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401화 (401/813)

〈 401화 〉 395 백씨 가문의 아가씨들 下

* * *

1시간을 훌쩍 넘겨 목욕탕을 나온 환인의 여자들은 몸이 잔뜩 달아오른 상태였다.

성적으로 달아오른 게 아니라 한여름, 뜨거운 물로 몸을 씻고 환인과 뜨거운 정사까지 치러 몸 안팎으로 열이 차버린 것.

매우 얇아 속까지 비쳐 보이는 가운을 걸치거나 알몸에 가까운 속옷 차림을 하고 거실로 나온 여자들은 전혀 시원하지 않은 거실 상황에 작게 비명을 질렀다.

「더워!」

=안 되겠다, 창문 좀 열자!=

=난 시원한 음료라도 타올게.=

반쯤 늘어진 유르파를 근처 소파에 눕혀놓은 이실리테는 다이닝 룸으로 들어갔고, 안느는 회색 속옷만 입은 채로 복숭앗빛으로 달아오른 몸을 움직여 거실에 난 창문은 물론 방안의 창문까지 모조리 활짝 열어젖혔다.

휘이이이이——

여러 개의 열린 창문으로 알류겔 호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밤바람이 쏟아져 들어와 거실의 텁텁하고 술 냄새 가득한 공기를 삽시간에 환기한다.

한발 늦게 나온 환인은 모슬린 원단의 갈색 가운을 걸치면서 거실을 둘러보았다.

백치령과 백려강이 안 보인다.

‘방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가.’

기감을 열어 방 쪽을 살폈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출입문 바깥에서 두 명의 인기척이 감지된다.

백중강과 백치령의 기운이다.

문 쪽을 돌아보자 백려강도 거기에 반쯤 끼어든 것이 보였다.

남매끼리 할 이야기가 있어서 온 거라기보다는…….

‘아마도 내게 할 말이 있어서 찾아온 거겠지.’

백중강이라면 지금쯤 일에 치여 죽어가고 있을 시기다. 그럼에도 객실을 찾아왔다는 것은 자신에게 알려주어야 할 것이 있다는 이야기.

하지만 욕실까지 찾아와 부르지 않은 것을 보면 중요한 것은 아닐 테고 경과의 보고인가.

‘그렇다면 레심과 부엉이 인간에 관한 거겠군.’

그일 외에는 프라버의 시책 사업뿐인데 그런 것을 영혼사에 외부인인 자신에게 말해줄 이유가 없다.

=하아아아~♡ 시원하다~.=

안느의 교성에 가까운 한숨에 그쪽을 보니 창가에 까치발로 서서 창밖에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달빛 같은 은발을 늘어트리고 힙을 바짝 올려 둔부의 탄력과 허벅지 ­ 종아리로 이어지는 매끄러운 근육의 곡선을 강조하는 자세.

얇고 면적이 적은 속옷 차림으로 무방비하게 서 있는 모습 자체가 에로틱의 영역이다.

잠시 회색 팬티 밑부분이 보지에 먹힌 자국을 감상하던 환인은 방벽 패널로 가운을 들어서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몸이 식는다.”

눈이 동그래진 안느는 환인의 부드러운 시선에 부끄러운 듯 배시시 웃으며 가운을 몸에 걸쳤다.

그러는 사이 이실리테가 주방에서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새빨간 음료수를 가지고 나와 환인과 다른 여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얼음이 맺힌 석류처럼 빨간 음료를 절반가량 단숨에 들이킨 안느가 긴 숨을 토해낸다.

=후아아아. 뜨거워진 몸에 차가운 게 들어오니까 정신이 번쩍 드네.=

=으응……. 새콤한 게 아주……. 끝내줘…….=

환연도 안느가 기울여주는 컵에 다람쥐처럼 매달려 꼴깍꼴깍 음료를 마시곤 푸하­ 거창한 한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이마를 감싸쥔채 흐느적거리며 중얼거린다.

「우으, 한동안은 목욕 못 하겠어. 머리가 어지러워…….」

=너 너무 오래 욕탕 속에 들어가 있었어. 아이고, 율이 언니는 아주 뿅 갔네 그냥. 방에 먼저 들여보내야겠다.=

=도와줄까?=

=아냐. 나 혼자서도 돼. 야, 환연 넌 어떻게 할 거야?=

「난 여기에 있을래. 방 안은 더워…….」

=그래라 그럼. 도령, 우리 먼저 쉬러 갈게?=

“그래. 이실리테. 밖에 백중강이 와있으니 너도 함께 들어가라.”

그의 이야기에 자신들의 반라 차림을 내려다본 안느와 이실리테는 얼른 환인에게 인사하고 방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환연은 앉아있을 기운도 없는지 탁자보 위에 그대로 널브러진다.

「환인…… 나 부채 좀 부쳐줘…… 더워…….」

더위를 먹은 것처럼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환연에게 손부채로 바람을 부쳐주던 환인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얼음을 가져와 얇은 수건으로 감싼 뒤 그녀의 앞에 놓아주었다.

수건에서 흘러나오는 냉기가 마음에 들었을까. 환연은 그 얼음 수건에 안겨들어 헤응, 이제야 살 거 같다며 한숨을 폭 내쉰다.

“여름에 뜨거운 물 속에 오래 들어가 있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5분에서 10분 정도로 짧게 끊어라.”

「으~. 네가 섹스하는 거 관찰한다고 그랬던 거란 말이야.」

“아직도 나와 하겠다는 건 포기 못했나.”

「응. 반드시 환인이랑 하고 말 거야.」

앙증맞은 다짐에 피식 웃으면서 부채로 바람을 부쳐주고 이실리테에게 건네받은 음료수를 반쯤 비웠을 때, 백치령이 종이 몇 장을 손에 들고 객실로 돌아왔다.

=성자님. 방금 오라비가 다녀갔습니다. 이것은 전해달라는 조사 경과보고서입니다.=

받아서 읽어보니 예상했던 대로 부엉이 남자의 조사 보고서와 어제 도시를 떠난 레심의 지원 방안 및 지원 현황 보고서다.

‘알소프에서 출항한 흔적이 보이고…… 레심에게는 비술사와 엽사, 성술사를 붙여주었나.’

5급에 가까운 직업자를 붙여주고 고가의 술법 장비까지 해주었으니 원수를 찾아 복수에 성공하든, 아니면 도로 살해당하든 남은 건 그의 역량에 달린 일이다.

부엉이 남자는 레심에게 맡기고 자신은…….

생각을 이어가려던 환인은 자신에게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백치령과 그녀의 뒤에 서 있는 백려강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으로 자리를 옮기겠습니다. 환연, 너는 적당히 쉬다가 방으로 들어가라.”

「알았어어.」

여동생과 함께 환인을 따라 그의 방에 들어간 백치령은 은은하게 나는 남자의 체취에 보지에서 애액이 찔끔 흐르는 걸 느끼곤 반사적으로 허벅지를 조였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린다. 젖꼭지도 딱딱하게 서서 움직일 때마다 셔츠에 쓸려 아플 지경이다.

진짜, 진짜로 해? 그것도 내가 졸라서?

‘응. 그만두자.’

자신은 긍지 높은…… 한 번 반으로 부러지긴 했지만 일단은 긍지 높은 프라버의 영주 백씨 혈족의 장녀다.

이런 자신이 외간 남자, 그냥 남자도 아니고 여동생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엉덩이를 까다 못해 보지까지 드러내고 때려달라고 조른다고?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기서 나가야겠어.’

그렇게 결심하고 마악 입을 열려던 백치령은 여동생이 불쑥 치고 나가는 걸 보고 입을 딱 벌렸다.

「환인 님. 축복을 걸어주세요! 제가 언니의 몸에 들어갈게요!」

=려강아?!=

「언니, 제가 언니 몸에 들어가서 용기를 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앗. 아니, 그게 아닌데……!

혹시 자신이 포기하려 한 것을 눈치챈 걸까?

백치령은 평소 조용하고 차분하던 여동생의 저돌적인 행동에 당황해서 그녀를 말리지 못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얼을 타버린 것이다.

환인은 의욕을 드러내는 백려강을 향해 어리숙하게 손을 뻗는 백치령을 보다가 백려강에게 물었다.

“괜찮겠나. 네가 생각하지 못한 경험을 네 언니와 함께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저는 괜찮아요!」

기운찬 백려강의 대답에 백치령이 안 괜찮다고 하려는 순간, 불쑥 자신의 몸에 다른 의지가 스며드는 듯한 감각을 느끼곤 대경실색했다.

이게 뭐야?! 내 안에 뭐가 들어오는 거야!?

“백려강의 혼이 당신 몸에 깃드는 겁니다. 진정하고 내면을 관찰해보십시오.”

환인의 이야기에 백치령은 그제야 여동생이 없어졌다는 걸 깨닫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몸 안으로 신경을 돌리자 뭔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기분이 들어 어깨를 살짝 떨었다.

내 몸인데 다른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는 이상한 느낌.

동시에 몸 안에서부터 강한 힘이 솟구쳐오르며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샘솟는다.

이게 여동생이 말했던 그 용기의 축복 이라는 건가?

“려강. 기분은 어떻지.”

‘언니의 안에 제가 있다는 게 굉장히 신비한 기분이에요. 라고 전해주세요, 언니!’

흠칫, 머릿속에 울려 퍼진 동생의 목소리에 목을 움츠렸던 백치령은 그 말을 환인에게 전해주었고, 환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백치령. 만약 려강의 의식이 흐려진다거나 몽롱해진다면 즉시 말해주어야 합니다.”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평범하게는 자기 뜻에서가 아닌 강제로 성불 당하거나, 최악의 경우 영혼 자체가 소멸할 수 있습니다.”

십중팔구는 성불이지만 그동안 훈련과 실험, 조사 결과를 생각해보면 후자도 아주 없다고는 못한다.

환인이 그간 파악한 영혼술의 작동 원리는 이렇다.

영혼을 확보해 기술을 펼치면 자신의 영기(훈기)에 더해 영혼이 가진 감정과 기운을 소모해서 영혼 계통 기술이 발동한다.

대부분의 영혼, 정령은 그 감정치와 기운이 그다지 세거나 많지 않다.

기술 한번을 쓰고 나면 미련이 사라져 성불하거나 기운을 다 써서 정령계로 되돌아 가버리는 수준.

하지만 자신의 영기를 영혼에게 넣어주면, 영혼은 기운과 감정의 소모 대신 영기를 소비해 성불 가능성을 극도로 낮출 수 있다는 확신에 가까운 가설을 세웠지만…….

‘정확한 것은 아직 모르니까.’

보험 삼아 백려강에게 영기를 현재 보유한 최저 활동 수치(21%)만 남기고 70% 가까이 넣어주었지만, 주의는 얼마나 많이 기울여도 부족하지 않다.

백려강의 영혼이 소멸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백치령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 외 다른 주의 사항은 없습니까? 려강이의 혼이 약해진다든가 하는 부작용이라거나…….=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그러한 상태를 막기 위해 제 영기를 크게 나누어주었으니까요.”

지금이라면 5급 기사와도 싸워 이길 수 있을 정도다. 이만한 힘이 생기는데 그 정도의 부작용 정도는 있어야 이해되는 수준.

‘언니, 용기를 내세요!’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여동생의 응원에 백치령도 마음을 다잡았다.

저 악당 성자가 조처해주었다지만 자신이 소멸할 수 있는 약간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행동한 여동생이다.

그녀의 응원을 어떻게 외면할까.

하지만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거다.

부끄럼과 수줍음에 잠시 몸을 꼼지락거렸던 백치령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 눈앞의 저 악당 성자를 내 마음속 남편이라고 생각하면. 평생 혼자 살며 다른 남자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되는 거야!’

‘……엣?’

‘남편의 특수 성벽을 받아들이는 것도 아내의 역할이니까!’

‘네에에……?!’

언니의 몸에 빙의한 백려강은 언니의 생각을 알 수 있다는 점에 놀라기보다, 그 생각이 뜻하는 것 때문에 혼란스러워졌다.

악당 성자라니? 특수 성벽이라니??

틀림없이 환인 님을 지목하는 단어인데 언니가 왜 이런 생각을 하시는 거지? 언니는 성자님을 사모하고 계신게 아니었나?

그리고 이어진 백치령의 행동에 백려강은 패닉에 빠질 지경이 되었다.

그야 줄곧 당당하고 고고한 한 마리의 독수리 같던 언니가 갑자기 남자 앞에서 바지를 훌렁 벗고 팬티를 드러내며…….

=저…… 저는 아직 정신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부디, 오늘도 제, 제 엉덩이에 체벌을 내려주세요……!=

…라고 말하는데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언니의 충격 발언에 백려강은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졌다.

여기에 더해 백치령의 현재 몸 상태.

그녀의 몸에 깃든 덕분에 그녀가 느끼는 감정과 감각은 백려강도 모두 느끼는 중이다.

심장은 목구멍으로 빠져나올까 겁날 정도로 쿵쾅쿵쾅 뛰고 아랫배는 욱신거려서 참을 수 없을 만큼 징징 울리고 있다.

얼굴은 얼마나 뜨거운지 밤바람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에 허리는 오싹오싹, 무릎은 후들후들.

감정도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기뻐하는 데다가 수치스럽기도 하고 괴로우면서도 행복한?

‘으응…….’

백려강도 유서 깊은 호족 가문의 엄한 안주인에게 방중술을 배웠기에 남녀의 은밀한 밤일은 모르지 않았다.

몰래 전연령판 로맨스 소설도 몰래 읽은 적이 있어 남녀의 사랑과 그 애틋한 마음에 대해서도 약간이지만 알고 있다.

그런 백려강이 보기에 백치령은 환인을 절대 싫어하지 않고 있었다. 생각은 환인을 악당이라고 하고 싫어하는 척하지만 본심은 그 반대라고 할까.

‘이게 새침데기라는 걸까요……?’

아무튼 엉덩이를 맞으면서 흥분하는 성벽이 조금 충격이긴 했지만, 백려강은 대범하고 열린 마음으로 언니의 성벽을 존중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환인이 백중익에게 지적했던 ‘사람의 다름을 이해하고 있느냐.’는 발언이 백려강에게 끼친 영향이 컸던 것.

‘아?’

언니에게서 전해져오는 감정과 감각을 느끼며 그녀의 전부를 포용하느라 잠깐 바깥에 신경 쓰지 못한 백려강은 언니가 움직이는 느낌에 다시 바깥 상황을 언니의 오감으로 보고 듣고 느끼기 시작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