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2화 〉 406 린덴 촌락
* * *
하늘 기사단 원정부대의 부대장, 까치의 피를 이은 미로=라드하 1급 호족은 며칠 전, 정식 영주 대리로 임명된 백중강의 명령에 따라 부하를 이끌고 린덴 촌락에 도착하였다.
부대를 이끌고 원정을 나서기 전, 미로=라드하는 영주(진)인 백중강과 프라버 서열 2위가 된 군사령관 백치령에게 차례대로 불려가 경고나 다름없는 조언을 받았었다.
절대 성자님과 그분 일행에게 무례하거나 건방진 행동은 하지 말라고.
딱히 경고가 없었다 해도 미로=라드하는 녹색 성자를 함부로 대할 생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성자와 안 좋게 연루된 사람은 하나같이 죽거나 패가망신 당했으니까.
통신 수정관리부서의 부서장인 알칸=드람. 자신과 같은 단승 1급 호족은 부하이자 2급 호족 가문인 친인척 조카를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 성자님에게 폐를 끼쳤다는 이유로 직위도, 재산도 몰수당해 평민으로 강등당했다.
성자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꺼드럭거렸던 그 조카는 투옥된 상태 그대로 참수당했고 그 가계 또한 1계급씩 강등당했으며, 프라버의 성골이라 할 수 있는 백치령 군사령관께서도 한때 신분 지위를 박탈당했지만 성자에게 용서받아 겨우 복직되었다.
이런 선례가 한가득한데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성자님의 비위를 거스를까.
그렇다고 해도 환인과 직접 대면한 적이 없는 데다, 환인이 두 차례 평온의 빛기둥을 펼쳤을 때 알류겔 호수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었던 그녀는 무의식중에 성자를 그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영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수백 마리의 합성 괴물을 해치울 만큼 강력한 영혼 기사를 거느린, 전투 능력이 전혀 없는 영혼사.
조심은 해야겠지만 그저 그뿐인 남자. 자신도 모르는 심층 의식으로 그리 생각하던 미로=라드하는…….
콰과과광!!
하늘을 날며 부관과 함께 린덴 촌락을 덮친 재앙의 향후 대책을 의논하던 중 일어난 폭발에 얼이 빠져버렸다.
=…뭐야 저거. 투사체가 보이지 않는 폭발이라고? 어떻게 피하라는 거야?=
……쿠구구구궁……!!!
=여, 영창도 없이?!=
=……미로 님. 저 폭파 술법, 황술사의 7급 법술인 대지 분화와 위력이 흡사한데요…….=
=…….=
=…….=
두 번의 폭파 술법을 견식한 그녀의 머릿속은 물론 무의식 속에서도 성자를 얕보는 마음은 티끌만큼도 남지 않았다.
=미, 미로 님. 성자님이 깨신 거 같은 데 찾아가서 인사 올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얼른 가자.=
그렇게 환인의 앞에 착지한 미로=라드하와 그녀의 부관은 사단장 앞의 훈련병처럼 바짝 군기가 든 태도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유르파 영혼 기사님의 제보를 심각히 여기신 백중강 영주 대리께 파견 명령을 하달받은 하늘 기사단 원정부대 부대장, 미로 라드하입니다. 존귀하신 분을 이렇게 가까이서 영접할 기회를 얻게 되어 가문의 영광입니다.=
“반갑습니다. 환인입니다.”
=처음 도착했을 때 바로 인사를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몸이 편찮으셨다고 들었는데 괜찮으신지? 혹시 아직 불편하시다면 이것을…….=
미로=라드하가 두 손으로 공손히 내민 것은 부대장급에게만 매년 1병씩 지급되는 상급 활력 물약이었다.
상급 중에서도 최상의 품질로 한 병에 10금화나 하기에 함부로 쓰면 인사고과에 치명적인 빨간 글씨가 적히게 되는 비품이지만, 몸이 편찮은 성자님께 바쳤다고 한다면 치도곤이 아니라 치하가 내려오겠지.
환인도 그것을 읽었지만 영롱한 보라색의 물약을 도로 물리고 일어서라고 손짓하며 대답했다.
“이제는 괜찮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보다…….
신병처럼 뻣뻣한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날개의 여기사를 응시하던 환인은 손바닥 위에 띄워놓고 있던 영혼 화살을 거두고 질문을 던졌다.
“라드하 부대장께서는 이틀 전에 도착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 어, 촌락에 도착해 합성 괴물을 확인한 저는 날개가 빠른 부하를 차출해 인근의 촌락과 마을의 안위부터 먼저 살폈습니다.=
그 결과 동? 로아팅스 정글에 인접한 촌락 두 곳과 소규모의 마을 한 곳이 이곳 린덴 촌락처럼 폐허가 된 것을 발견했다.
큰 소란 없이, 천천히 잠식하다가 한 번에 들이닥쳐 사람을 모두 납치해버린 듯한 광경들.
상황의 심각함이 예상 이상임을 파악한 미로=라드하는 곧바로 프라버의 백중강에게 보고를 올리는 한편 부대의 황술사를 동원해 린덴 촌락 주변부터 지중?中 조사를 진행했고…….
=이 지역의 지하에 소도시 규모의 개미굴이 자리 잡은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프라버의 본대와 의논한 끝에 로아팅스 정글 출신의 융합형 곤충 타입 바르굴이 타락하여 정글 밖으로 나온 거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러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아, 아닙니다.=
환인은 자신이 도출해낸 결과와 조금 맞지 않는 점을 느꼈지만, 마저 확인을 위해 계속 질문을 던졌다.
=궁금증이 있는데, 몰살당한 두 촌락과 소규모 마을의 인구수는 몇 명 정도였습니까.”
=촌락 쪽은 확실치 않으나 두 곳을 합해 가구 수가 60이 채 넘지 않았으니 소형 마을을 포함하여 800명이지 않을까 합니다.=
“린덴 촌락까지 포함하면 대략 천 명 남짓한 숫자군요.”
=예. 성자님과 영혼 기사님들이 해치운 합성 괴물의 숫자와 비슷합니다.=
환인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읽은 미로=라드하는 성자의 판단력과 분석력이 어쩐지 자신 이상인 듯하여 부관과 함께 내놓은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성자님의 영혼 기사들이 일천에 가까운 괴물을 해치웠지만, 개미굴과 흡사한 장소의 특성상 더 많은 괴물이 지하에 도사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문제점은 저와 제2대는 주력 전장이 하늘이라는 겁니다. 기동력을 위주로 전력을 활용하는 부대이기에 땅속 전투를 치르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불이익을 감수해야 합니다.=
말하던 미로=라드하는 환인이 여기서도 보이는 개미굴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 것을 보고 따라가며 계속 말했다.
=솔직히 현 상황은 좋지 않은 편이라 지상전에 특화된 전력 충원을 요청할까 생각 중인데…….=
“세 곳 촌락과 작은 마을 한 곳, 그 인구와 비슷한 숫자의 괴물을 해치웠는데 라드하 부대장은 적이 더 있을 거라 단정하고 있군요.”
증원 요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질문하려던 미로=라드하는 환인의 질문에 어어, 하면서 대답했다.
=없다고 생각하고 진입했다가 예상 밖의 적을 만나면 위험할 뿐이잖습니까.=
주변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훤히 드러난 개미굴 입구에 도착하자 그곳을 병사 셋과 지키고 있던 조인족 기사가 미로=라드하를 향해 경례를 올린다.
“그런 가정도 중요하지만 좀 더 범위를 좁혀 나올 적에 대해 추론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자면…….”
환인은 미로=라드하가 해주었던 설명 중 몇 가지를 꼽았다.
“타락한 바르굴은 로아팅스 정글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습격해 납치했으며 괴물로 만들었습니다. 괴물로 변한 사람들은 2급에서 4급 이형종 사이의 강함을 지니고 있었으며, 그것들은 비 오는 날 밤에 우리 일행을 습격했습니다. 여기서 뭔가 느껴지시는 바가 없습니까.”
=어…… 으음…….=
미로=라드하는 고민하다가 부관을 돌아보곤 조심스럽게 환인에게 이야기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타락한 바르둘은 영악한데다 지능도 뛰어나니 부하들을 부려서 습격을 지시한 것은 당연할 텐데…….=
여기에 다른 이유가 더 있나?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미로=라드하에게 환인은 시커먼 어둠이 아가리를 벌린 듯한 개미굴 입구를 응시하며 나지막이 이야기해주었다.
“일단 타락한 바르굴이 생명체를 괴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한 놈이 로아팅스 정글에서 혼자 빠져나왔을까요. 정글에는 사람보다 강한 생물이 더 많을 텐데 말입니다.”
=……!=
“괴물이 된 사람도 평균 3급의 강함을 가지게 됐는데 정글에 서식하는 맹수를 괴물로 만들었다면 어떨까요. 맹수가 아니라 괴수나 마수를 괴물로 변모시켰다면 어떻게 될까요. ”
환인의 여자들, 미로=라드하와 그녀의 부관, 옆에서 엉겁결에 이야기를 듣게 된 기사와 병사들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진다.
=촌락이나 마을에도 직업자는 있었을 거야. 그러한 직업자들도 괴물로 변했다면…….=
안느의 중얼거림에 미로=라드하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일단 지금 상황부터 정리해보자면 타락한 바르굴은 그 특유의 지성과 영악한 머리로 이쪽을 경계하고 있겠지요. 이틀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는 것이 그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영혼 기사님들과 제 부하들이 사방에 깔려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일천의 괴물은 설마.=
“우리 일행이 해치운 괴물은 단순한 졸병인 거겠지요.”
=…….=
골치 아픈 듯이 가지런한 눈썹 위를 벅벅 문지른 미로=라드하는 환인에게 목례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본대에 연락해 증원을 요청해야겠습니다.=
펄럭, 까치의 까만 날개를 펼쳐 날아오른 부대장이 촌락 바깥에 마련된 주둔지로 빠르게 날아가고, 부관도 환인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 뒤 부대장을 뒤쫓아 사라졌다.
여자 친구들과 함께 흙집으로 돌아온 환인도 여자 친구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바르굴이 이제 슬슬 움직일 거라 생각하는 게 좋을 거다. 공격해오는 괴물이 있다면 이틀 전에 싸웠던 놈들보다 강하고 다양한 공격을 해올 수 있으니 각자 조심하고…….”
환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지도를 꺼내 주변 지리를 확인했다.
그 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습성도 아직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현재 위치는 서쪽과 북동쪽으로 로아팅스 정글이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초원과 구릉지대, 그리고 약간의 산악 지형이 나온다. 물론 촌락과 마을도 최소 일곱 군데 이상.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바르굴은 여기를 거점으로 세를 불려 나갈 생각이었겠지.’
촌락과 마을을 차례차례 집어삼켜 나갔다면 천이 아니라 만, 십만까지도 늘어날 수 있다.
그 정도가 되면 마을이 문제가 아니다. 바르굴의 지배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지만 몇만을 거느릴 수 있다면 도시가 쓸려나갈 수도 있는 일.
어떻게 보면 지금 바르굴의 존재를 알아낸 것이 프라버의 입장에서는 천운이라 할 수 있겠지.
이실리테와 유르파가 준비한 식사로 점심을 해결한 환인은 영혼 화살과 강령의 시험을 진행하기에 앞서 환연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나 왜 불렀어~?」
「네가 나더러 오라고 했냐?」
「부른 이유를 말해! 얼른!」
환연의 부름에 찾아온 풀, 빛, 바람, 땅, 물의 중급 정령들로 작은 흙집 안이 시끌시끌하다.
환인은 그런 정령들을 향해 물었다. 너희를 영혼 구슬로 만들어도 되겠냐고.
물론 대놓고 그리 말하지 않았다.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하니 나와 함께 짧게 여행하지 않겠나. 재미는 보장하겠다는 말로 구슬렸던 것.
하급 정령은 말이 안 통했기에 그냥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잡아다 구슬로 만들었지만, 정령사도 아닌데 대화가 가능한데다 복잡한 사고도 할 수 있는 중급 정령을 상대로 막 행동하는 것은 곤란하다.
비상에게 종일 들러붙어 있는 중급 바람 정령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등급이 높은 정령을 화나게 하는 것은 자연을 화나게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하는 만큼 싫어하는 행동은 해선 안 되며, 호불호를 알아내기 위해는 처음 만난 이 정령들의 반응이 가장 중요하다.
“재미없다면 풀어주지. 너희가 싫어할 일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어~ 나 이 인간 알아. 밑에 애들이 재밌어 죽겠다고 말하던 그 인간이야.~.」
「아. 이 잉간이 그 잉간이엇서?」
「확실히 다른 놈들보다 신기하게 생기긴 했네.」
살짝 처진 눈매가 순해 보이는 물의 정령이 꺼낸 이야기에 별로 관심 없다는 투의 정령들도 살짝 호기심을 드러낸다.
「재밌겠네~. 난 좋아~.」
“고맙다.”
환인은 가장 먼저 동의를 표시한 물의 정령을 손바닥 위에 올리고 미리 갈아놓은 물의 정령석 가루를 그 작은 머리에 살짝 뿌려주었다.
“이건 네가 가장 처음, 그리고 먼저 나서주어서 내가 주는 선물이다.”
「꺄~. 하으~.」
그러자 두 손으로 머리를 가리고는 맛있는 음식을 먹은 소녀처럼 몸을 살짝 떠는 물의 정령.
그 몸짓에 신선한 물 내음이 주변으로 확 퍼져나간다.
「어! 야, 잉간! 나두 할래! 나두 가루 뿌려져!」
「나도! 나도나도!」
“물의 정령이 가장 먼저 다가와서 특별히 뿌려준 거였다만.”
자신의 팔에 매달리는 여섯 정령에게 환인은 부드럽게 웃으며 달랬지만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한테는 안 뿌려줘?」
“……원래대로라면 뿌려주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환인은 너희가 자신에게 다가온 첫 중급 정령들이며, 이 기념비적인 순간을 축하하기 위해 특별히 뿌려주는 거라고 하자 정령들 대부분이 ‘처음’, ‘특별히’, ‘축하’ 라는 단어에 좋아하면서 기쁨을 드러냈다.
자신들의 속성에 맞는 가루를 맞으며 기뻐하고 좋아하는 정령들을 바라보는 환인의 눈이 작게 빛난다.
‘중급 정령은 정신 연령이 중학교 1학년 정도인가.’
대여섯 살 정도였던 하급 정령에 비하면 어른스럽다고 할 수 있지만, 환인이 보기에는 그래봤자 애들.
정령석이 주는 여운을 만끽하길 기다려준 환인은 일곱의 정령을 모두 영혼 구슬로 만들어 손에 쥐었다.
모양은 하급 정령 구슬보다 조금 더 큰 정도. 어차피 손에 쥐고 다룰 일은 거의 없는 영혼 구슬이니 문제 될 것은 없다.
중급 정령 구슬을 한 손으로 핸들링하자 구슬 속에서 즐거워하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온다.
‘호불호는 하급 정령과 흡사한가. 다들 좋아하는 걸 확인했으니 다음부터는 정령 구슬로 곧장 만들어도 되겠군.’
영혼 구슬의 유지 시간은 이제 192시간, 8일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중급 정령은 눈에 잘 띄지 않으니 한동안은 강령용으로만 써야 할 것이다.
환인은 중급 정령으로 만든 영혼 구슬을 잠시 바라보다가 후우, 몸에 적당히 힘을 뺐다.
같은 강령이라도 배수가 사람의 영혼, 짐승이나 괴물의 영혼, 정령이 제각기 다르다.
여기서 사람의 영혼은 강령에 조건도 있고 문제점도 있으니 제외. 강령 시 부담은 같은 등급이더라도 정령 강령이 영혼 강령보다 심하다.
하급 정령 강령은 신체 능력을 2배가량 증가시켜준다면 하급 영혼 강령은 1.5배 정도이니까.
처음에는 하급 정령 강령(x2배)도 겨우 버티던 환인이었지만, 이제는 폭군룡의 미궁에서 6급 이형종… 영혼 등급으로 따졌을 때 중상급(x2.5배)인 영혼을 줄기차게 강령하며 영혼을 단련했던 환인이다.
그리고 지금, 중급 정령의 짐작 강령 효과는 3배.
적당히 긴장감을 더하고 뺀 환인은 중급 정령을 자신의 몸에 강령시켰다.
원래대로라면 강령시킨 순간부터 심장 박동이 거세지며 신체 능력이 크게 상승하고 신체에 가해지는 부하도 높아진다.
“……?”
하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하급 정령을 강령했을 때보다 더욱 평온하다.
심장 박동도 평소와 다를 바가 없어서 뭔가 잘못된 건가 싶었지만, 안느의 무기인 천벌의 망치를 건네받자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있었다.
=헐. 내 망치는 22.3kg짜린데. 무게 중심도 망치 머리에 쏠려있고…….=
=주인님, 힘이 굉장히 세지셨네요.=
그런 천벌의 망치를 환인은 손잡이를 잡은 채 들어 올리고 있었다.
20kg을 넘기는 초대형 해머를 일반인이 한 손으로 억지로 들려다간 근육이 파열될 수도 있다. 하지만 환인은 조금 팔뚝이 뻐근할 뿐.
하지만 드는 것뿐이다. 휘두르는 건 불가능하다.
“중급 정령은 예상대로 3배 정도 신체 능력을 올려주는 거 같군.”
망치를 돌려주고 안느와 대련을 진행하자 강령 효과가 어떻게 변했는지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었다.
“힘만 세졌을 뿐이다. 네가 위상력을 운용하기 시작하면 맥없이 밀리겠지.”
그렇다 해도 중급 강령에 그리모암의 혁대, 신체 강화의 목걸이를 전부 사용할 경우 그녀와 힘겨루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안느의 근력은 동급 중에서는 최고라고 할 수 있으니 다른 직업자들에도 통한다는 뜻이고, 적의 공격을 무조건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닌 받아 흘리는 방식도 쓸 수 있다는 뜻이니까.
방어에 있어 또 다른 길이 열렸다는 사실에 조금이지만 만족한 환인은 다음 확인 절차에 들어갔다.
“힘을 강하게 쓸수록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신체 능력이 높아진다. 최대 4배까지 증가하는 거 같은데.”
=그럼 힘을 안 쓰면 체력이 비축된다는 거네요.=
옆에서 구경하던 이실리테의 이야기에 환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는 힘을 쓰든 쓰지 않든 심장 박동이 영혼 구슬의 등급에 따라 10~50%까지 빨라져 체력과 기력 소모가 고정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힘을 쓰지 않으면 체력을 비축할 수 있다.
이게 중급 정령을 강령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능력이 성장해서인지 알 수 없었던 환인은 몸에 강령한 중급 정령을 풀어준 뒤 하급 정령을 강령해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강령 자체가 변한 거였군.”
그 뒤에는 이실리테와 안느를 불러 문양의 힘을 불어넣은 중급 정령 강령을 펼쳐주려 했다.
중급 정령 구슬에 문양의 힘을 5%, 본격적으로 효과가 나는 최소한도치인 5%를 주입하자 한쪽 구슬은 금빛과 푸른빛이 영롱하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고 다른 구슬은 금빛과 갈색빛이 소용돌이친다.
그걸 각각 이실리테와 안느에게 부여해준 환인은 각자 푸른색과 갈색빛에 뒤덮인 그녀들에게 물었다.
“어떻지.”
=확실히 바뀐 쪽이 더 편해. 힘을 끌어내는 것도 간단하고 쉽고 몸에 부담도 덜하고.=
=프라버에서 하급 정령 구슬에 문양의 힘을 넣었을 때는 2.3배 정도 신체 능력이 증가했었는데…… 이번에는 3.9배 정도인 거 같아요.=
=상급 정령으로 강령을 하면 5.2배로 늘어나나?=
=그렇지 않을까?=
“몸 상태는 어떻지. 몸에 과부하가 걸린다거나 영혼이 팽창되는 것 같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나.”
=……하급을 강령 받았을 때처럼 물의 공격에 대한 저항만 높아진 거 같아요. 몸이 불편하다거나 거슬리는 점은 없어요.=
=나도 그래.=
환인은 서로 몸 상태에 관해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밖으로 나가 대련을 시작하는 여자 친구들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기존의 능력은 확실하게 성장했지만, 추가적인 능력은 발현되지 않았다.’
단순하게 능력만 성장한 건가? 그렇다면 자신이 본 그 거대한 눈과 행성, 우주수는 대체 뭐였을까.
아니, 자신의 영혼술은 전부 찾아내고 밝혀낸 능력이다. 아직 자신이 새로운 능력을 찾아내지 못했을 가능성도…….
생각을 이어가던 환인은 유르파의 어깨 위에 앉아 이실리테와 안느의 대련을 구경하던 환연의 허리가 흠칫, 곧추세워지는 것을 포착했다.
「환인! 적이야! 개미굴에서 적이 기어 나오고 있어!」
“적의 위치와 숫자는?”
「아직 땅속인데 막 사방으로 퍼지고 있어! 어디로 나올지 몰라!」
“나름대로 신중을 기울였나.”
하지만 그 신중이 오히려 악수가 되었다.
환인이 쓰러져있던 이틀 사이에 움직였다면 바르굴의 승리가 확실했을 텐데 이틀이라는 시간을 준 것이 오히려 이쪽을 강하게 만든 것이다.
하늘 기사들도 적의 움직임을 감지했는지 퍼드득,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것을 보며 환인은 여자 친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유르파도 비행 빗자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십시오. 백려강과 환연도 뒤따라가라. 이실리테와 안느는 나를 따르도록.”
삐익, 손가락 휘파람을 불어 하늘에서 놀고 있던 비상을 부른 환인은 전투 준비 만반인 이실리테와 안느를 데리고 미로=라드하가 있는 주둔지를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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