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궁기담-322화 (322/813)

〈 322화 〉 316 숲 옆 마을 크라빈으로 가는 길.

* * *

40마리 이상이라고 생각했던 촉수 두꺼비의 최종적인 숫자는 87마리였다.

환인은 공격해온 촉수 두꺼비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척살했다. 우연에 의한 습격이든 무언가의 조직적인 행동에 의한 결과든, 적인 이상 마주쳤을 때 전부 죽여놔야 후환이 되지 않으니까.

습격한 괴물을 모두 퇴치한 뒤 이실리테와 안느는 위상석 탐지 도구로 환인이 죽여놓은 촉수 두꺼비의 사체에서 위상석 수색을 개시했고 유르파는 환연의 도움을 받아 촉수 두꺼비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조사를 진행했다.

=연아, 이거 좀 깨끗하게 씻어주겠니?=

「응.」

특수 장갑을 낀 손으로 뭔가 길쭉한 혹 같은 걸 내밀자 환연이 물의 정령을 불러 그 살덩어리를 깨끗하게 씻는다.

유르파에게 다가간 환인이 물었다.

“뭔가 알아낸 것이 있습니까?”

=음~ 일단 종류는 기생 두꺼비 계통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최소 2세대야.=

이름이 꽤 직관적이다. 패러사이트 토드.

“미궁에서 흘러나와 이 땅에 정착한 이형종의 다음 세대라는 뜻이군요. 피해자를 숙주로 삼아 성장하는 두꺼비입니까.”

=맞아. 그런데 기생 두꺼비 자체가 여러 변종이 있는데 이건 변종의 변종인거 같아. 보면 여기 눈알이 가로로 길쭉하잖니. 원종은 십자형이야. 그리고 여기에 촉수가 난 것도 처음 봐.=

“…….”

=아무래도 이 촉수로 대상을 마비시킨 다음 알을 까는 거겠지? 미궁 밖을 이렇게 떼 지어 몰려다니는 걸 보면 미궁에 먹이가 모자란다는 뜻일 거 같구.=

환인은 무언가 걸리는 느낌에 너덜거리는 기생 두꺼비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뭘까. 뭐가 거슬리는 거지.

「유르파. 다 씻었어.」

=고마워.=

“……그건 뭡니까.”

얼핏 성기처럼 생긴 길쭉한 살덩어리. 혹시 기생 두꺼비의 생식기인가 싶었지만 유르파도 모르는지 고개를 젓는다.

=주둥이 안쪽에 붙어있어서 처음에는 혀인가 싶었는데 기생 두꺼비의 혀치고는 너무 작고 짧아. 무슨 용도인지 모르겠네.=

그렇게 말하며 해삼처럼 축축 늘어지는 길쭉한 분홍색 혹 덩어리를 살펴보는 유르파다.

환인의 시선이 갈기갈기 찢어져 죽은 기생 두꺼비 80여 마리의 사체로 향했다. 유르파도 따라 돌아보고는 살짝 우려하는 표정을 지었다.

=크라빈 마을…… 무사할까?=

환인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속으로 계산해보았다.

개방형 미궁의 경우 이형종의 역류가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미궁의 약한 개체가 꾸준히 흘러나와 주변을 잠식해나간다.

물론 무한정으로 흘러나오지 않는다. 개방형 미궁의 주변 침식은 대략 미궁 크기의 30배 정도라는 게 정설.

크라빈 마을 근처에 개방형 미궁이 있다는 정보는 손에 넣지 못했다. 그게 뜻하는 것은 개방형 미궁이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거겠지.

환인은 판단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유르파. 기생 두꺼비 류는 왕이나 여왕처럼 무리에 지도자 개체가 있습니까?”

=자연에서 발생한 괴물이라면 있을 가능성이 큰데 이형종은 확신을 못하겠어.=

“그렇군요. 일단 의논을 해봐야겠습니다. 이실리테와 안느를 부르죠.”

환인은 비상에게 하늘에서 감시를 지시하고 위상석을 찾는 이실리테와 안느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말했다.

“개방형 미궁 내부는 기생 두꺼비가 장악했거나 기생 두꺼비의 미궁일 가능성이 크다.”

=어째서? ……아, 얘들이 바깥에 몰려다니니까.=

“그래. 기생 두꺼비 이형종의 본능이 번식에 집중되어있는지 살해에 집중되어있는지 아직은 확답할 수 없지만, 기생 두꺼비가 이렇게 무리지어 다닌다는 것은 미궁 안쪽도 이것들이 차지해서 있을 자리가 없기에 흘러나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걸 시사하지.”

만약 서너 마리가 드문드문 돌아다니면 힘 싸움에서 밀려 미궁 밖으로 빠져나왔다고 볼 수 있지만, 80에 가까운 이형종이 몰려다니는 이 상황에서는 그런 해석이 되지 않는다.

이실리테가 중얼거린다.

=이렇게 많은 수가 돌아다니는 목적이 뭘까요. 먹잇감의 확보?=

=글쎄. 먹이를 잡아서 미궁으로 끌고 가는 것일지도 모르지.=

“……해서, 이 기생 두꺼비의 미궁을 한 번 조사해보고자 한다.”

개방형 미궁은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강한 이형종이 나온다는 게 상식이다.

그것도 오래된 미궁이라야 안쪽에 고등급의 이형종이 나타나지, 생성된 지 얼마 안 된 미궁은 크기도 넓지 않을 테고 중심부에도 강한 이형종은 얼마 없을 거다.

거기다 개방형 미궁이기에 탈출하고자 마음먹으면 곧장 이탈할 수 있다.

비상이 최대 800kg까지 들고 날 수 있음이 얼마 전 증명되었다. 강령을 펼쳐준다면 자신과 이실리테, 안느를 매달고 날아서 미궁을 이탈하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삼림형 미궁이라 함정도 없을 테니 여러모로 미궁 심부를 탐사하기에 최적인 상황.

=크라빈 마을을 돕기 위해서지? 난 찬성이야.=

순수함이 느껴지는 안느의 발언에 잠시 그녀를 응시하던 환인은 고개를 저었다.

“돕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큰 목적은 미궁의 핵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탐사 후 미궁을 파괴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돕기 위해 미궁에 들어가는 것, 그리고 미궁을 조사하면서 겸사겸사 사람을 돕는 것.

선후의 차이는 의미가 매우 다르다. 그리고 환인이 미궁을 공략하려는 이유의 비중은 사람을 돕기 위해서가 10중 2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환인의 여자들은 어쨌든 미궁을 부수면 근방 마을이나 촌락이 안전해질 테니 좋게 생각할 뿐이었다.

단기 목표를 정한 일행은 그 후 크라빈 마을을 찾아 이동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환인도 비상을 타고 주기적으로 날아올라 크라빈 마을을 찾았다.

마을이니 가구 수도 적지 않을테고 그것은 곧 마을의 크기로 정해지는 만큼 하늘에서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안 보이는군. 나무로 마을을 위장했나.’

마을을 나무로 숨긴다는 것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괴물이 있다는 말도 되는데.

환인이 삼림형 미궁의 대호수를 날아다니던 전투기 갈매기를 떠올리며 탐색에 주의를 기울일 무렵, 일행은 처음 조우했던 무리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적지 않은 숫자의 습격을 두 번 더 받았다.

여자들은 생각 이상으로 사태가 심각한 것을 인지했다.

=숫자가 너무 많아. 지금까지 마주친 이형종이 마을로 몰려갔으면 이미 마을은…….=

이실리테가 말끝을 흐리자 안느도 후우, 심경이 복잡한 듯 나무그림자가 드리워져 창백하게 빛나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중얼거린다.

=상황이 이러니까 크라빈에서 나오는 사람들이나 상인들을 만나지 못한 거겠지. 이형종이 이만큼 돌아다니니까 밖으로 나가려고 해도 못 나갔을 거야.=

2급 정도 이형종이나 마수 한 마리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위상력의 가호를 받은 직업자, 혹은 제대로 전투 훈련을 받은 일반인 다섯 명은 있어야 한다.

그런게 괴물이 열 마리가 넘게 몰려다니면 산술상 숙련된 군인 50명은 있어야 하지만, 사기와 호흡, 손발 문제로 1.5배는 더 있어야 확실한 승리를 점칠 수 있다는 게 보편적인 사실이다.

문제라면 기생 촉수 두꺼비 20~30마리와도 마주칠 수 있다는 것.

게다가 하늘에서 확인해본 결과 이 숲과 밀림이 적당히 섞인 장소를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지금 위치에서도 거의 한나절을 말이나 쿠에를 타고 달려야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넓다.

파발이 무사히 숲을 빠져나갈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하지만 율이 언니는 마을 규모 정도 되면 한 달에 두 번 정도 행상이나 상단이 움직이는 편이라고 했잖아.=

크라빈 마을로 상행을 보낸 곳이든 크라빈 마을과 생산품 거래 계약이 맺어져 있는 단체든. 최소 한 달은 소식이 닿지 않았을 테니 적어도 크라빈 마을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은 인식했을 테지.

한창 대응 준비 중일 가능성도 있다.

=또 이런 숲에 있는 마을인 만큼 여러 가지 습격을 대비해놨을 테고, 당연히 방어벽도 있지 않겠니? 그만한 저력이 있어서 이 숲에 마을을 꾸리고 살아가는 걸 테니까, 너무 비관적인 생각은 하지 말자.=

=응. 그리고 마을 정도 되면 통신용 수정구가 있을 수도 있잖아. 문제 해결을 위한 군대나 의뢰를 받은 탐험가, 용병들이 오고 있을지도 몰라.=

“괴물의 숫자에 비해 위상석이 너무 적다. 모두 이형종이 아닐 수도 있으니 아주 암울한 상황은 아닐 거다.”

=역시 그렇지?=

자신의 첨언에 금세 얼굴이 밝아지는 여자친구들을 보며 환인은 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환인은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지 않았지만, 쓸데없는 말로 그녀들의 사기를 꺾는 짓은 하지 않았다.

원래 공격 목표가 있다면 인근의 전력은 모두 그곳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만약 공격 측이 사람이라면 다른 전술이 있을 거라고 의심하겠지만, 상대는 지성이 낮은 괴물들. 기생 두꺼비가 이렇게 숲을 활보하고 있다면 그 말은 공격 집중 대상이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그나저나 마을이 정말 안 보이는군. 이형종의 공세에 쓸려나갔을 가능성도 있지만, 초능력이 존재하는 세계이니 마을을 어떻게 감췄을 수도 있고.’

계속 이동하던 일행은 결국 크라빈 마을을 찾지 못하고 이형종이 배회하는 숲 속에서 하룻밤 야영하게 되었다.

필요없는 이목과 관심을 끌까 싶어 저녁은 이전 촌락에서 조리해 보관해둔 것으로 대충 때워야만 했고 마차도 내부 조명을 켜지 못했지만, 마차에는 기척 차단과 체취 차단 술식이 새겨져 있어 밤새 습격받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숲의 아침이라 서늘한 기온 속에서 불을 작게 피워 뜨거운 수프를 곁들인 채소 산나물 버섯 비빔밥으로 아침을 해결한 일행은 다시 길을 따라 나아가기 시작했다.

작은 개울을 넘고 나뭇가지가 길을 가리는 걸 쳐내고 기생 두꺼비를 퇴치(개체를 특정할 수 있게 된 환연이 적을 먼저 감지해주었다)하며 이동하다 보니 점점 숲이 짙어지고 나무도 커지고 있다.

그렇게 길을 따라 나아간 지 몇 시간, 해가 머리 위에 위치했을 무렵.

쿠엣! 쿠우쿠우!

부자연스럽게 높이 자란 나무들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인위적인 연기를 발견한 비상이 쿠우쿠우거리며 환인에게 알려주었다.

환인은 그 주변을 조사한 끝에 크라빈 마을을 찾을 수 있었다.

“저렇게 가려져 있으니 멀리서 보이지 않았던 거군.”

처음 했던 추측 중 하나처럼, 마을 내에서 높고 넓게 자란 느티나무 몇 그루가 마을을 가리고 있었다.

이때문에 멀리서는 숲 일부처럼 보여 마을을 찾을 수 없었던 것.

마을은 생각 이상으로 무사했다.

‘가구 수는 210인가. 집 한 채당 5명 가족이라고 가정하면 인구는 약 1,000명.’

지금까지 방문했던 마을 중 오울링에 버금갈 만큼 작은 마을이다.

그런데 마을 주변에 경작지가 안 보인다. 교역을 주로 하는 걸로 보이지도 않는데 마을 사람들은 뭘 먹고 사는 걸까.

환인은 의문을 가지며 밥을 짓는지 하얀 연기가 올라오는 마을을 살펴본 뒤 여자친구들에게 돌아가 마을을 발견했음을 알렸다.

“마을을 발견했다. 무사하더군.”

=아! 다행이에요.=

=잘됐네. 그럼 이형종을 정리하고 미궁만 부수면 이전으로 금방 돌아가겠는걸.=

“이 길을 따라 몇 시간 정도 더 가면 나오니 조금 더 힘을 내지.”

=네.=

=엉.=

그후 도착한 돌과 나무를 섞어 세운 높이 7m의 마을 방책에서 유르파의 설명을 들은 환인은 어떻게 마을이 무사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간단한 술식이지만 우리 마차에 새겨진 거랑 비슷한 기척 차단의 술식이 방책을 통해 발동하고 있어. 이것 덕분에 습격을 줄이고 전투가 벌어지는 것을 막은 거 같아.=

그녀의 말대로 방책 너머로 전해져오는 인기척과 소음이 극히 적다.

그리고 방책에서부터 100미터 정도 깨끗하게 정리되어 공터가 숲과 마을 사이의 완충 지역으로 형성되어있었는데 그런 공터 곳곳에 뒤집힌 땅의 흔적이 존재했다.

환인은 그게 이형종의 피와 체액을 갈아엎은 흔적임을 알아차렸다.

냄새로 괴물이 이끌리는 것을 막으려 한 흔적이겠지.

=머, 멈추세요! 당신들은 누군가요!?=

길과 이어진 방책의 출입구로 다가가자 위쪽 망루에서 고양이 귀가 달린 푸른색 머리카락의 여자 머리가 올라오며 앙칼진 소리가 날아들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영역에 들어온 고양이처럼 긴장감이 삐죽삐죽 느껴지는 목소리.

머리 주변으로 유르파와 흡사한 아우라, 이퀼라이저처럼 들쭉날쭉한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것을 보면 비술사다. 등급은 3~4급 정도.

=지금 숲은 기생촉수 두꺼비로 가득 찼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도착하신 거죠?!=

아마도 저 여자가 이 방책의 기척 차단 술식을 걸고 유지하는 거겠지. 그렇게 판단한 환인은 앞으로 나서며 평온의 파동을 펼쳤다.

“이쪽은 저의 가족들로, 크라빈 마을에서 잠시 쉬어가고자 하는 영혼의 순례자입니다.”

화­ 하게 퍼져 나가는 회백색의 빛물결에 비술사 여자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지더니 허둥거리기 시작한다.

=앗?! 여, 영혼사님…… 잠시만요!=

당황이 한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그렇게 소리친 여자의 머리가 쏙 내려가더니 방책 너머에서 작은 소란이 들려왔다.

=상급 영혼사님이 방문하셨어요! 얼른, 얼른 방책 문을 여세요!=

=예? 누가 오셨다고요?=

=세상에! 저 마물의 숲을 뚫고 오셨다는 거에요?!=

우당탕, 쿵쾅. 끼릭끼릭끼릭­

뭔가 무거운 게 부딪치고 구르는 소리가 나더니 수레 같은 게 돌아가는 소리가 이어지자 방책의 문이 힘겹게 바깥쪽으로 들어 올려지기 시작한다.

나무­돌­철판­돌­나무로 이어지는 두께 5m의 어마어마한 방책이다.

그걸 본 유르파가 속삭였다.

=견고의 술식이 소재마다 한계까지 끌어올리게끔 정립되어있어. 마지막으로 다섯 술식을 하나로 엮어 짜내는 보강 술식까지. 저 정도면 안느 아가씨가 부수는데도 조금 시간이 걸리겠네.=

=저 성문에만 여섯 종류의 술식이 부여되어있다는 거야? 제법이네.=

=그러니까 마을이 무사한 거겠지. 아까 그 아가씨 반응을 보면 마냥 안전한 것 같진 않지만.=

=어째서요?=

=마을이 위험에 빠지면 그때 한탕 하려는 쓰레기가 꼬이기 마련이거든. 아마 우리를 그런 마을 털이범으로 보지 않았을까?=

=아.=

쿠우웅­

이윽고 완전히 열린 문을 통해 방금 머리만 보였던 비술사 여자가 중무장한 근접 직업자 남녀들과 우르르 다가왔다.

=어라? 영혼사님의 아우라가 없는데.=

=누나, 잘못 본 거 아냐?=

=와, 근데 옆에 있는 여자들 무지 예쁘다…….=

=잠깐! 영혼사님 앞이잖아…! 다들 조용히 좀 해…!=

아까 머리만 빼꼼 내밀었던 인묘족 여자가 2~3급 정도인 직업자들에게 작게 윽박질러 입을 다물게 하더니 환인의 앞으로 나선다.

그리고 머리카락만큼이나 푸른 로브 자락을 드레스처럼 살짝 들어 올리며 환인에게 인사했다.

=영혼의 순례길을 따라 여행 중이신 상급 영혼사님께 크라빈의 라비올라가 인사드립니다.=

“반갑습니다. 환인이라고 합니다.”

환인도 가슨에 손을 올리고 살짝 고개를 숙여 답을 하자 라비올라가 조금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위험한 만큼, 죄송하지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환인 뒤쪽의 숲을 조금 불안해하는 눈으로 바라본 라비올라가 환인의 뒤에 서 있는 여자들을 향해 말했다.

=혹시 모르는 일이라 기사님들이 마을에 드시기 전에 신체검사를 하도록 허락해주시겠어요?=

환인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에서 이 마을이 외부와 단절된 지 꽤 됐음을 눈치챘다.

그렇다해도 신체 조사라니.

“…무슨 의미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환인의 목소리가 약간 낮아진 것을 들은 라비올라는 심장이 꾸욱 옥죄는듯한 두려움을 느꼈다.

이, 이게 상급 영혼사님의 위압?

그보다 자신이 오해할만한 발언을 했음을 눈치챈 라비올라가 황급히 손을 흔들었다.

=그그! 다른 의미가 아니라 영혼 기사님 세 분 모두 고위 직업자님들로 보이시는 만큼 망할 개구리한테 당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 더러운 개구리들이 여자들만 노리는 터라 혹시 일행분들이 당하셨을까 봐, 당하시면 마을로 들이기 어려워서……! 물론 심각한 검사는 하지 않아요. 가슴이랑 배만 확인하는 수준이니까요!=

그녀가 말하는 망할 개구리는 기생촉수 개구리를 뜻하는 것 같은데 여자만 노린다니, 게다가 당한다는 말은 곧…….

환인은 어제 느꼈던 거슬림의 정체가 이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유르파가 용도를 모르겠다는 살덩어리는 여자에게 씨를 기생시키는 쓰임새겠지.

“혹시 비접촉으로도 괴물에게 기생 당하는 일이 있습니까?”

=아뇨!=

“그러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곳까지 오며 150마리에 가까운 기생 두꺼비를 처리했지만, 그녀들은 단 한 번의 피부 접촉도 허락하지 않았으니까요.”

=아, 그으…….=

예외는 있을 수 없다는 듯 라비올라가 극히 곤란해하는 모습으로 로브 앞자락을 꼭 움켜쥐자 망토로 몸을 가리고 있던 안느가 나섰다.

=도령, 뭐 알몸을 보이란 것도 아닌데 잠깐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잖아. 이봐, 라비올라 씨? 거기 남정네들 앞에서 까라는 건 아니지?=

=그럴 리가요! 류, 샤헨 너희는 먼저 돌아가 있어.=

=응, 누나.=

=어엉.=

기린의 머리를 한 남자와 멧돼지 머리를 한 남자가 환인을 힐끔거리다 라비올라의 지시에 서둘러 방책 안으로 들어간다. 남은 것은 라비올라와 세 명의 여자들 뿐.

“알겠습니다. 날카로운 반응을 보여서 미안합니다. 이쪽은 제 여자들이기도 한 터라.”

=아아. 오해할 발언을 해서 죄송해요!=

상황을 파악한 환인은 한발 물러서며 소리 없이 영혼 화살과 영혼 방패를 펼치고 만약의 경우를 대비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약 라비올라가 여자친구들에게 해를 끼치려할 경우 즉시 머리를 박살 내버리기 위해서다. 이런 오지 마을이라면 산제물이라는 것이 존재해도 이상할게 없으니까.

환인은 물러났지만, 유르파는 의문과 의구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라비올라에게 우려를 드러냈다.

=아가씨, 잠깐만? 접촉으로 감염된다고 방금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리도 조금 우려스럽스럽거든? 그러니까 너무 가까이 다가오지 말아 주겠니?=

=아, 그러실수도 있겠네요. 잠시만요…….=

라비올라는 잠시 머뭇거리며 환인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켜주길 바란다는 걸 느꼈지만, 환인은 절대 자리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음을 태도로 드러냈다.

=으우.=

하는 수 없는지 얼굴을 살짝 붉힌 라비올라는 로브 옆자락을 치워 자신의 아담한 가슴과 치골 바로 위 아랫배까지 맨살을 드러낸다.

밑가슴을 받쳐 가슴을 강조하고 말랑말랑해보이는 배도 확인시켜준 라비올라가 옷차림을 정리하며 설명했다.

=망할 개구리한테 당하면 배랑 가슴이 눈에 띄게 부풀어요. 그, 혹이 들어찬 것처럼요. 제가 신체 검사를 부탁한 이유가…….=

=아. 확실히 우리 이슬이랑 율이 언니 가슴이 크긴 하지.=

이실리테와 유르파의 가슴을 힐끔거리는 라비올라의 행동에 안느가 피식 웃자 이실리테가 민망한 듯 망토의 앞섬을 여민다.

=이렇게 보여주면 되는 거야?=

안느가 먼저 복부와 윗가슴을 보여주고 이실리테와 유르파도 따라서 가슴 일부와 배를 보여준다.

그부분을 확인한 라비올라는 즉시 환인에게 허리를 깊게 숙이며 사과했다.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문제없음이 확인되었으니까 마을 안으로 모실게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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