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8화 〉 412 지하 개미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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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인은 여자친구들에게 일련의 계획을 원인과 과정, 결과까지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바르둘이 어떻게 여왕개미와 함께 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 그렇다 해도 여왕개미의 배를 쿠션처럼 쓰고 있다면 상하 관계는 명확하다.
여기서 타락한 바르굴의 능력은 최소 세뇌 혹은 복속 능력임을 추측할 수 있으며, 복부에서 말미잘처럼 일렁이고 있는 촉수가 그러한 기술을 발동하기 위한 촉매임을 의심할 수 있다.
“환연은 촉수로 여자의 신체를 가지고 놀고 있다고 했었지. 그건 노는 게 아니라 여자를 세뇌하는 과정, 혹은 먹이화하는 수단이라고 짐작된다.”
=으음…….=
“즉, 꿀단지 개미 괴물을 대입해보면 여왕개미가 없을 경우 타락한 바르둘은 키메라를 더 생산하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가능한 이 자리에서 해치워야 하는 게 여왕개미라는 거지.”
바르둘도 당연히 해치워야 하지만, 키메라를 만들어내는 게 꿀단지 개미 괴물이고 그 개미 괴물을 여왕개미가 만들어낸다면 현시점에서 척결 우선순위는 바르둘보다 여왕개미가 앞선다.
그렇다고 바르둘을 놓쳐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여자친구들에게 당위성을 설명한 환인은 한층 강해진 눈빛으로 환연을 응시했다.
“이제부터 진행할 계획에는 환연 너의 활약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뭘 하면 되는데?」
“우선 대공동 주변 지반 상태를 낱낱이 파악해라. 땅속의 지반이 얼마나 단단한지, 지하 수맥의 존재 여부와 유속, 기타 공동의 존재까지 전부.”
「알았어.」
그리고 환인은 수첩을 펼쳐 지도를 확인했다.
지하 22층과 지하 23층의 구조와 위치, 방향을 대조해본 결과 기억대로 지하 22층에서 대공동 위쪽을 지나는 길은 없다.
‘지하 21층까지 올라가야겠군.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려 발각되면…… 상관없겠어.’
이쪽의 존재가 발각되어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숫자가 대량으로 몰려오더라도 문제는 없다.
오히려 일꾼과 혼합 키메라는 잠입이라는 목적을 제거하면 몰려올수록 단번에 쓸어버릴 수 있으니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는 와중에 키메라들이 우왕좌왕하다 굴 밖으로 빠져나가더라도 문제는 없다.
굴 바깥에서는 하늘 기사단이 감시망을 펼치고 있을 테니 나간 것들은 되려 사냥당하겠지.
각성 키메라가 문제인데 그것들은 타락한 바르굴이 호위로 삼고 있는듯하니 전부 내보내지는 않을 거다.
보내더라도 기껏 해봤자 서너 마리. 그 정도는 이쪽이 충분히 정리할 수 있다. 되려 한두 마리씩 보내준다면 전력을 수월하게 깎을 기회가 된다.
문제는 혼합 키메라와 다르게 각성 키메라가 굴 바깥으로 나갈 경우인데…….
미로=라드하는 멍청해 보이지 않았으니 알아서 하늘로 피신하겠지.
백려강과 유르파, 비상도 알아서 피할 테고 쿠르티, 쿠핀, 쿠라는 초원에서 달리기라면 따라올 개체가 몇 안 될 만큼 빠르니 잡힐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이 펼쳐지면 일반인인 인부들이 공격받을 확률이 발생하지만…….
‘그 책임은 하늘 기사단이 져야 할 일이다.’
아무튼, 환연이 전해주는 타락한 바르둘의 태도를 보면 자신이 막다른 길에 몰려있다는 자각은 보이지 않는다.
환인은 대공동 주변 지반을 파악하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환연을 바라보며 마지막 단계의 점검을 진행했다.
자신들이 발각당해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면 타락한 바르둘이 지하 수맥을 통해 곧장 탈출할 확률은?
“…….”
확률이 아예 없지는 않으니 대비는 해두어야겠지.
노트를 꺼내 찢은 환인은 루크랑어로 표식과 지형 그림, 그리고 글귀 약간을 적고 환연을 불렀다.
“이 종이를 지상으로 올려보낼 수 있나.”
「으응? 그 크기면 땅을 뚫고 바로 올려보낼 수 있어.」
“좋군. 우리 위치는 이쯤이고 주둔지는 여기에 있다. 주둔지에 이 쪽지를 올려서 미로=라드하 부대장이 발견할 수 있게끔 해다오.”
「응.」
쪽지에는 타락한 바르둘이 만에 하나 수맥을 통해 탈출하면 놈이 바깥으로 나올법한 장소 다섯 곳이 표기되어있었고 그곳에 사람을 보내 감시하라는 내용을 적어놓았다.
이러면 바르둘을 놓치더라도 금방 추적할 수 있을 테니 놓친다는 최악의 상황은 없을 것이다.
갈색 기운에 감싸인 종이가 흙 천장을 뚫고 올라가는 것을 본 환인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여자친구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이동하지.”
=넷.=
=응.=
일행은 대공동 위층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층이라고 해도 평범한 통로 중 하나일 뿐.
그사이 환연은 대공동 주변 지반 상태와 대공동을 가로질러 폭포처럼 빠르게 흐르는 거대한 지하수맥의 구조를 파악했고 이실리테와 안느는 마주치는 혼합 키메라를 해치웠다.
“여기군.”
=도령. 이제 뭘 할건지 알려주면 안 돼?=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는지 안느가 환인의 옷소매를 슬쩍 잡으며 묻는다.
“간단하다. 대공동을 물로 채워 놈들을 수장시키고, 살아남아 빠져나오려는 놈들은 따로 잡아내거나 추적해 척살하는 거지”
=아. 그래서 환연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신 거였네요. 정령술로 자연의 힘을 다룰 수 있으니까요.=
“그래. 지하 수맥이 드러난 대공동의 강은 폭이 30m에 깊이도 10m나 되는 거대한 강이다. 거기다 유속 또한 굉장한 수준이지. 물이 흘러나가는 곳을 틀어막는다면 물은 삽시간에 대공동을 차오를 거다.”
「말만큼 간단한 일이 아닌데…….」
지반 탐사를 끝낸 환연은 본능적으로 환인이 말하는 작업의 난이도를 깨닫고 얼굴을 귀엽게 찡그린다.
그즈음 대공동의 위쪽 15m 지점의 개미굴 통로에 도착한 환인은 환연의 찡그려진 뺨을 엄지로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며 그녀의 우려와 긴장을 덜어주기 위해 설명을 시작했다.
“……즉, 지금까지 말한 것을 종합하면 이 주변은 석회암이 풍부한 카르스트 지형이라는 거다. 공동이 그토록 크게 발생한 것도 지하 수맥의 유속이 유달리 빠르기에 이뤄진 형상일 수 있다는 거지.”
「그런 지식 정도로는 도움이 안 되는데?」
“설명 아직 끝나지 않았다. 탐사 중에 대공동 아래에 작은 공동이 있던가.”
「아니. 대공동을 중심으로 내 정령 소통 범위 한계까지 수색했는데 안 보여.」
“그건 아쉽군. 통으로 매몰시켜버려 압사와 질식사시켜버리는 게 가장 간단한데.”
이쪽에는 모든 정령을 다루는 환연이 있다.
적을 매몰시켜버린 뒤 물이든 흙이든 조작해서 바르둘과 여왕개미, 각성 키메라와 숨어있는 호위 개미의 숨구멍을 죄다 막아버리면 손쉽게 해결될 테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니 차선책을 골라야 한다.
「아니이. 진짜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라니까? 물살이 엄청 빨라서 어중간한 건 막지도 못하고 물에 다 쓸려 내려가 버릴 거라구! 땅 정령도 부족하단 말이야! 실패하면 바르둘이 엄청나게 경계하고 그 때문에 무진장 난리 날 텐데……!」
실패할 가능성을 언급하며 계획의 불안정성을 지적하던 환연은 환인이 내미는 영혼 구슬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중급 땅의 정령이 열둘에 중급 물의 정령이 일곱이다. 하급까지 하면 육십이 넘지. 그리고 너에게 힘을 보태줄 400g짜리 특대형 정령석도 2개다.”
「으, 음…….」
“여기에 기술이 더해져도 불가능하다면 다른 방법을 찾도록 하지. 일단 이걸 봐라.”
환인은 노트북을 꺼내 환연에게 사방 공학과 관련된 항목을 보여주며 유속이 100km가 넘어가는 강을 틀어막을 구조와 방식을 설명했다.
“단번에 강을 흙으로 틀어막을 필요는 없다. 흙만으로는 불가능하기도 하지. 그렇기에 네가 대공동 주변을 조사하며 발견한 바위와 자갈, 돌멩이들을 끌어와 주변에 위치시키는 한편…….”
충격을 주면 강의 유속을 줄일 대량의 바위 자갈, 흙이 백수십 미터 범위로 쏟아지도록 설계, 막대한 질량의 바위와 흙과 자갈과 모래가 단번에 쏟아지면 그러한 바위 등이 맥없이 쓸려나가지 않게끔 강바닥에 특별히 공들여 스타팅 블록 같은 돌출부를 여러개 만든다.
“물론 이때 물의 정령으로 유속을 일시적으로 줄여도 된다. 아니면 강 위쪽 대공동 천장 일부를 무너트려 일시적으로 틀어막아도 되고.”
그렇게 켜켜이 쌓인 막대한 질량의 잔해는 곧 지하 수맥을 폐색증에 걸린 동맥처럼 틀어막아 버릴 것이고, 시속 100km로 흐르는 미친 유량은 대공동을 금세 물탱크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대공동 출입구를 기점으로 일부 통로도 무너트려 막아야 한다. 일단 대공동에 물을 채우기 위해서 말이다. 그 후 출입구가 수압에 뚫려 개미굴에 물이 급속도로 차오르면 우리가 탈출할 길도 네가 만들어야 하지. 아니라면 개미굴을 빠르게 차오르는 물에 우리도 익사할 테니까.”
「…….」
일단 저 지하수맥의 강을 막는 건 환인이 보여준 계획과 수식 덕분에 막을 수 있다는 자신이 섰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아우…….」
자기가 신경 쓰고 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님을 알게 된 환연은 앓는 소리와 함께 자기 뺨을 꼬집고 문지르며 인상을 마구 쓰다가 환인을 원망스레 쳐다보며 소리쳤다.
「안돼! 출입구 근처까지 막는 건 어떻게 해도 우리가 도망칠 길까지 만드는 건 불가능이야! 난 혼자라구!」
“그걸 걱정하고 있었나. 탈출로를 만드는 건 나와 이실리테, 안느가 타락한 바르굴과 여왕개미를 죽이고 난 뒤의 일이다. 그리고 새로이 굴을 파라는 뜻도 아니다. 내 머릿속에 층별 통로와 통로 사이 탈출로가 완성되어있으니, 탈출 시에 너는 내가 가리키는 곳의 천장을 뚫어주기만 하면 된다.”
긴 거리도 아닐 거고 뚫는 거리보다 달려가는 거리가 몇십 배는 더 길 거라고 하니 그제야 환연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 정도면 가능해. 대신 전투에는 나 도움 못 줘. 땅이랑 물 조작에 정신이랑 힘을 집중해야 하니까. 그리고 중급 땅이랑 물 정령 하나 빼고 전부 나 줘야 해.」
중급 땅의 정령 아홉과 중급 물의 정령 넷. 열셋을 다루려면 역대급으로 정신집중을 해야 하지만, 특대급 400g의 정령석이 제공되면 해볼 만하다.
“알았다.”
=도령. 우리는?=
“지금은 없다. 힘을 아꼈다가 전투가 시작되면 적에게 쏟아부어라.”
=네, 주인님.=
=그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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