에 원감??으로 연락해 피난하라 지시했다.

=하, 하지만 성자님 말씀대로라면 이미 늦었습니다……!=

=늦었다 해서 손 놓고 있다가 알소프의 형제자매들을 모두 잃을 셈인가요!?=

=……!=

그 외침에 보라색 머리카락의 매혹적인 여자, 회색에 은색 자수가 놓여진 로브 차림의 아지에라가 황급히 물었다.

=새, 새벽의 빛이시여. 저 해일이 누군가의 악의 섞인 의도라는 말씀이십니까?=

“……폭이 수십 킬로미터, 높이도 수십 미터 정도 되는 해일입니다. 아무나 쉽게 일으킬 수준은 아니겠지요.”

환인은 자신의 대답에 표정이 매우 심각해지는 아지에라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새벽의 빛이라니, 자신을 가리키는 높은 지위의 호칭 같은데 자신의 뭘 보고 저리 부르는 걸까. 경악하고 극공경하는 태도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그때 이실리테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호수의 주인.=

행동을 멈춘 사람들이 이실리테를 돌아본다.

자신에게 쏠리는 모두의 시선에 이실리테는 환인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저 해일을 일으킨 존재는 호수의 주인이 아닐까요? 해일이 오는 방향이라던가, 도시에 도착하기 전에 비상이가 보여준 행동을 생각하면…… 조금 비약 같지만…….=

너무 넘겨짚은 걸까. 말하다가 자신이 없어서 말끝을 흐리는 이실리테였지만, 환인이 이야기를 받아주었다.

“해일의 규모를 본다면 호수의 주인이 일으켰을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하겠지. 하지만 호수의 주인, 이름이 아드네빌라라고 했던가. 아드네빌라가 알소프를 공격할 이유가 있나.”

그 의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아지에라 님! 흘로드 님!=

=르니 대주교님, 어디 계십니까! 알락스 대사제님!=

대청 앞마당과 연결된 문을 통해 영혼 심문관의 영혼 기사들과 땅신 교단의 호위 기사들이 우르르 들어와 그들을 찾는다.

그뿐만 아니라 익숙한 울음소리와 함께 네 마리의 쿠에가 퍼더더덕— 날듯이 담장을 뛰어넘어 환인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쿠에~

쿠엣! 쿠으응!

=쿠르티?!=

=쿠핀이랑 쿠라도! 너희들 어떻게 왔니!?=

쀼삣! 큐으~!

환인은 자신에게 달려와 망토를 물고 쭉쭉 잡아당기는 비상에게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진, 진정해라. 비상, 그만.”

뀻! 삐이잉!

뭔가에 긴장한 듯 얼른 여기서 도망가자고 보채는 비상의 부리에 휘둘리던 환인은 그 머리를 끌어안고 진정하라며 다독였다.

다독임이 통해 흥분한 것처럼 몸을 들썩이던 비상도 흥분을 가라앉힌다.

환인은 비상의 머리에 손을 올린 채 불길하게 일렁이는 수평선의 하얀 해일에 시선을 다시 던졌다.

비상이 이토록 보채는 것을 본다면 저 해일 속에 못 해도 산거북 이상 가는 괴물이 있다는 이야기.

환인은 시선을 돌려 성 밖으로 나가기 위한 거리와 도시까지 이제 수 킬로미터도 남기지 않은 해일을 보며 탈출 경로를 계산했다.

가능하다.

강령 덕분에 쿠에들의 신체 능력이 대폭 늘었다. 비상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짧은 시간이라면 비행까지 가능할 정도.

해일이 밀어닥치더라도 층이 높은 건물과 건물을 밟으며 뛰어오르면 충분히 탈출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

영혼 심문관 두 명과 그들의 영혼 기사들 아홉.

땅신 교단 고위 성직자 두 명과 그들의 호위 기사 열.

총 23명을 돌아보는 환인. 그들도 사태를 깨닫고 환인을 여러 감정이 혼합된 시선으로 보고 있다.

영혼 심문관들은 앞으로 가야 할 영도의 인물들이고 땅신 교단의 인사들은 자신의 요청으로 르아웬=아기오시스가 보낸 자들이겠지.

둘 다 버리고 갈 수 없는 인사들이다.

=실례하겠습니다, 성자님.=

그때 땅신 교단의 대사제, 알락스가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알아서 목숨을 부지하겠습니다. 하지만 여기 계신 르니 대주교님만이라도 도시 밖으로 피난시켜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알락스!=

=새벽의 빛이시여. 저희 또한 괜찮으니, 부디 영도의 일곱 영성 중 한 분이신 아지에라 님을 도시 밖까지만이라도 부탁드리겠습니다.=

=자, 잠깐만요. 흘로드, 저도…….=

후우, 환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손을 들어 말했다.

“여기서 순발력과 민첩 계열로 각성하신 분들, 거수하십시오.”

뭔지 모르지만 일단 손을 드는 사람들. 스물세 명 중 열다섯 명이며 전원 판금과 사슬 갑주를 걸친 근접 전투 계열자다. 나머지는 로브나 가벼운 가죽 차림의 남녀들.

환인은 전투 계열 직업자들에게 하급 정령을 강령시켰다.

=헉?=

=엇…… 히, 힘이 샘솟는다!=

=아니, 이게 대체……?=

“지속시간은 충분할 겁니다. 그 정도라면 우리를 따라 지붕을 뛰어넘으며 탈출할 수 있겠지요.”

=아……! 네! 그렇습니다!=

=열다섯 분은 절 따라오십시오. 나머지 여덟 분은 여기서 제가 돌아올 때까지 대기합니다.=

훌쩍, 비상의 등에 오른 환인은 아지에라, 보랏빛 머리의 영혼 심문관의 손을 잡아 자신의 앞에 태우고 르니, 황금빛 머리카락의 호족 여성을 등 뒤에 태운다.

‘아지에라는 의복 포함 61kg 정도, 르니는 53kg인가.’

회색 아름다운 로브 아래에 보호 장비를 껴입고 있는 거겠지. 르니는 가벼운 장포에 얇은 치파오 같은 의복이고.

이정도면 하늘을 나는데 전혀 지장없는 무게다. 문제라면…….

……쀼르릉.

생판 처음 보는 인간을 둘이나 등에 태우게 된 것이 불만인 듯 투레질을 하면서 째려보는 비상이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다. 이번만 참아다오.”

흥!

사람처럼 콧방귀를 뀌고는 고개를 팩­ 돌리고 다다닥, 북쪽 성벽을 향해 훌쩍 뛰어올라 내성의 지붕과 담을 밟으며 질주하기 시작하는 비상.

쿠르티와 쿠핀, 쿠라의 등에 올라탄 여자들도 그 뒤를 따르고 강령을 받은 영혼 기사들과 호위 기사들도 그 뒤를 바짝 따른다.

=꺄아!=

=아읏…….=

“떨어질 수 있으니 꼭 잡으십시오.”

=네, 네엣!=

=흑. 예에…!=

성질을 부리는 것처럼 평소와 다르게 거칠게 달리는 비상 때문에 여자들이 몸을 들썩이다가 황급히 환인의 허리를 끌어안고 몸을 돌려 그의 가슴에 안기는 아지에라와 르니.

삽시간에 성 아래 도시가 다가온다.

매캐한 탄내와 사람들의 비명소리, 겁을 집어먹고 도망가는 사람들로 인한 소음.

환인은 간단한 손짓으로 이실리테와 안느에게 아직 해일이 침범하지 않은 대로를 따라 선행을 지시했다.

쿠에를 탄 그녀들이 비상을 지나쳐 달려가고 강령을 받아 신체 능력이 2배 이상 상승한 영혼 기사들과 호위 기사들도 바람처럼 그 뒤를 쫓는다.

“비상, 날아라.”

큐우웃!

펄럭— 세 명을 등에 태우고 있는 비상은 이 정도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훌쩍 하늘로 날아올랐다.

=꺄악!=

=아앗……!=

급격한 상승에 놀라 작게 비명을 지르며 환인을 더욱 끌어안는 두 여자.

환인은 등과 가슴에 닿는 젖가슴의 감촉, 그리고 달짝지근한 체취를 맡으며 고도 100m 정도에서 남쪽 선착장과 호수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마침 지상에서 높이 10m의 파도가 도시 남부를 덮치는 게 시야에 들어온다.

나무로 지은 집은 통째로 무너지거나 떠내려가며 다른 집과 부딪친다. 돌을 쌓아 만든 집은 조금 버티긴 하지만 이내 와르르 무너지며 진한 흙탕물 속으로 사라졌다.

해일은 골목과 길, 대로로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들어가며 도시 남부를 삽시간에 집어삼키고 있었다.

집과 건물이 적당히 방파제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해일이 너무 높고 강하다. 이러면 도시 북부까지 물이 도달하는 건 시간문제.

“순식간에 따라잡히겠군. 비상, 내려가자.”

큐웃!

쐐애액— 바람과 함께 사람들을 피해 질주하는 쿠르티와 쿠핀 앞에 착지한 환인은 비상을 움직여 훌쩍, 바로 옆 지붕으로 뛰어올라 겅중겅중 지붕을 뛰어넘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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