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4화 〉 408 지하 개미굴
* * *
임시 막사를 나온 환인은 여자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아 각성 괴물과 전투 소감을 물었다.
=각성한 합성 괴물은 정말 강력했어요. 전투 방식도 생경해서 사람이 괴물의 몸을 얻어 자유롭게 싸우는 느낌이라…… 부끄럽게도 시종일 저쪽의 의도에 끌려다녔어요.=
“…….”
=나도 그랬어. 빠르게 바늘 괴물을 처리한 다음에 이슬이를 도와서 나머지도 정리하려 했거든. 그런데 바늘 괴물이 위험할 때면 꼭 도망치거나 옆의 괴물을 끌어당겨 고기 방패로 써먹고……. 방심 같은 건 안 했는데 뭔가 꺼림칙한데다 예상 밖의 돌출행동을 많이 하는 바람에 계속 시간이 끌렸었어.=
“…….”
「하늘에서 도와주면서 봤는데 이실리테 말대로야. 각성 괴물은 꼭 사람처럼 싸우더라. 주변 지형이나 환인이 말하는 오브젝트도 잘 이용했고.」
환인의 표정은 매우 딱딱하고 차가워 그녀들이 괴물을 제대로 토벌하지 못해 화난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들은 환인을 오해하지 않았다.
화내더라도 이렇게 화낼 사람이 아니라고.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다른 것이라고 신뢰하고 있는 것.
그 점을 확신하고 있던 유르파가 물었다.
=자기가 영혼 화살을 날려서 맞출 때마다 합성 괴물이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는 거 같던데…… 괴물들이 사람처럼 행동하는 거랑 관계가 있는 거니?=
“일단 괴물들…… 편의상 키메라라고 하겠습니다. 키메라의 목표는 사람, 그것도 직업자의 납치가 주목적입니다.”
「합성 괴… 키메라는 마지막에 다친 기사들 끌고 가려 했었지? 각성 괴물 같은 키메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직업자가 필요한가 보네.」
“그래. 약점은 그로 인해 발생했다.”
「약점?」
=아. 혹시…….=
자신의 결론을 눈치챈 유르파가 눈을 살짝 크게 뜬다.
“키메라가 죽을 때마다 영혼이 서넛씩 쏟아져나오더군요. 여러 생명체를 융합시켰는데도 그토록 안정화되어있는 이유는 아마도… 그 영혼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식으로 힘겨루기 상태가 절묘해서일 겁니다.”
그 때문에 사람이면서 괴물같이 싸우고 괴물인데 사람처럼 행동하는 현상이 나오는 거라고 짐작한다 하니 여자들은 정말 그렇다며 고개를 연신 주억거린다.
“그리고 키메라가 발작을 일으킨 이유는 내 영혼 화살에 영혼 하나가 상처를 입어 상호 견제 밸런스가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평온의 파동에 이형종보다 더 큰 혼란을 일으킨 것도 그에 대한 증명이 된다.”
「흠……. 결론은 뭐야?」
“지금이라도 이 사태를 일으킨 타락한 바르굴을 찾아 죽여야 한다는 것. 그놈의 목적은 부하를 전부 각성 괴물 같은 개체로 만드는 걸 테니까.”
안느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중얼거린다.
=괴물들이 갑자기 습격해온 것도 각성 괴물을 더 만들어내기 위해서였다는 거네. 하늘 기사단이 왔으니까 직업자 재료가 제 발로 잔뜩 굴러들어온 셈이잖아.=
고개를 끄덕여준 환인은 좀 전에서야 읽은 그 바르둘의 의도를 생각했다.
1차에 곤충+인간 형태의 키메라를 여 마리나 보낸 것, 이번 2차에도 각성 키메라가 아닌 복합 키메라는 소모품처럼 사용한 것.
“타락한 바르둘이 다스릴 수 있는 키메라의 수는 한정적일 거다. 그 숫자는 최소한 천여 마리. 많아도 삼천은 되지 않겠지. 타락한 바르둘의 지성을 생각하면 졸병을 전부 내보냈을 리 없고, 심리적 안정선인 1/3 정도만 털어냈을 거라 생각한다.”
=그 곤충인간 키메라를 천 마리씩 보낸 건 여유를 만들 겸 우리 실력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우릴 납치해서 재료로 쓰려고…….=
유르파의 추측에 다른 여자들의 표정이 찌푸려지거나 구겨진다.
그럴 수밖에 없다. 괴물의 몸뚱이에 붙어있는 여자 상반신은 날카로운 것에 난도질당해 시뻘건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고 하반신의 성기는 무언가 거대한 것에 무참히 짓이겨져 있었다.
합성되기 전에 어떤 일을 당했는지 쉬이 짐작이 가는 모습이었던 것.
“아무튼, 키메라는 내 영혼술과 평온의 파동이 최대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키메라들이 도망칠 수 있음을 생각하면 최대한 빠르게 토벌을 끝내는 게 좋겠지.”
=개미굴로 들어가는 거야?=
“그래. 내일 아침 출발할 테니 이제부터 쉬면서 전투 중에 소모한 체력과 위상력을 회복하도록. 백려강은 하늘에서 수상한 낌새가 없는지 감시하고 환연은 땅의 정령을 부려 혹시라도 놈들이 땅굴을 만드는지 아닌지 확인을 부탁한다.”
「네. 감시는 제게 맡겨주세요.」
「알았어. 유르파, 기사단네 황술사한테 같이 가자.」
휴식과 할 일을 지시한 환인이 생각에 잠겨 들자 이실리테가 안느에게 다가가 그녀의 찡그려진 미간을 엄지로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너 또 미간에 힘주고 있어.=
=응? 앗, 잠깐…… 아으.=
=자꾸 이러면 할머니처럼 주름진다니까. 주인님 흉내 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적당히 해.=
=아, 알았어. 힘 안 줄게, 안 줄 테니까 그만 눌러…….=
사이 좋은 자매 같은 그녀들을 잠깐 바라본 환인은 고개를 돌려 흩어지는 여자친구들을 차례대로 돌아보았다.
일행 중 무직자는 없다. 전투 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유르파도 6급 비술사.
바르둘이 그녀들의 납치를 염두에 두고 찾아온 것은 확실할 거다. 셋 정도이니 각성 키메라 네 마리와 90여 마리의 키메라면 충분히 몇 명은 납치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 거겠지.
‘그렇다면 몰려온 키메라들이 개미굴 입구에서 잠깐 멈췄던 것은 하늘 기사단 때문이었겠군.’
셋뿐이라고 생각했던 직업자가 갑자기 45명으로 불어났으니 당황하지 않았을까.
그 점과 이틀이라는 시간을 두고 습격해온 점을 고려하면 이쪽을 실시간으로 감시하는 방법은 없을 것이다.
물론 자신의 가설이 100% 정확하다고 확신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이 가설이 틀렸을 경우를 대비한 계획도 짜둘 뿐.
환인은 죽인 키메라를 끌고 와 약점과 특성 등을 분석하고 있는 하늘 기사들을 쳐다보았다.
‘저들이 습격받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쪽이 노려질 가능성도 생각해두어야겠지.’
그러면 전투 능력이 떨어지는 유르파가 가장 위험하다.
무엇보다 켈베로스 키메라의 지능이 인간에 버금갈 것으로 추측한다면 유르파가 잡혀가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최악의 경우 키메라가 된 유르파가 지혜와 지식을 발휘해 키메라를 마도기, 마도구로 무장시킬 수도 있으니까.
따로 야영지를 꾸리기보단 임시 주둔지 안쪽에서 쉬는 걸로 하고…….
환인은 휴식하면서 자신을 지키는 것처럼 근처 바위에 앉아있는 여자친구 둘에게 말했다.
“이실리테, 안느. 야밤에 습격이 있을지도 모르니 쉴 때도 유르파와 떨어지지 말고 붙어있어라.”
=그럴게.=
=네, 주인님.=
움직이지 않고 멀뚱멀뚱 자신을 쳐다보는 아름다운 여자친구들을 잠시 바라보던 환인은 쓰게 웃으며 그녀들의 뺨을 살짝 꼬집어주었다.
“지금부터 하라는 말이다. 난 비상과 함께 정령을 확보하러 나갈테니 내 옆을 지킬 필요 없다.”
=앗, 네.=
그렇게 여자친구들을 보내놓은 환인은 비상의 머리 위에 앉아 자신을 멀뚱멀뚱 쳐다보는 중급 바람 정령을 보며 눈을 작게 빛냈다.
비상을 타고 주변 반경 수십 킬로미터를 날아다니며 중급 정령을 발견하면 납치하듯 구슬로 만들어 왼팔의 빛 건틀릿에 담던 환인은 중급 바람 정령의 매도를 들었다.
「난봉꾼.」
“…….”
뜬금없이 자신을 매도하는 중급 바람 정령에게 눈길을 주었다가 31명 째 정령을 챙기자 중급 바람 정령의 조언 아닌 조언이 내려왔다.
「적당히 해. 적당히. 모든 정령이 네 신기한 기술을 좋아하는 건 아니니까.」
“걱정해주는 건가.”
「네가 다치거나 하면 비상이 슬퍼할 거야. 너 때문에 비상이 슬퍼하는 건 보기 싫어.」
“고맙군. 신경 쓰도록 하지.”
신경 쓰겠다고 했지만, 이때까지 중급 정령을 구슬화하며 신경 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만약 싫다거나 거부하는 기색이 느껴지면 곧장 풀어주고 사과의 표시로 정령석 가루를 뿌려줄 준비까지 해놨던 것.
구슬화한 뒤 반응이 좋았다고 해도 방심하지 않고 구슬 속으로 들어간 중급 정령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지루해하거나 싫증 나지 않게끔 관리하기 위해서.
「응꺄? 히얏, 이거 뭐양? 꺄하하?! 우와아~!」
32명째 중급 바람의 정령을 포획한 환인은 덤덤하게 지나가듯이 물었다.
“넌 언제부터 비상과 있었지.”
「너보다 훨씬 오래됐어.」
자신보다? 그렇다면…….
환인은 줄곧 품어오던 작은 궁금증을 해결할 기회에 바람 정령을 똑바로 바라보며 질문했다.
“비상의 어머니도 알고 있나.”
「……난 첨부터 비상이 엄마한테 붙어있었거든?」
그리 말하는 바람 정령의 표정은 늘 소란스럽고 활달한 바람의 정령에게 어울리지 않는 슬픈 표정이었다.
엄마라는 이야기에 자신을 힐끔힐끔 돌아보는 비상의 머리를 웃으며 쓰다듬어준 환인은 북알프스의 호수처럼 맑고 투명한 호수를 가리키며 말했다.
“비상. 저기 호수로 내려가자.”
쿠엣.
빨간 꽃이 흐드러지게 핀 호숫가에 내려선 환인은 그새 엄마 이야기를 잊고 참방참방, 물장난을 치는 비상을 구경하며 바람 정령에게 말했다.
“역시 비상의 어머니는 돌아가셨나 보군.”
「응……. 비상이 혼자 살아남았어.」
“어쩌다가 그리 된 거지.”
「미궁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아. 그냥 생태계의 일원으로 살아가다 자연으로 돌아간 이야기일 뿐.」
새끼에 불과한 비상이 혼자 남게 될 일이라면 하나뿐이겠지.
물장난을 치다가 학처럼 물속의 작은 물고기를 발견했는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수면을 들여다보는 비상.
그러다 헛부리질을 몇 번 하고는 큐삐익! 바람을 펑펑 터트려 물고기를 학살한다.
“…….”
뿌듯해하는 얼굴로 수면에 둥둥 떠다니는 물고기를 낼름낼름 삼키는 비상을 구경하던 환인은 머리카락을 잡아당겨지는 느낌에 바람의 정령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이름이 비상이 뭐야, 비상이. 좀 심사숙고해서 좋은 이름을 지어주면 안 됐어?」
“…….”
「처음 비상을 만났을 때 잡아먹으려 했던 건 이해해. 너도 상황이 안 좋았었고 결국 안 잡아먹은 데다 비상이를 저렇게 훌륭하게 키워줬으니까. 그치만 이름을 그렇게 무성의하게 지은 건 용서가 안 돼!」
“딱히 무성의한 건 아니다만.”
환인의 담담한 대답에 바람의 정령이 분통 터진다는 듯이 좀 더 세게 머리카락을 잡아당긴다.
「내가 모를 줄 알아?! 비상식량에서 식량만 뚝 떼고 쓴 거잖아!」
“똑똑하군. 지금까지 누구도 눈치 못 챘는데.”
「씨잉. 르투나데가 얼마나 예쁘고 좋은 이름을 지어줬는데…… 비상이가 불쌍해.」
귀여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환인의 머리카락을 놓아주는 바람의 정령.
환인은 피식 웃으면서 머리카락을 정돈하고 물었다.
“비상의 원래 이름은 뭐였지.”
「……노르스리넨.」
고유 명사인지 뜻이 해석되어 들리지 않는다.
잠시 생각하다가 비상을 불러들였다.
“비상. 네 어머니가 너에게 노르스리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이제 알게 되었다. 혹시 네가 원한다면 앞으로 비상이 아니라 노르스리넨이라고 불러주마. 어떻게 생각하지.”
쿠엣.
싫어.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즉답하는 비상의 태도에 바람 정령의 얼굴이 천국과 지옥을 빠르게 오갔다.
「왜, 왜 싫다는 거야? 르투나데가 너한테 지어준 이름이란 말이야!」
쿠흥.
「이 바보야! 비상이라는 이름은 저 인간이 대충 지어준 이름이라구! 그거랑 비교하면 네 엄마가 너한테 지어준 이름은……!」
큐삣~
몰라~
말허리를 자르는 비상의 가벼운 대꾸에 바람 정령은 뺨을 잔뜩 부풀린 채 부들부들 떨다가 환인을 휙 째려보곤 비상의 머리 위에 엎어져 버렸다.
누구하고도 대화하기 싫다는 거부의 뜻이 적나라한 태도.
그 모습에 큭큭 작게 웃은 환인은 비상의 등에 올라타 다시 중급 정령을 수색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노르스리넨이라는 이름을 기억해뒀다가 혹시 비상이 새끼를 낳거나 하면 자식의 이름으로 물려주어야겠다고.
해 질 무렵까지 중급 정령을 수집한 환인은 96개의 보유 구슬 중 39개를 중급 정령 구슬로 채울 수 있었다.
가능하다면 절반 이상을 중급 정령으로 채우고 싶지만, 서른아홉의 중급 정령을 모으는 데만 3시간이 넘게 걸렸고 반경 30km를 훑었다.
환연을 데리고 갔다면 좀 더 편하고 빠르게, 그리고 더 많이 모을 수 있었겠지만, 환연에게는 임무를 맡겨놓은 상황.
어쩔 수 없이 나머지 57개는 빛과 물, 불, 바람 등의 하급 정령으로 채웠다.
정령만 있다면 환연이 그 정령을 부려 해당 속성력을 발휘하고 해당 속성 물질을 생성할 수 있다.
땅속으로 들어가는 만큼 혹시 몰라 물과 빛을 챙긴 것.
그리고 밤이 깊은 시간, 환인의 예상대로 키메라가 야습을 걸어왔다.
낮의 병력을 그대로 끌고 나온 각성 키메라 4마리와 복합 키메라 40마리로 이루어진 야간 습격.
=야습!! 키메라의 야습!!!
땡땡땡땡땡—!!
환인의 여자들은 물론 기사단 또한 환인의 경고를 듣고 야간 전투를 상정한 채 전투 휴식 중이었기에 대응은 즉각적이었다.
=라드하 부대장이 쪼인트까지 까면서 경계 감시 태세를 강조하더니, 효과가 있었네.=
=주인님이 경고해주셨으니까 그랬겠지.=
=아무튼, 저기 각성 키메라가 오고 있어. 낮의 수모를 설욕해서 도령한테 보여줘야지?=
=물론이야.=
단단히 각오한 이실리테와 안느는 잠시후 도착한 각성 키메라의 교란과 양동에도 굴하지 않고 각성 키메라 셋과 3:2로 격돌.
=흐아압!!=
=……!!=
안느가 대지를 내려쳐 세 마리에게 0.5초의 찰나에 가까운 경직을 먹인 순간 이실리테는 어둠을 가르는 것처럼 거대한 빛의 대검으로 호저 가시 키메라의 허리를 썰어버렸다.
첫 격돌 후 10초도 지나지 않아 각성 키메라 한 마리를 해치운 이실리테와 안느 태그.
미로=라드하를 포함한 하늘 기사 21인도 투지를 아낌없이 드러냈다.
낮의 습격에 살아남은 40마리의 복합 키메라를 상대로 부상당한 동료의 원한을 갚겠다는 듯이 집요하게 공격하며 전황을 분리하고 있었던 것.
물론 하늘에서 환연과 유르파의 정령술, 벼락 부적과 진동 구슬 폭탄의 지원이 있었던 덕분이다.
그러는 사이 환인은 낮처럼 삼두 늑대 키메라에게 살기를 집중해 발목을 잡으며 여자친구들이 칠성장어 복합 키메라, 독수리고릴라 합성 키메라를 압도하는 걸 구경했다.
낮에는 생경한 전투 방식에 휘말려 제 실력을 내지 못했지만, 그런 경험은 한 번이면 족하다는 듯이 둘이서 한 몸처럼 각성 키메라 두 마리의 몸에 상처를 늘려가고 있다.
=아, 어어아… 아아아아—.=
끼릭, 끼리리릭.
환인의 농도 짙은 살기가 계속 집중되어서일까, 시체처럼 반응이 무디던 여자 머리와 곤충 머리에서 반응이 나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신체의 제어는 늑대 머리가 쥐고 있는지 그 어떤 반응도 내비치지 않고 녹색으로 불타는 눈동자를 환인에게 고정하고 있었다.
내려와라. 싸우자.
환인은 그런 노골적인 분노의 시선에 살기를 더욱 끌어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래, 네 강함을 확인할 때이긴 하지.”
환인은 방벽 패널을 검 형태로 바꿔 삼두 늑대 키메라를 향해 날렸다.
낮에 유르파에게서 위상력을 최대치까지 충전해놓은 상태. 지금이라면 숏소드보다 더 짧은 검 형태 패널로 100회까지 날릴 수 있다.
목표를 세 머리의 눈으로 잡고 검을 쏘아 날리자 예상대로 옆걸음질로 가볍게 피하는 키메라.
환인은 회피를 위한 다섯 방위를 짚고 여기에 페인트 동작까지 섞어 다시 투검했고, 삼두 늑대 키메라는 크릉,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등의 거미 다리를 휘둘러 검을 모두 깨버린다.
콰직!
그 순간 삼두 늑대 키메라의 옆구리를 포 뜨는 것처럼 꿰뚫고 지나가는 2중첩 하급 영혼 화살.
환인의 목적은 애초에 영혼 화살이었던 것을 간파하지 못한데다 투명한 공격의 기척을 전장의 소음 속에서 읽어내지 못한 삼두 늑대 키메라의 실착이었다.
영혼을 찢는듯한 고통에 키메라의 움직임이 경직된 순간, 평온의 파동도 발사되어 삼두 늑대 키메라를 뒤덮는다.
크헝!?
=아아악!!=
까득까득까득까득.
영혼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고통과 육체가 세 가지 의식에 지배당해 벌어지는 혼란.
삼두 늑대의 세 머리가 비명을 지르며 미친것처럼 사방팔방 날뛰면서 거미 다리 끝으로 독액을 마구 뿌렸다.
“…….”
마치 점액질 같은 독의 탄환.
몇 개는 이쪽으로 날아오고 몇 개는 여자친구들과 하늘 기사들이 싸우고 있는 쪽으로 날아간다.
저 독탄이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지만, 걷어낼 수 있다면 걷어내는 게 좋겠지.
환인은 비상이 펼치는 회피기동에 순응하며 방벽 패널을 쏘아서 독의 탄환을 하나하나 맞춰 무력화시킨다.
크어허어어엉!!
=…….=
…….
그러는 사이 옆구리가 너덜너덜해진 채 광견병에 걸린 개처럼 날뛰던 삼두 늑대 키메라는 짐승처럼 두 마리의 각성 키메라를 도륙 내고 있던 이실리테와 안느에게 돌진했다.
어그로가 가장 강하게 끌린 환인이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으니 그다음으로 거슬리던 두 여자에게 차순위 어그로가 몰린 것.
빠르다.
제로백 1초의 f1 머신처럼 굉음을 내며 삽시간에 여자친구들과 가까워지는 삼두 늑대 키메라.
‘…답지않은 멍청한 선택이군. 여자 머리와 곤충 머리가 늘어진 게 저 선택과 관계가 있는 건가.’
거의 날듯이 달려가던 삼두 늑대 키메라는 환인의 관측 사격에 어깨 등 뒷다리에 차례대로 영혼 화살을 맞아 균형을 상실, 가드레일에 부딪힌 f1 머신처럼 흙먼지를 일으키며 격렬하게 땅에 내동댕이쳐졌다.
쿠구궁, 콰광, 콰과과곽……!
“하늘 기사들을 노렸다면 최소한 몇 명은 해치울 수 있었을 텐데.”
환인은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온몸의 뼈가 으스러진 것처럼 부들부들 떠는 삼두 늑대 키메라의 세 머리에 영혼 화살을 쏘았다.
눈알을 통해 뇌에 영혼 화살이 박힌 삼두 늑대 키메라는 그 즉시 절명했고 환인의 평온의 파동에 맞은 복합 키메라들, 마지막 남은 각성 키메라도 혼란에 빠진 상태 그대로 목이 떨어져 죽었다.
=성자님, 고생하셨습니다!=
4마리의 각성 키메라와 40마리의 혼합 키메라를 피해 없이 물리친 미로=라드하의 표정이 밝다.
“이야기는 있다 하겠습니다. 하늘 기사단이 보유한 가장 크고 무게 감소 효과가 높은 아공간 가방은 어느 정도입니까.”
=예, 예? 어, 그러니까 가로세로 10m에 높이 6m 정도 되는 방 하나 사이즈입니다. 무게 감소는 70% 정도이고요. 그건 왜…….=
“지금부터 우리는 지하 개미굴에 진입합니다. 그 가방에 식량과 식수의 지원을 요청하겠습니다.”
=……!=
환인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등산용 백팩 사이즈의 하늘 기사단 보급 수송 가방을 강탈했고, 그곳에 필요한 식량과 식수, 미궁에서 사용하는 도구 일체를 챙겼다.
3인 + 요정 1인의 42일분 식량과 식수, 3인분의 숙영 도구에 기사단용 담수화 마도구까지.
군용 보급담당자가 이래도 괜찮은 건지 당혹해하는 시선을 미로=라드하에게 보내지만, 그녀라고 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게 기사들의 황망한 시선을 받으며 물자를 챙긴 환인은 약 27kg 정도의 가방을 힘이 가장 강한 안느에게 넘겨주었고, 이실리테도 그보다 작은 가방에 똑같이 식량과 식수를 나눠 챙긴 것을 등에 짊어지는 것으로 출발 준비를 끝마친다.
환인은 비상과 유르파, 백려강에게 당부했다.
“저 안은 위험해서 유르파를 데려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비상과 백려강과 함께 안전한 곳에 기다리고 있으십시오.”
=으응. 조심해야 해.=
“예. 비상, 유르파와 백려강을 잘 지켜야 한다.”
큐삣.
“그럼…… 라드하 부대장, 뒷일은 부탁합니다.”
=예, 예.=
졸지에 ‘절대’ 망실해서는 안되는 기사단 비품 1위와 물자 일부를 삥뜯긴 미로=라드하는 멍하니 환인 일행이 개미굴로 사라지는 것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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