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432화 (432/813)

〈 432화 〉 426 알소프로 가는 길

* * *

콰아아아아——!

방심하면 자칫 날아가버릴 정도의 광풍과 함께 하늘에서 내려온 남자는…….

=……!=

=…….=

위압이라는 두 글자를 형상화한 듯한 존재였다.

광풍 속에서 거칠게 나부끼는 흑발.

주변이 일그러져 보이는 듯한 기백.

그리고 일렁이는 황금빛 광채의 검은 눈동자.

체고만 2.5m를 넘어가고 펼치면 10m에 이르는 한 쌍의 날개를 지닌 녹색의 거조. 그 아름다운 생물을 수족처럼 부리는 흑발의 남자에게 습격자 두 명은 위축되면서도 눈을 빛냈다.

틀림없다. 목표물이다.

“역시 내가 목표인가. 알소프는 날 적으로 간주했나 보군.”

검편술을 펼쳐 목적을 달성하려던 습격자 둘은 낮지만 선명한 중저음의 소리에 흠칫, 어깨를 떨었다.

저건 넘겨짚은 게 아니다. 확신하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는 태도.

어떻게 알았지? 눈치챌 수 있는 요소는 전부 두고 왔는데.

=도령. 어떻게 할 거야? 죽여?=

“아니. 두 명이면 증거로 제출하기에 적당한 숫자겠지. 생포한다.”

자신들은 안중에도 없는듯한 태도에 습격자들은 모욕감을 느꼈다.

두려움을 뚫고 분노가 치솟았지만, 표적이 이쪽을 얕보고 있다면 오히려 기회다. 성공 확률이 더 늘어날 테니까.

두 명은 아주 짧게 시선을 교환한 뒤 즉각 남자에게 덮쳐들었다.

두 다리가 위상력을 가득 품고 대지를 박찬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앞을 향해 쏜살같이 돌진한다.

그와 동시에 가시 채찍 두 자루가 뱀처럼 검은 남자의 팔과 몸을 노리고 짓쳐들었다.

=하아앗!=

한 명은 검을 내질러 남자의 다리를 노리고 다른 한 명은 검 대신 두루마리를 꺼내 움켜쥔다.

완벽하진 않지만 0.3초 내외로 채찍과 검이 날아드는 합격술.

불과 3m를 남겨둔 시점에 가시 채찍이 남자의 몸을 휘감기 직전, 습격자들은 목표의 달성을 확신했다.

처음에는 마차 안에 목표물이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습격이 아니라 모습을 드러낸 다음 돌격을 감행했었다. 공격을 받으면 지금까지 모은 정보에 따르면 목표물이 모습을 드러낼 거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목표물의 호위 기사는 주어진 정보에 비해 몇 배는 더 강했고, 동료 대부분이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하지 못한 채 삽시간에 주검으로 변했다.

작전은 실패라고 여겼는데 목표물이 제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줄이야!

습격자들은 채찍이 남자의 몸을 휘감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채찍을 잡아당기려 힘을 주었다.

그랬는데 채찍이 느닷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장면에 생각이 멈추었다.

…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채찍이 어째서 목표를 휘감지 않고 튕겨 나간 것처럼—

퍽.

순간 뒷골이 짜릿해지는 고통과 함께 검을 내뻗으려던 습격자는 의식을 잃고 회전초처럼 흙먼지와 함께 땅을 나뒹굴었다.

그리고 검 대신 두루마리를 움켜쥐고 날아들던 습격자는 남자의 황금안과 눈이 마주친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미궁 심층의 주인과 눈이 마주친 기분.

위압 당해 몸의 제어권을 상실한 듯한 느낌.

그때 어깨가 난데없이 시원해졌다가 곧이어 불에 지지는 듯한 격통이 밀려와 비명을 지른 습격자는 자신의 오른팔이 어깨부터 잘려 한 줌의 피와 함께 허공을 날아가는 것을 목격했다.

=아…….=

엉뚱한 곳을 쳐버린 채찍을 놓은 습격자는 오른손이 쥐고 있는 두루마리를 향해 닿지도 않을 손을 뻗는다. 그리고…….

뻑!

관자놀이가 으스러지는 고통과 함께 정신을 잃고 다른 습격자처럼 땅에 내동댕이쳐졌다.

쿠당탕, 털썩!

“…….”

쓰레기처럼 땅을 나뒹구는 습격자 둘을 응시하던 환인은 광창을 되돌리고 방벽 패널도 회수했다. 그리고 문양 강화 영혼 시야로 떨어져 나간 팔이 강하게 쥐고 있는 두루마리를 향해 시선을 주었다.

양피지 같은 물건을 휘감고 있는 시퍼런 위상력. 보통의 마도구에 비해 몇 배나 많은 마력의 농도만 보아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만큼 저것이 자폭용 술법 두루마리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둘만 남은 주제에 막무가내식 돌격을 해온 것을 보면 두루마리를 발동시키는 순간 임무가 완수되는 방식일 테고 그것은 곧…….

=어? 야야, 이슬아 그거……!=

대상을 납치하기 위한 공간 이동 계열의 두루마리라는 뜻이겠지.

환인은 안느가 외치는 소리에 두루마리를 향해 걸어가는 이실리테를 발견했다. 제대로 재단되어있는 데다 테두리에 금박까지 입혀진 물건이다. 잘 모른다면 고가의 물건인 줄 알고 챙기려드는 게 당연한 일.

“이실리테. 두루마리는 건들지 말고 살아있는 저것들부터 챙겨라. 안느는 팔이 잘린 놈이 죽지 않도록 대강 지혈해주고.”

=네? 네, 주인님.=

=응. 이슬이 너 잠깐 이리로 와봐.=

=왜?=

=왜긴. 적이 가지고 있던 술법 두루마리는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거 몰라?=

=…….=

=……몰랐나 보네.=

=응…. 술법 두루마리 같은 건 전부 고가니까. 본 적도 없어서 몰랐어.=

=그럴 수도 있지, 좀 이따 율이 언니한테 두루마리의 위험성이랑 관리법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해.=

여자친구들의 대화를 한 귀로 듣고 흘리며 두루마리를 응시하던 환인은 알류겔 호수의 수평선으로 시선을 올렸다.

황금빛 안광이 사라지고 흑색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난다.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라고, 그렇지 않아도 알소프를 좋게 보지 않고 있었는데 이쪽이 움직일 당위성을 주고 있군.

어떤 식으로 보복을 해야 할까.

표면적인 대처는 공격받은 사실을 땅신 교단의 르아웬=아기오시스를 통해 소문을 퍼트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비자룩스의 성자가 공격받았다.’라는 사실을 프라버의 백중강에게 알려준다면 그는 알소프에게 불리하게끔 정보를 가공해서 프라버와 이쪽 양측에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활용하겠지.

‘헬루멘은…… 프라버를 통해 소식이 들어간다면 시하=사이지 영주의 성격을 보았을 때 안 움직이는 게 이상할 터.’

거리가 거리인 만큼 직접적인 행동보단 알소프 영주를 향해 날 선 비판을 일삼을 것이 틀림없다.

파르히스트는 크라버리와 전쟁으로 사상자가 난 상황이라 적을 더 늘리고 싶지 않을 심정일 테니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겠지.

그렇다면 이쪽의 백업은 땅신 교단과 프라버, 헬루멘 세 곳.

알짜배기라고 해도 두 곳이다. 적다고 할 수 있지만 환인은 그렇게 걱정하지 않았다.

‘백려강과 백중강에게 알아본 바에 따르면 알소프의 영지 운영 방침은 주변에 대한 공격적인 확대와 착취였지.’

이번 대에 들어 북부 알류겔 호수 인접 지역의 5할을 집어삼켜 권역을 확대했다고 했으니 적도 그만큼 많을 것이다.

자존심과 프라이드에 죽고 사는 고위 호족은 그 고고함과 고결함을 명예로 삼는다. 그리고 영혼사를 습격했다는 것은 고결함에 치명적인 위해요소다.

정확한 증거와 함께 소문이 퍼지면 알소프의 영향력은 끝도 없이 추락할 거다.

‘표면적인 보복은 이렇게 하고, 개인적인 보복은…….’

환인은 천칭으로 이실리테의 칼질에 두 동강 난 습격자의 시체를 뒤적였다.

분리된 상반신을 빈틈없이 휘감은 옷을 대충 걷어내자 잘린 붕대가 흐트러지며 수박통만 한 갈색 가슴이 출렁하고 쏟아진다.

가슴뿐만 아니라 두 동강 난 허리에서 내장도 쏟아졌지만, 환인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엎어놓은 물풍선처럼 축 처지는 젖을 천칭으로 이리저리 치워보고 상반신 구석구석을 살핀다.

이어 하반신도 마찬가지로 벗겨 허벅지 안쪽과 엉덩이골까지 확인하고 예상대로라며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소지품은 검과 가시 채찍뿐.

‘역시 신분을 증명할만한 소지품이나 문신은 하나도 없군.’

환인이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기자 백려강과 환연을 대동하고 다가온 유르파가 눈을 작게 빛내며 묻는다.

=자기. 저 두루마리 내가 살펴봐도 될까?=

“괜찮겠습니까. 저자를 깨운 뒤 어떤 두루마리인지 확인하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그쪽이 훨씬 안전하겠지만, 술법 두루마리의 아우라로 어떤 물품인지 감정하는 방법도 있어. 후자는 내가 자신하는 분야고.=

그렇게 말하는 유르파의 손에는 오페라글라스 같은 것이 들려있었다.

보기 드문 고급 술법 두루마리. 거기에 어쩌면 자신이 일생의 목표로 삼은 것과 닮은 물품.

유르파에게 보고만 있으라는 것은 고문이겠지.

“공간 이동 쪽 두루마리로 판단되니 조심하십시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말하자 유르파도 알아들은 듯 배시시 웃으면서 =조심할게.= 대답한다.

유르파와 백려강이 두루마리 쪽으로 가고 습격자들의 시체를 뒤지던 이실리테와 안느가 손바닥만 한 작은 주머니 하나만 들고 다가왔다.

=주인님. 습격자들 소지품은 식량이 들어있는 아공간 주머니 말고 아무것도 없었어요.=

=두루마리를 들고 있던 년이 우두머리인 거 같더라. 걔가 식량 주머니를 가지고 있더라고.=

“그래.”

고개를 작게 끄덕여준 환인은 널린 시체들을 보며 보복의 방식에 대해 생각했다.

극단적인 방식과 비교적 덜 극단적인 방식, 그럭저럭 평화적인 방식, 마지막으로 영도 방문 이후로 미루는 네 가지 선택지가 떠오른다.

이쪽을 건드렸다간 무사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면 단순히 과격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유화적인 방침을 고르는 것도 환인의 취향이 아니다.

여자친구들을 향한 놈들의 살기는 진짜였다. 만약 그녀들의 실력이 안 좋았다거나 습격자들의 실력이 예상 밖으로 뛰어났다면 여자친구들은 자연스럽게 살해당했겠지.

“……할 말 있나.”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친구들의 시선에 그녀들을 돌아보며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안느가 묻는다.

=어떻게 알소프가 보낸 거라고 알았어?=

“평범한 소거법이다. 성자라고 불리는 내게 원한을 품을만한 역량의 집단은 크라버리 영주와 알소프 영주 둘 뿐. 크라버리의 영주는 현재 파르히스트와 전쟁으로 멸망에 몰려있어 이쪽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을 거다. 남은 것은 알소프뿐인데 이 길은 프라버에서 알소프로 가는 길목이지.”

보통은 여기서 위쪽으로 100여 킬로미터 이상 올라가야 나오는 곳과 그보다 더 빙 둘러 가야 하는 길을 고른다.

이 길이 너무 편하고 빠르고 안전해 오히려 다른 의미로 위험한 곳이어서 그렇다.

“그리고 비상의 감시를 염두에 둔 복장처럼 초지와 같은 풀색으로 위장한 후드 망토와 전신을 가리는 풀색 옷을 열 명이 전부 입고 있었다.”

실제로 비상은 주변과 동화되어있던 습격자를 눈치채지 못했었다.

이곳의 지리는 좌우로 깎아지른 절벽이 있어 습격하기 좋은 환경이며, 알소프의 행적을 의심하고 이쯤이면 습격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영혼 시야로 하늘에서 감시하고 있던 환인이어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

“무기도 같은데다 합격술을 제대로 배운 듯한 동작까지 펼쳤으며 무엇보다 이곳은 프라버와 지역적으로도 가깝다.”

=알소프의 무력 집단으로밖에 안 보이는 구성이네요…….=

=기사단 같은 정규 집단은 아닐 테고 영주 개인의 사병인가…….=

“그렇겠지.”

=…….=

안느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요즘 인간성의 끝없는 바닥을 빈번히 목격하다 보니 인류애가 사람이 가진 보편적인 가치관이 맞는 걸까 의문이 들기 시작해서다.

쿠우~

그 모습에 비상이 안느의 얼굴에 솜털 깃털로 보드라운 뺨을 문지르며 힘내~하고 격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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