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8화 〉 402 린덴 촌락
* * *
촤자자자작—!!
쫘좍——!
비 내리는 공간에서 환연이 연달아 펼치는 물 정령의 공격은 말 그대로 가공할 수준이었다.
위력만 따지면 이실리테의 다중 검기에 한참을 못 미친다. 하지만 쿨타임 없이 물의 창과 물의 검 수십 개가 파도처럼 밀려 나가니 그 궤적에 있던 괴물의 팔다리가 찢어지고 뜯겨져 정체불명의 체액과 함께 날아다닌다.
물이 계속해서 보충되니 공격 횟수에도 제약이 없다.
차라라락—!
끼이익—!
키엑—
하지만 밀려드는 숫자는 공격에 죽는 숫자보다 더 많다.
소름 끼치는 절삭음이 괴물들의 비명과 뒤섞여 아수라장이 펼쳐지고, 두 눈을 형형하게 뜨고 있던 이실리테와 안느는 포위망에 틈이 발생하자마자 고함치며 쿠에와 함께 달렸다.
=포위당하면 위험해! 환연이 길을 낸 곳으로 빠져나가야 해!=
=내가 앞장 설 테니까 뒤따라와!!=
안느가 성술로 쿠핀의 힘을 강화한 뒤 성벽의 방패를 내세우고 달리고 다중 검기 두 자루를 꺼낸 이실리테가 뒤따른다.
키야아악!
끄갸갸갹!!
강한 기세와 아우라를 내뿜으며 선두에서 달리는 안느에게 발생하는 강한 어그로.
그녀에게 이끌린 괴물들이 짐승처럼 네 발로 달리며 쌓이자 안느는 그동안 위상력 축적 마도구에 쌓아둔 위상력을 아낌없이 뿌려 대지의 갈색빛 섬광을 마구 터트렸다.
섬광탄에 버금가는 빛의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수 마리에서 수십 마리의 괴물이 눈이 멀어 비명을 지르고, 눈이 먼 괴물을 천벌의 망치와 성벽의 방패로 후려쳐 길을 만드는 안느.
그리고 다중 검기를 원반처럼 회전시켜 좌우에서 밀려드는 괴물을 모조리 잘라버리는 이실리테.
「유르파! 내가 지켜줄 테니까 안느랑 이실 쫓아가는 데만 신경 써!」
=으, 으응!=
기승술이 뛰어나지 않은 유르파는 쿠라의 등에 거의 매달려 두 명을 쫓아만 간다.
비상을 타고 하늘을 날고 있던 환인은 그런 여자친구들과 쿠에들을 바라보다가 하급 정령으로 강령을 펼쳐주는 동시에 이실리테와 환연의 범위 공격에 쓸려나간 괴물의 영혼을 끌어당겨…….
「아아…!」
「해방…… 드디어 해방이야…….」
‘사람?’
「화, 환인 님! 사람들이에요……!」
……영혼 폭발을 난사하려다 사람의 영혼이 눈물을 흘리며 괴물의 몸뚱이에서 해방되는 모습에 눈썹을 와락 찡그렸다.
측은하다거나 저런 몰골이 된 것이 불쌍해서가 아니다.
지금은 무척 급박한 상황이다.
사방에서 수백 수천 마리의 합성 생물 같은 괴물이 몰려들고 있다. 이대로 두면 세 명은 그대로 군대나 다름없는 숫자의 괴물들에게 포위당할 판.
여자친구들이 탈출할 길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저리 꺼져!」
쫘자자자작—!!
물창과 물칼의 파도를 일으켜대는 환연처럼 숫자를 최대한 줄이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자신이 성장하며 같이 성장한 영혼 폭발, 영혼 화살은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도 찢어발기게 되었다.
영혼 폭발로 저 괴물을 공격하면 괴물의 몸에 갇힌 사람의 영혼까지 휩쓸려 소멸하게 된다.
부정한 영혼도 아니고 저런 멀쩡한 영혼을 한둘도 아니고 수백씩 소멸시키는 짓은 해선 안 될 예감이 강하게 든다.
끼이이익!
크에엑~!!
자각자각자각자각자각자각
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
차작차작차작차작차작차작
‘후우.’
검은 해일이 유르파와 쿠라의 뒤를 바짝 쫓는다.
아무리 검희에 성투사라지만 저만한 숫자에 포위당하면 위험하겠지.
속으로 한숨을 내쉰 환인이 백려강에게 말했다.
“려강. 너는 그녀들을 따라가라.”
「네?」
“그리고 비상. 너는 환연을 도와서 적들의 숫자를 최대한 줄이는 데 힘써라.”
쿠? 쿠엑!!?
「환인 님!?」
그리고 비상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20여 미터 아래는 괴물의 바다.
환인이 자신의 등에서 뛰어내렸다는 것에 깜짝 놀란 비상이었지만, 이내 환인을 믿고 정령술을 난사하는 환연과 합류해 회오리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바람과 물이 함께 회전하니 비록 높이 10m의 용오름이지만 거기에 휘말린 괴물이 하늘로 끌려 올라가 내팽개쳐진다.
그런 용오름 두 개가 일행이 나아가는 방향을 헤집으니 그녀들의 이동이 더더욱 빨라졌다.
그사이 자신의 몸에 강령을 건 환인은 접목과 분산의 요령을 극한으로 펼쳐 방벽 패널을 발판처럼 밟아 20m 높이를 차분히 내려가는 중이었다.
비가 내리며 마찰력이 극도로 낮아졌지만, 환인은 그러한 노면 마찰까지 계산하며 여자친구들을 쫓는데 정신이 팔린 합성 괴물을 분석한다.
괴물의 신체 내구는 인간의 몸 부분과 키틴질 갑각의 부위가 각자 다르다.
환연의 공격에 당하는 것을 고려했을 때 인간 부위는 물창과 물칼에 서걱서걱 잘려 나가지만 키틴질 부위는 잘린다기보다 부러지는 느낌.
여기에 신경계통까지 변이가 일어났는지 머리가 잘렸어도 몇 초간 움직이는 것까지 참작하면 노려야 하는 부위는…….
자신의 접근을 눈치채지도 못한 합성 괴물의 등에 사뿐히 내려선 환인은 끼이? 그제야 자신을 올려다보려 하는 괴물의 연약한 목을 광창 대신 꺼낸 흑창으로 끊고 질주하는 합성 괴물의 등을 징검다리처럼 밟고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촥 푸욱, 촤작—
키극, 크르륵? 켁.
물론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그가 밟고 지나가는 괴물은 빠짐없이 목이 잘려 달려가다가 풀썩풀썩 자빠졌고, 뒤쫓던 괴물들은 거기에 걸려 나동그라지며 바로 뒤쪽에 극심한 정체를 빚었다.
다만 촌락을 빠져나와 밤의 초원에 들어선 지 오래였기에 괴물들은 장해물을 좌우로 피해 달리며 거슬리는 환인을 향해 괴성을 질렀다.
키긱!
끼히히힉!
키야아라랅!
그 소리에 반응한 선두의 괴물들도 그제야 자신들을 밟고 달리는 환인을 발견했고, 즉시 환인을 향해 덮쳐들었다.
콰르르릉!
번개가 한차례 번뜩이며 심연의 괴물처럼 변이와 침식이 일어난 괴물을 비춘다.
환인은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 내리는 어둠 속에서 덮쳐드는 괴물을 향해 흑창의 빛을 뿌려 가장 가까이 다가온 세 마리의 머리를 갈라버리고.
뻑!
키에—엑——!
밟고 서 있던 괴물을 걷어차 뒤로 날려버리는 동시에 2차로 다가온 괴물 여섯 마리의 목줄기를 방벽 패널로 만든 단검을 날려 찔렀다.
키캭!
치르르르륵—!!
목뼈가 부러진 괴물들이 나동그라지고 그 위를 지나 다시 달려드는 괴물들.
지성이라곤 1g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으로 전후좌우에서 덮쳐드는 인간&곤충 합성 괴물들은 일반인에게는 숨이 멎을 정도로 위협적이었겠지만, 적어도 환인에게는 아니었다.
시야는 영혼 시야 덕분에 어둡지 않다. 하급 강령 덕분에 힘은 충분하며 반사 신경과 전투 감각도 절호조.
캬아아악—!!
남들보다 빠르게 달려든 괴물의 머리를 창으로 찔러 땅에 내려찍는 동시에 머리를 짓밟고 순간적으로 그리모암의 혁대를 발동, 일반인의 11배에 달하는 각력으로 뛰어오른다.
이어 방벽 패널을 장검으로 전환해 자신을 향해 따라 뛰어오르는 괴물을 빛살처럼 뿌렸다.
팔을 뻗으며 환인을 잡아채려던 괴물의 목이 꺾이고 흑창에 머리가, 목이 찔리고 베이며 힘을 잃고 추락한다.
‘흡!’
틈이 날 때마다 자유라며 날아오르는 사람의 영혼을 강제로 구슬로 바꾸어 괴물들에게 무작위로 저주를 내린다.
기절, 실명, 둔화, 간질, 마비, 수면, 침묵, 광증, 발작, 공포, 혼란.
거기에 방벽 장검을 조작하고 창을 휘둘러가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괴물을 말 그대로 최소한의 움직임과 공격 횟수로 처리해나갔다.
중간에 시체와 적이 너무 쌓이면 영혼 방패를 있는 대로 겹쳐 막는 동시에 그것을 밟고 뛰어올라 자리를 옮기고 계속해서 괴물을 해치워나간다.
비에 젖은 몸이 적당히 달아오르며 몸이 풀린다.
오랜만에 무기를 휘두르며 생명을 해치워나가다 보니 마음도 흥겨워진다.
예리해진 판단력, 날카로워진 지각력.
지금이라면 문양의 힘을 쓰는 것으로 발생하는 변칙 상황에 수월히 대응할 수 있을 것 같다.
혼란과 광증, 발작에 걸린 괴물이 동료들과 싸우기 시작하며 발생하는 소음을 들으며 환인은 즉시 영혼 방패에 문양의 힘을 5%가량 흘려 넣었고.
바아아앙—
유리 같은 내구도로 괴물의 주먹질 한 번에 깨어져 나가던 영혼 방패가 즉시 황금빛을 내뿜으며 주먹질을 서너 번도 수월하게 막아내기 시작했다.
삼중으로 펼친 금빛 영혼 방패를 의지로 움직여 괴물을 후려치니 꾸에엑! 고통스러운 포효와 함께 우르르 밀려 넘어진다.
‘좋군.’
상황은 더 나빠지긴커녕 조금 더 수월해졌다. 강한 물리력으로 후려쳐 빈틈을 크게 만들어낼 수 있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금빛 영혼 방패로 틈을 만들고 저주로 주변을 혼란스럽게 하고 방벽 장검과 창을 종횡무진으로 휘두르니 환인의 주변에는 목뼈가 부러져 머리가 덜렁거리는 괴물만 수북이 쌓여간다.
빠각!
‘음.’
그러던 중 찾아온 위기는 흑창의 분쇄였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내구에 신경 써가며 사용해왔다지만, 율캄에서부터 1년을 훌쩍 넘어가는 시간 동안 치러온 전투는 성수의 어금니로 만든 뼈의 날에 치유할 수 없는 피로도를 새겼다.
그것이 결국 한계에 다다라 반으로 뚝 부러진 것.
성수의 어금니로 만든 흑창의 날이 부러지며 크나큰 빈틈이 발생했지만, 환인은 당황하지 않았다.
평온의 파동을 재빨리 발사하는 동시에 금빛 영혼 방패를 밟고 뛰어오르며 방벽 장검 여섯 자루를 날려 자신과 함께 뛰어오르는 괴물을 베어내며 광창을 꺼내 쥔다.
대규모 난전에서 아직 적응하지 못한 허기를 겪으면 불확정 요소가 발생할 수 있기에 흑창을 꺼냈던 거지만, 흑창이 부러진 상황에 선택지는 없다.
대신 광창을 아홉 날의 나인볼그 형태가 아닌 스피어처럼 길쭉하고 뾰족한 창으로 만든다.
허기 자극을 덜 받기 위해 생각해낸, 소모가 가장 낮은 형태다.
그것으로 평온의 파동 효과에 일순 멈칫한 괴물의 목뼈만 정확하게 찔러대며 금빛 영혼 방패와 방벽 장검을 활용해 다시 괴물을 쓸어나가기 시작했다.
‘오히려 편하군.’
흑창을 쓸 때처럼 내구를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더욱이 절삭력은 이쪽이 몇 배나 뛰어나다.
흉하게 부푼 머리나 겹눈으로 절반은 뒤덮인 얼굴, 모발이 전부 빠지고 더듬이와 턱이 생긴 머리를 마주한 환인은 덤덤하게 길이 2m에 송곳처럼 얇고 가느다란 형태의 광창을 찌르고 휘둘렀다.
손을 뻗는, 키틴질 다리를 뻗는, 턱을 내밀어 물어뜯으려 드는 괴물을 쳐내고 막아내고 잘라내며 사방에서 모여드는 괴물을 얼마나 해치웠을까.
「야 이 멍충아아아~!」
쫘자자자자작—!!!
환연의 앙칼진 고함과 함께 자신의 주변으로 한층 사나워진 물창과 물칼이 V자로 쉴새없이 뻗어나가며 괴물을 말 그대로 꼬치로 만들어버린다.
큐삐이이익—!!
콰우우우—드드드득 콰과과광!!
이어 바람 구슬이 쉴 새 없이 날아와 폭탄이 터진 건가 싶을 만큼 쾅쾅 터지며 괴물을 쓸어버리기 시작했다.
‘저쪽은 안정화되었나.’
자신이 절반을 넘어가는 괴물의 이목을 끌었다. 포위망을 탈출한 여자친구들과 비상, 환연이 전력을 쏟아부으면 나머지 절반을 해치우는 건 금방이었겠지.
‘그러면.’
왠지 자신을 향해 멍청이라고 부른 느낌이지만, 그 사실을 외면한 환인은 환연과 비상의 공격 지원으로 사방에서 몰려드는 적에 대한 부담이 90% 정도 감소한 것을 감지하고 스탠스를 전환했다.
이제까지 반격과 회피 위주였다면 이제부터는 공격이다.
크갸갸갸갹!!
끄르리리릵!
자신을 향해 무지성 돌격하는 괴물들을 향해 몸을 던졌다.
꼬르륵
“후우…….”
사방에 수북이 쌓여 피 흘리는 괴물 시체의 틈바구니.
배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에 배를 어루만지며 망가진 흑창을 찾던 환인은 자신을 부르는 여자친구들의 목소리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령!!=
=주인니임!=
「환인 님!」
“왔나.”
화나고 빨개진 얼굴로 쿠르티와 쿠핀을 타고 온 둘에 길 안내 하듯 따라온 백려강까지, 셋은 몸을 던지듯이 환인에게 달려가 소리쳤다.
=왔나, 가 아니야!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위험한 짓을 저지른 거야?!=
「맞아요! 너무 무모하셨어요!」
=주인님,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화내고 걱정하는 여자친구들을 잠시 바라보던 환인은 한쪽 입가를 끌어올리며 대답했다.
“해야 할 일이었다. 다친 곳은 없고 배가 좀 고프군.”
=~~!=
환인의 태연한 반응에 안느는 속 터진다는 듯이 가슴을 쿵쿵 치고 백려강과 이실리테는 못 말린다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느가 제발 빈다는 듯이 두 손을 모아서 애원한다.
=도령……. 제발, 우리 애 떨어지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몸 좀 사려…… 응?=
근접 직업자라면 말을 안 한다. 신체 능력은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영혼사이지 않은가. 그런데 왜 이렇게 목숨을 내놓은 것처럼…….
“애 떨어진다니, 둘 다 임신한 건가.”
=말이 그렇다는 거지! 도령은 진짜!=
발끈 화를 내는 안느를 바라보다가 훗 하고 웃은 환인은 비에 흠뻑 젖어 뺨에 들러붙은 은발을 떼주며 말했다.
“너무 꾸중하지 마라. 나도 승산과 가능하다는 계산이 섰기에 한 행동이니까. 버티기만 하면 너희가 도와주러 올 거라고도 생각했고.”
=…….=
“거기다 그때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그녀는 크게 다쳤을지도 모르지.”
환인의 시선이 뒤늦게 쿠라를 타고 다가오는 핼쑥한 얼굴의 유르파에게 향한다.
=으~.=
이해는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모순적인 마음에 안느가 앓는 소리를 내자 유르파가 그 옆에 내리며 풀죽은 모습으로 말했다.
=미안해. 나 때문에 적들 한복판으로 뛰어내리고…….=
그가 어째서 괴물들의 한가운데에 뛰어내렸는지 알고 있는 유르파였다.
형편없는 기승술로 뒤처지고 자신이 금방이라도 괴물에게 붙잡힐 것처럼 가까워지니까 그랬겠지.
“유르파, 당신 탓이 아닙니다. 문제라면 저 괴물의 상태가 문제지요.”
=상태……?=
여자친구들의 의문에 엎어져 죽어있는 괴물의 시체를 발끝으로 뒤집는다.
“제 영혼술이 강력해져서 영혼 폭발을 쓰면 거기에 휩쓸린 대상의 영혼도 찢어집니다. 그리고 이 괴물의 영혼은 평범한 사람의 영혼이더군요.”
=아.=
=어음. 그래서 사람한테는 영혼 폭발을 안 쓴 거였구나.=
“그래. 그런데 속도가 빨라 내버려 두면 너희가 괴물에게 따라잡힐 거 같아 방법이 없었다. 아니었다면 영혼 폭발을 던져 나 또한 숫자를 줄이는데 노력했겠지.”
그런 이유라면…….
여자친구들은 환인의 설명에 납득했고 비상은 처음부터 환인을 믿었지만, 환연은 아니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죽은 사람보단 산 사람이 살아야지.」
하마터면 두 번 다시 환인을 못 보게 됐을 수 있다고 생각하자 환인의 설명에도 환연은 불만이 가라앉지 않았다.
「차라리 나한테 지시를 내리지 그랬어. 너라면 어딜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 잘 알았을 거 아냐.」
불만에 뺨을 빵빵하게 부풀린 모습에 피식 웃은 환인은 그녀의 뺨을 꾹 누르며 부러진 흑창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내던지면서 괴물의 아래에 깔린 것 같다. 밤중에 비까지 오는 마당에 찾기가 어렵군.”
대놓고 말을 돌리는 모습에 환연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흑창이 있는 곳을 가르쳐 준다.
「……여기 있어.」
날만 깔끔하게 부러진 흑창을 회수한 환인은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뜻으로 환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환연도 그의 마음을 읽고 입을 꾹 다물었다.
흠, 창대는 멀쩡하니 나중에 다른 창날을 구해다 교체하면 다시 쓸만해 지겠지.
“그러면…….”
심장이 떨어질 정도로 놀라게 해놓고는 담담한 환인의 태도에 여자들은 조금 부아가 치밀었지만 바가지는 베개 머리맡에서 긁기로 하고. 입을 여는 환인에게 귀를 기울인다.
“환연, 도망가거나 소굴로 되돌아간 괴물은 없나.”
「도망간 건 모르겠고 촌락이 있는 언덕 아래 뭔가가 있긴 해.」
=뭔가라니?=
「나도 모르겠어. 중급 땅의 정령으로도 저만한 땅속을 살피려면 며칠도 부족해서…… 아무튼 땅의 정령이 말하기를, 땅속 어딘가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진대.」
=이상한 기운? 설마 미궁이야?=
=하지만 타락한 바르둘이라고 했잖아.=
=촌락 사람들이 바르둘하고 미궁에서 생성된 반전 개체하고 착각했을 수 있지.=
=그럼 이 괴물들은 뭐라고 설명할 거니? 자기 말로는 사람이라고 했잖아. 영혼도 사람이었고.=
=음……. 미궁에서 빠져나온 반전 개체가 권속을 만들었다거나…….=
자신이 생각한 의견을 내놨지만 여러모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
괴물의 숫자가 린덴 촌락 가구 수를 능가하는 점이나, 괴물의 몸 안에 사람의 영혼이 있다거나, 상소문에 적혀있던 타락한 바르둘이라거나.
“그 이상한 기운의 정체는 확인하지 못했나 보군.”
「응. 500m 바깥에 있어서 확인이 안 돼.」
“……이 괴물들이 빠져나온 땅굴은 발견하지 못했나.”
「다른 정령들한테는 이상한 게 안 보이나 봐. 땅의 정령 애들한테 시켜서 수상한 장소를 찾고 있는데 아직 안 보여.」
“…….”
환인은 죽인 합성 괴물의 사체를 둘러보았다.
여러 곤충과 합체되어있지만 대체로 개미나 바퀴벌레, 지네, 거미처럼 절지동물들이다. 그중 개미와 거미가 특히 많다.
땅의 정령이 느낀 게 미궁이 아니라 개미굴이라고 한다면…….
고개를 저은 환인은 계속해서 내리는 비에 일단 촌락으로 돌아가자고 이야기를 꺼냈다.
비를 맞으며 한참을 싸웠다. 자신은 괜찮지만 유르파가 몸을 덜덜 떨고 있어 놔둔다면 감기로 번질 수도 있는 일.
비가 그칠 기미도 없으니 일단 돌아가서 마차를 챙겨 물러나도록 하자.
그리고 마차를 세워둔 촌락으로 돌아간 환인과 그의 여자들은 깊은 한숨과 빡침을 느꼈다.
=마차가 다 부서졌어…….=
=그 망할 새끼들……!=
나무 아래가 아니라 촌락 한복판에 뒤집힌 채 개울에 처박힌 마차.
들이받히고 쳐 날려지고 짓밟힌 것처럼 중심 프레임에서부터 외장까지, 멀쩡한 곳이 없다.
“…….”
=아….=
=후…….=
이래저래 힘이 쭉 빠지는 밤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