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409화 (409/813)

〈 409화 〉 403 린덴 촌락

* * *

깊은 한숨과 빡침이라 하였지만, 그것은 그의 여자들이 느끼는 감상일 뿐.

사실을 말하자면 환인은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마차는 일행에게 이동 중 잠자리와 휴식 장소 등 편안한 공간을 제공해주었지만, 그에게 마차가 있어 좋은 점은 조금 편한 잠자리 정도.

밤하늘을 이불 삼아 노숙하는 것도 거부감 없고 평상시 이동은 비상을 타고 하니 환인에게 마차의 존재는 있으나 마나였던 것이다.

그 때문에 마차가 부서졌어도 별로 화나지 않은 그였지만, 그러한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

=…….=

안느는 애착을 두고 있던 마차가 부서져 진심으로 상심했고, 이실리테와 유르파는 안느만큼은 아니지만 그동안 잘 타고 다녔던 최고급 마차가 맥없이 부서져 꽤 시무룩해졌기 때문.

우울한 얼굴로 여분의 수리 부품을 가지고 부서진 마차를 고칠 수 없을까 힘 빠진 모습으로 살피는 안느.

마차가 박살 나며 아공간 보관함 기능도 망가져 밖으로 쏟아진 짐을 비 맞으며 주섬주섬 챙기는 이실리테와 유르파.

홀딱 젖은 데다 수백 마리의 괴물과 싸우느라 지저분해진 몰골로 그러고 있으니 난민처럼 처량해 보인다.

=……씨잉.=

뺨을 실룩거리다 급기야 입술을 삐죽이며 눈물을 글썽이는 안느의 모습에 같이 짐을 나무 밑으로 옮기고 있던 환인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 뺨을 보듬어주었다.

“울지마라. 우리 마차를 부순 대가는 반드시 돌려받을 테니.”

=응…….=

여자친구들을 도와 나머지 짐을 전부 나무 밑으로 옮긴 환인은 후, 짧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일단 오늘 떠나는 건 무리겠군. 환연, 땅의 정령으로 흙집을 만들어다오. 유르파는 흙집이 완성되면 옷을 갈아입고 몸을 말리십시오. 그렇게 있다가 감기 들겠습니다.”

=으응.=

환연의 늘어난 심미안과 주거 구조, 그리고 정령의 힘으로 20평 넓이의 단칸 흙집은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움막 같은 흙집이 아니라 흙과 자갈을 섞어 만든 사각형의 제대로 된 집.

단차를 주어서 생활 공간인 흙마루와 부엌을 구분한데다 아궁이까지 있는 흙집을 확인한 환인은 환연을 칭찬한 뒤 쿠에들을 흙집 안으로 들였다.

“들어와라.”

쿠우~

쿠에.

쿠쿠.

비상과 나머지 셋을 10평가량 되는 부엌 한쪽에 몰아놓은 환인은 기운 없는 여자친구들을 대신해 장작을 모아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아궁이에서 흘러나온 따스한 열기가 퍼져나가며 흙집 안쪽이 금방 훈훈해진다.

쿠엣, 큐삣.

깃털을 닦아달라고 칭얼거리는 비상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환인은 홀딱 젖은 채 흙마루 가장자리에 멍하니 앉아있는 유르파의 눈앞에 손가락을 몇 차례 튕겼다.

“괜찮습니까.”

=아? 앗, 미안.=

“…….”

정신을 딴 데 두고 있는 듯한 반응과 살짝 풀린 초점.

환인은 유르파를 바라보다가 마루 위로 올려보낸 뒤 직접 그녀의 옷을 벗겼다.

=꺅! 자, 자기? 앗.=

깜짝 놀라 주춤거리면서도 환인의 손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속옷까지 벗겨진 유르파는 알몸으로 당황과 부끄럼을 동시에 내비쳤다.

이, 이렇게 개방된 곳에서 날 안으려고……?

환인은 그런 유르파를 안는 대신 이리저리 돌려가며 몸 곳곳을 살폈다.

중력에 의해 보기 좋게 늘어진 한 쌍의 젖무덤, 체력단련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말랑말랑한 배와 찹쌀떡처럼 말랑말랑한 엉덩이, 통통한 허벅지의 안쪽까지.

그 후 허벅지는 오므리고 두 손은 가슴과 밑을 가리며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유르파의 이마에 손을 올려본 환인은 바스 타월을 가져와 그녀의 몸에 둘러주었다.

권속화한 괴물들을 보면 상처 감염 방식일 가능성도 외면할 수 없다.

그래서 벗겨 상처 여부를 확인한 건데, 다행히 상처는 없었다.

‘수일간 강행군에 오래 비를 맞으며 싸운데다 마차까지 부서져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몸도 마음도 약해졌으니 감기가 찾아온 거겠지.’

이런 가벼운 감기는 성술로 치료하기보단 자연스럽게 회복하는 게 더 좋다는 안느의 주장이니…….

유르파의 입술에 키스해주는 동시에 그녀의 젖무덤을 매만지며 원기 방출로 체력을 회복시켜주니 창백하게 질린 낯빛이 백설처럼 보기 좋은 하얀색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마의 열은 내려가지 않는다.

=으응…….=

“괴물에게 당한 상처가 없어서 다행입니다. 이마에 열이 좀 있는 것 같으니…… 안느.”

자신에게 기대오는 유르파의 어깨를 보듬어준 환인은 유르파의 알몸 수색을 멍하니 바라보는 여자친구들을 둘러본 뒤 안느를 불렀다.

=어? 응?=

“유르파의 몸을 닦아주고 챙겨다오. 빗속에서 젖은 몸으로 시간을 보내서인지 감기가 찾아온 것 같다.”

=엑. 진짜? 어디 봐.=

“이실리테는 저녁을 부탁하지. 려강, 식사가 준비될 동안 주변을 경계해주겠나.”

=바로 준비할게요.=

「물론이에요!」

여자친구들에게 각자 할 일을 지시한 환인은 쿠르티와 쿠핀, 쿠라의 깃털을 차례대로 닦아준 뒤 자신은 왜 안 챙겨주냐고 이마로 등을 꾹꾹 누르는 비상을 데리고 흙집 밖으로 나간다.

“환연도 따라와라.”

「응.」

안느가 유르파의 몸을 성수포로 닦아주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던 환연은 그의 호출에 따라붙었다. 그리고 비상을 탄 환인이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묻는다.

「여긴 왜 다시 온 거야?」

문양의 힘을 더한 영혼 시야로 어둠에 잠긴 초원을 훑던 환인은 두 무리로 나누어져 죽어있는 수백 마리의 괴물 시체를 가리켰다.

“우리를 습격해온 괴물이 전부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괴물의 몸에서 해방된 영혼도…… 대부분은 성불했지만 몇몇은 어디론가 날아가더군.”

「살아남은 괴물을 찾아서 뒤를 추적하거나 어디론가 가버린 영혼을 찾아서 어디서 온 건지 물어보려는 거구나.」

“그래. 비상, 고도를 좀 더 높여라.”

쿠우~

삽시간에 수십 미터나 더 날아오르는 비상.

환인은 문양의 힘을 받아 황금빛 안광을 뿌리며 회색으로 물든 밤의 초원을 훑었지만, 영혼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

초원이라지만 구릉지보다 완만한 언덕이 곳곳에 있다.

개미굴처럼 그런 언덕 아래에 통로가 있고 살아 도망친 괴물도, 영혼들도 그쪽으로 갔을지 모른다. 하지만 환연의 정령들도 찾지 못한 입구를 언제 일일이 수색해가며 찾는단 말인가.

게다가 자신이 영혼사의 아우라가 없다지만 중간에 한 번 평온의 파동까지 쐈었다.

그걸 봤다면 영혼이 하나쯤은 남아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맞는 일일 텐데…….

린덴 촌락을 중심으로 부슬비가 내리는 밤하늘을 유유자적하게 선회하는 비상. 그 등에서 생각에 잠겼던 환인은 비상에게 다시 전투지역으로 가자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저기 있군.’

여자친구들이 쓸어버린 괴물 사체의 틈바구니, 안느의 흔적인지 하반신이 으깨졌음에도 아직 살아서 생명의 아우라가 희미하게나마 내뿜고 있는 괴물 하나를 발견했다.

자신에게 걸린 괴물은 모두 죽었다. 하지만 여자친구들 쪽은 모르기에 다시 찾아온 건데 다행히 한 마리가 살아있었다.

크…기기긱…….

곧장 그곳으로 내려간 환인은 다 죽어가고 있으면서 살기를 드러내는 괴물을 살폈다.

조인족 여자였는지 날개는 뼈대만 남았고 척추는 S자를 그리는 데다 몸 곳곳에 바퀴벌레의 키틴질 다리가 돋아난 여자.

환인을 향해 손을 내밀며 뒤집힌 눈으로 그르륵 거릴 때마다 분쇄된 하반신으로 체액과 뭉개진 살점 등이 꾸역거리며 밀려 나오고 생명의 빛은 더더욱 꺼져간다.

환인은 말없이 천칭을 꺼내 사람 반, 개미 반으로 변이된 여자의 머리를 깨부쉈다.

「으익.」

파삭­ 한 줌 핏물과 함께 뇌수액과 뇌피질이 땅에 떨어진 수박처럼 터져 나오고 생명의 빛도 그 순간 암전했다.

진저리치는 환연의 작은 목소리가 이어지고 잠시 후. 시체에서 생전의 모습인 듯 중년의 원숙한 미녀 영혼이 스르륵 빠져나온다.

「아아…… 여보… 제다…….」

“멈추십시오.”

환인은 모든 원한과 미련을 사바세계에 두고 성불하려는 숙녀를 강제력으로 붙잡았다.

덜컥, 허공에 붙잡힌 것처럼 고정된 스트레이트 뱅 헤어스타일의 미녀가 당황한 얼굴로 환인을 내려다본다.

「아앗. 흑… 이건…… 여, 영혼사님이신가요……?」

“맞습니다. 미련을 모두 내려놓으신듯하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이 사태의 원흉을 해결하고 싶습니다. 어디를 통해서 이곳으로 나왔는지 알려주십시오.”

주변을 가리키며 말하자 중년의 미녀는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곧 슬퍼하는 얼굴로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야트막한 구릉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촌락을 중심으로 북동쪽 2시 방향의 구릉이다.

「제가 아는 것은, 저 안은 깊고 복잡하다는 것 뿐이에요…….」

“그 정도면 됐습니다. 도움을 주어서 고맙습니다.”

「아아…….」

백조의 날개로 몸을 감싸며 다소곳이 허리를 숙인 영혼은 그대로 빛무리로 변해 하늘로 승천해버렸다.

‘지하 굴인가……. 촌락을 포위한 것을 보면 저곳 외에 다른 곳도 더 있는게 확정이겠지.’

하지만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하로 내려가는 굴이라면 여러 가지로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니까.

환인은 잠시 그 구릉을 바라보다가 중년의 미녀 영혼이 남기고 간 빛 구슬을 회수했고…….

욱신지끈.

“……!”

척추를 따라 도도하게 흐르던 한기와 포근하게 흐르던 훈기의 통로에 가해진 강한 통증을 느꼈다.

마치 척추가 하얗게 타오르고 푸르게 얼어붙는 느낌.

환인은 본능적으로 영혼술의 등급이 상승하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왼팔의 빛을 보자 94개였던 구슬 보유 한계가 96개로 늘어난게 느껴진다.

좀전의 전투에서 성불하는 영혼이 남긴 빛 구슬은 전투를 치르느라 거의 회수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격렬하게 싸우면서 일부를 흡수했었고, 방금 중년 영혼의 빛 구슬을 회수하는 것으로 총량이 96개가 된 거겠지.

하지만 고통이라니. 저번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어? 환인, 왜 그래?」

“영혼술의 등급이…… 오르려 한다. 큭.”

「뭐? 드, 등급 오르는 게 그렇게 괴로운 거야?」

“비, 비상. 이리로…….”

꾸으? 쿠읏. 쿠에!

비상은 눈에 띄게 괴로워하는 환인을 보며 안절부절못하다가 냉큼 환인의 허리띠를 물고 홱­ 돌려 자신의 등에 올린다.

쿠우! 삣!

「어, 어? 으응!」

허둥거리던 환연은 어서 가서 애들한테 알리라는 비상의 외침에 퍼뜩 정신 차리고 친구들이 있는 촌락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고, 비상은 왠지 날갯짓해서 환인에게 흔들림을 주면 안될 거 같아 황급히 그 뒤를 따라 달렸다.

「화, 환인 님이 쓰러졌어요!」

식사를 준비하고 있던 이실리테와 생활 공간에 양탄자와 가죽, 모포를 깔아서 잠자리를 만들던 안느와 유르파는 갑자기 벽을 뚫고 내려와 소리치는 백려강을 돌아보며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그가 쓰러졌다니?

「비상이가 등에 환인 님을 업고 달려오고 있다구요!」

「야아아~! 환인이 쓰러졌어! 당장 나와봐!」

잠깐 머리로 이해하지 못해 멈춰있던 세 명은 백려강에 이어 환연의 외침까지 더해지자 심장이 철렁하는 기분을 느끼며 하던 일을 내팽개치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안절부절못하는 비상의 근처에서 무릎을 짚고 서 있는 환인을 발견하곤 다급히 그를 부축했다.

=주인님, 왜 그러세요?!=

=도령! 뭐야?! 뭐에 공격받은 거야!?=

“아니……. 영혼술의, 등급이 상승하려는 징조 같다. 크…… 안으로… 좀, 눕혀다오.”

=아, 네!=

뭔가 잘못된 줄 알았던 그녀들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를 부축해 집 안으로 들였다.

이실리테는 그의 망토, 코트, 재킷을 벗겼고 유르파는 재빨리 달려 올라가 양탄자와 모피가 깔린 위에 담요를 펼친다.

그 위에 환인을 조심스레 눕힌 안느는 환인의 찡그린 표정이 펴지는 것을 보며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어지간해서는 감정의 기복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그가 이렇게나 힘들어하다니, 고통이 대체 어느 정도길래?

그의 머리맡에 모인 여자들 중 안느가 대표로 묻는다.

=도령, 이전에 등급이 상승할 때도 이랬어?=

“아니. 마지막으로 등급이 오른 것은, 안느 너의 처녀를 가져갈 때였는데…….”

=…….=

친구들의 시선이 자기 얼굴에 꽃히는걸 느낀 안느는 빨개진 얼굴로 대꾸했다.

=아, 그 그때 말이지? 하급 정령을 보게 됐을 때……. 그, 그건 파르히스트에 있을 때였잖아.=

“그래. 그때는 그저 몸 안이 진동하고 붕 뜨는 고양감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 다르군.”

「지금은요?」

일행으로서 같이 다닌 지 얼마 안 되는 백려강의 걱정에 환인은 척추를 송곳으로 찌르는 느낌에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등허리를 송곳으로 찌르는 기분이군.”

=으응. 등급이 오를 때 나타나는 현상은 여러 가지라고 알려졌어.=

대표적이고 가장 흔한 게 아우라가 한차례 강하게 번뜩이는 것, 그다음은 직업적인 특성에 따라 불이 한 바퀴 몸을 감싼다던가 주변에 물이 맺힌다던가 바람이 크게 분다든가 하는 식으로 변한다.

=자기처럼 통증이 닥치는 경우도 적지 않아. 하지만 그건 주로 근접 직업자들에게 벌어지는데…….=

유르파의 이야기에 환인은 그녀의 조금 열이 오른 얼굴을 보며 질문했다.

“저와 같은 현상은 없나 보군요.”

=으응. 순발력 쪽은 다리나 몸 전체가 저릿저릿하다거나 쿡쿡 쑤시는 느낌이 든다고 해. 이슬이 아가씨나 안느 아가씨처럼 근력 쪽에 치중되면 근육이 막 펌핑되거나 찢어지는 약한 통증이 느껴진다고 하고. 자기 같은 증상은 적어도 난 들어본 적이 없어.=

잠시 눈을 감고 영기의 흐름을 관조한 환인은 척추를 따라 흐르는 두 줄기의 맥이 확장되며 일어나는 통증임을 확신했다.

그와 함께 뜨겁고 차가운 에너지가 몸의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차츰차츰 퍼져나가는 느낌.

환인은 윽, 온몸이 저릿저릿한 것에 작게 신음을 흘리며 목에 걸고 있는 핏빛 위상석 목걸이를 꺼내 손에 쥐었다.

재생 효과를 주는 이 위상석이라면 통증을 좀 줄여주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자 역시나 고통이 조금씩 잦아든다.

고통의 수치는 줄어들지 않지만 고통이 유지되는 시간이 절반 가까이 감소하는 것이다.

이대로 쉬고 나면 몸 상태가 원래대로 돌아가겠지.

……돌아가길 바라야겠지.

환인은 이마와 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끼며 자신을 여전히 내려다보는 여자친구들에게 말했다.

“난 이대로 좀 쉴 테니 식사는 너희들끼리 먼저 해라. 그 후에는…….”

자신이 찾아낸 것과 알아낸 것, 촌락의 주변에 숨겨진 개미굴 통로가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려준 뒤 그에 대한 경계를 지시했다.

=불침번은 우리한테 맡겨줘. 둘씩 나누어서 확실하게 할 테니까. 유리 언니는 감기에 걸렸으니까 이거 먹고 푹 쉬고.=

=으응. 고마워…….=

…….

……….

이실리테가 입에 흘려 넣어주는 죽을 받아먹은 뒤 몇 시간이나 명상과 관조를 이어가던 환인은 누군가가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꼈다.

인기척은 근처에 누워 작게 앓는 소리를 내는 유르파에게 붙어있다가 훅­ 포근한 대지와 비슷한 기운을 짧게 퍼트리고는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바로 옆에 눕는 인기척.

폭신하고 살짝 달콤한 체취가 옆에서 밀려오는 것을 느끼고 입을 열었다.

“이실리테와 교대한 건가.”

움찔하는 기척에 이어 작은 웃음소리가 나온 뒤 부드러운 목소리가 환인의 귀를 간지럽혔다.

=아잇, 놀래라. 도령 안 자고 있었어?=

“몸 안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속 편히 잠들 수는 없지.”

=그래서 누워서 꼼짝하지 않고 4시간 동안 계속 명상하고 있었다는 거야? 도령도 대박이네.=

눈을 뜨고 고개를 그쪽으로 돌린 환인은 갑주만 벗은 바지 차림의 안느가 자신의 옆에 바짝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달빛처럼 시린 은발을 포니테일로 곱게 틀어 올린 안느의 은색 눈동자에 웃음이 깃들어있다.

“밖에 문제는 없었나.”

=응. 이슬이하고 환연이랑 려강이까지 셋이서 불침번 서고 있으니까 다시 괴물이 찾아오면 이번에는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거야.=

“려강은 너와 불침번을 서지 않았던가.”

=쉬라고 했는데 자신은 잠도 안 자고, 그렇다고 놀기는 뭣하니까 계속 불침번 서겠다더라.=

“그래.”

천여 마리에 가까운 괴물이 쓸려나갔다.

지평선 마을에서는 다른 마을이나 촌락이 전멸당했다는 소식이 없었으니 그만한 숫자라면 아마도 병력 대부분이 사라졌을 터.

오늘 밤에는 더 이상 습격은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 부분은 여자친구들이 알아서 할 것이라 믿은 환인은 기왕 안느가 와준 거, 좀 전부터 신경 쓰이는 몸 안의 훈기와 한기의 비율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4시간에 걸쳐 영기의 통로가 확장되며 몸 전체에 퍼져있던 훈기, 한기가 모여들었다가 재차 퍼져나가며 몸 안의 세세한 통로를 넓히는 중이다.

여기에 소소한 문제가 생겼는데, 한기는 별다른 소모 없이 세맥을 넓혀나가고 있지만, 훈기는 꽤 많은 기운을 소모하며 훈기의 세맥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그 때문에 현재 훈기와 한기의 최대치가 각각 10:10이라면 지금은 4:7 정도.

느낌상 절반 정도가 확장되었는데 이대로면 훈기가 부족해진다.

“안느, 네 영기가 필요하다.”

=……어? 으응? 지, 지금 섹…스 하자고?=

“그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 움직이는 건 무리다.”

=아…… 응, 무슨 뜻인지 알았어.=

환인의 요청을 알아들은 안느는 귀까지 빨개진 얼굴로 슬금슬금, 환인의 바지와 속옷을 내려 양물만 드러날 정도로 내린 다음 자신도 바지와 팬티를 허벅지까지 내렸다.

힐끔, 이마에 물수건을 올린 채 잠들어있는 유르파를 확인한다.

뺨을 찰싹찰싹 때려도 일어나지 않을 만큼 푹 잠든 모습에 안도한 안느는 모로 누운 환인에게 등을 보이며 누운 뒤 엉덩이를 그의 하복부에 딱 붙였다.

뜨겁고 딱딱한 것이 자신의 엉덩이를 찌르는 걸 느낀 안느는 사타구니 사이로 손을 내려 불기둥을 자신의 중심으로 인도한다.

이건, 그냥 속에 담고 있기만 하는 거니까. 도령이 원만하게 등급을 올릴 수 있게 도와주는 거니까!

‘으…… 이러는 건 또 처음이라 심장이 마구 뛰네.’

이런 거로 거짓말을 할 그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는 안느는 그가 마음 들어 하는 호빵 모양의 엉덩이를 살살 흔들며 그의 중심을 자신의 속으로 조금씩 받아들여 나간다.

‘윽, 너무 뻑뻑해. 한 번 빨아주고 할 걸 그랬나……. …읏!’

대음순이 벌어지는 느낌과 함께 불막대기가 조금씩 자신의 안으로 침입하는 걸 느끼던 안느는 숨이 가빠져 움직임을 멈추고 하으, 짧게 숨을 돌렸다.

그 순간 환인의 손이 자신의 허리를 감싸더니 1/4정도 들어왔던 불막대기가 빠져나가는 감각에 안느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고.

=윽헙……!=

직후 푸욱­ 자궁까지 단번에 찔러 들어오는 불방망이의 감각에 안느는 비명이 튀어나올 것 같은 입을 두 손으로 황급히 가렸다.

크, 크다. 그리고 뜨겁다.

안느는 속으로 끙끙거리다 배꼽까지 들어온 듯한 작열하는 막대기를 항의하는 것처럼 속살로 꽉 물었다.

들어올 거면 말하고 들어오란 말이야!

그러자 뱃속 깊이 들어온 그것이 미안하다는 듯이 끄덕이는데, 그 움직임에 자궁이 자극받은 안느는 우윽, 짧은 신음을 토해내곤 자신의 허리를 감은 환인의 손을 탭 하듯 탁탁 때렸다.

=하, 하지 마. 계속 그러면 나 참기 힘들어…….=

“…아쉽군.”

내가 더 아쉽거든?

반사적으로 그렇게 대답할뻔한 안느는 자신의 아래가 꽉 차서는 두 번째 심장이 생긴 것처럼 고동치는 감각에 성감이 점점 고조되는 것을 느꼈다.

이, 이러면 안 되는데.

다음 교대까지 2시간이 매우 길어질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살짝 몸을 떠는 안느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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