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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기담-326화 (326/813)

〈 326화 〉 320 숲 옆 마을 크라빈

* * *

크라빈 마을 근방에 발생한 개방형 미궁의 정보는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첫 발견이 대강 두 달 전이라는 말이군요. 개방형 미궁이 언제 발생했는지는 모르고.”

=네……. 그 이후로는 방어에만 집중하느라 숲의 상황을 파악할 여력이 없었어요. 하루에 한 번, 가끔 이틀에 한 번씩 열 마리부터 스무 마리까지 공격해와서…….=

그랬기에 환인은 라비올라만 대동하고 당시 조사를 떠났던 이들 중 유일하게 살아 돌아온 생환자를 만나러 갔다.

=조사대에는 사도님과 어머니, 수비대 아저씨 아줌마들이랑 자경단에서 전투에 익숙하고 강한 오빠랑 언니들로 꾸려졌었어요. 그 정도라면 2급 정도 미궁은 충분히 깰 수 있었을 텐데…….=

“미궁이 개방되었다고 이형종이 바로 공격해오진 않았을 겁니다. 숫자를 불리고 주변을 차츰차츰 먹어치워 나갔겠지요.”

마을이 공격받기 시작한 것은 이미 숲 태반이 미궁에 잠식된 상태였을 테니 그들이 감당하기에는 숫자가 너무 많았을 거다.

그 결과 한 명의 생환자를 두고 전멸했겠지. 아니면 숙주로 지금도 이용되고 있거나.

생환자를 찾은 환인은 자신의 추측이 얼추 들어맞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 많았어요. 엄청나게… 엄청나게 많았어요! 으으, 어디를 가도 두꺼비 울음소리가, 울음소리가아아……!=

하지만 극심한 정신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보이고 있었기에 유의미한 정보를 얻기 어려웠다.

=흑, 흑흑. 개구리 소리가 들리면, 옆사람이 사라져요. 어둠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끌려가서는…… 아악!=

평온의 파동을 받아도 일시적으로 상태가 호전될 뿐이었지만, 환인은 다소 강하게 다그쳐 몇 가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나무가 너무 빼곡해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였다는 것.

기생촉수 두꺼비 외에도 괴물이 많았다는 것.

땅이 질퍽해서 걷기가 힘들었다는 것.

집채만큼 큰 괴물도 있었다는 것.

=아악! 아아악!! 싫어, 싫어! 촉수는 안돼! 안돼애애~!!=

재차 발작을 일으킨 생환자에게 평온의 파동을 집중해서 진정시킨 환인은 그녀가 탈진해서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을 지켜보다가 집을 빠져나왔다.

“곤란하군요.”

얻어낸 정보는 환인이 바란 것과 달랐다. 신통한 정보도 아니었으며 정보 제공자의 상태도 저래서 환각을 보고 헛것을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신뢰성이 낮다는 뜻이다.

=죄송합니다…….=

“라비올라 양이 사과할 일이 아니니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

라비올라는 프라버와 통신을 한 이후 눈에 띄게 풀이 죽어 자책 중이었다.

원래 1,000명이 넘던 마을이었지만 5주 동안 괴물의 공격에서 버티고 버티느라 800명까지 감소했다.

자신이 좀 더 똑바로 대처했다면 5주나 되는 시간을 마냥 기다리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랬다면 마을 사람들이 죽거나 끌려가지 않아도 됐을텐데.

200명이 실종되고 죽은 게 자신의 탓처럼 느껴진 라비올라는 좀처럼 기운을 차릴 수 없었던 것이다.

크라빈 마을의 유지는 라비올라의 가문뿐이다. 그마저도 라비올라의 오누이들은 죄다 도시로 나가 있고 마을을 이끌어가는 책임자급 인물들 태반은 조사 때 전멸.

지금 크라빈 마을은 라비올라와 수비대장 둘이 책임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상황이니 그녀가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환인은 안색이 어두운 라비올라를 잠시 바라보다가 다른 생각에 잠겨 들었다.

‘숲을 돌아다니는 기생촉수 두꺼비는 일개미 같은 놈들이다.’

개방형 미궁의 내부로 들어가면 틀림없이 더 강력한 변종이 나타나겠지. 놈들의 상위 개체, 혹은 전투에 특화된 개체 말이다.

대충 형태라도 알면 연구를 통해 정보를 뽑아볼 텐데 생환자는 그 이야기만 꺼내면 자지러져서 그게 불가능하니…….

‘역시 비상을 타고 미궁에 가까이 다가가 직접 조사하는 수밖에 없는가.’

이번 크라빈 숲에 발생한 개방형 미궁은 도시 내부나 도시에서 관리하는 미궁이 아니기에 정보가 하나도 없다.

입장하기 전에 최대한 준비를 하고 들어가고 싶은데 필요한데 정보가 없으니 직접 제 발로 뛰어서 얻어낼 수밖에.

자경대 건물에서 나온 무장병사 스무 명이 방책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던 환인은 라비올라를 추슬러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환인은 여자친구들과 환연을 모아놓고 말했다.

“범위가 반경 500m에 가까운 환연의 추적 덕분에 지난 이틀간 마을 인근의 두꺼비는 대부분 처리했다고 본다. 이 정도면 다른 기생촉수 두꺼비가 빈 자리를 채우고 다시 마을을 공격하기까지 일주일 정도의 여유는 생겼을 테지.”

전투를 염두에 두었는지 준? 전투 차림, 구세의 빛 풀 장비에서 흉갑만 뺀 모습의 안느가 당근 같은 채소를 아작아작 먹으며 대답한다.

=그 사이에 개방형 미궁을 공략하겠다는 거네.=

“그래. 하지만 미궁에 대해서 쓸만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 미궁의 급수조차 모르는 지금 상황에서 공략에 들어가는 것만큼 무모한 일은 없다. 비상과 함께 사전 조사를 잠시 다녀올 테니 너희는 그사이 최대 일주일의 탐사준비를 해줬으면 한다.=

=주인님, 탐사 인원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나, 이실리테, 안느, 비상 이렇게 넷이서 간다. 유르파는 마을에 남아 방위에 힘을 보태주십시오.”

=그럴게.=

미궁 탐사 같은 쪽에서 힘을 발휘하기 어려운 유르파지만, 그녀의 마도기 제작 특성이라면 이런 방위전에는 꽤나 힘을 쓸 수 있으니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안 데려가?」

“네 정령 감응이 크게 도움되는 것은 사실이지. 하지만 크라빈 마을이 마냥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 너는 유르파와 함께 남아 마을의 방위에 힘을 보태고, 만약 유르파가 위험해진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유르파를 지켜라.”

의미심장한 이야기에 환연이 눈빛을 묘하게 빛내며 물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확실히 말하지. 마을이나 도시보다 유르파와 너희들의 생명이 더 소중하다.”

=…….=

=…….=

그녀들은 자신을 돌아보며 말하는 환인의 달콤한 발언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연스럽게 얼굴이 붉어지며 조금 부끄러워졌지만 동시에 조금 무섭다고도 생각했다.

문제가 생긴다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수천, 수만 명의 목숨을 포기하겠다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딱히 이상할게 없다. 환인의 발언은 가식과 체면치레를 걷어냈을 뿐, 자신들의 생각과 일치했으니까.

크라빈 마을 800명의 생명과 주인님/도령/자기의 생명을 놓고 고르라면 자신들도 그를 선택할 것이다.

비단 자신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라면 안면도 없는 모르는 사람들의 목숨보다 친한 지인, 가족이 더 소중한 게 당연한 일.

게다가 그가 마냥 잔혹하고 냉정하다고 비판하기에는 마을의 방위도 신경 쓰고 있다.

환연이 요정 지팡이를 들면 정령 감응 능력으로 중급 정령을 부린다. 즉 5급에 해당하는 직업자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유르파도 전투용 소모품을 아낌없이 뿌린다면 4~5급에 해당되는 힘을 쓸 수 있으니 마을 방위전이 벌어진다면 누구보다 큰 힘을 발휘할 인물들이다.

안느는 조금 걱정이 들었다.

‘발언이 너무 직설적이라 남이 들으면 오해하거나 경멸할 텐데…….’

뭐, 상관없나? 도령이 남들 앞에서 생각 없이 그런 말을 할 사람도 아니고.

그렇게 환인의 여자들이 탐사 준비를 위해 마을 시장으로 나갔을 때 환인은 비상의 장구류를 모두 벗기고 안장만 얹어 무게를 줄인 뒤 하늘로 날아올랐다.

‘위장색 때문에 잘 안 보이는군.’

마을 반경 20km 내에 괴물이 얼마나 있는지 나름 알아보려 했는데 생각보다 판별이 어렵다.

맨눈으로는 물론이고 영혼 시야를 펼쳐도 기생촉수 두꺼비의 색계통이 나무의 색계통과 흡사해 구분이 잘되지 않는다.

쿠우. 쿠쿠웃.

“음.”

하지만 비상이 대신 기생촉수 두꺼비를 발견하면 울음소리로 위치와 숫자를 대강이나마 알려주었기에 분포가 어찌 되는지는 대강 기록할 수 있었다.

수첩에 지도를 그리고 이형종이 발견된 위치를 기록한다. 지도에 표식이 될만한 장소와 특징도 기재하고 식생??도 적어둔다.

15분 비행, 15분 휴식을 반복하며 수첩에 발견한 기생촉수 두꺼비의 위치와 수를 기록하던 환인은 계속된 비행에 조금 지친 비상을 마침 꽃이 흐드러지게 핀 공터를 발견하고 그곳에 착지시켰다.

“수집한 정보를 정리할 테니 그동안 쉬고 있어라.”

큐으~ 쿠응.

비상은 뻐근한 날개를 파다닥 흔들며 한숨을 폭 쉬고는 이마로 환인의 등을 꾹꾹 눌렀고, 환인은 피식 웃으면서 주머니에서 미리 챙겨둔 신선한 사과와 복숭아를 한 알씩 꺼내 비상에게 먹였다.

“맛있나.”

큐삣!

간식에 만족한 비상이 꽃밭 한가운데 배를 깔고 앉는 것까지 지켜본 환인은 수첩을 펼쳐 그저께와 어제의 순회 경로를 기입하고 새로이 출몰한 두꺼비의 위치를 계산했다.

마을을 기점으로 개방형 미궁은 북서쪽에 위치해 있다고 하였고 마을이 공격받는 방향은 주로 북쪽 방책이었다.

그리고 오늘 비행하며 새로이 발견한 괴물들의 위치를 계산해보면…….

‘남하하는 형상이다.’

두꺼비가 영역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차지해나가고 있으니 미궁에서 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가설은 확실해졌다.

문제는 생각보다 두꺼비가 빈 영역을 차지해나가는 속도가 빠르다는 것.

‘이대로라면 일주일이 아니라 사나흘이면 청소해둔 자리가 다시 채워지겠어.’

죽은 두꺼비의 사체가 어떤 부작용을 낳을지 몰라 오늘 발견한 것들을 내버려두었는데…….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환연을 데리고 온 뒤 두꺼비를 발견하는 족족 처리해야 하나 고민하던 환인은 기척 감지에 작은 생물이 걸려든 것을 느꼈다.

“……?”

비상은 그 기척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꽃밭의 노랗고 하얀 꽃을 톡톡 건드려보고 먹어보며 쉬고 있을 뿐이다.

‘위험한 개체는 아닌가.’

위험했다면 비상이 먼저 눈치챘을 거다. 적의 감지는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니까.

‘둘에… 크기는 작아. 환연과 비슷한 정도인듯한데.’

기척이 희미해 정확하지 않지만, 저 나무 뒤에 숨어 이쪽을 보고 있는듯하다.

그때 비상이 벌떡 일어나더니 숲 한쪽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래, 적의를 느끼면 이런 반응을 보이지.

환인은 천칭을 꺼낸 순간 비상이 쳐다보는 그늘 속에서 무언가가 날아오는 것을 느꼈다.

방향은 이쪽이 아니다. 자그마한 게 숨어있는 쪽이다.

자신에게 날아오는 것이 아니었기에 내버려둔 환인은 투창의 속도 정도로 날아간 침 같은 것이 자그마한 무언가를 맞춘 것을 알 수 있었다.

구륵.

만족스러운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미산 콧수염 두꺼비처럼 뾰족한 주둥이 주위로 검은 가시 같은 것이 난 트럭만 한 크기의 황갈색 두꺼비였다.

번들거리는 새까만 눈알에 흰색 반점과 핏줄 같은 무늬가 몸을 뒤덮은 다소 보기 싫은 모양새인데 그게 1톤 트럭만한 크기가 되니까 혐오감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가시 두꺼비가 온통 까만 눈알을 번들거리며 침을 쏜 곳으로 느긋하게 걸어가는 걸 목격한 환인은 잠깐 미간을 좁혔다.

자신을 무시한다고?

환인은 저 괴물이 왜 자신을 무시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자신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아서? 아니면 침을 뱉어 맞춘 무언가를 챙기는 게 더 급해서? 그것도 아니라면 자기 자신의 강함을 믿어서 이쪽은 적으로 여기지도 않는 건가?

폭군룡의 미궁에서 보았던 와룡??처럼 강대한 힘이 느껴지는 이형종도 아니면서 적일 수도 있는 대상을 내버려두고 자기 할 일을 한다는 것은 환인의 기준에 이해되지 않았지만…….

“…….”

괴물의 행동양식을 이해해서 뭘 하겠냐 싶은 생각이 들어 이해하기를 관두었다.

일단 저 가시 두꺼비가 기생 두꺼비의 친척 같은 종인 것은 확실하다. 환인은 영혼 화살 다발을 만들어 동시에 가시 두꺼비를 향해 쏘았다.

퍼버벅!

구르르륵!!

소리없이 쏜살같이 날아간 영혼 화살은 가시 두꺼비의 몸통을 쉬이 꿰뚫는다.

몸에 여섯 개의 구멍이 난 가시 두꺼비가 벌렁 뒤집어지더니 버둥거리며 쿠륵, 구에엑, 비명을 지르다 몸을 뒤집어 세워 환인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까맣던 눈알이 새빨갛게 변했고 황갈색 가죽도 피처럼 붉어지더니 피도 아닌 시뻘건 액체를 흘리기 시작하는데.

“…….”

환인은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 영혼 방패를 펼쳐 앞을 막는 동시에 영혼 폭발 구슬을 놈의 몸에 난 구멍에 날려 넣은 뒤 터트렸다.

뻐어엉!!

내부에서 시작된 폭발에 폭죽처럼 터져나간 가시 두꺼비. 날아든 시뻘건 체액과 살점 조각 일부가 영혼 방패에 들러붙어 천천히 미끄러져 내린다.

쿠흥.

주위에 다른 괴물은 더 없는지 비상의 경계 태세가 풀린다.

환인은 비상의 등을 토닥여준 뒤 가시 두꺼비가 침을 날린 곳으로 다가갔다.자신이 잘못 느끼고 있는게 아니라면 그 기척은 아직도 그 자리에 여전히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무엇이길래 가시 두꺼비가 자신을 무시하기까지 한 걸까.

그곳에 도착한 환인은 뜻밖의 상황을 목격했다.

=히이잉…!=

=오, 오지망!=

나비 모양의 날개가 달린 요정이 아교처럼 끈적거리는 녹색 물질에 뒤덮여 버둥거리고 있었고, 잠자리 모양의 날개가 달린 요정은 그런 나비 요정 앞을 가로막은채 환인을 보며 벌벌 떨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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