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413화 (413/813)

〈 413화 〉 407 지하 개미굴

* * *

비상을 타고 주둔지를 향해 달려가던 중 환인은 공기가 술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불쾌하고 불온한 것이 태동하는 듯한 느낌.

타다다닷—

쿠우, 쿠엣.

환인을 태우고 주둔지를 향해 달려가던 비상이 그를 돌아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운다.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큐잇. 뿌잇.

“그런가. 알았다.”

쿠에~!

비상이 한층 달리는 속도를 높이자 쿠르티와 쿠핀을 타고 따라 달리던 이실리테와 안느가 가까이 붙으며 비상이 무슨 말을 한 거냐고 묻는다.

“사방에서 적의가 느껴진다는군. 땅속에서 괴물이 이동하고 있는 것을 비상도 느낀 거겠지.”

=우와, 땅속의 적의도 느낀다고?=

놀라는 안느의 이야기에 환인은 비상의 머리 위에 앉아있는 중급 바람 정령의 뒤통수를 응시했다.

“비상은 바람 정령에게 사랑받고 있을 만큼 바람에 대한 친화도가 높다. 괴물이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공기의 진동과 바람에 섞인 괴물의 냄새를 맡는 건 어렵지 않겠지.”

=그런가? 음, 그럴 수도 있겠네.=

잠시 후 도착한 하늘 기사단의 주둔지, 촌락 밖에 세워진 곳은 13개의 크고 작은 막사로 구성되어있었다.

그리고 그런 주둔지에 도착한 환인 일행이 목격한 것은 망루에서 땡땡땡땡­ 다급하고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회색과 하늘색으로 염색한 산뜻한 가죽 갑옷 차림의 조인족 여기사들이 날개를 꺼내거나 꺼내놓은 날개로 날아오르는 장면이었다.

=신기하게 여자가 더 많은 기사단이네.=

“…….”

=주인님, 저기 라드하 부대장이에요.=

철새 떼처럼 빠르게 상승하는 조인족 여기사들을 응시하던 환인은 이실리테가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때마침 가장 큰 막사에서 한미 혼혈 미녀 느낌의 미로=라드하가 부관과 함께 굳은 얼굴로 나오다 눈이 마주친다.

황술사의 보고를 받고 굳은 얼굴로 막사를 나서던 미로=라드하는 환인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반쯤 날듯이 달려와 환인에게 말했다.

=성자님, 적이 개미굴을 이동 중입니다. 위험하니 몸을 피하시죠.=

“아닙니다. 그보다 적의 숫자는 파악하셨습니까.”

=황술사의 보고에 따르면 땅속에서 울려 퍼지는 진동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있어 확실하지 않지만, 최소 20에 최대 90이 넘을 수도 있…다고…….=

말하던 미로=라드하는 성자의 뒤에 있는 이실리테와 안느를 보곤 말끝을 흐렸다.

저 푸른빛과 갈색빛은 뭐지……? 좀 전까지만 해도 저런 빛의 색은 없었는데…….

그런 미로=라드하의 모습에 환인은 뭘 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리는 인부들을 가리켰다.

“일단 인부들부터 안전한 장소로 대피를 유도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전투가 벌어진다면 위험하기도 하고 방해가 될 테니까요.”

=아? 네, 물론입니다. 이런 상황을 상정해 개미굴로부터 멀리 떨어진 안전한 장소도 확보해두었습니다.=

부관에게 눈짓해 인부들을 챙기라 지시한 미로=라드하는 환인에게도 재차 요청했다.

=여긴 영혼 기사님들과 저희에게 맡기시고 성자님도 대피하시지요.=

“제게는 날개가 되어줄 비상이 있으니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그보다 이번이 공세는 저번보다 더욱 강할 것으로 짐작되니 부대장님은 제 기사들과 함께 힘을 합쳐 적을 상대해주십시오.”

=두 분께서 도와주신다면 마음이 든든할겁니다만…… 혹시 성자님도 싸우실 생각이십니까?=

환인은 대답 없이 작은 웃음을 짓고는 이실리테와 안느에게 말했다.

“환연을 보내줄 테니 뒷일은 맡긴다.”

=네, 주인님.=

=맡겨둬. 미로 부대장님? 진형에 대해서 할 말이 있는데…….=

안느가 당황하는 미로=라드하를 붙잡고 말을 거는 사이 하늘로 날아오른 환인은 비상을 조종해 한데 모여있는 유르파, 백려강, 환연 셋에게 다가갔다.

“환연, 상황은 어떻지.”

「개미굴 입구 근처에서 대기 중이야. 바깥 상황을 신경 쓰는 거 같아.」

“바깥의 적을 경계할 지성이 있나 보군. 적의 형태는 보이나.”

「응. 엄청 이상해. 두셋 정도 되는 동물을 막 뭉쳐놓은 모습이야. 아우라는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는데 없는 게 훨씬 많아.」

“……숫자는?”

「대충 92마리 정도 되려나?」

환인은 천칭을 턱을 쓰다듬으며 미간을 좁혔다.

저것들의 행동 법칙은 무엇일까. 환인은 그게 가장 의문이었다.

처음 자신들을 습격해온 괴물들은 졸병이었을 테지. 그것들이 공격해온 이유는 뭐였을까.

자신들을 사로잡기 위해서? 아니면 비 오는 날 이동하려다 우연히 자신들과 마주친 걸까?

처음 마주쳤을 때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적은 많았고 일행은 포위당한 상태였다. 적을 해치우는 데만 집중했다.

그러다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느라 잠깐 그에 관한 생각이 멈췄는데, 이번 공격으로 의문이 다시 고개를 치켜들었다.

첫 조우는 우연이라 치자. 이번에는 뭘까.

이쪽을 알고 있나? 무력의 차이는 인지하고 있는 건가?

어째서 90마리 정도 되는 숫자만 보낸 거지?

저 90마리가 이쪽을 모두 상대할 만큼 강하다고 자부하고 있나?

아니면 개미굴 입구가 전부 막혀있어서 길을 뚫기 위해 병력을 보낸 건가?

“…….”

천여 마리나 되는 괴물이 고작 몇 명에게 떼몰살당했다. 거기에 지금은 전원 직업자로 이루어진 기사 40명도 추가된 상태.

지성이 있다면 이쪽의 무력을 인지하고 피하는 게 병력 보존에 있어 올바른 판단이다.

개미굴이 다 막혀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개미굴을 만들 정도라면 땅속을 파고 이동하는 것도 가능할 텐데.

의문은 또 더 있다.

자신들이 발견한 시체가 쥐고 있던 상소문, 거기에는 타락한 바르둘이 있다고 했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마을 사람 앞에 바르둘이 모습을 드러내서? 드러냈다면 그 이유는 뭐지? 마을 사람을 포획해서 개미굴로 끌고 와도 됐을 텐데 굳이 모습을 드러낸다고?

뿌우우우—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자 하늘을 선회하던 하늘 기사들이 여자친구들과 미로=라드하가 있는 곳으로 모여든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환인은 그걸 보고 하급 정령 구슬로 유르파와 환연에게 강령을 걸어주며 말했다.

“환연, 너는 하늘에서 지켜보다가 이실리테와 안느가 위험해지면 알아서 적당히 엄호해라. 유르파는 혹시 모르니 백려강과 함께 전장에서 떨어져 있으십시오. 저것들이 원거리 공격을 할 수도 있는 만큼 경계하고 있어야 할 겁니다.”

「그럴게.」

=으응.=

「넷.」

여자친구들을 적당히 배치한 환인은 비상과 함께 적당히 상공을 선회하며 아공간 주머니에서 천칭을 꺼내 들었다.

지상에는 작은 짐승 한 마리도 없이 적막이 내려앉아 있었다.

땅을 딛고 서 있는 사람은 쿠르티와 쿠핀의 등에 탄 이실리테와 안느뿐.

하늘 기사단 42명 전원은 헬기 편대처럼 자리 잡고 제자리 활공 중이며 그곳에서 좀 더 위쪽에는 환연이 중급 정령 여럿을 주위에 두고 지하 개미굴의 괴물이 뛰쳐나오길 기다리는 중이다.

환인은 그런 환연보다 좀 더 위쪽에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개미굴 입구 근처에 모여있다는 괴물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환인이 중급 영혼으로 영혼 폭발을 날려볼까 생각하고 미로=라드하도 개미굴 하나를 짚어 공격 술법을 쏟아부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여러 개의 개미굴에서 괴물들이 하나둘 대가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

그 생김새가 끔찍해 멀쩡히 바라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동물과 곤충과 사람을 엉망진창으로 섞어버린 모습의 괴물들. 조화롭게 섞은 게 아니라 팔다리 머리 몸통을 떼어다가 초등학생의 클레이 아트처럼 아무렇게나 갖다 붙인 모양새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정체불명의 동물 등에 여자의 하반신이 달려있었는데 그 배가 임신한 것처럼 불룩 튀어나와 있다는 것.

사람의 팔다리와 짐승의 사지와 곤충의 갑각, 날개가 엉망으로 섞여 있는 혼돈의 괴물이 출현하자 하늘 기사단 사이에서 술렁임이 번졌지만 술렁임은 잠시였다.

와아아아­!

함성과 함께 기사들이 5명이 1조로 8개 조가 각자 개미굴 하나씩 맡아 괴물과 접전을 시작한다.

조인족 기사들의 전투는 꽤 볼만했다.

보통의 맹금류처럼 하강과 상승의 원 패턴 공격이 아니라, 필요하면 땅에서 두 다리로 전투를 치르기도 하고 괴물의 난동에 계속 등 뒤를 잡으며 위상력을 밀어 넣은 무기로 상처를 입힌다.

앞에서 주의와 이목을 끌어 동료들이 공격할 수 있게 돕는가 하면 방심한 괴물의 신체 일부를 붙잡고 날아올라 추락시키기도 한다.

등급은 3급에서 5급 사이지만 연계와 합격이 환인의 눈에도 나름 괜찮은 수준.

그런 전투 사이로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이실리테와 안느였다.

문양으로 강화된 강령을 받아 신체 능력이 3.9배나 증가하게 된 이실리테는 다중 검기조차 꺼내지 않고 레드릭 얼터로 키메라 같은 합성 괴물을 토막 내며 해치워나간다.

안느는 안 그래도 강한 힘이 더욱 강해져 천벌의 망치로 때리는 게 아니라 분쇄하고 있었다.

망치의 헤드에 맞으면 그게 머리든 팔다리든 몸통이든 펑펑 소리를 내며 터져나가는 것.

촤자자작­ 쿠콰광!

뻐버벙—!

환연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이실리테와 안느를 돕지 않아도 되겠다고 판단해 중급 정령을 다수 동원해 개미굴 두 개를 틀어막고 나오는 괴물들에게 흙창, 바람칼, 빛 화살을 사정없이 처먹인다.

그러나 개미굴 입구의 개수는 13개.

끄왜애애앵­!!

끠야아아앜—!

맡지 않은 굴에서 빠져나온 괴물이 기이한 포효를 지르며 본격적으로 날뛰기 시작하니 괴물의 기세에 눌린 기사들이 물러나고, 그렇게 자유가 된 개미굴에서 괴물이 더 빠져나오고…… 전황은 점차 혼전이 되어간다.

환인은 죽은 합성 괴물의 몸뚱이 하나에서 빠져나오는 두서넛의 영혼들을 바라보다가 전장에 출현하는 존재감을 느끼고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전선이 형성된 장소에서 한참 후방의 개미굴, 그곳에서 아우라를 몸에 휘감은 괴물이 빠져나온다.

생김새는 검은색 늑대의 몸에 켈베로스처럼 사람, 늑대, 곤충의 머리가 달려있고 등에는 날개 대신 거대한 사람 팔과 곤충의 다리가 거미처럼 난 괴물.

아우라를 가지고 있어서일까, 생김새가 합성 괴물이지만 그나마 짐승의 형상을 띄고 있다.

아우라를 가진 괴물은 그 삼두 늑대 괴물로 끝나지 않았다.

고릴라의 몸뚱이에 독수리의 머리와 뱀의 꼬리가 붙어있는 괴물, 칠성장어 같은 주둥이에 두 다리로 선 쥐 인간 같은 괴물, 거미의 대가리에 멧돼지 몸뚱이 호저 가시 같은 것이 엉덩이에 가득 난 8족의 괴물 등이 개미굴에서 기어 나온다.

“아우라의 농도가 짙군.…….”

저정도면 5급, 어쩌면 6급일지도 모른다.

아우라를 가진 네 마리 합성 괴물이 합세하자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한다.

호저 가시를 날리는 각성 괴물의 원거리 공격에 여기사들이 몸 곳곳에 가시가 박힌 채 추락하고, 칠성장어 대가리에 다리를 물린 여기사가 땅에 수차례 내동댕이쳐지며 비명을 지른다.

그런 기사들에게 가해질 후속타를 막은 것은 환연이었다.

끼야아아악—!!

퀘에에엥—!

녹색, 푸른색, 갈색, 백색의 빛줄기가 각성 괴물들을 두들기니 추락하고 쓰러진 여기사들을 잡아먹으려던 괴물들이 다급히 물러난다.

그사이 부상자는 후방으로 이송되고, 환인은 여자친구들이 강적의 출현에 그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다가 자신을 노려보는 삼두 늑대 괴물과 시선을 마주했다.

…….

“…….”

합성 괴물은 모두 빠져나온 듯 개미굴에서 더 이상의 추가 증원은 없었지만, 순식간에 불어난 적의 숫자로 전선은 난전으로 변해버렸다.

더 안 좋은 소식은 다수의 합성 괴물을 맡고 있던 이실리테와 안느가 각성 괴물을 전담하게 된 것.

안느는 성벽의 방패를 내세워 호저 가시 괴물을 압박하고 이실리테는 다중검기 두 자루를 꺼내 독수리 머리 합성 괴물과 칠성장어 합성 괴물을 동시에 공격하지만, 두 사람에게 여유는 없어 보인다.

전장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많은 적을 붙들고 있던 두 명이 위치를 바꾸자 그로 인해 자유가 된 합성 괴물들이 물경 37.

거기에 기존의 괴물 32마리가 더해져 69마리의 합성 괴물이 부상 당해 이탈한 기사를 제외한 31명의 기사와 격돌한다.

시의적절한 환연의 공격 지원이 없었다면 20명 미만으로 줄었을 기사들이 고저 차로 인한 이점을 가지고 괴물들과 집단전을 벌이고 있지만, 환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도도하게 서서 자신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는 삼두 늑대 괴물 때문이다.

네 다리에 녹색 불길이 타오르는 데다 몸 전체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괴물.

삼두 늑대 괴물이 밟고 선 잔디가 누렇게 죽어가고 등에 난 팔의 손톱과 거미 다리 끝이 녹색으로 물들어있으니 아지랑이에 독기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쪽이 움직이면 저 삼두 늑대 괴물도 움직인다. 다리에 붙은 튼실한 근육을 보자면 속도 또한 보통 이상일 테지.

저런 놈이 이쪽을 무시하고 날뛰면 기사들은 물론이고 여자친구들도 위험해진다.

더욱이 독의 아지랑이를 생각하면 자신이 근접전을 치르는 것도 불가능한 적.

“……성가시군.”

환인은 불현듯 치미는 성가심에 미간을 찌푸렸다.

문양 강화 영혼 폭발을 쓰자니 그 범위에 아군이 휩쓸릴 수 있다. 방벽 패널은 등에 난 저 거미 다리와 사람의 팔이 쳐낼 것으로 보인다.

영혼 화살을 쓰자니 자극받은 괴물이 어떻게 날뛸지 알 수도 없고 접근전도 할 수 없다.

이러한 성가심에 의해 기분이 가라앉으니 환인은 자신의 행동에 제약을 주는 것들을 모두 끊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치밀었다.

그러나 그러한 충동은 떠오르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가라앉았다.

하늘 기사들은 다 죽어도 상관없지만, 여자친구들만큼은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으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유형화될 것 같은 진득한 살기가 환인에게서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끄오오옹—!

환인의 살기를 느낀 삼두 늑대 괴물의 세 머리 중 늑대 머리가 고개를 치켜들고 하울링을 질렀다.

그때를 기점으로 전황이 일변했다.

환인이 자신의 위상류가 자극받는 것을 느낀 순간 하늘 기사들의 동작이 어지러워지며 연계가 끊어지거나 어긋나기 시작해 괴물이 점차 반격하기 시작하는 것.

“…….”

감각 혼란을 일으키는 포효인가.

여자친구들은 다들 멀쩡하다. 자신도 위상류 덕분에 아무렇지도 않았고 비상은…….

꾸우?

‘타고난 신체 감각으로 무시한 거군.’

환연도, 멀쩡해 보이고 저 멀리 하늘 위에 있는 유르파와 백려강도 영향을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했다.

퍽­

아악!

콰광, 쿵!

끄악!

꺄아악…!

들려오는 여자 비명에 시선을 내리니 기사들이 밀리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동작이 어지러워지자 공격을 허용한 하늘 기사들이 팔 휘두르기, 몸통 박치기 등에 당해 나가떨어지고, 그걸 시작으로 한두 명씩 부상자가 계속 발생한다.

환인은 자신을 여전히 노려보고 있는 삼두 늑대 괴물을 응시하며 영기를 끌어모아 평온의 파동을 펼쳤다.

파아악—!!

회백색 빛의 파문이 삽시간에 지름 수백 미터의 전장을 휘감으니 합성 괴물들은 괴로움에 몸부림치기 시작했고 반대로 하늘 기사들은 혼란에서 빠져나와 맹공을 가하기 시작했다.

‘한 몸뚱이에 영혼이 둘 셋 씩 들어있어 저러는 건가. 1차 습격의 그 괴물들은 인간의 혼뿐이어서 지장을 받지 않았나 보군.’

의외의 약점이다.

불리해지던 전황이 삽시간에 반전되자 괴물들이 몸을 돌려 다시 개미굴로 돌아간다.

막무가내로 후퇴하는 게 아니라 누가 봐도 지시를 받으며 질서정연하게 퇴각하는 모양새.

그냥 후퇴도 아니고 땅에 쓰러진 여기사들을 납치하는 괴물도 있다.

다른 여기사들이 그런 괴물들의 손아귀에서 동료를 구출하려 하지만, 납치 조와 방어 조의 역할 분담이 너무 확실해 좀처럼 구출하지 못한다.

‘움직일 테면 움직여라.’

환인은 자신을 노려보는 삼두 늑대 괴물을 똑같이 노려보며 여기사들을 납치해가는 괴물을 향해 하급 정령 구슬로 영혼 화살을 2중첩 씩 중첩해 난사했다.

영혼 화살이 아니라 영혼 광선이라 불러야 할 회색 빛줄기가 합성 괴물의 몸뚱이를 꿰뚫으니 여기사를 끌고 가던 괴물들이 발작을 일으킨 것처럼 날뛴다.

고통 때문이라기 보다 영혼의 괴리가 발생해 발광하는 모습이다.

‘다중 영혼은 영혼술이 약점인가.’

환인의 개입을 본 삼두 늑대 괴물의 세 머리가 이를 드러내며 당장이라도 날 뛸 듯이 으르릉 거렸지만, 환인이 천칭을 들어 가진 영혼 구슬과 주변에 가득한 괴물의 영혼을 끌어당겨 전부 영혼 화살로 만들어 조준하자 다시 잠잠해진다.

…….

“…….”

환인과 삼두 늑대 괴물이 서로를 노려보는 사이 결국 살아남은 합성 괴물은 여기사들을 한 명도 납치하지 못하고 개미굴로 사라졌고.

카강!

=이게 진짜!=

우로로롤롷호롤!

퀴시이익—!

=…….=

이실리테와 안느가 맞서 싸우고 있던 각성 괴물 세 마리도 각자 크고 상처를 입긴 했지만, 발작하듯이 공격을 크게 털고는 후다닥 삼두 늑대 괴물 근처로 빠지는 게 멀쩡한 모습이다.

각성 괴물 네 마리, 그리고 하늘 기사단과 환인 일행의 구도가 펼쳐졌지만 전투는 이어지지 않았다.

안느와 이실리테, 환연은 환인이 움직이지 않아서. 하늘 기사들은 영혼 기사들이 안 움직여서.

삼두 늑대 괴물은 세 각성 괴물을 먼저 물린 뒤 자신도 환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천천히 개미굴로 되돌아갔다.

합성 괴물과 2차전의 끝이다.

=합성 괴물은 총 52체를 토벌했습니다. 하늘 기사는 위중증이 2명, 중상이 13명, 경상이 6명으로…….=

약 15분가량의 전투는 하늘 기사단 42명 중 21명의 부상에 합성 괴물 92마리 중 52체 토벌로 마무리되었다.

재차 습격이 있을 것을 우려한 환인 일행과 기사단은 물자와 인부, 부상자를 챙겨 개미굴 지역에서 10km는 떨어진 곳으로 물러났다.

승리라기에도 애매하고 패배라고 하기에도 그런 상황.

=합성 괴물의 위험성이 이번 전투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만한 강적이라면 차후 개미굴 공략에 지장을 줄게 확실하니 마지막에 각성 괴물 네 마리만큼은 잡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만…….=

부대장 막사에 모여 전후 상황을 파악하던 중 미로=라드하의 아쉬워하는 발언에 표정을 구기고 있던 안느가 끼어들었다.

=농담이지? 우리 도령이 그 머리 셋 달린 늑대 괴물을 막아줘서 이 정도로 끝난 거야. 아니었으면 우리는 몰라도 미로 부대장네는 부상자 숫자가 곧 사망자였을 걸.=

=맞아요. 그 늑대 괴물은 우두머리급이 확실해 보였어요. 6~7급 우두머리였으니 그 괴물이 전투에 가세했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지…….=

=으음, 죄송합니다. 아쉬운 마음에 꺼낸 말이 영혼 기사님들의 심기를 상하게 했군요. 사과드리겠습니다.=

미로=라드하는 사과하면서도 탁자 위 지도를 응시하고 있는 환인을 흘끔거렸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남자다.

늑대 머리 괴물이 강하다는 것은 그녀도 전투 중 느꼈었다. 때때로 자신에게 시선이 돌아올 때마다 소름이 돋아 날갯짓에 지장이 생길 정도였으니까.

그런 괴물이 경계하는 성자는 대체 어떤 인물이라는 걸까.

=으흠.=

생각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려는 것을 느낀 미로=라드하는 하관을 한차례 쓸어내린 뒤 환인에게 말했다.

=프라버에 증원 요청을 해놓은 상태입니다만, 아무래도 증원이 아니라 교대 요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 하늘 기사단이 아니라 창천 기사단이 와야 해결할 수 있을 거 같다는 느낌이…….=

“그쪽은 라드하 부대장님께 일임하겠습니다. 저는 생각할 것이 있어 이만.”

살짝 목례한 환인이 몸을 돌려 막사를 빠져나가자 이실리테와 안느도 부대장에게 고개를 살짝 숙인 뒤 막사를 나갔다.

=……푸우우.=

길게 숨을 내뱉은 미로=라드하는 터덜터덜 의자로 걸어가 털썩 주저앉아 재차 커다란 한숨을 토해냈다.

=부관, 네가 보기에 어때?=

=성자님 말입니까?=

=응.=

=마지막에 성자님이 스틱을 내밀자 합성 괴물이 막 발광하다가 뒤졌잖습니까. 그걸 보면 성자님한테는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힘이 더 있다고 봐야겠죠. 그 검은 늑대 괴물이 성자님을 경계하느라 움직이지 않았을 정도로요.=

=…….=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이 알류겔 호수의 파도처럼 쉼없이 밀려온다.

끝내는 뒷목이 무거워져 고개를 뒤로 젖히며 의미 없는 탄성을 낸 미로=라드하는 부관에게 통신용 수정구를 가져오라 지시했다.

막사에 혼자 남자 머릿속에 아까 전, 일부러 억눌렀던 좋지 못한 생각이 뭉글거리며 떠오르기 시작한다.

‘성자님……이지만 아무리 봐도 성자님 같지 않단 말이야.’

부관은 느끼지 못한 듯한데, 미로=라드하는 환인의 살기를 접하곤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거기에 정체불명의 공격 수단도 있고, 자신이 보기에 성자님은 나설 기회가 있었지만 나서지 않고 그냥 지켜만 본 거 같은…….

‘……이건 보고서로 올리면 안 되겠지?’

알고 보니 성자는 악당이었다…… 같은 소문이 자신의 보고서로 시작되었다간 후환이 두려워 밤에 잠도 못 자게 될 것이다.

출세욕보다 목숨이 더 중요했던 미로=라드하는 부관이 통신용 수정구를 가져오는 걸 보며 통신 시에 할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나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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