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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기담-339화 (339/813)

〈 339화 〉 333숲 옆 마을 크라빈

* * *

환인은 롬디스와 시엘라라는 조인족들이 본채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1/3 정도 완성된 지도로 시선을 내렸다.

‘의도한 대로 저들이 지원해왔지만…….’

애초에 그들 앞에서 라비올라에게 미궁 지원 인원이 필요하다고 말을 꺼낸 이유가 이때문이었다. 하지만 역시 3명으로는 인원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참수리 머리를 한 롬디스는 자신을 보자마자 위험하다는 걸 첫눈에 알아차릴 만큼 직감과 상황 판단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다만 분석력과 판단력이 좀 떨어지는 듯 한데, 그건 회색 줄무늬 깃털이 회백색 머리카락의 위에 빼꼼 난 뻐꾸기 계통 여자가 채워주는 듯하니 그 둘이면 미궁에서 구출한 여자를 맡겨도 될 것이다.

여기에 환연처럼 여러 속성력을 쓸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만 더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산란못이 마음에 걸린다.’

못의 안쪽을 파악하거나 공략하려면 땅이나 물을 다루는 법술사가 있으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직업자가 고작 16명뿐인 마을에 그만한 실력자가 있을지.

마을로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적당히 자원하고 나선 직업자 4명으로 만족하려 했는데뜻밖에 괜찮은 공짜 노동력을 보았더니 공략에 욕심이 생긴듯하다.

‘차라리 저들에게 마을을 지키도록 지시한 뒤에 일행을 모두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나을지도.’

쿠르티와 쿠핀, 쿠라에게 마차를 끌게 하고 유르파를 그 옆에 붙인다. 그리고 환연의 정령술에 도움받아 산란못을 탐색하는 쪽이…….

“…….”

환인은 고개를 저었다.구출자들은 모두 이지가 날아간 상태라고 봐야할 거다. 그런 사람이몇 명이 될지 모르는데 유르파 혼자서 그들을 모두 돌볼 수는 없다.

일단은 롬디스 일행을 데리고 들어가보고, 별 도움이 안된다 싶으면 그때 멤버를 바꿔보도록 해야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먼저 목욕탕에서 씻고 나온 환인은 라비올라가 데려온 직업자 열여섯 명과 별채의 거실에서 만나게 되었다.

라비올라를 포함해 16명. 크라빈 마을의 직업자 전원이다.

환인은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

“절 따라오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상관없어요!=

=성자님을 위해서라면!!=

“…좋습니다.”

환인은 그들의 기운찬 대답을 듣고 우선 1급인지 2급인지 분간도 안가는 열 명을 제외했다.

“여러분은 함께 가기에 너무 약합니다. 라비올라 양은 마을을 책임져야 하지 않습니까. 빠지십시오.”

은근슬쩍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는 라비올라도 제명하자 시무룩해져서는 옆으로 비켜선다.

“거기 술사 세 분의 속성과 등급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저, 저저는 바람 속성 3급입니닷.=

=2급인 빛 속성을 다루는 라인켈입니다!!=

=물……을 3급까지 다루고 있어요.=

나머지 세 명은 엽사 둘에 투사 하나. 세 명 전부 2급이다.

내심 땅을 1픽으로 꼽았었기에 땅 속성 보유자가 없다는 사실에 환인은 속으로 혀를 찼다.

열외시킨 10명 중 황술사가 있긴 하지만 1급의 언저리에 걸쳐진 술법사는 일반인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결국 물 속성 3급 술법사인 유티를 선발한 환인은 그녀를 롬디스 파티에게 보낸 뒤 라비올라에게 다른 준비 현황에 대해 보고를 들었다.

=성자님이 요청하신 수레는 총 세 대, 밤새서라도 반드시 만들어놓겠다고 마을 목수장이 확답했어요.=

“반쯤 억지에 가까운 부탁이어서 1대만이라도 완성되길 바랐었습니다만, 마을의 목공은 실력이 뛰어난 분인가 봅니다.”

=앗, 그게 아니라 유르파 님이 옆에서 돕겠다고 남으셔서……. 아니었다면 1대도 완성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그랬군요. 그렇다고 해도 제작은 그분들이 하시는 것이니 잘 부탁한다고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식량은……”

습기를 막아주도록 꼼꼼하게 포장된 여행용 식량 보따리를 확인한 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에서 이만한 양을 모으는 것이 적지 않은 부담이었을 텐데, 고생하셨습니다.”

=아니에요. 절반은 저희 집 곳간에서 충당해서 마을에 가는 부담을 덜었으니 그 점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요.=

환인은 라비올라를 잠시 바라보다가 목록으로 시선을 내렸다.

이렇게 필요할 때 귀족적인 의무를 다하니까 마을 사람들이 아직 어리다고 할 수 있는 라비올라를 마을의 어른으로 따르는 거겠지.

=그다음은 깨끗하고 질좋은 천 개당 5동화 씩 150장…….=

=모포로 사용할 두꺼운 천은 개당 8동화 씩 150장…….=

=깨끗이 정화한 식수는…….=

수레 세 대 제작에 10은화, 식량 및 식수 200인분 6은화, 천 150장 7.5은화, 모포 150장 12은화.

“다 합치면 대금이 36은화군요. 이걸로 값을 치르십시오.”

환인이 열은화 4닢을 내밀자 라비올라가 황급히 손을 휘저으며 고개를 젓는다.

=네?! 아니에요! 저희 마을을 구해주고 계신데 어떻게 대가를 받겠어요?!=

절대 받을 수 없다며 극구 사양한 라비올라는 기운도 좋게 저녁 식사를 준비하겠다며 사라졌고, 해가 질 무렵에는 저택의 요리사들이 신경 써서 준비한 진수성찬이 마련되었다.

족히 30명은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양.

환인은 잠시 생각하다가 작업 때문에 빠진 유르파와 환연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았다.

온갖 호화로운 음식이 길이 5m의 장탁자에 가득 차려진 다이닝 룸.

천장에는 마도구 샹들리에가 환한 빛을 내뿜으며 식당을 밝혔고 장탁자에도 화려한 은촛대가 불빛을 내는 동시에 잡내를 태운다.

갓 만든 음식들은 모락모락 김을 피워올리며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드러내지만, 환인 일행을 제외한 롬디스=팔마의 파티 세 명과 마을에서 참가하기로 한 청술사 유티에 라비올라까지 다섯 명 긴장한 듯 좀처럼 음식에 손을 뻗지 못했다.

“앞으로 최소 5일, 최대 7일은 함께 해야 하니 이 기회에 통성명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어봅시다.”

파아앗­

환인은 긴장한 그들을 위해 평온의 파동을 쏜 뒤 술잔을 들어 건배를 강요했다.

평소였다면 술을 마시든 음식을 먹든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 저렇게나 긴장하고 있으니 자신이 먼저 물꼬를 틔워줘야겠다고 느꼈기 때문.

평온의 파동의 안정 효과와 약간의 술기운이 긴장을 풀어냈는지, 환인의 의도를 알게 된 사람들은 서로 통성명을 하며 조금씩이지만 대화를 주고받으며 친목을 다져나갔다.

이실리테와 안느는 롬디스 파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호멘을 데리고 온 파티다. 좋게 볼 수 없는게 당연한 일.

하지만 술이 한 바퀴 돌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들은 호멘과 다르게 멀쩡하고 상식적이라는걸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경직된 분위기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날을 세우고 있던 것은 이실리테와 안느 뿐이었고 롬디스=팔마의 파티는 환인 일행과 어떻게든 가까워지고 싶었으니까.

=……이런 일이 있었거든. 정말…… 말도 못할 만큼 끔찍한 모습이었어. 만약 도령이 없었다면 그 아가씨는 죽어서도 괴로움에 몸부림쳤을 거야.=

=세상에…….=

=안느 기사님도 히, 힘드셨겠어요….=

=내가 힘들게 뭐가 있겠어. 힘든 건 그 사람들과 도령이지.=

연거푸 술을 들이켜며 푸념하듯 흘려내는 안느의 이야기에 라비올라와 시엘라, 유티, 세 여자가 공감을 보이니 여자 쪽의 분위기는 나름 훈훈하게 흘러간다.

문제는 환인 가까이 있는 롬디스와 렉탈 두 명.

처음에만 건배를 강요했을 뿐, 이후에는 이실리테의 술시중을 받으며 말없이 술잔만 기울이고 있으니 갈매기족인 렉탈은 태생이 무뚝뚝한지 함께 술잔을 계속 비우며 나름 안정을 유지하는데 롬디스는 식사와 술이 코로 들어가는지 부리로 들어가는지 모를 만큼 딱딱한 모습이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어? 정말?! 짐승신 교단의 성술 중에 생명체 탐지가 있어?!=

“……?”

안느의 놀란 외침에 환인도 그쪽을 돌아보았다. 시엘라가 상기된 얼굴로 두손을 맞잡은 채 흥분하고 있었다.

=네! 만약 기생촉수 두꺼비 안에 사람이 잡혀있으면 제가 확인할 수 있어요!=

=와, 잘됐다! 진짜 잘됐어! 도령, 잡힌 여자들을 구출할 방법이 생겼어!=

와락, 자신에게 안겨오며 기뻐하는 안느의 등을 다독이면서 환인은 시엘라에게 시선을 주었다.

“시엘라 양. 미궁에 들어가면 잘 부탁하겠습니다.”

=네, 네!=

자신과 여자친구들의 실력이라면 어디에 피해자가 잡혀있는지만 알아도 어렵지 않게 구출할 수 있다.

딱히 전투중 바로 구출하지 않아도 된다. 환인이 뱃속에 여자를 담은 놈을 먼저 저격해서 죽인다는 방법도 있으니까.

=자, 자! 마셔! 쭉~ 마셔!=

=녜, 네헷…!=

그녀의 마음을 괴롭히던 가장 큰 근심이 해결되어서일까.

안느는 반쯤 폭주하는 느낌으로 술을 마시면서 시엘라와 유티에게도 연신 술을 권했고, 두 명은 기업 회장 앞의 말단사원처럼 한 번 거절도 하지 않고 그녀가 주는대로 마시며 급격히 취해간다.

환인도 이즈음 해서 롬디스와 렉탈에게 술을 따라주며 나는 너희에게 큰 감정이 없다는 어필을 보였다.

단순한 노동력이 아니라 공략에 나름 이바지할 수 있는 파티원이라면 약간은 신경 써줄 의향이 있기 때문.

“미궁에서 여러분의 안전은 우리가 최대한 보장하겠습니다. 미궁에서의 일, 잘 부탁합니다.”

=아, 아닙니다. 저희가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술이 몇 차례 돌고 난 뒤, 환인은 롬디스를 앞에 두고 내일 들어갈 이 미궁의 특징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미궁에 임의로 붙인 이름은 산란못입니다. 개방형으로 습지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내부에는 크고 작은 산란못이 최소 50여개 이상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크기는 작은 연못에서 크게는 호수까지 다양하며 이형종도 크기에 걸맞게 10여 마리에서 100여 마리 넘게 서식한다고 알려주었다.

“특이 사항이라면 미궁이 만들어내는 이형종은 거의 없는 겁니다. 한 번 지나가며 이형종을 정리한 곳에서 새로운 이형종이 탄생하는 것은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성자님 말씀대로라면 개방형 특수 미궁이군요.=

환인이 그것에 대해 묻자 롬디스는 성자님이라서 잘 모르시는구나 하고 최대한 공손히 설명해주었다.

개방형 미궁에는 간혹 특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며, 가혹한 자연환경에 집중된 미궁이 있는가 하면 이형종의 강화에 집중된 미궁, 식물의 변화와 증식에 집중된 미궁이나 들어온 사람을 홀리는 환각계 미궁도 있다고.

=성자님께서 보신 미궁은 그러한 특수 중 과다 증식 형태의 미궁인 것 같습니다.=

즉, 산란못 미궁은 이형종이 스스로 빠르게 번식할 수 있도록 개량에 집중한 미궁이라는 뜻.

“그래서 발생한 지 얼마 안 되는 미궁이 추정 4급까지 빠르게 성장한 거군요.”

=예. 약간의 조건만 맞춰진다면 이형종은 빠르게 증식할 테고, 그 숫자로 숲의 생물을 모두 납치해 먹어치웠을 테니 미궁의 성장도 더 빨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롬디스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환인은 그에게 술을 내밀며 물었다.

“설명이 도움되었습니다.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

=감사히 받겠습니다.=

롬디스는 왠지 깃털이 찌릿거린다고 생각하며 환인이 따라주는 술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누가 봐도 기백에 눌려 긴장하고 있는 모습. 롬디스는 좀 전에 들은 이야기 때문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 전투에 20~40마리와 싸웠다니. 그 정도라면 산란못 근처는 대형 괴물 방과 다를 바 없다는 말이 아닌가.’

미궁에는 발견하면 목숨이 위험하다는 장소가 있다.

평소 방마다 2~3마리에 불과한 이형종이 유독 한 방에 10마리 이상 모여있는 경우다.

10마리면 적은 편이고, 심각하면 한 방에 30마리 넘게 모여있는 경우도 있다.

이걸 괴물 방이라고 하는데, 이런 괴물 방의 이형종은 외부자에게 극도로 흉포하고 난폭해지기에 괴물 방에 들어간 파티는 그 방에 모여있는 괴물들에게 쫓기게 된다.

도망치더라도 괴물 방에서 흘러나온 괴물로 인해 그 층은 아비규환이 되기 일쑤.

자신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재앙이 되는 장소가 바로 괴물 방이고, 성투사님의 말에 따르면 산란못 미궁은 그런 괴물방의 연속이었다.

그런 곳에서 상처 없이 멀쩡히 돌아왔다는 것은 성자님도 평범한 영혼사가 아니라는 뜻이 된다.

아니, 애초에 4급 조인족 엽사를 상처없이 처리해버린 것만 봐도…….

롬디스는 받은 술을 단숨에 삼키곤 후우, 주정이 담긴 숨결을 내쉬면서 속으로 다짐했다.

그만큼 이형종이 많은 곳이라면 자신들이 나설 기회가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다.

그때가 되면 실력을 아낌없이 발휘해 성자님의 눈에 드는 동시에 호멘으로 인해 뒤집어쓴 오명을 벗겠다고 다짐하며 콜록, 기침한 롬디스는 조용히 안주로 손을 뻗었다.

여긴 음식도 맛있고 술도 맛있고 다 좋은데, 술이 너무 세…….

술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낀 롬디스는 맥주와 와인을 물처럼 마시며 웃고 떠들고 노래부르며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성투사님과, 그런 그녀를 상대하며 같이 술을 퍼마시는 자신의 애인을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나중에 술병 걸리지 않도록 숙취해소풀이라도 찾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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