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417화 (417/813)

〈 417화 〉 411 지하 개미굴

* * *

이 사태를 불러일으킨 원흉, 타락한 바르둘을 발견했다는 이야기에 안느는 드러난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의 살기를 뿌렸다.

지금까지 이토록 분노하는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던 안느였기에 이실리테와 환연이 조금 걱정이 담긴 시선을 보내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시선이 모이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단순히 죄가 없는 여자들이 당한 일에 분노했다기보다 무언가 PTSD가 발동한 듯한 모습.

그걸 본 환인은 자신의 판단이 물렀다는 것을 자각했다.

이대로라면 바르둘을 만났을 때 자제심을 잃고 돌진하거나 이실리테와의 연계나 기술의 정밀도가 떨어질지도 모른다.

큰 싸움을 앞두고 혼탁한 정신 상태는 문제가 될 소지가 큰 법.

환인은 장갑을 벗고 어둠 속에서도 눈알이 번들거릴 만큼 감정의 격동을 드러내는 안느의 뺨을 살포시 감싸 쥐었다.

“안느.”

=…도령.=

분노에 정신을 완전히 내맡긴 것은 아닌지 환인과 눈이 마주치자 칼날처럼 날카로운 살기가 눈에 띄게 누그러진다.

환인은 그런 그녀의 뺨과 목덜미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그녀의 보드라운 입술에 키스해주었다.

말랑한 입술이 닿자 흠칫하는 게 느껴졌지만, 잠자리에서의 색정적인 프렌치 키스가 아닌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소프트한 입맞춤에 안느는 수줍게 응했다.

30초 정도의 짧은 키스가 끝났을 때 분노와 긴장으로 돌처럼 딱딱하던 목은 평소처럼 말랑말랑한 상태가 되어있었다.

환인의 등을 안고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있던 안느가 후우,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미안. 너무 화나서 잠깐 이성을 잃었어.=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생각난 건가.”

=응……. 혼자 여행 다닐 때 들른 촌락에서 이거랑 비슷한 사건을 목격한 적이 있었거든.=

10년 전쯤. 교단의 지정 임무를 완수하고 가까운 도시의 땅신 교단 교구로 복귀하던 안느는 어느 촌락을 방문하게 되었다.

대체로 촌락은 외세,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이나 마물의 공격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라도 가족 같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편이다.

그런데 안느가 방문한 그곳은 묘하게 어색함이 감돌고 있었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이라거나 벌어진 후에 느껴지는 불온한 공기.

사람이 만들어내는 불안과 두려움이 느껴지는 무겁고 답답한 분위기.

안느는 이 작고 평화로워 보이는 들녘의 촌락에 무언가 사건이 발생했음을 눈치채고 땅신 교단의 성투사로써 그들을 돕기 위해 나섰다.

당시에는 갓 5급이 되어 자신감도 충만한 때였기에 그녀의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안느는 집집마다 방문해 혹시 다치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성술로 치유해주거나 치료해주고 소문을 수집했다.

그렇게 작은 촌락의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지만, 사람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그녀의 질문을 회피하기만 했다.

치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아뇨,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그보다 제가 키운 과일/채소인데 한 번 드셔보세요. 맛있을 거라고 장담합니다.

아픈 곳을 치유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아, 별달리 이상한 점은……. 아 참, 성투사님은 플뢰시죠? 이건 제가 숲에서 채집한 들나물인데 플뢰님 입에도 맞으실 거예요.

아직 사람의 악의에 대해서 잘 모르던 시절이었기에 안느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좀 더 열심히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사흘 뒤 촌락 사람들을 모두 치료해준 날 밤.

촌장의 셋째 딸, 당시 갓 성인이 되었을 그녀는 안느를 찾아와 더 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촌락을 떠나는 게 좋을 거라며 알려주었었고…….

=다음날 그 아이는 실종되었어.=

“촌장이 젊은 여자들을 가둬놓고 씨받이로 만들기라도 한 건가.”

=어? 그걸 어떻게 알았어?=

「으엑. 진짜로?」

=……응. 그때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어. 내가 질문을 하면 사람들은 꼭 한 번씩 촌장 집을 힐끔거렸다는 거야.=

=촌장이 보통 사람은 아니었나 보네.=

=인돈족 4급 청술사였어. 정식 술법 교육은 받지 않은 실전형 법술사. 아무튼 그 사람은…… 임자가 없는 젊은 여자는 전부 자기 집 지하실에 가둬놓고 아기만 낳게 하고 있었어.=

그곳도 열대 지방이었기에 촌장은 입을 옷도 주지 않고 그저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저한의 음식만 먹이면서 매일같이 여자들을 강간하고 아기를 낳게 했다.

실종된 촌장의 셋째 딸을 찾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안느는 촌장에게 자이언트 워 해머를 들이밀고 어떻게 사람이 이런 짓을 할 수 있냐고 소리쳤었다.

하지만 촌장은 뭐가 문제냐며 되려 반문했다.

‘세상에는 살아갈 자격조차 없는 여자가 넘쳐흐르오. 그런 여자들을 잡아다가 그나마 사람처럼 살 수 있게 해주는 게 뭐가 문제란 말이오?’

‘저게 사람처럼 사는 거야?! 벌거벗고 햇빛도 들지 않는 지하 감옥 같은 데서, 자유도 없이 강간당하고 아이를 가지고 낳는 게?!’

‘남자를 유혹할 줄도 모르고 결혼해 아이를 낳아 촌락에 이바지하지도 못하는 데다 일도 제대로 못 하는 버러지들이오. 먹을 것을 축내기만 하는 가축 같은 년들에게 씨를 주어 품게 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게 해 인구를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되도록 손써주고 있소. 돈도 받지 않고 사회를 위해 일하고 있으니 오히려 이쪽이 감사받아야 할 일이 아니오?’

‘……!!’

안느는 소름이 끼쳤다. 어떻게 이런 말을 대놓고, 그것도 자신이 옳다고 믿을 수 있는 거지?

촌장과 말싸움을 더 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교단의 희귀 직업자라는 지위를 내세워 촌장을 압박했다.

당장 여자들을 풀라고. 그러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촌장은 힘으로 찍어누르는 안느의 행동에 불쾌해했지만, 교단의 성투사와 마찰을 빚는 것은 무모한 짓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안느의 뜻에 따라주었다.

그렇게 가축이나 다름없이 앙상하게 마른 여자들을 밖으로 데려 나온 안느였지만…… 이어진 여자들의 행동에 그녀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도, 돌아갈래요……. 돌아가게 해주세요…….’

여자들은 오히려 바깥을 더 두려워하며 안느에게 울면서 애원해 도로 지하실로 들어가 버렸던 것.

‘그것 보시오. 이런 년들한테는 이런 취급이 제격이라니까.’

비웃으며 자신의 멍청함을 지적하는 촌장의 돼지 얼굴은 안느의 머릿속에 낙인처럼 새겨졌다.

여자들의 거부, 촌장의 비웃음.

소란에 모여들었던 촌락 사람들이 보내는 무거운 시선에 안느는 혼란에 빠졌다.

내가 잘못한 건가? 정말 그런 거였나?

=사태는 그걸로 끝나지 않았어.=

“셋째 딸이 촌장을 살해하고 불이라도 질렀나 보군.”

=……아니 잠깐만. 도령 그때 거기 있었어? 어떻게 그렇게 잘 알지?=

기막힘과 황당함과 의문이 다른 감정을 억눌렀는지 안느의 얼굴이 우스꽝스럽게 변했다.

환인이 훗 하고 짧게 웃음을 흘리자 가라앉은 분위기가 한결 가벼워지며 안느와 이실리테의 얼굴에도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나 안느는 곧 침울한 표정으로 바꾸고 말을 이었다.

=도령 말대로야. 그 촌장은 셋째 딸…… 딸이기도 하고 증손녀기도 하지만 아무튼.=

제 어미가 앙상하게 말라서 죽은 데다 짓이겨져 가축의 사료로 쓰이는 걸 우연히 본 셋째 딸은 그때부터 촌장에게 복수할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그리고 안느가 찾아와 촌락을 들쑤시며 분위기가 어수선해졌을 때 촌장을 죽이려 했고, 미수로 끝나서 촌장에게 손목이 잘려 지하 2층의 숨겨진 장소에 감금되었던 것.

=내가 지하실로 내려가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나왔을 때 그 애도 지하실에서 탈출해 집안에 숨어들었었어. 그리고 그날 밤 집에 불을 질렀고, 불을 끄려던 촌장을 뒤에서 찔러 죽인 거야.=

=손목이 잘렸다면서. 어떻게 찔러 죽였다는 거야?=

이실리테의 질문에 안느는 팔뚝 뼈를 날카롭게 갈아서 뾰족하게 만든 뒤 찌르는 동작을 보여주었다.

=…….=

「…….」

=불을 끄려던 촌장이 죽자 물을 떠 오던 촌락 사람들은 양동이를 내던지고 가만히 촌장 집이 불타는 것을 바라보기만 했어. 그 불 속에서 지하실에 있던 여자들은 모두 죽었고 셋째 딸도 과다출혈로 죽어버렸어.=

심장을 찔렸다지만 성술이 있는 만큼 살리고자 했다면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안느는 마음속 혼돈 때문에 움직이지 못했고 촌장은 그대로 사망했다.

셋째 딸만큼은 살리려 했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렸던데다 촌장에게 육체적으로 말 못 할 끔찍한 일까지 겪었고, 아무리 최악의 인간이라지만 아비까지 살해한 마당에 그녀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며 치료를 거부한 뒤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고.

=그 사건을 이제 털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봐.=

산란못에서는 여자들을 구출하기도 했고 그런 짓을 저지른 건 이형종이었기에 괜찮았지만…….

‘이번 일은 사람한테 당한 것과 다름없어 그때의 기억이 오버랩 되었다는 거군.’

안느의 머리를 토닥거려준 환연이 물었다.

「그 촌락 사람들은 어떻게 됐어?」

=난 다음 날 바로 촌락을 빠져나왔고 그 뒤로 그 근처는 안 가서 모르겠네…….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평범하게 지내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뭐…….=

환연의 질문에 대답하는 안느는 더 이상 살기를 뿌리지 않고 있었다.

=그 촌락은 얼마 안 가 사라졌을 거야. 4급 청술사면 그 촌장이 촌락의 구심점이었을 텐데 촌장 집까지 다 타버렸다면서.=

=응.=

=구심점이 사라진 집단은 와해되기 마련이니까. 내가 두목으로 있던 도적단도 주인님을 따라 나온 뒤에 둘로 나누어졌더라.=

=아, 그랬어? 그 뒤에는 어떻게 됐는데?=

=절반은 멍청하게도 주인님을 습격하려다 몰살당했고 나머지 절반은…… 나도 모르겠어. 탈것을 챙겨서 다른 지역으로 떠나 잘살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토벌당했을 수도 있고.=

그렇게 말한 이실리테는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위로했다.

=안느는 안 좋은 쪽 중에서도 두드러진 곳을 찾는 바람에 끔찍한 경험을 한 거야. 계속 기억하고 있어봤자 네 마음만 아프니까 그만 잊어버려. 네 잘못도 아니잖아?=

=응…….=

「근데 루크랑만 유독 이런거야, 아니면 다른 종족도 이래?」

=우리 플뢰는…… 이런 식의 사건은 아예 없다고 봐도 될……걸? 플라비우스는 애초에 높은 데서 고고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사비는 부족 중심 사회니까 거긴 또 어떨지 모르겠네.=

「흠. 플라비우스도 한번 보고 싶은데.」

=플라비우스도 별거 없어. 여자는 여자 조인족처럼 날개 달린 거뿐이니까. 대신 하얀 날개 밖에 없구.=

여자친구들의 대화를 들으며 시계를 꺼낸 환인은 10분이 지났음을 확인하고 이후 행동 방침에 대해 고민했다.

배양실과 식량창고를 하나 부쉈으니 조만간 들킬 테고 침입자의 수색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 바르둘을 잡으러 갔다간 앞뒤로 협공받을 가능성이 발생한다.

그렇다고 다른 배양실과 식량창고를 찾아 쓸어버리고 혼합 키메라 병력을 소탕하면 바르둘이 도망칠 수 있다.

=벨티칼 산만큼은 다시 한번 보고 싶네.=

=굉장히 큰 산이라면서?=

=산이 아니라 하늘을 떠받치는 대지의 기둥 같다고 할 정도야. 어어어엄청 크고 무지무지 높아. 어지간한 구름은 산허리에도 못 지날 정도로.=

「그렇게나 커? 나도 보고 싶다.」

=나도.=

환인은 자신을 힐끔거리며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 여자친구들을 향해 가볍게 손뼉을 쳐서 주의를 환기했다.

“우리는 이제부터 바르둘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대공동을 향해 간다.”

경직되어있던 표정이 완전히 풀린 안느가 손을 들고 질문한다.

=만약 그곳을 공략하는 도중에 협공당하면?=

“우리가 식량창고와 배양실을 정리하며 꽤 큰 소음을 발생시킨 게 10분 전이다. 그런데도 키메라들이 몰려오지 않고 있지. 환연.”

「생명체는 탐지되는데 큰 반응은 없어.」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봤을 때 병력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병력 주둔 장소가 따로 있을 수 있지만, 대공동이 있는 이 근방에서 반경 500m 내에 눈에 띌 만큼 생명체가 없는 것과 바르둘이 도망친다는 위험성을 놓고 봤을 때 지금 우선해야 하는 것은 바르둘의 토벌이다.

“물론 막무가내로 돌격하지 않는다. 가까이 가면 환연의 정령 소통으로 내부 파악을 먼저 한 뒤에 세부 사항을 정리하지. 일단 지금 목표는 바르둘의 최우선 토벌이라고 생각해둬라.”

=네, 주인님.=

=알았어.=

10분 정도 휴식하고 다시 출발한 일행은 정상으로 돌아온 안느와 함께 대공동으로 향하며 마주치는 키메라를 모두 배제했다.

이 과정은 갈수록 매끄럽고 부드럽게 이루어졌다.

혼합 키메라는 일행을 발견하지도 못하고 자신이 죽는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목이 떨어져 나가기 일쑤였다.

일행을 발견하더라도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반으로 갈라져 죽거나 머리가 둔탁한 소음과 함께 뭉개져 버린다.

비록 새벽이 다가오고 있지만, 환인과 두 여자의 신체 스펙은 하루 이틀 정도 밤샌다고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고 환연은 개미굴에서 본격적인 실전을 겪으며 정령을 다루는 기술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전까지 환연은 제대로 전투다운 전투와 탐색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녀가 막 태어났을 때 폭군룡의 미궁을 탐색 중이었지만, 그때는 전투라기보다 이실리테의 싸움 구경 위주였고 산란못 미궁은 탐사와 탐색, 전투라기보다는 미궁의 이형종 소탕전이었다.

아무튼, 땅 정령의 기운 감지만 이용하고 정령들의 시야를 통해 적과 상태를 파악하는 단계에서 한 걸음 나아간 환연은…….

「어. 땅에서 진동이 강해지는 거 같은데 잠깐……. 아, 벽 너머다.」

「으응? 앗, 바람이 저쪽에 혼합 키메라 두 마리가 일꾼 키메라를 잡아먹고 있다고 알려주고 있어.」

땅의 진동을 감지하거나 바람이 날라다 주는 냄새로 적의 숫자와 종류를 파악할 수 있게 된 것.

그 덕에 길을 찾고 적을 찾아 나가는 것은 더욱 수월해졌다.

대공동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 알고 있는 데다 벽 너머까지 확인할 수 있는 치트성 맵 파인더 환연까지 있으니 미니맵을 보면서 찾아가는 수준으로 난이도가 격하된 거다.

30분 정도 나아가며 굴 몇 개를 틀어막고 일꾼 키메라, 혼합 키메라를 합쳐 60마리 정도 더 해치웠을 때 드디어 환연의 감지 범위에 지하 대공동이 온전히 들어왔다.

형태는 종유 동굴이며 땅에 심한 단 차가 존재해 천장이 가장 높은 곳은 100m에 가까울 정도.

내부에는 폭 30m에 깊이 10m가량의 강이 빠르게 흐르고 있으며…….

「혼합 키메라는 거의 없는데 대신 각성 키메라가 13마리야. 아우라가 있는 각성 키메라 중에 몇몇은 사람 모양을 하고 있고…….」

눈을 감고 자기 몸만한 땅의 정령석을 끌어안고 있는 환연에게 안느가 물었다.

=타락한 바르둘은?=

「이게 타락한 바르둘인가? 아우라가 없는 거 보면 맞는 거 같은데…….」

=어떻게 생겼어?=

「……늑대? 인랑족처럼 생겼는데 뭐가 좀, 몸에 털이 없는 곳도 많고 커다란 혹 같은 게 막 붙어있어. 그리고 배가 열려있는데 속에서 엄청 징그러운 촉수 수십 개가 막 꾸물거려. 그 촉수에 여자가 몇 명 꼬치처럼 꿰어져 있고 그래.」

=뭐야, 인랑 쪽 바르둘이야? 그런데 개미는 어떻게 확보한 거지.=

「바르둘이 깔고 앉아있는 게 개미야. 배가 막 길게 늘어져서 두근거리고 있어. 바르둘도 3m는 될 만큼 큰데 개미는 그보다 더 크고 길어.」

환연의 묘사를 들은 안느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여왕 개미라고? 야, 그 개미는 어떻게 생겼어? 몸에 막 뭐 식물 같은 게 났다거나 그래?=

「아니. 관절하고 머리에 장미 가시 같은 게 나 있을 뿐인데?」

=이로드 퀸은 아닌 거 같으니 다행인가…….=

=안느, 이로드 퀸이 뭐야?=

=어, 포자를 뿌려서 씨에 닿은 생물을 지배하는 도시 소멸급 위험도의 괴수야.=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환인은 자신을 바라보는 환연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대공동 안에 있는 생명체는 그게 전부냐, 물 속이나 땅속에 숨어있는 건 더 없느냐.

「……왁! 대공동 땅속에 가시가 온몸에 나 있는 개미가 한가득해! 어림잡아도 50마리가 넘어!」

“……”

=여왕개미를 지키는 호위 개미일 거야.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양동 공격은 안 당하겠네.=

=각성 키메라 13마리에 여왕개미하고 정체 모를 타락한 바르둘하고 호위 개미 50마리 이상…….=

기준을 삼두 늑대 키메라로 잡는다면 13마리의 각성 키메라를 여자친구들이 감당하는 것은 어려울 거다. 거기에 호위 개미와 정체불명의 키메라 늑대까지.

평온의 빛기둥을 펼치면 혹시 모르지만, 불확정 요소를 작전에 첨가할 수는 없다.

환인은 십수 가지 전투 계획을 떠올리고 폐기하며 전투법을 고르다가 방법이 없다고 느꼈다.

아무런 피해 없이 해결할 방도가 없다.

정공법은 당연히 어려우며 유인책도 사방에 있는 키메라들을 생각하면 힘들다. 남은 방법은…….

“환연, 대공동을 흐르는 강의 형태와 유속은 어느 정도지.”

「음, 벽 속에서 강이 흘러나와 벽 속으로 사라지는 형태야. 속도는 비상이가 전력으로 달릴 때랑 비슷한 거 같아.」

그렇다면 시속 100km 정도. 이 정도면 어지간한 하드코어 래프팅 강의 유속을 몇 배나 초월하는 수준이다.

폭 30m에 깊이 10m의 강이 시속 100km로 흐른다. 대공동이라지만 원형이 아니라 종유 동굴처럼 눕힌 S자 모양에 가깝다.

“…….”

왼팔의 빛 건틀릿에 보관 중인 중급 땅과 물과 바람 정령 구슬을 본 환인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적의 소굴에서 굳이 정면으로 들이받아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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