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383화 (383/813)

〈 383화 〉 377 행복을 부르는 불행한 파랑새

* * *

니오네브레스에서도 행복을 부르는 길조??는 존재한다.

털빛이 파란 빛깔을 띤 새, 파랑새처럼 니오네브레스에서도 파란 새가 길조?北를 상징하는 것.

그것과 연관되어 푸른 깃털의 조인족은 사람들에게 행운의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고, 그에 대한 연장선상으로 티 없이 푸른 깃털을 지닌 조인족 여성은 사회 고위층 남자에게 행운의 토템폴 이상 가는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그게 같은 고위층의 여성이라면?

거기다 한 번 눈을 주면 뗄 수 없는 미녀라면?

백려강이 찾아온 그 날의 밤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평온한 밤이었다.

신선한 식재료와 좀처럼 손에 넣기 힘든 싱싱한 생선을 입수한 이실리테가 기뻐하며 환인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조리하고, 모두가 밝은 식탁에 모여 즐겁게 식사한 뒤 대욕탕에서 함께 씻으며 조금 야한 광경을 연출하는 밤.

백려강은 향기도, 맛도, 촉감도 느낄 수 없는 영혼 상태로 환인 일행의 저녁 식사를 지켜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주인님, 이것 좀 드셔보세요. 간이 잘 배서 무척 맛있게 됐어요.=

젓가락으로 하얀 김을 모락모락 피워올리는, 껍질을 바삭하게 구운 흰살생선의 살점을 환인의 입에 넣어주는 이실리테.

“살점은 촉촉하고 껍질도 바삭하군. 하지만 전에 먹었던 것보다 살점이 더 탱글탱글한데.”

=식초 물로 밑간을 하는 요리법을 배워서 해본 거예요. 입맛에 맞으세요?=

“그래. 이쪽이 짭짤한 맛 외에 숨은 맛이 느껴져 더 훌륭하군.”

성실하게 음식의 감상을 말하며 맛있음을 표현하는 환인.

=아~ 나도 생선 되게 좋아하는 데에.=

=그래서 고기 맛 두부 스테이크 만들어줬잖아.=

=고기랑 생선은 다르지! 생선 맛도 만들어줘어. 사람이 어떻게 고기만 먹고 살아?=

=어휴. 알았어. 연습해볼 테니까 오늘은 그걸로 만족해.=

=앗싸.=

엄마에게 반찬 투정하듯이 투정을 부리고 그 투정을 받아주는 이실리테와 안느.

「유르파, 나 거기 면 먹을래. 잘게 잘라줘.」

=소스도 더 뿌려줄까?=

「통후추 몇 알만 줘. 가는 건 내가 할게.」

=이 소스도 뿌려 먹어봐. 고기 소스인데 면에 스며들면 더 맛있어.=

「……우응, 진짜 맛있네.」

언니와 여동생처럼 먹을 것을 챙겨주며 보살피고 보살핌받는 유르파와 환연.

6인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하는 다섯 명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백려강은 그 점이 조금 이해되지 않았다.

피가 섞인 사람들보다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더 가족처럼 보이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걸까.

어렸을 때 병약한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뒤부터 백려강은 줄곧 혼자였다.

아버님은 가족애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었고 어머님들은 자기 자식들만 챙겼다.

언니, 오빠와 동생들이란 그저 피만 섞인 타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백려강은 외로웠다.

길을 잃을 것처럼 넓은 정원과 차가운 공기로 가득 찬 저택은 남들이 보기에 화려하고 호화로웠지만, 백려강에게는 그저 조금 큰 새장일 뿐.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푸른 날개가 있지만 투명한 천장이 드리워져 날아오를 수 없는 새장 속의 파랑새.

평생 혼자 울고 지저귀며 남들에게 행복을 물어다 주는 대신 쓸쓸하게 죽고 마는 파랑새.

그게 자신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랬는데…….

「뭐야. 려강, 울어?」

「……네?」

「너 울고 있잖아. 갑자기 왜 울어?」

귀여운 요정님의 이야기에 자신의 얼굴을 만져본 백려강은 정말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영혼도 울 수 있는 거였나요? 신기하네요…….」

「괴롭고 힘든 기억이면 그냥 환인 곁에 딱 붙어있어. 그럼 어지간한 건 다 잊을 수 있을 거야. 환인이 다 잊게 해줄 테니까.」

「그, 그런가요……?」

배가 뽈록 튀어나온 요정님의 이야기에 백려강은 작게 미소 지었다.

그 말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추운 마음 한켠이 따스해지는 느낌.

어차피 남의 의지로 점철된 인생이었고 앞으로도 행복해질 미래가 안 보이는 삶이었다.

늙은 배불뚝이에게 시집가서 전리품 같은 무가치한 삶을 이어가는 것보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쪽이 그나마 유의미할 거라 생각했기에 망설임 없이 첨탑 꼭대기에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할 수 있었다.

그랬는데, 이 작고 귀여운 요정님의 이야기에 백려강은 이제부터는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응. 환인은 별거 안 하는 거 같은데도 그 주변에 있기만 하면 걱정거리가 다 사라져.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쟤들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똑같이 생각하는 거니까.」

다른 분들을 가리키는 작은 요정님의 입에서 사연이 흘러나온다.

빈민굴 출신 비렁뱅이에서 우여곡절 끝에 자신을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 곁에서 검희로 성장한 이실리테.

신체적 컴플렉스로 동족의 곁을 떠나 타향만리에서 살아가다 평생의 굴레가 될 거라 생각한 육체의 짐을 벗어 던지고 거기다 남편감까지 만나 행복을 거머쥔 안느.

종족 출신 탓에 평생 남자에게 빌붙어 모기처럼 살아가다 죽을 거로 생각했던 유르파도 환인에게서 구원을 받았으며 비상도 어린 새끼 때 가족을 잃고 어찌할 바를 모르다 환인에게 주워져 훌륭하게 성장했다.

그리고 자신도.

「아니, 나는 따지고 보면 환인 저거 때문에 이꼬라지가 됐지만… 뭐 지금은 마음에 드니까. 그러니까 너도 환인 옆에 딱 붙어있으면 어떻게든 해줄 거야. 성불하고 싶으면 환인이 성불시켜줄 거고 여행하고 싶으면 여행할 수 있게 해줄 거고.」

「…저는 가족을 가지고 싶은데, 환인 님이 가족도 만들어주실까요?」

백려강의 시선이 환인과 그의 곁에 모여 행복해 보이는 여자들에게 향한다.

=앗? 도령 씻으러 가는 거야? 나도 갈래!=

“그러면 다 같이 들어갈까. 유르파, 이실리테.”

=네. 금방 준비할게요. 주인님.=

=뭐?! 자, 잠깐 기다려! 나 속…옷 좀 갈아입고……!=

=지금 씻으러 가는데 속옷을 갈아입는다니 이유를 모르겠네. 얼른 와, 언니!=

=안돼……! 지금 속옷은 못 보여주는 거란 말이야……!=

짧은 시간 옆에서 보았지만 백려강은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미 그녀들과 깊은 사이였으며 누구 하나 질투하지 않을 만큼 공평한 사랑을 나누어주고 있다는 걸.

이들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는 아이들에게도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주겠지.

이제 와서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같은 염치없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 외로움을 대가로 자신은 지금까지 남들과 비교해 압도적인 육체적 안정과 편안함 속에서 자라왔으니까.

하지만 지금이라면, 죽어 영혼이 된 지금이라면 조금 행복을 좇아도 되지 않을까?

「영혼인데 가족을 가질 수 있나……? 영혼 결혼식 같은 거라도…?」

자신의 심술이라고 해도 되는 질문에 저렇게 진지하게 고민하는 환연의 모습은 백려강에게 있어 따스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말에 따스한 미소는 싹 날아가고 당황만 가득 들어찬다.

「뭐 안되면 환인이 려강 네 남편이 되어서 가족이 되어주겠지.」

「네, 네에에?」

「뭘 놀라고 그래? 아까 밥 먹을 때 보니까 그런 생각이 두 눈에 아주 그득그득하더니.」

「아니, 아니에요! 저는 그런…!」

백려강은 진심으로 당황해서 작은 목소리로 허둥거렸지만, 환연은 웃거나 하는 대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뺄 거야? 지금까지 그렇게 계속 빼기만 하다가 결국은 자살한 거 아냐?」

「…….」

「환인은 자기 행복을 잡을 수 있는 건 자기뿐이라고 생각하니까 네 마음을 솔직하게 부딪쳐봐. 그럼 아마 대부분은 잘 풀릴 거야.」

백려강은 이 손가락 한 뼘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요정님의 이야기에 크나큰 위안을 받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정말…… 그런 걸까? 환인 님께 내 마음을 솔직하게 전달하면…….

「이리 와.」

「네?」

「환인. 려강이도 같이 목욕하고 싶대.」

「……?!!」

환연의 작은 손에 잡혀 끌려가던 백려강은 잠깐 멍하니 있다 화들짝 놀라며 몸을 뒤로 빼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건지 정말 물리적인 힘으로 끌려가고 있었던 것.

=어? 도령, 영혼이 목욕도 할 수 있어?=

안느는 악의 없이 순수하게 의문을 표현했지만, 환연이 환인 대신 대꾸했다.

「너도 진짜 고기도 아닌데 고기 맛 두부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대리만족하잖아.」

=오, 단박에 이해했어.=

실제로 목욕은 못 하겠지만 그래도 분위기라는 게 있다. 함께 욕탕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충족되는 심리적 요소가 있겠지.

“그럼 같이 들어가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함께 목욕탕에 들어가는 것으로 결정되어버렸고, 앗 하는 사이에 뽀얀 수증기로 가득 찬 대욕탕의 물속에 들어온 백려강은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쩔쩔맸다.

그녀도 고위 호족 가문의 자녀. 목욕 시중은 늘 받아봤지만 남이 목욕하는 것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니, 남의 속살을 본 적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빛이 닿지 않는 미궁에서 이실리테와 상반신을 벗고 물수건으로 서로의 등을 닦아주었던 일이 가장 근래에 있었던 일일 정도였으니…….

그런 백려강에게 이실리테, 안느, 유르파의 뽀얀 우윳빛 살결이 주는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닌 수준이 아니었으며, 환인에게 이르러서는 부끄러워 눈길조차 주지 못했다.

쩔쩔매면서도 살짝 벌어진 손가락 틈새로 자신들을 힐끔거리는 백려강의 모습에 안느가 키득키득 웃으며 깨끗이 씻은 몸으로 백려강의 옆에 붙는다.

=려강이 아가씨 부끄러워하는 거 봐. 엄청 귀여워~. 옷을 입은 채인 것도 귀엽네~.=

「아앗…….」

=안느 아가씨, 너무 놀리면 못써.=

유르파도 물방울 모양의 풍만한 가슴을 가리는 것 없이 드러낸 채로 백려강의 근처에 앉으며 안느를 말렸고, 그 뒤를 따라 환연도 자신 전용 나무 목욕 바가지를 가져와 백려강의 근처에 떨어트린 뒤 그 속에 착지하며 묻는다.

=려강. 어때? 물 감촉은 느껴져?=

작은 목욕 바가지 속에 뜨거운 물을 조금 채우고 몸을 담그는 것이 마치 인형이 스스로 움직이며 목욕하는 듯한 귀여움이지만, 그녀는 물론 다른 분들도 전혀 당황하지 않은 모습에 백려강은 혼란스러웠다.

어떻게 다들 이렇게 태연한 걸까. 이렇게 남사스러워하는 내가 이상한 건가?

풍선처럼 물에 둥둥 뜬 유르파의 가슴도 야하고 수면 아래 비치는 안느의 날씬한 몸도 너무 야하다.

목욕 바가지 안에서 작은 목욕탕을 만들어 들어가 있는 환연도 작지만 날씬한 성인 여성의 매력을 뿜어내고 있다 보니 눈을 둘 곳을 찾지 못해 백려강의 당황은 커져만 간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는데 계속 무시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

「네, 네에…….」

용기를 쥐어짜내 간신히 대답한 백려강은 안느가 가까이 다가와 자신의 팔을 만져보는 것에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앗, 함부로 만진 거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진짜 만져지는 게 신기해서. 영혼인데 어떻게 감촉이 느껴지는 거지……?=

「아니에요. 저… 저도 신기하니까요.」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조금이라면 훔쳐봐도 되지 않을까, 같은 여자니까 살짝만 보는 건 괜찮지 않을까 조금 야한 생각을 하는 백려강이다.

오히려 이렇게 흠칫거리며 반응하는 게 실례가 아닐까?

「그런데 언제까지 이렇게 격식 차리면서 피곤하게 지낼 거야? 그냥 서로 편히 말 놓는 게 편하지 않아?」

=뭐? 넌 애초에 배려라는 걸 안 하잖아. 생각한 걸 그대로 말로 꺼내면서.=

「요즘은 나도 신경 쓰고 있거든!? 이제 너희들 함부로 막 안 만지잖아!」

=어? 그러고 보니 그러네.=

=연이가 요즘 많이 바뀐 건 맞아. 말하는 것도 조금 둥글둥글해졌고.=

「아무튼, 얘 봐. 이대로 내버려 두면 언제까지나 주위를 맴돌면서 격식만 차리고 있을 거야. 숫기가 없어도 너무 없잖아. 아까 우리 밥 먹은 걸 보면서 울기까지 했다니까?」

=진짜?=

거기다 백려강은 약간의 난감함에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자신을 편히 대하는 것에…….

‘조금 기쁘다.’

조금이지만 기쁘다고 생각했다.

종종 벌어지는 성내 파티에 만난 다른 영애들이나 자신의 시중을 드는 하녀들은 자신을 백려강이 아니라 프라버 백씨 가문 둘째 딸로만 봤었다.

소꿉친구인 레심마저도 어느 순간부터 그랬었다.

하지만 이들은 백씨 가문의 둘째 딸이 아닌 백려강으로 봐주고 있다.

자신을 평범한 여자로 봐주는 그녀들의 행동이 기뻐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며 가슴이 훈훈해진다.

이렇게 있다 보면 나도…… 그녀들의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겉으로만 친구라고 포장하는 가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정말로 순수하게 진심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

그때 백려강의 머릿속에 조금 전 환연이 한 말이 떠올랐다.

네 마음을 솔직하게 부딪쳐 보라는 말.

환연의 의도는 환인에게 네 전부를 보이란 말이었지만, 백려강은 조금 당황한 나머지 편의 좋게 해석하며 용기를 냈다.

「저는…… 좋아요. 저도, 여러분과 친, 친구가 되고 싶거든요!」

한 번도 이런 말을 해본 적 없는 것처럼 어색하기 짝이 없는 발언.

세 명은 잠시 멀뚱멀뚱 백려강을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 좋네! 앞으로 편하게 려강이라고 부를 테니까 너도 안느라고 불러!=

=나도 잘 부탁해, 려강 아가씨.=

백려강은 웃으며 자신의 옆에 바짝 붙어오는 안느와 유르파의 행동에 표정이 제대로 지어지지 않을 정도로 행복해졌다.

가면 뒤에 숨겨진 의도와 감정을 읽을 필요 없이 그저 드러난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대화는…… 대체 얼마 만일까.

마음의 빗장을 완전히 열어버린 백려강은 자꾸만 들어 올려지는 입매를 감추며 자신이 어떻게 환인과 만났는지 궁금해하는 그녀들에게 자신의 보물 같은 추억을 꺼내주었다.

=우와, 그래서 정략결혼을 생각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혀서 가출했던 거구나?=

=고위 호족 가문은 다들 그런 편이지. 여자는 정략결혼의 도구일 뿐이고.=

=저번부터 생각한 건데 율이 언니는 의외로 고위 호족의 삶을 잘 아네?=

=자기를 만나기 전에는 그들을 상대로 화장품이랑 물약을 팔았었으니까 조금 지식이 있을 뿐이야. 아무튼, 그렇게 가출한 덕분에 웨이포드에서 자기를 만난 거였네?=

「네. 저는 단지 레심을 따라 움직였을 뿐이었지만요. 환인 님도 레심이 발품을 팔아가면서 직접 찾았다고 들었어요.」

「아까 그 회색 늑대 머리 남자 말이지? 확실히 충직하게 보이긴 했어.」

그때부터 백려강에게 목욕 중이라는 사실은 문제 되지 않았다.

주위 상황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지만, 그 위에 친구라는 필터가 덧씌워지니 안느와 유르파, 환연과 나누는 대화가 즐겁고 행복해 다른 것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던 것.

하지만 그것도 환인이 다가오면서 처음의 수줍고 부끄러워하던 모습으로 되돌아가 버렸다.

“즐거워 보이는군.”

「……!!!」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한 상태가 되었다.

=앗?! 잠깐, 려강 아가씨!?=

=우와 가라앉고 있어! 려강, 괜찮아?!=

가리는 것 하나 없이 전부 드러난 남자의 나신, 그것도 사랑하는 남자의 태초 모습을 정면에서 목격한 백려강이 강한 현기증을 느끼며 그대로 가라앉아버렸던 것.

자신의 팔이며 어깨를 잡는 친구들의 손길을 느끼며 이것저것, 뭔가가 만족스러워진 백려강은 그대로 성불해버릴 것만 같은 충족감을 느꼈다.

그러나 성불하지 않은 것은…… 아니, 성불하지 못한 것은 그녀의 마음속에 살짝 야한 미련도 함께 싹을 틔웠기 때문이겠지.

=와, 려강이 진짜 규방 처녀로 자랐나 보네. 남자 알몸 봤다고 기절하다니.=

=그냥 남자가 아니라 사랑하는 남자라서가 아니겠니?=

“…….”

환인의 조금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봤다면 소심해져서 쭈구리가 되어버렸겠지만 어쨌든.

새장을 나와 자유를 되찾은 파랑새에게 앞으로는 새롭고 행복한 일이 많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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