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384화 (384/813)

〈 384화 〉 378 항구 도시 프라버

* * *

=흐응…….=

“…….”

귓가를 간지럽히는 숨소리에 잠에서 깬 환인은 팔을 짓누르는 거대한 찹쌀떡 같은 압박감을 인지했다.

그리고 찾아온 강렬한 팔 저림.

손가락을 살짝만 움직여도 바늘로 쿡쿡쿡 찌르는듯한 자극이 손끝에서부터 팔꿈치까지 뒤덮는다.

흘러나오려는 신음을 참으며 고개를 돌린 환인은 이실리테가 그 큰 가슴 사이에 자신의 팔을 끼운 채 곤히 잠든 것을 볼 수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과 절대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는 젖가슴이 아름답지만, 왼팔을 뒤덮은 팔 저림은 별로 아름답지 못하다.

속으로 작게 실소한 환인은 눈에 편안함을 주는 무늬의 천장으로 시선을 들었다.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머리가 두통으로 묵직했는데 지금은 상당 부분 해소되어있다.

어제는 예비 혼재군의 기억이 동시에 밀려와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었다. 몇 시간 뒤에는 백려강으로 인해 강한 감정적 충격까지 받았다.

만약 그리모암의 완륜, 시하가 선물해준 정신력을 강화해주는 유물 팔찌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겠지.

‘시하에게 고마워해야겠군.’

자신은 두통에 시달리면 이성으로 억누르고 있는 본성이 장마 때 맨홀 뚜껑을 밀어 올리며 역류하는 빗물처럼 튀어나오곤 한다.

어제 본성이 튀어나왔다면 그건 틀림없이 살의였을 거다.

치밀……하다고 자신할 수 없지만 나름의 계획을 세워 암살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 없이 막무가내로 테러를 일으키고 학살을 자행하는 살의.

조금씩 팔을 움직여 팔 저림을 해소하며 시선을 자신의 가슴 쪽으로 내렸다.

가슴을 덮은 얇은 이불을 뚫고 빛무리가 은은하게 올라오고 있다.

어차피 잠도 깼으니…….

이실리테의 가슴골에서 팔을 조심스럽게 빼고 몸을 일으킨다.

=…주인님?=

“깼나.”

깨우지 않게 조심한다고 했지만, 이실리테도 감각이 예민하다 보니 덕분에 눈을 뜨고 말았다.

환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하늘거리는 이불을 자연스럽게 끌어당기는 것을 지켜보았다.

하얗고 탄력 넘치는 허벅지를 가로지르며 은근하게 비부를 가리는 얇은 이불.

거기에 풀어놓은 호박색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아슬아슬하게 젖꼭지를 가리고 앉은 자세 덕분에 살짝 비틀린 허리와 11자 복근이 매끄러운 음영을 그려낸다.

동작 하나하나가 남성의 리비도를 사정없이 자극하는 화보 그 자체다.

유르파의 교육으로 이실리테의 몸가짐이 대꼴에서 은꼴로 넘어간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환인은 그녀의 목덜미를 감싸면서 입술에 키스해주었다.

으응, 짧게 신음을 흘린 이실리테는 부끄러운 듯이 시선을 깔고 입술을 가렸다가…… 하반신을 가렸던 이불을 치우고 슬쩍 허벅지를 벌리며 묻는다.

=저… 주인님? 욕구가 쌓이셨으면…….=

벌어진 허벅지 사이로 탐스럽게 난 호박색 음모와 좌우로 갈라진 분홍색 골짜기가 드러난다.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던 환인은 실소를 흘리며 그녀의 뺨을 살짝 꼬집었다.

욕구가 쌓이지 않았더라도 이 행동이면 실시간으로 욕구가 축적된다는 걸 이실리테는 알고 있을까.

아마 알고 있겠지. 매일같이 그녀의 귀에 너는 매력적이라고 속삭여주었으니 자존감도 많이 자랐을 테고.

환인은 욕구를 가볍게 누르며 말했다.

“그런 게 아니다. 자다 보니 자연스럽게 눈이 떠져서, 낮에 있었던 일을 좀 정리할까 했다.”

대답과 함께 침대에서 내려가는 환인을 보곤 이실리테는 재빨리 가운을 가져와 환인에게 입혀주고 자신도 몸에 걸친 뒤 환인의 뒤를 따라 나갔다.

“…….”

아직 한밤중이지만 거실은 시린 달빛으로 가득 차 있어 전혀 어둡지 않았다.

한쪽 벽을 통으로 채우고 있는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달빛을 잠시 바라본 환인은 푸르게 변해 잠자듯 거실을 둥둥 떠다니는 백려강에게 시선을 주었다.

떠다니고는 있지만 손가락 하나, 눈꺼풀 조금도 움직이지 않다 보니 현실 속의 비현실 느낌이 강하다.

아니, 너무 아름다워서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걸까.

=주인님, 여기 체리 아이스티에요.=

그사이 주방에서 마실 것을 가져온 이실리테가 물방울이 맺힌 차가운 음료수를 건네준다.

체리 향이 은은하게 풍기는 음료를 받아든 환인은 소파에 앉아 새콤하고 차가운 음료를 한 모금 마셨다.

냉방 플레이트 마도구로 객실 내부 온도가 25도에 맞춰져 있지만, 여름이라서인지 조금 더웠는데 덕분에 조금 달아오른 몸이 식는다.

눈을 감고 차가운 음료가 식도를 지나 위장에 도달하며 새겨지는 감각을 음미하던 환인은 눈꺼풀 위를 자극하는 빛의 일렁임에 눈을 떴다.

달을 가리던 구름이 지나가며 강한 달빛이 거실을 비추고 있다.

환인은 환한 달빛 속의 이실리테와 백려강을 말없이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실리테는 이어받은 짐승 혈통의 특성상 루크랑 족 여성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짐승 귀와 짐승 꼬리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지구에서도 정체를 숨기지 않고 편히 돌아다녔을 만큼 지구인과 흡사한 외모.

그러한 요소 덕분에 여자친구들 중 환인의 취향에 가장 근접한 이실리테지만, 압도적인 미모라는 것은 그 취향마저도 누를 수 있다는 걸 백려강 덕분에 알게 되었다.

달빛에 파묻힌 채 거실을 떠다니는 백려강은 말 그대로 날개 달린 푸른 달의 여신이라 해도 솔직하게 믿을 정도였으니까.

그렇다고 여자친구들이 백려강과 비교해 못생겼다는 뜻은 아니다. 그녀들이 백려강의 옆에 있으면 빛이 바랜다고 할지, 태양 옆의 달빛이라고 하면 정확한 표현이 될까.

꽃의 아름다움과 보석의 아름다움을 두고 어느 쪽이 낫다 못났다 따질 수 없는 법이니까.

“…….”

오륜기 모양의 금속 초커를 낀 덕분에 아우라가 봉인되어 지구인이라 해도 믿을 법한 이실리테가 붉은색 음료를 조신하게 마시는 걸 구경하던 환인은 남은 체리 주스를 단숨에 비웠다.

여자친구의 아름다움을 한 번 감상하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쳐다보게 된다.

마차를 타고 이동할 때처럼 한가로우면 몰라도 지금은 안될 말.

본래 목적대로 명상하듯 조용히 눈을 감는다.

어제 자신이 뻗어있는 동안 바깥을 살펴본 환연이 말하기로, 평온의 파동은 빛의 기둥 형태로 펼쳐졌다고 했다.

처음 수십 초간은 반경 수백 미터가 회색빛에 휩싸여 아무것도 안 보일 정도였고 차츰차츰 빛이 옅어지며 거의 2~3시간가량 유지되었다고.

그렇게 변화한 이유는 가슴의 문양 때문이다.

가슴의 문양이 뜨거워지며 평온의 파동이 빛기둥으로 변했고 근접거리에 있는 영혼은 혼재로 변해가던 와중이라 해도 단번에 성불시켜버리는 준 필살기 급의 위력을 낸 것.

그렇다면 다른 영혼술은 어떨까.

자신이 쓸 수 있는 영혼술의 액티브는 강령, 저주, 영혼 화살, 영혼 폭발, 영혼 방패, 평온의 파동이다.

이중 저주와 영혼 화살, 영혼 폭발은 여기 거실에서 시험해볼 수 없지만, 나머지는 이곳에서도 가능하다.

‘영혼 시야도 변화할까.’

먼저 영혼 시야로 문양의 힘을 시험해볼 생각으로 오른쪽 관자놀이를 검지와 중지로 꾹 누른다.

그리고 눈을 뜨며 영혼 시야를 전개했다.

‘……변화가 없군.’

연녹색 물감을 바른 것처럼 변한 이실리테.

마찬가지로 녹색 계통의 인테리어 관상수와 색 변화가 없는 무기물과 백려강.

효과가 없다기보다 영혼 시야가 문양과 이어지지 않은 거겠지.

환인은 낮에 평온의 파동을 펼칠 때를 떠올리며 다시 눈을 감고 내면을 관조한다.

척추를 따라 도도하게 흐르는 훈기와 한기. 영기라 부르는 것들

처음 영기를 느꼈을 때는 실핏줄처럼 얄팍하고 가늘었던데다 몸 전체로 얼마 뻗어나가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전이 실핏줄이었다면 지금은 동맥 정도로 굵어져 척추를 따라 고고하게 흐르고 있으며 거기에서 뻗어 나온 기운은 거미줄처럼 몸 전체를 뒤덮어가는 중이다.

‘이전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 영기로 문양을 건드릴 경우 차원 전이가 발동할 거다. 그렇다면 반대로 문양의 에너지로 훈기와 한기를 움직여 영혼술을 쓴다면.’

…….

‘움직이는군.’

문양이 새겨진 피부가 열기에 욱신거리듯 뜨거워지더니 그 열기가 천천히 뒷목을 타고 머리로 올라온다.

천천히 눈을 달구는 열기.

흡사 스팀 안대를 한 것 같은 느낌에 환인은 눈을 뜨며 다시 영혼 시야를 전개했다.

그리고 바로 앞의 이실리테가 찬란한 빛을 스스로 발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빛 입자가 모인 듯한 아우라와는 전혀 다른 느낌.

“…….”

이실리테뿐만 아니다. 백려강도 그녀에게는 못 미치지만 은은하게 아름다운 빛을 내보내고 있었다.

거실을 장식하고 있는 관상수와 화분의 꽃도 약하지만 비슷한 느낌의 빛을 내뿜고 있다.

환인은 저 빛이 영혼의 강함을 나타내는 거라고 직감했다.

아니…… 영혼이라기보다 생명력?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의 강함?

환인은 왠지 모르게 그 빛이 직업을 각성할 때 본 빛의 강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생각하며 이실리테를 응시하던 중, 이실리테가 당황하는 것처럼 두 손을 모은 것을 보고 물었다.

“왜 그러지.”

=주인님 눈이 지금, 금빛으로 타오르고 있어요…….=

“…거울 있나.”

=여기요!=

……확실히 두 눈이 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칙칙한 노란색을 금안이라 부르는 것과 차원이 다른 황금빛.

동공은 금색으로 물들어 강렬한 금빛을 띄고 있고 동공 주변에는 드라이아이스 같은 금빛 안개가 흘러나와 흩어져간다.

문득 눈이 아려오는 것을 느낀 환인은 문양의 에너지를 차단했고 그 즉시 이실리테에게 보이던 아름다운 빛이 사라지며 눈의 통증도 없어진 것을 확인했다.

=아, 금빛이 사라졌어요.=

“음.”

남은 것은 밤에 불을 끄고 몇 시간이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본 것 같은 뻑뻑함 뿐.

대충 이 에너지의 사용법을 감 잡은 환인은 이어서 영혼의 빛에 뒤덮여있는 왼손을 들어 영혼 구슬을 꺼내려다가…….

‘…이리 와라.’

밤의 어둠에 이끌려, 달의 빛에 홀려 거실로 찾아든 빛과 어둠의 정령을 불렀다.

환인의 손짓과 약한 강제력에 이목이 끌린 하급 정령들이 까르르 웃으며 그의 손에 날아든다.

「이 사람 맞아?」

「맞아, 맞아.」

「놀아줘, 놀아줘!」

파르히스트에서부터 꾸준히 정령으로 만든 영혼 구슬을 핸들링해 놀아주고 가끔 정령석을 갈아서 만든 분말을 뿌려가며 정령들과 호감도를 관리해서일까.

이제는 자신을 알아보고 까르르 웃으며 놀아달라고 조르는 정령들이다.

환연의 이야기에 따르면 자신은 볼 수 없는 몇몇 중급 정령도 환인이 하급 정령들과 놀아주는 것을 보며 ‘재밌겠다.’고 말한다던가.

물론 대화는 여전히 통하지 않고 이쪽이 말을 걸어도 말하는 돌멩이나 나무 정도로 취급하며 중급 정령은 볼 수도 없지만 아무튼.

가까이 다가온 하급 정령들을 구슬로 변화시킨 환인은 그 구슬을 지그시 바라보며 문양에 정신을 집중한다.

…….

‘역시 되는군.’

문양에서 시작된 열기가 이번에는 왼손을 타고 흐르더니 영혼 구슬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회색 영혼 구슬이 금색으로 물들었다.

“이실리테, 이게 보이나.”

=아무것도 안 보여요. 지금 뭔가 쥐고 계신 건가요?=

“그래. 영혼 구슬이다.”

정말 안 보이는지 아쉬워하는 얼굴로 고개를 젓는다.

아까 눈에 문양의 힘을 집중했을 때는 보였고 영혼 구슬에 넣었을 때는 안 보이고, 그러면서 문양 자체의 빛은 또 보이고…….

영혼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은 타인의 눈에 보이지 않고, 그게 아니면 타인의 눈에도 보이는 건가.

“…….”

문양의 힘으로 영혼 시야를 펼칠 때는 문양의 에너지가 조금씩 줄곧 닳는 느낌이었고 신체에도 과부하가 걸리는 느낌이었는데, 이쪽은 원하는 만큼의 에너지만 밀어 넣을 수 있고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도 적게 느껴진다.

문양의 에너지가 흐르는 통로가 되어준 팔이 조금 묵직할 뿐.

금색으로 물든 영혼 구슬을 잠시 살펴본 환인은 구슬을 해방해보았다.

그러자 구슬 속에서 뿅 하고 튀어나온 빛의 정령이 술에 취한 것처럼 해롱거리다 으헤헤~ 웃으며 천천히 흐려지더니 결국 모습을 감추었다.

정령계로 돌아간 듯하다.

기술을 써도 만족한 것처럼 웃으며 정령계로 돌아가 버리니 이상은 없다고 봐도 되겠지.

“이실리테, 이제부터 문양의 힘으로 강화된 강령을 너에게 걸어줄 거다. 이전에 걸어주었던 강령의 느낌을 생각하며 비교해보고 감상을 말해다오.”

=네, 주인님.=

나 자신에게 먼저 걸어서 체크해보아도 되지만, 자신은 평범한 하급 강령도 몸에 부하가 걸린다.

여기서는 근접 직업자로서 몸이 튼튼한 이실리테에게 먼저 걸어보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다.

환인은 신체의 힘, 체력, 순발력을 보편적으로 2배가량 증가시켜주는 하급 정령에 문양의 힘을 주입한 뒤 이실리테에게 강령을 걸어주었다.

=음…….=

자리에서 일어난 이실리테가 가운을 나풀거리며 이리저리 스트레칭을 해보더니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감상을 말해준다.

=산란못에서 싸울 때보다 몸에 차오르는 힘이 조금 더 강해진 거 같아요. 기운도 조금 더 많이 나는 거 같고 몸도 더 가벼워졌어요.=

머리보다 큰 가슴이 출렁이는 것은 둘째치고 발끝으로 통통 튀듯이 움직이는 동작이 매우 가벼워 보인다.

환인은 그 동작에서 이전과 차이점을 읽어내고 결론을 내렸다.

“신체 능력이 2.3배 정도로 강해진 듯하군.”

=정말요? 와…….=

놀란 눈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이실리테.

효과의 강화 외에 표면적인 부분에서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이실리테의 몸이 옅은 어둠에 물든 것처럼 변한 거다.

설마 어둠의 정령으로 강령을 펼쳤다고 그런 건가 싶어 빛의 정령으로 재차 강령을 걸어주자 이번에는 하얗게 물들었고, 바람의 정령으로 걸었을 때는 녹색에 물들었다.

“속성의 힘을 쓸 수 있다거나 하진 않는 건가.”

=네. 다중 검기에도 변화가 없어요.=

그녀의 몸 주위를 떠다니는 두 자루의 빛의 검을 잠시 바라보던 환인은 팔짱을 끼고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유르파는 이런 능력과 형태의 발현에 무의미한 것은 없다고 했지. 어쩌면 속성 저항이 더 높아졌을지도 모르겠군. 시험해볼까.”

=저에게 펼쳐주세요. 제가 확인하는 게 가장 빠르고 간단하니까요.=

“부탁하지.”

먼저 이실리테의 강령을 회수한 환인은 바람의 정령을 몸에 강령시킨 뒤 영기를 소모해 바람을 일으켜 위력을 크게 줄인 풍참風?을 날렸다.

그걸 팔로 막아낸 이실리테는 피부가 살짝 베여 피가 맺힌 상처를 보여주었다.

회복제를 발라주어 치료한 환인은 이실리테에게 다시 바람의 정령을 강령한 뒤 똑같은 위력의 풍참을 날렸는데, 이번에는 피부를 손톱으로 살짝 긁은 것처럼 붉은 흔적만 남았다.

=확실하게 속성에 대한 내성이 생겼네요, 주인님.=

“환영할만한 일이군.”

하급 정령으로 펼친 강령이 이 정도다. 만약 중급이나 상급 정령으로 강령을 건다면 속성 내성도 더욱 올라가겠지.

강령의 지속시간에도 변화가 있을 듯했기에 이실리테에게는 강령을 받은 채로 있어 달라 한 뒤 이번에는 문양의 힘으로 영혼 방패를 펼쳤다.

확인은 방벽으로 만들어낸 검을 직접 휘둘러 체크해보았다.

“……방패 내구가 1.5배가량 높아졌군. 색도 정령의 속성에 맞춘 색으로 변했고.”

평범한 영혼 방패는 열 번의 칼질을 버티고 깨어졌지만, 문양의 힘으로 펼친 영혼의 방패는 15번이나 버텼다.

속성에 대한 내성도 덩달아 높아졌겠지.

이러면 영혼 화살과 영혼 폭발도 1.5배 정도 더 강해지고 속성 피해도 붙었을 것 같지만…….

‘남용은 못 하겠군.’

10번 가까이 기술을 펼친 왼손이 근력 운동을 한 것처럼 떨리고 후끈거린다.

밀어 넣은 문양의 에너지양에 따라 피로감이 달라지는지도 확인해봐야겠지만, 일단은 전체적인 전투력의 증가는 확실히 이뤄냈다고 볼 수 있을 거다.

마지막은 문양의 에너지를 가미한 영기를 영혼에게 흘려 넣어주었을 때의 변화인데…….

환인은 이 자그마한 소란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거실을 둥둥 떠다니는 백려강을 바라보다가 객실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 앞에서 다수의 인기척이 느껴진다.

쿵쿵쿵!

[프라버 집행위원회 소속 2급 집행관 나일렛 필테다! 투숙객은 즉시 문을 열어라! 반복한다! 이쪽은 프라버 집행위원회 소속 2급 집행관, 나일렛 필테다! 5401호실의 투숙객은 즉시 문을 열어라!]

쿵쿵쿵쿵!

소란스럽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거친 남자 목소리에 환인은 얼굴이 굳어진 이실리테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실리테, 들어가서 옷 입고 모두를 깨워라. 전투 준비도 하고.”

=네.=

환인도 방으로 들어가 무덤덤한 얼굴로 옷을 챙겨입으며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능력이 우수한 건지 멍청한 건지.’

예상보다 반나절은 빠르게 찾아온 것은 높게 평가할만하지만, 한밤중에 이렇게 적의를 피워대며 소란스럽게 문을 두드리다니. 생각이 있는 걸까 없는 걸까.

쾅쾅쾅쾅!

[안 들리나! 안에 있는 놈은 당장 문 열어!!]

흑색 셔츠에 바지, 흑색 가죽조끼와 부츠까지 다 챙겨입고 나온 환인은 백려강이 당황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외부의 자극에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군.

「환인 님…….」

“백려강, 집행위원회가 뭐 하는 곳인지 알고 있나.”

「아. 저, 치안 유지라는 명목으로 영주님과 원로원의 지시를 받아 온갖 일을 다 하는 곳이에요. 시민들은 물론이고 한 자릿수인 1급 집행관은 고족들도 두려워한다고 들었……어요.」

1번부터 40번까지 집행부대가 존재하며 한 자릿수는 1급 집행관, 두 자릿수부터 앞 숫자를 따서 2급, 3급, 4급 집행관으로 나뉜다는 설명이다.

숫자가 많아질수록 약하다고.

고개를 끄덕인 환인은 문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가서 문 앞에 몇 명이 있는지 봐주었으면 한다.”

「네? 아, 네.」

재빨리 벽 밖으로 상반신만 내밀었던 백려강이 금방 되돌아와 「남자 둘, 여자 다섯. 그중 남자는 2급 전사와 3급 투사, 여자는 2급 술사 두 명이예요. 집행부대 정복을 입고 있고 다들 검이나 건틀릿, 지팡이 등으로 무장하고 있어요.」라고 알려주었다.

간단히 인식 테스트를 해본 건데 생각한 이상으로 보고의 질이 훌륭하다.

쾅쾅쾅쾅!!

[5401호! 빨리 문을 열지 못하겠나!!]

환인은 속으로 백려강의 평가를 써넣으며 부서질 듯 흔들리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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