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1화 〉 425 알소프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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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덴 촌락의 참사를 해결하고 길을 떠난 지 사흘째.
알류겔 호수 북부의 에미트 정글과 인접한 흐라반 마을에 도착한 환인 일행은 이틀을 마을에서 머물렀다.
로아팅스 정글과 비슷하게 크고 위험한 에미트 정글이지만, 마을이 붙어있는 곳은 정글의 외곽이자 가장자리였기에 풍경은 일반적인 숲이었고 안쪽도 평범하게 풍요로웠다.
때때로 흘러들어오는 중상등급 마수나 괴수가 아니면 위협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고 그 숲의 반대편은 지평선이 보일 정도의 비옥한 평야.
자연의 은혜라고 할 수 있는 주변 여건 덕분에 농업과 축산업은 번창했고 숲에서 나는 풍요로운 산물은 고가에 거래되어 흐라반은 큰 환난 없이 인구 2000의 중급 마을로 성장할 수 있었다.
평화로움을 증명하듯 사람들은 적당히 순박했고 적당히 무지했으며 손님을 환영할 줄 알았다.
마도구로 녹색 성자의 일행이 아니라 무명의 영혼사와 무술을 배운 수행원으로 분장한 일행이었지만, 마을을 다스리는 하급 호족은 환인 일행을 정중하게 저택으로 초대해 대접했던 것이다.
첫날 산해진미를 대접받은 환인은 후드를 푹 뒤집어쓰고 서울의 동? 하나 크기 정도 되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영혼을 찾아 착실히 성불시켜나갔다.
반듯한 돌로 포장된 마을의 거리를 걸으며 행한 성불은 여느 마을과 다를 바 없었다.
이지가 흐린 영혼을 발견하면 정신을 일깨워준 뒤 미련을 묻는다. 가족들에게 미련이 있다면 가족에게 데려가고 친구에게 미련이 있다면 친구에게 데려간다.
=만약 린덴 촌락에서 타락한 바르둘을 막지 못했다면… 여기도 휩쓸렸겠지?=
=그랬다면 바르둘을 막는 건 더 힘들어졌을 거야. 프라버도 여기서 남쪽으로 멀지 않았으니까.=
=이들이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게 우리 도령의 활약 덕분이라고 하니까 뭔가 가슴이 뿌듯한 기분이야.=
=킥킥. 우리 안느 아가씨는 정말 마음이 여리다니까.=
=……아, 아무튼! 려강이가 안 보이고 말도 안 들리니까 뭔가 허전하네~.=
=자기가 정체를 감추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지. 연이도 그렇지만 려강 아가씨는 어떻게 변장할 수 없을 정도로 희귀한 사례잖니.=
=투명성만 어떻게 하면 사람이랑 다를 바 없어 보일 텐데……. 날개도 있어서 날 수 있으니까 둥둥 떠다녀도 이상하게 볼 사람도 없을 테고요.=
환인의 호위 역할로 따라나선 유르파, 안느, 이실리테가 그를 따라다니며 뒤에서 속삭인다.
=그러게. 단순한 쉬폰 원단인데 그걸 몸에 감았다고 드레스처럼 보일 줄 생각도 못 했어.=
영기를 주입받으면 영혼이 살았을 적의 색을 되찾게 되고 원기를 주입받으면 물리력과 질감까지 생겨난다.
두 가지 기운을 받고 옷을 몸에 두르면 일단 외관만큼은 살아있는 사람과 크게 다를 바 없어지는 것이다.
=으음~. 어제는 이슬이 아가씨가 려강 아가씨랑 합체해서 자기랑 잠자리했잖니. 려강 아가씨의 모습에 뭔가 변화는 없었어?=
=저는 잘 모르겠지만 주인님은 려강의 영체가 좀 더 짙어졌다고 중얼거리셨어요. 합체해서 주인님의 정을 받으면 모습이 계속 짙어지는 게 진짜였나 봐요.=
=그럼 언젠가는 려강 아가씨도 살아있는 것처럼 변하는 걸까?=
=만약 정말로 그렇게 되면 좋겠다.=
여자들은 비가시 상태의 백려강이 바로 옆에서 전부 듣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하고 계속 이야기를 나누어나간다.
그만큼 흐라반 마을은 평화로웠다.
미련을 가진 영혼이라 해서 원한이나 복수 같은 흉흉하고 사나운 것을 가진 영혼은 하나도 없다.
생전에 못다 한 말을 전할 수 있게 해주거나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정도로 만족해서 성불하는 영혼이 대다수.
하지만 이때까지 수백을 넘어 천 단위의 영혼을 성불해와서일까.
환인은 특이한 사례를 흐라반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서, 성자님. 저는 처녀를 떼고 싶어요…….」
사람으로 치면 이제 19살 성인이 되었을까.
치즈 태비처럼 치즈색 고양이 귀에 밀짚색의 포근한 단발머리가 귀여운 소녀 영혼의 부탁은 환인을 일순간 당혹케 했다.
“…처녀……입니까.”
「처녀인 채로는 신님의 정원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들었단 말이에요. 제발 부탁드려요…!」
울상을 지으며 고양이 귀를 뒤로 납작 눕힌 채 애원하는 소녀의 영혼.
“…….”
설마 영혼이 처녀를 떼달라고 다가올 줄은 몰랐기에 당혹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혹은 한순간이었고 환인은 다른 이유를 신경 쓰고 있었다.
악의나 적의를 가진 영혼도 아니고 순박한 마을 소녀의 영혼이 잘못될 경우다.
반 혼재화, 악령화한 시더를 안았을 때 그녀의 영체는 절반 가까이 흐려졌었다.
즉, 별다른 특성이 없는 저 아가씨 영혼을 안으면 자칫 말 그대로 소멸해버릴지도 모르는 일인 거다.
여자친구의 몸에 강령한 뒤 안으면 영체가 짙어진다지만 자신의 여자친구 몸에 저런 정체도 모르는 여자를 강령시킨 뒤에 안을 생각은 당연히 없다.
살아있는 아무 여자를 구해서 강령시켜서 하는 것도, 살아있는 남자를 데려와 소녀 영혼과 교접을 진행하는 것도 안 된다.
‘능력이 유출될 수 있으니까.’
잠깐 고민한 환인은 간단한 방법을 추진했다.
“알겠습니다. 아직 마을을 전부 확인하지 않았으니 당신의 영적 처녀성을 깨트려줄 남자 영혼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요.”
「저어. 성자님이 해,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말입니까.”
「네에. 여, 옆에 다른 영혼 분을 데리고 다니실 정도시니까…….」
고양이 귀 소녀의 당돌한 부탁에 나선 것은 안느였다.
=고양이 아가씨, 잠깐만. 그건 아무래도 그렇지, 이쪽은 영혼사님이라고?=
「으우…….」
같은 여자지만 반할 것만 같이 아름다운 여자의 지적에 고양이귀 소녀는 울상을 지었다.
그말대로 상대는 영혼사. 살아있었다면 함부로 말 거는 것도 불가능했을 정도의 신분 차이다.
소녀는 울상을 지었지만, 부탁을 철회하지 않는다.
그 줏대에 유르파가 아하하 웃었다.
=맹랑한 아가씨인걸~? 그렇게 말했는데도 뜻을 바꿀 생각을 안 하고.=
이렇게 되면 결정은 그가 내려야 한다.
그의 여자친구들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하다는 얼굴로 환인을 바라보았고, 환인은 별로 상관없다는 듯이 말했다.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 그것도 저와 같은 영기가 강한 영혼사와 교접을 하게 되면 영체가 훼손되어 신의 정원에 들지도 못하고 존재 자체가 소멸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상관없다는 겁니까.”
영혼의 소멸. 신님의 정원에서 영혼을 깨끗이 하고 모든 기억을 버린 뒤 환생한다는 것을 믿고 있는 이들에게 영혼의 소멸은 절대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소녀는 그 사실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상태로는 신님의 정원에 들지 못하는걸요…….」
=처녀라고 신님의 정원에 못 들어간다는 건 낭설이야. 남자를 경험하지 못해서 신님의 정원에 들지 못하는 건 여자들이 남자의 동정심을 자극해 남자를 경험하려고 꾸며낸 이야기거든?=
「…하얀 언니는 죽어보셨어요?」
=으, 응?=
「그 말씀이 진실인지 죽어서 알아보셨어요?」
그래서 그렇게 말하는 거냐고 묻는 소녀의 당돌한 질문에 유르파는 물론 다른 여자들도 말문이 막혔다.
소녀 영혼은 우울한 기색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런 이야기가 돈다는 거 자체가 사실일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상 저는…… 상관없어요. 차라리 소멸을 택할래요…….」
빈약한데다 허접한 가설이지만 그걸 사실이라고 강하게 믿는 사람을, 그것도 당돌하기까지 한 소녀를 설득하는 건 어렵다.
설득하려 한다면 뭐, 할 수는 있다. 여자들은 환인을 따라 여행하며 보고 배운 게 많으니까.
하지만 나름 주관이 있는 주장에 기가 막히기도 하지만 죽은 애를 상대로 강하게 윽박지를 수도 없어 입을 다문다.
환인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거절하겠습니다.”
「…히잉…….」
“저 역시 죽음을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당신에게 뭐라 말할 자격이 없겠습니다만, 처녀성을 간지하고 있다 해도 신의 정원에 드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지 않군요. 제가 당신에게 권할 선택지는 두 가지뿐입니다.”
아무 남자 영혼과 영적 결합을 한 뒤 성불하거나, 아니면 성불을 포기하고 버티다가 악령이 되어 다른 영혼사에게 퇴치당하거나.
단단하기가 강철같은 환인의 태도에 소녀 영혼은 눈물을 그렁거리며 훌쩍였다. 측은함이 절로 드는 모습이다.
그러나 부모님의 유지를 따르는 환인은 죄 없는 소녀의 영혼을 해치는 일이 될까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
소녀 영혼은 영혼사에게 감히 떼를 쓸 만큼 겁이 없지 않았다. 거기다 아무리 조르고 부탁해도 절대 들어주지 않을 사람의 반응이라는 걸 깨달았기에 결국 마을의 젊은 남자 영혼, 똑같은 고양잇과 영혼과 영혼의 교접을 이루었다.
‘강도나 범죄자의 영혼이 아닌 것이 아쉽군.’
그쪽이었다면 여자의 영혼이 소멸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
그리 생각하며 끝에 가시 같은 게 가득 난 남자 영혼의 생식기가 소녀의 그곳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신기한 것은 교접을 앞두자 평상복 같은 것을 입고 있던 두 남녀 영혼이 알몸으로 변해버린 것뿐.
‘별일 일어나지 않는군.’
그 외에는 별일 없었다.
환인은 개인적으로 영혼이 하나로 섞인다거나 어느 한쪽이 흡수당한다거나 서로 음기를 자극해 새로운 힘을 얻는다거나 하는 상황을 기대했지만 말 그대로 별일 없었다.
일행이 지켜보는 가운데 1분가량 삽입을 반복하는 남녀. 그 후 여자의 반투명한 영체 속으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흘러 들어가고, 남자는 그대로 만족한 것처럼 빛무리로 변해 성불했다.
「감사합니다, 영혼사님……. 영혼사님 덕분에 저도 이제… 미련 없이 성불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소녀 영혼도 가슴의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뱃속에 반짝이는 것을 담은 채 꾸벅, 허리를 숙였다.
“그곳에서는 평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어서 평온한 얼굴로 빛무리가 되어 하늘로 승천하는 소녀 영혼.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안느가 지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뭔가 되게 기 빨리는 느낌이야.=
=영혼사를 상대로 자기주장을 관철하는 사람이잖니. 그만큼 자아가 강하다는 뜻이니까 그런 사람과 파장이 맞지 않으면 피곤한 게 당연해.=
안느와 유르파의 대화를 들으며 환인은 소녀가 남기고 간 빛구슬, 반투명한 회색 구슬 속에 무언가가 반짝이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거, 살아있는 거로 치면 구슬 안에 든 것은 정액이 아닌가.
흡수해도 괜찮을지 안 괜찮을지 짧게 고민한 환인은 결정을 내리고 빛구슬을 회수했다.
신체 접촉으로 남자의 영기에 닿은 것도 아닌데 상관없는 일이지.
그리고 그날 밤, 환인은 안느와 몸을 섞던 와중에 새로운 능력을 얻었다 걸 깨달았다.
=하윽, 도령 뭐야앙……. 체, 력이 더 좋아진 거 같…… 아아앙♡ 나 이제 못 버텨, 살려줘♡ 흐아앙♡♡=
평소 4번을 사정하면 어느 정도 피로가 몰려왔는데 이번에는 피로감이 전혀 찾아오지 않았던 거다.
뭔가 변한 것을 눈치챈 환인은 언제 피로감이 찾아올지 계속 안느의 은밀한 곳을 괴롭히며 사정을 이어나갔고, 그녀의 보지가 크림 파이로 변할 만큼 8번을 사정하고 나서야 피로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정력이 강해진 건가. 그 특이한 빛구슬을 흡수해서…?”
며칠 상황을 지켜보며 기술의 지속력, 회복력을 확인해봐야겠지만…….
‘잘 됐군.’
이 정도라면 매일 한 명씩 번갈아 가며 안을 필요가 없어질 거다.
성관계로 체력을 과다사용했던 환인은 헬루멘에서 감기에 걸려 쓰러진 전적이 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여자들은 그의 체력 관리를 위해 자발적인 로테이션을 구성했다. 매일밤 한 명씩 교대로 그의 품에 안겼던 거다.
하룻밤에 두 명, 혹은 세 명 전부 안을 때에 비해 영기의 흡수량이 대폭 감소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
매일 여섯 번 꾸준히 사정할 수 있을 만큼만 강화되어도 여자친구들을 매일 밤 두 번씩 안아줄 수 있게 된다.
‘지금은 살아있는 사람의 영기보다 영혼이 남기고 사라지는 빛구슬, 한기가 더 필요하지만…….’
매일 밤 한 명만 안은 지 몇 달이나 지났다. 소모된 양이 있을 테니 이제 영기를 더 확보해도 되겠지.
환인은 엎드린 채 엉덩이만 치켜든 자세로 기절한 안느를 잠시 바라보다가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잔뜩 흘린 땀에 젖어있지만 그건 자신도 마찬가지다.
안느를 뒤로 안고 팔베개를 해준 환인은 몰랑몰랑한 그녀의 가슴을 만지며 잠을 청했다.
흐라반 마을 2일째.
마을을 배회하거나 서성이는 영혼을 모두 성불시킨 환인은 마을을 다스리는 하급 호족에게서 5금화라는 큰돈을 기부받았다.
백씨 가문의 자문료와 치료비, 백씨 가문에 판매한 유르파 제? 마도구 판매금으로 450금화가 넘는 돈을 보유 중이지만 돈은 많아서 나쁠 일은 없다.
환인은 한층 더 여유로워진 주머니를 차고 새하얀 일라일 꽃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길거리를 지나 다시 여정에 올랐다.
그리고 이틀 뒤, 알소프로 향하는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단애의 해안 절벽.
피요르드가 형성된 프라버 북쪽 만에 도달한 환인 일행은 수평선이 형성된 새파란 호수 절벽 끝에서 정체불명의 습격자들과 마주쳤다.
보호색처럼 초원과 숲을 연상케 하는 녹색의 후드 망토를 뒤집어쓴 10명. 습격자 전원이 3~4급에 이르는 직업자다.
=너희들 뭐야. 용건이 있으면 빨리 말하고 없으면 물러서.=
습격자들이 자아내는 살인자의 기운을 플뢰족 특유의 감응으로 읽어낸 안느는 말과 다르게 천벌의 망치와 성벽의 방패를 꺼내 들었다.
그 행동에 녹색 후드 망토의 습격자들도 일제히 태도와 검은 가시채찍을 꺼내 들더니 마차를 둘러싸듯이 진형을 전개한다.
이실리테도 고삐를 놓고 레드릭 얼터를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내든 순간 습격자들이 달려들었다.
훌쩍, 마차 지붕에서 뛰어오르는 안느, 그리고 마부석을 박차고 전면의 습격자들을 향해 날듯이 돌진하는 이실리테.
습격자 셋은 안느의 착지점을 읽고 삼각 대형으로 채찍의 사거리만큼 거리를 둔 뒤 안느의 착지를 노린다.
하지만 그게 패착이었다.
꽈과광!!
갈색빛 진한 위상력을 담은 안느의 천벌의 망치가 대지를 내려찍은 순간 반경 15m가 움푹 가라앉는 동시에 쾅, 굉음과 함께 폭발을 일으켰다.
바르둘이 벗어던진 껍질, 그 머리를 부숴버린 대지의 충격이라는 필살기.
그 필살기에 휘말린 세 명은 끽소리도 못하고 사지가 부러져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졌고, 그 굉음과 충격파에 마차를 막아선 이실리테와 대치하던 습격자 일곱은 1초간 신경이 그쪽으로 쏠렸다.
그리고 그 1초에 습격자 네 명이 다중 검기 두 자루와 대검에 몸이 갈라져 죽었다.
=……!?=
=……!=
아주 잠깐 한눈을 판 순간 동료가 죽어 나가자 경악한 습격자들은 몸 주위에 2미터짜리 검기를 띄우고 있는 이실리테에게 시선을 돌렸지만.
=허, 참. 난 위협적이지 않은가봐?=
꽈광!!
직후 남은 셋 중 하나의 뒤에 접근한 안느가 그대로 망치를 내려찍어 인간을 세로로 압축시켜버린다.
마주치고 고작 5초다. 5초 만에 10년 동안 손발을 맞춰왔던 동료 여덟이 무기를 휘두를 틈도 없이 살해당했다.
남은 습격자 둘은 동시에 같은 규범을 떠올렸다.
규격 외의 적, 혹은 상정한 강함을 아득히 초월하는 적과 마주하면 어떻게든 살아서 그 사실을 알려라.
도망쳐서 이자들이 얼마나 강한지 알려야 한다.
목숨을 던질 각오를 하고 마악 몸을 돌려 도주하려던 습격자 둘.
퍼더더더덕—
그런 둘의 앞으로 녹색의 아름다운 거조에 탑승한 흑발의 남자가 광풍과 함께 내려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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