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441화 (441/813)

〈 441화 〉 435 알소프로 가는 길

* * *

에미트 정글 지류는 프라버 반도의 중동부를 세로로 가로지르는 광대한 숲이다.

숲과 정글이 반쯤 섞인 그곳은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높게 자란 나무로 인해 하늘이 가려져 점점 어두워졌지만, 길 자체는 평탄해 이동에 어려움은 없었다.

많은 사람이 많이 오가느라 길이 자연적으로 다듬어졌기 때문이다.

길의 폭이 10m에 이를 정도이고 바닥은 아스팔트만큼이나 딱딱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오갔는지 알 수 있는 대목.

한 시간마다 맞은 편에서 온갖 마차, 짐수레 등으로 이루어진 긴 행렬이 다가오다가 멀어져갈 정도로 유동량과 이용자가 많으니 길에 잡초가 자랄 틈이 없었던 거겠지.

중간에 개과의 마수나 원숭이과의 괴수가 습격해오기도 했지만, 환연의 정령 감시망을 뚫는 일은 없었고 약하기도 했기에 문제 같은 것은 발생하지 않았다.

실제로 린덴 촌락에서 마주쳤었던 일꾼 키메라보다 약하기도 했었고.

그렇게 해치운 마수나 괴수는 챙겨놨다가 휴식 시간에 이실리테의 무두질 숙련에 사용하거나 물약 재료를 채취했다.

환연이 정령으로 주변을 감시하다 과일나무나 진귀한 야채 등을 발견하면 그걸 채집하기도 했다.

휴식 중에 상행 중인 상단의 책임자와 접촉, 인근 마을이나 촌락의 소식을 서로 교환하는 일도 있었다.

=알소프 쪽은 프라버 쪽에서 전쟁을 걸어올 거라 무서워하고 있고 프라버 쪽은 알소프 쪽에서 전쟁을 걸어올까 두려워하고 있고……. 윗사람들의 싸움에 고통받는 건 백성뿐이라고 하더니 진짜 그 말 그대로네.=

정보를 교환하며 알게 된 것은 프라버 권역의 촌마을이든 알소프 권역의 촌마을이든, 서로 상대측이 전쟁을 걸어올 거라고 시름과 근심에 잠겨있다는 거였다.

특히 권역 경계선에 가까운 마을일수록 그러한 경향이 두드러졌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교역 금지령까지 내려지지 않지만, 상인들은 언제 금지령이 떨어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그런데 그 상인이 한 이야기는 뭐였을까? 북부의 어획량이 예년의 절반밖에 안 되고 근처 백사장에는 죽은 생선이 잔뜩 떠밀려 오고 있다니…… 불길한 느낌이야.=

=바다처럼 넓은 알류겔 호수 중심이 붉게 물들기도 했다는 걸 보면 알소프하고 프라버가 싸우는 걸 물신님이 노여워하고 있다거나 호수의 주인이 심기 불편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호수의 주인이라면…… 아드네빌라를 말하는 거야?=

=응. 알류겔 호수는 다른 나라에서도 유명하잖아.=

이실리테와 안느의 대화에 유르파가 끼어들었다.

=안느 아가씨. 하지만 알류겔의 주인은 활동하지 않은 지 300년이 넘어가잖니. 이제 와서…… 음…….=

=그럴싸하지?=

=그러네. 잘 자고 있는데 방해받으면 나도 화날 거 같으니까.=

환인은 여자친구들이 상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주제로 대화하는 걸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과학 상식에 따르면 적조 현상이 일어나 생선이 집단 폐사한 사건으로 보이지만, 여자친구들은 다른 방식으로 보는 중이다.

마냥 지구과학이 이 세계에 통용되지 않는다는 걸 환인도 이제 습득했기에 별말은 안 하지만…….

‘궁금하긴 하군.’

정말 호수의 주인이라는 괴물이 있어서 그런 일을 벌이는 건가 하고 말이다.

그만한 일을 저지를 수 있다면 보통 생물은 아닐 테지. 환인의 머릿속에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세 마리의 동물이 떠올랐다.

삼림형 미궁의 푸른 불꽃 호랑이.

삼림형 미궁 인근의 산을 짊어진 거북이.

율캄 마을과 접해있는 올조트 호수의 거대한 뿔비늘 고래.

뿔비늘 고래라면 비슷한 일을 저지를 수 있지 않을까.

평범하게 물리적으로 생각해본다면 그만한 크기는 현실적으로 호수에 존재할 수가 없다. 첫 번째로 부력 문제, 두 번째로 식량 문제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걸 무마할 정도의 특수한 능력이 있다면?

알류겔 호수처럼 지구의 오대양 중 하나가 들어갈 정도로 큰 호수의 주인은 괴물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닐 터.

그에 마땅한 능력이 있다면 물고기를 집단 폐사시키고 물 색을 변화시키는 정도야 간단하지 않을까.

어쩌면 쓰나미를 일으킬 수도 있겠지.

환인은 오랜만에 판타지적인 탐구심이 솟는 것을 느끼며 영기를 몸 전체로 순환시키면서 호수의 주인이 있다면 어떤 능력이 있을까, 모습이나 형태는 어떠할까,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갔다.

한나절에 걸쳐 숲을 빠져나온 일행은 본격적으로 알소프의 권역에 접어들었다.

여정은 무척이나 조용하고 한산했다. 에미트 정글 지류를 빠져나와 평원에 진입한 일행은 다른 행렬과 마주치지 못했고 공격해오는 짐승이나 괴물의 숫자도 급감했던 것.

푸른 하늘을 선명하게 나누는 뭉게구름, 알류겔 호수 쪽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 흔들리는 잔디와 수풀을 제외하면 구경거리라곤 없는 지루한 여행길.

그사이 환인은 마지막 여덟 번째 여자 영혼의 한기까지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예상대로 한기를 흡수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영혼 구슬이 늘어날수록 감소했다.

처음에는 팔뚝에 서리가 맺히고 몸에 냉기가 흘러나오는 게 보일 만큼 물리적인 여파가 발생했지만, 네 명째 한기를 흡수한 시점에서 부작용은 약간의 오한뿐이었고 여섯 번째는 그저 찬바람을 쬔 정도였다.

마지막 여덟 번째는 여자친구의 온기를 탐할 필요도 없이 자신의 온기를 40%가량 소비했을 때 컨디션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남은 것은 96개에서 129개로 늘어난 영혼 구슬과, 왼팔을 뒤덮은 빛이 어깨를 넘어 왼쪽 흉부까지 침범하기 시작한 것뿐.

「으으응…….」

“…….”

「우으으으응…….」

달리는 마차 지붕 위.

환인은 자신의 벗은 상반신을 향해 미간에 힘을 준 채 바라보는 백려강에게 입을 열었다.

“정신을 집중하는 정도로는 역시 안 보이나 보군.”

「죄송해요 환인 님……. 제 자질이 부족해서…….」

자책하다못해 자학하는 모습에 옷을 챙겨입던 환인은 작게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려강. 자기 비하도 과하면 비굴해 보이는 법이다.”

「하지만.」

“내가 협조를 요청했을 때 뭐라고 말했었지.”

「……이 실험은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실험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어요.」

“그런 실험에 자질 같은 것이 개입할 여지가 있을 리 만무하다. 당사자인 나조차도 가시성의 조건과 발생 원인조차 모르는 판국이니 더 말해서 무얼 할까.”

그렇게 말한 환인은 백려강의 푸른 머리카락을 어루만져주며 그녀의 날개깃털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 나는 비굴한 여자는 좋아하지 않으니, 네가 그 점을 반드시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녜, 녜헷…!」

작고 귀여운 깃털 여러 장이 겹쳐지고 이어져서 형성 중인 귀여운 귀가 쫑긋 솟아오르더니 백려강은 소맷자락을 쥐고 얼굴을 가려버린다.

환인은 그 모습에 작게 웃다가 마차 뒤를 따라서 날아오고 있는 여덟 여자 영혼으로 시선을 돌렸다.

박수달 나루터에서부터 아크렛 마을을 거쳐 알소프 서쪽 평원까지.

「…….」

「규스…….」

「아아….」

6일에 걸친 여정 속에 팔다리가 검게 물든 채 적색 아우라를 흘리고 있는 여자 영혼들은 오히려 이성을 잃기 전에 비해 더 큰 고통을 받고 있었다.

「어, 어쩌면 카드람이 남편이랑 아들을 놔두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바보 같은 소리. 현실을 외면하지 마라. 너나 우리가 이렇게 타락하게 된 것은…… 그럴 리 없다는 걸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니냐.」

「……흐윽….」

환인은 딱히 그녀들을 위로하지도, 매도하지도 않고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괴로워할수록 팔다리에 물든 검은빛이 몸으로 뻗어오고 있지만, 그 속도는 얼마 안 된다.

알소프까지 남은 거리는 고작 사흘. 서두르면 이틀가량이다. 저 여자들이 다시 정신을 잃기 전까지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시간이니 오히려 한기가 빠르게 쌓인다면 환영할 일이지.

‘그만큼 혼재로서 파급력을 더 강하게 일으킬 테니까.’

「아. 환인 또 흉계 꾸미는 얼굴이야.」

“…….”

=응? 음……. 난 잘 모르겠는데 연이 너는 금방 알아보네?=

「유르파 말고 이실리테나 안느도 모르더라. 왜 모르지? 저렇게 잘 보이는데.」

=네가 자기랑 핏줄 상으로 가장 가까워서 그런가 보다.=

「움… 하긴. 난 환인의 피에서 태어났으니까.」

=쿡쿡. 그러고 보니까 네가 처음 왔을 때 생각나네. 그때 네 성격 진짜 굉장했는데.=

「…….」

「정말요? 어떻게 굉장했었는데요?」

=자기 성격이랑 말투에 배려심을 뺀 느낌? 저 귀엽고 예쁜 모습이랑은 절대 어울리지 않는 성격이었어. 지금은 안느 덕분에 성격이 동글동글해졌는데 그땐 연이랑 대화하다 보면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니까?=

「와아…….」

「아 유르파 넌 왜 옛날이야기를 꺼내고 그래!」

환인은 사이좋게 아웅다웅하는 그녀들을 잠시 구경하다 마차가 나아가는 방향의 하늘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나 감시자, 주시자는커녕 날짐승도 보이지 않는다.

그게 이해되지 않아 환인은 턱을 매만졌다.

알소프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프라버 북부지역부터 시작해 알소프에서 이틀거리까지 10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쯤이면 땅신 교단과 프라버가 펼친 적극적인 정보 유포 활동으로 녹색 성자 일행이 알소프에게 공격받은 사실과 성자가 그 점을 따지러 가고 있다는 소문까지 흘러 들어갔을 터.

그게 아니더라도 들개 전사단을 보냈다가 연락이 두절되었으니 최악을 가정하고 여차하면 자신을 살해할 군까지 보낼 거라 생각한 환인이었다.

그래서 환인은 나름 적의 매복 지점을 예상했다.

나루터, 아크렛 마을, 에미트 정글, 그리고 이틀 전 지나친 드넓은 초원.

하지만 최후의 습격 지점이라 여겼던 초원에서도 습격은 없었으며 하늘에서 감시하는 인원조차 찾아오지 않았다.

=알소프 있잖아. 이제 와서 잘못을 빌 생각이 아닐까?=

그날 밤 알소프까지 하루하고 반나절 거리에서 꾸린 야영지에서 저녁 훈련과 식사까지 끝마친 안느가 이야기를 꺼냈다.

모닥불 옆에서 장비를 손질하는 안느 옆에서 마찬가지로 레드릭 얼터를 꼼꼼하게 점검하던 이실리테가 고개를 돌리며 묻는다.

=알소프가 병사를 안 보낸 거 말이야?=

=응. 지금까지 암살자를 매복시켜놓기 좋은 곳은 몇 군데나 있었어. 하지만 한 번도 공격받지 않았다는 건…….=

=알소프 영주가 의도치 않게 벌어진 실수였다고 핑계 대면서 사과할 생각이라는 거니?=

숄을 어깨에 걸치고 환인이 내린 커피 한 잔과 함께 책을 읽던 유르파가 눈매를 찌푸린다.

=무려 성자를 공격했잖아. 아무리 일을 훼방 당해서 열받았다고 해도 영혼사를 공격한 것은 사회적인 통념으로 강한 손가락질을 받을 일이야. 하지만 과잉 충성하는 부하가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라고 모든 죄를 덮어씌우고 적당한 사과와 함께 배상할 생각이라면 이 상황이 설명되지 않을까?=

=…그렇긴 해. 공격은 단 한 번이었고 비록 속았다곤 해도 자길 죽이려 한 게 아니라 전송 두루마리로 프라버의 위협에서 자길 성에 모시려 했다는 변명을 댈 수 있으니까.=

유르파의 견해에 안느는 손질을 마친 천벌의 망치와 성벽의 방패를 아공간 가방에 집어넣고 역겹다는 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무튼, 알소프 영주는 자기 목적을 위해 려강이를 자살로 몰고 간데다 프라버에 공작까지 펼쳤어. 그런 인간이라면 자기 잘못을 덮기 위해서 아랫것들을 버리는 패처럼 내던질 수도 있다고 봐.=

거기다 지금쯤이면 백중강과 르아웬=아기오시스 추기경이 퍼트린 소문까지 알소프에 퍼졌을 테니까 오히려 공격하지 못하고 방향을 선회한다고 보는 게 더 개연성이 맞아떨어진다.

후, 커피 향이 스며든 한숨을 내쉰 유르파는 보존 주머니에서 두루마리가 발동하지 않도록 투명한 껍질로 밀봉해놓은 전송 두루마리를 꺼내 들었다.

=만약 진짜로 그런다면 수습 못할 큰 실수가 될 거야. 이것도 있지만 우리한테는 거짓말을 못 할 증거물이 있잖아? 오히려 오해를 해명하겠답시고 사람들을 모아놓고 발표할 때 이걸 폭로해버리면 적어도 알소프 영주는 상류 사회에서 확실하게 매장당하겠지?=

희미하게 빛이 명멸하는 두루마리가 유르파의 가느다란 손가락에 살랑살랑 흔들린다.

환인은 거기서 퍼져나오는 희미하지만 분명한 마력의 기운에 눈을 가늘게 떴다.

두루마리가 발동하려는 흔적은 아니다. 그렇다고 두루마리에 위치 추적 같은 술법이 걸려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술법이 걸려있었다면 유르파가 알아채지 못할 리 없으니까.

‘그러면 저…… 마치 어딘가와 연결되어 신호를 보내는 듯한 흔적은 뭐지.’

꾸?

일행은 비상이 고개를 갑자기 치켜들고 알류겔 호수 쪽을 돌아보는 모습에 긴장을 끌어올리며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주었다.

일행 중 기감이 가장 예민한 비상이다. 그런 비상이 저런 행동을 보인다는 건 무언가 일이 생겼다는 뜻이니까.

각자 손을 아공간 주머니로 뻗어 언제 전투가 벌어져도 대응할 수 있게끔 긴장을 유지하며 물었다.

=비상아. 무슨 일이니?=

꾸우? 큐으. 큐삣. 삐삣!

환인의 옆에 앉아 큐삐거리며 무언가를 설명하는 비상의 행동에 여자들의 시선이 환인으로 옮겨졌다.

“……호수 저 멀리서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는군. 비상, 어떤 느낌이었지.”

큐으으……삣? 삐유.

뭔가가 어둠 속에서 꿈틀거리는 거 같았다니. 그게 무슨 표현일까.

여자들은 긴장을 늦출 수 없었지만, 이윽고 환인의 무릎 위로 머리를 내린 채 다시 눈을 감는 비상의 모습에 할 말은 많은데 말이 안 나온다는 얼굴로 입술을 오물거렸다.

잠시 5분 정도 기다렸지만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여자들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긴장을 풀었다.

=비상이가 말한 게 뭘까? 율이 언니는 짐작 가는 게 있어?=

=글쎄 나도 잘…….=

「호수의 괴물들이 저 멀리서 막 몰려오고 있다거나 그런 거 아냐?」

환연의 의견에 안느는 글쎄다 하는 표정으로 미간을 모았다.

=뜬금없이? 그리고 괴물이 몰려오면 비상이가 먼저 흥분해서 퍼덕거릴 텐데…….=

환인의 무릎에 머리를 올리고 눈을 감은 그 모습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

=…….=

“…….”

다들 설명할 수 없는 찜찜함에 나누던 이야기도 멈추었다.

그날 밤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별일 없이 지나갔다.

하루 뒤, 알소프에서 반나절 거리.

저 멀리 지평선 끝에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성벽과 높이 솟은 탑, 수평선에 띄워진 배가 보이는 언덕길에서 일행은 환인의 지시에 따라 아우라 은폐 마도구를 벗고 마차도 원래 모습으로 되돌렸다.

환인도 자신의 상징이 되어버린 흑색 고급 전투 법사 같은 복식에 회색 후드 망토를 둘렀고 비상의 깃털 색 변화 마도구를 해제해 원래의 녹색으로 만든다.

저 멀리 보이는 이국적인 도시에 시선을 떼지 못하던 안느가 으응~ 아주 약간 색정적으로 느껴지는 신음을 흘리더니 손을 눈에 올리고 주문을 외웠다.

=……천 리를 내다보는 땅신님의 자비를 두 눈에.=

그 주문에 유르파도 지팡이로 자신의 이마를 대더니 짧은 술문을 외운다.

=거리는 시야를 가리지 못할지니.=

「뭐라는 거야?」

「먼 곳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주문들이에요.」

주문을 끝낸 안느의 두 눈은 황토색으로, 유르파의 두 눈은 하늘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으로 도시를 바라보던 두 여자가 어? 작게 탄성을 지른다.

=진짜네. 도령, 도시가 축제 분위기인데?=

“축제라고.”

=안느 아가씨 말대로야. 거리에 만국기도 걸려있고 노점도 잔뜩 깔려있네. 사람들도 모두 웃고 떠들고…….=

환인은 조금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저께 밤, 그녀들이 나눈 대화는 환인도 염두에 두고 있던 거였다. 자신을 공격하려 한 것을 오해라는 말로 덮어 두려 하는 것 말이다.

어느쪽이든 상관없었지만 이렇게 축제를 벌이고 있을 거라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는데.

환인은 배신감과 분노에 반쯤 잠겨있는 들개 전사단의 여자 영혼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 시기에 벌어지는 축제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축제의 허락도 좀처럼 나지 않습니다. 2년에 한 번 벌어지는 승령천제와 카드람 본인의 생일을 축하하는 정도가 전부입니다.」

목소리에 서리가 맺힌 듯한 니누의 대답에 일행은 점점 의문에 빠져들었다.

“여기서 고민에 빠져봤자 답은 나오지 않겠지. 일단 전투를 대비해 려강은 비가시화하고 들어간다.”

영혼이라 해도 가시화한데다 원기까지 주입하면 물리적인 접촉이 가능해진다.

그 상태에서 공격을 받으면 위험할 수 있으니 무력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백려강은 영혼술 외에 모든 공격이 면역인 비가시화 상태로 돌린다.

이어 전투가 벌어진다면 각자 해야 할 일을 지시한 환인은 서구적인 도시가 아니라 동양풍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기와집과 건물이 즐비한 호반 도시 알소프로 향했다.

그리고 자금성의 입구인 천안문을 닮았지만, 백색과 청색으로 이루어진 성문에 도달했을 때.

=아앗?! 성자님이십니다!! 비자룩스와 린덴 촌락의 구원자이신 녹색 성자님께서 오셨습니다!!!=

환인은 무미건조한 눈빛을 지었다.

쩌렁쩌렁 고함지르며 안쪽으로 달려가는 병사. 자신을 알아보고 길을 비켜주며 공경을 내비치는 사람들.

저쪽에서 살짝 긴장하면서도 반가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달려오는 무협에 등장하는 무사 차림의 사람들까지.

=설마 도령을 환영한다고 축제까지 벌인 거야?=

=설마 싶지만, 저들의 반응을 보면 아니라고 못 하겠는걸.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한 술 더 뜨네.=

=조금 역겹네요.=

여자들이 헛웃음과 빈정거림을 감추며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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