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3화 〉 357 숲 옆 마을 크라빈
* * *
환인이 크라빈 마을로 복귀한 지 이틀째 되는 날.
산란못으로 끌려갔던 여자들은 이틀간 평온의 파동을 17번이나 쬔 덕분에 전원 완치 판정을 받을 만큼 제 삶을 되찾을 수 있었다.
기생촉수 두꺼비에게 삼켜졌던 여자들은 행동에서 드러나던 미묘한 위화감이 모두 치료되었다. 중핵의 씨받이가 되었던 여자들도 웃음을 되찾을 정도로 정신과 기력을 회복했다.
그건 금방이라도 자살할 것처럼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리던 유미안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대부분을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는데 쓰던 그녀였지만, 평온의 파동을 쐴수록 기운을 차리더니 이제는 무기력하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의욕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
자신이 원한다면 몸도 기꺼이 바칠 것 같은 젊고 아름다운 120명의 여자들 틈에서 빠져나온 환인은 오렌지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슬슬 떠나야 할 시간이군.
저녁노을이 질 무렵 구호소를 나와 별채로 향하던 환인은 마을 관청 방향에서 주인을 발견한 강아지처럼 달려오는 유미안을 발견했다.
나이는 40대 중반으로 중년이나 다름없지만, 전사 직업자의 신체 활성화와 신체 최적화 덕분에 라비올라와 나란히 서 있으면 언니로밖에 안 보이는 유미안이다.
그런 그녀가 하이넥 스타일의 가슴 윤곽과 매끈한 겨드랑이를 드러내는 웃옷에 잘록한 항아리 모양 골반을 드러내는 주름치마를 입으니 마을의 청년들이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은인님. 이제 돌아가는 길이신가요?=
“예. 유미안 씨도 퇴근하시는 겁니까.”
한 번 지적해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못 하게 했더니 처음 봤을 때처럼 은인님이라고 불러오는 유미안이다.
=네. 일은 일찍이 끝냈지만 마을 구석을 돌아보느라 조금 늦었어요.=
사실은 환인이 돌아가는 시간에 맞추기 위해 일부러 마을을 순찰한 거지만.
그런 기색을 드러내지 않은 유미안은 호감과 호의가 가득 묻어나는 모습으로 옆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유미안과 말없이 길을 걷던 환인은 밥 짓는 희미한 냄새와 함께 각자 집으로, 주점으로, 여관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입을 열었다.
“유미안 씨, 이제 아가씨들도 건강해졌고 당신도 기운을 되찾았으니 그만 떠나려 합니다.”
=…아.=
역시 떠나시는구나…….
영혼 기사님들이 이런저런 생필품을 구하고 분주하게 짐 정리를 하는 모습에 조만간 떠나시겠구나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들으니 조금 충격이다.
유미안은 씁쓸한 웃음이 표정에 드러나려 하는 것을 억눌렀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잖아. 실망하지 마. 성자님 같은 분이 우리 마을에만 오래 머무실 수는 없는 일이잖아.
거기다 성자님의 곁에는 대단한 분들이 많으시니까…… 나 같은 여자가 끼어들 자리 같은 건 당연히 없고.
‘하지만 이대로 보내드릴 수는 없어.’
정말 돈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것을 성자님에게 받았다. 하지만 자신과 마을이 성자님께 드릴 수 있는 거라곤 고작 금화 몇 푼뿐.
성자님은 미궁도 제패하실 정도의 고명한 모험가이시기도 하다.
바라신다면 돈도 막대하게 벌어들이실 텐데 그런 분께 고작 몇 푼 금화를 드리는 것은 오히려 그분의 명예를 모욕하는 일이 되겠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뭘 드려야 그분의 기억 속에 자신과 크라빈 마을이 남아있을 수 있을까.
딸과 의논하기 위해 저택에 도착한 유미안은 곧바로 거실을 찾아갔지만, 그곳에서 딸을 발견할 수 없어 의아해했다.
이 시간이면 언제나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스리븐. 라비는 어디 있지?=
=아가씨는 4시간 전 별채에서 돌아오신 뒤로 줄곧 방에 계십니다.=
=방에?=
이야기를 들어보면 방에 틀어박혔다는 뜻인데.
집사의 말을 듣고 딸의 방을 찾아간 유미안은 성자님이 돌아오신 뒤 밝고 명랑한 원래 모습을 되찾았던 딸이 이전처럼 완전히 풀이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노크하고 방에 들어서자 딸이 울먹이며 말한다.
=엄마…… 성자님께서 내일 떠나신대요…….=
자신을 닮아 똑똑하고 머리도 좋은데다 비술사로서 빠르게 성장 중일 만큼 능력도 있는 딸.
평소 남자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딸이 주제도 모른다는 말을 들을 정도인 어떤 분을 사모하게 된 모습에 유미안은 쓴웃음을 흘렸다.
설마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는 것까지 자신을 닮을 줄이야.
딸의 부루퉁해진 양볼을 어루만져주던 유미안은 불현듯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성자님이 여느 영혼사님들처럼 이타적이고 이성적이셨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생각.
‘어차피 넘볼 수도 없는 분이고 마땅히 드릴 것도 없다면 그분을 즐겁게라도 해드려야지…….’
남자들은 젊고 아리따운 여자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런 남자들은 대부분 젊고 예쁜 모녀를 함께 따먹는 것을 로망이자 낭만으로 여긴다고 들었다.
자신은 40살이 넘었지만 다행히 전사 직업자다. 외모만큼은 마을의 젊은 것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딸 또한 자신을 꼭 닮아 이쁘기 그지없다.
딸과 결혼할 상대라면 함께 몸을 섞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될 일이지만, 성자님은 내일 떠나신 뒤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분.
훌쩍이는 딸을 가만히 바라보던 유미안은 결정을 내리고 딸을 불렀다.
=라비. 이 엄마 이야기 좀 들어보겠니?=
그렇게 서두를 꺼낸 유미안은 자신의 설명에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가 서서히 혹하는 표정이 되어가는 딸을 보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딸을 설득하는 것은 생각대로 어렵지 않았다.
여행자에게 몸을 허락하는 일은 촌락이나 마을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 그렇다고 자신들처럼 고족에 직업자인 여자들이 여행자에게 몸을 대주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없다.
하지만 그것도 상대적이다. 성자님 같은 분이라면…….
=그치만 엄마, 만약 엄마랑 나랑 동시에 임신하면 어떻게 해?=
=너에게는 어린 동생이 생기는 거고 엄마한테는 손녀가 생기는 것뿐이야.=
사회 통념적으로도 문제 될 일은 없지만, 그래도 엄마와 함께 성자님에게 안긴다는 게 조금 그런지 고민하는 라비올라에게 유미안이 ‘싫음 말고’식으로 툭 말을 던졌다.
=내키지 않는다면 그만두렴. 엄마는 성자님에게 그나마 좋은 경험을 드리고 싶지만, 네가 싫다는 걸 억지로 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럼 엄마 혼자 하려고? 그래서야 그냥 평범한 성접대일 뿐이잖아. 거기다 아무리 엄마라지만 영혼 기사님들한테는 비교도 안 되는데…….=
=요게.=
딸이면 여기서는 엄마 편을 들어줘야지!
찰싹 엄마의 매콤한 사랑이 담긴 등짝 스매시에 라비올라가 몸서리친다.
=아파! 내가 틀린 말 했나 뭐!=
=맞는 말이지. 처맞는 말!=
찰싹찰싹!
=꺄아악! 진짜 아프다니까!=
연속된 등짝 스매시에 도망치려는 딸래미의 팔을 잡고 묻는다.
=됐고! 어쩔 거야? 진짜 안 해?=
엄마와 첫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니…….
평소였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라비올라도 내심은 유미안의 의견에 동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들이 성자님께 드릴 것이 없다.
자신이 무언가를 제작해드리고 싶어도 부여술의 전문가인 유르파 님이 계시고, 그렇다고 재산을 떼어드리자니 마을을 복구하는 데 쓴다고 유동 자산이 거의 바닥난 상태다.
엄마 말대로 고작 금화 몇 닢을 드리자니 도시의 대상단 주인 앞에서 풋내기 코흘리개가 자기 돈 많다고 자랑하는 꼴.
=……하는 대신 내가 성자님이랑 먼저 할 거야.=
마지못해 내미는 조건이었지만, 애초에 유미안은 딸에게 처음을 양보할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하나뿐인 딸이 아닌가.
…잠깐.
=라비 너 처녀니?=
=아, 아닌데? 경험 많은데?=
척 봐도 숫처녀 같은 유감스러운 대답에 유미안은 이런 애가 내 딸이라니, 같은 표정을 지었다.
=왜, 왜 그렇게 보는 건데!=
=기껏 예쁘게 낳아줬더니……. 그동안 연애 한 번 안 하고 뭐했어?=
=…….=
애써 한 거짓말이 금방 탄로 난 덕분에 얼굴이 확 붉어진 라비올라가 입을 꾹 다물었다.
유미안이 우려하는 표정을 짓고 방안을 서성이기 시작한다.
=이를 어쩐담. 남자들은 숫처녀를 안 좋아하는데……. 이제 와서 경험하는 것도 무리고…….=
가만히 듣자 하니까 진짜. 라비올라는 엄마의 잔소리에 대놓고 불퉁한 티를 드러냈다.
=엄마도 첫 경험에 나 배고 마을로 돌아왔잖아. 경험은 그게 마지막이면서.=
=한 번이라도 해 본 거랑 한 번도 못 한 거랑은 하늘만큼 땅만큼 차이 나는 법이야. 기회가 없었다는 말을 할 셈이라면 관두렴.=
12살에 비술사로 각성한 뒤 19살까지 중북부에서 가장 발전한 대도시, 프라버에서 지낸 딸이다. 이쯤 되면 안 했다가 아니라 재주가 없어서 못 했다는 말이 어울린다.
=…….=
청개구리처럼 뺨을 부풀리고 불만을 표시하는 딸의 모습에 풋, 웃음을 흘린 유미안은 자기 방으로 돌아와 속이 훤히 비치는 회색 망사 캐미솔에 시스루 가운을 꺼내 딸에게 주었다.
=냐나 애들한테 시중받아서 몸 깨끗하게 씻고. 그 뒤에 3층 특별실에서 기다리고 있어. 엄마는 성자님께 다녀올 테니까.=
=응…….=
라비올라는 엄마를 보내놓고 건너편이 훤히 비치는 캐미솔과 가운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봤다.
사실은 몇 번, 프라버 마술학원에 다닐 적 거사를 치르는 단계까지 갔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 처녀였어? 미안. 처녀는 좀 부담스러워서.’라던가 ‘뭐? 아…… 미안한데 안 되겠다. 그야 처녀는 잘 못 하기도 하고 재미없잖아.’라는 소리를 들으며 퇴짜 당했다.
어떤 놈은 ‘야. 진작 처녀라고 말하지! 시간만 날렸네.’ 등의 개소리까지 지껄였었다.
아니 처녀 딱지 떼려고 해도 남자들이 죄다 부담스럽다느니 질척거릴까 싫다느니 하면서 거부하는데 어떻게 처녀를 버리라는 건데? 여자가 무슨 태어날 때부터 비 처녀인 줄 아나?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며 짜증을 부렸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입 다물고 있었으면 될 일이었다.
아마 친구들도 전부 첫 경험일 때는 입 꾹 닫고 처녀가 아닌척하면서 뗐던 거겠지.
그러한 기억이 떠오르자 라비올라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한 남자가 그려진다.
‘성자님도 처녀는 안 좋아하시려나…….’
……이번에는 처녀 아닌 척 그냥 입 꾹 다물고 있어야겠다.
라비올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냐나를 불러 목욕 시중을 부탁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별채로 돌아와 여자친구들과 저녁 훈련을 진행한 후 목욕과 식사까지 마친 환인은 거실에서 노트북을 꺼내 자료 정리를 시작했다.
인터넷 연동 없이도 볼 수 있도록 소장권으로 구매해 노트북에 넣어둔 기술 서적과 전문 서적은 단순히 권수로만 따져서 2,300여 권 정도.
용량으로 치면 테라바이트에 가깝다. 이걸 대충이지만 내용을 읽고 용도에 따라 분류하는 작업은 매우 길고 지난한 작업이었다.
「…….」
“…….”
「…….」
그리고 노트북 베젤 위에 앉아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환연 때문에 신경까지 분산되는 상황.
그녀의 시선을 더는 무시하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지.”
「나도 이제 사람의 예의 같은 거 조금은 알게 됐거든?」
질문에 맞지 않는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본론을 꺼내기 위한 화두라는 걸 안 환인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환연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지금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물어도 되는지 걱정돼.」
생각해보면 초반의 배려할 줄 모르는 이기적이고 자기주의적인 모습은 이제 거의 없어진 환연이다.
호기심이 생기면 일단 풀거나 만지거나 해봐야 직성이 풀리던 성격도 먼저 물어보거나 허락을 받고 움직이게 되었고 집 안에 있기보단 집 밖, 비상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실리테가 만들어주는 음식을 당연하다는 듯이 먹기만 하던 것도 이제는 밥 먹기 전, 그리고 밥 먹은 뒤에 이실리테에게 잘 먹는다고, 잘 먹었고 맛있었다고 인사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 환연이 우회적으로 범상치 않은 질문이 있다고 말한다.
“무슨 질문이기에 그러는지 궁금해지는군.”
「성교랑 관련된 건데 해도 괜찮아?」
“대답을 아무 데서나 떠들고 다니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괜찮다.”
「응. 말해도 환인한테 허락받고 말할게. 그럼 질문한다?」
여자친구들 앞에서 스스럼없이 섹스보지자지를 말하고 그녀들의 민감한 곳을 마음대로 터치하고 만지던 환연이라곤 믿기지 않는 모습.
여자친구들의 교육이 빛을 발휘한 장면이라고 생각하던 환인은 이어진 환연의 질문에 흠, 자기 자신을 고찰했다.
「환인은 여자가 안겨 오면 그게 누구든지 다 좋은 거야?」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아니다.”
「과정도 설명해줘.」
“음……. 사람이 섹스를 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육체의 쾌락을 즐기기 위한 것과, 상대방과 교감을 얻고 친밀감과 유대감을 쌓기 위한 걸 꼽을 수 있겠지. 하지만 나는…….”
육체의 쾌락보다 능력의 성장 쪽에 치중하고 있다.
여자친구들과 잠자리는 그녀들과 유대감과 친밀도, 거기에 영기의 축적이 목적이지만 다른 여자들은 다르다.
「그러니까 누구든지 다 좋은 건 아니고 조건이 있다는 거네.」
“네가 합류하기 훨씬 이전, 그녀들과 정식으로 사귀기 전에는 영기를 모으기 위해 내가 정해놓은 기준에 충족되기만 하면 누구든 상관하지 않고 섹스를 했었다.”
「기준이 어떻게 되는데?」
“남자친구나 남편이 없을 것, 미성년자가 아닐 것. 생물학적으로 여자일 것.”
「그랬는데 지금은 유르파랑 이실리테하고 안느가 있어서 안지 않는다는 거야? 걔들한테서 얻는 영기가 많아서?」
“아니. 일반인만 이제 안지 않을 뿐이다. 직업자라면 다가오는 여자는 마다하지 않지만, 직업자 정도가 되면 쉽게 몸을 허락하지 않으니 들이는 시간과 노력 대비 효율이 나오지 않아서 시도하지 않고 있다.”
「그렇구나.」
“그건 갑자기 왜 묻지.”
「……나도 환인이랑 하고 싶다고 하면 받아줄 거야?」
저녁 훈련 전에 찾아온 유미안이 밤에 자신을 찾아와달라고 부탁했었다.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든 표시하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는데 성심성의껏 모시겠다고 한 것을 보면 성접대일 가능성이 크다고 환인은 판단을 내렸었다.
그 자리에 환연도 있었는데 아마도 이런 질문을 하게 된 계기가 그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환연.”
함부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고민한 환인은 조용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응?」
“내가 이실리테와 안느, 유르파와 깊은 사이가 된 것에는 그에 걸맞은 이유가 있었다.”
정확히는 자신을 설득할 구실이다.
그리고 그 구실은 그저 하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랑 할 수는 있다는 거네?」
“이유만 있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지.”
「그게 환인이 특이하다는 증거야. 보통은 이런 작은 몸의 요정이랑 한다는 건 생각 못 하잖아.」
“지구에는 플라토닉 러브라는 철학이 존재한다. 육체적인 교감이 없는 순수한 정신적인 사랑을 말하는 데 그런 거에 비교하면 안 될 것도 없지.”
「후후. 환인은 극한의 가능충이었네.」
“네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까 가능한 거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충인족이나 동물 비율이 70%이상 되는 수인과는 무리다. 숲의 수호자라는 반인반록과 함께 왔던 요정도 안된다.”
8살에서 10살 남짓해 보이던 외모의 요정을 떠올린 환연이 고개를 끄덕이다 물었다.
「70%라면 어느 정도야?」
환연의 질문에 환인은 예술 쪽에서 자료로 받아둔 대량의 이미지 중 퍼리 쪽의 자료를 보여주었다.
「이건 그냥 루크랑 족 남잔데? 흐응. 환인은 플뢰쪽 성 취향에 가까운가 보네.」
“……그러고 보니 그렇군.”
아무튼, 사람은 극한의 가능충이어서 시체와 하는 것에 흥분하거나 대소변을 먹으며 흥분하는 성벽도 있을 정도라고 하자 환연의 얼굴이 예쁘게 찡그려졌다.
「시체랑? 히에엑….」
“시체애호가라고 하기도 하지. 이쯤 되면 정신병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나랑도 할 수 있다는 거지?」
확답을 받으려 하는 환연의 꿍꿍이를 읽어 보려 했지만, 딱히 악의나 장난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환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환연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노트북 손 받침대로 내려와 그 위에 쪼그려 앉아 손바닥으로 터치패드를 움직여 그림 파일을 이리저리 넘겨보기 시작한다.
「와, 이건 기계라는 거지? 쇠로 만들어진 기계한테 흥분하는 사람도 있구나.」
환연이 이런 질문을 하고 확답을 받으려 한 이유가 뭘까.
이실리테, 안느, 유르파 셋과 몸을 섞고 있어서? 이쪽은 여자친구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와 있지만, 환연은 어정쩡한 포지션이어서?
그녀를 동료로 받아들일 때 능력이 안정화되고 자기 한 몸을 지킬 수 있을 때까지 보호해준다고 이야기했었다.
어쩌면 거기에 불안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환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환인은 작업에서 손을 떼고 노트북 화면을 올려다보는 환연을 지켜보며 유미안과 한 약속 시간까지 시간을 보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