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6화 〉 380 항구 도시 프라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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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아직도 그 빛의 진짜 정체와 빛을 발생시킨 자를 찾지 못한 건가!=
=죄송합니다. 빛기둥은 원의 형태를 띠고 있어 발생지를 계산해내었지만, 강대한 파장에 사물의 기억이 표백되었는지 심상투시 술법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 없어…….=
=그따위 변명을 듣자고 내가 이 시간까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야!!=
=…송구합니다. 현재 동북부 방면 16순찰조장이 단서를 잡고 역추적 중입니다. 능력 있는 여자이니 조만간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신뢰하는 부관의 침착한 대답에 간신히 역정을 가라앉힌 백치령은 선명한 녹색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쓸어넘기곤 적색청색황색 깃털의 날개를 한차례 펄럭였다.
백중강 이 빌어먹을 오빠 새끼, 꼭 불리하고 거지 같은 일만 내게 떠넘기지!
어제 오전, 갑작스럽게 하늘 끝까지 치솟아 오른 빛기둥은 둘째 딸의 자살과 침입자의 흔적, 알소프와 반半 전면전에 신경쇠약과 노이로제에 걸린 백중익의 정신적 발작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부친 앞에 불려간 백치령은 광증이 일어난 것처럼 구는 백중강에게 조사를 지시받았다.
원래라면 그 일은 장남이자 차기 영주인 백중강이 책임지고 조사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 빌어먹을 오빠 놈은 알소프의 동향을 감시하고 대응을 마련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자신에게 일을 떠넘긴 것.
역정이 터진 부친의 분노에 즉시 부하들을 풀어 조사를 명한 백치령은 몇 시간 뒤 손에 들어온 정보에 히스테릭한 짜증을 부렸다.
‘사물의 기억을 싹 날려버릴 정도의 강력한 파장을 띈 빛기둥형 평온의 파동이라고?’
조사원의 보고에 따르면 그 빛기둥은 영혼사가 펼치는 평온의 파동과 효과가 흡사하다고 했다.
그러나 영혼사와 관련된 자료에는 어느 시대에도 파동이 그런 식의 변화를 이뤄냈다는 기록은 없었다.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그 빛기둥은 영혼사가 펼친 평온의 파동이 아니라 알소프 쪽의 첩자가 무언가 술법적인 테러를 저지른 흔적이라고 보는 게 타당한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해보면 도시를 봉쇄하고 첩자를 다시 색출하는 게 옳은 수순이지만 백치령은 그러지 못했다.
정말 그것을 영혼사가 펼쳤을 가능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논리도 뭣도 없는 단순한 의구심이 아니다. 합당한 의심이 존재한다.
약 일주일 전, 통신 수정관리부서에서 크라빈 마을의 촌주?? 출신 고족의 정식 보고가 올라왔다.
산란못 미궁의 소멸과 함께 내부적으로 사망 처리했던 비자룩스의 녹색 성자가 생환했으며 며칠 전 마을을 떠났다는 것.
처음 그 보고서를 받았을 때는 급한 현안이 밀려있었기에 결정과 대응을 보류해놓았었다.
그런데 며칠 후 프라버 남부의 로탄 산지, 크라빈 마을로 가려면 통과해야 하는 지역에 강한 호우와 함께 홍수가 발생했고 와중에 영성 하늘 고래가 출현했다는 목격담이 올라왔다.
거기다 며칠 후 평온의 파동으로 추측되는 빛기둥이 도시에서 발생했다?
머저리가 아닌 이상 비자룩스의 녹색 성자와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역사에 그러한 평온의 파동이 발현되었다는 기록이 없다는 게 걸려.’
어렸을 적 현재 영도의 수장이자 당대 최고의 영성인 닌실=아나그가 펼친 평온의 파동도 본 적 있는 백치령이다.
영성이 펼치는 평온의 파동이라 해도 범위가 넓어지고 회백색 빛이 좀 더 짙어지는 수준이다.
그런 마당에 기둥 형태로 변화한 평온의 파동이라고?
결국 적의 첩자 짓임을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추적을 지시한 백치령은 시간이 지날수록 중요한 일을 하다 중간에 방치한 것처럼 찜찜함이 가슴을 잠식하는 걸 느끼고 있었다.
‘시간을 되돌려도 똑같은 지시를 내리겠지만…….’
적일지도 모르는 마당에 미적지근한 대응을 주문했다가 적을 놓치는 것만큼 최악의 사태는 없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백중강 그 자식은 자신의 통솔력을 의심하며 하늘 기사단에까지 지배의 야욕을 드러낼 테니까.
그랬는데 만약 대상이 진짜 영혼사라면 …….
그때 문밖이 조금 소란스러워지더니 탕탕탕, 조바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노크 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고막을 불쾌하게 자극하는 소리에 백치령의 눈썹이 사납게 찡그려지는 것을 본 부관은 재빨리 문을 열고 나갔고…….
=주인님, 최악의 경우가 일어났습니다.=
잠시 후 굳은 얼굴로 들어와 백치령에게 보고를 올렸다.
=……젠장.=
찜찜함이 악의를 가지고 모습을 드러내는 감각에 백치령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 * * *
보안집행위원회에서 서류 정리와 내용 확인 업무를 맡은 직원들은 한밤중까지 이어진 긴급사태 조사, 그리고 도시 각 구역의 순찰 초소에서 올라오는 어마어마한 보고서 무더기에 입술을 삐죽 내밀고 연신 툴툴거렸다.
원래라면 집에서 한창 꿀잠에 빠져있을 시간인데 그놈의 빛기둥이 뭐길래 이 난리를 친단 말인가.
=아 짜증 나……. 그냥 내일 찾으면 안 되나…….=
=그 내일이 오늘이지만 말이야.=
=아나……. 잠 와, 졸려 죽겠어 진짜……. 이게 진짜 뭐 하는 짓이야…….=
=그만 좀 투덜거려. 난 어제저녁 남자랑 데이트 약속까지 있었는데 취소했단 말이야.=
=미안….=
그나마 대놓고 짜증 내지 않는 이유는 위층에 고귀한 영주 일족의 장녀도 함께 밤을 새우고 있기 때문이었다.
같이 밤을 새운다는 것에 감동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짜증이 만에 하나 그 고귀하신 분의 귀에 들어갈 게 겁나서지만 아무튼.
=거기 너희 둘, 밖에 71번가 방면 초소에서 보고서 다발이 올라왔다고 하니 나가서 받아와.=
수백 장의 보고서가 또 도착했단 이야기에 두 직원은 진저리를 치며 외부인 출입 금지인 탓에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급사를 만나러 힘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거 다 살펴보려면 또 1시간은 걸릴 텐데…….
집행청의 정문을 열고 나간 둘은 어둠에 휩싸인 도로 저편에서 저벅저벅, 조용히 다가오는 하나의 무리를 발견하곤 미간에 힘을 주었다.
=넬라. 저기, 누가 오고 있는 거 같지 않아?=
=이 시간에 급사 말고 누가 온다고…… 진짜 오고 있네.=
요즘은 밤에 함부로 돌아다니면 순찰대에 붙잡혀 끌려가는 일도 있어 야간 통행은 극도로 줄어든 상태다.
고급 상업 구역은 통행량이 아직 남아있다지만 그것도 신분이 높은 분들의 밤놀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지 다른 이유는 없다.
그랬는데…….
……어?
=자, 잠깐만. 저기 앞에…… 녹색 쿠에 아냐?=
녹색 쿠에.
현재 프라버 입소문의 지분을 절반 이상 차지하고 있는 비자룩스의 녹색 성자님이 타고 다닌다는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쿠에.
옆의 밀짚색 쿠에보다 머리가 두 개 이상은 큰 그 위용에 헛숨을 삼킨 두 여직원은 날듯이 집행청 안으로 뛰어들어가 직속상관에게 소리쳤다.
=주사관님, 주사관님! 밖에 녹색 쿠에를 탄 분이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녹색 성자! 녹색 성자님 같아요!!=
웅성, 청 내에서 비몽사몽간에 야근하고 있던 직원들의 눈이 단숨에 또렷해졌다.
그건 주사관도 마찬가지.
인웅족의 육중한 몸무게임에도 불구하고 날듯이 달려가 바깥을 확인한 주사관은 뭔가 좋지 않은 느낌에 황급히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거기 너희들! 당장 나가서 저분이 청 안으로 못 들어오시게 막아!=
=네에엣?! 잠깐만요, 주사관님! 저희더러 어쩌라고요!? 녹색 성자님이실지도 몰라요! 주사관님이 나가셔야죠오!=
=야 이! 그럼 너희들이 하늘 기사단장님께 보고 올릴 거냐?! 닥치고 얼른 튀어나가!=
=으악!=
=아으!=
직원들은 예상대로 무려 그 유명한 녹색 성자님과 그 일행이라는 사실에 1차로 놀랐고, 그 소문의 검희 이실리테의 말도 안 되는 자태에 2차로 놀라며 이분들이 집행청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앞을 막아섰다.
=죄, 죄송합니다! 집행청은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구역이라 아무나 못 들어가세요오!=
=우리도 놀러 온 게 아니야. 문제가 생겨서 항의하러 방문한 거라니까.=
=그으, 그게 저희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서어…!=
=조,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주사관님이 금방 나오실 거예요.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안 될까요……!=
직원들은 자신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진짜 같은 여자인데도 반할 것만 같은 아름다운 플뢰에게 사정하다시피 간청했다.
하면서도 너무 무서워 무릎이 후들거린다.
저쪽에 커다란 녹색 쿠에를 타고 계신 성자님은 무려 혼재까지 정화하는 영혼사님이다.
그런 무서운 영혼사님의 앞길을 막다니, 영혼의 저주를 받진 않을까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쿵덕쿵덕한다.
당연히 표정도 겁먹은 표정 그 자체.
=하, 진짜…….=
그걸 본 안느는 윽박지르기도 그랬고 그렇다고 물러날 수도 없는 일이라 답답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도령, 어떻게 해?=
“됐으니 돌아와라.”
=괜찮겠어?=
“책임자가 나와 어떤 변명을 할지 기다리는 것도 여흥이 될 테지.”
말하면서 환인은 여자들을 차가운 눈으로 훑었고, 시선의 높이 차이로 후드 아래에서 황금빛으로 빛나는 환인의 눈동자와 마주한 여직원 몇몇은 허리에 힘이 빠져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뭔가, 저 금안과 눈이 마주쳤더니 영혼이 그대로 발가벗겨지는 기분이었던 것.
환인은 벌벌 떠는 여직원을 무시하고 문양의 힘으로 전개한 영혼 시야로 집행청 입구에서 경비 근무 중인 직업자들을 확인한다.
“…….”
그리고 회색 대리석 외벽의 5층 건물을 무거운 눈빛으로 올려다보았다.
‘프라버의 무력 집행 집단은 크게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가.’
프라버의 무력을 상징하는 집단치고는 뒤에 수레에 쌓아놓은 집행대도 그렇고 집행 부대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집행청의 입구를 지키는 직업자들도 예상 이상으로 약해 보인다.
급수는 3급 언저리. 강화된 영혼 시야로 확인한 그들의 영혼의 밝기는 이실리테나 안느와 비교하면 반의반도 되지 않는다.
시무룩하게 있는 백려강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하던 환인은 툭툭, 망토 안쪽 가슴 포켓에 숨어있는 환연을 건드렸다.
“집행청 안에 아우라가 가장 짙은 직업자를 찾아봐라.”
「응. 잠깐만…….」
잠시 후 망토 안에서 환연의 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령이랑 시야 공유로 살펴봤는데 6급 이상 직업자는 없어. 5급은 1명, 4급은 2명인데 그중 1명은 신분이 호족 이상으로 보여. 옷이 되게 고급스러워.」
환인은 잘했다는 뜻으로 환인이 들어있는 포켓 쪽을 가볍게 토닥여준 뒤 시선을 내렸다.
백려강의 말에 따르면 도시의 핵심 무력 투사 집단인 기사단 정도라야 5급이다. 도시에서 가장 강하다는 창공 기사단의 단장이 7급의 초입이며 영주 휘하 술사 집단의 책임자가 6급이다.
그 외에는 대부분 3급 언저리.
“…….”
생각을 이어가던 환인은 품에서 방수 태엽 시계(유르파가 시계를 보고 흉내 내 만들어주었다)를 꺼내 시간이 이곳에 도착하고 15분 정도 지났음을 확인했다.
환연에게 호족으로 보이는 그 인간이 어디에 있냐고 묻자 1층 출구 근처에서 멈춰있다고 대답해온다.
사람을 밖에 세워두고 기선을 제압하려는 의도가 느껴져 서서히 기분이 안 좋아진다.
환인은 머릿속으로 전투 상황을 가정하고 구도를 만들어 여자친구들이 집행 부대 수백 명과 싸우는 상황을 그리기 시작했다.
먼저 이실리테.
4~5급 내외 근접 직업자만 모여있다면 100명까지는 이실리테 혼자서라도 다중 검기로 무쌍을 펼치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 이상이라면 체력적인 문제로 상황이 급격하게 나빠지겠지.
근접과 원거리가 섞여 있다면 약간 낭패를 당하겠지만 어떻게든 이긴다.
근접과 원거리, 법술사, 비술사가 모두 모여있고 술사들이 행동력에 간섭하며 디버프를 뿌린다면 위험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위의 상황에 성술사가 더해진다면 20명만 되어도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절반을 넘어간다.
이상은 맞서 싸울 경우다. 전장에 제약을 주지 않고 도주에 염두에 두면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아무튼 이 정도.
안느는 4~5급 근접 직업자로만 100명이 모여있으면…… 이때부터 조금 위험한 그림이 연출된다.
원거리가 섞이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고 법술사와 비술사가 섞인다면 50명만 되어도 필패다.
하지만 이실리테와 안느가 합쳐지면 적이 법술사, 비술사, 성술사까지 붙어도 100명까지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고, 차례대로 환연, 비상, 유르파 자신이 더해지면 군대와도 치명적인 상처 없이 이길 확률이 80% 이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하며 동쪽 하늘이 검은색에서 군청색으로 물들어간다.
환인은 다시 시계를 꺼내 5분이 더 지났음을 확인했다. 호족 책임자로 추측되는 인물도 여전히 입구 근처에 있다.
후, 짧게 웃음을 흘린 환인은 기절한 집행 대원들을 쓰레기처럼 실어놓은 짐수레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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