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7화 〉 351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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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에 이어진 교육을 끝낸 뒤 휴식 시간에 환인은 여자친구들에게 스마트폰을 나누어주었다.
=오. 이거 영화에서 봤어. 스마트폰이라는 거지?=
“그래. 사용법은 깊게 파고들면 복잡하고 간단히 쓰려 하면 간단하다. 일단은 본연의 기능인…….”
환인이 가르친 것은 전화하는 법과 사진 기능, 그리고 시계를 보는 법 세 가지뿐이라 그녀들은 금방 배웠다.
문자가 아니라 그림 아이콘으로 표시되기에 외우기 수월했던 탓도 있다.
간단한 설명 끝에 여자 친구들이 서로에게 전화를 해보고 사진도 찍어보며 즐거워하는 것을 구경하던 환인은 불현듯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위상석도 존재하지 않고 괴물도 없는데 너희는 위상력을 쓸 수 있고 사용한 위상력이 회복된다는 점도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군.”
위상력이 존재한다면 위상력을 몸에 받아들여 태어나는 마수나 성수가 존재해야 할 테고 각성 현상도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지구에 그런 생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것에서 비롯된 의문을 입에 담자 유르파가 환인의 입에 달콤한 꽈배기 모양의 과자를 넣어주며 물었다.
=혹시 자기가 위상력을 못쓰는 거랑 관계있지 않을까?=
“인종이 위상력과 맞지 않는 체질일 가능성도 있긴 합니다만…….”
=그것도 그런데 아우라가 왜 안 보이게 됐는지 그 사실도 중요할 거 같은데 말이야.=
양파맛 고리 모양의 과자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것만 먹던 안느는 탁자의 나뭇결무늬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이실리테의 뺨을 콕 찔렀다.
=……응?=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주인님 말씀에 느껴지는 게 있어서……. 안느, 너 지금 위상력 회복량이 어느 정도야?=
=나? 평소랑 다를 게…… 잠깐만.=
장난칠 표정이 아님을 눈치챈 안느가 치료의 성술을 허공에다 펼치고 눈을 감았다. 그 행동에 뭔가를 느낀 유르파도 허공에 위상력을 일부 낭비한 뒤 마찬가지로 눈을 감는다.
잠시 후, 눈썹을 한차례 찡그린 안느가 그대로 눈을 떴다.
=위상력 회복량이 평소보다 절반밖에 안 되네. 언니는 어때요?=
=나는 그보다 더 많이 줄었어…… 평상시의 1/4도 안 되는 거 같아.=
둘의 이야기에 이실리테가 미간을 약하게 좁히며 말한다.
=저는 1/10까지 줄었어요. 혹시 아우라가 사라진 게 위상력 회복량이 줄어든 거 하고 관련이 없을까요?=
=……!=
놀란 유르파가 황급히 위상력 회복 기능을 부여한 팔찌를 벗어 안쪽을 들여다본다.
=아앗?! 위상석이!=
=……어?!=
안느도 황급히 반지를 벗고 안쪽을 확인하곤 꺅, 비명을 질렀다.
반지 안쪽에 박혀있던 위상력 회복 기능의 위상석이 크게 소모되어있었기 때문.
=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소리치고 후다닥 방으로 달려들어 간 유르파가 천 주머니 하나를 가지고 나와 그녀들을 향해 재촉한다.
=얘들아, 여기에 위상석이 박힌 마도기랑 마도구랑 전부 다 담아! 자칫 잘못하면 순식간에 위상석이 증발할 거야!=
이실리테와 안느도 재빨리 방으로 뛰어들어가더니 가방을 가지고 나와 속에서 자신들의 장비를 쏟아낸다.
구세의 빛과 천벌의 망치, 성벽의 방패에 몇 종류의 액세서리, 천상의 장막과 레드릭, 연꽃 티아라에 액세서리 등이 쏟아지고, 착용 중이던 것도 모두 벗어 집어넣는다.
환인도 개인용 아공간 주머니를 열어 수련용 마도구와 천칭, 구원, 스팀펑크 단검을 꺼내 집어넣고 착용 중인 바람 가호 반지, 신체 활성화의 목걸이, 충격흡수 구리반지, 핏빛 위상석 목걸이도 벗었다.
“유르파, 이건 보존 주머니입니까.”
=응. 보존 주머니의 원리는 외부와 내부를 격리해서 바깥 환경에 주머니 안쪽이 영향을 받지 않게끔 하는 거거든. 여기에 넣어두면 위상석이 소모되지 않을 거야. 그치만…….=
한숨을 푹 내쉰 유르파는 특히 위상석 회복 같은 마도구는 수명이 절반은 줄었을 거라며 울상을 지었다.
“이실리테의 위상력 회복량으로 미루어본다면 감소한 회복량의 일부를 마도구 본체에 박힌 위상석의 위상력으로 보태서 수명이 줄어든 거겠군요.”
=응……. 다른 마도구는 큰 소모가 없었는데 위상력 회복 기능은 자기 말대로 그이유 때문에 수명이 대폭 줄어든 거야. 내가 확실하게 챙겼어야 했는데 실수했어. 미안해…….=
=이야기를 들어보니 흔치 않은 일인 것 같은데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오히려 이슬이가 빨리 발견해서 다행이야. 아니었다면 마도구가 그대로 쓸모없어졌을 테니까.=
=그러네. 고마워, 이슬이 아가씨.=
=아니에요. 눈치챈 건 좀 됐는데…… 미리 말하지 않아서 저도 미안해요.=
마지막으로 방벽과 그리모암의 유물인 허리띠, 팔찌를 풀어 건네주자 유르파가 으음~ 세 가지 장비를 살펴보더니 다시 환인에게 내밀었다.
=방벽은 그냥 써도 될 거 같아. 방벽은 위상석을 쓰지 않고 마력문을 새긴 뒤에 외부의 위상력을 끌어당기고 그걸로 유지하는 거거든. 다만 니오네브레스만큼 유지되진 않는다고 생각해야 해. 그리고 그리모암의 유물은…… 으음. 신기하네.=
“유물을 이곳에서도 아무런 영향 없이 쓸 수 있는 겁니까.”
=응. 유물이라서 그런가?=
환인은 그리모암의 혁대와 완륜을 다시 착용하며 자기 생각을 말했다.
“그리모암의 유물은 그리모암이 미궁을 돌파하며 바란 소원이 형성된 물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드는군요.”
=……유물로 분류되는 것들은 현시대에서도 그 원리를 규명해내지 못한 게 대다수니까……. 자기 말대로라면 설득력이 생기네.=
그사이 안느와 이실리테가 숙덕거린다.
=만약 위상력을 다 쓰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리 신체 능력은 위상력으로 유지되는 거잖아.=
=……몸이 약해지는 거 아냐?=
=으, 위상력을 아껴야겠네…….=
여자친구들의 우려 섞인 대화를 들으며 환인은 빛으로 뒤덮인 왼팔에 시선을 주었다.
그녀들은 곤란하겠지만, 최소한 자신은 이런 현상에서 자유롭다.
낮에 외출했을 때 지구의 여자들도 자궁에 영기를 품고 있는 걸 확인했다. 훈기는 여자의 영기를 흡수하면 회복되고 숲이나 자연 속에도 정령이 존재하는 걸 보았으니까.
“…….”
그러나 어제오늘 짧게 돌아다녔지만 사람의 영혼은 한 번도 보지 못했었다.
과연 이 세계에도 영혼이 존재할까?
환인은 문양이 새겨진 가슴 쪽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겨 들었다.
지구로 귀환한 지 며칠이 지났다.
일행은 모처럼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중이었다.
하루이틀만에 한국의 기초 상식을 전부 알려준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첫날에는 낙오가 벌어졌을 경우를 대비한 지식을 전했다. 이튿날에는 근처 서점에서 한글 교보재를 구매해 한글 읽는 법을 알려주었다.
대화는 통역 현상으로 어떻게 얼버무린다 해도 현대의 소통은 대부분 스마트폰이나 모니터, TV의 액정으로 이루어진다. 글을 익히는 것은 권장이 아니고 필수.
환인의 여자들은 환인이 지식을 전달해줄 때를 제외하곤 거실의 카펫 위에 엎드리거나 누워 과자와 음료수를 먹으며 영화를 시청했다.
바로 앞에 돌핀 팬츠나 숏팬츠등을 입어 하얗고 늘씬한 다리와 탱글탱글 탄력 넘치는 히프, 연인처럼 서로 붙어 영화를 보는 그녀들의 자태가 환인의 주의력을 방해했지만, 환인도 그 시간에 니오네브레스로 가져갈 만한 물건이나 기술을 꼽아보았다.
하지만 마땅찮은 항목이 보이질 않았다.
즉시 쓸만한 기술도 아니고 자신의 여행길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니오네브레스의 산업은 허술한 것 같으면서도 어느 정도의 기술력은 가지고 있다. 환인은 기술력에서 부족한 부분은 위상력과 술법, 마도구로 보강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아무튼 금속 가공, 제련, 광맥 채굴 기술은 마도구와 위상력의 보조로 현대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건축 쪽도 의외다 싶을 만큼 간단한 부분이 낙후되어있는가 하면 7층 빌딩이나 고층 첨탑 정도는 가볍게 지을 건축기술이 있다.
연금술도 존재하는 만큼 화학에도 어느정도 기술이 축적되어있고 의복도 패션이라는 개념이 있을 만큼 방직이나 직조도 수공예에서부터 공업화 직전의 수준이 있었으며 안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선박과 조선도 상당한 기술이 축적되어있다.
음식과 요리 문화도 향신료 요리의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커리가 존재할 정도이며 문화 또한 극장과 연극이 존재하며 사람의 욕망을 찌르는 합법 도박장 및 성매매가 존재한다.
의술 쪽은 성술과 회복약 등이 있어 잘 발달하지 않았지만, 애초에 지구인과 니오네브레스인의 신체 구조가 같을 거라 보기 어렵기에 의술은 제외다. 기껏 해봤자 수술 개념과 수술 도구 등이 필요할까.
그나마 빠르게 적용할 수 있고 쓸만한 것이 유전자 조작과 개량을 통한 지구산 농작물 품종(씨앗을 가져가 심으면 되니까), 그리고 증기기관에서 파생되는 기술 정도.
이것도 들이는 노력 대비 수익을 크게 기대할 수가 없다.
증기 기관을 만들어내더라도 길을 내고 선로를 깔아야 대량운송이 가능한데 니오네브레스의 필드에는 마수와 마물과 괴물이 존재한다.
야외에 그러한 것을 설치하는 것은 위험성이 큰 것이다.
그러면 열병기, 화기를 만들어 그것들을 토벌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환인의 경험상 화기도 고등급의 괴물에게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호주를 장악한 토끼떼조차 어쩌지 못하는 인류다. 그보다 넓은 곳에서 자연 발생하는 괴물, 마물을 어떻게 정리할까.
7급 정도 되는 괴물이라면 미사일을 쏴대야 통할 느낌인데 미사일을 쏘기 위해서는 문자 그대로 과학이 필요한 수준.
아무튼, 간단히 적용할만한 기술은 이미 그 이상이 니오네브레스에 퍼져있고, 그 이상의 기술은 지구의 문물이 니오네브레스에 퍼지길 원치 않는 자들이 있는 이상 함부로 쓸수 없다.
소소한 쪽으로 보자면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유르파는 고도의 유리세공법(완벽한 구체 모양과 한치의 울렁임도 없는 유리는 엄청난 고가에 거래된다고), 각종 의류제작법을 베끼는 중이었고 이실리테는 대량의 요리 레시피와 조미료 제작법 및 무두질 기술을 나름 습득했다.
안느는 의술과 인체학 쪽에 관심을 보였는데 지구인과 니오네브레스인 간에 존재하는 차이점으로 어찌 될지.
‘예상 이상으로 지구에서 가져갈만한 기술이 없군.’
이때부터 환인은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몸을 지킬 수단으로서 기술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그의 여자들은 평온한 하루를 만끽하고 있었다.
글공부를 하다가 영화를 시청하기도 하고, 영화를 시청하다가 재미없어지면 정원으로 나가서 환연과 비상하고 놀아준다.
=어? 이거 도령 가족사진이야?=
“그래.”
=왓, 여기 꼬마가 도령이구나! 이슬이랑 율이 언니, 여기 와서 이것 좀 봐! 우와~ 엄청나게 귀여워!=
=어디어디?=
=앗, 나도.=
환인의 집을 구경하다가 그의 가족 사진첩을 발견해서 환인의 어린 시절 사진을 구경하며 즐거워하기도 했고.
=도령~.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저기 조용한 방에서 가르쳐주면 안 돼?=
소파에 앉아 태블릿을 들여다보는 환인에게 가슴을 바짝 붙이며 은근슬쩍 시그널을 보내 뜨거운 시간을 갈구하거나.
=이슬아. 몸이 조금 찌뿌둥하지 않아?=
=응? 응. 가볍게 맨손 대련이라도 할까?=
=위상력을 아껴야 하니까 금지 몇 가지 설정하고 하자.=
=좋아.=
한글 받아쓰기를 하다가 몸이 근질거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가볍게 맨손 대련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얼핏봐서는 아무런 근심·걱정 없는 휴식이었지만 여자들의 마음속은 마냥 편하지 않았다. 언제 환인의 가슴에 새겨진 문양이 빛을 되찾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그녀들은 가급적 환인의 옆을 떠나지 않으려 했고 수시로 그의 가슴을 보며 빛이 얼마나 밝아졌는지 확인했다.
=도령, 잠깐만.=
환인이 유르파와 함께 인근 종묘사를 방문, 대량의 묘목과 씨앗을 구매해 돌아오자 찰칵 능숙하게 스마트폰의 카메라로 문양을 찍은 안느는 이전에 찍은 것과 밝기를 비교하며 음, 눈썹에 힘을 주었다.
=첫날에 비하면 엄청 밝아졌네. 문제는 이게 얼마나 밝아질지가 관건인데.=
=그건 그런데…… 안느 너 언제 스마트폰에 그렇게 익숙해 진 거야?=
문양의 밝기보다 안느가 환인에게 받은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모습에 놀란 이실리테가 묻자 안느가 으흐흐, 음흉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V를 만든다.
=도령이랑 좋은 시간을 보낸 뒤에 밀착 지도를 받았징.=
=…….=
아까 20분 정도 자리를 비우더니 그새 그랬어?
이실리테는 히죽 웃는 안느가 얄미워 환인 몰래 안느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었다.
며칠 전 그녀에게서 수목화가 시작되었다고 들었다. 그러면 안느와 몸을 겹칠수록 주인님이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실 테니 그녀가 주인님과 동침하는 것은 오히려 이쪽이 바라는 일이지만, 저렇게 장난치는 모습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얄밉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것보다! 율이 언니, 이쪽으로 와봐. 이슬이도.=
=왜? 왜 그러니?=
=언니가 사왔던 그 속옷 있잖아. 그게…….=
여자친구들이 거실 한쪽 구석에 모여서 속닥속닥 거리는 걸 잠시 바라본 환인은 자신도 외출하기 전에 하던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다.
그가 현재 손보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장소에서 수력 발전기를 만들어내는 것.
그 과정을 기술서와 전공서적을 모아 정리하던 환인은 태블릿의 화면이 알림 소리와 함께 전환된 것에 시선을 주었다.
띠링
[동작감지(CCTV 1번)]
“…….”
그곳에는 명백히 자신의 집을 감시하고 있는 남자 두 명이 찍히고 있었는데, 행동이나 폼을 보면 어쭙잖은 심부름센터 직원 수준은 아니었다.
화면에 표시되는 장면에 환인이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서자 여자들이 그에게 시선을 주며 눈을 깜빡였다.
저 모습은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보이는 표정인데?
베란다를 통해 나간 환인은 먼저 정원에서 일광욕 중인 비상과 환연을 집 안으로 불러들였다.
「집안은 조금 답답해서 싫은데.」
쿠으.
「그치? 아무래도 환인이 한 말이 맞나봐. 콘크리트랑 시멘트가 정령한테 안 좋은 거 같아.」
쿠흥!
종알거리는 둘을 거실로 들인 환인은 베란다 창문을 닫고 커튼까지 친다. 정문을 잠근 뒤 초인종 볼륨도 최대로 낮추고 tv도 음소거로 만든다.
빛과 소리가 새어나갈 만한 것을 모두 정리해놓은 환인이 마지막으로 여자친구들과 비상, 환연에게 목소리를 낮추라고 지시했을 때
삑
인터폰 화면이 소리 없이 켜지며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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