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410화 (410/813)

〈 410화 〉 404+ 재각성

* * *

=후­웃…….=

=후으으…….=

=읏… 하응.=

1시간 뒤.

안느는 불길한 예감이 현실로 이루어졌음을 느꼈다.

뱃속 깊이 들어와 있는 그의 물건이 쉴 새 없이 자궁 입구를 문질거리고 쿡쿡 찌르는 감각.

포르치오가 강제로 개발 당하는 느낌.

그가 이대로 허리를 움직여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익히 알고 있는 그 쾌감이 밀어닥쳐 정신이 나갈 정도로 기분 좋아질 텐데.

목과 이마에 땀이 맺힐 만큼 몸이 뜨거워진 안느는 애타는 마음에 엉덩이를 그의 하복부에 꾹꾹 누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조그만 움직임에 자궁이 압박당하자 자궁 입구에서 시작된 잔잔한 쾌감의 파도가 또 몸 전체로 퍼져나간다.

=흣……! 후읍…! 하아……!=

발가락이 절로 오그라드는 감각의 홍수에 안느는 턱을 한껏 치켜들고 허리를 바르르 떨며 애써 억누른 한숨을 토해냈다.

환인은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른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땀에 흠뻑 젖은 그녀의 체취를 한껏 들이마셨다.

불쾌한 냄새라곤 1mL도 나지 않는 청량하고 맑은 수목의 향기.

사이사이 느껴지는 약간 달콤한 수액의 냄새.

목에 맺힌 땀을 혀끝으로 할짝 핥으니 가글과 비슷한 상쾌한 맛과 감각이 입안에 퍼져나간다.

목을 핥아진 그녀의 어깨가 움츠러들고 허리가 잘게 떨리며 보지가 문어 빨판처럼 눅진하게 들러붙는다.

“괜찮나.”

=으~……. 정신나갈것같애…….=

그냥 그의 위에 올라타서 마음껏 허리를 흔들어 쾌감의 격류에 빠져들고 싶다.

정신을 놓고 그의 입술을 탐하면서 클리토리스가 뭉개질 만큼 그의 배에 딱 붙이고 앞뒤로 마구 움직이고 싶다.

그런 그녀의 욕망을 억누르는 것은 마음속으로 남편이라 생각하는 환인의 안위였다.

직업 등급 상승 현상. 그게 흔하다는 것은 그만큼 덜 위험하다는 뜻이다. 반대로 희귀하고 특이하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

알려지지 않은 등급 상승 특이 현상은 성장의 폭이 높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도 동반된다.

운이 없으면 등급 상승 시에 변화하는 몸 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폐인이 되거나 죽기도 한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큰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은 환인에 대한 믿음 덕분이었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과대포장하지도, 과소포장하지도 않는다. 어디까지나 사실에 기반해 가능성이 가장 큰 결과만을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에 따른 결말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

그가 괜찮다면 괜찮은 것이고 그가 필요하다면 필요한 거다.

아직 움직이는 것은 무리라고 그가 말했으니 섹스는 안된다.

안느는 욕망에 지고 싶지 않아 배 속에서 용암처럼 끓어 오르는듯한 성욕을 땀을 뻘뻘 흘리며 억눌렀다.

환인은 그런 기색이 훤히 보이는 안느를 뒤에서 안고 자신의 신체 내부 변화를 가늠했다.

‘……조금 부족한 듯한데.’

훈기와 한기의 세맥이 확장되는 느낌은 몸 안이 잔불처럼 타오르고 살얼음이 맺히는 고통이었고, 그러한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는 온천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뜨겁고 시원한 쾌감이 남았다.

그리고 5시간이 넘은 현재 타오르고 얼음 맺히는 그 감각은 몸 대부분을 지나 어깨와 허벅지 아래로, 목 위로 가려 하는 중이다.

핏빛 위상석의 재생 효과 덕분에 혈관과 세맥에 가해진 데미지는 그리 크지 않다. 이제 팔다리와 머리 쪽만 확장이 끝나면 등급 상승은 마무리되겠지.

하지만 훈기가 조금 부족하다.

안느가 보유한 영기는 일반 직업자의 수십 배. 이실리테와 비교하면 그녀보다 21배가량 더 많으며 영기의 회복량 또한 몇 배를 상회한다.

영기의 총량이 많은 만큼 성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영기의 양 또한 몇 배나 많다.

그래서 그녀의 영기를 흡수하며 세맥의 확장에 쏟아부었고 덕분에 원래대로라면 40%가량 부족했을 훈기의 양을 대부분 확보할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대부분이라는 거지 전부가 아니다.

거기다 1시간 동안 그녀의 영기를 받아들인 탓에 그녀에게 얻을 수 있는 하루치 영기를 모두 흡수한 상태.

‘나머지는 이실리테에게 부탁해야겠군.’

환인은 자신의 자지에 찔린 채 땀을 흘리며 살짝살짝 몸을 떠는 안느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1시간 넘게 자지에 박혀있어서일까. 해소되지 않는 성욕에 소리 없이 아우성을 지르는 모습이다.

이대로 끝낸다면 안느는 성감에 절여진 보지 때문에 몇 시간은 힘들어하겠지.

부스럭, 하반신 위치를 살짝 고친 환인은 그간의 성관계로 자신의 자지 모양에 딱 맞게 변해버린 안느의 보지를 느끼다가.

=읍……!=

골반이 안느의 엉덩이에 바짝 붙을 정도로 자지를 뿌리까지 그녀의 보지에 밀어 넣었다.

귀두 끝에 자궁이 걸려 쭈욱 밀려 올라가는 감각이 전해지고, 배에 힘이 들어갔는지 자지가 보지를 조이다 못해 물어대는 느낌이 이어서 전해졌다.

그 감각을 느끼며 환인은 잠깐 딴생각을 했다.

플뢰는 호리호리하고 가녀린 체격에 걸맞은 좁고 짧은 보지를 가지고 있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남자 손가락을 네 개 이상 받아들이려다간 찢어질 수도 있는 정도.

안느는 그런 평범한 플뢰보다 머리가 1.5개는 더 크기에 그만큼 보지도 좀 더 길고 넓지만, 오이고추라고 해서 오이가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루크랑 족 평범한 여성과 비교하면 덜 여문 소녀나 다름없는 보지다.

그나마 자신과 오래 성관계를 맺어왔기에 보지가 자신의 자지에 맞게 변했지만, 아마 몇 주 정도 성관계를 멈추면 근접 직업자 특유의 신체 회복 능력으로 예전처럼 돌아가 버리겠지.

그런 보지가 거친 호흡에 맞춰 움찔거리고 두근두근 맥박치는 것을 느끼던 환인은 손을 내려 그녀의 클리토리스를 집게처럼 꽉 잡았다.

=꺄읏……! …으으읏……!=

집게손가락으로 집고 있을수록 안느의 떨림이 점차 강해진다.

환인은 그녀의 감각을 읽다가 잡힌 클리에 고통이 발생할 때 즈음 놓아주고 검지와 중지로 상냥하게 문질러주었다.

=하악! 하으…! 흐으……!=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무릎이 세워지며 새우처럼 몸이 굽어진다.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면 두 다리가 배배 꼬이며 발가락이 바짝 일어선다.

클리토리스에서 올라오는 고통이 가라앉은 것을 읽은 환인은 그녀가 좀 더 강한 자극을 바라는 것을 간파하고 손톱으로 작은 콩알 같은 클리를 꾹꾹 짓눌렀다.

=헤으윽……! 흐으엑…!=

신기할 정도로 자신의 몸을 잘 아는 손놀림에 안느는 오르가슴 홍수의 수위가 빠르게 상승하는 것을 느꼈다.

줄곧 삽입되어있은 덕분에 이제는 자신의 몸 일부 같던 그의 자지가 새삼 도드라지게 느껴지고, 자신의 클리를 학대하는 환인의 손길에 쾌감이 거침없이 쌓여간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아랫배, 명치, 심장, 머리에서 차례대로 오르가슴의 폭탄이 터졌다.

=~~!! ……!!!=

새우처럼 굽어졌던 몸이 활처럼 휜다. 삽입이 풀리지 않도록 누르고 있던 아랫배가 톡톡 튀듯 경련을 일으킨다.

숨도 쉬지 못하는 절정 쾌감에 뻣뻣하게 굳어있기를 얼마간, 힘이 바짝 들어가 있던 몸이 축 늘어지는 것을 느낀 환인은 조금 짓궂게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제야 보지가 자지를 놓아주는군. 만족한 건가.”

=…으으. 몰라아…….=

“가고 싶다고 보지가 계속 애원하던데도 모른다는 건가.”

=도령 진짜 심술쟁이야…….=

두 손으로 빨개진 얼굴을 가리는 안느지만, 그녀의 길고 뾰족한 귀는 절대 감출 수 없을 만큼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환인은 작게 웃다가 어둠 속에서도 하얀 그녀의 볼기짝을 찰싹, 때려주며 말했다.

“아쉽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해라. 몸이 회복되면 루크랑처럼 울부짖을 때까지 박아줄 테니까.”

=으응…….=

“2시간 정도 지났으니 나가서 이실리테와 교대하고. 그녀에게 들어오라고 전해주면 좋겠군.”

쭈르릅­ 보지에서 그의 자지가 빠져나가는 느낌에 허리를 살짝 떤 안느는 그의 밑으로 내려가 자신의 애액으로 칠갑이 되어있는 그의 자지를 정성스레 빨아주며 물었다.

=우움. ……츠릅, 아직 영기가 부족해?=

“그래. 하지만 이실리테의 영기까지 받아들이면 충분하다.”

=하음. 우므……. 알았어.=

쪼옥, 츄읍. 핥아서 그의 자지를 깨끗하게 만들어준 안느는 손수건으로 흥건하게 젖은 보지를 닦다가 애액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곤 그냥 팬티 밑에 손수건을 깔고 그대로 끌어올렸다.

그의 정액을 아랫입과 윗입, 어느 쪽으로도 받지 못해서 아쉽지만…….

‘나중에 실컷 해준다고 했으니까.’

그때를 기대하며 안느는 뺨에, 목에 달라붙은 젖은 머리카락을 정돈하며 이실리테와 환연, 백려강이 불침번을 서고 있는 곳으로 걸었다.

불침번을 안느와 교대하고 들어온 이실리테는 환인의 이야기를 듣고 부끄러워하면서도 망설임 없이 바지와 팬티를 벗은 뒤 곱게 개어놓은 다음 환인에게 붙었다.

=주인님. 2시간 동안 옆으로 누워계셨는데…… 이번에도 옆으로 하면 팔이 아프지 않을까요?=

“안느에게 부탁했을 때는 왼쪽으로 누웠으니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누우면 되겠지.”

=저…… 엎드려도 괜찮으시면 제가 밑으로 내려가도 돼요.=

그녀는 안느와 맞먹는 근력 강화 쪽 근접 직업자이기도 하고 신체 내구, 압박에 대한 내성 또한 높은 직업자다.

환인의 몸무게 정도는 이불 한 장과 비슷한 무게로밖에 느껴지지 않겠지.

하지만 H컵이나 되는 큰 가슴은 그녀의 위에 엎드릴 수 없게 만든다.

“엎드리면 네 큰 가슴 때문에 오히려 더 불편할 거 같다만.”

환인의 지적에 뒤늦게 그 사실을 눈치챈 이실리테는 창피한 듯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얼굴이 붉어진 이실리테를 보며 소리 없이 웃은 환인은 그녀를 마주 안고 포근한 살결 냄새를 맡았다.

숲속을 연상시키는 안느의 체취와 전혀 다른, 어쩐지 어머니가 생각나는 안락하고 따스한 냄새.

그사이 자신의 셔츠 앞섬을 크게 밀어내고 있는 큰 가슴을 바라보던 이실리테는 ‘그렇다면.’ 하는 얼굴로 환인을 똑바로 눕힌 뒤 개구리처럼 그의 위에 올라갔다.

=이러면 괜찮죠?=

자신에게 무게를 주지 않기 위해 무릎과 팔꿈치로 체중을 지탱하는 이실리테.

그 덕에 환인의 흉부에 젖가슴이 살짝 닿았지만, 이 정도는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문제라면 뒤에서 봤을 때 이실리테가 조금 추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

개구리처럼 활짝 벌린 허벅지 사이로 보지와 항문이 훤히 드러나는 자세니까.

하지만 환인의 눈에 보이지 않고, 자신의 창피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이실리테는 환인의 못 말리겠다는 부드러운 미소에 배시시 웃고 손을 밑으로 내려 그의 자지를 구멍에 맞추었다.

자신의 부끄러운 구멍에 닿는 작은 주인님의 머리. 이실리테는 힘을 줘서 허리를 내렸고, 이미 애액이 적당히 흘러나온 이실리테의 보지는 걸리는 것 없이 환인의 자지를 단숨에 뿌리까지 삼켰다.

아직 작은 주인님이 자궁에 닿지 않는 것을 느끼곤 위치를 조금 아래로 옮기자 골반이 벌어지는 것 같은 착각과 함께 굵은 살기둥이 더욱 깊게 들어온다.

이실리테는 그의 얼굴에 숨을 토해내지 않으려 고개를 앞으로 들고 떨리는 숨결을 내뱉었다.

환인은 끙, 아주 희미하게 앓는 소리에 후 웃으며 말했다.

“힘들어 보이는데 그냥 옆으로 하는 게 좋지 않겠나.”

=괜…찮아요.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으니까요.=

섹스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주인님의 작은 주인님을 받아들인 채 있는 것뿐인데.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며 웃어 보였던 이실리테는 20분도 지나지 않아 후회하기 시작했다.

‘안돼안돼안돼. 또 땀이…… 앗.’

그저 작은 주인님을 받아들인 채 있는 것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착각이었다.

길고 흉악한 작은 주인님에게서 느껴지는 맥박, 그리고 보지가 타버릴 것처럼 뜨거운 체온. 거기에 더해 특유의 딱딱한 그것이 때때로 움찔거리며 자궁을 찌른다.

이것만으로도 성감이 점차 고조되어 젖꼭지가, 음핵이 딱딱해지는 기분인데…….

주륵—

‘아, 안돼……!’

또 땀 한 방울이 H컵의 풍만한 가슴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렇게 흘러내린 땀방울은 브래지어를 적셨고 이제는 셔츠에까지 스며들고 있다.

이대로라면 주인님의 셔츠에 자신의 가슴 자국을 남길 판.

그뿐만 아니다. 턱에 맺힌 땀도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중이다.

톡.

움직이면 기척 때문에 환인에게 방해가 될까봐 고개를 살짝 틀어서 갸름한 턱에 맺힌 땀이 양탄자에 떨어지도록 한 이실리테는 20분 전의 자신을 바보 멍청이라고 욕했다.

‘그냥 주인님이 하자는 대로 할걸……!’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작은 주인님이 자신의 보지를 가득 채운 상태라서 애액이 흘러내리지 않는다는 걸까.

‘하지만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어……!’

보지에 힘을 꽉 주면 몸이 덜덜 떨릴 만큼 기분이 좋아져서 틈새로 애액이 흘러내릴 것이다. 그렇다고 보지를 너무 헐렁하게 해도 틈이 생기며 애액이 주인님의 기둥을 타고 흐르겠지.

힘을 빼는 쪽은 그 외에 다른 문제가 있는 게, 주인님이 자신의 보지가 헐렁해졌다고 생각할까 무섭다는 것.

‘으으으, 어떡해. 아아…….’

미동도 하지 않고 눈만 질끈 감은 채 빨리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던 이실리테는 후­ 귓가를 스치는 웃음소리에 눈을 떴고, 직후 허리를 와락 끌어당겨지며 환인의 위에 엎어지게 되었다.

=햐흣. 주, 주인님?=

“고생 많았다.”

……끝난 거야?!

자신의 허리를 감은 팔에서 힘이 풀리는 것을 느낀 이실리테는 호다닥 환인에게서 떨어져 소매로 재빨리 턱이며 목, 이마의 땀을 훔쳤다.

주인님 앞에서 못난 꼴을 보여드릴 수는……!

=……?!=

그때 등골에 고여있던 땀이 흘러내려 엉덩이골을 지나 항문에 맺히는 감각에 놀란 이실리테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허벅지를 조여 자신의 치태를 가리려 하다가.

=……!=

환인이 양반다리를 하고 눈을 감은 모습에 암살자처럼 팬티와 바지를 챙겨서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엥? 뭐야, 뭔데 치녀처럼 뛰쳐나오는 건데?=

「……??」

천벌의 망치와 성벽의 방패, 구세의 빛까지 챙겨입고 백려강과 불침번을 서던 안느는 갑자기 하반신 알몸으로 튀어나오는 이실리테를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으으. 아무것도 아냐.=

보름달처럼 뽀얀 엉덩이를 드러낸 채 아랫입으로 물을 질질 흘리면서 황급히 팬티를 입는 모습은 어떻게 봐도 안에서 뭔가 일이 생긴 모습이다.

「아, 아무 일도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요……?」

팬티를 다 입고 바지에 다리를 집어넣던 이실리테는 백려강의 이야기에 이에 대한 설명 대신 환인의 등급 상승 현상이 끝난 것 같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온 거예요. 주인님한테 방해될까 봐.=

=흐~응. 그런 거치곤 옷이 땀에 젖은 흔적이 묘하게 의미심장한데?=

주제 돌리기도 안 통하다니……!

자초지종을 눈치챈 듯 개구쟁이 악동처럼 웃는 안느를 보며 이건 놀림감 3일짜리라고 속으로 중얼거린 이실리테는 안느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면서 바지를 챙겨입었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환인은 마지막으로 열기와 냉기가 머리 위로 올라오는 것을 받아들이는 중이었다.

영기의 세맥이 몸통 전체를 확장했을 때부터는 통증이 비약적으로 줄었다. 손과 발의 차례가 되었을 때는 지압을 받는 것처럼 시원한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그러는 사이에도 목 위쪽은 세맥의 확장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는데, 팔다리까지 확장이 끝나자 훈기와 한기는 척추를 따라 이어진 줄기로 돌아와 대하처럼 흐르더니 머리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마치 마지막 작업을 위해 잠시 휴식한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목 부분에서 열기와 냉기가 함께 뭉치는 것을 느낀 환인은 본능적으로 이 머리 부분이 마지막이자 하이라이트라고 직감했다.

대체 어떤 능력이 생기려고 이렇게 호들갑스럽게 성장이 이루어지는 걸까.

보통 직업 등급의 성장은 아무리 오래 걸려도 5분을 넘기지 않았다고 했었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6시간을 지나 7시간에 이르고 있다.

세맥이 넓어지고 몸 전체를 뒤덮었으니 영혼술의 효과가 대폭 늘어날 것은 확정인데…….

‘이실리테처럼 재각성이라도 하는 건가.’

하지만 자신은 저 멀리 북쪽의 이블 팩션들이 각성한다는 직업과 영혼사의 혼재 직업인데. 그것 때문에 등급이 상승이 이렇게 오래 걸리나.

생각을 이어가며 세맥의 확장이 인중까지 도달했을 때 극통까지 염두에 두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그다지 아프지는 않군.’

생각보다 별로 아프지 않았다.

고통이 느껴지긴 한다. 하지만 처음의 그 척추를 조각조각 내고 불 지르고 얼리는듯한 고통에 비하면 별것 아니라고 할까.

그렇게 열기와 냉기의 통과 지점이 코를 지나 시신경까지 올라왔을 때.

화악—

환인은 별안간 눈앞의 풍경이 바뀌는 것을 느꼈다.

아니. 눈을 감고 있었는데 풍경이 바뀌어?

눈을 감고 떠봤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이 변화하진 않는다.

환상인가? 아니면 착란?

풍경은 평범하지 않았다.

땅에는 이름 모를 다양한 하얀 꽃이 지평선까지 뒤덮여있는 데다 광활한 하늘은 마치 우주를 그대로 떼어다 붙여놓은 느낌…… 아니, 지구 밖에서 우주를 보는듯한 느낌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환인은 지평선에서 거대하고 푸른 행성이 천천히 올라오는 것을 목격했다.

온몸에 소름이 퍼져 가라앉지 않을 정도의 충격.

이어서 푸른 행성과 지평선 사이에 하얗게 빛나는 거대한 나무가 솟아나듯 나타난다.

뭐라고 할까.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고도…… 신비로운 나무. 아니 거목…….

세계를 떠받친다고 해서 세계수라고 부르는 나무가 실존한다면 그게 저 나무가 아닐까 싶은… 경외심까지 드는 나무.

한동안 충격에 흐트러진 정신을 가다듬던 환인은 이곳이 대체 어디인지 격심한 궁금증에 사로잡혔다.

지평선에서 솟아오른 푸른 행성은 어느덧 하얗고 거대한 나무 위에 도달한 상태.

지구인가 했지만 대륙의 형태가 전혀 다르다.

설마 니오네브레스? 굴곡면 때문에 대륙 전체가 보이지 않지만 드러난 일부를 보자면 니오네브레스…….

‘아니, 판게아……인가.’

오대양 육대륙이 생겨나기 이전, 모든 육지가 하나로 붙어있던 시절의 대륙. 조금 다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흡사한 면이 많다.

만약 저 대륙이 니오네브레스고, 정말 로라시아와 곤드와나로 나뉘기 전의 판게아라면…….

『……….』

‘……!!’

그 순간 환인은 심장에서 정수리까지 치닫는 정체불명의 감각에 흠칫 어깨를 떨었다.

그것은 우연이 겹친 기적이라 해도 무방한 것이었다.

만약 환인이 평범한 사고를 지닌 사람이었다면 정신이 붕괴하였을 것이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었다면 이 장소에 오지도 못했을 터이니.

관절이 녹슨 기계처럼 삐걱거리는 걸 느끼며 끼기긱, 고개를 젖힌 환인은 숨이 멎을듯한 충격에 사로잡혔다.

하늘, 하얀 별이 은하수처럼 깔린 새카만 공간에 블랙홀 같은 홍채의 거대한 눈이, 푸른 행성보다 더 거대한 눈이 공간에 깨진 듯한 금을 만들어내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

벌어진 눈동자에서 은하수를 압축한 듯한 무언가가 흘러내린다.

『¹®ÀÚ ±úÁü Å×½ºÆ®.』

찡—

‘큭!!’

머리가, 뇌가 쪼개지는 듯한 격통에 환인은 자신도 모르게 문양의 힘을 최대한도로 끌어올려 영혼 시야를 펼쳤다.

환인의 눈에서 우주의 폭발 같은 황금빛이 퍼져나가고 통증이 가라앉는다.

『$죐3흭E 뛿?V뗲P돲?』

‘끄으윽……!’

그랬더니 이번에는 머릿속에 해석할 수 없는 언어가 지나가며 귀가, 눈이, 머리가 하얗게 달아올랐다.

=아, 도령 눈 떴다.=

=주인님, 일어나셨어요?=

「이 시간까지 자다니. 등급 성장이 어지간히 힘들었나보네.」

“…….”

밝고 환한 여자친구들의 얼굴.

고개를 돌리자 흙집의 창문 밖으로 먹구름과 푸른색이 양분하고 있는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후.”

작게 웃은 환인은 눈을 감고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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