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5화 〉 429 프라버 북쪽 연안
* * *
프라버 북쪽의 연안은 리아스식으로 복잡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크고 작은 강과 호수가 널려있었으며 조수간만의 차이로 길이 드러났다 물속으로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수륙양용 괴수나 해양 마수가 뻘밭이나 물속에 숨어있다가 지나가는 여행객을 습격하기도 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장소.
환인 일행은 몰랐지만 가이드 없이 들어왔다간 열 명 중 아홉이 죽어 나가는 곳, 그게 프라버 북쪽 연안이었다.
그러나 일행에게는 관계없는 이야기였다.
—쿠궁!
괴물의 경우 비상을 타고 하늘을 비행 중인 환인이 괴물의 기척을 포착하면 영혼 폭발을 그 근처 땅속에다 터트린다.
그러면 낮고 묵직한 폭음과 진동에 부근의 괴물이 뿅 하고 물 밖, 뻘 밖으로 튀어나온다.
=합!!=
=흡.=
생경한 충격에 괴물이 뛰쳐나오면 안느나 이실리테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가 쓱싹해버리니 괴물의 습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우와우와, 이거 하드 크랩이네?!=
마차의 절반 정도 되는 거대한 진흙색 담수 게의 모습에 안느가 환호성을 터트린다.
=하…드 크랩? 이것도 맛있어?=
=어! 주도의 성왕님도 먹고 싶을 때 못 먹는 엄청 진귀한…… 아악! 나도 못 먹잖아!=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지르는 안느의 모습에 환연이 킥킥 웃고 백려강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환연, 안느는 왜 하드 크랩을 못 먹나요? 저 모습을 보면 다른 플뢰 분들처럼 해산물을 매우 좋아하시는 거 같은데.」
「안느는 환인한테 수목화라는 걸 하고 있어. 그래서 생선이든 짐승이든 고기를 못 먹는데 그거 때문이야.」
「아! 수목화는 저도 알아요. 안느는 환인 님을 정말로 사랑하시는 거네요…….」
이렇듯 겸사겸사 진미로 통하는 식량까지 획득 가능하니 오히려 괴물의 출현은 일행에게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밀물과 썰물로 인한 지형의 수몰 및 변화도 일행에게는 아무런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
일반인이라면 순식간에 밀려와 길을 집어삼키는 밀물은 목숨을 위협하는 요소다.
괴물과 싸우는 중에 밀물이 들어오기라도 하면 말 그대로 지옥으로 가는 급행열차에 올라타는 것과 마찬가지.
하지만 일행에는 유르파가 있다. 유르파는 전투 쪽으로 힘이 부족할 뿐, 상황 대처 능력은 익힌 술법 덕분에 환인보다 폭넓다.
=자~ 다들 몸에 힘 빼고~.=
쿠우~!
쿠에엣!
쿠응.
물이 들이닥쳐 길이 사라지면 유르파는 지팡이를 들고 마차와 쿠에들에게 부력?力의 술법을 건다. 그럼 쿠르티와 쿠핀, 쿠라는 물에 반쯤 뜬 마차를 끌고 오리처럼 헤엄치는 것이다.
헤엄치다 지치면 환인이 원기 회복용 6급 마도구를 꺼내 원기까지 보태주는 데다 하늘에서 길잡이까지 하니 악명높은 북쪽 연안도 환인 일행에게는 조금 특이한 길일 뿐.
환인 일행에게나 조금 특이한 거지 일반인에게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길이지만, 그렇다고 오가는 사람이 적은 것은 아니다.
프라버 반도에서 북쪽 연안을 빙 둘러 프라버까지 안전하게 이동하는 코스는 일반적인 여행자나 상단의 경우 15일에서 20일이 소요된다.
그에 비하면 연안을 가로질러 이동할 경우 7일에서 10일로 절반 가까이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촉박한 시간에 쫓기는 이들에게 이러한 시간 단축의 메리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법.
그러한 사람들이 육지의 섬이라고 불러야 할지, 밀물로 인해 길이 끊긴 섬에 모여있는데 그 숫자가 백 명을 넘어간다.
다시 길이 생기길 섬에서 기다리던 그들은 에메랄드빛의 호수를 참방참방 헤엄치며 마차를 끌고 나아가는 쿠에 세 마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이, 저기 좀 봐.=
=쿠에가…… 수영도 잘한다지만 저렇게 마차를 끌고 갈 정도였나?=
=술법으로 마차를 가볍게 했겠지.=
=흐음…… 우리는 저렇게 못 해?=
=불가능해. 마차를 저 정도로 띄우려면 최소 중상급 부력의 술법을 써야 하는데 지속 시간은 시전자의 술력에 영향을 받아. 평범한 술사는 10~20분이 고작이란 말이야.=
=그럼 저 마차에 고위 술법사가 있다는 건가…….=
=수중 마수 공격을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술사가 말이지.=
그렇게 밀물을 피해 섬에 모여있는 이들은 한둘이 아니다. 작게는 열댓 명에 많게는 백 명 단위.
마차 지붕에 앉아 자신들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똑같이 구경하던 안느는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자기 생각을 말했다.
=려강. 여길 지나는데 안내역이 필수라고 했잖아. 이용 가격도 비싸다던데 비쌀 이유가 있어? 한 번만 연안을 지나면 다음부터는 딱히 가이드를 고용하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야.=
「저도 위험하다는 거랑 안내인을 고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만 들어서…….」
=흐음. 뭐지? 다른 이유가 있으려나.=
“그렇게 간단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조수의 차이는 계절과 날짜에 따라 크게 차이 나지. 저 섬도 지금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밀물이 심할 때는 저 섬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거다.”
오래된 비행에 잠깐 비상을 쉬게 한다고 마부석에 앉아있던 환인이 설명해주자 그녀들은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주억였다.
마부석과 이어진 쪽창을 열어두고 근처에 앉아 이야기를 듣던 유르파는 좀 더 근본적인 부분에 궁금증을 품고 물었다.
=혹시 그런 차이가 왜 생기는지도 알고 있니?=
“태양과 달이 지구에 미치는 기조력 때문입니다.”
=투애야앙? 다르?=
“…….”
아랍계 외국인이 한국어를 말하는 것처럼 어색한 안느의 발음에 환인은 입을 다물었다.
이 세계에서 태양은 하늘신의 눈 샴스이며 달은 수면에 비친 물신의 눈 알카마라고 불린다.
설마 태양과 달을 뜻하는 단어조차 없을 줄은 몰랐던 환인이 샴스와 알카마라고 정정해주자 그의 여자들은 오~ 신기해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역시 하늘신님이랑 물신님이구나. 이렇게 많은 물을 불렸다가 줄이기를 계속 반복하시다니.=
=왜 반복하시는 거지? 그냥 가만히 놔두면 안 되는 걸까?=
=……그, 글쎄? 신님들이 하시는 일을 우리 같은 필멸자가 알기 어려우니까…….=
조수를 그렇게 생각할 수 있나. 안느의 기상천외한 생각에 환인이 말없이 턱을 매만지자 유르파는 그가 신학이 아니라 현상에 대한 이론으로서 그 이유를 알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궁금하다. 신학이 아니라 과학…이라고 했나? 그쪽으로는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러시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제일 속 편해. 우리가 도령의 복잡한 생각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야.=
=후후. 그렇겠네.=
하지만 땅신 교단의 성투사인 안느의 눈치가 보여 물어보질 못하겠다.
파르히스트에 있을 적 환인이 통역 현상이라 불리는 현상에 대해 분석하고 토의하다가 땅신의 종교인인 안느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던 적이 있지 않은가.
아마도 자기가 입을 다문 것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유르파는 환인이 다시 입을 여는 것에 재빨리 귀를 기울였다.
“안느. 나는 땅신 교단의 신실한 종교인인 네 입장을 존중한다.”
=응? 어…… 고마워?=
“그리고 이 세계의 진리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처지기에 깊고 복잡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만, 세상은 우리가 전부 다 알지 못할 만큼 아주 방대하고 복잡한 이치에 따라 돌아가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환인의 담담한 목소리가 그녀들의 지성을 자극한다.
하지만 안느는 지성의 자극으로 인한 탐구심보다 자신의 신분과 학식으로 가진 가치관에 또 충격이 올까 조금 두려워하는 얼굴로 물었다.
=자연 현상이 신님들이랑 관계없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아까 그… 태애양이라는 거랑 달? 같은 거?=
“모른다. 진실은 그 다섯 신께서만 알고 계시겠지. 하지만 자연의 변화는 사소한 것에도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가 숨 쉴 수 있게 해주는 공기.”
이 공기가 발생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리, 시아노박테리아가 광합성을 하며 빛에너지로 이산화탄소를 유기 분자로 만들며 이 과정에서 부산물로 산소가 발생한다는 것.
그 외에도 사람이 내쉬는 숨, 이산화탄소를 식물이 흡수해 탄소동화작용을 거쳐 산소를 만들어내는 방식도 있고 이 세계만의 방식도 있을지 모른다고 알려주자 안느는 물론 이실리테와 유르파, 백려강도 받아들이기 어려워 버벅거린다.
특히 안느는 머리가 뜨거워지는지 =으~.= 작게 앓다가 손수건을 물에 적셔 코 위로 눈과 이마를 덮으며 환인에게 말했다.
=내 앞에서는 그런 과학 지식을 이야기해도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 특히 교단 쪽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 이야기 꺼내지 마. 진짜 큰일 날 수도 있어.=
“그러지.”
대답한 환인은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눈을 끔뻑이는 유르파를 돌아보았다.
자연 현상, 기조력을 이야기하며 자전을 떠올렸더니 유르파에게 알려주지 않았던 공간 이동과 관련된 자신의 추측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평생 연구인 공간 전송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공간 전이 좌표 지정의 불안정성과 전이 시의 물질 분해 및 재조립의 안정성.
그중 공간 전이 좌표 지정이 불확실하며 오류가 자주 발생한다는 것은 지구의 자전과 관계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마차 지붕에 드러누워 이마에 젖은 손수건을 올린 안느에게 시선을 주었던 환인은 유르파에게 뒤를 가리켰다.
“유르파, 뒤로.”
환인의 신호에 뒤로 물러난 유르파는 그가 쪽창을 통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눈을 끔뻑였다.
뭐 하려고? 혹시 또 내 몸을……?
“이실리테, 안느. 안에서 유르파의 술법에 관해 복잡한 이야기를 좀 하겠다. 듣고 싶다면 쪽문을 열어두던가 안으로 들어와라.”
=……궁금하긴 한데 난 넘어갈게. 그걸 들었다간 머리가 폭발할지도 몰라.=
어쩐지 세계의 진실과 연결되어있는 이야기일 것 같아 사양하는 안느.
=저는 조금만 궁금하니까 쪽문을 열어둘게요.=
들어봤자 모를 테지만 주인님이 하는 이야기니까 궁금하다는 이실리테.
백려강은 이미 유르파의 옆에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고 환연도 천장에 매달린 자기 꽃바구니 침대에서 턱을 가장자리에 올린 채 눈에 호기심을 띄우고 있다.
환인은 노트북을 먼저 꺼내 지구와 달, 태양의 천문학에 천문학 속의 물리학 얼개를 보여주었다.
저번에 한 번 지구에 다녀온 뒤 한국어를 익힌 그녀는 어렵지 않게 자료 화면과 환인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후 지구의 공전과 자전에 대해 환인은 그녀가 이해하기 쉽도록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해주었다.
다른 요소는 배제하고 그녀의 좌표 연구와 관련된 부분에 대한 것만 집어주는 핵심.
이야기를 모두 들었을 때 백려강과 환연은 한 가지, 이 땅은 둥글다는 사실에만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면 지평선이 일자가 아니라 살짝 곡선을 그리는 게 그래서였네요…….」
「니오네브레스가 스스로 회전하면서 샴스를 중심으로 돌고 있으면 회전력에 다들 우주로 튕겨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왜 멀쩡하지? 회전하는 느낌도 없는 게 이상해.」
단순한 현상에 관심을 보이는 백려강과 물리학 그 자체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는 환연. 둘의 감상은 그냥 신기하구나~ 하는 정도였지만 유르파는 달랐다.
그녀는 눈빛이 멍해질 정도로 지식적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이 땅이 구체라고? 스스로 회전하고 있는 데다 샴스,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 중이라니?
그래서 공간 좌표를 새기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좌표가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졌던 건가?
유르파는 머릿속에 불이 환히 켜지는 느낌을 받고 환인을 돌아보았다.
=그때, 자기한테 내 연구 목표를 알려주었을 때 자기가 대답해주지 않았던 견해가…… 이거였구나?=
“예.”
=그래……. 그래서 그런 거였어……. 객체 이동 방식은 장거리의 경우 좌표 고정용 닻을 설치하고 근거리 이동은 주변 사물을 토대로 개념을 일치화해서 이동하니 좌표가 필요 없었던 거였어. 내 연구의 방향이 잘못된 게 아니라 이건…….=
자신이 있는 것도 잊고 생각에 잠겨 드는 유르파. 환인은 연구의 실마리를 잡고 사색에 빠진 그녀를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보기 좋은 홍조가 뺨을 살짝 물들이며 건강한 혈색을 드러내고 있다.
시선을 내리자 머리 크기만 한 가슴의 일부와 복부, 꼰 다리 일부만 간신히 가린 노출도가 큰 하얀색 슬릿형 드레스가 시야에 들어온다.
덕분에 보기 좋은 살구색의 팔다리와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고 있었다.
특히 다리를 꼬고 앉아있어 터질 듯한 허벅지는 그야말로 일품이며 아우라 은폐 목걸이가 자리 잡은 가슴골은 시선을 사정없이 끌어당기는 특이점.
“…….”
단순히 앉아만 있어도 색기와 관능미를 드러내는 유르파의 이전 피부는 그야말로 창백해서 새하얀 백자처럼 보였었다.
예민한 사람이라면 괴물이라고 서슴없이 말할 정도였던 거다.
그러나 지금은 건강한 피부와 혈색에 아름다운 백색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평범한 미녀다.
이러한 변화가 생긴 것은 그녀의 아랫배에 황금색 자궁 문신이 새겨진 이후였다.
환인은 그녀의 혈액이 백색에서 적색으로 변화한 것이라고 짐작했고 바늘로 손가락을 살짝 찔러 확인한 피는 예상대로 흰색이 아니라 붉은색이었다.
그는 마차의 창문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을 받으며 사색에 잠겨있는 유르파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흡정족에게 내려오는 설화, 종족의 굴레를 탈피한다는 이야기는 이 혈액의 변화였을까.
확실히 원형 원목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시선을 내리고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흡정족이라 생각하지 않을 모습이다.
여기까지만이라면 좋겠지만, 혈액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몸의 변화를 유도할 것이다.
그 변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
‘지금까지는 그녀의 몸에 이상이 생기지 않았지만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도 아주 없진 않겠지.’
유르파도 굴레를 탈피한다는 이야기만 알고 있었기에 다른 것은 베일에 쌓인 상태라 궁금증이 커진다.
그때 그녀의 고개가 들리더니 약간 회색이 섞인 하얀 눈동자가 환인을 담았다.
흰색과 검은색이 약간 섞인 회색 눈동자가 살짝 커진다.
=앗! 미안해, 자기. 생각에 깊이 빠져서 자기를 잊고 있었네.=
“아닙니다. 그보다 제 견해가 유르파의 연구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까.”
=물론이야! 가장 큰 문제점 두 가지 중 하나가 거의 해결되었으니까, 지금 떠올린 주제만 더 연구하면 좌표 관련 쪽은 이론을 정립할 수 있을 거 같아.=
“잘 됐군요. 그보다 이제야 알려주어서 미안합니다. 솔직히 말해 그동안 잊고 지냈습니다.”
환인의 사과에 유르파는 곤란한 듯 미소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안겨주었는지 알고는 있는 걸까.
사과라면 몸과 마음마저 전부 바친 터라 이 이상 해줄 것이 없는 자신이 사과해야 하는데.
유르파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길고 하얀 머리카락이 햇살 속에서 부드럽게 찰랑인다.
=으응. 하나도 미안해할 필요 없어. 그냥…… 그냥 내가 다 고마울 뿐인걸.=
의자에서 일어난 유르파는 대담하게 그의 무릎 위에 앉아 가슴에 상체를 기댔다.
환인은 한없이 부드러운 가슴이 자신의 흉부에 닿아 뭉개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품 안에 솜사탕이 들어온 듯한 가녀리고 보드라운 느낌.
뼈가 없는듯한 그 부드러움을 잠시 만끽하던 환인은 옆트임이 과한 드레스 사이로 손을 넣어 그녀의 아찔할 정도로 쫄깃한 엉덩이를 움켜쥐며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당신에게 대가를 받겠습니다.”
=으, 으응. 자기가 원한다면 무엇이든지 바칠게.=
그의 요구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눈치챈 유르파는 뱃속이 찌르르 울리는 동시에 문신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조금씩 발광하는 문신에 손을 올렸다.
자신의 손이 닿았을 뿐인데도 성감이 쭈우욱 오르는 느낌.
이 감각에 유르파는 그에게 종속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몸과 마음 전부가 자궁 문신을 매개로 그에게 소유된,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심장이 울렁이는 기분.
아가씨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 기분은 앞으로도 자신만이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가까이 다가오는 그의 입술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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