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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기담-350화 (350/813)

〈 350화 〉 344 이변

* * *

한동안 공동을 꼼꼼하게 살폈지만 특이한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환인은 팔짱을 끼고 고심하다가 구출한 여자들과 함께 있던 안느와 시선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안느는 환인이 무언가 할 말이 있음을 깨닫고 바로 환인에게 달려갔다.

=할 말 있어?=

“그래. 마침 묻고 싶은게 있었다. 심핵의 생김새에 대해서 아는 게 있나.”

주위를 둘러보며 묻자 안느도 덩달아 주변을 살피며 대답한다.

=나도 심핵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어. 중핵도 몇 번 교단을 통해 중핵 토벌 의뢰에 참여하면서 본 세 번뿐이고……. 여기에 심핵으로 보이는 게 없긴 하네. 도령도 못 찾은 거야?=

“그래. 아무리 살펴봐도 안보이더군.”

대답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환인은 지도를 꺼내 현재 위치와 이동 동선, 걸음걸이, 시야 거리 등을 계산해 마저 지도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그러고 났더니 중핵의 산란장을 둘러싼 숲의 형태가 기묘하게 다가왔다.

안느도 그 점을 눈치채고 손으로 짚으며 묻는다.

=도령. 여기 세 곳 좀 이상하지 않아? 이 정도면 거의 훈련장만 한 넓이인데.=

“…….”

여긴 미궁이고 심핵은 미궁의 심장이다. 땅 속에 있어도 이상할게 없는데 나무 속에 숨겨져 있는 정도는 당연한게 아닐까.

환인이 이실리테를 부르기 위해 마차 쪽을 돌아보았을 때, 이실리테가 어떤 2급의 전사로 보이는 여자와 함께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모포를 망토처럼 몸에 감은 30대 중후반 정도의 인묘족 여자. 머리카락과 고양이 귀의 체모가 푸른것도, 얼굴도 라비올라와 비슷한 점이 많은 여자다.

=주인님. 이분이 주인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해서요.=

환인의 시선을 받게 된 미모의 여자가 어깨를 작게 움츠렸다가 허리를 깊게 숙였다. 그 바람에 모포의 앞섬이 확 벌어지며 성숙한 여성의 알몸이 드러난다.

=저희를, 마을 사람들을 이렇게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성자님.=

다른 여자들에 비해 아직 정신적인 여유가 남아있는 모습. 당당하기도 하고 기품도 약간 느껴지는 태도에 환인은 여자의 모포를 여며주며 대답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혹시 라비올라 양과 관계가 있으십니까.”

=예? 아, 그 아이의 어미인 유미안이라고 합니다. 혹시…….=

“생각하시는 게 맞을 겁니다. 무사하셨다니, 라비올라 양이 기뻐하겠군요.”

=아…….=

유미안의 얼굴에 안도와 함께 작은 기쁨이 번져나간다.

혹시나 마을이 멸망한 것은 아닐까 걱정하던 그녀에게 환인의 대답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안심이었던 것.

“마을에 돌아갈즈음에는 프라버의 지원군도 도착해있을 겁니다. 더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유미안은 직감적으로 눈앞의 성자님이 이 사태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셨다는 것을 눈치챘다.

자신이 여기에 잡혀 온 지도 2달째. 일이 제대로 진행되었다면 1달도 전에 구출대가 도착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제야, 그것도 프라버의 집행부대가 아닌 성자님 일행이 왔다는 것은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리고 경험이 미천한 자신의 딸이 그런 트러블을 해결했을 리 없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생각 이상으로 강인한 여자군.

그런 일을 겪으면 조금은 좌절감을 느낄 법도 한데 그런 느낌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유미안에게 환인은 조금이지만 감탄하며 그녀의 인사를 받아주었다.

자신에게 큰 호감을 비추는 유미안의 모습에 환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혹시나싶어 물어보았다.

“불편하다면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혹시 중핵에게 붙잡히기 전에 미궁에서 특이한 것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어두운 숲, 저수지, 양서류 이형종, 비틀어진 나무, 무엇이든 좋습니다. 약간이라도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을 본 적 있으시다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환인의 질문에 유미안은 잠깐 생각하다가 2시 방향의 나무 벽을 가리켰다.

=다른 것은 보지 못했지만 그,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두꺼비가 특이한 행동을 보이는 것은 봤습니다. 가끔 이곳을 찾아올 때마다 저 벽에 등을 붙인 채 몇 시간이고 꼼짝도 하지 않는 모습이었습니다.=

그곳을 한 번 쳐다본 환인은 유미안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우리에게 맡기고 유미안 씨는 마차로 돌아가서 쉬고 계십시오.”

=네.=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올린 뒤 마차로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안느가 작은 목소리로 이실리테에게 속삭였다.

=그런 일을 겪고도 정신력이 조금도 무너지지 않았어. 진짜 강한 여자지 않아?=

=책임감이 있는 사람은 강하다고 들었어. 여자이기에 앞서 자신은 크라빈 마을의 고족이라는 책임감과 사명이 있어서 강한 거라고 봐.=

=응, 그럴 수도 있겠다.=

마침 유르파와도 시선이 마주쳤기에 이리오라고 신호를 보낸 환인은 이실리테에게 유미안이 가리킨 나무 벽을 지목하며 무너트리라고 지시했다.

“너머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 조심하도록.”

=네.=

앞으로 나선 이실리테가 긴장감을 적당히 끌어올리며 다중 검기로 빛의 검을 만들어낸 순간.

=어? 두 자루?=

주변에서 옅은 빛이 빠르게 모여들며 두 자루의 검이 생성되었다.

주변을 은은하게 밝히는 똑같이 생긴 빛의 검 두 자루.

자신이 만들어내고도 믿지 못하는 눈치에 환인이 작게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 축하해주었다.

“능력의 성장 축하한다.”

=확실히 여기서 이형종을 많이 잡긴 했지. 축하해. 이러다가 이슬이한테 등급 추월당하겠네?=

=아? 앗, 네. 주인님, 감사합니다. 안느도 고마워.=

환인은 이실리테에게 축하해주는 안느를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살폈다.

반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 3급에 불과하던 이실리테는 5급까지 뛰어오르며 검희라는 희귀 직업도 얻는 등 계속 성장해나가는데 비해 안느는 테크닉 면을 제외하면 조금의 성장도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시기나 질투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 생각한 환인이었지만, 놀랍게도 안느는 정말 눈곱만큼의 질투심도 품지 않았다.

‘플뢰의 성향인가.’

아니면 안느의 마음이 넓고 대범한 것일까. 어느 쪽이든 저 정도면 인격자라고 불리기에 충분한 모습.

환인은 그녀에 대한 평가를 한층 상향 조정하며 유르파의 축하인사까지 받아 조금 민망하고 뻘쭘한 모습으로 나무 벽을 베어나가는 이실리테를 뒤에서 지켜보았다.

쉬익­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빛의 검이 나무 밑동을 천천히 베어나간다.

환인은 환연에게 나무가 안쪽으로 넘어지지 않도록 조절을 지시했고, 안느는 쓰러진 나무가 방해하지 않도록 좌우로 치우며 이실리테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스무 걸음 정도를 걸었을까.

쿠궁! 나무 한 그루가 넘어지며 안쪽의 작은 공간이 일부 드러났다.

=…….=

=어…….=

=아…?=

나무 사이로 드러난 광경에 환인의 여자들이 당혹을 표현한다.

그만큼 안쪽의 광경은 비현실적이었다.

사람 크기만 한 거대한 수정과 그런 수정을 주심으로 뿌연 회백색 기운이 안개처럼 몰아치고, 수정 속의 황금빛 구체가 빛을 뿜어내는 광경.

방 하나 정도 되는 공간은 그런 황금빛으로 물들어 회백색 운무와 함께 몽환적인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회백색 운무가 폭풍이 몰아치는 날의 구름처럼 맴도는 것을 잠시 응시하던 환인은 아주 작은 생채기조차 존재하지 않는 완전무결한, 사람 크기만 한 투명한 수정에 시선을 주었다.

뭐, 말을 꺼낼 필요도 없이 저게 심핵이겠지.

환인은 심핵의 방으로 들어서려다 뒤에서 자신을 붙잡는 여자친구들을 돌아보았다.

무언가 압박감에 굳어버린 듯한 모습이다.

“왜 그러지.”

=그…… 보이지 않는 사슬이 심장과 온몸을 꽁꽁 감싼 느낌이야. 그래, 이건…….=

“……정신 침해인가.”

더듬더듬 말하던 안느는 환인의 대답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러는 와중에도 그녀는 심장이 고막까지 올라와 쿵덕거리는 것처럼 귓가가 울렸다. 손과 발은 차가워지는데 뺨과 얼굴만 뜨거워지는 느낌이다.

비단 안느 뿐만이 아니라 이실리테와 유르파도 비슷한 것을 겪고 있었다.

환인은 그러한 그녀들의 모습에 담담한 목소리로 평온의 파동을 발사하며 그녀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정신 차려라.”

=주, 주인님.=

“삽시간에 정신 침해에 당할 정도인 걸 보니 저것이 미궁의 심핵인 건 확실하군.”

등급이 가장 높은 안느와 유르파마저도 정신 침해에 휘말렸다. 이 이상 다가가는 것은 위험하다.

“심핵을 부수고 올 테니 여기서 기다리도록.”

「난 괜찮은데.」

미궁에서 태어났기 때문인지 비상과 더불어 정신 침해에 영향을 받지 않는 환연이 그리 말하며 환인의 어깨에 앉고, 비상도 뒤에서 기웃거리다가 냉큼 환인의 뒤에 따라붙는다.

휘이이이——……

거대한 수정에 다가갈수록 환인은 기이한 느낌이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수정 속 황금빛 구체가 마치 자신을 지켜보는 느낌.

「환인. 아까부터 생각한 건데 저 안개 같은 게 너한테 반응하는 거 같아.」

“…….”

「그리고 평온의 파동을 썼을 때 운무가 파동도 조금 흡수하는 거 같았는데…….」

환인도 그렇게 느꼈었다. 그걸 환연도 느꼈다고 하니 더 이상 심핵에 다가가는 것이 꺼려진다.

아무리 자신에게 위상류가 있고 자신은 정신 침해에 면역이나 다름없다지만, 그건 현상에 기반한 추측일 뿐이다.

‘가까이 가지 않더라도 부술 방법은 있으니.’

영혼 화살이나 영혼 폭발 같은 에너지체로 부수는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현상을 일으킬 수 있으니 제외.

마찬가지로 마도기­방벽으로 부수는 것도 에너지체라는 점에서 제외.

환인은 툭, 발치에 주먹만 한 자갈이 걸린 것을 느끼고 그것을 집어 들었다.

속이 빈 자갈이 아니라 화강암처럼 묵직하고 단단하다.

환인은 하급 정령을 몸에 강령한 뒤 그리모암의 혁대와 이전, 안느가 파르히스트 무투 대회 우승 상품으로 받은 신체 활성화의 목걸이까지 발동시킨다.

이 순간 근력만큼은 이실리테에게 버금가게 된 환인은 정확한 투구 동작으로 수정 속 황금빛 구체를 향해 짱돌을 투척했다.

구체를 노린 것은 왠지 모르게 그래야 할 것 같아서였다.

쐑— 쩌적!

시속 300km를 넘는 속도로 투척된 짱돌이 총알처럼 날아가 수정과 황금빛 구체를 동시에 관통하며 커다란 구멍을 내버린다.

드드드드드——

직후 땅이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상하좌우로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뿐만 아니라 회백색의 운무가 황금빛으로 물들더니 강한 빛을 사방에 뿌려대며 그 덩치를 부풀려 나간다.

「어…… 조, 조금 위험한 거 같은데?」

환인도 비슷한 심정이라 한발 물러선 순간.

「으앗?!」

황금빛으로 물든 운무가 기습적으로 환인을 향해 쏟아졌다.

반사적으로 위상류를 강하게 일으키고 3중 영혼 방패 세 장을 펼쳐 앞을 막고 방벽으로도 패널 실드를 펼쳤지만, 황금빛 운무는 그러한 방어벽을 말 그대로 뚫고 들어와 환인을 에워싼다.

‘좀 더 멀리서 부셨어야 했나. 아니면 에너지체로 부셨어야 했는지도.’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벌어지니 마냥 달갑지 않다.

눈앞이 황금빛 광채로 뒤덮이는 것에 눈썹을 찡그린 환인은 지금이라도 사용할 수단을 이리저리 떠올려보지만 마땅한 게 없다.

미궁을 돌파한 자들에게는 부와 명예를 거머쥔다는 소문은 뭐였지. 이치상 함정 같은 루머는 아니었을 텐데.

=주인님!!=

=도령!=

=자, 자기……!=

터덕, 턱.

닥쳐올 미지의 현상에 대비해 마음을 다잡던 환인은 자신의 허리와 팔, 목을 끌어안는 여자친구들을 느꼈다.

“…….”

떨어져 있었으면 몸을 피할 것이지,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몸을 날린단 말인가.

화악­!!

환인은 눈이 아릴 정도의 황금빛에 부디 누군가 죽지 않는 결과만 나오기를 바라며 여자친구들을 두 팔로 감싸 안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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