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396화 (396/813)

〈 396화 〉 390 항구 도시 프라버

* * *

쓰으으으——

2시간 동안 백치령에게 잊지 못할 기억과 추억과 성벽을 심어주고 대신 그녀의 처녀를 받은 환인은 간단히 몸을 씻은 뒤 이실리테와 백려강을 대동하고 다시 백중익을 찾았다.

=왔나.=

처소로 들어가자 백중강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백중익이 꽤 괜찮아진 안색으로 반긴다.

좌우에 끼고 있던 여자는 내보냈는지 혼자 편히 누워있는 모습.

“몸은 어떻습니까.”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워.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떠들던 목소리도 사라졌고 귀를 찌르던 날카로운 소리도 없어졌다네. 아주 조용해. 이렇게 만족스러운 밤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느릿하지만 느긋한 설명을 들은 환인은 손을 뻗어 다시 평온의 파동을 발사했다.

회백색 빛의 파문이 백중익이 누워있는 드넓은 침대를 휘감다가 사라지고, 환인은 백중강이 비켜준 자리에서 백중익에게 몇 가지 질문했다.

별건 아니고 기분은 어떤가. 머리는 아프지 않나 같은 가벼운 질문.

그리고 백중익의 상세가 이 이상은 호전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산란못 미궁의 피해자 여성들처럼 정신에 심각한 데미지를 입은 것도 아니다. 이제 평온의 파동을 더 쏴준다고 해도 의미가 없겠지.

이제부터 광증의 재발을 막고 다스리는 것은…….

“영주님의 의지에 달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원기를 흘려 넣어주며 하는 말에 백중익은 환인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다가 별안간 큭큭 웃기 시작했다.

=크크크. 이 사실이 알려지면 세상이 발칵 뒤집히겠구먼. 차원 방랑자 출신의 영성이라니…… 크흐흐흐.=

즐겁다는 듯이 큭큭 웃는 백중익은 그 나이대 노인처럼 멀쩡해 보였다.

환인의 원기 방출과 영기 주입, 그리고 금화 수백 닢에 달하는 회복약과 회복제, 치료술사의 성술을 쏟아부은 덕분이다.

노인 정도 되는 체력에서 더 회복되지도, 악화하지도 않게 되었으니 건강해졌다고 볼 수 있겠지.

“즐거운가 봅니다.”

=말년에 이런 재미난 일을 보게 되었으니 어찌 즐겁지 않겠나. 어쨌든 자네가 날 살려주기까지 했으니 말이야. 고맙다고 인사하지.=

“저는 훌륭한 무기를 받은 만큼의 보답을 돌려드리는 것뿐입니다.”

=그런가?=

백중익은 모를 것이다. 환인에게 광창이 주어졌다는 것은 호랑이에게 날개가 달린 것이나 다름없다는 걸.

전차나 전투기가 굴러다니는 시대에 날개 달린 호랑이가 뭐가 대수인가 싶겠지만, 그 날개 달린 호랑이가 인간의 지성을 지니고 인간처럼 사고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저보다는 따님에게 고마워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저는 애초에 영주님을 치료해드릴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환인의 꾸밈 없는 이야기에 백중익은 환인의 옆에 둥둥 떠 있는 영혼 상태의 둘째 딸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흥, 작게 콧방귀를 꼈다.

=멍청한 것.=

「…….」

=그런 딸년에게 목숨을 구해진 나는 더더욱 멍청한 놈이겠지. 고맙다.=

「아버님…….」

백중익의 거친 인사에 백려강이 자못 감회어린 표정을 짓는다.

그걸 잠시 응시하던 백중익은 잠깐 회한 어린 눈빛을 드러냈다가 이내 고집스러운 노인의 눈빛을 드러내며 말했다.

=네 성격에 성자를 움직였을 리 없겠지. 어리숙하고 미련한 네 녀석이 저런 녀석을 어찌 움직일 수 있을 리 만무하니까.=

「…….」

=그러니 너에게 한 짓은 사과하지 않을 거다. 죽어서야 변한 게 느껴지지만, 살아생전에 네 정신머리와 상태로 할 수 있는 것은 정략결혼 밖에 없었으니.=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거라는 뜻에 백려강이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숙이는 것을 본 환인은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그렇지 않아도 생각해둔 주제를 꺼낼 계기가 필요했는데 알아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군.

“그게 아니지요.”

=아니라고?=

환인의 반박에 백중익은 물론 자리에 같이해서 조용히 시립 해있던 백중강도 환인을 돌아본다.

“이 일련의 사태는 전부 영주님이 부족하고 모자란 탓에 벌어진 일입니다.”

헉….

=…….=

“백려강이 죽게 된 계기, 그리고 백치령이 저렇게 엇나가게 된 발단, 알소프와 마찰, 반발, 이 모든 것은 영주님의 덕과 능력이 부족해서라는 겁니다.

사정없는 매도에 백중강이 소리 없이 경악하고 백려강도 놀라 걱정스러워하는 얼굴로 담담한 환인과 노기가 드러나는 백중익을 번갈아 본다.

=……아무리 내가 늙어 깃털 빠진 독수리가 되었고 자네가 프라버의 위기를 넘겨준 은인이라지만…… 말을 너무 함부로 하는 건 좋지 않을 걸세.=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사실이라. 그렇다면 그 사실도 알아채지 못한 이 무지한 노친네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겠지?=

빈정거림이 섞인 이야기에 환인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인재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키워서 쓰는 겁니다. 자기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가차 없이 내치고 버리는 게 아니라, 인재의 능력 한계를 읽고 거기에 맞추어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자기 자신을 계발할 기회와 능력을 쌓을 업무를 맡겨야 한다는 겁니다.”

환인의 주장에 백중익은 입을 다물고 심유한 눈으로 환인을 응시한다.

“영주님은 사람의 다름을 이해하고 계십니까.”

=사람의 다름이라……. 같을 수가 없지. 재능이 뛰어난 놈이 있다면 떨어지는 놈이 있으니까.=

“예. 모든 사람에게는 역량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 역량에 따라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나누어지고, 할 수 있는 것에도 쉽게 해낼 수 있는 분야와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겨우 달성할 수 있는 분야로 나뉩니다. 묻겠습니다. 영주님은 백치령과 백려강, 이 두 사람의 역량과 자질을 정확히 파악하셨습니까.”

=…….=

“하셨을 리가 없지요. 했다면 백려강을 그리 쉽게 죽게 내버려 두었을 리 없고, 백치령이 자기 승인 욕구에 시달려 조바심과 초조함을 드러내다 실수를 연달아 저지르지 않았을 테니까요.”

=흐으음…….=

“영주님은 백려강에게 그 외모와 성격만 보고 정략결혼의 제물이라는 프레임을 씌워버렸습니다. 백려강이 할 수 있는 것이 정말 그거뿐이었을까요. 백치령이 명예와 지위에 매달리게 된 것이 단지 그녀의 성정이 탐욕스러워서일까요.”

환인은 묵묵히 서 있는 귀여운 새끼 펭귄 머리의 백중강에게 시선을 주었다.

“백 공자는 다행히 영주님이 정한 기준에 부합했기에 후계자로서 지위와 능력을 공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모자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내 지시와 지도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녀석의 역량이 날 수용할 수 있어서라는 건가.=

그 혼잣말에 환인이 대답하지 않자 백중익은 문가에 서 있는 이실리테를 쳐다보았다.

=다른 놈이 그딴 소릴 지껄였다면 당장 목을 쳐버렸을 테지만, 하잘것없는 도적 나부랭이를 검희로 성장시킨 자네가 그리 말하니 내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구먼.=

부친의 이야기에 백중강이 이실리테를 돌아본다.

그의 시선에 뛰어난 인재를 영입하고 싶다는 지배자의 눈빛이 잠깐 드러났지만 말 그대로 잠깐이었다.

환인은 달빛이 비치고 있는 테라스로 시선을 주며 말했다.

“알소프와 분쟁도 마찬가집니다.”

=어떤 이야기를 해줄지 기대되는군.=

어디 말해보라며 무거운 시선을 보내는 백중익과 눈을 마주하고 묻는다.

“영주님은 알류겔 호수로 나서는 좁은 협만을 프라버의 굴레로 여겼다 들었습니다.”

=당연하지 않은가. 바다만큼이나 드넓은 대호로 나가기 위해서는 좁디좁은 통로를 지나야 해. 알소프가 그곳을 틀어막으면 프라버는 고사하는 길뿐이지.=

“왜 그 반대로 생각하지 못한 겁니까.”

환인의 반문에 백중익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그걸 선조 중에서 아무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거 같나! 이까짓 만을 지킨다고 뭐가 달라지냔 말이야! 이쪽으로 대륙의 여행객들이 들어오지 않으면 프라버는 로아팅스 정글로 둘러싸여 선택지 없이 고사하는 길밖에 없단 말일세! 관광 항구 도시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어!=

“정말 그런 거였다면 프라버가 천년의 역사를 이어오지도 못했겠지요.”

=뭐라고……?=

“알류겔과 맞닿은 해안은 길고 넓습니다. 프라버가 아니더라도 내릴 곳은 많다는 겁니다.”

두 부자가 애써 외면하던 사실을 찌른 환인은 두 사람에게 물었다.

“양식장이라는 이야기는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들어는 봤네. 생선을 가둬 먹이를 주어서 키운다고. 하지만 알류겔 호수에 마수가 살고 있다는 건 알고 있나.=

백중익의 지적에 환인은 나름 조사해보고 여자친구들과 백려강에게 검증까지 받은 일련의 계획을 들려준다.

“알고 있다면 그 부분은 건너뛰어도 되겠군요. 가불가를 언급하기 이전 지형적 요소를 말해볼까요. 지금 주요 쟁점이 되고 있는 협만의 경우 수심이 20~40m 정도를 오간다고 들었습니다.”

알소프가 저 협만을 틀어막을 수 있다는 건 반대로 말하면 프라버가 알소프 및 다른 도시, 마을의 배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틀어막는 데 성공한다면 알류겔 호수의 1/20 정도 되는 저 광대한 영역이 프라버의 손에 들어오게 됩니다.”

저 협만을 틀어막는 것으로 프라버 앞마당은 천혜의 수산 농장이 될 수 있다.

“때마침 프라버는 조선 기술과 함선 전투에 대한 경험과 기술이 축적되어있군요. 인근에는 섬도 적당히 배치되어있어 조인족이 이동하기 용이한 지리이기도 하고요.”

프라버는 조인족의 도시로 불릴 만큼 조인족도 많으니 거대한 배를 축조해 징검다리 삼아 배치하고 조인족 순찰대와 청술사를 동원해 주변 해역의 괴물에 대한 감시를 지시하면 안정적인 영역 확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물속 일정 거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마도구도 있는 만큼 물속의 마수가 오가는 것도 당연히 감지해낼 수 있을 터.

전함을 활용해 상시 순찰하도록 해놓고 마수가 출현하면 조인족의 경보와 전함의 출동을 연계해 마수를 퇴치한다.

그리하면 초기에는 마수로 인한 손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안정화를 이룰 경우 마수의 출현은 오히려 값비싼 마수 소재의 확보로 이어질 테고 거기서도 수익이 발생하게 된다.

=…….=

=…….=

조용히 경청하던 백중익과 백중강의 안면 근육이 실룩거렸다.

저 협만 안쪽이…… 프라버의 손에 들어온다고?

“그렇게 안정화를 이룬다면 양식장을 가동할 수 있겠지요. 날지 못하는 종족을 대규모로 고용해 양식장을 형성하고 생선의 장기 수송 방안을 개발해 남부의 대도시 헬루멘과 거래 공급이라도 맺으면…….”

=초거대 양식장에서 만들어지는 생선을 중부와 남부에 독점적으로 유통하며 얻는 막대한 부…….=

“그만한 양식장을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인구 문제도 있을 것이고 양식장을 만들기 위한 자재의 충당과 인력 확보도 걸림돌이 되겠지요.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닐 겁니다.”

=그래. 프라버는 돈이 많지…….=

=하지만 인재와 노동력의 확보는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프라버와 헬루멘 사이에 구릉지와 산지가 존재한다지만 병력을 동원한 상행을 이행해 헬루멘과 대규모 식량 거래를 통하여 농업종사자를 줄이고 어업 종사자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면 인력의 확보도 어느 정도 해결될 겁니다.”

=잠시만, 성자님. 그리되면 식량의 자급자족률이 떨어지게 되지 않습니까?=

“어업에 비하면 농업은 쉽지 않습니까. 급한 어업 쪽으로 인력을 돌리고 금을 통한 주변 마을, 촌락의 인구 흡수를 통해 농업으로 전환하는 방식도 있고 찾아보면 방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

=…….=

“프라버를 오가는 수많은 종족 중 물과 함께 살아가는 종족도 있을 테니 그들을 고용한다면 양식에 관한 큰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군요. 알류겔 호수와 인접해 어업으로 살아가는 촌락, 마을도 많을 테니까요.”

환인의 대략적인 전망도에 백중익과 백중강이 깊어진 눈빛으로 장고에 들어간다.

=그래……. 이건 기밀을 요구하는 산업도 아니니 입막음 비용도 들지 않겠어. 어디까지나 환경이 받쳐주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니…….=

=바다 마수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되겠지만, 성자님의 말씀대로라면 오히려 기회가 됩니다. 이미 전함은 준비되어있으니 삼엄한 경계망을 펼쳐 마수를 토벌해나간다면……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성공 가능성이 큰 이야기군요……. 양식장, 양식장이라…….=

한동안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던 백중익은 정신을 차리고 환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도움을 주는 건가?=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영주님은 백려강에게 고마워해야 합니다.”

=…죽어 영혼이 된 그 아이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건가……?=

환인이 대답 없이 가만히 시선을 주자 백중익의 고개가 내려가며 짧은 침음이 흘러나온다.

그걸 바라보다 환인이 조용히 말을 잇는다.

“솔직히 말하면 현재 프라버의 상황을 보았을 때 지금 드린 이야기를 기획으로 삼아 진행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음, 그렇겠지. 하지만 아주 못할 정도는 아니야. 저놈도 널 보며 배우고 깨달은 것이 있는 듯하고 나도 정신을 차렸으니까. 그리고 우리 프라버의 저력은 절대 알소프의 아래가 아니지.=

“알소프가 문제라고 말한 적 없습니다.”

=……음?=

의아해하는 백중익과 백중강에게 환인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프라버의 민심이 어떤지 알고 있습니까.”

=…….=

“광증에 시달리던 때의 지시라지만 영주님의 악행으로 시민들의 불만과 영혼의 분노가 극에 달한 상황입니다. 제가 터트린 평온의 빛기둥으로 예비 혼재군 아홉이 사라졌다지만, 제 시선이 닿지 않은 곳에 지금도 혼재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테지요.”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지는 백씨 부자.

“그것을 먼저 해결하지 않는다면 프라버는 미래가 없겠지요.”

=으음!=

“미리 말씀드리지만, 저는 이 일에 나서지 않을 겁니다.”

두 남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지만, 백중익과 백중강은 환인에게 영혼사이면서 왜 돕지 않느냐고 부당함과 억울함을 토로하지 않았다.

=중강.=

=당장 움직이겠습니다. 성자님,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경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허리를 꾸벅 숙인 백중강이 달리듯이 걸어서 처소를 빠져나간다.

크음. 다시 침음을 흘렸던 백중강이 조금 지친 얼굴로 묻는다.

=그런데…… 자네는 영혼사가 아닌가. 혼재를 보고도 나서지 않아도 괜찮나? 아, 자네에게 뭐라 하는 게 아니라 순수한 의문일세. 지금까지 보아왔던 영혼사는 혼재의 일이라면 그게 어떤 상황이든 소매를 걷고 나서던 인물들이어서.=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 법이지요.”

=그렇군…….=

환인도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리고 백치령의 축출은 개인적으로 철회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으음……. 심도 있게 재고해보도록 하지.=

고개를 끄덕인 환인은 이제 아침까지는 오지 않을 테니 푹 쉬라고 말한 뒤 처소를 나왔다.

객실로 돌아온 환인은 거실에서 코트를 벗다가 자신에게 존경의 시선을 보내는 백려강을 쳐다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보지.”

「환인 님이 존경스러워서요. 아버님은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분이 아니시거든요.」

“광인이나 정신병자가 아닌 이상 이야기를 잘하면 듣지 않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바로 그게 대단한 건데…… 이실리테 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

=네. 사람과 대화는 정말로 어렵고 힘든 일이에요.=

「맞아요. 그런 일을 해내시는 환인 님은 정말 대단하신 거고요.」

=정말이에요.=

서로 죽이 척척 맞는 모습에 환인이 피식 웃으며 코트 주머니 속의 환연을 꺼내 반쯤 비몽사몽인 환연과 코트를 이실리테에게 넘겨주고 말했다.

“새벽 훈련은 쉴 테니 아침은 느긋하게 시작하지.”

=네, 주인님.=

그리고 방으로 돌아온 환인은 자신의 침대 위에 엎어진 채 빨갛게 팅팅 부은 엉덩이를 드러내고 보지에서 처녀혈이 섞인 정액을 줄줄 흘리며 기절해있는 백치령을 볼 수 있었다.

“…….”

방안을 채우고 있는 자신의 정액 냄새가 불쾌해진 환인은 방의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열어 환기를 시작한 뒤 백치령의 몸에 이불을 덮어주려다…….

「저기 환인 님? 내일…….」

살짝 열린 문 틈새로 얼굴을 빼꼼 내미는 백려강과 눈이 마주쳤다.

「…….」

“…….”

자신과 백치령을 힐끔힐끔 번갈아보던 백려강은 살아있었다면 얼굴이 확 붉어졌을듯한 모습으로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며 조그맣게 웅얼거렸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려강.”

「저, 저는 아무것도 못봤으니까요오…!」

그리고 얼굴을 가린 채 휙­ 여자친구들의 방으로 날아가 버렸다.

“…….”

뭐. 혐오스럽다거나 질색하면서 도망친 것도 아니고 부끄러운 얼굴로 달아나버렸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환인은 개의치 않고 백치령의 하반신에 이불을 덮어준 뒤 탁자 앞에 앉아 노트북을 꺼낸 뒤 어장과 어업, 수산업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 정리하며 종이에 따로 옮기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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