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352화 (352/813)

〈 352화 〉 346 현대

* * *

=주인님이 계셔서 여기로 오게 된 거라고요?=

“가장 가능성이 높은 가설이 그거다.”

=그렇구나……. 뭔가 이상한 곳인걸. 저 빨갛고 파란 불빛은 뭐고 시끄럽게 오가는 저 철 덩어리는 뭔지…….=

멍하니 이야기를 듣던 안느는 생각하길 포기했는지 어둠 너머 붉고 빨간빛을 내는 거리에 시선을 주며 중얼거린다. 눈썹도 아까부터 살짝 찡그려져있는게 대기의 질과 소음이 그녀에게 고통이 되는 모습이다.

그 모습에 자리부터 옮겨야겠다고 생각한 환인이 몸을 돌렸다.

“자세한 것은 조금 있다가 알려주지. 지금은 이동이 우선이다.”

=응? 응. 어디로 갈 건데? 갈 데 있어?=

“그래. 여기서 20분 거리에 내가 살던 집이 있다.”

오, 도령/주인님이 살던 집이라니. 얼떨떨한 와중에도 그녀들의 호기심이 겉잡을 수 없이 치솟는다.

=얏.=

파아앗­

그사이 반짝이는 가루 같은 것을 뿌리며 주문을 외우던 유르파가 작게 기합을 지르자 황갈색 빛무리와 함께 비상의 모습이 점차 줄어들더니 오리와 비슷한 크기까지 줄어들었다.

이 정도면 좀 독특한 애완조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모습.

“잘하셨습니다.”

환인은 주변에 떨어져 있는 비상의 방어구를 모두 챙겨 개인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고 줄어든 자기 모습을 신기해하는 비상도 안아 들고 말했다.

“이 세계에의 사람에게 통역 기관 같은 것은 없다. 그러니 너희가 입을 열면 대번에 관심이 쏠릴 테니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가급적 입을 열지 않도록 해라.”

=왜?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게 아냐?=

인터넷의 존재와 확산성, 그로 인해 찾아올 국가적 접근을 짧게 설명할 자신이 없었기에 환인은 집에 돌아가면 설명해주겠다며 대답을 미루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지 다행 중 불행이라고 할지.

비상의 등에는 짐이 실려있지 않았다. 현재 소지품은 각자 가진 개인용 아공간 허리 주머니가 전부.

도로로 나온 환인은 지나가는 택시 두 대를 잡아 눈을 휘둥그레 뜨고 번화가를 살피는 유르파와 안느를 뒤차에 태운다.

그리고 택시 기사에게는 앞차를 따라오라고 한 뒤 자신은 이실리테와 함께 앞차에 올라탔다.

“어서 옵쇼.”

“수서동 송파 농협으로 갑시다.”

“수서동 송파 농협으로 갑니다~.”

이동 중 이실리테의 성별을 초월한 미모에 놀란 택시 기사가 몇 차례 말을 걸어왔지만, 환인은 대충 유들유들하게 받아넘기며 필요한 정보를 수집했다.

“외국에서 사귄 여자친구입니다. 그보다 오랜만에 외국에서 돌아와 시간 감각이 혼란스럽군요. 오늘이 며칠입니까?”

“어, 오늘이 며칠이더라~ 8일? 예, 2월 8일이네요.”

“2023년 2월 9일이 아니고 2월 8일입니까?”

“그렇죠. 시차 차이가 큰 데서 오셨나 보네요. 그, 그런데 품에 안은 검은색 새는 뭡니까? 처음 보는데 신기하게 생겼네.”

“외국에서 얻게 된 친구입니다.”

“하하하. 새 사랑이 크신가 봅니다.”

은근슬쩍 연도까지 확인한 환인은 그렇다고 대답해주고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트립했던 날은 2023년 1월 26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2월 8일이라니. 고작 14일 남짓한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다는 건가.

‘저쪽에서 보낸 시간은 1년하고도 2개월가량. 이쪽에서 보낸 시간은 14일…….’

그렇다면 여기서 하루를 보내면 저쪽은 한 달이 지난다는 소리인데 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산란못의 이형종은 거의 다 정리해놓았고 숲에도 이형종은 거의 없다.

95명을 태우기에는 마차가 작았지만, 60명 중 대부분이 걸을 수 있으니 걷다가 지친 사람을 교대로 마차에 태워 가며 마을까지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유미안과 라비올라라면 설령 10년이 지나더라도 자신의 짐은 함부로 처분하지 않겠지.

‘가장 큰 걱정이라면…….’

지금 이 현상은 일시적인 거고 니오네브레스로 다시 되돌아가는 경우다.

저쪽 세계로 돌아가는 상황이 벌어질 때 떨어져 있어도 함께 돌아가지는 건가? 아니면 올 때처럼 같이 뭉쳐있어야 하나?

“도착했습니다.”

트립할 당시의 소지품은 하나도 버리지 않은 덕분에 지갑에서 꺼낸 카드로 택시비를 결제한 환인은 여자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향하는 도로를 걸으며 약간이지만 향수병이 치유되는 것을 느꼈다.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일단 지구로 돌아오긴 했으니 절반의 목표는 달성이라도 봐도 될까.

다행이 밤이어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않으며 도로를 걷던 환인은 작은 주택가를 감싸고 있는 숲에서 바람과 땅, 어둠, 풀의 정령이 히히덕거리며 노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구와 니오네브레스는 자연적인 의미에서 큰 차이는 없는 거 같군.”

=그러니? 어떤 점에서 그런 결과가 나온 거야?=

이 현상에 가장 관심이 큰 유르파가 냉큼 이야기를 받는다.

“정령이 존재합니다. 대기 구성 성분도 흡사하고 영혼술도 쓸 수 있습니다. 마도구도 작동합니다. 많은 것이 흡사하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위상력은 제가 확인할 수 없었지만 말입니다.”

=앗.=

=어?=

환인의 이야기에 놀란 여자들이 제각기 힘을 써보곤 위상력이 제대로 발현되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휴, 위상력도 있네.=

고개를 끄덕인 환인은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친구들에게 작게 웃으며 자신을 가리켰다.

“무엇보다 제가 저쪽에서도 문제없이 지냈다는게 그 증거가 될겁니다.”

=확실히 자기의 존재가 무엇보다 확실한 증명이네.=

“그럼 들어가죠. 여기가 제가 살던 집입니다.”

작은 정원을 끼고 있는 단층집의 대문을 열고 여자친구들을 먼저 들여보낸 환인은 자신의 기억 속의 집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모습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돌아올 집이 있다는 것이 이렇게나 안정감을 주는 건가.

그리고 현관문을 지나 집안에 들어온 환인은 익숙한 집안 풍경 속에 여자친구들이 있다는 것에 가슴이 울렁이는 신기한 감각을 받았다.

뭔가 비일상이 일상과 섞여드는 느낌이라고 할까.

=바깥에서 보던 것보다 안쪽이 더 넓네.=

=와, 집에 주인님 냄새가 가득해요.=

=뭔가 마음이 안정되는 장소인걸. 자기? 자기 부모님은 집에 안 계시니?=

“부모님은 몇 년 전에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환인도 집에 도착한 뒤에 가장 먼저 영혼 시야를 열어 부모님의 영혼을 찾았지만, 두 분의 영혼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시곤 성불하신 거겠지.

=앗…… 미, 미안.=

“괜찮습니다. 아무튼, 씻고 싶겠지만 중요한 것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여자친구들을 소파에 나란히 앉혀놓은 환인은 그녀들의 앞에 서서 자신이 생각했던 가정을 이야기해나갔다.

“내 예상일 뿐이지만, 너희는 내 전이에 휘말린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전이하기 직전에 너희가 나와 붙어있어서 함께 전이된 거지.”

=공간 이동 시에 계산에서 벗어나는 질량의 추가는 전이의 실패를 불러일으키는 주범인데…….=

헬쓱한 표정이 된 유르파의 이야기에 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사해서 다행이지요.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만약 지금 이러고 있는 게 일시적이라면 돌아갈 때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할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때가 언제인지 모른다는 것과, 만약 그때 너희가 따로 떨어져 있다면 그 경우 어떻게 되는가.”

=…….=

=…….=

그걸 상상해본 여자들은 얼굴에 핏기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이야기는 너희들 중 누군가 낙오되어 지구에 남게 되었을 경우에 대한 일이다.”

낙오라는 말에 그녀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피어났다.

여기는 니오네브레스와 전혀 다른 세상이다. 주인님/도령/자기가 없는, 말도 통하지 않는 세계에서 혼자 살아가야 한다고?

그 순간 여자들은 환인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냈는지 알게 되었다.

눈앞의 남자는 그런 암담하고 암울한 상황에서 누구도 얕보거나 우습게 못 볼 정도로 성장하지 않았는가.

왠지 어떤 난관이 펼쳐져도 내 남자라면 모두 다 해결할 것 같은 듬직함에 여자들이 알게 모르게 뺨을 붉힐 때 환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 일단 지구로 돌아오는 방법은 알아냈으니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구로 되돌아올 거다. 그러니 너희들 중 누군가가 만약 낙오된다면, 혹은 너희 셋이 모두 낙오된다면 이 집에서 지내며 내가 돌아오길 기다리면 된다.”

=아… 그, 그렇지?=

=으응.=

그녀들에게 있어 환인의 이야기는 일종의 해답, 결과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가 언젠가 반드시 돌아온다고 했으니 그를 따라 니오네브레스로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여기서…… 그가 태어나고 자란 집에서 기다리면 되는 일이다.

환인은 그녀들의 얼굴에 안도가 퍼져나가는 것을 보며 지구, 특히 한국에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을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파아앗­!

뀩?! 큐으.

이야기 도중 축소화 술법의 효과가 만료된 비상이 원래 크기로 돌아왔기에 환인은 작은 카펫을 가져와 비상이 앉을 자리를 만들어주고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인종의 종류, 전기의 발명과 발전, 인터넷의 등장, 스마트폰의 보급, 인터넷의 발달, 한국 특유의 신분증 시스템.

신분증 항목에서 유르파가 당황을 드러냈다.

=그, 그런 신분증명 시스템이 있으면 우리가 이계인이라는 거 금방 들키는 거 아니니?=

=그러게. 우린 다른 데서 왔으니까 신분증 같은 건 아예 없잖아.=

아직은 이 세상의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그보다 더 위험한 요소는 눈치채지 못하고 신분증이라는 데서 불안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괜찮습니다. 안느의 귀가 좀 별나긴 하지만 유르파와 이실리테, 안느는 백인종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백인종에게 풍습적으로 유달리 관대한 국가입니다.”

시간이 많다면 기억을 잃은 불법체류자로 신고한 뒤 적당한 법의 절차를 밟아 거주권을 획득하면 된다. 아니면 브로커를 통해 가짜 신분증을 획득해도 될 일이고.

“가장 큰 문제는 안느의 귀다. 지구에는 사람…… 헷갈릴 수 있으니 이제부터 인종이라고 할까. 피부색에 따라 황색 백색 흑색이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동일한 인종뿐이다. 플뢰나 루크랑, 플라비우스, 기타 소수 종족 같은 지적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아.”

=그러니까 이슬이나 율이 언니는 걱정할 일이 없는데 나는 귀 때문에 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거네.=

“그래. 특히 너는 엘프라고 불리우는 가상의 종족과 매우 닮았기에 알려질 경우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거다. 만약 네 모습이 사진으로 찍혀서 인터넷에 올라가기라도 하면 전 세계에 퍼져나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전 세계면 어느 정돈데?=

“과장 없이 파르히스트에서 네 모습이 찍혔을 경우 히스론드와 벨티칼, 메리아놀 세 나라에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네 모습이 전부 퍼질 수 있다.”

이 설명도 실감이 나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여자들이다.

노트북을 가져와 인터넷을 켜서 엘프를 검색해 보여주자 모두가 오, 하고 놀란다.

=진짜 우리 종족이랑 많이 닮았네.=

=앗. 이건 인묘족이랑 많이 닮았네요.=

고양이 귀가 달린 여자 그림에 이실리테가 반응을 보이고, 유르파도 호기심에 질문했다.

=자기, 혹시 흡정족 같은 건 없니?=

환인이 작게 웃으면서 서큐버스의 특징을 검색해주니 그녀들의 표정이 묘해진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네 모습이 퍼진다는 거지.”

한동안 인터넷의 위험성과 모습이 알려질 경우의 수를 이야기해주니 안느는 큰 문제는 없다는 투로 말했다.

=뭐, 귀 생김새가 문제라면 마도구로 숨기면 돼.=

“그런 게 있나.”

=우리는 사비 족이랑 자주 마찰을 빚어서 사비 족의 영역을 여행할 때면 귀를 감추고 다른 종족인 척하고 다니거든. 나도 귀 모양을 바꿔주는 마도구 하나 가지고 있어.=

“흠.”

=귀는 우리 종족의 자부심 같은 거라서 숨기는 건 별로 마음에 안 들지만, 이 세계에는 플뢰가 아예 없다며? 그럼 숨겨야지.=

그러면 문제 될 일은 없다.

벽시계를 본 환인은 자정이 넘었다는 걸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일단 중요한 것은 여기까지다. 피곤할테니 나머지 소소하고 세세한 부분은 내일 이야기하도록 하지. 씻을 곳과 씻는 법을 알려줄 테니 따라와라.”

=네.=

=응.=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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