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0화 〉 324 숲 옆 마을 크라빈
* * *
갑작스럽게 찾아왔던 숲의 수호자는 비상이 완전한 성체가 된 뒤 올 때만큼이나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어? 숲의 수호자 어디 갔어?=
=그새 돌아간 거야?=
비상의 변한 모습에 정신이 팔려있던 여자들은 뒤늦게 숲의 수호자가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이내 신경 쓰지 않고 비상에게 다시 관심을 주기 시작했다.
그만큼 녹색 쿠에 성체의 모습은 평범한 쿠에와 다른, 그녀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하이엔드 스포츠카를 실제로 본 자동차 애호가 같은 건가.’
속으로 중얼거린 환인은 몇 가지 확인사항을 꼽으며 비상에게 다가갔다.
여자들 앞에서 패션쇼를 하듯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날개를 들어보는 등 자기가 변한 모습을 즐기던 비상은 가까이 다가온 환인을 보곤 ‘나 어때?’ 하듯 우쭐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변함없는 성격에 환인도 작게 웃으며 비상의 목을 쓰다듬었다.
“키가 더욱 커져서 이제 머리를 쓰다듬어주지도 못하겠군.”
쿠읏?
순간 당황한 비상은 더욱 맑아지고 총명해진 눈을 도록도록 굴리다가 ‘이러면 되지!’하듯이 머리를 환인의 눈높이 정도로 낮춘다.
눈으로만 비상을 감상하던 여자들은 그 틈에 비상의 몸 이곳저곳을 만져보며 감탄했다.
=깃털이 억센 것 같으면서도 무지 부드러워! 폭군룡의 미궁에 나왔던 조룡의 깃털보다 더 뛰어나지 않아?=
=그러게. 와, 비상이 다리도 더 굵고 튼튼해졌어. 발톱도 더 날카로워졌고. 여기에 걷어차이면 기생촉수 개구리도 한 방이겠다.=
근접직업자여서 육체적인 변화에 관심을 주던 안느와 이실리테처럼, 유르파와 환연은 비상의 위상력 측면의 성장에 관심을 보였다.
=비상아. 이제 바람은 어느 정도로 내보낼 수 있니?=
크응~ ……큐삣!
푸화확!!
힘을 모으듯 목을 움츠리다가 쭉 내밀며 날개를 활짝 펼치자 비상의 전방 10m 지점에 높이 5m의 녹색 회오리가 발생했다.
콰르르르 사나운 소리와 함께 5초 정도 유지되던 바람이 걷히자 땅에 20cm 정도 파헤쳐진 자국이 드러난다.
그걸 확인한 환연이 놀라워하며 손뼉을 쳤다.
「와, 중급 바람 정령한테 부탁했을 때 정도잖아?」
=진짜. 시전 속도와 발동 속도, 이 위력이면 4~5급 풍술사 정도의 술력이야. 우리 비상이 훌륭해졌네~? 이왕이면 좀 더 힘을 써볼까?=
흐흥~.
칭찬에 우쭐해진 비상이 유르파의 이야기에 따라 바람을 여러모로 다루며 힘을 모으는 법, 빨리 쏘는 법, 넓게 쏘는 법 등을 배워가며 삽시간에 자신의 힘에 적응해간다.
중간부터는 환연도 끼어들어서 자신이 바람의 정령에게 지시를 내릴 때의 경험을 살려 조언을 해주기 시작하자 비상의 바람 다루는 솜씨와 위력이 비약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그렇지! 좀더 아랫배에 힘주고! 온몸으로 밀어내듯이!」
꾸으~ 삣!!
퓨퓨퓻!
「잘했어! 저 앞에 적이 있다고 생각하고 노려보면서! 저건 내가 꼭 죽인다는 느낌으루다가!」
뀨우우~ 삐잇!!
쓰으으? 쫘자자작!!
환연의 응원 겸 조언에 녹색의 바람 화살이 전방을 꿰뚫고 이어 반월형의 바람 칼날이 한 지점에 무수하게 쏟아진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지만, 독화살 개구리 정도는 쉽게 토막칠 수 있을법한 힘이 느껴지는 속성 공격들.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유르파가 뻘쭘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가르치는 것보다 연이가 해주는 조언이 비상이한테 더 잘 맞는 거 같은 걸?=
=킥킥. 비상이하고 환연이하고 수준이 비슷해서 그런 게 아닐까? 그도 그럴게. 별일 없을 땐 둘이 엄청나게 붙어 다니잖아. 잠도 같이 자고.=
=후후. 그러게.=
=그나저나 율이 언니, 저 정도면 거의 5급이지?=
=응. 아성체일 때는 4급에 약간 못 미쳤었는데 지금은 신체도, 위상력도, 기술 위력도 4급을 웃돌아. 바람을 다루는 센스도 좋고 공격할 때 뭐가 중요한지도 잘 아는게, 자기랑 대련하면서 얻은 전투 경험이 이런 능력 발현에도 영향을 줬나봐.=
=도령 말에 따르면 이제 1살하고 몇 개월 정도니까…… 어? 잠깐.=
비상을 쳐다보며 말하던 안느가 정말 놀란 눈으로 유르파를 돌아보고 유르파도 이제야 눈치챘다는 듯이 눈을 끔뻑인다.
=1살에 성체가 된 직후 저 정도니까, 비상이 저거 혹시 우두머리급 아냐? 덩치도 다른 애들이 아성체로 보일 정도고.=
=애초에 희귀종인 녹색 쿠에니까 거기서 우두머리급이면…… 어머나. 어머나어머나!=
우두머리급은 그 종족 평균 등급에 +1급을 더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비상은 성장형으로 아성체일 때도 바람의 힘이 꾸준히 강해졌었다.
그 말은 즉 앞으로도 성장을 기대할 수 있고 힘도 더 강해진다는 뜻.
기대감에 안느와 유르파가 호들갑을 떠는 사이, 바람술 훈련 중인 비상을 말없이 지켜보는 환인에게 이실리테가 물었다.
=주인님. 뭔가 신경 쓰이는 점이 있으세요?=
“음……. 이실리테, 넌 비상의 몸에 녹색 기운이 맺혀있는 게 보이나.”
=비상이가 바람을 쓸 때 일어나는 녹색을 말씀하시는 건 아니시죠?=
“그래. 때때로 발과 날개 끝, 몸을 직업자의 아우라 비슷한 녹색빛이 휘감다가 사라진다.”
잠시 눈에 힘을 주고 비상을 지켜보던 이실리테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보여요.=
환인은 안느와 유르파도 불러 물었다. 비상의 몸을 휘감은 녹빛의 아우라가 보이느냐고.
돌아온 대답은 당연히 ‘안보인다.’였다.
=어째서 도령한테만 보이는 거지? 도령이 그… 영혼사인거랑 관계있나?=
=자기, 그런걸 다른 데서 본 적 있니?=
“제가 처음 트립했던 삼림형 미궁, 그곳의 푸른불꽃 호랑이가 색과 형태는 다르지만 푸른 불꽃을 네 다리에 휘감고 있었습니다.”
=저번에 라드세아 평원에서 만났던 두목 흡혈마는?=
“그것도 특징 없이 평범했군요.”
=그 외에 없다면 가설은 하나뿐인데…….=
“특별한 강함이나 자질을 지닌 우두머리 개체의 특징일 거라는 말입니까.”
=응. 어쩌면 종족 중 일정 이상의 강함을 지니게 된 개체의 특징일 수도 있고.=
유르파의 의견에 환인은 칼날 멧돼지와 두목 흡혈마, 플레인스워커를 떠올렸다.
살아있을 때는 아우라가 없었지만 영혼 상태에서는 아우라를 둘렀던 두 마리. 어쩌면 그건 우두머리급에 가까워졌다는 증거가 아니었을까.
정확한 것은 그 푸른불꽃 호랑이나 비상의 영혼을 봐야 확인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실행할 수 없는 일이다.
비상이 죽는 상황은 허락하지 않을 환인이다. 그리고 이름없는 삼림형 미궁은 알려진 바로는 6급이라지만 그때 만난 푸른불꽃 호랑이는 지금 생각해봐도 6~7급을 넘어서는 개체다.
현 시점에서는 싸워도 승리를 점칠 수 없는데다 여기서 거기까지 가는 데만 다시 반년이 걸릴 일정.
=어쨌든 자기가 그걸 확인할 수 있다면 좀 더 안전한 여행을 할 수 있겠네. 우두머리급 악수나 마수를 볼 수 있다면 미리 대비할 수 있을 테니까.=
“잠시, 너희는 여행 중 아우라가 뒤덮인 마수나 성수를 본 적 없나.”
환인의 질문에 이실리테와 안느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생각하다 대답한다.
=아우라의 발현은 우리, 사람이나 인간형 이형종뿐이야. 짐승이나 동물은 아우라가 안 나타나.=
=네. 안느의 말이 맞아요.=
“…….”
카턴 마을에서 마주쳤던,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모험가 여자는 아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설마 처음 듣는 묘사여서 호기심을 드러냈던 건가.
뀨으~…….
그때 비상의 힘없는 울음소리가 들려와 그쪽을 돌아본 환인은 땅에 주저앉아 해롱거리는 비상과 당황해서 그 위를 빙글빙글 날고 있는 환연을 볼 수 있었다.
=아, 저런. 위상력을 너무 많이 써서 탈진 왔나봐.=
유르파는 대번에 비상의 상태를 파악하곤 개인용 파우치에서 위상력 보조 물약을 꺼내며 달려갔다.
다음날.
비상이 갑자기 변화한 모습에 쿠르티와 쿠핀, 쿠라가 당황해서 어색해하는 일이 있었지만, 비상이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행동한 덕분에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그후 환인은 비상의 신체 능력 테스트를 진행했고, 이실리테와 유르파는 거기에 맞춰 짐을 다시 정리하고 보강했다.
=비상이가 짧은 시간 비행이라면 세 명은 충분히 감당하고 남는 걸 확인했으니까, 가방 하나 더 챙겼어.=
=네. 아성체일 때 비상이도 등짐을 최대 400kg까지 짊어질 수 있었으니까요.=
숲의 수호자의 조력으로 성체가 된 비상은 600kg까지 짊어지고도 가뿐히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비행 또한 환인을 등에 태우고도 200kg 정도를 짊어지고 날 수 있을만큼 날개도, 바람 조작도 강인해진 상황.
이 상태에서 비행 거리는 대략 1시간 정도. 200kg의 짐을 줄이면 환인을 태우고도 계산상 3시간은 날 수 있는 것으로 나왔다.
=3시간이면 엄청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는 거 아냐?=
=비상이는 바람으로 추력을 얻고 항력을 줄일 수 있으니까…… 쿠에가 지상에서 달리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날 수 있지 않겠니?=
=그러면…… 우와, 여기서 프라빈까지 직선으로 400km 정도라니까 3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겠네.=
=유리 언니, 비상이 혼자면 한나절은 계속 날 수 있는 건가요?=
=자기를 태운 거랑 태우지 않은 정도는 큰 차이가 없을 거야. 그도 그럴게, 이슬이 아가씨가 천상의 장막을 벗고 돌아다니는 거랑 입고 돌아다니는 차이가 있니? 평소보다 빨리 지친다거나.=
=아, 주인님의 무게 정도는 부담이 안 된다는 뜻이네요.=
출발을 30분 앞두고 비상의 장구류를 조절하고 등에 짐을 싣던 여자친구들은 동시에 ‘굉장하네.’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3시간의 비행이 가능하단 말은 지형으로 인한 이동의 제약이 비약적으로 감소한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가로지르는 걸 자살행위라고 부르는 로아팅스 정글도 3시간의 비행이 있다면 폭이 좁은 곳을 통해 안전하게 가로지르는 게 가능하다.
대양처럼 넓다고 하는 알류겔 호수도 3시간 비행이 가능하면 가로지르는게 가능할 정도이며 호수든 강이든 숲이든 지름길로 이용할 수 있는 것.
=이러니까 하늘을 날 수 있는 루크랑 조인족과 플라비우스 족이 여러모로 우대받는 거겠지.=
안느의 중얼거림을 끝으로 출발 준비가 끝났을 때, 라비올라가 마을 쪽에서 헐레벌떡 달려와 숨을 몰아쉬었다.
=흐앗, 하앗. 추, 출발하신 줄 알았…… 헤윽, 헤으읏.=
=라비 아가씨 숨소리 야해~.=
=흣응…!=
유르파의 지적에 라비올라의 얼굴이 빨개졌다.
억지로 거칠어진 숨소리를 억누르려 하다가 되려 사레가 걸려 켈록켈록,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기침을 해대니 유르파가 당황해서 물을 쥐여주며 그녀의 등을 토닥여준다.
잠시 후 겨우 진정한 라비올라는 환인 앞에서 칠칠치 못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에 낙담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에게 작은 주머니 하나와 큰 주머니 두 개를 내밀었다.
=성자님, 이것도 가져가 주세요. 저희 집안이 보관하고 있던 각종 해독약과 질병, 상태 이상 치료제하고 마을에 있는 약 대부분을 담아 가져온 거에요. 그리고 이 큰 주머니 안에는 기름병 200개가 들어있어요.=
양서류의 미궁인만큼 산란못이 있을 것을 대비해 기름병을 조금 만들어놓았는데, 그걸 본 라비올라가 일부러 마을의 기름을 차출해 만든 모양이다.
“그걸 전부 주시는 겁니까.”
=네. 성자님이 숲의 괴물을 전부 물리쳐주셨으니 한동안 전투도 없을 테니까요. 약은 그사이 다시 만들면 돼요.=
주머니를 열어 안을 본 환인은 수십 개의 약병 주둥이에 태그가 붙어있고 거기에 어떤 효과가 적혀있는지 볼 수 있었다.
사용법에도 신경 쓴 모양새다.
“유용하게 잘 쓰겠습니다.”
=넵. 그, 그런데 비상이가…… 조, 조금 많이 변했네요?=
환인은 대충 작은 미소로 대답해주고 유르파가 새로 제작해준 방수 망토를 둘렀다.
기생촉수 두꺼비의 가죽으로 만든 물건이었기에 어느 정도는 위장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 물건.
환인은 자신과 같은 망토를 두르고 준비를 마친 이실리테와 안느, 등에 짐을 잔뜩 싣고도 무거워하지 않은 비상을 둘러본 뒤 선언했다.
“그럼 출발하지.”
* * * *
환인 일행이 크라빈 마을을 떠나고 몇 시간 뒤, 크라빈 마을에 네 명의 남녀 조인족이 하늘에서 내려섰다.
값비싼 경량화, 탄성 강화, 내구 강화 술식이 부여된 무구를 착용한 자들은 척봐도 마을의 수비대보다 한 수 이상 강해 보이는 사람들.
마을 사람들은 하늘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내려선 네 명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저 사람들은 누구래?
글쎄. 프라버에서 보낸 사람들 아녀?
……참 빨리도 오는 구먼.
남녀들 중 참수리 계통의 조인족 남자가 자신들을 멀뚱거리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입을 연다.
=프라버 통신 수정 관리부서장 알칸 드람 씨의 부탁으로 크라빈 마을의 지원을 위해 찾아온 롬디스 팔마입니다. 라비올라 크라빈 씨와 녹색 성자님께서 어디 계신지 알려주실 분 있습니까.=
환인 일행의 도움으로 겨우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되어 열심히 일하던 크라빈 마을 주민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지원군을 눈을 끔뻑거리며 쳐다보다가 라비올라의 저택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저쪽으로 가면 나올 거요.=
=저 길을 쭉 따라가면 나오는 저택이 라비 아가씨 집이라우.=
=성자님께서도 그 집에 머물고 계세요.=
롬디스=팔마는 긴급 지원을 위해 찾아온 자신들을 눈물 뿌리며 반겨줄 거라 생각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담담하게 맞이하는 것을 보곤 약간 당황했다.
뭐지. 그냥 평범한 마을 같은데? 정말 이형종의 습격으로 두 달간 고립된 마을 맞아?
일행인 뻐꾸기 계통의 여자가 등의 날개 깃털을 정돈하며 의아한 듯이 물었다.
=롬, 여기가 그 마을 맞는 거야?=
=맞다. 날아다니며 몇 번 본 적 있어서 확실해.=
롬디스가 수리 특유의 부리부리한 눈에 지그시 힘을 주며 대답했다. 그에 다른 동료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한다.
=녹색 성자님의 영혼 기사가 엄청 강하다고 들었어. 이야기로는 헬루멘의 영웅 기사단 친선 시합에서 서열 2위도 이긴 실력자라더군.=
=그러니까 그사이 성자님이 마을의 위기를 해결하셨다. 뭐 이런 거야?=
=애써 날밤을 새워가며 날아왔는데 뭐야. 기운 빠지게…….=
=큰 문제 없이 일이 해결되는 거다. 마을의 피해도 그다지 없는 듯하니 그것을 다행으로 여겨.=
동료들의 푸념을 그렇게 일축한 롬디스=팔마는 마을 주민이 알려준 저택에 도착한 뒤 푸른 머리카락의 인묘족 유지의 대답에 퍽 당황해버렸다.
=그, 그러니까 성자님께서 영혼 기사 두 명을 대동하고 미궁을 폐쇄하러 떠나셨다는 말씀입니까?=
=네. 몇 시간 전에 출발하셨어요.=
롬디스=팔마와 그의 일행은 곧장 돌아섰다. 몇 시간이라면 자신들의 날개로 충분히 뒤쫓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했다. 마을에 남은 비전투 계열 영혼 기사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성자님께서는 여러분이 도착하실 것을 예측하고 계셨습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길, 미궁을 닫는 것은 자신들만으로 해결할 테니 혹시라도 여러분들이 당신을 쫓으려 한다면 부디 마을에 남아 유사시 마을을 지켜달라 부탁을 전하셨어요.=
=으으음. 그러나 4급 이형종까지 나오는 미궁을 세 명이서 돌파하는 것은…….=
=그러지 말고 빨리 가자. 더 늦어지면 길이 엇갈릴 수 있어.=
=나도 성자님을 쫓는 게 좋다고 생각해.=
롬디스=팔마 일행의 이야기에 유르파의 어깨 위에 앉아있던 환연이 눈썹 끝을 세우며 말했다.
「그쪽은 걱정 안 해도 돼. 성자님의 수석 영혼 기사는 그쪽 네 명과 싸워도 이길 수 있는 실력자니까.」
=…….=
=…….=
롬디스=팔마와 일행은 까만 머리의 작은 요정이 하는 말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들이 언짢아하는 것을 느낀 환연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왜, 기분 나빠?」
=넌 요정이라서 사회 경험이 부족한가 본데, 미궁은 개개인의 강함으로 어쩔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많은 역할이 있고 그에 걸맞은 역할을 충분히 해낼 사람들이 모여 안전을 확보하고 힘을 합쳐야 깰 수 있는 곳이 미궁이란 말이야.=
=맞아. 성자님의 영혼 기사분들이 대단한 직업 자라는 건 알고 있어. 그렇다고 그것만으로 미궁을 깰 수 있느냐면 대답은 아니오, 야. 자만은 모험가를 잡아먹을 뿐이지.=
환연은 제대로 된 사고방식과 반박을 보여주는 사람들에게 의외라는 듯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엉터린줄 알았는데 말은 제대로 하잖아.」
=연아, 그렇게 말하는 건 실례잖니.=
「실례는 저쪽이 먼저 저질렀어. 이쪽이 정중히 부탁하는데도 무시하는데 우리가 왜 좋게 말해야 해? 게다가 지금 보인 행동을 보면 저 사람들은 프라버가 보낸 지원군이 아니라 알칸 드람이라는 사람이 보낸… 으븝?! 우으웅!」
=네네, 거기까지.=
유르파는 웃으며 환연의 입을 막고 사실적시에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한 조인족들에게 말했다.
=방금 이야기에 기분 나쁘셨겠지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성자님과 우리 동료에게 불신을 드러내신 것처럼 저희도 불만을 드러낸 것일 뿐이니까요.=
=……방금전의 무례는 사과드리겠습니다.=
머리에 쓰고 있는 조인족 전용 투구를 벗고 정중히 허리를 숙이는 롬디스=팔마의 이야기에 유르파도 살짝 무릎을 굽히며 정중히 답한다.
=우리 아가씨의 발언은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서로의 오해를 푼 뒤 롬디스=팔마는 환연이라는 이름의 요정과 이야기를 나누다 성자님의 일행이 자신들의 예상보다 몇 배는 더 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눈앞의 요정, 중급 정령의 힘을 마음껏 제약 없이 끌어다 쓰는 이 요정만 보아도 5급 수준의 전 속성 술법사나 마찬가지다.
이만한 실력자는 도시급에서도 술사단의 단장급으로 모시기에 충분한 실력이다. 그러한 요정을 마을에 두고 갈 정도라면 정말 셋이서 개방형 미궁을 돌파할 자신이 있다는 뜻.
이렇게 된 이상 공략이 잘못되더라도 자신의 잘못으로 엮일 일은 없다. 그러니 프라버에서 본격적인 지원이 올 때까지 크라빈 마을을 지키기만 하면 자신들의 의뢰는 끝난다.
롬디스=팔머는 그렇게 편히 생각하기로 했다. 일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뻐벙!!
=으갸악!=
「너 방금 뭐랬어 이 새끼야! 다시 지껄여봐!!」
=크컥!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흡정족이잖아!? 정기를 사주지 않겠느냐고 한 거뿐인데 왜 그렇게 화를 내는데?!=
「그게 화 안 낼 일이냐, 이 씨나 팔 새끼야아아!!」
콰과과과광!!!
=끄아악?!=
=자 잠깐?! 뭐하는 겁니까!? 멈추세요!!=
「이 새끼가 내 친굴 창녀도 아니고 색에 미친년 취급했는데 내가 왜 참아?! 그렇게 아랫도리 조루물총을 쏴대고 싶으면 마을에 내려가서 적당한 사람을 찾지 뭐?! 내 정액 얼마에 살거냐고?!」
성난 뿔소처럼 날뛰는 요정을 말리려던 여자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아무리 흡정족이라지만 그딴 소리를 영혼 기사한테 했단 말이야?!
뻐꾸기 계통의 조인족 여자가 당황해서 멈춘 사이 환연이 다시 불을 토해내듯 분노하며 주변의 중급 정령을 모조리 끌어모았다.
불과 바람, 땅의 정령들이 환연의 의지에 따라 힘을 내비치기 시작하니 불과 바람이 용처럼 허공을 수놓고 땅은 지진이 난것처럼 흔들린다.
「아까부터 말하는 꼬라지가 맘에 안 들었는데 넌 씨발 내 손에 죽었다! 나중에 환인이 돌아오면 어차피 환인한테 죽겠지만, 그전에 내 손에도 한 번 죽어랏!」
쿠과광! 꽈과광!!
=끄어악! 사, 살려……!=
=마, 막아! 요정 씨 진정시켜…?! 으악!=
=꺄악! 우, 우리로는 안돼! 롬을 불러와야……!=
두쿵! 쿠과광!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