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9화 〉 343 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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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르파가 건네는 붉은색 위상석을 받아든 환인은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잡아보며 물었다.
“어떤 효과인지는 알아내셨습니까.”
=정확한 효과는 감정해야 알 수 있는데 그러려면 마을로 돌아가야 해. 마차에 정밀 감정 도구가 있거든. 하지만 자기한테는 위상류가 있으니까 그걸로 쉽게 알 수 있어. 지금 무슨 느낌이 드니?=
“느낌입니까.”
뭔가 신기한 감각이다. 위상석과 닿은 피부를 통해 위상석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몸 안을 순식간에 가득 채우는 느낌.
지금도 애용 중인 재생 효과의 2급 핏빛 위상석은 손에 쥐면 몸을 아주 약간 따끈따끈하거나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그런데 이것은 봄바람처럼 따뜻한 게 몸 안을 가득 채우며 든든해지는 느낌이다.
“붉은색이라면 생명력과 체력 관련 일 텐데 최소 재생 효과는 아니군요.”
=자기가 들고 다니는 거랑 재생 위상석이랑 다른 느낌이니?=
“예. 뭔가 몸이 든든해지는 느낌입니다.”
환인의 대답에 안느가 호기심을 드러낸다.
=그럼 생명력 확장이려나?=
「그게 뭔데?」
그의 손목에 앉아 위상석을 만져보던 환연이 묻자 안느가 대신 설명해준다.
=사람이 견딜 수 있는 피해량을 100이라고 하면, 생명력 확장인 위상석을 장비로 만들어 쓸 경우 등급에 따라 견딜 수 있는 수치를 200, 300 이렇게 늘려줘. 비율이 아니라 절대치를 올려줘서 직업자들보다 무직자나 체력이 약한 술사직이 굉장히 선호하는 기능이야.=
‘게임에서 hp 최대치를 늘려주는 옵션 같은 거군.’
「그러니까 10대 맞을 걸 11대 맞아도 괜찮게 맷집을 늘려준다는 거네. 좋은 거야?」
유르파가 빙긋 웃었다.
“붉은색 위상석 기능 중에 가장 비싼 거야. 무직자인 호족이라면 등급이 높든 낮든 무조건 하나씩은 쓰는 거거든.”
「오. 그래서 6급 평균가보다 2배 가까이 비싸다고 한 거구나.」
=6급이면 거의 3급 체력 위주 근접 직업자만큼이나 높여줄 텐데, 어떻게 맷집을 시험해볼 방버…어버버! 자, 자기?!=
효과를 확인해볼 방법을 생각하던 유르파는 환인이 단검으로 자기 손바닥을 긋는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아니 저게 가장 간단한 방법이긴 한데!
“고통은 그대로군요. 딱히 신체가 단단해진 것도 아니고…….”
=아니아니! 그건 체력 강화나 회색 위상석의 방어 쪽 기능이구! 생명력 확장은 말 그대로 피 흘리기 시작한 시점부터 죽기 전까지 버티는 시간을 늘려주는 거야! 악?! 뼈, 뼈까지 보이잖아! 안느 아가씨!=
=으와, 가끔 생각하는 거지만 도령도 진짜 무대포라니까.=
안느는 쩍 벌어져 시뻘건 피가 철철 흐르는 환인의 손바닥에 치료를 걸어주며 작게 투덜거리고 유르파와 이실리테도 피범벅인 환인의 손을 보며 제발 좀 몸을 아끼라고 애원한다.
“안느가 있고 유르파의 회복제도 있지 않습니까. 호들갑입니다.”
환인은 피식 웃으면서 붉은 자국만 남은 손바닥 상처를 확인하고 위상석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건 판매하기보다 가공해서 파티가 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보다 도령이 써야지.=
“……아무튼 다른 획득품은 없습니까.”
=으응. 짐승형이라서마도기 같은 건 안 나왔고 장비가 마도기화한 것도 없었어. 대신 불에 지져진 등가죽에 야피 현상이 일어났는데…….=
이야기를 들은 환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자친구들에게 수고했다고 말했다.
“고생했습니다. 그것과 괜찮은 위상석을 얻었으니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군요. 그럼 중핵이 가려 했던 곳을 탐색하겠습니다.”
=도령. 다른 데서 생존자는 없었어?=
“그래. 아무래도 주변의 인질은 중핵이 모두 저곳에 모아놓은 듯하다.”
환인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 격한 전투로 안개가 물러난 탓에 드러난 마녀의 숲 같은 장소로 일행의 눈이 돌아갔다.
중핵이 있던 산란못은 의외로 이형종의 숫자가 적었다.
아무리 거리가 있다곤 해도 이만한 대형 산란못이라면 가장자리에 이형종이 모여있기 마련이었는데, 중핵의 산란못 가장자리에는 이형종이 거의 없었던 것.
있어도 서너 마리 수준이었기에 소리 지르며 소란을 떨기 전에 환인의 영혼 화살에 머리가 날아가 죽어버렸고 환연의 손짓에 시체가 땅속에 파묻혔다.
=왜일까. 중핵이 잡아먹었나?=
“그럴 가능성도 있겠지. 중핵의 체구를 생각해보면 다른 이형종은 한 입 거리니까.”
게다가 산란못이 깊다고 해도 10m를 오가는 수준이다. 산란못이 중핵에게는 그렇게 넓다는 느낌은 없었을 테지.
덕분에 대량의 이형종이 이끌리는 일 없이 사람의 생명력이 탐지되는 숲에 도달한 환인은 생각과 다른 환경에 눈썹을 약간 치켜떴다.
사람이 지나갈 수조차 없을 만큼 빼곡히 자란 나무가 마치 어느 지점을 포위한 것처럼 감싼 모양새였기 때문.
“…….”
바닥도 흙바닥이 아니라 나뭇잎과 나무 부스러기들로 가득 깔려있어 흙냄새와 부엽토 냄새, 물비린내와 양서류 특유의 불쾌한 냄새가 공기 중에 떠다니고 있다.
보통 이런 장소의 끝에는…….
“시엘라 양. 생명력이 어디서 탐지되고 있습니까.”
=저, 저 안쪽이에요.=
시엘라가 가리킨 곳은 지도에서도 가장 안쪽 공간.
대충 예감한 환인은 이실리테와 안느에게 손짓해 선행시킨 뒤 자신도 흑창과 빛막대 마도구를 챙겼다.
=자기, 저쪽에 뭔가 있니?=
“있을 겁니다.”
그러나 위험한 것은 아닐 거다. 환인은 롬디스 일행에게 천천히 쫓아오라고 한 뒤 비상과 함께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
환인은 곳곳에 기존의 개구리알보다 몇 배나 큰 알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미간을 좁혔다.
뒤를 돌아보자 산란못에서 뻗어 나온 물길이 여기까지 이어진 게 보인다. 떨어진 개구리알은 안쪽에서 정확하게 일직선으로 물길까지 이어져 있다.
=도령!=
앞서간 안느의 외침에 환인은 저 멀리서 오고 있는 유르파에게 신호를 보낸 뒤 여자친구들 쪽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그리고 나타난 곳은 높이 20m, 폭 70m의 거대한 터널 입구였다.
놀랍게도 숲이 터널을 형성 중이다. 벽은 서로 얽히고 뭉친 나무로 이루어져 약간의 틈도 없었고 천장은 나뭇가지가 뻗나가며 서로 얽혀 빛 한 점 새어들지 않을 정도로 하늘을 가리고 있다.
=중핵이 여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커.=
=뭔가 분위기가 안 좋아요. 물비린내와 조금 썩은 내도 나고 있구요.=
“들어가지.”
환인은 랜턴 마도구 대신 빛막대를 달칵, 켰고 회색 광원이 반경 40m를 밝힌다.
그렇게 빛에 의지해 안으로 들어간 여자들은 좌우의 커다란 공동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헛구역질을 했다.
=우욱, 이…… 이게 뭐야.=
나무의 벽은 온통 회색 점액으로 떡칠이 되어있었고 그런 벽 곳곳에 벌거벗겨진 여자들이 무수히 매달려있었다.
그 숫자가 족히 60명.
환인의 시선이 평범하게 임신한 것처럼 부풀어있는 여자의 배로 향한다.
안쪽에서 무언가가 쉴 새 없이 움직이는지 뱃가죽이 두서없이 튀어나왔다 들어가길 반복하고 있다.
음부, 정확히 질 구멍은 벽에서 이어진 관 같은 게 깊게 삽입되어있었고 그건 입도 마찬가지였다. 자살 방지 겸 먹이 급여관이 목구멍 안쪽까지 삽입되어있고 눈과 귀도 굳은 점액질로 가려진 상태.
환인의 시선이 점액으로 가득 찬 바닥으로 내려왔다.
바닥에는 대형견 사이즈의 민달팽이 같은 것이 꾸물거리며 등에 난 기생촉수 두꺼비의 촉수 같은 것으로 벽에 매인 여자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여자들이 지른 배변을 치우고 출산 때가 임박하면 음부를 막고 있는 파이프를 뽑고 촉수를 안으로 집어넣어 강제 출산을 시도한다. 개구리알을 감싸고 있는 점액질 같은 것을 먹인다.
환인은 멕시코 도롱뇽의 유생으로 보이는 것을 촉수로 감싸들고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민달팽이 괴물을 유생째로 베어 죽였다.
저 여자들과 바깥의 기생촉수 두꺼비에게 잡힌 여자들의 차이라면, 바깥은 대량의 번식이 목적이고 이쪽은 소수의 강한 개체의 번식이 목적인 것으로 환인은 판단했다.
“전부 죽이지.”
=……응.=
=네.=
그걸 신호로 이실리테도 굳은 얼굴로 기사검을 뽑아 민달팽이 괴물을 죽여나갔고 안느도 혐오를 드러내며 천벌의 망치로 민달팽이를 내려쳐 죽여나가기 시작했다.
뒤이어 도착한 롬디스와 렉탈, 시엘라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목격하곤 흠칫했지만, 곧장 떨어진 환인의 지시에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롬디스 씨는 두 분과 함께 벽에 붙은 여자들을 구출하십시오. 유르파는 일전에 하던 대로 여자들의 뱃속에 들어 있는 걸 꺼내주면 됩니다.”
=옛!!=
=넵!=
“우리는 이것들을 계속 정리하도록 하지.”
몇 번이나 해왔던 일의 연장선이라 익숙해졌기도 하고 이것으로 산란못 미궁도 끝이었기에 일행은 더욱 기운 내서 바삐 움직였다.
벽에 매달린 여자들은 대부분이 정신과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우웨에엑! 쿨럭, 흐우웨에엑……!=
롬디스가 렉탈과 함께 날아다니며 길이가 족히 40cm가 넘는 관을 입에서 뽑아주고 벽에서 떼어내 바닥에 내려주면 여자들은 속에 든 것을 한차례 게워낸 뒤 눈물을 철철 쏟으며 감사 인사를 올렸다.
=감사, 허억, 감…사, 해요…… 쿨럭.=
=흐우윽…. 구우해, 주셔서… 감사…… 우엑.=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감사를 드려야 할 분은 저곳에 계신 성자님이십니다. 저기 검은 머리카락이신 분 보이시죠? 저분입니다.=
=아…. 아아…….=
=아아, 짐승신님…….=
그러면 유르파가 염력으로 여자들의 뱃속에 든 괴물을 빼내 주고, 시엘라는 여자의 상세를 보아가며 치료와 회복을 적절히 써서 치료해준다.
=이익, 이익! 이, 이 괴물! 죽어!!=
여자들은 대부분이 자기 뱃속에서 나온 괴물을 눈물 흘리며 때려죽였다.
2주가 넘는 시간 동안 출산의 도구로써 사용된 분노는 지켜보는 입장에서 그저 애처로울 따름.
「자, 씻겨줄 테니까 걸을 수 있으면 이리 와서 내 앞에 서.」
마지막으로 환연은 치료가 끝난 여자들을 물의 정령으로 깨끗하게 씻겨주고 모포가 든 가방을 가리키며 모포를 한 장씩 나누어주었다.
물론 개중에는 걷기도 힘든 상태의 여자가 있었는데 그런 여자는 힘이 남아있는 여자가 옆에서 도왔다.
같이 험한 꼴을 당한 데서 드러나는 동질감이다.
환인은 서로를 의지하는 여자들을 보면서 이들이 마을에서 따돌림당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지금까지 구한 여자들의 숫자가 2차 때 25명, 이번에 구출한 35명에 여기서 구한 60명을 더하면 120명이나 된다.
크라빈 마을 인구의 15%에 해당하는 숫자.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성자님.=
“롬디스 씨도 수고했습니다. 덕분에 빠르게 움직이며 사람들을 구출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이런 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 그저 뿌듯할 따름입니다.=
환연이 나무를 재료로 만들어낸 컵에 유르파가 마도구로 뜨거운 물을 만들어내고 거기에 이실리테가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따뜻한 차를 담아 여자들에게 나누어준다.
=라비올라 양은 끌려간 마을 사람을 140명으로 추산한다고 했었습니다. 지금까지 구한 사람은 120명이니 거의 80%는 구한 셈이군요. 그나마 더 많은 피해가 나지 않아 다행입니다.=
“여러분이 아니었다면 구출에는 더 많은 시간이 들었을 겁니다. 생존자는 더 줄었겠지요.”
환인은 옹기종기 모여 따뜻한 차를 받아 마시는 여자들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이번에 구출한 여자들은 기생촉수 두꺼비에게 잡힌 여자들보다 상태가 양호했다. 대부분 정신을 차리고 있기도 하고 정신적으로도 크게 몰린 것 같지도 않고.
그러나 상태가 양호하다고 해도 이런 경험은 트라우마가 되기에 충분하다.
환인은 자신을 바라보는 60명의 시선에 불안이 가득한 것을 느끼고 담담한 얼굴로 평온의 파동을 발사했다.
회백색의 포근한 빛의 파문이 몇 번이나 벽에 반사되어 동굴 내부를 뒤덮고 사라지자 여자들의 눈에서 눈물이 다시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흑흑흑. 살았어…… 이제 살았어…….=
=윽, 흐어엉…….=
=엄마아아. 으아앙….=
이것이 현실이고, 자신들도 구출되었다는 것을 인식한 데서 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저렇게 한바탕 눈물을 흘리고 난 뒤에는 조금이지만 감정을 추스를 수 있겠지.
환인은 들려오는 여자들의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산란장으로 꾸며진 내부를 다시 둘러보았다.
중핵이 향하고 있기에 여기에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심핵으로 보이는 것이 없다.’
심장이라기에 막연히 덩치 큰 무언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물질이 아닌 개념적인 건가.
‘아니면 산란못의 바닥에 가라앉아 있을 수도 있고.’
잠깐 생각에 잠겼던 환인은 혹시나 자신이 놓친 게 있을까 싶어 재차 나무 공동을 살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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