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7화 〉 331 숲 옆 마을 크라빈
* * *
=씹, 씨발, 씨발!!=
장갑에 얻어맞아 부리 일부가 금가고 입 가장자리가 찢어진 호멘은 결투 준비 시간 사이 눈에서 불을 쏟아내며 욕지거리를 연신 내뱉었다.
힘이라곤 좆도 없는 영혼사 새끼가 직업과 동료만 믿고 알랑거리기는!
고개를 들자 하늘을 어슬렁거리듯이 날아다니는 날파리 같은 요정년이 보인다.
“도망치려 한다면 환연이 당신을 통구이로 만들어버릴 겁니다.”
으드득. 너덜거리는 부리 일부가 부서져 흐를 정도로 분노와 원한을 불태우고 있는 호멘에게 롬디스가 다가섰다.
=호멘.=
=형님! 아니 씨발 대체 이런 게 어딨습니까?! 리더면 파티원을 지켜야 하는 게 당연…… 흐컥?!=
뻐억!
가까이 다가온 형에게 불만을 토로하려던 호멘은 숨이 일순 멈출 정도의 격통이 복부를 통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뒤로 나자빠져서 끙끙 앓았다.
그런 그에게 온기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차가운 목소리가 쏟아진다.
=호멘. 나는 지금까지 파티의 리더로서, 그리고 동향 출신의 형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지기 위해 지금껏 네가 여자 일로 문제를 벌여왔던 것을 나름대로 책임지고 수습해왔었다.=
=끄, 으억…….=
=하지만 이건 아니다. 진짜로 이건 아니야. 더는 너의 무식하고 무책임한 일에 얽히고 싶지 않다. 이건 시엘라와 렉탈도 동의한 내용이다.=
=이, 씹…….=
=그러니 호멘 틸머, 오늘부로 널 파티에서 추방한다. 이 마을에 있었던 일은 전부 서신으로 작성해 프라버 행정관은 물론 우리 마을에도 소식을 보낼 테니 그리 알아둬라.=
호멘은 오장육부가 뒤틀리는듯한 고통과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내가 얼마나 파티를 위해 노력해왔는데! 같은 마을 출신이라서, 자신보다 고작 몇 년 일찍 태어났고 실력도 조금 더 좋아서 형님 취급해줬더니 날 이런 식으로 내쳐내?!
=롬…디스! 이 개자식아!! 너 후회할 거다!!=
=후회는 네가 할 거다. 미친놈, 시비털데가 없어서 성자님에게 시비를 털어? 네놈 눈에는 영혼 기사님들의 수준이 보이지도 않는 거냐? 등신 닭대가리 새끼야, 넌 앞으로 이 바닥에서 직업자 활동을 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이이익……!=
호멘은 자신에게 모멸의 말을 쏟아붓고 돌아가는 롬디스의 뒤를 노려보며 가슴 속에서 치미는 모욕감과 굴욕을 저주의 말로 만들어 퍼부었다.
지 새끼도 못 알아볼 새대가리! 마누라 보지 구멍도 못 찾을 모지리 새끼!! 날다가 날갯짓을 잊고 떨어져 골통 깨질 호로자식!!!
내가 뭘 잘못했다고! 흡정족 맞잖아!? 창녀잖아!! 반반한 면상으로 영혼사를 후린 그 개잡년 잘못이지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데?!
분노를 토해내고 있자니 아까 영혼사에게 얻어맞은 곳과 롬디스 그 개자식에게 맞은 곳의 고통이 점차 심해진다.
‘씨발, 회복제를 써야 하나? 이건 비싼 건데……!’
호멘은 파티의 회복을 책임지던 시엘라를 찾았지만, 시엘라는 롬디스 개자식과 함께 영혼사를 찾아가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빌어먹을 땅개 같은 창녀년!
이 굴욕과 수치는 절대 잊지 않겠다고 속으로 곱씹으며 호멘은 한 병에 10은화나 하는 중급 회복제의 뚜껑을 땄다.
=우리는 결코 유르파 님께 무례한 행동을 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려 한 것이 아니라, 세 명이서 미궁을 돌파한다는 것은 저희에게 비상식의 영역이었기에 성자님을 돕기 위해서 뒤를 쫓으려 했던 겁니다.=
=그래서?=
=저 자식이 유르파 영혼 기사님에게 그 발언을 한 직후, 저는 성자님이 돌아오시면 그에 마땅한 벌을 내려주시리라 생각하고 저놈을 닷새간 방에 감금까지 시켜놨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로 인해 유르파 님이 불편해하실까 저희는 내어 받은 저택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었습니다. 성자님과 분쟁 및 마찰을 벌일 의사는 눈꼽만큼도 없다는 것을 부디 알아주십시오…….=
환인은 자신들의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결사적으로 변명하는 롬디스=팔마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푹 숙인 유르파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왔음에도 별채 구석방에서 얼굴을 내비치지 않고 있었는데, 환연이 닷새 동안 두문불출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에 환인이 직접 가서 이 자리로 데려왔다.
그리고 마당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듣자마자 저렇게 고개를 숙인 채 누구와도 시선을 마주하지 않고 있었다.
심정은 이해한다. 자신의 종족 때문에 이런 말썽이 벌어졌으니 얼굴을 들 수 없는 거겠지.
하지만 잘못은 저 조인족이 했지 그녀가 잘못한 게 아니다. 그녀가 죄인처럼 행동할 이유가 없다.
실추한 명예는 자신의 손으로 되찾는 게 좋지만, 이종족들의 사고방식에 따른 우선순위에 따라 자신이 결투로 호멘을 뭉개버려도 유르파에게는 나름의 위로가 될 거다.
그리 생각했던 환인은 그녀의 무릎 위로 눈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자신이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르파.”
=미안… 미안해……. 나 때문에…… 흑….=
“왜 유르파가 미안해합니까.”
=머리로는 자기를 떠나는 게 맞다고 하는데, 내가 사라져야 자기한테 더 도움이 될 텐데……. 그러지 못하는 내가 너무 싫어…….=
“유르파. 당신을 비난하는 자들은 당신을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아니야……. 그걸 말하는게 아니야. 나는, 난 저 남자에게 모욕당했을 때 화를 냈어야 했어! 환연이 화를 낼 게 아니라 내가 화를 내면서 내 명예뿐만 아니라 자기의 명예를 지켜야 했단 말이야!=
유르파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어 환인을 쳐다본다. 자신을 향한 혐오감이 가득한 얼굴이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속으로 주판을 굴린다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했어……. 내심 그 말을 인정하고 있었던 거야……. 나는 자기한테 이런 관심을 받을 자격이 없는 년이야…….=
즉, 호멘의 말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게 아니라 자신의 행동에 혐오감을 느꼈다는 이야기.
그러다보니 자신의 종족에 대한 자격지심도 튀어나왔고 뭐 이런저런 마음의 혼란과 번민에 방에 틀어박히게 되었다는 거다.
환인은 그녀의 옆으로 자리를 옮긴 뒤 번쩍 들어 무릎에 앉히고 품에 꼭 끌어안아 주었다.
“다행이군요.”
=……?=
눈물을 줄줄 흘리는 유르파를 비롯해 분노와 착찹함이 반반씩 섞인 표정의 이실리테와 안느도 환인을 돌아본다.
“무섭다거나 겁나서 그 상황을 피했다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당연하지! 내가 아무리 신체 전투 능력이 떨어지는 부여 전문 비술사 나부랭이지만, 가지고 있는 마도기를 퍼부으면 저런 놈은 순식간에 폭사시킬 수 있어!=
회복제를 삼키고 있는 호멘을 가리키며 분노하는 모습은 확실히 두려움과 거리가 먼 모습이다.
환인은 빙긋 웃으며 그녀의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토닥였다.
“그럼 됐습니다. 저는 당신이 저런 양아치 같은 자식에게 들은 폭언으로 과거에 얽매여 마음에 상처를 받은 줄 알았습니다.”
=으, 응…?=
“과거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고약합니다. 치료하기도 어렵고 재발하기 무척이나 쉬운 상처지요. 그게 아니라 단지 행동의 실수 때문인 후회라면, 다음부터 그러지 않으면 됩니다. 그거면 끝나는 일입니다.”
손수건을 꺼낸 환인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유르파의 눈가를 훔쳐주며 말했다.
“이실리테를 보십시오. 안느를 생각해보십시오. 제가 언제 그녀들의 과거를 두고 문제 삼은 적이 있었습니까.”
=…….=
창피해하고 쑥스러워하는 두 아가씨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유르파는 환인의 목소리에 다시 그를 돌아보았다.
“현자는 과거보다 현재가 중요하며, 현재보다 미래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유르파, 당신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살아갈 수 있습니까?”
유르파는 환인이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금방 눈치챘지만, 그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달콤하고 포근해서 다시 눈물이 흘러나와 대답할 수 없었다.
환인의 목을 끌어안고 한동안 히끅거던 유르파는 겨우 울음을 억누르며 물었다.
=이렇게나 계산적인 년인데…… 자기는 싫지 않아?=
“저만을 생각하며 계산하는 아가씨를 제가 왜 싫어하겠습니까.”
다시 눈물을 글썽거린 유르파는 환인의 가숨에 안겨들었다. 그리고 힘을 줘서 꼬옥 끌어안았다.
흥분, 설렘, 열망, 기쁨, 사랑스러움, 든든함.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며 가슴속에서 흘러넘친다.
이 흘러넘치는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까.
태생이 이꼴이라 타인의 악의와 부정적인 감정을 예민하게 느끼던 유르파였다.
그런 그녀에게 흡정족의 유르파가 아닌 평범한 여자인 유르파로 자신을 보는 환인은 빛이나 다름없었다.
그때부터 그에게 자기 자신의 모든 걸 바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래서 몸도 주었다. 마음도 주었다. 가진 기술과 능력도 모두 그를 위해 사용했고 여태까지 모아두었던 재산 명의도 몰래 그의 앞으로 돌려놓았다.
더는 그에게 줄 게 없는데…… 여기서 뭘 더 줄 수 있지?
내 목숨?
유르파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그녀를 옆에 내려놓은 환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롬디스=팔마와 그의 일행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폭언으로 상처받지 않았다는 것을 짐승신님께 감사하도록 하십시오.”
롬디스=팔마 일행은 그 말에 숨겨진 의미를 깨닫고는 안색이 파리하게 변해 유르파에게 허리를 꾸벅꾸벅 숙이며 사과했다.
그녀의 과거를 조롱해 거기에 큰 마음의 상처를 주었다면, 저 호멘뿐만 아니라 너희들도 연좌제를 씌워 다 죽여버렸을 거라는 뜻이었으니까.
속을 쓸어내린 롬디스는 환인이 흑창을 쥐고 걸어나가는 것을 바라보다가 진심으로 걱정된다는 듯이 안느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성투사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호멘 저 자식이 비록 4급이라지만, 선천 능력이 독수리의 시야와 조준각인데다 직업 무기도 활입니다. 하늘에서 활만 쏘아대면 성자님께서 어쩌실 방도가…….=
=그냥 입 다물고 지켜봐. 저 자식을 내치고 도령한테 진심으로 사과하기로 선택한 네 결정을 남은 평생 감사히 여기며 살아갈 테니까.=
안느의 이야기에 롬디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앙칼진 요정도 그렇고 모두가 아무런 걱정 없이, 성자님이 이기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영혼사님이 걱정되어 슬쩍 호멘을 후려쳐 데미지를 주었었는데 쓸데없는 짓이었나?
그래, 상급 영혼사시니까 영탄과 영의 파동도 쓰실 수 있으시겠지. 거기에 맞으면 아무리 저놈이라지만 추락할 테고 저 예리한 창이면 목도 쉬이 꿰뚫으실 테니까.
롬디스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살기를 느끼고 맞은편에서 걸어나오는 호멘에게 시선을 주었다. 자신에게 원한을 품은 호멘의 얼굴이 보인다.
일부러 후려치고 조롱해서 원한을 이쪽으로 끌어온 보람이 있다.
저 상태라면 이런 상황이 된 것은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대부분의 원한을 자신에게 쏟아부을 거다. 그러니 만약 저 자식이 성자님한테 이기더라도 성자님께 해꼬지는 하지 않을 거다.
롬디스는 서로 마주선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이라도 그녀에게 사과한다면 저도 일말의 자비를 베풀겠습니다.”
=씨발…… 난 잘못한 거 없어!! 창녀한테 창녀라고 한게 뭐가 잘못이라고!=
호멘은 미칠 듯이 짜증 났다.
이제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사과는 못한다. 사과하면 그날 저 요정년에게 죽을뻔한 것도, 롬디스 개씨발새끼가 배신한 것도 전부 내 잘못이 되니까.
=난 다 알아! 영혼사라고 뭐 없는 거! 널 때리고 괴롭혀도 신님의 저주를 받아 신님의 정원에 못 들어가는 일 같은 건 없다고! 내가 왜 너 같은걸 두려워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심장이 떨릴 정도로 무서웠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역시 아까는 저 무식하게 강해 보이는 영혼 기사들 때문이었어.
착각은 오해를 부르고 오해는 간이 배 밖으로 나오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리고 간이 배 밖으로 나오면 사람은 당연히 죽는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결투를 시작하지요. 결투는 당신이 죽든가 내가 죽든가 둘 중 하나가 되어야 끝나는 걸로 하겠습니다.”
원래 여기에 공증인이 결투의 시작을 알려야 하지만, 환인은 그런 걸 세우는 게 귀찮았고 호멘은 그런 걸 신경 쓸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씨발…… 진짜 미친거 아냐?! 특별한 힘도 없는 영혼사 주제에 창공의 사수인 나한테 그깟 창 한 자루 들고 덤비겠다고?! 대리인을 내세우는 것도 아니고?!=
“하하.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이, 씨발…!=
환인은 분노에 게거품을 물 것처럼 부들부들 떠는 호멘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혼사인 자신을 보고도 위축되거나 하지 않았기에 혹시 했는데 역시였다.
영혼사의 진실 일부를 알고 있다면 저게 당연한 행동이겠지.
그래서 자신도 힘을 쌓으려고 노력한 거다. 명예와 이름값만으로 모든 싸움을 막을 수는 없으니까.
펄럭!
쏜살같이 하늘로 날아오른 호멘은 허리춤의 개인용 아공간 주머니에서 마비독이 발린 화살 한 묶음을 꺼내 활에 잰다.
그리고 이쪽을 덤덤하게 올려다보고 있는 영혼사 새끼한테 조준했다.
‘적당히 상처를 줘서 마비시킨 뒤에 내 승리라고 선언한 뒤 돌아가겠어. 씨발 롬디스, 그리고 저 개잡년들, 전부다 두고 보라고!’
모험가 활동으로 알게 된 뒷세계의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담가버릴 테니까!
먼저 영혼사의 팔부터 날려버리기 위해 화살을 쏜 호멘은 명중의 예감을 느끼며 새로이 화살을 쟀는데, 그 순간 눈을 부릅떴다.
영혼사가 툭, 창을 휘두르자 화살이 비껴나가 뒤쪽에 박힌 것이다.
우연인가? 호멘은 부리를 악물고 재차 마비 화살을 쏘았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영혼사 새끼가 가볍게 튕겨낸다.
=뭔데 씨발!=
자신의 위상력이 담긴 화살은 보통 화살보다 1.5배는 더 빠르게 날아간다. 작정하고 쏘면 5급 직업자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화살인데 그걸 어떻게 저딴 좆밥새끼가 쳐내는 거냐고!
악에 받친 호멘은 1초에 3번을 쏘는 삼연사를 네 번 연속 쏘아 날렸다.
총 12발의 번개 같은 연사.
피하는 것을 염두에 둔 예측 사격이었는데 영혼사 새끼가 한 발짝도 움직이지않고 4발을 쳐내버린다. 덕분에 나머지 8발은 그냥 허공에다 쏜 꼴이 되어버렸다.
짜증도 짜증이지만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순간, 영혼사 새끼의 주변으로 떠오르는 빛의 검 여섯 자루를 목격한 호멘은 위기감을 느끼고 몸을 확 비틀었지만.
퍼퍽
=끄아아악!!=
날개죽지에서 일어난 끔찍한 고통과 함께 비명이 육성으로 터져 나왔다.
오른쪽 날개를 움직이려고 하면 끔찍한 고통이 밀어닥친다. 고도를 유지하기 힘들다. 몸이 점차 내려간다.
퍼버벅
=그아악!!?=
이번에는 양 허벅지와 왼쪽 어깨에 불로 지지는 듯한 격통이 피어올랐다.
아까는 보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보았다. 저 영혼사 새끼의 몸 주변에 떠있는 빛의 검, 저게 화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아와 자신의 몸을 꿰뚫었다.
뭐지? 영혼사라고 했잖아! 영혼사한테 저런 능력이 있단 말은 듣지 못했다고!?
고통과 충격에 날개짓을 잊은 호멘은 그대로 추락해 쿵 묵직한 소리가 날 정도로 땅에 꼴아박았지만, 잠깐 사이 고도가 상당이 낮아졌기에 머리통이 수박처럼 박살 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끄… 크흐…… 으억….=
하지만 낙하의 충격은 뇌진탕과 의식 혼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땅에 떨어진 새끼 새처럼 꿈틀거리며 거친 숨을 토해내던 호멘은 어지러운 머리로 띄엄띄엄 생각했다.
‘어째서, 뭐 때문에……. 왜?’
왜 일이 이렇게 된 거지?
저벅저벅.
누군가 다가온다. 머리가 멍하다. 적이다. 적? 적은 죽여야지.
왼팔은 움직이지 않는다. 비몽사몽 간에 멀쩡한 오른팔로 깃털 밑에 숨긴 포크 사이즈의 독 단검을 적에게 투척한다.
티디딕
흐릿한 눈앞의 시야에 빛으로 이루어진 방패가 보인다. 독 단검은… 땅에 떨어져 있다.
호멘은 다시 깃털 밑에 숨겨둔 단검을 던지려 했지만.
푸욱.
=크걱… 끄륵, 끄르르…….=
목을 파고드는 무언가 불쾌한 감각과 함께 숨을 쉬기가 힘들어졌고, 호멘은 혼탁한 의식 중에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벌레 죽이듯 호멘의 목을 찔러 경추를 끊은 환인은 무심한 표정으로 창을 휘둘러 피를 털어내고 여자친구들에게 돌아갔다.
‘기회를 줄만큼은 주었다.’
라드세아는 남자가 자기 여자를 지키지 않거나 다른 남자에게 빼앗기면 남자를 병신 취급하는 나라였다.지극히 상식적이고 당연한 행사였으니 영혼사 활동에 지장은 생기지 않을 거다.
환인은 죽은 호멘을 향해 조금 침울하고 상심한 얼굴로 시선을 주는 롬디스=팔마를 무시하고 환연에게 말했다.
“우리는 별채에 가 있을 테니 너는 가서 라비올라를 불러와라. 미궁 내부로 인해 부탁할 것이 생겼다고 말하면 된다.”
「알았어. 지금 바로 불러?」
“그래. 내일 다시 입장할 예정이라고 말하면 된다.”
전달을 받은 환연은 곧장 마을로 날아갔고, 환인은 어정쩡하게 서 있는 롬디스=팔마에게 다가가 말했다.
“동료를 죽인 것에 이의가 있다면 얼마든지 받아주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성자님은 당연히 하셔야 할 일을 하신 것뿐입니다. 되려 제가 사과를 드려야 합니다. 파티원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 불의를 끼친 것,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두 번이나 기회를 준 것은 성자님이고 그걸 걷어차 죽음을 재촉한 것은 호멘이다.
거기다 호멘 그놈은 성격적으로 문제가 약간 있긴 했지만, 실력은 4급 이형종을 홀로 싸워 이길 정도의 준수한 전투 능력을 지녔다.
그런데 성자님은 전투 능력이 거의 없는 영혼사 직업으로 호멘의 속사를 무슨 벌레 쫓아내듯 쳐냈고 호멘을 참새처럼 쏘아 떨어트렸다.
이의가 있더라도 속으로 삭혀야 할 판이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
고개를 끄덕인 환인은 호멘의 시체에서 영혼이 빠져나와 괴로움에 몸부림 치는 것을 힐끔 보았다.
머리 깃털을 쥐어뜯고 발작하듯 몸부림치던 호멘은 결국 모든 것을 체념하고 그대로 하늘로 올라간다.
=주인님. 전리품을 챙길까요?=
“됐다. 내버려둬라.”
전리품을 챙기는 건 승자의 당연한 권리지만, 척 봐도 몸에 걸치고 있는 방어구는 자신들이 입은 것보다 싸고 질이 떨어지는 것들
거기다 이 인처 결투는 어디까지나 영혼사인 자신과 자신의 여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저택의 창문을 통해 이쪽을 구경하는 하녀들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전리품 약탈은 해선 안 된다.
환인은 군기가 든 병사처럼 꼿꼿하게 서있는 시엘라와 렉탈을 한 번씩 쳐다본 뒤 롬디스=팔마에게 손짓한 다음 별채로 향했다.
손짓의 의미를 알아차린 롬디스가 재빨리 따라붙었다.
“알칸 드람 부서장의 의뢰로 먼저 도착했다고 들었습니다.”
=예, 예. 드람 씨가 성자님의 고생을 염려해 저희에게 특별우선의뢰를 제시하셨고 저희가 받아들였습니다.=
“그러셨군요.”
그랬는데 이 꼴이 되게 놔뒀냐는 질책으로 들린 롬디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실상은 알칸=드람이 시급히 손을 썼다는게 눈앞의 이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된 대답이었지만, 롬디스는 그걸 알 도리가 없었다.
“프라버의 다른 지원 현황에 대해 아는 게 있습니까?”
주제가 바뀐 것에 십년 감수한 롬디스는 재빨리 알고 있는 것을 입에 담았다.
=그것이, 지원 준비에 사흘이 걸린다고 들었습니다. 프라버에서 이곳까지 행군해온다면 7~8일가량 걸리니…… 지금쯤 프라버 가도를 한참 걸어오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도착까지는 최소 5일이 남았다는 이야기.
“…….”
환인의 시선이 롬디스=팔마와 그의 일행에게 향했다.
5급 전사 하나에 4급 전사 하나, 4급 성술사 하나.
데려가서 쓰기에 적당한 직업 조합이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