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2화 〉 336 산란못 미궁 2차 진입
* * *
“유티 양. 물에 발휘할 수 있는 간섭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네? 어…….=
속성력을 공격 수단으로 다루는 법술사는 해당 속성에 간섭해 조작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비상이 하늘을 날 때 바람을 일으켜 추진력을 얻거나, 적술사가 야영이나 요리를 할 때 불을 일으켜 화력을 조절하고 황술사가 농사나 밭일을 할 때 흙을 움직여 수확과 파종 등을 하는 식이다.
=저, 저는 냇물의 흐름을 비틀거나 우물로 물을 끌어오는 수준 밖에…….=
‘그 정도로는 부족한데.’
물속에 잠겨있는 1톤짜리 거대 두꺼비를 물 밖으로 밀어내는 정도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정도 일을 하려면 환연이 다루는 중급 물의 정령, 그러니까 5급 청술사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
그래도 어느정도 끌어당긴다거나 물속에 숨어있는 이형종을 물 밖으로 유인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다른 방법을 써야겠군요. 유티 양, 저 호수의 진흙과 뻘을 흔들어 흙탕물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네??=
어떤 의도로 그걸 묻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유티에게 환인이 알기 쉽도록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두꺼비나 개구리는 폐로도 호흡하지만, 물속에서는 피부로도 호흡할 수 있습니다. 물과 뭍을 오가는 것도 숨을 쉬기 위해서입니다. 이형종인 저것들도 그러한지 알 수 없지만, 같은 개구리인데다 뭍에서도 전투 같은 격한 활동을 하는 걸 보면 습성과 생태는 비슷하겠지요.”
그러니 호수 밑바닥을 사납게 흔들어 호수를 흙탕물과 부유물투성이로 만들면 이형종이 숨쉬기가 어려워질 테고, 그러면 성가셔서라도 물 밖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이것을 차분히 설명하자 그제야 이해한 유티가 고개를 끄덕인다.
=할 수는 있지만…… 이 호수 전부를 그렇게 만드는 것은 못해요….=
“괜찮습니다. 비상이 옆에서 도와줄 테니까요. 일단 여기서 정신 집중을 하고 계십시오. 시엘라, 생명력이 탐지된 곳의 정확한 위치가 필요합니다.”
=네!=
비상과 유티, 시엘라를 불러 계획을 설명한 뒤 비상과 유티가 준비하는 사이 환인은 이실리테와 안느에게 롬디스와 렉탈을 지휘해서 작살을 만들라 주문했다.
=작살로 뭘 하게?=
“비상과 율티 양의 힘만으로 물 속에 있는 이형종을 끌어내기는 무리다. 저쪽의 나무를 잘라와서 이런 모양으로 깎아라. 정교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땅에 ?모양의 작살 그림을 그리고 뾰족해야 하는 부분, 단단해야 하는 부분을 알려주자 용도를 이해한 네 명이 고개를 끄덕인다.
=오. 이거면 확실히 박아놓고 끌어당길 수 있겠네.=
“뒤에 연결할 끈은 가져온 모포나 천으로 만들면 되겠지.”
=성자님! 저희가 100미터 밧줄 두 다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자님에게 잘 보일 기회라고 여긴 롬디스가 즉시 소지품 아공간 주머니에서 밧줄 다발을 왕창 꺼내놓는다.
“준비성이 좋군요. 바로 제작합시다.”
=옙!!=
=네!=
환인의 지시에 이실리테가 나무를 잘라오고 안느, 롬디스, 렉탈이 각자 나무를 깎기 시작한다.
정교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몸에 박힐 수 있게끔 끝이 뾰족하고, 박힌 뒤 가시 모양이 부러지지 않게끔 단단하기만 하면 된다.
그걸 잠시 지켜보던 환인은 짐을 내려놓은 비상의 등에 올라타 시엘라와 함께 호수급 산란못을 돌며 물속에 꼼짝도 안 하는 두꺼비 괴물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미궁의 높이는 20m 정도인가.’
그이상 높아지자 미궁 외곽처럼 푸른 안개가 갑자기 진해지며 주변을 살펴보기 어려워진다.
=성자님, 저기도 있어요. 저쪽하고 저쪽에도 있구요.=
환인은 고도를 적당히 유지한 채 시엘라가 뻐꾸기 날개를 파닥거리며 이형종의 위치를 가르쳐주는 것을 모두 받아적었다.
생각보다 많다.
환인이 정리한 영역은 호수급 산란못의 1/3 정도. 이곳에서 느껴지는 인간의 기척이 다섯이다.
구륵 구르룩
꾸르르 꾸륵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두꺼비 소리에 주위를 둘러본다.
근원지는 금방 찾았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영역 저쪽, 대략 150m 정도 거리에서 산란못 위를 날고 있는 환인과 시엘라를 발견한 기생촉수 두꺼비, 독화살 개구리가 머리를 이쪽으로 고정한 채 엉금엉금 움직이며 울고 있었다.
“…….”
주위에 여러 마리가 있었지만 유독 두 마리만 어그로가 끌린 모습.
잠시 주변을 둘러본 환인은 물속 이형종 유인 작전을 실행하기에 앞서 저놈들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작살을 꽂아 끌어오는 도중에 다른 이형종이 모여들면 곤란해질 테니까.
환인은 주변에 떠다니는 최하급 물의 정령을 모아 6중첩 영혼 화살 두 발을 장전한다. 그리고 시엘라에게 손짓해 미약한 어그로가 끌린 두 마리에게서 천천히 멀어졌다.
거리가 200미터 정도로 떨어지니 안개가 이형종의 모습을 가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두 마리의 모습이 희뿌연 안개에 파묻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환인은 천칭으로 소리 없이 영혼 화살을 날렸다.
??
천칭의 강화 효과로 인해 강화된 무색투명 영혼 화살이 안개를 직선으로 꿰뚫고 지나간다. 이어 들려온 퍼벅 살점이 터져나가는 듯한 작고 희미한 소리.
두꺼비의 울음소리가 끊긴 것을 확인한 환인이 비상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비상. 다시 저쪽으로 가자.”
꾸우.
파닥파닥
그쪽으로 날아가자 머리가 날아간 두 마리의 두꺼비 이형종의 시체가 나타난다. 동족이 살해당했지만 어그로가 끌리지 않은 주변의 이형종들은 그대로 침묵 중이다.
아니…….
=윽.=
피 냄새에 이끌렸는지 몇 마리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더니 죽은 이형종에게 다가가 주둥이로 쿡, 쿡 찌르거나 촉수로 건드려본 뒤 덥석덥석 뜯어먹기 시작했다.
‘시야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해치우면 어그로가 주변으로 튀지 않는군.’
환인은 주변에 존재하는 최하급 정령을 모두 그러모아 6중첩 영혼 화살을 여러 발 만든 뒤 아까처럼 시야 밖에서 동족 포식 중인 놈들의 머리를 죄다 날려버렸다.
퍽, 퍼벅 푸확 펑.
죽은 놈들의 사체를 뜯어먹기 위해 모여드는 놈들을 죽인다. 죽이면 죽은 놈들의 시체를 파먹기 위해 또 몰려오고, 몰려오는 놈들을 또 죽이고, 또또 시체를 뜯어먹기 위해 모여드는 놈들을…….
환인의 손짓에 순식간에 사체 무더기가 발생한다. 그렇게 죽인 이형종의 숫자가 16마리를 넘겼을 때 주변에 최하급 정령은 더 이상 남아있질 않았다.
하지만 이형종은 계속해서 모여드는 상황.
환인은 죽인 이형종의 혼을 끌어당겨 계속 모여드는 이형종을 저격으로 계속해서 죽여나갔다.
‘영혼술이 강해져서인지 영혼을 불러들이는 거리도 대폭 늘었군.’
크게 어그로를 잡히지 않은채 차근차근 이형종을 쓸어나가는 모습에 옆에서 환인을 지켜보고 있던 시엘라는 심장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뭐, 뭐지? 성자님이 지금…… 뭘 하고 있으신 거야?’
왜 안개에 주먹만 한 동그란 구멍이 계속 나는 거지? 저 이형종은 뭘 맞길래 머리가 터져서 다 죽어나가고 있고?
그런 그녀의 머릿속에 성투사님이 전에 했던 경고 문구가 지나갔다.
=……도령한테 진심으로 사과하기로 선택한 네 결정을 남은 평생 감사히 여기며 살아갈 테니까…….=
꿀꺽.
시엘라는 왠지 성자님의 일행이 이루어질 수 있는 진짜 이유를 약간이지만 엿본 기분이 들었다.
보통 6급 이상의 파티는 7급 이상 가는 직업자들로 이루어지는데, 그만한 파티는 현실적으로 결성, 유지되기 어렵다.
그즈음되면 직업자는 탈인간을 넘어 초인이 되는 단계인데 그정도 능력을 가지면 자존감과 프라이드가 대책 없이 높아져 누군가의 밑에 있는 것보다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길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괜히 도시의 주력 전투집단의 리더가 7급 이상이며, 헬루멘의 영웅 기사단이 라드세아에서 손꼽히는 최상위 기사단인 게 아니다.
그럼에도 유지되는 6급 이상 파티는 말 그대로 모험가, 탐험가, 용병들이 선망하는 정점이 되는데, 그런 파티의 리더는 빠짐없이 특출난 점을 지니고 있었다.
시엘라의 머릿속에 영혼 기사들의 면면이 지나간다.
6급의 성투사님은 교단의 고위 전투 전문가로서 어딜 가더라도 귀빈, 최하급 호족 정도의 대우를 받을 수 있다.
비슷한 등급의 검희님도 말이 필요한가. 남부의 대도시 헬루멘은 검희 직업의 발상지로 그곳에 가면 중위 호족 못지않게 떵떵거리는 삶을 거머쥘 수 있을 거다.
6급 비술사인 유르파 님은 어떻고. 그 능력과 미모만으로도 어지간한 호족의 첩으로 들어가 남은 평생 고생도 모르고 살아갈 수 있을 테지.
그만한 여자들이 뭐가 부족해서 저런 고생을 자처하며 성자님을 따라다닐까. 아무리 상급 영혼사, 성자님의 명예로운 영혼 기사라고 해도 기사로서 얻을 수 있는 영예는 한정되어있는데 말이다.
‘그런 영예에 버금갈 정도의 특별한 무언가가 성자님에게 있으니까 저만한 여성들이 성자님에게 끌리는 거야.’
그리고 그 특별한 무언가는 방금 자신이 본 그것이겠지.
‘……아니야. 그 이상이 있다고 봐야 하는 게 맞아.’
몸 주변을 떠다니던 여섯 자루의 검, 방금 본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 5~6급은 될법한 폭발을 대규모로 일으키는 기술.
여기에 상급 영혼사로서의 능력과…….
‘플뢰 남자의 외모, 루크랑 남자의 야성에 냉철하고 이지적인 사고력과 판단력.’
거기다 자기 여자에게는 스윗한 성격까지.
시엘라는 뒤늦게 성자님의 스펙을 깨닫곤 아연했다.
세상에…… 이제 보니 성자님은 뭍 여성들의 꿈과 희망을 한데 모아놓은 남자잖아?
그러고보니 친목 저녁 식사 자리에서 검희님은 성자님에게 꼬박꼬박 주인님이라고 불렀었지? 바로 옆에 딱 붙어서 술 시중도 들었고.
성투사님도 망설임 없이 성자님을 끌어안았었고 유르파 님을 허벅지 위에 앉히고 달래던 것도 있고.
힐끔, 환인을 돌아본 시엘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취향은 롬처럼 멋진 깃털로 뒤덮인 묵직한 분위기의 남자인데도 성자님의 외모에는 시선을 뗄 수 없다. 자신이 이 정도니 성투사님은 두말할 것도 없고 검희님도 성자님께…….
생각하던 시엘라는 그 잠깐 사이 40마리가 넘는 이형종이 죽어 널브러진 걸 보곤 속으로 전율했다.
혹시 성자님 일행 중 가장 강한 사람은 성자님이 아닐까?
“돌아갑시다.”
=네? 아, 넵!=
일행들에게 돌아온 시엘라는 작살을 만들고 있는 롬디스와 렉탈에게 가서 자신이 본 것과 생각한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녹색 쿠에를 타신 성자님이 홀로 40마리가 넘는 이형종을 정리하셨다고?=
=그렇다니까! 멀리서 손가락질만 하는데 이형종의 머리가 퍽퍽 터져나갔어!=
=그래…….=
=아무튼, 우리 예상 이상으로 성자님이 더 엄청난 분이란 걸 알았잖아…….=
롬디스는 약간 걱정 섞인 그녀의 표정에서 그녀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눈치채고 진지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시엘라 너는 성자님과 너무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이 불안한가 보군.=
=그도 그런게…… 평범한 모험자는 영웅들 곁에 있기만 해도 위험해. 역사를 봐도 그래. 대전투가 벌어지면 살아남는 것은 영웅들이고 평범한 사람들은 죽음으로 그들의 발판이 되어주는 경우가 허다하잖아.=
저분들의 수준에 맞는 적이라면 우리가 어찌하지 못할 괴물이라는 뜻이니까. 만약 성자님이 우리에게 앞으로도 함께 움직이자고 하면…….
시엘라의 걱정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롬디스는 안다.
애초에 성자님과 엮이게 된 계기도 좋은 일이 아니었다. 성자님 파티와 실력 차이가 그다지 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런 우리에게 성자님이 동행 제안을 할리가 없지 않나.
=걱정하지 마. 내가 보기에 성자님은 그저 이번 미궁 공략 중에 뒤에서 잡일을 해줄 인력이 필요하셨을 뿐이니까. 그게 아니라면 어째서 우리에게 후방에서 대기하라고 하셨겠어?=
=응…….=
=우리는 때마침 거기에 있던 쓰기 편한 인재들이었고, 이번에 성자님이 맡기신 일에만 최선을 다한 뒤 성자님에게 용서받고 드람 씨에게 돌아가 의뢰 완수 보고만 하면 끝날 일이야.=
하지만 시엘라는 우려를 끊어내지 못했다.
=혹시 성자님이 살아있는 방패 같은 걸 원하시면 어떻게 해?=
롬디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성자님이 이제 와서 굳이 그런 일을 하실 이유가 없다는 걸 시엘라는 잊은 걸까.
아니, 그게 아니다.
=너, 성자님의 진면목을 목격하곤 흥분해서 머리가 뜨거워졌나 보다. 정신 침해 증상이 보이니까 실수하기 전에 쉬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도록 해.=
=아……. 응, 그럴게.=
시엘라가 옆에서 기도를 통해 정신을 가다듬는 사이 3개째 완성한 작살을 내려놓은 롬디스는 영혼 기사들과 작전을 짜고 있는 성자님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았다.
자신이 목표로 하던 사람이 저곳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뜻을 관철할 수 있는, 부러질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강한 사람들이.
예전이었다면 크게 흥분했겠지. 인생의 목표를 두 눈으로 직접 보게 됐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전의 전투를 보고 느꼈다. 내가 저분들의 등급에 도달하더라도 저들 같은 힘은 낼 수 없다는 것을.
=…….=
롬디스는 기분이 살짝 처지는 것을 느꼈지만, 나약해지려는 마음을 단단히 고쳐먹으며 4번째 작살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렉탈과 자신이 총 9개의 작살을 만들었을 때.
“다들 모이십시오.”
성자님의 소집이 떨어졌다.
환인은 롬디스와 렉탈이 가져온 작살을 확인해보았다.
작살의 뒷부분에 묶인 밧줄은 각각 50m 길이에 속이 단단한 나무를 골라 만든 덕에 꽤 튼튼하다.
밧줄이 묶인 작살은 네 개.
“개요는 간단하다. 유티 양이 소용돌이를 만들면 비상이 회오리로 도와줘 산란못을 흙탕물로 만든다. 시엘라 양이 생명력 탐지로 가장 가까이 다가오는 이형종의 위치를 파악, 작살을 던져 맞추면 이실리테와 안느, 롬디스 씨와 렉탈 씨가 밧줄을 잡아당긴다.”
그렇게 뭍으로 끌고 올라온 뒤 죽여서 피해자를 구출하는 것.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려울 것 없는 계획에 주먹을 불끈 쥐고 기운차게 대답하는 롬디스에게 고개를 끄덕여준 환인은 길이 1m, 무게 4kg 정도 되는 나무 작살을 들고 땅에 기생촉수 두꺼비의 단면도를 그려 설명을 덧붙인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피해자는 이곳 주둥이에서부터 안쪽 1m 안에 담겨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니 작살을 던져 노리는 곳은 이 부분, 두꺼비의 몸 뒤쪽이다.”
=으음. 빗나가서 배에 맞추면 위험하겠는데.=
안느의 우려에 환인이 자신의 예상을 덧붙여준다.
“피해자는 대강 이런 식으로 잡혀있을 거다.”
기생촉수 두꺼비의 단면도에 피해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쪼그려 앉은 자새로 머리가 위쪽을 향하게끔 한 뒤 길쭉한 살덩어리에 꽁꽁 묶인 모양새.
“숨은 쉬어야 할 테니 머리가 아래쪽을 향할 리 없다. 십중팔구는 이렇게 붙잡힌 모양이겠지.
=아, 그러면 빗맞히더라도 두꺼비의 하단부까지는 괜찮겠네요. 상처 입어도 성술로 치료해주면 되니까요.=
“그래. 자, 시작하지.”
환인의 개시 신호에 롬디스가 유티를 뒤에서 끌어안고 하늘을 날아오르고 시엘라, 비상도 함께 올라간다.
=아, 저… 무겁지 않으신가요?=
=이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시엘라, 어디로 가면 되지?=
=성자님이 말씀하신 곳은 저기야. 유티 씨?=
=네, 시작할게요…!=
먼저 유티가 손을 뻗고 정신을 집중한다. 그러자 시엘라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지점의 수면이 울렁거리다 점차 소용돌이치기 시작했고, 비상이 그것을 보고 아랫부분이 뾰족한 회오리를 만들어 정확히 소용돌이의 중심에 내리꽂았다.
쿠르르르르
희미한 안개가 회오리에 의해 난폭하게 찢어져 흐트러지고, 회오리의 회전력을 받은 소용돌이가 점차 그 크기를 키우며 바닥의 뻘을 마구 끌어올려 사방으로 퍼트리기 시작했다.
=흐으읍~!=
큐으~!
둘의 기합에 따라 울렁울렁 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물회오리. 어두컴컴한 숲 속의 검푸른 수면이 빠르게 흑회색으로 뒤덮여간다.
=성자님! 이형종이 움직이고 있어요! 저쪽 방향!=
시엘라의 보고에 환인은 즉시 여자친구들과 렉탈을 끌고 그 방향으로 달렸다. 그리고 과연.
‘보이는군.’
영혼 시야로 본 적색 계통의 산란못 수면 사이로 희끄무레한 흑갈색의 색계통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만 이형종의 속에 들어있기 때문일까, 안에 든 사람의 색계통은 보이지 않는다.
파도치는 수면을 노려보며 기다리는데도 이형종이 나오지 않자 작살을 든채 대기 중이던 안느가 하늘에 떠있는 시엘라를 향해 소리친다.
=……안나오는데?! 시엘라!=
=머, 멈췄어요! 더 이상 안 움직여요!=
=뭐?! 그럼 어떻게 해! 안보여서 맞출 수도 없는데!?=
무턱대고 던졌다간 자칫 잘못하면 두꺼비의 뱃가죽을 정통으로 찔러 안에 든 사람까지 죽일 수 있는 노릇.
“안느, 작살을.”
=어?! 응!=
환인은 당황하는 안느에게서 작살을 건네받은 뒤 하급 물의 정령을 몸에 강령했다. 이어 그리모암의 혁대 기능까지 발동.
심장이 쿵쾅거리며 몸이 뜨거워지고 마치 거인의 힘이 몸에 깃든 것처럼 힘이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게 느껴진다.
4kg의 작살이 풀 쪼가리처럼 가볍게 느껴진 환인은 그 상태 그대로 적색 수면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흑갈색 덩어리를 향해 작살을 힘껏 던졌다.
쐐액! 강한 파공성과 함께 촥, 물속으로 사라지는 작살.
=악?! 도령!?=
“당겨!”
환인의 명령에 반사적으로 밧줄을 잡아당긴 안느는 마치 커다란 바위를 잡아당기는 듯한 감각이 두 팔에 걸리는 것을 느끼곤 표정이 크게 밝아졌다.
=어, 어떻게 맞춘 거야?!=
“물속에 어렴풋하지만 두꺼비가 보였다.”
시엘라의 말에 따르면 이쪽으로 걸어왔다고 했으니 두꺼비의 머리 방향은 알고 있다. 형태와 내부 구조 또한 지식으로 외우고 있으니 그 부분을 피해 맞추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안느, 팔에 힘이 강하게 들어갔다. 세게 당기다간 살이 찢어지며 작살이 빠질 수 있으니 도망가지 못하게끔 잡고만 있어라. 이실리테, 작살을.”
=응!=
=네.=
슉
환인의 투척에 또다시 작살이 물속으로 사라지고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그리고 렉탈이 들고 있던 작살까지 박히고, 세 명이 밧줄을 잡고 당기기 시작하자 팽팽히 당겨진 밧줄 끝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끌려나오기 시작했다.
추와아악 철썩! 쏴아아아!
=나왔다!!=
요동치는 수면 위로 끌려오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며 몸부림치는 기생촉수 두꺼비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펑!
두꺼비의 형상이 확실하게 눈에 보인 그 순간, 환인은 영혼 화살을 쏘아 두꺼비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산산히 터져나가는 살점과 뇌피질, 두개골 파편과 찢어발겨진 눈알 조각들.
저항이 사라지자 순식간에 물 밖으로 끌려나오는 기생촉수 두꺼비.
그리고 환인의 여자들과 렉탈, 그리고 위에서 모두 지켜보고 있던 롬디스, 시엘라, 유티는 드러난 두꺼비의 사체에 크게 놀랐다.
작살 세 개가 정확하게 기생촉수 두꺼비의 윗다리와 엉덩이 쪽에 박혀있었던 것.
흙탕물인 탓에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어떻게 맞췄지? 사람들은 놀라워하다가 환인의 고함에 정신을 차리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이실리테! 가서 괴물을 확실히 죽인 뒤 따라와라! 안느와 렉탈은 나와 같이 간다! 유티 양과 비상은 계속 물회오리를 일으켜라!=
=응!=
=옛!=
큐으~!
저쪽 수면에 어렴풋이 보이는 흑갈색의 덩어리를 향해 달려간 환인은 이번에도 작살을 던져 맞추었고, 세 명은 아까와 똑같이 하반신 부분에 작살이 밖혀 끌려나온 두꺼비를 볼 수 있었다.
=성자님 굉장해……. 투척 기술이랑 눈썰미가 특급 엽사 수준이야.=
롬디스와 유티는 시엘라의 중얼거림에 공감했다. 처음 한 번은 우연이라 해도 두 번은 필연이다.
그렇게 환인의 투척으로 세 번째, 네 번째 두꺼비를 물 밖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한 일행이었지만, 마지막 다섯 번째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마지막인 이형종이 아무리 흙탕물을 일으키고 물회오리를 접근시켜도 호수급 산란못의 중심부에서 마치 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는 아무런 손도 쓸 수 없는 상태.
그때 비상이 큐삣, 크게 울더니 뀨우우우 신음을 내며 힘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와 함께 비상의 머리 위로 어마어마하게 응집되어가는 초목의 녹색 기운.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 기운을 수 미터나 부풀린 비상은…….
삣!
귀여운 울음소리와 함께 기운을 산란못에 떨어트렸다.
뻐버벙! 촤아아악——
숲의 녹색 같은 커다란 기운이 수면에 닿자마자 폭풍 같은 바람이 터져 나와 물을 사방으로 밀어내고, 물이 밀려나며 수위가 낮아진 그 순간을 노려 물수리처럼 떨어진 비상이 기생촉수 두꺼비를 낚아채 하늘로 날아올랐다.
=우와?=
=……!=
=헉…….=
1톤은 확실하게 넘을듯한 거대한 두꺼비를 발톱으로 단단하게 붙잡은채 날아오는 비상.
환인은 즉시 영혼 화살을 날려 버둥거리는 두꺼비의 머리를 날려버린 뒤 비상이 날아오고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