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329화 (329/813)

〈 329화 〉 323 숲 옆 마을 크라빈

* * *

환연의 자그마한 손바닥이 자신의 뺨을 찌르고 잡아당기는 것을 느낀 환인은 추억 속에서 빠르게 빠져나왔다.

요정이라면 어제 오전에 구해주었던 그 요정인가.

부모님의 회상을 방해받았지만, 환인은 담담하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요정이 어떻게 생겼지.”

「등에 잠자리 날개가 난 애하고 나비 날개가 난 애랑 밑이 사슴인 애 셋이야!」

밑이 사슴?

환연의 호들갑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 소리를 들었는지 안느가 주방에서 나오며 놀란 눈으로 묻는다.

=야, 환연. 요정이라니 무슨 소리야?=

「요정이 지금 밖에 찾아왔다고!」

잠깐 생각하던 환인은 이실리테와 유르파도 불러 어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니?=

=흐응. 마을이 소란스럽지 않은 것을 보면 몰래 찾아왔다는 뜻인데, 도령 말대로면 나쁜 의도로 찾아온 건 아닌 거 같네.=

“모르는 일이다.”

세상에는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고,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나비 효과가 발생했을 수도 있으니까.

생각이 깊어지며 사고의 가지가 뻗어 나가는 것을 느낀 환인은 생각을 접고 여자친구들에게 말했다.

“일단 같이 나가지.”

문제가 벌어진다면 그녀들이 곁에 있는 것으로 대부분은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여자친구들과 함께 마당으로 나간 환인은 마당 한복판에서 비상의 관심을 받고 있는 여자를 볼 수 있었다.

키는 1.5m 정도로 간단히 묘사하면 반인반록, 사슴의 목 부분에 여자의 상반신이 붙은 사람이다.

몸에는 옷가지 하나 걸치지 않고 나무 잎사귀로 젖가슴만 가렸다.

가지런히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사슴 몸의 체모와 같은 갈색이었고 머리카락에 가느다란 덩굴 같은 것이 얽혀 머리띠처럼 머리카락을 묶고 있다.

얼굴은…… 아름답긴 하지만 계속 보고 있자니 인지 부조화가 일어난다. 사람이나 동물이 아니라 식물을 보는 느낌이어서다.

켄타우로스 종족의 한 갈래인 건가 아니면 요정이나 정령의 일종인 걸까.

비상의 부리를 어루만지던 여자가 환인을 돌아보더니 환인의 손수건을 내밀며 말한다.

「당신이 이 손수건의 주인이군요.」

“맞습니다.”

환인이 그녀가 왼손에 쥔 나무잎사귀 덩쿨이 감겨있는 지팡이를 보며 대답했을 때 옆에서 안느가 작게 중얼거렸다.

=숲의 수호자잖아……?=

이 반인반록이 누구인지 아는 건가. 나중에 그녀에게 물어보기로 하고 마당으로 내려가서 그 손수건을 받아들었다.

그때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에서 환연보다 작은, 작고 동글동글한 머리 둘이 나타났다.

자신이 도움을 주었던 나비 날개의 요정과 잠자리 날개의 요정이다.

눈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더니 환인을 약간 겁먹은 눈으로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인사한다.

=안녕하세요오….=

=아, 안녕!=

“무사히 집에 돌아가셨군요.”

숲의 수호자가 가까이 다가온 환인을 빤히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로무, 얀. 이 사람이 맞나요.」

=이 사람이 맞아요오.=

=우리 도와준 사람이 맞앙.=

두 요정의 대답에 반인반록의 여자가 눈매를 벚꽃잎처럼 부드럽게 휘었다. 그러자 눈앞에 꽃이 만개하는 듯한 착각이 든다.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비유가 아니라, 꽃이 실시간으로 개화하는 것을 보는 것처럼 이상한 느낌이라는 비유다.

이어 봄바람이 살랑이는듯한 온화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로무와 얀을 구해준 감사인사를 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고맙습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이 아이들은 그때 괴물에게 잡아먹히고 말았겠지요.」

두손을 포갠 숲의 수호자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다.

“어쩌다 보니 우연히 그리되었습니다.”

「우연이라 하여도 아이들의 생명의 은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확고한 태도에 환인은 작게 웃음을 띄워 보이며 수호자의 머리카락 속에 숨어 얼굴만 내민 요정에게 시선을 주었다.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 타이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숲에 뒤틀린 미궁의 생명체가 넘쳐흐르고 있어 그토록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신선한 꽃꿀이 먹고 싶어 몰래 나갔다가 그만……. 이번 일이 좋은 본보기가 되었으니 앞으로 몰래 나가는 아이들은 없겠지요.」

숲의 수호자가 하는 말에 요정 둘이 찔끔한 표정을 짓더니 풍성한 머리카락 속으로 숨어버린다.

“다행이군요.”

여자들은 그 대화를 옆에서 들으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통성명은 안 하는 거야? 혹시 이전에 만나서 아는 사이? 하지만 대화에 그런 느낌이 없는데.

숲의 수호자와 적당한 인사와 답을 나눈 환인은 지금이면 되겠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숲의 수호자시라고 들었습니다.”

「예.」

“우리는 두꺼비와 개구리 괴물이 나오는 미궁을 닫기 위해 정보를 모으는 중입니다. 혹시 그 미궁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다면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환인의 부탁에 숲의 수호자는 눈을 감았다.

그는 대답을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았고, 근처에서 구경하던 환연은 숲의 수호자에게 붙어있던 로무와 얀에게 호기심을 드러내며 다가갔다.

「안녕.」

=넌 누구양?=

「내 이름은 환연이야. 너희는 뭐에서 태어난 요정이야?」

=나? 나는 도토리에서 태어났엉. 로무는 연꽃.=

……동물이 견과류나 식물에서 태어날 수 있는 건가. 잠깐 뇌 정지가 왔던 환인은 눈앞의 반인반록을 보곤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흠. 너희가 사는 곳에는 너희 같은 애들 많지?」

=많앙.=

「그럼 정령 출신인 애도 있어?」

=?=

「??」

=???=

「뭐야. 왜 대답 안하는 건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엉!=

「어… 음.」

환인은 으음~ 고민하는 표정으로 눈앞의 잠자리 날개의 요정이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려 하는 환연을 바라보았다.

저걸 궁금해하는 이유는 자신의 뿌리에 대해서 좀 더 명확히 알고 싶기 때문인가.

확실히 사람과 대화하며 지성이 꽃을 피울수록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했었다. 특히 가족이나 친구, 동료라는 키워드에 유독 관심과 신경을 쏟았고.

그때 숲의 수호자가 눈을 떴다.

「미궁은 숲의 일부로 보이지만, 안은 숲 바깥의 사정이며 그 안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제가 알려 드릴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습니다.」

“약간이라도 부탁합니다.”

별 소득이 없을 것 같았지만 환인은 내색하지 않고 그녀에게 정보 제공을 다시 부탁했고, 뜻밖에 적지않은 소득을 얻을 수 있었다.

미궁의 우두머리, 보스라고 할 수 있는 존재를 알아낸 것이다.

「그 미궁은 한 마리의 거대한 괴물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강력한 괴물이기에 우리는 어찌할 수 없지만, 당신과 당신의 동료라면 충분히 그 괴물을 무찌를 수 있겠지요.」

“그 괴물은 역시 양서류입니까.”

「네. 당신이 해치운 숲의 괴물들은 모두 그 괴물의 자식이나 다름없습니다.」

잠깐 생각에 잠겼던 환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미궁 안을 들여다볼 수 없다는 말. 이게 중의적인 이야긴지 함축적인 이야기인지 알 수 없지만, 안쪽은 평범한 숲이 아니라는 이야기일터.

어제까지 발견한 이형종이 전부 한 마리의 자식이라면 그 안은 양서류의 산란장이 되어있을 가능성이 크다.

몇 가지 의문, 마을을 습격한 괴물들이 여자들을 숙주로 삼고 한 짓이라던가 숲에 그 괴물들 외에 다른 동물이나 괴물이 잘 안 보인다는 점이 있지만 환인은 그보다 당면한 문제점에 뇌 사용량을 집중했다.

‘하급 번개의 정령을 대량으로 데려갈 수 있다면 큰 도움이 될 텐데.’

폭군룡의 미궁 공략 당시 영혼 구슬은 72개였다. 그리고 약 한 달이 지난 지금은 79개로 늘어난 상태다.

시간날 때마다 시하의 영기를 흡수하고 밤마다 여자친구들의 영기도 흡수한데다 세 곳 촌락과 크라빈 마을의 영혼을 성불시켜주고 빛구슬을 흡수한 덕에 7개가 더해진 것.

3일하고 7시간을 유지할 수 있으니 번개의 정령을 영혼 구슬로 만들어 데려갈 수 있다면 적어도 사흘은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번개의 정령이 활동하는 날은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리는 날 뿐.

차선책이 될 불의 정령이 있지만, 숲이라는 특성상 불을 쓰는 것은 꺼림칙하다. 물이 많은 곳이라면 불을 붙이기도 어려울 테니까.

환인이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숲의 수호자가 미소를 유지한 얼굴로 말했다.

「당신이 사흘간 숲을 배회하는 이형의 괴물을 퇴치하고 땅에 묻어 숲의 거름으로 만들어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숲의 수호자는 숲의 초록색이 스며든 두 눈에 다정함을 품고 비상을 바라본다.

「그래서 숲을 정화해준 보답으로 한 가지 선물을 드릴까 합니다.」

“선물이라함은?”

환인의 질문에 숲의 수호자는 대답 없이 빙긋 웃고는 비상에게 타박타박 걸어가 비상의 부리를 어루만졌다.

「아이야. 네가 품은 강한 바람이 느껴지는구나. 성장하기에 충분한 힘이건만 계기가 없어 그 싹이 트질 못하고 있으니, 네가 바란다면 그 싹을 내가 틔워줄 수 있단다.」

쿠흥……?

「어른이 될 수 있다는 뜻이지. 네가 노력한다면 다른 동족의 어른들보다 더욱 강해질 수도 있을 거야.」

큐삣! 쿠웃!

그럼 해달라며 날개를 활짝 펴고 파닥거리는 대답에 숲의 수호자가 빙그레 웃음 짓고는 환인을 돌아보았다. 그리해도 될지 허락을 구하는 눈빛이다.

“부탁합니다.”

허락을 받은 숲의 수호자는 흥분한 듯 몸을 들썩이는 비상을 다독인 뒤 왼손에 들고 있던 잎사귀 지팡이를 들어 비상의 머리를 톡, 건드렸다.

그러자 지팡이에서 발생한 녹빛이 비상의 머리로 스며들더니 이내 직업자의 아우라 같은 녹색 빛이 비상을 휘감았다.

때때로 녹빛의 입자가 비상의 몸 주변에서 강렬하게 번쩍이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비상이 조는 것처럼 고개를 반쯤 숙인 채 눈을 감은 것을 본 이실리테가 약간의 우려와 강한 기대감을 드러내며 조심스레 물었다.

=숲의 수호자님. 비상이가 이제 어른이 되는 건가요?=

「예. 어떻게 저만한 바람을 몸에 품었는지 모르겠으나, 성장하고도 한참 남을 정도의 기운이 몸 안에 맺혀있었으니 성체가 되고도 남을 것입니다.」

=그러면 가만히 놔뒀으면 큰일 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야?=

안느도 슬쩍 숲의 수호자에게 가까이 붙으며 묻자 그녀는 지팡이를 두 손으로 쥐고 비상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기운이란 조화가 가장 중요합니다. 부족하건 과하건 몸에 해가 되는 것은 매한가지. 그러나 청록의 새는 본디 바람과 하나인 몸. 바람이 몸안에 가득 차면 그때부터는 자연으로 되돌아갈 뿐입니다.」

파르히스트에서 얻은 희귀색 쿠에의 성장 일지에는 속성을 먹이면 알아서 큰다고 적혀있었다.

그걸 믿고 줄곧 바람을 먹여왔던 것인데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니.

자신이 과하게 바람을 먹였던 건가 내심 긴장했던 환인은 숲의 수호자가 해주는 설명에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살짝 기대되었다.

파르히스트를 떠날 무렵부터 하급 바람의 정령을 발견할 때마다 잡아서 구슬로 만들었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순수한 바람의 기운을 계속 먹여왔었다.

솔직히 말하면 좀 손이 많이 가고 피곤한 일이었다.

바람의 정령은 땅의 정령만큼이나 많다지만 어디까지나 다른 하급 정령에 비해 많다는 뜻.

하급 정령은 하루에 열 마리도 보기 힘들었기에 바람의 정령이 눈에 띄면 일단 달려가서 확보해야 했고, 아침저녁으로 훈기가 30%까지 줄어들 만큼 순수한 바람의 기운을 만들어주느라 피로감도 적지 않게 느꼈었다.

지난 몇 달간의 그러한 고생이 비상의 강함으로 결실을 보게 되었다고 하니 기대가 될 수밖에.

모두의 관심이 비상에게 집중되고 있을 때 이실리테가 손가락을 꼽으며 숫자를 세는 걸 본 환연이 물었다.

「뭐 하는 거야?」

=응? 비상이가 마지막으로 성장한 게 언제였는지 세어보고 있었어.=

「마지막으로 성장한게 언제였는데?」

=너랑 만나기 2주 전쯤이었나……? 대충 7개월 정도일 거야. 웨이포드의 빛이 닿지 않는 미궁에서 지금 모습이 됐었으니까.=

둘의 대화에 환연이 끼어들었다.

「그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어?」

=평범하게 귀여웠어. 작고 귀여운 애완용 새 같은 모습.=

이실리테가 손짓으로 비상이 어땠는지 설명하고 있을 때였다.

졸듯이 고개를 꾸벅거리고 있는 비상의 몸 주위를 떠다니던 녹색의 빛과 아우라가 천천히 비상의 몸으로 흘러들어 간다.

「끝나가는군요.」

숲의 수호자가 그렇게 말을 꺼낸 순간 비상의 몸에서 바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산들바람 정도던 것이 갈수록 강해지더니 종래에는 유르파가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만큼 강풍이 비상을 중심으로 몰아쳤다.

그녀의 허리를 잡아준 환인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강풍 속의 비상을 응시한다.

비상의 몸이 눈에띌 정도로 자라고 있었다.

머리 높이가 기존보다 30cm는 더 높아진다. 그만큼 신체 비율도 덩달아 자라나는데 이전에도 펼치면 2m에 가까웠던 한쪽 날개가 더욱 길어지고 있다.

지금 비상의 곁에 쿠르티가 서면 쿠르티가 아성체로 보일 지경.

강풍은 오래 유지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린 비상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에 안느와 이실리테가 탄성을 지른다.

=우와, 비상이 엄청 커졌네! 흑색 중에서도 크다고 알려진 욜덴 지방 흑쿠에보다 더 큰거 같은데?=

=얼굴도 많이 변했어. 동글동글하던 눈이 어른처럼 선이 잡혔네.=

전체적으로 솜털이 빠져서 폭신폭신하고 조금 뚱뚱해 보이던 느낌이 사라지고 날렵한 느낌이 강해졌다.

쿠흥!

자기 자신의 변한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비상이 날개를 활짝 펼치자 봉황이 있다면 저러지 않을까 싶을 만큼 길고 하늘거리는 깃털이 우아하게 펼쳐진다.

=우와아.=

=와아.=

「오오.」

비상의 신체 변화는 몇 차례의 성장에서 적당히 익숙해졌기에 환인은 더 놀라지 않았다.

대신이라고 해야 할지, 여자친구들의 반응에서 오히려 의아함을 느꼈다.

강풍이 멎고 비상이 눈을 떴을 때 비상의 튼튼한 다리, 날개 일부에 선명한 녹색의 바람이 아우라처럼 가끔씩 흘러나와 맺히다 사라지고 있었다.

그게 다른 무엇보다 눈에 띄는 변화인데 여자친구들은 마치 저 녹색 아우라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혹시 저것도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건가.

“…….”

여자친구들과 환연의 관심과 감탄이 기분 좋은 듯 부리를 높게 치켜들고 우쭐해하는 비상의 모습에 환인의 눈빛이 깊어졌다.

비상의 다리와 날개를 휘감는 녹색빛이 얼핏 봐서는 푸른불꽃 호랑이의 불길 같은 아우라와 비슷한 느낌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