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4화 〉 318 숲 옆 마을 크라빈
* * *
라비올라의 집에서 나름 극진한 대접을 받은 환인은 다음 날 아침, 이실리테와 안느, 비상과 환연을 데리고 곧장 기생촉수 두꺼비를 사냥하기 위해 방책을 나섰다.
“두 분의 역할은 정리를 끝낸 뒤 마을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주시는 겁니다.”
=넵!!=
=옛!!=
“전투가 벌어지면 비상의 옆에 바짝 붙어있으시기 바랍니다. 기생촉수 두꺼비가 공격해와도 환연과 비상이 지켜 드릴 테니까요.”
「나랑 비상이만 믿어. 상처 하나 없이 보호해줄 테니까.」
=예, 옙!=
크라빈 숲의 안내역으로 차출된 인견족 남녀는 녹색 쿠에와 그 머리 위에 앉아있는 까만 머리카락의 요정을 보며 긴장의 침을 꼴깍 삼켰다.
성자님 일행을 방해하지 않게 온 힘을 다해야지!
하지만 이어진 전투에서 두 남녀는 다른 생각도 못하고 입을 쩍 벌릴 뿐이었다.
「환인. 저쪽으로 300m 방향에 열일곱 마리가 있어.」
「저 방향으로 150m 지점에 아홉 마리야.」
「저긴 엄청나게 많네. 30마리가 넘어.」
자그마하고 예쁜 요정이 가리킨 곳에는 어김없이 징그럽고 더러운 개구리가 모여있었으며.
=합!!=
쿠궁, 뻐버벙!
키 큰 은발의 미녀가 자신보다 더 큰 워해머를 땅에 내려찍을 때마다 콰광, 땅이 뒤집어지는 충격파가 발생하며 더러운 개구리를 터트렸고.
=……!=
촤작 파바바바박!
은발의 미녀보다 더욱 아름다운 호박색 머리카락의 미녀가 빛나는 검을 휘두를 때마다 나무와 함께 혐오스러운 개구리가 토막 나서 쓰러진다.
안내역 두 남녀는 그런 대단한 무위를 선보이는 영혼 기사보다 성자님이 몇 배는 더 무서웠다.
“…….”
스윽
곧고 날씬한 스틱을 땅으로 짚으며 느긋하게 걸으시던 성자님이 손가락을 들어 가리킬 때마다 그 앞에 있던 추악한 개구리가 이유 없이 터지고 폭발하고 머리에 주먹만 한 구멍이 나며 죽어 나자빠졌던 것이다.
꾸푸봨
뻐엉!!
특히 입을 벌렸던 기생식충 두꺼비가 풍선처럼 뻥 터지는 모습을 봤을 땐 온몸의 모피털이 곤두섰을 정도였다.
그러한 광경을 바탕으로 군기가 바짝 든 두 명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 외에도 한 가지를 더 자청해 떠맡았다.
바로 기생촉수 두꺼비의 내부 생식기를 퇴치의 흔적으로 삼기 위해 챙기는 것이다.
개구리를 퇴치했다는 가장 큰 증거, 그리고 간단히 얻을 수 있는 증거가 그것이었고, 차후 이런 상황의 증거로 남기기에 그것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
이런 더러운 작업을 영혼 기사님들에게 맡길 수는 없어. 우리가 해야 해!
=끝났습니다!=
안내역 두 명이 기생촉수 두꺼비의 내부 생식기를 챙기자마자 환연이 땅의 정령에게 부탁해 기생촉수 두꺼비의 사체를 땅에 파묻어버린다.
「있지, 환인. 이 개구리 시체는 왜 땅에 묻어?」
“기생촉수 두꺼비가 동족 포식을 한다면 놈들의 식량이 되어주는 동시에 바깥의 두꺼비들을 불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땅 위에서 썩어간다면 숲이 더러워지겠지. 마을 사람들의 생활에 지장이 갈 거다.”
머, 멋있어…….
그 무서움만큼이나 자신들을 생각해주는 성자님의 모습에 더더욱 반하고 마는 두 명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오전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마을로 돌아가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 뒤 오후 일정을 시작하도록 하지요.”
=넵!!=
=넷!!=
이틀 후.
=성자님은 정말 굉장하시네요…….=
“별말씀을.”
라비올라는 이틀 만에 461마리나 되는 망할 개구리를 토벌해낸 위업을 달성하고도 담담한 환인을 볼 때마다 놀람을 금치 못했다.
저렇게나 완벽한 남자가 있을 수 있다니…….
영혼사로서의 능력은 두 말할 나위 없고 안내역으로 따라간 자경단원의 보고에 따르면 싸움도 잘한다.
두 분 영혼 기사님의 기술 스승까지 하시는데다 보통의 남자들처럼 실력이나 직업을 뻐기거나 우쭐거리는 것도 없이 겸손하고 담대하시니 지금까지 봐왔던 남자는 남자로도 느껴지지 않을 지경.
하지만 라비올라는 절대 환인에게 사적인 감정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주제를 파악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게…….
=자기, 프라버 통신용 수정구가 완성됐어.=
“용케 재료를 구하셨군요.”
=라비 아가씨네 가문에 여분의 재료가 있었는데 그걸 제공해주었거든. 덕분에 빠르게 만들 수 있었어.=
“고맙습니다, 라비올라 양.”
=그런…… 저희 마을을 위해서 제작하시는 건데요. 오히려 모든 재료를 준비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저렇게나 아름답고 능력 있는 여자가 옆에 있는데 나 같은 게 눈에 들어올 리 없잖아.’
영혼 기사 중 가장 전투력이 떨어진다는 유르파 씨도 6급 비술사다. 여기에 이실리테 기사님과 안느 기사님을 생각하면 그냥 헛웃음 밖에 안 나온다.
미모로도, 능력으로도 환인의 곁에 있는 여자들을 당해내지 못하니 감히 그런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제 통신 좌표만 입력하면 되겠군요.”
=응. 그건 라비 아가씨가 알고 있어. 아가씨?=
=넵.=
4급에 불과하기에 공간 계통으로 분류되는 통신 수정구 제작을 못 하는 라비올라다.
하지만 크라빈과 프라버의 통신 좌표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기에 유르파가 제작한 통신구에 즉시 두 곳의 좌표를 입력한 후 프라버와 통신을 시도한다.
=…….=
혹시 기억 중인 좌표가 잘못되진 않았을까 긴장하며 수정구에 위상력을 흘려 넣던 라비올라는 무색투명한 수정구 내부가 한차례 명멸하더니 푸르스름하게 물드는 것을 보며 소리 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좌표가 틀렸다면 무색으로 아무런 반응이 없었을 테니까.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라비올라는 환인과 유르파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했을 것이다.
낑
수정구에서 한차례 저주파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수정구 위쪽으로 네모난 환영이 떠오르고, 그 속에 사람 30대 중후반은 되어 보이는 신경질적인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특이사항은 머리 옆에 귀 대신 깃털이 붙어있었다는 점. 항구 도시 프라버의 주류 종족이라는 조인족이다.
그 여자가 귀찮음이 드러나는 얼굴로 시선도 이쪽으로 제대로 향하지 않은 채 중얼거리듯 말한다.
[통신 요청을 넣은 곳의 소재지 번호와 담당자의 이름을 밝히십시오.]
=나, 남동 로아팅스 정글 크라빈 숲의 크라빈 마을입니다. 저는 마을의 4급 비술사, 라비올라 크라빈이에요.=
파라락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가 잠시 이어지더니 여자가 미간을 보기 싫게 찌푸린다.
[라비올라 크라빈, 마을 유지의 자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당신에게는 통신 권한이 없을 텐데 어째서 통신구를 사용했습니까.]
통신 신청 내용조차 듣지 않고 다짜고짜 비난과 지적을 하는 모습에 환인은 자초지종을 대강이나마 파악할 수 있었다.
그에 비해 라비올라는 뜬금없는 적대적인 반응에 당황해 대답도 제대로 못 하고 어버버거리기 시작한다.
=네? 어, 저기.=
[대답하십시오.]
=그, 그게. 그게 아니라…….=
이런 경험이 전혀 없는지 당황해서 대응을 제대로 못 하는 라비올라의 모습에 환인은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잠시 자리를 비켜달라고 신호를 보냈다.
[크라빈 마을의 라비올라, 대답하세요. 지금 무시하는 겁니까?]
“그 점은 제가 대신 답하겠습니다.”
[하…….]
통신 대상이 바뀌자 여자의 얼굴에 짜증과 어이없음이 떠오르며 같잖다는 한숨이 수정구를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
숨김없이 드러나는 한숨에 라비올라는 크게 당황했고 옆에서 지켜보던 이실리테와 유르파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환인의 얼굴에서도 표정이 사라졌다.
[이 수정구 통신은 허가되지 않은 자의…….]
“지금 당신이 보여주는 태도는 간과할 수 없군요. 당신의 관등성명을 요구하겠습니다.”
환인이 드물게 상대의 말을 끊고 들어가자 그의 여자들이 환인을 잠깐 보았다가 화면 너머의 조인족 여자를 노려본다.
조인족 여자는 뜬금없는 요청에 잠깐 굳었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크라빈프라버 간 통신 회선을 무단으로 사용 중입니다. 허가되지 않은 자의 통신 수정구 무단 사용은 프라버의 관계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는 내용임을 고지합니다.]
“확인했습니다. 당신의 관등성명을 재차 요구합니다.”
환인은 여자가 꺼림칙함을 느끼곤 대답을 피하는 것을 읽고 차갑게 응시하며 재차 요구했다. 그러자 신경질적인 얼굴에 사나움이 물든다.
감히 네까짓 게 뭔데 그걸 요구하느냐는 감정이다.
그 태도를 무감정한 눈으로 읽은 환인은 유르파를 돌아보며 반대쪽 수정구의 볼륨을 올릴 수 있는지 손짓으로 물었다.
=저쪽은 등급도 낮고 수정구 조작 실력도 형편없네. 반대쪽 방이 쩌렁쩌렁 울리게도 할 수 있어.=
[신원미상자는 즉시 정체를 밝히십시오. 향후 크라빈 마을은 이에 관한 책임을 무제한으로 져야 할 것입니다.]
같잖은 협박에 환인은 유르파를 향해 준비하라는 지시를 한 뒤 수정구 너머의 여자를 똑바로 응시하며 대답했다.
“책임을 지우겠다면 크라빈이 아닌 나에게 물으면 됩니다.”
[당신이 누구이기에 그런 건방진 소리를……!]
유르파에게 환인이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입을 연다.
“영혼의 성불을 위한 여정을 이어나가는 영혼사이자, 파르히스트의 펜리 후스티오 파르히스트 성주님과 헬루멘의 시하 사이지 위르트 가주님의 증표와 인정과 보증을 받은 순례자, 환인입니다. 당신의 태도와 대응에 외교적 항의 절차를 밟고자 하니 당장 관등성명을 밝히던가, 아니면 당신의 상급자를 호출해 교대하십시오.”
[……!!]
신경질과 짜증이 가득 묻어나던 얼굴에 당황과 당혹이 새롭게 채워진다.
환인은 그 얼굴에서 수정구를 강제로 종료해버리려는 의도가 읽어져 빠르게 경고했다.
“만약 수정구를 폐기, 훼손하려 한다면 지금까지 저장된 그쪽과 이쪽의 대화를 공론화하여 즉각 항의를 넣을 테니 잘 생각하고 움직이기를 조언합니다.”
당황했는지 수정구 너머로 헉, 헉, 여자의 가빠진 숨소리가 들려온다. 화면에 드러나는 얼굴은 반쯤 패닉에 빠진 모습.
[사, 사칭은 중범죄입니다.]
극구 신분을 노출하지 않으려 한 행동에서 예상했던 반응이 돌아와 환인은 들으란 듯이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후우……. 이쪽은 마을 인근에 개방형 미궁이 출현하여 소멸의 위기에 빠진 상황입니다. 벌써 두 달째 고립이 이어지고 있기에 긴급 지원의 진척 확인과 재요청을 하려 했지만, 프라버의 수정 통신 담당자는 태업을 저지르는군요. 힘들겠지만 이쪽의 일은 자체적으로 해결한 뒤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공표, 공론화해 정식으로 프라버에 항의하겠습니다.”
수정구 너머로 [뭐야?], [무슨 일이야?], [이게 무슨 소리지?] 웅성거리는 소리가 작게 들려온다.
“통신 종료.”
환인의 신호에 유르파가 즉시 수정구를 조작해 통신을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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